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30 08:46

방콕의 밤 실시간 여행중

* 어제 써놓고 사진 업로드 기다리다가 기절하듯 잠들었다. 에어컨 세게 틀어놓고 잠들어서 겁나 춥고 목이 칼칼함. 이렇게 더운 방콕에서 감기에 걸린다면 지대 호사스러울 것 같긴 하다.



1.

방콕에 있다.

뭐 언제나와 같이 저렴한 항공권을 찾다보니 방콕행 티켓이 있었고 그래서 방콩에 와버렸다. 왕복 20 정도. 연차 쓰고 여행갈 땐 보통 20 정도에 움직이는 것 같다.



2.

6월 중에 여행 올 생각은 없었는데, 대학원 방학하자마자 직장동료들이 제발 여행 좀 떠나라고 제발 연차 쓰고 놀러가라고 등 떠밀어서 가게 됐다.

나는 내가 일케 사랑받는구나 흑흑 내 걱정을 글케 하다니 넘나 감사한 것 등등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친구가 내 이야길 듣더니 일을 겁나 시켜대고 겁나 부려먹으니 보내버리는 거라고, 지금쯤 거긴 파티 분위기일 거라고, 아직도 그렇게 세상을 모르냐며 혀를 찼다.

아, 아니야! 너야말로 몰라! 우리 동료들은 그러치아나... 그치? 웅?



3.

나는 현재 카오산 로드 근처의 숙소 침대에서 에어컨 바람 쐬며 뒹굴고 있다. 호텔 야외 홀에서 계속 생음악 나와서 즐겁게 듣고 있었는데 이제 철수했나보다. 아쉬워라.

그나저나 숙소... 할 얘기 많다. 방콕에 도착하자마자 숙소 때문에 날뛰고 싸우고 지지고 볶았다. 뭐 여행기를 쓰게 된다면 차근차근 설명할 수 있겠지.



4.

그런 칙칙한 이야기는 됐고, 오늘 하루 동안 본 사진들이나 조금 추려서 올려보겠다.


















































늘 그렇듯 계획은 없으나 어떻게든 잘 여행하고 있다. 내일 뭘 할지는 잘 모르겠다. 자면서 생각해봐야겠다. (지금 포스팅 업로드 시점은 그 내일의 새벽인데 뭘 할지 아직도 못정했다. 좀만 더 자면서 생각해봐야겠다)





2019/06/27 23:44

타이베이 주말여행 (5) 라오허제 야시장과 샹산 └ 타이베이 주말여행 (2019)

1.

단수이 부둣가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던 나는, 웨이에게 단수이에서 오늘 일정을 마치자고, 여기서 맥주를 마시고 끝내는 건 어떠냐고 물었으나, 웨이는 잠시 고민하다가 거절했다.

웨이 : 너 오늘 밤에 라오허제 야시장에 가기로 했잖아. 여기서 포기할 셈이야?
나 : 으, 응!? 아니 포기라고까진... 그냥 여기 분위기 좋잖아?


웨이는 처음 계획대로 라오허제 야시장에 가자고 했다. 더 많은 음식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면서 말이다. 아까 그렇게 먹고 또 먹자고? 여기서 바다 바라보며 맥주만 가볍게 마셔도 끝내줄 것 같은데. 나는 입을 뻐끔거리며 눈앞에 펼쳐진 맥주 가득한 테이블들을 미련 섞인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웨이는 '그건 너 혼자서도 할 수 있으니 오늘은 라오허제 야시장엘 가자'고 했다.

웨이 : 여기선 다음에 왔을 때 먹으라고. 나 없을 때. 야시장 혼자 가는 건 어려우니까 이번에 나랑 가고.
나 : 어? 너 없을 때? 너 어디 가?






2.

라오허제 야시장은 송산Songshan역 근처에 있고, 단수이에서 한참 내려가야만 했다.




우리는 단수이에서 Red Line을 타고 내려가다가, Green Line으로 갈아타 종점인 송산역까지 갔다. 거기까지 가는데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기에, 웨이에게서 이야기를 들을 여유는 충분했다. 나는 MRT에서 아까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고, 웨이는 순순히 입을 열었다.

전자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웨이는 이번에 회사를 이직했는데, 그 이직 조건이 멕시코 발령이었단다. 자기야 중앙 아메리카의 코스타리카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기도 했고, 스페인어도 할 줄 아니까, 괜찮을 것 같았단다. 그래서 그 조건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나 : 뭐어어어! 진짜? 멕시코 간다고? 언제 가?
웨이 : 다음주.
나 : 뭐어어어어어!!?? 지이인짜!?
웨이 : 그러니까 나 있을 때 더 많은 곳을 가봐야...
나 : 어어어엉엉 뭐야 왜 이제야 말하는 거야아아ㅏ아!!!


웨이는 자신이 타이완에 있으나 멕시코에 있으나 어차피 우리가 보는 빈도는 1년에 한 번, 2년에 한 번인데 괜찮지 않냐고 했다. 뭐가 괜찮아! 같은 아시아권에 - 비행기로 3시간 밖에 걸리지 않는 타이완에 - 있는 거랑, 가는데 하루 이틀은 당연히 걸리는 아메리카 대륙에 있는 거랑, 어떻게 같냔 말이다! 게다가 멕시코는 위험하잖아!

나 : 흐어어엉! 나는 너무 슬퍼!
웨이 : 아니, 뭐가 문제인 거야.
나 : 너는 아시아를 떠나는 거잖아! 슬퍼!
웨이 : 아, 아니, 영영 떠나는 건 아니고 일 때문에 가는 거라고.


웨이는 진땀을 빼며 나를 달랬지만, 나는 무진장 슬퍼져서 연달아 흐어엉거리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물어봤다.

나 : 아, 그렇지, 멕시코 어디로 가는 거야?
웨이 : 알려나? 과라라하라.
나 : 어... 과달라하라 말하는 건가?
웨이 : 응? 그건 어디야? 과라라-하↗라↘ 말이야.


