2019/05/19 14:39

힐리언스 선마을에 가는 길 실시간 여행중

홍천 어딘가에 전화가 안터지는 힐링 공간 - 힐리언스 선마을이란 곳이 있다길래 그곳엘 가는 중이다.

5월 "직장인 연차 프로모션 가격"으로 할인 받았는데도 가격이 쫌 된다. 어떨지 모르겠다. 이를 위해 나는 월요일 연차를 소진했다. 좋았으면 좋겠다.

잠실역에서 7000번 버스를 타고 설악 버스정류장에 내려 힐리언스 셔틀버스를 탔다. '설악'이래서 홍천이라며 왜 설악!? 하고 잠깐 놀랐는데 그냥 여기 동네 이름이 설악이란다.

요즘 스트레스가 많아 enat [모드 : 어둠] 상태인데 뭔가를 좀 풀고 와야겠다. 사실 별 자각 없었는데 연구소 신입이 쉬는 시간에 "누구 하나 잡히면 죽일 것 같은 표정으로 다니시는데 그게 제가 될 것 같아서 무서워요" 라고 말하는 걸 들어서 알게 됐다. 꿈과 희망의 enat 모드를 표방하고 있었는데 반성함.

겁 많은 신입이를 위해 전화도 인터넷도 안터지는 곳에서 모든 연락을 차단하고 푹 쉬고 올테다! 헤헤.



2019/05/06 17:25

겨울 유럽여행 (40) 바티칸 : 여행의 끝 ├ 겨울 유럽여행 (2018)

1.

성 베드로 대성당(Basilica di San Pietro)의 돔, '쿠폴라(Cupola)'는 우리가 아는 그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작품이다.




미켈란젤로는 그 이전까지 전임자들에 의해 그려진 설계안과 당시 최고의 쿠폴라로 찬사받던 브루넬레스키의 피렌체 대성당을 참고하여 (이를 위해 고령의 몸을 이끌고 피렌체 대성당의 쿠폴라에 올랐다고 한다) 성 베드로 대성당의 돔을 설계했다. 말년에 맡은 작업이었기에 그는 설계와 기초 공사만 끝낸 뒤 세상을 떠났다. 중앙 돔이 완공된 것은 그의 사후 26년 뒤였다.

이 위대한 쿠폴라가 그로부터 400년 간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영감을 불러일으킬지, 설계 당사자는 알고 있었을까. 타임머신을 타고 그의 죽음 이전으로 날아가 알려주고 싶다. 당신이 설계한 그 쿠폴라가 아직까지 건재하며 전세계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물론 미켈란젤로는 당연한 결과라며 코쓱하고 조각하러 갈 것 같지만 말이다.





2.

드디어 쿠폴라에 오른다는 생각에 잔뜩 흥분해서 입장했지만, 무수한 계단을 올라야 한다는 사실이 내 입을 다물게 했다. 초반에 엘리베이터를 탈 수는 있으나 쿠폴라 입구까지만 데려다주는 거고, 그 앞에 수백 개의 계단이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침이 꼴깍 넘어갔다.

...뭐 괜찮다. 엘리베이터도 사실 필요 없어. 처음부터 끝까지 두 다리로만 오를 수도 있다고. 오르는 건 내 전문이다. 나는 강인하고 튼튼하다. 아직 몸도 마음도 청춘이라고.

하지만 처음부터 힘을 뺄 필요는 없으니 역시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태워준다는데 안타는 것도 예의가 아니니. 흠흠.




엘리베이터를 타고 쿠폴라 입구까지 왔다. 멀리서 볼 땐 대성당의 일부를 담당하는 구조물로만 보였는데, 바로 아래에서 보니 대성당과는 별개의 단일 건축물로 보였다. 옥상 위의 거대한 옥탑방 느낌이라면 너무 저렴한 비유일까. 하여간 규모부터 비범했다.

입구에서 계단을 조금 올라가니 성 베드로 대성당 내부를 내려다볼 수 있는, 돔 내부의 구조물에 도착했다. 안전 때문에 철창이 설치되어 있었다.




아까 아래에서 본 거기가 맞는지?

