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1/01 19:54

2020년 시작 실시간 여행중

작년 하반기에 포상휴가 받은 게 있었는데 여태 못쓰다가 새해 첫주에 낼름 써버리고 동해로 놀러왔다.

아래 사진은 양양에서 본 오늘자 (2020년 1월 1일) 일출.














* 여기서부턴 지난 한 해를 돌아보는 넋두리와 올 한 해를 어떻게 보낼지에 대한 계획.


1. 1년 전 사진을 구글이 보여줬는데 짱 이쁘다. 지금은 셀카를 찍어도 왜 저게 안나오냐.

며칠 전 부모님 댁에 갔다가 "너 얼굴 무슨 문제냐" "아니 그전에 누구냐 너는" 이란 소리를 들었다. 두 분 다 한사코 자신의 작은 딸을 부인하길래, 지나가던 과객이라고 하고 고봉밥 먹고 나왔다.

털썩.


2. 2019년은 노력했던 만큼 지쳤던 해였다. 체력은 반토막의 반토막이 나버렸고 체중은 가속해서 증가하여 매 달 신기록을 달성하고 있다.

그게 쌓이고 쌓여 부모님이 못 알아보실 정도가 되다니... 이거 아주 불효녀다.


3. 밥 해먹는게 귀찮아 회사 식당에서 아침 점심 저녁 챙겨 먹고 씻는 것도 회사에서 해결하며 살았더니 대표님이 조용히 전용 라꾸라꾸를 사줬다. 내 자리는 숙직실화 되어가고 있다. 라꾸라꾸에 밤까지 위탁하면 나 자신의 존재가 그대로 회사의 토대가 되어 사라질 것만 같아, 낮잠 잘 때만 이용하고 있다.

반성! 2020년엔 일주일에 세 번 이상 칼퇴를 하도록 하자. 스케줄 널럴하게 잡고 힘 좀 빼자.


4. 요즘 운동이라 할 수 있는 활동은 출퇴근 자전거 타는 것밖에 없다. 근데 우리집이 회사랑 가까워서 자전거 타면 5분 만에 도착한다. 결국 하루에 왕복 10분 페달 돌리고 끝난다.

반성한다! 2020년엔 제대로 된 운동을 할 것이다. 달리기든 등산이든 줄넘기든 뭐든 하고 만다. 아니면 자전거 길게 타는 거라도. 하루 1시간 이상 운동할 것이다. 블로그에 꾸준히 인증해야겠다.


5. 돈을 좀 빡세게 모을 예정이다. 따라서 2020년에 해외여행은 없을 것이다. 에이 그래놓고 또 비행기표 찾아 습관대로 끊어서 놀러가려고 하지 하시는 분들도 계실텐데 사실 나도 내가 그럴 거 같긴 하다.

...아니, 이런 약한 마음 안된다. 정신 차리자. 국내 여행까지 못하게 하면 내 안의 여행 자아가 크게 반발할 것 같으니 국내는 제한을 두지 않겠다. 그치만 해외는 노노해. 딱 1년만 참아본다. 정 바다 건너 공기가 그리워진다 싶으면 해외 출장 있을 때마다 득달같이 지원하여 회사 돈으로 나가자.


6. 대학원 진짜 싫다. 공부 왜 하고 싶었지? 진짜 귀찮다. 일이랑 공부 병행하려면 학교가 가까워야 한다. 학교 멀면 진짜 힘들다. 그리고 난 학교가 멀다. 체력이 이전에 비해 반의 반도 안되는 나로썬 무지 힘들다. 아아앙!

이번 학기 말, 어떤 교수님께 지쳐서 관둘까 고민이라고 했더니 5년 뒤에 이 학위가 필요하게 될 상황이 올지도 모르니 눈 딱 감고 쫌만 더 참으라고 하셨다. 하긴 지금 관두기도 아깝다. 논문 쓰던 것도 석사 수준이지만 버리긴 아깝고. 그래서 쫌만 더 참기로 함. 1년 뒤 내가 이 결정을 달가워하길.


7. 그래서 2020년은... 돈 모으고, 운동도 하고, 회사일 좀만 힘 빼고, 대학원 좀만 더 참고, 여행은 2021년에 많이 다니는 걸로 정했다.

강릉 앞바다 호텔의 침대에 누워 끄적끄적 적으며 다짐 중이다.

으랏차차!








다들 2020년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아직 안정하셨다면 본인이 행복해질 수 있을 만한 계획을 세워보세용.

그럼 올 한 해 계획 세우신 대로 다 이루시고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해피 뉴이어!







2019/12/23 18:18

방콕 주말여행 (6) 요리학원과 쑤언팍깟 궁전 └ 방콕 주말여행 (2019)

1. 수비니어

방콕 마지막 날.

오늘은 이틀 밤을 머물렀던 반 차트 호텔을 떠나는 날이다.

여행 전 미리 예약해뒀던 숙소의 대응 때문에 첫째 날 급하게 바꾼 호텔이었는데, 막 골라 들어온 것치곤 시설도 서비스도 괜찮았다. 덕분에 직관력이 +1 상승했다. 고마운 호텔. 평점으로 보답해야지.




체크아웃을 하고 떠나려는데, 리셉션 직원이 곱게 포장된 선물을 건넸다. 뜯어보니 작은 록시땅 핸드크림과 바디워시였다. 떠나는 여행자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이런 디테일... 나는 앞으로 반 차트 호텔 같은 사람이 될 것이다...

이상한 다짐을 하며 택시에 올랐다.





2. 쿠킹 클래스 요약

사실 오늘은 여행 마지막 날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요리학원을 가는 날이다.

여행 전에 세운 계획은 아니었고, 여행 첫째날 밤에 넘 무료해서 Klook을 서칭하다가 쿠킹 클래스를 찾게 됐다. 마침 셋째날 예약이 가능하길래, 낼름 예약하고 결제했다. 오전/오후 둘 중 하나를 고를 수 있었는데, 오전은 일찍 일어날 자신이 없어서 오후로 골랐다. 결제해놓고 언제 예약확정이 될 지 몰라서 Klook 고객센터 쪽으로 "내가 너무 타이트하게 예약했을까봐 좀 걱정이야~ 괜찮을까?" 어쩌구 하는 문의를 넣어놨다.