스페인어 도시 이름에 왜 자꾸 성조를 넣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역시 과달라하라(Guadalajara)를 말하는 것 같다. 멕시코 여행 준비할 때 본 적이 있는 도시였는데, 멕시코 내에서도 안전한 축에 속하는 도시로 기억하고 있다. 뭐, 그건 다행이군.

나 : 그럼 그 과라라-하↗라↘에 얼마나 있는 거야?
웨이 : 글쎄... 기약이 없긴 한데...
나 : 흐어엉! 그것봐! 우린 다시 못 볼 거야! 흐엉어엉엉!
웨이 : 으아아! 진정 좀 해!






3.

웨이는 결국 '그럼 멕시코에 놀러오면 되지 않냐, 장기 휴가를 받으면 과라라-하↗라↘에 여행을 와라, 내가 책임지고 구경시켜 주겠다, 맛있는 것도 많이 사주겠다!'고 말했다. 아니 뭐, 그런 말을 들으려고 이런 건 아닌데. 하지만 그렇게까지 말하다니 어쩔 수 없군. 나는 징징거리던 걸 단박에 멈춘 뒤 좋다고, 약속 꼭 지키라고 했고, 웨이는 당했다는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내가 흐엉거리는 소리를 멈추자, 웨이는 이제 자신이 흐엉거리기 시작했다. 멕시코에 가면 대체 무얼 먹으면 좋냐고, 타이완의 맛있는 음식들이 거기엔 없을텐데 어떡하냐는 이야기였다. 하긴, 멕시코 음식이 진짜 맛없긴 하지. 하지만 평범한 위로라도 해줘야겠다. 나는 태평하게 데낄라와 타코를 먹으라고 했고, 웨이는 내 성의없는 대답에 더욱 흐느꼈다.

웨이 : 그리고! 거긴 인형뽑기도 없을 거 아냐!
나 : 아... 그렇겠지?
웨이 : 난 대체 뭘 하면 좋냐고...


너 인형뽑기 진짜 좋아하는구나. 나이치고 엄청 건전하게 논다. 나는 이번에도 무심하게 판초를 입고 기타를 치며 놀라고 했고, 웨이는 좀 더 걱정해주면 기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힘없이 했다.

나 : 이제 송산이다! 내리자!
웨이 : 그래... 오늘은 타이완이니까 일단 먹자...






4.

송산역에서 강쪽으로 올라가자, 어마어마하게 화려한 절이 나타났다.




나 : 저게 뭐야?
웨이 : 송산츠유궁. 저기 엄청 돈 많은 사원이야.


그러면서 웨이가 사원에 대한 욕(?)을 뭔가 했는데, 기억이 나진 않는다.




그 화려한 절 옆이 라오허제 야시장(饒河街夜市, Raohe Street Night Market)이다.

야시장...

몇 년 전만 해도 '야시장'이란 단어는 엄청 두근거리고 신기한 느낌이었는데, 요새는 우리나라에도 야시장이 많이 생겨서 그 낯설음에서 오는 신비하고도 신선한 감각이 사라졌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야시장은 어딜 가든 천편일률적 메뉴에 비슷한 구성 및 디자인으로 꾸며져 있어서, 더 빨리 질리게 됐다. 이제 '야시장'도 '벽화마을'이랑 비슷한 수순을 밟고 있지 않나?

그게 무지 아쉽다. 심지어 '야시장'이란 건 우리나라 오리지널 문화도 아닌데, 흔해 빠진 모방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서 식상한 콘텐츠가 되어버린 게 말이다. 나는 이제 '야시장'이란 단어를 들어도 별 감흥이 없다. 아까 웨이에게 단수이에서 놀자고 제안했던 것도, '야시장' 정도야 가나 안가나 상관 없겠거니 하는 속마음 때문이었다.

웨이 : 자! 이제부터 먹는 거야! 저 앞에 있는 메뉴는 어쩌구 저쩌군데...

그러나 심드렁한 내 마음과 다르게, 웨이는 '자신의 자랑이자 긍지인 먹거리의 천국 타이완의 야시장'으로 날 데려온 것에 순수하게 기뻐하고 있었다. 그래, 여기는 타이완이지, 한국이 아니다. 타이완에서의 야시장은 '지역경제 살리기'의 일환도, '창업의 디딤돌 역할'도 아닌 이 나라의 당연한 문화인 것이다.

무엇보다도 웨이가 저렇게 신이 나있는데, 나도 노력해야지. 으으, '야시장'의 심드렁함이여, 내 속에서 사라져라!

나 : 우와아! 좋아! 그럼 저거부터 먹어보자!
웨이 : 그래! 일단 줄을 서자!






5.

라오허제 야시장은 타이완에서 갔던 스린 야시장(in Taipei)이나 펑자 야시장(in Taichung)에 비해 작은 규모였으나, 정렬이 잘 되어있고 다니기 편한 축이었다. 아래부터 라오허제 야시장에서 먹어본 음식들을 쭉 올려본다.




무지 뜨거웠던 화덕만두!

야시장 입구에 있었는데, 웨이 말로는 거의 라오허제 야시장의 간판이라 할 수 있는 가게라 했다. 줄이 무진장 길게 늘어서 있어서 좀 겁먹었는데, 거의 5분도 안돼서 받았다. 옛날엔 30분씩 기다려서 사먹고 그랬는데, 이제는 가게에서 회전률을 높여 얼마 기다리지 않아도 사먹을 수 있다고 했다.

나 : 무지 잘 아네.
웨이 : 나 이 근처에서 자취한 적 있었거든. 이 화덕만두 맨날 사먹었었어.


맛은 우리가 아는 그 화덕의 맛. 겨울에 먹었으면 더 맛있었을 것 같은데... 4월의 대만에서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하하.




요거는 지인짜 좋아하는 대만 소세지.