아예 다른 곳처럼 보이는 탓에 뚫어져라 내려다봤다. 베르니니의 발다키노가 언뜻 보였다. 저런 어마무지한 천개가 성 베드로 대성당이 아니고서야 어디에 있겠어. 아까 거기가 맞군.




돔 내부 둘레에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라틴어라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마 베드로, 열쇠 어쩌구 하는 말인 것 같다.

나중에 위키백과를 찾아보니 정확히는 이런 뜻이란다.

TV ES PETRVS ET SVPER HANC PETRAM AEDIFICABO ECCLESIAM MEAM. TIBI DABO CLAVES REGNI CAELORVM.

너는 베드로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성경에 나오는 구절이다. 내가 찍은 부분은 '내가 줄거당' 하는 부분인 것 같다.




이건 돔 내부에서 바라본 채광창과 천장화. 엄청 가깝게 보인다. 채광창 둘레에 적힌 건 이런 내용이란다.

S. PETRI GLORIAE SIXTVS PP. V. A. M. D. XC. PONTIF. V.

성 베드로의 영광을 위하여, 식스토 5세 교황, 교황 재위 제5년, 1590년.


식스토 5세의 치세 마지막해 1590년에 중앙돔이 완공되었는데, 그를 기념하기 위해 다음 교황인 그레고리오 14세가 새긴 문구라고 한다.




돔을 둘러싸고 있는 벽면 윗부분의 모자이크.

당시 여기까지 올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을거고 아래에선 요 안쪽 벽면따위 보이지도 않을텐데, 이런 디테일을 놓치지 않은 걸 보면 확실히 이 건물은 종교적 건물이 맞다. 신에게 바치는 건물이라면 하늘과 가까운 부분을 더 아름답게 꾸며야 했겠지.





3.

돔 내부에서 잠시 머무르다가 다시 현실을 직시하고 위로 올라가기로 했다. 신에게는 아직 320개의 계단이 남아있습니다.




좁고 가파르다. 여기서 불나면 어떻게 탈출하지. 아마 탈출 못할 것 같다. 포기하고 계속 위로 올라갔다.




이런 어지러운 계단을 따라 위로 위로.




계속 위로 위로. 사람이 밀려있다. 정체 구간이다.




모르는 아저씨의 엉덩이를 보며 밧줄을 붙잡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갔다. 땀에 찬 회색빛 엉덩이를 보고 싶지 않아서 거리를 두고 천천히 뒤따르고 싶었으나 뒤쪽에 사람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바짝 붙어 올라가야 했다.

연옥의 산을 오르듯 눈 앞에 펼쳐진 상황에 괴로워하며 한발 한발 내딛었더니... 곧 정상이었다.





4.

여기서 수백개의 좁다란 계단을 오른 이들의 행동이 반으로 갈린다. 반은 숨을 고르기 위해 구조물에 걸터 앉아 헐떡이고, 반은 헐떡이는 그 상태로 신이 나서 펄떡인다. 나는 강인하고 튼튼한 청년(!)이기 때문에 당연히 후자였다.

그 유명한 천국의 열쇠와 그 너머의 로마를 바라보기 위해 전망대로 달려갔다. 모든 전망대가 그러하듯 안전을 위한 펜스가 사방을 둘러싸고 있었는데, 다들 전망을 조금 덜 방해받고 조금 더 가까이 보고 싶은 마음에 눈을 펜스 사이로 들이밀고 있었다. 그래? 그렇다면 나도.

나는 둥근 전망대를 따라 걸으며 내가 보고 싶었던 그 유명한 뷰가 보이는 포인트를 찾았다. 때마침 그 앞엔 아무도 없었다. 나는 몸을 최대한 펜스 앞에 붙이고 눈을 들이밀어 밖을 내다보았다.





천국의 열쇠를 그리고 있는 성 베드로 대광장과 대성당, 그리고 로마 시가지.

마음이 단번에 가라앉았다. 정상에서 불어오는 1월 로마의 바람이 땀을 식혀주는 통에 살짝 소름이 돋았다.

- 이거였지?
- 응, 이거였어.


