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18 15:59

몽골 자유여행 (8) 사과 └ 몽골 자유여행

1.

우리는 홀스맨의 친구네 집에서 나와, 다시 말을 달려 게르 캠프(Dream Adventure Mongolia)로 돌아왔다.

살짝 유쾌하지 않을 일이 있었다. 홀스맨과 빌리의 이야기를 잠깐 해본다.





2.

홀스맨.

그는 친구의 게르에서 아이락을 조금 과하게 마신 상태였다. 살짝 취한 상태로 실실 웃던 그. 내가 여태까지 본 그의 모습 중 가장 밝고 행복한 모습이었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서 기분이 좋은가보다 했다.

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빌리는 돌아가는 길이 걱정이라 했다. 그래서 우리는 서둘러 캠프로 돌아가기 위해 말을 정비했다. 그런데 그 홀스맨, 손을 휘휘 저으며 자신은 그곳에서 늦게까지 더 놀다가 캠프로 돌아가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빌리로부터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나는 좀 벙쪄버렸다.

일단 그는 아직 근무 중이다. 우리를 데리고 승마 투어를 나온 거란 말이다. 빌리와 메리가 아무리 이곳 생활에 익숙한 장기 여행자라 해도, 손님들 보고 알아서 캠프로 돌아가라고 하는 건 너무하지 않은가. 게다가 뭐, 내 알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여자친구인 여직원과는 오늘이 마지막 밤일텐데, 이렇게 술에 취해 친구랑 놀아도 괜찮은 건가? 로미오와 줄리엣을 찍던 건 여자친구인 여직원 뿐이었나?

나는 상식 외의 일을 벌이는 홀스맨의 행동에 어이가 없었지만, 몽골말을 모르니 뭐라 할 수 있나. 그냥 잠자코 입을 다물었다. 내 옆에 있던 빌리는 익숙한 일이라며 어깨를 으쓱이더니, 앞장서서 말을 몰았다.





3.

빌리.

이전 포스팅에서 언급했지만, 빌리는 내게 게르 생활과 승마에 대해 알려준 사람이다. 그가 없었더라면 나는 전날 세수도 못하고 오들오들 떨면서 잠들었을 것이다. 오늘만 해도, 말을 탈 때 많은 것을 알려줘서 내가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 참으로 친절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돌아가는 길, 그의 그 친절함 덕분에 많이 어색했다.

빌리가 얼마나 친절했냐면, 메리와 내가 영어로 대화를 나눌 때마다 그걸 굳이 한국어로 번역해서 내게 알려줄 정도였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대화는 이어지는데, 자꾸 메리의 말을 끊어가며 '친절하게도' 통역해주는 것이었다. 그렇게 메리의 이야기를 낚아챈 후엔, 계속해서 '친절하게도' 한국어를 이용해 대화를 주도해나갔다.

메리는 자신의 말이 몇 번이고 끊어진 것도 모자라 우리가 자신은 모르는 언어로 대화를 나누자, 불쾌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긴, 나라도 화가 났을 것이다. 나는 빌리가 서툰 한국어로 하는 이야기를, 그녀에게 영어로 전달하며 대화에 끼워주려고 했다. 그러나 그녀 입장에선 오히려 그게 더 불편하고 기분이 나빴는지, 말을 몰아 우리와 떨어져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한숨을 쉬며 그녀를 쫓아갔지만, 숙련된 기수인 그녀를 내가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나는 빌리가 메리를 쫓아가 그녀의 기분을 풀어주기를 바랬으나, 친절하지만 눈치없는 그는 나와 나란히 달리며 "오, 빨리 달리네요, 잘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 말은 말이에요..." 어쩌구 따위의 이야기를 한국어로 계속 했다.

아아, 모르겠다. 남의 감정까지 신경 쓰기엔 내가 너무 피곤하다. 나는 적당히 빌리의 말을 끊은 뒤, 그냥 머리를 비우고 말을 달리게 했다. 말은 내 발길질에 신나게 달려갔다. 내 뜻대로 움직여주는 건 말 너 뿐이구나. 고맙다.





4.

게르 캠프가 가까이 보일 즈음, 말에서 내려 걸어갔다. 빌리는 내 말이 사람을 태우는 것에 익숙치 않은 말이라 제법 지쳤을 거라고 했다. 그렇게 들으니 지친 것 같아보이긴 하더라. 나는 말에게 고맙다고 말하며 연신 쓰다듬어줬다.