나는 소세지나 핫바, 오뎅 등을 안먹는 편이다. 식당 가서 반찬으로 나오면 한두개 정도 먹긴 하는데, 그걸 굳이 찾아서 먹거나 내 돈으로 사먹진 않는다. 갈아서 뭉쳐먹는 종류를 왜인지 싫어한다. 딱히 간 고기/생선에 대한 불신이 있는 건 아닌데... 뭐 식감이나 짠맛 때문이려나. 어릴 때 그런 류의 음식들에 노출된 적이 없어서 - 엄마의 밥상은 나물반찬에 특화되어 있었다 - 그럴지도 모르겠다. 여튼 잘 안 먹는다.

근데 예전에 펑자 야시장에서 따창바오샤오창 먹은 뒤로 대만 소세지에 대한 신뢰도가 올랐다. 뭐 이렇게 질이 높고 맛있을까! 그래서 대만에서만큼은 소세지를 먹는다. 튼실하고 오동통하고 쫄깃한 식감이 무진장 좋다. 그리고 그리 짜지 않다. 혹여 짜더라도 용서할 수 있을만한 식감이다.

웨이는 앞으로 먹을 게 많으니 소세지 정도는 하나 사서 반으로 나눠먹자고 했으나, 나는 그게 무슨 소리냐고 기겁하며 거절했다. 그리곤 마이 소세지 마이 소세지 어쩌구 하면서 웨이를 반경 1m 거리로 쉭쉭거리고 내쫓은 뒤, 내가 다 먹어 치웠다. 미안해, 웨이. 하지만 내 대만 소세지를 누군가랑 공유할 순 없었어.

하아... 증말 대만 소세지 넘나 좋은 것이다...

또 먹고 싶다.

츄릅.




요건 돼지고기 작은 튀김. 소세지를 음미하다가 사먹은 거라 사진 찍을 여력이 없었다.

콜팝에 있는 닭 튀김처럼 생겨서 닭고기인줄 알았는데, 웨이한테 물어보니까 돼지고기를 잘게 잘라 튀긴 거라고 한다. 어쨌든 맛있다. 튀긴 건 그게 어떤 고기던간에 맛있다. 과자처럼 가볍게 먹었다.




요건 타로 튀김. 말 그대로 타로를 반죽해서 튀긴 거. 타로 100%인지 다른 거랑 같이 섞어서 반죽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타로가 어떤 맛을 내는지는 버블티 때문에 알고는 있으나 무슨 식물인지 어떤 성질을 가지고 있는지는 잘 모르기에...

근데... 겁나 고소하다아아아! 푸석하지도 너무 질지도 않은 딱 적당한 질감을 가진 데다가 무지 고소하다아아! 손님이 없었는데도 튀기는 시간이 좀 오래 걸리긴 했는데 (손님이 없어서 기름 온도 맞추느라 오래 걸렸나?) 기다릴만한 가치가 있는 맛이었다.




요건 국물 있는 취두부! 선지랑 같이 나왔다.

사실 두부가 아니라 저 국물 때문에 사먹었다. 김을 내며 보글보글 끓는 모습을 도저히 지나칠 수가 없더라. 왜 나는 대만의 그 더운 날씨에도 뜨거운 국물을 찾아 마시는 걸까. 정말 왜 그렇게 좋은 걸까, 뜨끈한 국물이란 건... 크...

웨이는 걱정하는 표정을 지으며 '너 이거 못먹을텐데, 분명 남길텐데, 냄새날텐데' 어쩌구 하는 말을 중얼거렸고, 나는 웨이의 걱정과는 다르게 한그릇을 깨끗하게 비웠다. 내 뜨국력(뜨거운 국물 흡수력)을 우습게 보지 마라.




요건 Winter melon milk. 동과 우윤데 웨이가 취두부 먹다가 사레 걸려서 사왔다.

사레에 걸려서 얼굴이 시뻘개진 웨이 - 취두부를 먹다가 사래에 걸린 대만인과 옆에서 신나게 국물을 퍼먹는 외국인이라니 어째 반대로 된 것 같다 - 는 같이 먹자고 빨대를 두개 꽂았는데, 나는 한모금 맛만 보고 말아서 결국 웨이가 다 마셨다. 국물 있는 음식을 먹고 있는데 음료가 웬 말이야.

뭐, 맛 자체는 좋았다. 타이완에 맛없는 과일 음료가 어딨겠어. 열대과일 천국인데.




이번 타이베이 여행 중 제일 맛있게 먹은 음식.

웨이는 내가 국물이 있는 음식에 환장을 한다는 걸 깨닫곤, 야시장에 있는 어떤 가게로 날 데려가 이 음식을 먹였다. 내가 배부르다고 말해서 한그릇만 시켜서 나눠먹었는데, 솔직히 각자 한그릇 시켰어도 나는 다 먹었을 거다. 배부른 것과는 상관없이 맛있는 맛이었다.

웨이가 음식의 내력에 대해 뭐라 설명을 한 것 같긴 한데 귀에 하나도 안들리고 그냥 이것만 열심히 먹었다. 고기도 국물도 모두 아름다웠다. 고기! 어쩜 그리 탱글하고 쫄깃한지! 국물! 어쩜 그리 뜨끈한지! 특히 숑숑 썰어넣은 파와 국물을 함께 마실 때면 입안에서 고기 육수와 파 향이 퍼지고 속이 뜨끈해지며 눈앞이 환해졌다.

이름이 뭔지도 모르고 퍼먹었는데 나중에 웨이가 '파이구슈탕(돼지갈비탕)'이라고 알려줬다.

다음에 오면 이거 또 먹을 거다. 메모했다.





6.

먹으면서 구경한 라오허제 야시장 이모저모. 아기자기하니 좋았다. 굳이 스린하고 비교하자면... 이쪽에 손을 들어주고 싶군.

여기 둘러보면서 한국에서 생긴 '야시장'이란 단어의 식상한 감각도 많이 사라졌다. 역시 오리지널은 다르다.




야시장의 정겨운 저 전구 불빛... 앞에선 '야시장'이라는 것에 설렘이 사라졌네 어쩌네 했었지만, 막상 저 야시장 디폴트 전구의 반짝거림을 보게 되자 괜히 가슴이 울렁거려왔다. 역시 조명의 힘은 위대하다.