누군가에겐 유럽여행의 필수 코스일테고, 누군가에겐 신성한 종교적 성지겠고, 누군가에겐 인증을 위한 장소이며, 누군가에겐 촬영을 위한 명당이고, 누군가에겐 일생의 간절한 풍경일 것이다.

그리고 나에겐, 과거의 내가 남겨둔 감동이었다.

7년 전의 이낫 학생은 실수로 이 장면을 빼먹은 게 아니었다. 이 장면의 이 감동을 지금의 나를 위해 남겨둔 것이었다. 훨씬 더 아름다운 날씨에, 더 적절한 시간대에, 보다 성숙한 정신으로 감상하라고.

기특한 녀석이다. 어쩌면 나보다 나은 거 아냐? 과거의 나.




됐다.

이제 집에 가자.

성 베드로 대성당의 쿠폴라에서 본 풍경은 여행의 끝을 고하는 풍경이었다.

나는 기억력이 좋지 않기 때문에 여행 중에 무언가 떠오를 때마다 빠르게 쓰기 위해 일기장을 펼쳐놓은 채로 가방에 넣고 다닌다. 그런데 지금 막 내 여행이 끝나버렸고, 이제 여행기를 적을 이유가 사라졌다. 나는 가방에서 일기장을 꺼내어 '쿠폴라에 올랐다'라고 적었다. 그리곤 바로 접어 가방의 잘 열지 않는 칸에 넣고 잠갔다. 이제 저 노트를 읽기 위해 펼칠 수는 있어도 적기 위해 펼칠 일은 없을 것이다.

여행이 끝났다. 지금부터는 여행중이 아니라 집에 돌아가는 중이다.





5.

후련해진 얼굴로 구조물에 걸터 앉으려는데, 저쪽에서 한 커플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그걸 한 장 찍어주고 다시 구조물에 걸터 앉았다.

음... 나도 사진을 찍어볼까?




셀카 모드로 바꾸고 생글생글 웃으며 사진을 한 장 찍었다. 그리고 사진을 확인하는데, 웃고 있는 나를 더 밝은 미소로 바라보는 할아버지가 뒤에 계셨다. 뒤를 돌아보자 할아버지가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곤 씨익 웃었다. 그러곤 눈을 감고 무언가 회상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셨다.

당시엔 뭔지 잘 모르겠어서 갸웃하고 말았지만, 이후로 이 사진을 확인할 때마다 이름 모를 할아버지의 깊고 따뜻한 미소가 보여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젊은이를 보며 뒤에서 흐뭇하게 웃어줄 수 있는. 나중에 할머니가 되면 이 할아버지와 같은 미소를 지을 수 있는 할머니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6.

다시 수백개의 계단을 밟아 내려갔다. 내려가는 길은 쉬울 줄 알았으나 계단의 폭 때문에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중앙 쿠폴라에서 내려왔다. 아직은 대성당 위쪽이다.

그런데 요 성당 지붕 위, 작은 돔들과 성물을 파는 가게가 꼭 작은 마을처럼 보였다. 넓직해서 높은 곳이라는 생각도 잘 안들었다. 날씨도 화창하니, 어디 예쁘장한 소도시의 골목길을 산책하는 기분이었다.




요잇! 다들 여기서 인증샷을 찍고 있길래 나도 그림자 사진을 찍고 내려왔다.

다리 근육도 풀 겸, 이번엔 엘리베이터 말고 걸어서 내려갔다.




지상에 내려왔다. 잠깐 올라갔다 내려온 것 같은데 태양의 위치가 많이 변해있었다.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흘렀나보다.

혹시 저번처럼 무지개가 안뜨나 내심 기대했지만, 생각해보니 이번엔 위로 받을 것이 없었다. 그런 행운은 7년 전의 이낫 학생처럼 좀 더 어리고 마음 여린 친구들에게 나눠주셨으면 좋겠다. 무지개가 필요없는 감사한 여행이었다.




알록달록한 스위스 용병들을 뒤로 하고 대성당을 나섰다.