다음날 아침에 메일함을 확인해보니 Klook에서 학원 측에 연락을 해둘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메일이 와있었고, 예약확정도 되어있었을 뿐더러, 자기들 요리학원 홈페이지에 들어와 하고 싶은 메뉴를 골라보라길래 그렇게 했다. 수월하게 진행되는군.

아래로는 쿠킹 클래스 요약 자료. 참고하실 분들은 참고하시라.


* 방콕 타이 쿠킹 클래스
Bangkok Thai Cooking Academy


BTS ON NUT 근처에서 진행.

포함사항:
쿠킹 클래스 4시간
현지 시장 가이드 투어
다과
클래스 종료 후 수료증 수령

일정:
8:45am/1:15pm BTS 온눗(ON NUT)역 3번 출구에서 미팅 + 현지 시장 투어
9:45am/2:00pm 쿠킹 클래스
12:00pm/4:00pm 점심/저녁
12:45pm/5:00pm 클래스 종료 후 수료증 수령 (요청시)

https://www.klook.com/ko/activity/5690-thai-cooking-academy-bangkok/


자세한 이야기는 뒤쪽에서 진행.





3. 쑤언팍깟 궁전

오후 1시 15분까지 BTS 온눗 역으로 가면 된다하니, 그 때까지 약간의 시간이 남아있었다.

무얼 할까 하다가, 일단 카오산 로드 쪽은 BTS 라인과 멀기 때문에, 역 근처이면서도 구경할 만한 곳이 있는지 구글맵으로 쭉 스캔했다. 선정된 곳은 BTS Phaya Thai역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쑤언팍깟 궁전"이라는 곳이었다.

쑤언팍깟 궁전 (https://goo.gl/maps/xxEmibwZxh8UkJcj8, 352 354 Thanon Si Ayutthaya, Thanon Phaya Thai, Ratchathewi, Bangkok)

왕가의 수집품, 골동품을 전시해놓은 작은 박물관으로, 원래 치앙마이에 있던 왕족의 가옥을 옮겨만든 곳이라고 한다. 이곳의 테마는 '녹색 정원'이다. 관리된 정원과 연못, 태국식 목조 가옥이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다. 시끄럽고 복잡한 도심 속, 숨겨진 보물 같은 곳. 입장료는 100바트다.




* 한줄 요약 : 녹색과 갈색의 차분한 만남.

규모가 작아서 추천을 마구마구 하지는 못하겠지만, 개인적으론 몹시 흡족해하며 다녔다. 직원들도 친절하고, 신발 벗고 들어갈 수 있는 나무 가옥 내음도 좋고, 관광객도 한 자리 수에, 정원도 싱그럽고. 덕분에 평화로운 오전이었다. 어딜가도 여행자로 넘쳐나는 방콕이란 도시에서 공백이 있는 박물관이었기에 더 여유가 느껴졌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규모가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 굳이 이곳에 여행 일정을 투자하는 것보단, 시간이 어중간하게 남는데 뭔가를 하고 싶을 때 들리는 쪽이 만족도가 높을 것 같다.

아래로는 쑤언팍깟 사진 모음.






정원 곳곳에 배치된 전시품은 대부분 왕족의 물건이었다. 그쪽 문화권이 아닌 외국인에겐 흥미로운 물품이 제법 많았다. 근처에 있던 친절한 직원들은 한국에서 온 이 얼빵한 소녀(나!)에게 자신들의 유물과 문화에 대해 설명하고 싶어했는데, 내가 이상하게 알아들어서 오해에 오해를 쌓아 올렸다. 예를 들자면 이런 거였다.

직원 : 이거? 코끼리. 코끼리... 잔다!
나 : (코끼리를 재우는 구조물이라고? 이렇게 작은 걸 보니 아기 코끼리가 자는 곳이군!)
직원 : 왜냐면... 로얄... 잘 자야하니까... 잔다!
나 : (왕족 코끼리는 뭔가 다른가보군! 왕족이 키우는 고양이 같은 건가!)
직원 : 코끼리 등... 등... 뼈! 거기로 이걸...
나 : (코끼리 뼈로 만든 구조물이라니! 아기 코끼리를 어미 코키리 뼈로 만든 구조물에!)


나는 뜨악한 표정을 지으며 잔인한 놈들이라고 읊조렸고, 그 직원은 뭔가가 잘못된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다른 직원을 불러왔다. 다른 직원은 유창한 영어로 '이건 코끼리 등에 설치하는 안장으로, 왕족들이 이걸 타고 이동하다가 여기서 낮잠을 자기도 했다'고 설명해줬고, 내 오해는 풀렸다. 내가 알아듣는 표정을 하자 두 직원은 한 건 했다는 느낌으로 웃으며 뿌듯해했다.

사명감 넘치는 직원들 덕분에 재밌었던 곳.





4. 팩토리 커피

녹색 일색인 정원과 통풍 잘되는 시원한 목조 건물을 둘러봤으니 괜찮을 법도 했지만, 방콕의 후덥지근하고 끈적끈적한 날씨는 날 금새 땀에 쩔게 만들었다. 넘나 더운 것이다.

마침 쑤언팍깟 궁전 근처에는 유명한 카페 하나가 있다. BTS Phaya Thai역 바로 앞에 있는 이 카페의 이름은, 팩토리 커피(Factory Coffee - Bangkok)라고 했다.

팩토리 커피 (https://goo.gl/maps/SToero3xv1dQ9Kvg9, 49 Phayathai Rd, Thanon Phaya Thai, Ratchathewi, Bangkok)




특이하고 시험적인 메뉴로 유명하다는 팩토리 커피 카페.

그렇다면 추천을 받아 먹어야겠지. 매니저급으로 보이는 직원에게 물어보니, 웃으며 자기네들 메뉴는 다 괜찮단다. 대단한 자신감이군! 하지만 대답이 되질 않잖아. 그럼 처음인 사람에겐 뭐가 좋겠냐고 묻자, 골똘히 생각하다가 '수프림'이란 메뉴를 추천해줬다. 좋아, 추천 메뉴 간다!




이게 바로 이 카페의 시그니처 수프림.