그러고보니 지난 겨울, 꾸미기 전이라 아무것도 없던 자취방에 트리 전구 천장에 매달고 지냈던 적이 있었는데 그 땐 반짝거리는 전구만 보고 있어도 무지 기분이 좋았었다. 비슷한 거겠지.




물고기 건지기. 요건 일본 놀이 아닌가.

한 번도 안해본 놀인데 궁금하긴 하다. 그냥 잡으면 되는 거 아니가? 생각보다 어려운가?




웨이가 의기양양하게 보여줬던 오리 대가리. 콧구멍 보인다.

아마도 내가 놀라거나 소리를 지를 거라 생각했던 것 같다. 얘도 이런 거 보면 참 유치하단 말이지. 적당히 맞춰주기 위해 질색하는 표정으로 덜덜 떨었더니 만족해했다. 번거롭군.




수제비처럼 두툼한 면을 만들던 로봇. 팔로 반죽을 쓱싹쓱싹 썬다.

처음엔 우와! 로봇이 요리를! 로봇이 재래시장에 도입되다니 대만의 기술력은 세계제일이구나! 했는데, 보고 있다보니 위아래로만 움직이는 엉성한 팔에 결과물도 넘나 조악해서 보다가 뿜었다. 이거 가게 사장님이 만드신 거면 대박인데.




여기는 길거리 마사지샵. 이런저런 마사지를 하고 있었는데, 제일 충격적인 건 얇은 실로 피부 잔털을 정리하는 광경이었다. 마사지사 손놀림이 장난이 아니었다. 내 피부로 저 실이 지나가는 걸 상상하니 소름이 쫙 돋았다.

만화에서 비겁한 악당들이 얇은 실을 무기로 쓰는 건 봤는데 대만에선 참으로 이롭게 사용하는구나. 역시 평화롭다.


...

어? 생각보다 사진이 얼마 없다. 아마 먹으면서 손에 뭔가 많이 묻힌 탓인 것 같다. 카메라 들고 다니면 얼마든지 사진 찍는데, 요샌 스마트폰으로만 사진을 찍으니 손에 뭐 묻으면 화면 만지기 싫어서 안찍고 그런다. 허허.

여튼 라오허제 야시장 사진은 여기까지.



충분히 둘러보고 돌아가는 길. 웨이는 내게 더 맛있고 더 많은 음식을 먹이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누굴 돼지로 아는 건가! 나는 오늘 먹은 것들 (단수이+라오허제) 전부 충분히 맛있었고 충분히 많았다고 알려주며 고맙다고 했다.

웨이 : 아니, 부족해. 역시 타이난에서 봤어야 했어.

도대체 타이난에 무슨 음식들이 있길래 예전부터 타이난, 타이난 하는 거람. 이쯤되면 오기로라도 가봐야겠다. 물론 이 이후에 웨이는 없겠지만, 웨이랑 함께 다녔던 감각과 기억을 잘 떠올린다면 나는 아마 무진장 잘 다닐 수 있을 것 같다.





7.

길거리에서 어떤 할머니가 껌 사달라고 웨이를 붙잡고 조르는 통에 껌을 한 통 샀다. 나였으면 그냥 무시하고 갔을텐데 웨이는 역시 웨이하더라. 그 직후 지하철에 탄 웨이는 내가 껌 좀 달라는 말에 무심코 껌을 주곤, 자신의 입에도 껌을 하나 넣었다. 그로부터 30초 정도 지났나, 웨이가 앗 하고 멈춰섰다.

웨이 : 안돼! 지하철에서 껌을 씹어선 안돼!
나 : 엉? 아, 음식물 벌금 내는 것 때문에?


베이터우 포스팅에서도 언급했다시피 타이완 MRT에서는 물을 마시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고 있다.

웨이 : 이럴수가, 내가 지금 지하철에서 껌을 씹고 있잖아? 말도 안돼.

그러더니 휴지를 꺼내어 껌을 뱉는 웨이. 그리고 나보고도 뱉으라는 거였다. 나는 그냥 입에 물고 있으면 안되냐고 물었으나, 그는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며 내 껌을 뱉게 했다. 에잉.

웨이 : 나... 나는 엄청난 죄책감을 느껴...
나 : 응? 아니 안들켰잖아~ 그럼 됐지.
웨이 : 내 평생 MRT에서 무언가를 먹어본 적이 없었는데... 나는 나쁜 사람이야...


이 정도면 장난인지 진담인지 잘 모르겠다. 나는 그냥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죄책감에 괴로워하는 웨이를 무시하곤 앞으로 갈 샹산이라는 곳에 대해 찾아봤다.





8.

오늘 먹은 것들을 꺼트리기 위해 샹산에 올랐다. 야경 보기에 좋다고 알려진 곳이다.




원래 갈 생각은 없었으나, 돌아가는 길에 "이러다가 나 돼지 될 것 같다, 배가 너무 부르다" 운운하는 이야기를 하는 통에 웨이가 추천해서 가보게 됐다. 라오허제에서 샹산 근처까지 가는 버스가 있을 법도 한데, 우리는 가는 길에 들린 거라 그냥 지하철로 빙 돌아서 이동했다.

Xiangshan (Red Line 종점) 역에서 내리면 샹산 공원이 나오고, 공원을 따라 10~15분 정도 걸으면 샹산 등산로다.




샹산 공원에서 바라보는 타이베이 101.

고급 맨션들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타이베이 101은 압도적으로 멋있었다. 사진엔 담지 못한 위용과 위엄이 있었다. 우리는 갓 서울에 상경한 뜨내기들처럼 우와를 연달아 외쳐가며 고개를 위로 젖힌 채 걸어갔다.

그러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뻔 해서 정신 차렸다. 문득 궁금한 게 생겨, 아직도 우상단을 바라보며 걸어가는 웨이에게 물어봤다.

나 : 웨이. 여기 부동산 시세가 어떻게 돼?
웨이 : 무지 비싸.


그러면서 금액을 대충 말해줬는데 원으로 환산하다가 기겁하고 계산을 멈췄다.