대광장 분수 근방에서 값싼 로마 엽서 다발을 파는 아저씨를 만났다. 딱 봐도 보급형의 저가 엽서였는데, 그래도 기념인지라 주머니에 동전이 남아있는만큼 샀다.

그 엽서 다발, 나중에 새 직장엘 가서 두어장씩 뜯어 나눠줬다. 다들 신기해하며 받더라. 나중에 친해진 다음에 들었는데, 엽서가 신기했던 게 아니라 첫 출근하자마자 밝은 얼굴로 주섬주섬 엽서 꺼내서 나눠주는 모습이 디게 신기했다고 한다. 좀 특이한 사람이구나 생각했다고. 하하!





7.

배가 고프다.

시계를 보니 아침을 먹고 길을 나선지 6시간이 흘렀다. 아침부터 빨빨거리며 돌아다니고 기다란 산 베드로 대성당의 입장 줄도 서고 전망대로 가는 연옥의 산도 오르느라 아침에 섭취한 모든 칼로리를 소모해버렸다.

여행은 끝났다고 선포했으나 집에 돌아가려면 밥은 잘 챙겨먹어야 한다. 무얼 먹을까 고민하다가, 미칠듯한 고기 냄새에 정신이 팔려 홀린 듯 걸었다.




냄새의 끝엔 햄버거 집이 있었다. 아마도 패티 냄새였나보다. 저 건물 옆에서 나는 연기를 보시라. 저게 패티 굽는 연기다. 저렇게 뿜어내니 거리가 고기 냄새로 진동을 하지.

그나저나 로마에서 햄버거를 먹어도 괜찮을까? 느린 음식을 좋아하는 애들의 나라에서 햄버거라는 미국의 대표적인 빠른 음식을 먹어도 괜찮은 걸까...

...하며 고민하기에 난 너무 굶주려있었고 패티 굽는 냄새는 환상이었다. 그래서 들어갔다.

The Meat Market Roma (Grill이라고 크게 써있음, Corso Vittorio Emanuele II, 320, Roma RM, 이탈리아)




들어가자마자 맥주를 시켰다. 이탈리아 라거 맥주 페로니.

공복에는 역시 맥주다. 맥주라는 훌륭한 에피타이저가 있기에 햄버거를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거다. 호로록. 호로록.




곧 주문한 햄버거가 나왔다.

와씨.

햄버거. 마이쪙. 하씨.

계속해서 '와씨', '하씨' 등등의 성씨를 찾으며 먹었다. 나는 생각보다 많이 굶주려 있었나보다.

힘이 빠졌을 땐 역시 햄버거다. 저가의 고열량 음식! 뭐 이건 수제라서 저가까진 아니지만. 그러고보니 7년 전 학생 enat도 로마에 와서 먹은 건 버거킹 햄버거 밖에 없었다. 봐라, 학생 enat이여. 너는 7년 후에도 로마에서 햄버거를 먹을 운명이다. 너나 나나 별반 다를 게 없어.

맥주가 있으니 햄버거가 꾸역꾸역 더 잘 들어간다. 감튀까지 깨끗하게 해치우고 나왔다.





8.

그 이후엔 뭐... 슬슬 돌아다니다가 숙소로 돌아갔다.

다음은 오로지 햄버거를 소화시키기 위해 멍한 정신으로 로마의 늦은 오후 거리를 돌아다닌 사진들이다. 일기장에도 적혀있지 않은지라 사진만 올린다. 대부분이 숙소 근처 - 그러니까 비아 데이 포리 임페리알리 근처다.






















9.

숙소로 돌아가 침대에 누워 잠깐 낮잠을 잤다.

어둑어둑해졌을 무렵, 트레비 분수에 동전을 던지고 오지 않음을 떠올리며 잠에서 깨어났다. 하지만 왠지 동전만 던지러 나가기엔 내 피곤한 몸을 일으킬 명분이 충분치 않았다. 저녁을 먹을까 했으나 아까 먹은 햄버거가 워낙 배불렀기에 식사는 하고 싶지 않았고, 그냥 달달한 디저트가 땡겼다.