직원 한 분이 도마 같은 쟁반과 커피와 얼음이 담긴 통을 가져오더니, 통을 칵테일처럼 쉐킷쉐킷하고 체에 걸러서 컵에 따라줬다. 뭐지 이 퍼포먼스! 컵도 마침 칵테일 잔 같은 유리 글라스! 내가 카페에 온 건지 바에 온 건지 모르겠다. 게다가 맛도 부드럽다! 체에 걸러서 2배는 더 부드러워진 느낌!

만족스럽다. 커피를 호로록 마시다가 아까 내게 메뉴를 추천해줬던 직원과 눈이 마주쳤다. 괜찮냐고 묻자 괜찮다고 답했더니 그는 당연하다는 듯한 시원스런 미소를 지었다. 크, 저 자신감! 나중에 방콕 가면 이곳의 다른 메뉴도 먹어봐야겠다 생각하게 만드는 미소였다.





5. 드디어 요리학원

시간에 맞춰, BTS를 타고 온눗 역으로 향했다. 온눗 역 앞엔 맥도날드가 있었고, 나는 거기서 콘 파이를 사서 오물거리며 요리학원 선생님을 기다렸다. 5분 정도 기다리자 다른 여행자들과 선생님이 모였다. 여행자들은 한국인 여성 3분이었는데, 서로 오랜 친구인 것 같았다. 요리학원 선생님은 별로 놀랄 일도 아니라고, 원래 한국인들이 요리를 배우러 많이 온다며 어깨를 으쓱였다. 이번 클래스의 학생들은 그 세 분과 나까지 총 4명이었다.

온눗 역에서 요리학원은 걸어서 10분 안쪽 정도였고, 우리는 그곳에 가서 짐을 풀었다. 나는 쿠킹 클래스가 끝나면 바로 공항으로 갈 예정이어서, 짐을 보관할 수 있다는 게 고마웠다. 단기 여행이라 배낭 하나뿐이었지만, 그래도 성가시니까.




요리학원 뒤쪽으로 걸어서 3분 정도 거리에 현지 시장이 있었고, 우리는 그곳으로 견학을 갔다.

요리학원 선생님은 시장에 있는 식재료를 하나하나 알려주며 각 재료의 특징과 이름에 대해서 알려줬고, 당연하지만 나는 그걸 다 까먹었다. 녹음기라도 들고 갈 걸 그랬나 후회 중이다.

제일 재밌게 들은 부분은 허브류다. 선생님은 잎을 하나하나 따서 향을 맡게 하고 어떤 요리에 쓰이는지 알려줬다. 요리가 아니라 생활과 관련된 이야기도 해줬다. 어떤 열매는 껍질에서 나오는 즙에 항균력이 있어서, 가난한 사람들은 그걸 화장실에 두고 손을 닦는다고 한다. 뭐 그런 이야기들.

나중에 귀국행 비행기에서 생각나는 것만이라도 일기장에 적어두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적었던 기억이 나는데, 그 일기장이 어딜 갔는지 보이질 않기에 여기까지만 쓰고 생략한다. 어딜 간거니, 일기장아. 누가 보면 부끄러운 내 여행노트...




시장에서 학습을 마치고, 다시 요리학원으로 돌아왔다. 에어컨 바람이 시원하다.

재료는 이미 셋팅되어 있었고, 우리는 생수를 마시며 선생님의 설명을 들었다. 이번에 우리가 체험할 요리는 총 4종류였고, 선생님은 유머러스하고도 명확하게 요리를 가르쳤다. 꼭 여자 백종원 같았다.

요리가 4종류나 되니 프렙 하는데만 한참이 걸렸고, 나중에 웍을 이용해 요리를 마무리했다.

기억을 더듬어 방법을 떠올려본다.




1) 커리 : 그린/레드/옐로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방법 : 재료(레몬그라스, 바질, 큐민, 고수, 타이고추 등등)를 다진다. 절구에 마구마구 빻는다. 내 팔은 연약해서 힘쎈 직원이 도와준다. 직원에게 고맙다고 하니까 부끄러워한다. 직원의 도움으로 페이스트를 만든다. 나중에 웍에다가 닭고기, 채소, 코코넛 밀크 등등을 넣고 졸여주면 완료.

지대 맛있었다.

내가 원래 커리를 좋아하기도 하고, 재료가 신선하기도 했고, 선생님이 잘 가르쳐주기도 했고.

하지만 이런 방식으론 다신 못 만들겠지. 나중에 페이스트 기성품을 구입해서 집에서 해봐야지.


2) 똠양꿍 : 호불호 팍팍 갈리는 똠양꿍. 나는 호라서 기쁘게 만들었다.


방법 : 재료(레몬그라스, 버섯, 토마토, 고수, 새우 등등)를 먹기 좋게 썬다. 선생님에게 태국의 허브와 소스에 대해 듣는다. 그런가보다 하며 계속 썬다. 코코넛 밀크랑 칠리소스를 준비한다. 나중에 웍에다가 선생님이 알려주는 순서대로 물과 함께 투하하며 팔팔 끓여준다. 라임즙을 쪼로록 뿌려 향을 내주고 고수를 띄워주면 완료.

역시 지대 맛있었다.

한국에서 사먹으려면 비싸서 못 먹는데, 덕분에 여기서 실컷 먹었다.

다른 분들은 고수를 빼고 작업하던데 나는 고수도 좋아하는 편이어서 예쁘게 띄웠다.


3) 모닝글로리 볶음 : 메뉴 고를 때 모닝글로리냐, 쏨땀이냐, 뭘로 할지 고민 많이 했다.


벋뜨 쏨땀은 방콕 와서 많이 먹어봤으니 모닝글로리 볶음으로 하기로 했다.

방법 : 재료(모닝글로리)를 먹기 좋게 썬다. 양이 좀 많다. 계속 썬다. 고추와 마늘을 작게 썬다. 태국 된장에 대한 설명을 듣는다. 썰어놓은 모닝글로리를 된장, 굴소스, 피쉬소스와 함께 웍에서 파바박 볶으면 완료.

이것도 지대 맛있었다.

나 설마 요리에 재능 있는 거 아니야? 어떻게 만드는 것마다 다 맛있어?

선생님한테 말했더니 한국에 가게 내면 자기가 먹으러 가겠단다.


4) 팟타이 : 쫀득쫀득한 볶음 국수.