나 : 나는 평생 돈 벌어서 모아도 여기선 못 살겠네.
웨이 : 나도 마찬가지야.





부동산 이야기를 하다보니 샹산 등산로는 금방이었다. 나는 근처에 오면 편의점이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자판기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있더라. 웨이는 정상에서 먹자며 음료를 골랐는데, 우리의 잔돈을 아무리 모아도 딱 음료 한 캔 값 뿐이었다. 나는 웨이에게 선택권을 줬고, 웨이는 루트 비어를 뽑았다. 비어? 맥주인가? 여튼 같이 나눠먹자고 했다.

그 뒤로는 뭐... 끝없는 계단을 올랐다. 솔직히 너무할 정도로 계단이 펼쳐졌다. 오르는 걸 잘하는 나지만 이건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간격과 정도란 게 없었다. 나중에 인터넷을 찾아보니 '샹산'은 한국인 여행자들 사이에서 그 가파른 계단과 난이도로 인해 '썅샨'으로 불린다더라.

웨이는 저 뒤에서 지쳐서 헥헥거리며 날 쫓아오고 있었고, 나는 정상에서 이 고통을 끝내버리고 싶은 마음에 더 빨리 올랐다.

웨이 : 같이... 가... 헉헉...
나 : 웨이, 이런 곳인 줄 몰랐던 거야?
웨이 : 나 여기 처음... 처음 와봐...


서울 태생이면서 남산 안가본 사람 은근 있다더니 웨이도 그런 것 같았다.

여튼 지친 웨이와 간격이 더 벌어지면 안될 것 같았다. 예전에 나 때문에 아타카마 사막에서 고생했으면서도 그 티를 1도 내지 않았던 웨이였기에, 나도 그 모습을 본받아 속도를 늦추기로 했다. 야경 좀 늦게 보면 어떻고, 또 안보면 어떻나. 다음에 와서 보지. 타이베이는 왠지 이후에도 몇 번 더 올 것 같은 느낌이란 말이지.

웨이는 체력 때문에, 나는 배려를 빙자한 게으름 때문에 걸음이 서서히 느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중턱에서 멈추게 됐다. 바위가 잔뜩 있는 곳이었는데, 여기도 나름의 뷰포인트였는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야경을 구경하고 있었다. 어쩐지 정상까지 가면 웨이가 쓰러질 것 같아서 그냥 여기서 야경 보고 내려가자고 했다. 쟤 쓰러지면 나는 쟤 못 끌고 내려온다. 웨이는 숨을 헐떡이며 아주 잠시 고민하더니, 네가 힘들어보이니 그러자고 했다. 그래, 핑계거리로 날 빌려주겠다.




거대한 바위가 많은 중턱에서 바라본 타이베이의 야경.

저 날 습도가 무지 높았는데, 그 때문에 빛이 잔뜩 번져보였다. 끈적끈적, 후덥후덥. 목이 말라왔다. 나는 웨이에게 아까 산 루트비어 한모금만 달라고 했다. 이렇게 더울 땐 역시 비어지!

나 : 꿀꺽꿀꺽... 우풉풒!

웨이는 더럽게 뭐하는 짓이냐는 표정이었고, 나는 경악해서 입을 뗐다. 아니 이 기이한 파스맛 음료수는 뭐야!?

나 : 아니, 이게 뭐야! 이거 왜 비어가 아니야!?
웨이 : 응? 너 루트비어 처음 먹어봐?
나 : 처음이야! 완전 처음이고 이런 해괴한 음료 역시 처음이야!


루트비어는 여행 다니며 외국에서 보기만 했지, 따로 먹어본 적은 없었는데, 여태까지 먹어보지 않았음이 다행으로 느껴지는 음료였다. 아니 왜 음료수에서 파스 냄새가 나는데!? 그런 주제에 왜 이름은 비어야!? 사람 헷갈리게 하지마, 이 근육진통제야!

웨이는 자기가 매우 좋아하는 음료인데 너무 뭐라고 한다며 툴툴댔고, 나는 이 음료의 맛을 알고도 구태여 마시는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에 경악했지만, 취존을 해주기 위해 노력했다. 나는 남의 취향을 존중하며 내가 이해하지 못해도 매도하지 않는 21세기의 포용력 있는 지식인이다...

나 : 그거 완전 이상해! 완전 이상하다고!




아까 루트비어를 뿜는 통에 옷이 좀 젖었으나, 이미 옷은 땀에 쩔어있었기에 별로 이상한 것도 느끼지 못했다. 우리는 그곳에서 숨을 좀 고른 뒤, 서로의 체력없음을 비웃고, 루트비어에 대한 공방도 펼치다가, 모기한테 잔뜩 뜯겼다는 걸 깨달은 뒤에야 하산했다. 내려오는 길엔 아까 그냥 지나쳤던 중간 전망대 하나가 있었는데, 왠지 거기서 보는게 아까 위쪽의 바위에서 보는 것보다 전망이 더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 전망대에 올랐는데, 진짜 거기에 들어서자마자 타이베이 101의 불이 딱 하고 꺼졌다.

나 : ......
웨이 : ......


아닠ㅋㅋㅋㅋ 너무하는구만!

상황 정리 : 샹산 정상도 가지 못하고, 전망대에선 타이베이 101 불이 꺼지고, 루트비어는 최악의 맛이었고, 옷은 땀에 절어 찝찝하고, 모기에 뜯긴 부위는 무지 가렵고, 푹푹 찌는 열대야는 여전함.

우와, 지금 생각하니 무지 싫은 상황이다! 근데 당시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즐거웠다. 운동 후 분비되는 아드레날린 때문인가? 나는 참 호르몬에 정직한 인간이구나. 옆을 보니 나보다 더 볼썽사나운 모습으로 걷고 있는 웨이가 있었다. 웨이에게 이 비슷한 이야기를 하자, 웨이는 자기도 동감한다며 기분이 상쾌하다고 했다.

샹산... 역시 산은 위대하다...





9.