누워서 검색을 해보니 로마엔 폼피라는 티라미수 가게가 짱이란다. 티라미수? 그래, 이탈리아 왔는데 티라미수는 먹어줘야지. 티라미수라면 몸을 일으킬 충분한 이유가 된다. 위치는 스페인 계단 쪽. 그럼 트레비 분수 갔다가 스페인 계단으로 가면 되겠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몸을 일으켰다. 자, 나가자. 동전 던지기와 티라미수를 위해.

아래부턴 오로지 동전 던지기와 티라미수를 위해 멍한 정신으로 로마의 저녁 거리를 돌아다닌 사진들이다. 역시 일기장에 적혀있지 않은지라 사진만 올린다.























10.

다음날 새벽, 일주일 동안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해준 "카이사르 하우스 레지덴츠 로마네"의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가는 길엔 겨울비가 많이 내렸다. 이렇게 감사할 수가. 내가 간다고 로마가 슬퍼하나 보다. 장맛비처럼 굵은 빗줄기를 보며 로마에 작별을 고했다. 또 올게.

비가 하도 많이 내려 버스가 늦어지거나 비행기 출발이 지연되면 어쩌나 생각했는데 공항에는 제시간에 도착했고 지연도 없었다. 공항에 무사히 도착한 기념으로 면세점에서 올리브 오일이나 트러플 등을 많이 살까 했는데, 이른 아침이라 문을 연 가게가 없었다. 우왓, 너무해. 아쉬웠지만 돈을 아꼈다 생각하고 말았다. 어차피 많이 사가도 여기서 먹는 그 맛은 안날거다.

쇼핑도 못하고 의자에 앉아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어제 먹은 햄버거가 생각났다. 공항이니까 어디 햄버거 가게가 있겠지. 그래서 또 패티 냄새를 찾아 킁킁거리며 돌아다녔다. 다행히 근처에 햄버거 가게가 있었다. 당당하게 들어가 착석을 하고 주문을 하니, 웨이터가 '이런 이른 아침에 그렇게 헤비한 햄버거를 먹는다고?' 따위의 경악이 담긴 표정으로 내 주문을 받아줬다.

흥, 뭘 먹을지는 내 마음이지. 나는 생각보다 아침에 햄버거 먹는 걸 좋아한다. 서양권 애들은 보통 아침에 계란에 과일 따위나 빵에 커피, 많이 허기지면 브랙퍼스트 샌드위치 정도로만 먹는다. 그래서 아침에 햄버거를 시키면 프랩해놓은 재료가 없어서 거의 모든 재료를 새로 준비하고 새로 굽고 새로 튀겨서 준다. 이게 또 엄청 꿀맛이다. (아르헨티나에서 배웠다)

나중에 한국에 돌아가 친구한테 이 얘기를 했더니 너 때문에 직원들이 더 일해야한다고, 나쁘다고 했다. 어? 그런가? 그럼 나쁜 걸로 하자. 갓 구운 햄버거를 먹을 수 있다면 내가 나빠도 괜찮다. 냠냠.




오로지 나를 위해 번거롭게 준비된 (이런 걸 따지는 걸 보면 나도 참 변태다) 햄버거 세트가 도착했다. 이렇게 나오는 햄버거는 시간이 좀 걸리긴 해도, 재료의 프레시함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그런데 그걸 감안한다 해도 햄버거가 보통이 아니게 맛있었다. 공항에서 파는 햄버거가 이렇게 맛있어도 되는 건가... 로마는 공항 햄버거조차 격이 다른 것인가... 전날 햄버거 먹으면서 '와씨'와 '하씨'를 찾았던 것처럼 이번에도 누구씨를 자꾸 찾으며 먹었다. 로마는 역시 햄버거다.

배도 부르고, 이제 비행기 타는 일만 남았다.




집으로, 일상으로 돌아간다.





11.

귀국.

나는 겨울을 싫어하는 사람이었지만 겨울에 유럽으로 여행을 간 덕분에 좋은 추억을 많이 쌓게 됐다. 이제 겨울이 그렇게 싫지 않다. 내 생일도 그렇게 외롭지 않고, 찬 바람이 몰아치는 겨울밤도 쓸쓸하지 않다. 겨울비는 운치가 있다고 느끼게 되었으며, 흐리고 어두운 날씨엔 조명이 더 돋보여 아름답다는 걸 알게 됐다.