방법 : 어떻게 만들었는지 기억이 잘 안난다. 그냥 하란 대로 프랩했다. 새우, 두부, 견과류 등등을 먼저 웍에서 쉐킷쉐킷했다가 선생님의 구호에 맞춰 계란을 투하한다. 적당히 익어갈 즈음에 적당히 뭉갠다. 프랩한 채소와 면, 굴소스, 피쉬소스 등을 넣고 쉐킷쉐킷. 불을 지배하는 느낌이 들 즈음에 요리 종료.

만드는 방법도 기억 안나고 맛도 기억 안나는 요리.

기억이 희미하다. 아마 팟타이 할 즈음엔 체력이 고갈됐던 모양이지.




요리 완성!

왼쪽 하단부에서 반시계 방향으로, 똠양꿍, 팟타이, 밥, 모닝글로리 볶음, 그린 커리, 코코넛 밀크 바나나다. 코코넛 밀크 바나나는 직접 요리한 건 아니고, 보너스처럼 요리하는 법을 설명해준 뒤 직원이 서빙해줬다.

어설프게 따라한 게 전부였는데 만들어놓고 보니 대단하다.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나는 설마 요리 천재인가 감탄했다. 옆자리의 다른 여행자들을 보니 다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내가 천재일지도 모른다는 착각을 심겨주는 엄청난 학원이다.

착각 속에서 허기진 뱃속에 완성된 요리를 허겁지겁 넣었다. 요리 학원 선생님은 그 정도 먹성을 가져야 내 제자들답지 하는 눈빛으로 흐뭇하게 우리를 지켜...보지는 않았고 그냥 스마트폰 만지면서 쉬시더라.




수업이 끝나고 수료증을 받았다.

엄청 얇은 영수증 같은 재질의 종이에 프린팅 된 수료증인데도, 이름 써진 걸 받고 나니 기분이 좋았다. 조심스럽게 갈무리했다가 한국으로 돌아와 코팅해서 직장에 걸어놨다.

훗훗... 이것보라고. 연구소 때려치고 태국 음식점 차릴 수도 있다고. 훗훗. (← 아님)


* 이쯤에서 정리하는 쿠킹 클래스 총평.

: 재미남. 아마 다른 도시 놀러가서도 뭔가 할 일 없으면 쿠킹 클래스 찾아서 갈 듯.

요리엔 담을 쌓고 살다가 올해 들어 요리에 재미를 붙였는데, 아마 그 때문에 더 재미나게 느낀 걸지도 모르겠다. 진짜 해봄직했다. 지난 이틀 간 카오산 로드에서 태국은 대체 어떤 나라일까 알 수 없는 희미한 상태로 있었는데, 쿠킹 클래스를 통해 조금이나마 알게 된 느낌이 들었다. 전통 음식은 그 나라의 생활상과 정체성을 담고 있다고 하니, 뭐 틀린 느낌은 아니겠다.





6. 공항으로

클래스가 끝나고, 돈므앙 국제공항으로 향했다. 올 땐 수완나폼을 이용했는데, 돌아가는 비행기는 돈므앙 공항이었다. 돈므앙 쪽이 도심과 더 가깝길래 잘 됐다 싶었다.

BTS를 타고 돈므앙 국제공항과 가장 가까운 역인 Kasetsart University 역에서 내렸다. 거기서 택시를 타면 되겠지 싶어서 내린 거였는데, 택시가 잘 안잡혔다.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공항으로 가는 직행 버스를 타라고 하더라. A1, A2, 요런 A가 붙은 버스가 공항 가는 직행 버스라고 했다. 구글맵에도 안뜨길래 묻고 물어 탔다.




버스에 탑승하자 버스 안내양 같은 직원이 와서 돈을 걷어갔다. 기억은 안나지만 엄청 저렴했던 버스 요금. 기억이 안날 정도로 저렴했다. 택시 탔으면 아까울 뻔 했다.

Kasetsart University에서 돈므앙 공항까지는 1정거장이다. 금방 내렸다.

체크인, 출국심사 등등을 마치고, 보안검색대를 지나 공항 안쪽으로 들어왔다. 검색대에 깜빡하고 핸드폰을 두고 왔다가, 어떤 서양인 여행자가 알려줘서 다시 찾으러 갔다. 나중에 여행하시다가 앉을 때 '핸드폰을' 일어설 때 '잘 챙기자' 구호로 벌을 받고 있는 사람을 발견하시게 된다면 그건 바로 나다.




핸드폰이 지문 인식으로 켜지는 걸 확인받은 뒤 공항 직원에게 돌려받고, 만사가 귀찮아져 라운지로 향했다. 돈므앙 공항의 라운지가 샤워시설을 갖고 있다길래 냉큼 라운지키로 들어왔는데, 알고보니 샤워시설이 있는 라운지는 다른 편에 있는 라운지랬다. 여기는 음식과 소파 정도라고.

아쉬워하며 소파에 누웠는데 소파가 무지 편했다. 몸이 쭈우욱 늘어나며 머리가 몽롱해지는 것을 느꼈다. 마음이 차분해지는 오리엔탈 향기가 스멀스멀 풍겼다. 시원하고 건조한 에어컨 바람은 또 얼마나 좋은지.

샤워실이고 뭐고 만사가 귀찮아져서 술 좀 마시다가 알람 맞춰놓고 잤다. 내일 새벽에 한국 도착해서 바로 출근하러 가야한단 말이야. 출근 시간까지 남은 시간동안 나는 최선을 다해 늘어지고 늘어질 것이드아. 그러니까 나는... 잔다... Zzz





이변없이 잘 자고 잘 일어나서 비행기 타고 한국에 돌아왔답니다. 끝!




2019/12/01 18:16

방콕 주말여행 (5) 둘째날 하루종일 └ 방콕 주말여행 (2019)

1. 아침식사

방콕에 와서 맞이하는 두 번째 아침.

밤새 에어컨을 신나게 틀어놓은 대가로 목이 칼칼했다. 침대 주변에는 어제 먹다 남은 음식들이 대충 포장되어 있었다. 한입 퍼먹었으나 어제의 그 맛이 나질 않았다. 에잉, 제대로 된 아침 식사를 하자.

옷을 대충 입고 거리로 나갔다.