웨이는 나를 호스텔까지 데려다줬다. 나는 잠시만 기다리라고 한 뒤 숙소에서 짐을 꺼내어 청주공항에서 샀던 한국 물품들을 가지고 내려와 그에게 선물했고, 웨이는 이런 거 좀 제발 사오지 말라는 친정엄마 같은 소리를 하며 그 선물을 받았다.

그는 다음날 아침 일찍 출근이라고 했다. 오늘 하루 종일 나 때문에 고생했는데, 그리고 지금 벌써 자정이 넘은 밤인데, 다음날 일을 하러 가야하다니 매우 미안했다. 게다가 막 알게 된 건데 그는 현재 타이베이에 살고 있지 않다고 했다. 타이베이에서 버스를 타고 1시간 정도 걸리는 근교도시에 살고 있다고 했다. 이 늦은 시간에 집까지 어떻게 가냐고 묻자 다행히 새벽 버스가 있다고 했다. 우와, 두 배로 미안하다. 하지만 웨이는 별 문제 없다고, 자기는 강한 남자이기 때문에 괜찮다고 했다. 시뻘겋게 충혈되고 반쯤 감긴 눈으로 그런 이야기를 해도 설득력이 없다.

에이, 지가 괜찮다니 괜찮겠지. 나도 피곤하다. 나는 기지개를 펴며 인사했다.

나 : 그럼 다음은 멕시코에서 봐?
웨이 : 진짜 ㅋㅋㅋ 진짜 올거야?
나 : 음, 시간 되면? 언제는 안그랬나.
웨이 : 그래, 멕시코에서 보자. 과라라-하↗라↘에서.
나 : 응! 과라라-하↗라↘에서 봐!


우리는 내일 만날 것처럼 헤어졌다.





핑시선에서 계속!




2019/06/23 23:57

힐리언스 선마을 ├ 중부지방

1.

대한민국 어딘가에 힐리언스 선마을이라는 곳이 있다.

팜플랫이었는지, 잡지 인터뷰였는지, 하여간 힐리언스에 대해 소개하는 글에서 '대한민국에 이런 곳이 한군데 정도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지 않으신가요?' 라는 문구가 - 정확하진 않고 대충 저런 의미였다 - 쓰여 있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참 그렇다. 위로가 되는 곳이다.

힐링하겠다며 연차쓰고 다녀온 지 한 달 정도 지났는데, 아직 포스팅을 하지 않아 까먹으면 어쩌나 싶다. 지금 기억나는대로 쭉 써본다.


<요약>

1) 산속에 작게 꾸며진 힐링 리조트. '힐링 리조트'가 공식 표현이다.

2) 전화도, 인터넷도 안터진다. 들어가 있으면 속세를 떠난 느낌이다. 디지털 디톡스가 가능한 곳.

3) 객실은 넓고 쾌적하며, 천창이 있어서 하늘을 바라볼 수 있다.

4) 삼시세끼 건강식을 챙겨준다. 저염식, 디톡스 등 건강을 신경 쓴 식단.

5) 입촌하면 옷을 준다. 승복? 같은... 산에 사는 사람들이 입는 무진장 편안한 옷을 준다.

6) 리조트 내에는 카페, 도서관, 산책로, 목욕탕, 찜질방, 요가장, 갤러리 등이 있으며 모두 이용 가능하다.

7) 리조트 단지는 오르막 내리막이 심하다. 많이 걷고 운동하라고 일부러 그리 지었다고 한다.

8) 입촌 시 요가/산책/명상/영화감상 등등의 프로그램 시간표를 받을 수 있다. 참가하고 싶으면 그 시간대에 그 장소로 나가면 된다.  





2.

홍천에 위치한 힐리언스 선마을.

가는 방법은 세 가지다.

1) 자가용

2) 잠실역에서 시외버스 7000번을 타고 설악터미널(가평)에 내려 택시타기 (지난 달까지만 해도 [설악터미널-힐리언스 선마을] 무료 셔틀버스가 있었는데 유료 셔틀버스를 운영하며 사라진 것 같다)

3) 새로 생긴 [잠실-힐리언스 선마을] 유료 셔틀버스. 5천원이고, 사전예약을 해야한다.





3.

입촌하면 가을동에 위치한 웰컴센터에서 체크인을 한다. 카운터에선 안내장과 지도, 객실 비밀번호와 식권을 준다.

객실은 봄/여름동과 가까운 정원동과, 가을/겨울동과 가까운 숲속동으로 나뉜다. 나는 정원동에 머물렀다.





정원동 건물은 요래 생겼다. 전면에 선마을을 바라볼 수 있는 거대창이 있고, 위로는 천창이 뚫려있다.





객실 내부. 깔끔하고 쾌적함.

에어컨은 없다. 실링팬만으로 공기흐름을 만들어 온도조절을 하는 듯.

딱 하나 마음에 안드는 게 있다면 침대다. 매트리스 자체는 좋았는데 움직일 때마다 나무틀인지 뭔지가 계속 삐걱이는 소리를 내서 불편했다. 몸은 편안했지만 귀가 거슬려서 잠을 잘 못 잤음.





화장실.

온천장과 찜질방이 가까운 곳에 있어서 객실에서 샤워한 적은 없었다.

기본 클렌징, 샴푸, 로션 등의 어메니티 제공함.





천창.

사실 천창이 있다는 말을 듣고 그럼 밤에 자면서 별 볼 수 있는거가 우왕 두근두근하며 갔었는데, 천장이 높은데다가 창이 옷장 쪽에 나있어서 전혀 볼 수 있을 각도가 아니더라. 게다가 비가 왔다.

흑.





웰컴드링크가 홍삼달임액이다.

역시 건강한 마을...!





상온에서 마시라고 권유하는 물 두 병과 홍차/녹차 티백, 친환경 종이컵이 구비되어 있다. 종이컵에 차 우린 뒤 컵꽂이에 끼워서 잘 가지고 다녔다.

객실 구경은 모두 끝났다. 이제 사진상 왼쪽에 보이는 짱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마을 구경을 시작하자.





고고!





4.

제일 먼저 간 곳은 봄/여름동에 위치한 춘하서가.