겨울을 좋아하게 됐다는 것만으로도 이번 여행의 큰 수확이라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여태까지 계속 그래왔던 것처럼, 더 큰 수확이 있었다.




여행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이후에 내 앞을 기다리는 것은 새로운 일들 뿐이었다.

재개발 때문에 이사를 갔고, 몇 개월 뒤엔 독립 준비를 해서 나갔다. 여행 가기 전 컨택했던 벤처 기업으로 회사를 옮겼는데, 벤처 기업이 으레 그렇듯 모든 일들이 처음 하는 일이었지만 도와주거나 알려주는 사람이 없어서 꽤 고생했다. 몇 차례의 발표와 출장과 전시를 아기가 걸음마하듯 알음알음 하고, 아마추어틱한 모습을 벗기 위해 노력하고, 무시도 망신도 많이 당해보고, 그만큼 인정도 감사도 많이 받아봤다. 여행이 끝나고 그 이후의 1년을 돌이켜보자면 오히려 그 쪽이 더 여행이고 모험이었으며 도전이었다.

아마 내 능력으로는 벅찼던 여러 일들을 해낼 수 있었던 힘은 이번 유럽여행 같은, '배낭여행'에서 온 것 같다. 여행 중인 장소, 여행하는 기간, 여행하며 세운 계획, 여행하며 알게 된 지식, 여행하며 알게 된 자신의 무지,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 여행에서 만난 장면들, 여행 중이라는 감각 그 자체, 필연적인 계획의 틀어짐, 어쩔 수 없는 수정안, 새로운 것을 익숙하게 받아들이고 습득하는 자세, 뭐 그런 것들이 내 삶을 도와줬다. 정말이다. 여행은 내게 있어서 훌륭한 예행 연습이었고, 그를 통해 나는 내 인생을 열심히 여행할 수 있었다.

나는 남들에 비해 약하고 서투른 인간인데다가 기억력도 짧아 이 예행 연습을 곧잘 해줘야한다. 엄마는 내게 대체 혼자 여행을 다니면 무슨 재미가 있냐고 하셨지만, 나는 재미 때문에 여행을 하는 게 아니다. 살아가는 게 서툴러서 그걸 연습하기 위해 여행을 한다. 그렇게 답했더니 말은 참 잘 지어낸다고 하셨지만. 하하.

앞으로도 나는 그 삶의 예행 연습을 계속할 거다. 이건 아무래도 양보할 수 없다.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지만, 도저히 상상도 가지 않지만, 만약 언젠가 예행 연습이 필요없어질 만큼 삶에 능숙해진다면, 이리 휙휙 떠나는 일을 그만둘 수 있을 것 같다. 그 전까진 계속 여행할 거다.





끝!



2019/05/01 23:12

근로자의 날 일상

근로자의 날을 맞이한 근로자의 평범한 하루



1) 7시 기상

핸드폰 액정이 아작나서 친구의 공기계(홍미노트)를 빌려 쓰고 있다.

근데 기존 폰(바빠서 서비스센터에 못가고 있다)이 자신을 버렸다며 원한을 가진 것처럼 아침마다 울어댄다.

원래 폰 배터리가 빵빵하기도 했는데 액정이 나가 배터리 닳을 일도 없으니 아마 지금도 배터리 만땅 상태일 거다. 아침마다 맞춰놓은 알람이 울리는데 이건 뭐 액정 죽어서 설정도 못바꾸고 소리 버튼 눌러서 꺼도 5분만 지나면 다시 울어대니 일어나지 않고는 못배긴다.

악마 같은 새끼... 그러게 누가 그렇게 쉽게 깨지래... 야유회 가서 다른 부서 팀장님들이랑 캐치볼 하다가 한 번 떨군 것 뿐인데...

결국 쉬는 날인데 7시에 일어났다.



2) 아침 식사

짜파게티 해먹었다.