한참을 헤맸으나 영 끌리는 집이 없다. 앞으론 무조건 조식 포함된 호텔로 잡아야겠다고 다짐하며, 그냥 사람 많은 음식점엘 들어갔다. 사람이 많으니 평타는 치겠지.

가게이름은 The Macaroni Club(Chakrabongse Rd, Talat Yot, Phra Nakhon, Bangkok, https://goo.gl/maps/43MK1uqkqy5kHCP66). 람부뜨리 거리에 있다.




전부 야외 테이블이라 살짝 더운감이 있었다. 그늘과 선풍기의 바람, 파리의 이동경로를 고려하여 최적의 자리를 찾는 통에 자리를 두어번 옮겼으나, 웨이트리스는 웃으며 대응했다. 프로다, 프로.

주변을 둘러보니 대체로 서양인들이 많았고, 그들의 식탁 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고작해야 커피나 빵, 계란후라이 정도였다. 나도 저렇게 먹을까 하다가, 제대로 된 요리를 먹고 싶은 마음에 팟타이(140바트)를 골랐다. 시키고 나니 왠지 아침에 달걀이 빠지면 안 될 것 같아 오믈렛(40바트)도 시켰다. 커피를 먹을까 하다가, 커피는 이따 카페에서 먹기로 하고 여기선 쥬스를 먹자 싶어서 수박쥬스(45바트)를 주문했다.

별 생각없이 의식의 흐름대로 주문했는데, 막상 요리가 나오자...




너무 많았다!

이렇게까지 양이 많을 줄은 몰랐다. 뭐야, 이 넓고 두터운 오믈렛... 계란 네 개는 쓰였을 것 같다... 팟타이도 엄청 본격적이잖아... 아침인데 주변 테이블처럼 적당히 아기자기하게 주지, 왜 이렇게 푸짐하게 나온 거야.

...지가 시켜놓고 가게를 탓하는 enat이었다.

옆 테이블에 있던 서양인들은 내 아침 식단을 보더니, 눈을 휘둥그레 뜨며 자기네들끼리 쑥덕였다. 아침부터 저런 본격적인 식사라니, 저 작은 소녀(나다!)의 뱃속에 저 음식이 정녕 다 들어간단 말인가, 동양 무술의 근원은 음식이었나 어쩌구 하는 이야기였을 것 같다.

맛은... 사실 맛은 그냥 그랬다. 그렇게 맛없지도, 그렇게 맛있지도 않았다. 근데 왠지 남기면 옆 테이블 사람들이 '역시 그렇지, 저 작은 동양인이 저렇게 많은 음식을 먹을 수 있을리가! 주문을 잘못 넣었을 거야.' 라고 생각할까봐 (아마 그들은 그렇게까지 신경쓰지 않았겠지만... 나 혼자 그리 생각했다!) 꾸역꾸역 먹었다.

우걱우걱 쩝쩝.





2. 운동

접시만 남기고 다 먹었더니 배가 터질 것 같았고 곧이어 칼로리에 대한 죄책감이 찾아왔다. 난 또 이렇게 많이 먹어버렸구나...

먹은 만큼 소비하기 위해 운동을 하기로 했다. 일단 태국이니까, 무에타이가 유명하겠지. 무에타이를 배우러 가야겠다. 나는 구글로 무에타이 학원을 검색한 후 거리상으로 배열하여 가장 가까운 곳으로 찾아갔다.

Muay thai street (Phra Sumen Rd, Chana Songkhram, Phra Nakhon, Bangkok, https://goo.gl/maps/yV5pU2tqozbLVu9V6)




사진은 무에타이 학원의 무에타이 격투장(?). 밤마다 격투쇼(?)를 벌인다고 한다.

학원까지 거리가 가까워 걸어갔는데, 날씨가 굉장히 습하고 더워서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슬러쉬가 되어가는 enat은 무에타이 학원 앞에서 '내가 왜 돈을 내고 고생을 해야하지?' 하는 생각(← 운동 안하는 인간들의 대표적인 변명)을 했다. 그래서 몸을 돌렸다.

이왕이면 에어컨 바람을 쐬며 얌전한 운동을 하자. 그래, 요가가 좋겠다!

나는 구글로 요가 학원을 검색한 후, 지도에 나온 곳 중 심혈을 기울여 골라 그곳으로 찾아갔다. 중심가 시암 쪽이어서, 시내 구경도 할 겸 그쪽으로 택시타고 이동했다. 택시비로 81바트 냈다.

Empower Yoga Bangkok (Baan Kasemsan Condo, 24/1, Wang Mai, เขต ปทุมวัน. https://g.page/Empoweryogabangkok?share)




찾아간 요가 학원은 무슨 고급진 빌라 1층에 위치한 곳이었고, 초심자부터 숙련자까지 시간대마다 다양한 코스가 짜여 있었다. 그래, 여기라면 운동 초보인 나도 즐겁게 운동할 수 있을 것 같다. 요가로 몸을 풀고 마사지를 받으면 얼마나 개운할까! 나는 힘차게 문을 열어제꼈다.

아니, 제끼려고 했다.

문은 잠겨있었다.

알고보니 오늘은 일요일. 이 요가 학원은 일요일마다 문을 닫는 학원이었다. 운동은 주말에 하는 거 아냐!? 주중에 일하는 것도 힘든데 시간내서 몸을 움직여야 하는 거냐고!? 운동을 안해봐서 주말엔 하면 안되는 건 줄 몰랐어!

일부러 택시 타고 큰 길가에 내려 여기까지 걸어왔는데 뭔가 허탈하다. 타고 온 택시도 기사아재가 길을 잘 몰라서 내가 구글 보면서 길 알려줬는데, 똥 빠이(직진), 꽈(오른쪽), 사이(왼쪽) 외치면서 인간 내비게이션 해주느라 완전 지쳤는데. 넘나 짜증나는 것이다.

에이씽, 내 주제에 무슨 운동이야.

카페 가서 케이크나 먹자.





3. 시암

문 닫은 요가 학원이 시암 뒷골목 쯤에 위치한 덕분에, 바로 시암 큰길가로 나갈 수 있었다.