걸어가는 도중 빌리는 내게 사우나를 하지 않을거냐고 물었다. 자신들은 오랜만에 근육을 써줬기 때문에 사우나로 릴렉싱할 것이라 했다. 그러고보니 이 게르 캠프에는 사우나 게르가 있었지. 하지만 사우나를 하면... 땀이 나잖아. 땀이 나면... 씻어야 하는데. 사우나 게르 옆에 샤워장이 있긴 했지만, 그곳은 야외 시설이라 무진장 추울 것 같았다. 실제로 내가 머무는 동안 그 누구도 그 샤워장을 이용하지 않았더랬다. 샤워도 못하는데 사우나라니. 나는 못하겠다. 안할래.

내가 사우나에는 관심이 없다고 하자, 빌리는 놀라며 왜 관심이 없냐고 물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그냥 "그거 알아? 한국에는 사우나가 널려있어. 여기까지 와서 굳이 사우나를 하고 싶지 않아."라고 말하고 말았다. 빌리는 사우나의 왕국에 살아서 좋겠다며 껄껄거리고 웃었고, 곧 메리에게 그 이야길 전달했다. 그녀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하하하 웃고 말았다.

말을 마굿간에 데려다놓고 게르 캠프 쪽으로 걸어올라가는 중, 여직원을 만났다. 그녀는 내게 다이닝 룸에 저녁을 차려놨으니 먼지를 털고 식사를 하라고 했다. 왜인지 풀이 죽은 모습이었지만, 그녀의 상태를 신경쓰기엔 내가 너무 피곤했다. 나는 그녀를 지나쳐 게르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다이닝 룸으로 갔다.

저녁 식사로 준비된 음식은 걸쭉한 국물에 담긴 면 굵은 국수였다. 우리나라의 칼국수 같은 느낌이었다. 마침 국물있는 음식이 먹고 싶었는데 잘됐다 싶었다.








5.

풀린 팔을 이용해 힘겹게 숟가락질을 하며 국수를 먹고 있는데, 여직원이 들어왔다. 여직원은 서론도 없이 다짜고짜 자신의 이야기를 풀기 시작했다. 뭔가 횡설수설하긴 했지만, 어쨌든 요는, 자기가 오늘부로 이곳에서 일을 못하게 됐다는 내용이었다. 내가 어차피 오늘이 마지막 날 아니었냐고 묻자, 여직원은 나중에도 이곳에서 일을 못하게 됐다고, 다시는 못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날 원망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었다. 뭐야? 내 탓이라고?

나 : 왜 못하게 된 건데?
여직원 : 매니저가...
나 : 매니저? 나미가 너보고 일하지 말래?
여직원 : 메일... 네가 메일 보냈다며.


아무래도 내가 말을 타러 간 사이, 나미가 내 메일을 받고 여직원에게 연락을 한 것 같았다. 나는 혹시 답메일이 왔나 싶어서 핸드폰을 확인했지만, 신호가 잡히지 않아 포기했다. (그리고 나중에 도시로 나간 후에야 나미의 메일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녀는 내 메일을 보자마자 내게 너무 미안하고 자기가 적절한 보상을 하겠다며 조금만 기다려달라는 답메일을 줬었다)

나는 나미가 여직원에게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나미에게 없는 말을 지어낸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당당하게 여직원에게 설명해줬다. 나는 오늘 아침부터 하루종일 말타는 걸 기다렸으며, 오후 늦게서야 두어시간 타고 이제 들어와서 늦은 저녁 식사를 하고 있다, 나는 시간을 쪼개고 돈을 쪼개어 이곳에 왔는데, 그토록 기다렸던 여행 일정이 엉망이 되어버려서 기분이 좋지 않다, 누구한테 잘못과 책임을 묻긴 해야하는데 어린 너한테는 화내기 싫었다, 그래서 게르 관리에 소홀한 것 같은 매니저에게 직접 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메일 내용도 별로 네 탓을 한 건 아니었다, 하고.

그녀는 내 이야기를 귓등으로 들으며 연신 "아돈노~ 아돈노~" 거렸다. 뭘 몰라? 내게 지금 잘 설명하잖아. 하지만 그녀는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진 않고, 그저 자기는 이곳을 정말 좋아하고 남자친구도 이곳에 있는데 여기로 다시 돌아오지 못하게 돼서 슬프다고만 했다. 아마도 그녀는 이 같은 일이 벌어진 것에 대한 원인을 생각하기보단, 자신의 입장과 처지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있는 듯 했다.

여직원 : 나 이제 가.
나 : 어? 내일 아침에 가는 거 아니었어?
여직원 : 우리 엄마가 데리러 왔어. 이제 여기서 일 못해. 난 가야 돼.


여직원은 게르 주인인 푸세의 사촌 동생? 조카? 하여간 친인척 관계라고 했으니, 어떻게 하다보니 그녀의 가족들에게까지 연락이 갔나보다. 어, 그럼 지금 내 메일 때문에 반쯤은 끌려나가는 모양새가 된 건가? 흠, 그렇게까지 몰아세우려던 건 아니었는데. 그녀에겐 나름 정붙이고 일하던 첫직장이었을텐데 말이다.