근처 쇼핑몰에서 대거 할인행사 하면서 3만원 짜리 영수증만 가져오면 사은품을 준다길래 이거저거 사가지고 받아온 녀석이다. 사은품이 뭔지도 모르고  가격 맞춰서 물건 산 다음에 헤헤거리며 받으러 갔는데 짜파게티였다.

아... 짜파게티...

별로 좋아하지 않는 라면이다. 라면은 편하게 먹으라고 나온 음식인데 왜 물을 버리고 비비고 하는 행위를 해야하는지 모르겠다. 내 기준에 짜파게티는 자신의 본성에 충실치 않은 녀석이다. 짜파게티인 줄 알았다면 3만원어치 사지도 않았을 거다.

여튼 찬장 자리를 차지하는 것도 짜증나서 오늘 아침으로 해치워버렸다. 이걸로 4봉 남았다.



3) 11시 기상

라면을 먹으면 자야한다. 특히 나는 화학 조미료가 과다하게 들어가면 잠에 빠지는 체질이라 쿨쿨 잘도 잤다.

자다가 다시 깨니 11시였다.

회사 영업 팀장님한테 전화가 왔다. 근로자의 날인데 지방 영업 미팅 있어서 쉬지도 못하고 지대 짱나가지고 징징거리려고 대표님께 전화했는데, 대표님이 "이 연구원도 오늘 신제품 개발 건 때문에 출근하는 걸로 아는데 팀장님이란 분이 글케 징징거리시면 어케요~" 랬다는 거다. 그래서 자기는 이 연구원 같은 사람이 우리 회사에 있어서 감동했다고,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걸 회사 직원 전체가 알아야 한다고, 우리 함께 힘내자고 화이팅을 외쳤다.

뭐야... 오늘 근무한다는 걔는 누구여... 나 아니여...

대표님이 또 날 팔았어...

일단 자연스럽게 회사인 척 전화를 받고 잠에서 덜 깬 목소리는 과중한 업무 때문에 그런 것처럼 연기를 한 뒤 팀장님도 힘내세요 어쩌구 하고 끊었다. 나중에 대표님한테 전화하니까 둘러대서 미안하다고 그쪽에서 전화할 줄은 몰랐댄다. 그리고 사람 좋은 웃음 발사해서 그냥 나도 웃고 끊었다.

내가 너무 잘 받아주니까 날 안보이는데서 핑계거리로 잘 써먹으시는 것 같다. 이걸 더 심화시켜서 완전 최측근이 될 지 아니면 한번 으르렁거릴지 고민 중이다. 어느 쪽이 내게 유리한지는 뻔하지만.



4) 아파트 장 구경

우리 아파트에선 일정 요일마다 작은 장이 선다. 그동안은 회사에만 있어서 몰랐는데 낮에 보니까 제법 이것저것 팔더라.

구경 좀 하다가 계란 한 판과 새송이 버섯을 구입했다. 저녁에 먹어야지.



5) 강변 산책과 자전거

아파트 근처에 강변이 있어서 산책을 좀 했다. 산책하다가 자전거 몇 대를 발견했다. 쿠키라고 써 있는 자전거였다.

쿠키... 저것은 인천시 연수구의 대여 자전거... 연수구 월간 잡지에서 읽은 기억이 났다.

이번에 한번 사용해볼까 싶어 앱을 깔고 요금 충전을 했다. 임시 폰이라 공인인증서도 없어서 결제 막히나 싶었는데 카카오 페이라는 기특한 녀석이 결제 시켜줬다. 고마워요 카카오 페이...

5천원 보증금, 5천원 선불로 충전을 하고 쿠키 자전거를 빌렸다. 자전거를 빌릴 수 있는 곳이 특정 거치대가 아니라 아무 길가에 있는 자전거를 타도 되는 거여서 편했다. 그거 타고 강변을 좀 달렸다.

나는 자전거를 잘 못타기 때문에 (남미 아타카마 사막편, 타이중 르웨탄 호수편 참고) 불안불안하게 탔는데 강변 자전거 도로에 사람이 얼마 없어서 다행히도 인명사고 없이 그럭저럭 달릴 수 있었다.