방콕의 중심가인 시암은 화려한 백화점들이 줄지어 있다. MBK 센터, 시암 디스커버리, 시암 센터, 시암 파라곤, 시암 스퀘어원 등등. 내부에 각 건물을 잇는 통로가 있거나, 외부 통로더라도 지붕을 설치해놓은 곳이 많아, 비가 오더라도 맞지 않고 각 쇼핑몰을 돌아다닐 수 있었다.

아래는 시암에 있던 쇼핑몰 간략 요약.




- MBK 센터 : 외부는 백화점인데 내부는 지하상가 같은 느낌. 로컬 브랜드가 많아 보인다.




- 시암 디스커버리, 시암 센터, 시암 파라곤 : 세 건물이 나란히 서있으며 통로가 나있어 다니기 편함. 우리가 아는 '백화점'임. 다들 아는 유명한 브랜드 점이 많음. 셋 중 파라곤이 제일 고급져 보였다.




- 시암 스퀘어원 : 실외 쇼핑몰 구조라 더움. 스타벅스, 미니소, 다이소 등등 익숙한 점포들이 많이 보였다. 청년들의 약속 장소 느낌.





4. 애프터 유

구글 지도로 카페를 검색한 뒤, 요 근방에서 평점이 제일 높은 카페를 찾았다... 도대체 구글이 없던 옛날엔 어떻게 여행을 다녔었지? 가이드북 따위를 읽으며 종이지도가 너덜거릴 때까지 피고 접고를 반복했던 기억이 어렴풋하게 떠오르는데...

하여간 평점이 제일 높았던 카페는 애프터 유 디저트 카페였다. 방콕에선 유명한 프랜차이저라는데, 나는 그것도 모르고 찾아갔다. 검색 한 번만 하면 알 수 있는 세상인데 검색을 안해서 모르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시암 일대에만 애프터 유가 4~5개 정도 되는 것 같던데, 그 중 MBK 센터에 있는 애프터 유엘 찾아갔다.

메뉴가 생각보다 많길래 어버버하며 골랐으나, 그런 외국인 손님들이 평소에도 많은지, 가게 직원들은 당황하지 않고 상냥하게 대해줬다.




직원들의 격려를 받아 마침내 주문한 Lavender Lychee Soda (125바트), Butter Bun (100바트).

라벤더+리치+소다는 이상한 조합이구나 했는데, 직원들이 이거 꼭 먹어봐야 한다고 너나할 것 없이 추천을 하는 바람에 시켜봤다. 근데 진짜 시도의 가치가 있는, 맛있는 음료였다. 계속 마시다보니 포도맛 소다에 라벤더 향을 첨가했구나, 사실 별 건 아니구나, 반쯤 먹고나니 조금 질리는구나 싶었는데, 처음의 그 한모금이 충격적으로 맛있었다. 일기장에는 "무에타이 요가를 뛰어넘는 맛이다!"라고 적혀있는데, 아마도 무에타이 학원과 요가 학원에 가지 않은 것이 아쉽지 않을 정도로 맛있다는 소리...라고 적은 것 같다.

버터 번은 양이 무지 많았다. 다 먹지는 못했는데 후회는 없었다. 빵이 버터 크림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말인 즉슨 칼로리 폭탄 번이라는 건데... 도대체가 고칼로리는 왜 이렇게 맛있는 것이냐. 운동 못한 한을 담아 잔뜩 뜯어 먹었다. 우어어 우걱우걱.





5. 솜땀누아

애프터 유에서 달달한 놈들을 해치우고 좀 걸었다.

아까 3번에서 설명했던 MBK 센터, 시암 디스커버리, 시암 센터, 시암 파라곤을 구경한 뒤, 전철을 가로질러 시암 스퀘어원으로 건너왔다. 다른 백화점들은 내부 외부가 뚜렷하게 구분된 건물이었는데, 시암 스퀘어원은 공간 경계가 모호해서 더 모던하고 친환경적으로 느껴졌다. 실외 쇼핑몰이라 에어컨 바람을 쐴 수 없어서 무지 더웠지만 건물이 예뻐서 참을 만 했다.

시암 스퀘어원을 돌아다니다가, 뭐 먹을 만한 거 없을까 하고 돌아다니다가 '솜땀누아'라는 곳을 발견했다. 아침을 많이 먹고 디저트까지 많이 먹어서 배부른데, 가볍게 솜땀 정도만 요기하면 딱 맞을 것 같다.

솜땀누아 (https://goo.gl/maps/m8fAYKK6rx2HQLdj7)




위치를 대강 설명하자면 시암 스퀘어원 뒷쪽의 노점상 근처. 오른쪽 사진의 오른쪽 상단에 있는 간판이 그 솜땀누아 간판이다.

여담이지만 여기 바로 근처에 애프터 유 단독 점포도 있더라. 단독 점포에다가 외관이 예뻐서 그런지 다른 애프터 유 카페보다 사람들이 많았다. 내가 갔던 MBK 애프터 유는 나 합쳐서 3명 있었는데...




솜땀누아 가게 내부로 들어왔다.

공간이 넓고 사람은 많은데 직원은 느렸다. 후불제였는데 먹튀해도 모르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대응이 느렸다. 하지만 나는 대한민국의 착실하고 선량한 여행자라서 먹튀라는 생각만으로도 죄책감을 느끼며 음식을 주문했다.

메뉴판엔 친절하게도 음식 사진과 추천 마크가 달려 있었다. 근데 왜 이렇게 Must Try가 많아? 이 집 추천메뉴를 다 먹으려면 사람 열댓명은 있어야 할 것 같다.




추천대로 돼지고기 뼈 수프(120바트)와 솜땀(90바트)을 시켜먹었다.

돼지고기 뼈 수프는 건강하게 생긴 주제에 맛은 자극적이었다. 무지 짜고 셨다. 메뉴에 있는 사진을 보고 예전에 대만에서 먹었던 돼지고기 탕을 생각하며 시킨 거였는데 전혀 다른 거였다. 아쉬워라.

솜땀엔 말린 새우랑 가쯔오부시 같은 맛이 나는 튀김(?)이 들어있었다. 이것도 좀 짰는데, 단맛이 함께 나서 괜찮았다.

총평 : 전반적으로 간이 세다.





6. 커피

이 자극적인 맛을 떨치기 위해 다시 스퀘어원으로 돌아가 커피를 주문했다. 들어간 곳은 카페 아마존이라는 곳.