작지만 LP 음악을 들으며 독서를 할 수 있는 알찬 도서관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선마을에서 제일 많이 머물렀던 공간이 바로 여기다.

분위기가 진짜 좋았고, 객실과도 가까웠으며, 바로 옆은 찜질방이라 목욕 후 여기 오면 딱이었다. 평일이라 그랬는지 거의 나 혼자 주구장창 이용했다.





읽음직한 책들도 꽤 있다.

나는 주로 여행잡지를 읽었지만.





춘하서가에 오래 머물렀던 건 LP판의 영향도 컸다. 턴테이블이 블루투스 헤드폰과 연결 가능하여, 음악을 들으며 서가 안을 돌아다닐 수 있었는데, 이게 또 진짜 짱이었다. 보기 드문 LP들도 있어서 골라 듣는 재미가 있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그동안의 이용객들이 LP를 마구 섞어놨다는 거였다. 듣던 걸 그냥 아무데나 꽂아놔서 뒤죽박죽 엉망이었다. 그런 걸 냅두지 못하는 성격인지라 몇 개는 찾아서 제대로 꽂아놨으나, 소장량이 많아 나 혼자 하다간 날이 샐 것 같았다. 그래서 포기.

LP판 아무데나 꽂지마여 흑흑...





5.

춘하서가에서 봄동 1층으로 내려오면 비채 식당이다. 정해진 식사시간에 가서 밥을 먹으면 된다. 뷔페식이다.





요기가 그 비채 식당. 좌석이 제법 많다.





선마을을 바라보며 밥을 먹을 수 있음.





 .


 .

메뉴는 대충 요 정도. 김치조차 저염이었다.





테이블에 놓여있던 안내문. 먹는 것에 오롯이 집중하여 천천히 씹어먹으며 맛을 느껴보라 한다.

나는 늘 그렇게 먹지만 (그래서 밥을 1시간 정도 먹는다) 더 천천히 먹으려 의식적으로 노력해봤다.





심심해서 펼쳐든 테이블 위 잡지. 근데 그냥 잡지가 아니라 힐리언스에서 제공되는 건강식의 레시피 모음집이었다. 에잉. 재미업쪙.





6.

밥 먹은 걸 꺼트리기엔 가을동 2층에 있는 GX룸이 제격이다.





전망 짱인 곳에서 스트레칭이나 요가를 쭈우우욱-

여기선 거울보다 창을 바라보게 되더라.





오후에 GX룸에서 요가 수업이 있길래, 시간 맞춰 가서 수업 들어봤다. 내용 자체는 기초 요가였는데, 창밖의 풍경을 보면서 느릿하게 몸을 움직이고 숨을 고르는데 정신이 맑아지더라. 크... 역시 환경이 중요하다.

여기서 배운 건 요새도 종종 써먹는다. 어깨 아플 때 도구를 가지고 하는 근육 풀기였는데, 지금 핸드폰으로 이 포스팅을 작성하는 중에도 난 그걸 하고 있다. 요가 수업 선생님 고마워요.





7.

땀을 냈으니 씻어야지.

여름동 2층엔 자연세유 스파가 있다. 아까 위에서 설명한 춘하서가와 이어져 있다.





온천욕은 늘 즐겁다. 여기 있는 동안 네다섯번은 간 것 같다.





새벽에 사람 없을 때 찍은 거. 탄산탕이라 뽀글뽀글하고 올라오는게 재밌었다.

방구 아님.





기본 스킨케어 제품과 드라이어, 선풍기, 빗 등이 구비되어 있다.

규모가 그리 크진 않지만 시설이 컴팩트하고 깨끗하게 관리되어 마음에 들었던 곳.





8.

자연세유 스파가 있는 여름동 2층 복도에는 작은 스킨케어 존이 있다.





요런 느낌. 사람은 없고, 동영상을 보며 셀프로 케어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인적도 없이 조용하고 아무도 안하길래 목욕 후에 함 해봤다. 건강해져라 내 피부!

사실 집에 led 마스크 보급형 하나 있는데 잘 안하게 되더라... 이런데 가서야 괜히 해보지.





9.

여름동을 나와 숲속으로 들어가면 나오는 치유동에는 황토찜질방이 있다.





역시나 아무도 없다... 이 열에너지가 넘 아까워서 나라도 하자 싶어 실컷 찜질하다 왔다.

자연세유 스파에도 찜질할 수 있는 방이 있어서, 치유동까지 굳이 오려는 사람이 많지는 않은 것 같다. 이 좋은 황토찜질방을... 세상에... 킁킁





수건이나 찜질복은 구비되어 있고, 탈의실과 사물함도 있어서 자유롭게 이용하면 된다.





10.

가을동 3층에는 가든뮤직홀/문파빌리온이라 불리는 공간이 있다.





걍 경치 좋고 전망 좋은 짱 편한 카페임.

체크아웃 이후 셔틀버스 시간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

좌석이 소파...라고 해야하나 뭔가 인체공학적으로 만들어진 좌석 같은데 지대 편함. 하나 사고 싶어서 기념품샵 가서 가격 알아봤더니 지대 비싸서 관둠.





뭘 안 사먹어도 자리에 앉아 쉴 수 있으나, 저염식 건강식에 질린 나는 맥주와 칩을 기어코 사먹었다.

근데 칩마저 구운 칩... 정말 건강한 동네다.





요건 문 닫았을 때 찍은 사진이긴 한데 내부는 대충 요런 모양새다.





요기는 야외좌석. 해먹도 있다.

디게 작던데 눕는게 아니라 앉는 용도인가 싶었음.





11.

위에서 주요 공간들을 살펴봤으니 아래부턴 큼직하게 분류해서 설명해보겠다.

우선 제일 다양한 기능을 가진 가을동부터.

위에서도 살펴봤지만, 가을동엔 웰컴센터(1층), GX룸(2층), 가든뮤직홀/문파빌리온(3층)이 있다. 그 외에도 선이장터, 선이공방, 와이파이가 되는 유일한 공간인 비지니스룸 등이 있다.