그리 달리니 좀 적응이 됐다. 내친 김에 회사까지 가서 (집에서 회사까지 걸어서 15분 거리다) 출근 도장 찍고 (영업 팀장님께 보일 알리바이 획득) 옷 갈아입은 담에 (옷 두꺼운 거 입어서 그새 땀이 났다) 간식 잔뜩 챙겨서 (울 회사 경리분 입이 고급이라 간식의 퀄리티가 제법 높다) 나왔다.



6) 다시 자전거

햇볕은 따뜻했고 강변의 풀과 나무들은 연녹빛이었다. 공단 근처 강가라서 무지 깨끗한 강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볼 만 했다. 아까보다 사람이 많아졌지만 이제 자전거 타는 것에 좀 익숙해져서 나름대로 피해다녔다. 아니, 내 표정과 몸짓을 보고 보행자 분들이 피해준 걸지도...

자전거 타고 뱅글뱅글 돌다가 근처 쇼핑몰에 갔다. 걸어선 15분 20분 걸리는데 자전거로 가니 금방이었다.

쇼핑몰 1층에서 현금 줄테니 카드 만들라고 붙잡는 통에 신용카드 하나를 만들었다. 나는 이런 것에 넘나 약하다.

카드사 직원이 나보고 학생이냐 4대 보험 되어있는거 맞냐 나이처럼 안보인다 어쩌구 동안이라고 띄워줬으나 상식적으로 학생인 걸로 보이면 신카 만들라고 하겠냐... 라고 생각은 했지만 역시 빈말이라도 기분은 좋아 헤헤거리며 싸인했다. 그렇게 내 개인정보를 팔아 신카를 만들고 11만원을 벌었다.

그 이후엔 옷을 좀 봤다. 몇 벌 살까 했으나 이제 가정의 달이라 지출이 많아질테니 참자고 다짐했다. 안녕, 내 옷이 될 뻔한 아이들아.

다시 자전거를 타고 뱅글뱅글 돌다가 집에 갔다. 기분이 좋아서 타는 내내 입이 헤 벌어져 있었다. 자전거 엄청 기분 좋구나. 청춘스럽구나.



7) 저녁식사와 산책

집에 와서 샤워하는데 손에 난 상처들 때문에 무지 쓰라렸다. 자전거 타다가 생긴 상처들이다. 왜 생겼는지는 나도 잘 모른다. 당분간 실험할 때 장갑 잘 끼고 에탄올은 피해야겠다.

샤워하고 침대에 잠깐 누웠는데 가위 눌렸다. 갑자기 자전거 타서 근육이 놀란 듯 하다. 가위로 겁에 질릴 나이는 지나서 그냥 끙끙거리며 잤다.

저녁밥은 먹어야겠어서 어떻게든 일어나 닭갈비를 해먹었다. 오전에 산 새송이와 계란도 같이 먹었다. 먹으니 몸이 좀 풀리고 힘이 난다. 역시 인간은 먹는 동물이다. 오늘도 나의 자양분이 되어줘서 감사합니다, 식재료님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릴 겸 저녁 산책을 나갔다가 경비실에서 택배를 받아왔다. 외국에서 일하는 미니미니의 택배였다. 이 전남친은 여전하고 그것에 아무 거리낌이 없는 나도 여전하다. 영양제였는데 잘 챙겨먹고 건강해져야겠다.



8) 침대에서 뒹굴

페브리즈를 잔뜩 뿌린 시바견 인형과 함께 침대에서 뒹굴다가 오랜만에 이글루스 앱을 깔고 블로그에 들어왔다. 노트북을 켜질 않아 여행기 포스팅은 무리고 근황이나 가볍게 적어봤다.

2019년 봄날의 enat은 이렇게 근로자의 날을 마무리했다. 2020년의 너는 어떨까. 잘 살고 있을까.

궁금해하며 감상에 빠지기엔 내일은 외부 교육이 있어서 일찍 일어나야하고 나는 몹시 피곤한 상태다. 그냥 얼른 자야겠다.

쿨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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