Café Amazon (388 Rama I Rd, Pathum Wan, Pathum Wan District, Bangkok, https://goo.gl/maps/KXUq5FBCVxTA1MVRA)




그냥 아메리카노로 시킬 것을, 이 달의 신메뉴 광고판을 보고 '에그 커피'를 시켰다.

실은 하노이에서 먹었던 그 달달하고 부드러운 에그 커피를 상상하면서 시킨 거였는데, 맛은 전혀 아니올시다였다. 여기 에그는 삶은 달걀을 으깨서 넣은 건지, 도대체가 맛이 텁텁하고 밍숭맹숭하기 그지 없었다. 결국 두 모금 마시고 버렸다. 아쉽군.





7. 마사지

쇼핑은 피곤한 것이다.

숙소 근처로 돌아와 마사지 2시간 받고 잤다.

...사실 마사지는 그냥 그랬다. 밍숭맹숭했다. 그러니까 잤겠지. 쩝.





8. 호텔 로비의 저녁

숙소 근방 노점에서 뭔가 태국스러운 옷을 샀다. 여태까지 동네 슈퍼 가는 차림으로 다녔는데, 급 꾸미고 싶어져서 이쁜 옷을 구입해봤다. 쪼꼬만 고데기로 이케저케 머리를 하고, 몇 안되는 화장품으로 이케저케 화장을 했더니, 기분이 좋아졌다.

역시 꾸미는 건 즐거운 일이다.




원래 계획은 준비하자마자 왓 아룬이 보인다는 루프탑 바에 가는 거였는데, 혼자 호텔에서 신나가지고 이 각도 저 각도로 사진 찍으며 놀다보니 시간이 꽤 흘렀다. 나는 평소에 그지꼴을 하고 다니기 때문에 이럴 때 사진을 많이 남겨놔야 한다. 우헬헬.

자아도취 상태로 사진을 찍은지 어언 30분.

슬슬 배가 고파지길래 카메라와 지갑 등을 챙겨서 밖으로 나갔다.




...근데 비옴 ㅋㅋ... ㅋㅋㅋㅋ...

그것도 폭우가 온다... ㅋㅋㅋ...ㅋ.ㅋㅋ....

이틀 만에 모처럼 이쁘게 꾸미고 야경 보이는 루프탑 바에 가서 사연있는 여자처럼 앉아 남자 좀 꼬실라고 했더니 비가 내리고 있다. 이슬비처럼 조용히 오는 게 아니라 장대비가 퍼붓고 있다!

오오냐, 내 계획이 그렇게 마음에 안든단 말이냐! 양 많은 아침식사, 더운 무에타이 학원, 이상한 택시, 문 닫은 요가학원, 간이 센 음식과 텁텁한 커피, 밍숭맹숭한 마사지까지, 하루종일 맥이 빠지길래 루프탑 바 가서 맥주 먹으려고 했다! 근데 루프탑 바도 가지 말라는 거냐! 남자고 사연이고 야경이고 하지 말라는 거냐!?

흐어엉!




실컷 꾸몄는데 다시 객실로 들어가기도 좀 그렇고, 이게 스콜이라면 1시간 정도 오다가 말겠지 싶어서, 호텔 1층의 야외 펍으로 가서 맥주 한 병을 주문했다. 근데 가격이 왜 이러지? Leo가 100바트였다.

내가 지금 레오를 100바트에 사먹고 있다. 레오를 100바트에 사먹고 있다.

일기장에 2번이나 써있다. 저 저렴한 맥주를 100바트에 사먹다니 믿기지가 않는 모양인 듯. 대충 느낌은... 하이트를 1만원에 사먹고 있는 기분이라고 하면 이해하실 수 있을 것이다.

슬픈 눈으로 비가 그치길 기다렸다.






펍에선 라이브 가수의 공연이 한창이었다.

라이브 가수의 노래는 청아하고 아름다웠다. 노래소리를 듣고 찾아올 만한 사람들이 있을 법도 한데, 비가 퍼붓는 통에 길거리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그래서 초반에 자리잡은 손님들만 그 공연을 보는 것 같았다. 거기에 루프탑엘 못가서 심통 난 손님이 방금 한 명 추가됐다.

차분하고 깨끗한 목소리를 듣고 있으니, 원수처럼 퍼붓는 저 비도 세상의 때를 구석구석 씻겨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정말인지 음악이란 위대한 것이다. 나는 그새 레오를 100바트에 사먹은 것도 잊고, 가수의 노랫소리에 홀라당 넘어가버렸다.

서정적인 빗소리, 은은한 전구 불빛, 맥주 한 모금... 완벽해! 루프탑 거길 왜 가? 이렇게 좋은 곳을 두고...

그래, 이 참에 여기서 저녁도 해결해버리자!

레오를 100바트에 파는 펍에서 음식까지 시키는 enat이었다.




이건 음식 나올 때까지 기다리면서 그린 그림.

일기장에 그림을 그린다는 건 나의 심신이 몹시 평온하고 평화롭다는 증거다.




잠시 후 나온 Massamun curry chicken (285바트). 솔직히 맛은 평범했는데, 분위기가 좋아서 즐겁게 먹었다. 이건 전적으로 다 라이브 가수의 덕이다.

비는 내가 커리를 다 먹어갈 즈음에 그쳤고(스콜이 맞았나보다), 라이브 가수의 공연도 그와 거의 동시에 끝났다. 그 가수는 비 때문에 사람이 못 온 걸 가지고 자신의 공연이 부족한 것이라 생각했는지, 자기 다음엔 더 훌륭한 가수가 좀 더 신나는 노래를 준비하고 있다고, 그럼 더 흥겨운 분위기가 될 거라고 말하며 기기를 주섬주섬 정리했다. 아냐, 당신 잘했어요. 나는 가수의 공을 잊지 않고 팁을 넉넉히 냈다.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다들 넉넉한 팁을 챙겨줬다.

실은 이번 '방콕 여행'을 떠올릴 때, 제일 먼저 생각나는 장면은 바로 이 날, 이 시간이다. 회사 모니터 옆엔 이 때 찍은 맥주 사진이 몇 개월간 걸려있었는데, 한동안 그 사진을 보며 심신의 안정을 찾곤 했었다.

돌아가서 머물고 싶은 시간대가 이렇게 또 하나 생겼다.