가을동은 '물'을 이용해 꾸민 건물이다.





가을동 3층의 카페 앞에는 얕은 물로 만든 정원이 있는데, 보고 있으면 오묘한 기분이 든다.

잔잔한 물은 사람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는 효과가 있는 것 같음.





그 물은 아래로 조금씩 흘러...





가을동 2층 GX룸 옆 테라스로 톡탁톡탁 떨어진다.

3층의 잔잔한 평온함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물이라는 똑같은 재료를 가지고 위치만을 바꿔 전혀 다른 느낌을 내다니 넘나 멋지다.

이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좋아서 아무 일 없이 여기 테라스에 서서 멍 때린 적도 있었다.





헤헤... 기분 좋아...





가을동에서 겨울동으로 넘어가는 복도 옆으론 요런 작은 계곡을 만날 수 있다. 뭘 어떻게 조절했는지 늘 물안개가 피어오른다.





그 작은 계곡물은 가을동 1층의 정원 폭포까지 내려와 웰컴센터로 향하는 입촌 손님들을 맞이한다.





구석구석 숨은 공간들이 많은 가을동.





그런 가을동을 조망할 수 있는 청보리밭.





12.

봄동으로 왔다.

봄동 이콜 밥 주는 곳(비채식당)이라 생각하면 됨.





전면유리창이 압도적으로 깔린 비채식당.

식사시간이 아니라면 무지 고요한 곳이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건강식에 질려서 어딘가에 라면이 있지 않을까 망상을 하며 봄동에 갔다가 넘나 조용하고 캄캄해 무서워서 슬그머니 나온 기억이 있음.

비채식당 위쪽엔 작은 서가와 강의실이 여럿 있는데 어차피 일반 투숙객들은 이용 안할테니 설명 패스.





13.

내 사랑 여름동은 봄동 바로 옆에 있다.

여름동 1층은 춘하서가고 2층은 자연세유 스파다. 얼마 전 여행기 포스팅에 날 행복하게 하는 건 목욕과 노트와 펜 어쩌구 운운 했는데 여름동은 그 모든 걸 충족시켜주는 공간이었다.





왼쪽 건물이 여름동. 산책로 오른쪽이 봄동.





춘하서가엔 내 취향인 잡지가 많아 좋았다.

특히 Den... 아재들을 위한 잡지라고 명시해둔 잡진데 난 왜이리 덴이 좋을까. 나 대학생 때 엄마 병실에서 보기 시작했으니 꽤 오래됐군.





턴테이블로 바로크 음악 틀어놓은 뒤 헤드폰 쓰고 요로케 앉아 잡지 읽는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여름동... 넘 죠은 것...





14.

겨울동은 가을동과 붙어있는데, 갤러리와 강의실이 있어서 일반 객실 이용자들은 별로 갈 일이 없을 것 같다. 나도 갤러리 한 번 가고 안 갔음.

아래부터는 큰 범주(봄 여름 가을 겨울)에 들어가지 않는 공간들이다.





송화소금 항아리길. 주차장 위에 조성되어 있다.





여름동에서 숲속으로 더 들어가면 나오는 황토찜질방, 그 맞은편에 짱 편한 해먹이 있다.

해먹에 누워 자벌레랑 놀았음.





선마을을 둘러싼 숲에는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산책로를 걷다보면 만나는 표고버섯 농원.





쭉쭉 뻗은 나무들 사이에서 심호흡 습하습하!

가이드와 숲속을 함께 산책하는 프로그램도 있었는데 귀찮아서 안갔다가 후회했다. 나중에 나 혼자 숲 들어가니까 길 잘 모르겠고 괜히 무섭고 오싹하고 그렇더라. 다음엔 프로그램 참가해야지.





요기는 비채식당 위쪽의 서가. 여름동에 있는 서가와 이어져 있어서 거기랑 여기를 합쳐서 춘하서가라고 하는 것 같다.

그치만 투숙객들의 식사 소음이 올라오는 서가에 누가 있고 싶겠어. 이름은 춘하서가이나, 서가 역할은 여름동이 홀로 담당하고 있는 것 같다.





천지인 광장. 애기들 뛰어놀기 좋을 듯.

천막 안에는 '나중애 태워드릴테니 비우고 싶은 걸 쓰세용' 운운의 쪽지가 있다. 나도 뭔가를 써서 투척하고 왔다.

이 정도면 거의 다 설명한 것 같다. 유르트나 키바, 선향동굴 등도 있지만 안가봐서 모르겠다.





15.

이런 곳엘 하루이틀 다녀온다고 인생이나 생활이 막 극적으로 변하고 하는 건 아니나, 마음의 여유를 어느 정도는 회복시켜 주는 것 같다. 개인적으론 여유를 되찾고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게 뭐였는지 떠올릴 수 있어서 좋았다. 스마트폰을 못쓰니까 생각이 또렷해지더라. 인간의 뇌는 심심할 때 쉬면서 창의적인 생각을 한다는데 여기서의 생활이 딱 그랬다.  

그러나 음식은 디톡스 식단에 대한 반작용으로, 디톡스 건강식 유기농 등등의 단어만 들어도 치를 떨게 되어, 퇴촌 후에 한동안 라면과 과자만 먹고 살았다. 정말인지 나약한 인간이다...






일에 찌들어 벗어나고 싶고 내가 뭘 좋아했는지 기억나질 않고 어디 들어가서 숨어있고 싶고 연락 오는 핸드폰 부숴버리고 싶은 직장인들에게 넌지시 추천한다. 가격이 저렴하면 마구 추천할텐데 그건 또 아닌지라 정말 스리슬쩍 추천한다. 투숙 가격이 막 부담되는 가격은 아닌데, 그렇다고 싼 편도 아니니.

거기서 일기 참 많이 썼는데 다 감상적인 내용들 뿐이라 나중에 기회 되면 몇 개만 추려서 맨정신에 올려보겠다. 올렸다가 5분 만에 삭제할 수도 있지만.



끝!

(앱으로 쓰는 건 오른쪽 정렬이 안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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