9. 루프탑 바

비가 그친 뒤, 원래 계획대로 택시를 타고 왓 아룬 야경이 보이는 루프탑 바에 갔다.

거기까지 가는데 택시 세 대를 보내고 네 번째 택시에 탔는데, 두 대는 미터기 없이 터무니 없는 가격을 불러서, 한 대는 자기가 에스코트 해주겠다는 헛소리를 해서였다. 사실 네 번째 택시라고 미터기를 켜놓은 것도 아니었고, 가격이 합당한 것도 아니었지만, 군말 안하고 "100바트"를 이야기하길래 그냥 탔다.

으음, 이 동네 택시들은 밤이 되면 미터기를 다 꺼놓고 배째라 장사를 하는구나.

다음엔 반드시 그랩을 깔고 오리라 다짐 또 다짐했다.




왓 아룬 사원의 강 건너편 야경이 이쁘다길래 그냥 그 쪽으로 가달라고 했는데, 어째 거리엔 문을 연 가게가 하나도 없이 음산하고 인적도 드물어 스산했다. 비가 와서 다 닫은 건가? 아니면 원래 이 시간엔 다 닫는 건가? 조금 무섭다.

거리에서 두리번거리다가 구글이 알려주는대로 루프탑 바 입구에 들어섰다. 루프탑도 닫았으면 어쩌나 걱정했으나 여기서부턴 뭔가 인기척이 느껴진다. 안심하며 옥상으로 올라갔다.

Eagle Nest Bar (47-49 ถนน มหาราช Soi Phen Pi Marn,Tha Tien, Phrabarommaharajchawang Phra Borom Maha Ratchawang, Phra Nakhon, Bangkok, https://goo.gl/maps/ZzQkUivimNhJuPk7A)




루프탑 뷰 엄청나잖아!

왜 사람들이 왓 아룬 야경, 왓 아룬 야경 하는지 알겠다!

솔직히 이 정도까진 기대도 안했는데 어마어마한 뷰가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우와 짱이잖아! 우와 쩔잖아! 우와 대박이잖아!"를 연신 외쳤다. 태국인 바텐더가 나를 보고 웃으며 자리를 마련해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무것도 못하고 가운데 서서 계속 그 소리를 외치기만 했을 거다.

테라스 쪽에 딱 한 명만 앉을 수 있는 자리가 남아 있었는데, 거기에 내가 앉았다.

다들 커플로 와서 그 좌석은 비어 있었나 보다.

다들 커플로 와서...

다들 커플로...

다들 커플이잖아! 여기서 사연있는 여자인 척 앉아있어봤자 말 걸어주는 남자 하나 없겠네!




비록 주변엔 셀카 찍는 커플과 서로의 뒷모습 찍어주는 커플과 술잔 기울이는 커플과 사랑을 속삭이는 커플 뿐이지만 나는 풍경 감상에 전념하겠다.

다행히도 내 자리는 테라스 바로 앞. 시선만 왓 아룬에 고정하면 된다. 고독을 씹는 여행자가 되어주갔어.




그나저나 이런 훌륭한 풍경에 레오나 싱하를 끼얹을 순 없지.

고오급진 아사X를 마시자!

나는 아X히가 넘나 죠아!

...이 때는 일본 불매 운동 전(2019.06)이었고, 나는 아사히 병을 든 채 신나게 셀카를 찍었으며, 여행에서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모든 사진들을 프사에서 내려야만 했다.




차마 올릴 수가 없어서 모자이크 처리한 그 맥주.

...그 나라에 가면 그 나라의 술을 먹었어야지. 역시 레오를 먹었어야 했다. 레오가 짱이시다.





다시 여행으로 돌아와서.

곧 지울 프사용 사진들을 마구 찍어대던 enat은, 결정샷 2컷 정도 건진 뒤 좀 더 풍경에 집중해보기로 했다.

황금색 사원을 조명삼아 새카만 강가를 흐르는 크고 작은 배들을 보고 있으니 감상적이게 된다. 이렇게 멋진 풍경을 볼 수 있을 거라곤 예상도 못했는데 말이지. 그럼 또 자연스레 감사하게 되는 것이다. 감상과 감사는 초성이 같아서 그런가 늘 붙어다닌다.




나는 운이 좋은 편이다. 세상의 아름다움이란 아름다움은 다 허락하신 덕분에 다른 것들을 포기하고 그것들을 찾아다닐 수 있으니 말이다. 아니지, 포기라는 단어는 별론 거 같다. 선택 정도가 어울리는 말이겠다. 세상에는 선택할 여력이 없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걸 안다. 그러니 말한다. 선택의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고.

빛나는 사원을 앞에 두고 그런 생각을 했는 모양이지. 일기장에 그렇게 적혀있더라.





10. 다시 숙소로

그랩도 없는데 돌아가는 택시를 어떻게 잡나, 꼼짝없이 바가지 쓰겠구나 하고 걱정했다. 근데 다행히도 나오자마자 택시 한 대를 만났다. 나는 그 택시를 붙잡으며 외쳤다.

나 : 왓 차나 송크란!

택시 아저씨는 나를 태우며 100바트라고 했다. 그 정도면 무난하지. 일단 탔다.

그런데 택시 아저씨가 백미러로 나를 자꾸 흘끔거린다. 왜 저러지? 택시 아저씨는 고개를 갸웃하다가, 혹시 태국인이냐, 아무리 봐도 태국인은 아닌데, 그렇다면 여기서 공부하는 학생이냐고 물었다.

엥? 나는 평범한 여행자라고 밝혔다. 그러자 택시 아저씨는 웃으면서 내 발음이 완전 현지인이라 분명 여기 오래 산 사람이라고 생각했단다. 내친김에 오늘 요가학원 갈 때 택시기사에게 길 알려주면서 익히게 된 똥 빠이(직진), 꽈(오른쪽), 사이(왼쪽) 등등을 말했더니 놀라워하며 장기여행자구나 어쩌구 하며 자기 혼자 납득하더라.

어... 이틀째지만요. 아직 이 나라에 발 붙인지 이틀쨉니다.




그나마도 내일이 마지막 날이다! 셋째날에서 계속.




1 2 3 4 5 6 7 8 9 10 다음


jj

ccl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