나는 어쩐지 미안한 감정이 들어 머리를 긁적이다가, 그래도 이건 알려줘야 할 것 같아서 입을 열었다.

나 : 어, 그리고, 걔, 네 남자친구 홀스맨 말이야.
여직원 : 응. 어디 간 거야? 일하고 있는 거야?
나 : 걔 술 마시고 친구네 집에서 더 놀다온다고 하던데.
여직원 : ......


나는 그러니까 홀스맨에게 너무 마음쓰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려고 했으나, 그녀는 마치 내가 승마를 위해 그를 데리고 나간 탓에 그가 돌아오지 않는 것처럼 받아들였다. 아니 그게 왜 내 잘못이야. 홀스맨이 아이락을 많이 마셨고 친구랑 히히덕거리며 놀고 있다니까? 콩깍지에서 벗어나!

여직원은 힘빠진 얼굴로 자신의 뭔지 모를 이야기를 웅얼대더니, 어쨌든 자기는 이제 가보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독일 가서도 건강하라 어쩌구 하는 말을 했으나, 그녀는 그냥 어색하게 웃은 후 나가버렸다. 음... 으으으음... 찝찝해...





6.

엄청 찝찝한 표정으로 국수의 면발을 들이키고 있는데, 어떤 커플이 다이닝 룸으로 들어왔다. 이 캠프에선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아마도 아까 말타기 전에 여직원이 말한 '새로 올 사람들'인가 보다. 그들과 적당히 인사를 나눈 뒤, 함께 식사를 했다.

그 커플은 둘 다 미국인이었는데, 현재 한국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남자는 아프리카 TV로 게임 방송을 하고 있고, 여자는 강남 쪽 학교의 영어 선생님을 하고 있단다. 새로운 사람을 반가워하며 맞이하기에 심신이 지쳤던 나는, 내 소개는 하지도 않은 채 뭐 그러냐며 적당히 놀라워해줬다. 하지만 그 뒤에 이어진 이야기는 내 귀를 쫑긋 세우게 만들었다.

아프리카 : 우리 여기까지 오는데 정말 힘들었어. 울란바토르에서 여기까지 5시간이 걸렸어.
나 : 엥? 여기 2시간 정도면 오잖아? 푸세와 나미가 너희를 데리러 간 것 아니었어?
강남 : 이름은 잘 모르겠고, 여기 주인이 우리를 데리러 온다고는 했는데. 갑자기 바쁜 일이 생겼다며 택시를 보냈어.
나 : 택시를 보냈다고? 오프로드인데?


내 질문에 그들은 앞다투어 자신들의 이야기를 쏟아냈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원래라면 자신들을 데리러 왔어야 할 주인 푸세. 그는 급한 일이 생긴 바람에 택시를 보내겠다고 했다. 택시는 원래 약속했던 시간에 제대로 왔다. 거기까진 괜찮았다. 그러나 그 택시기사는 테를지 쪽의 길을 잘 모르는 사람이었고, 덕분에 도통 길을 찾지 못하여 한참 동안 이 넓은 테를지 국립공원을 헤매고 다녔다는 것이었다. 강을 건넜다가, 언덕을 넘었다가, 평원을 끝없이 달렸다가, 다시 강을 건넜다가, 어쩌고 저쩌고. 도중에 택시 기사가 길을 묻기 위해 여기 사장(푸세)에게 몇 번이나 전화를 걸었는데, 연락이 되질 않았다고 한다. 그 덕분에 꼼짝없이 테를지 평원에 갇힌 꼴이 됐다고.

나 : 그래서 어떻게 온 거야!?
강남 : 현지인 게르에 몇군데 들렀거든. 이 곳을 아는 사람을 만나 간신히 물어물어 찾아왔어.


나는 한숨을 내쉬며 고생했다고 말했다. 아니 대체, 푸세와 나미, 너희들 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거야? 고객 관리가 하나도 안되고 있다고!

아프리카 : 아 그렇지, 하나 더 있어. 택시기사의 차는 오프로드용이 아니었어. 평범한 승용차였어.
나 : 오, 그럼 그의 차는...
아프리카 : 응. 거의 맛이 갔어. 난 그가 제대로 울란바토르까지 돌아갔을까 염려돼.


남이 고생한 이야기는 참으로 재밌는 것이다. 나는 그들이 겪어야 했던 일들에 대해 흥미 다분한 동정을 해줬다. 그리고 그에 대한 보답(?)으로 내가 겪은 일들에 대해서 얘기해줬다. 역시나 남이 고생한 이야기는 참으로 재밌는 것이었는지, 그들 역시 눈을 빛내며 내 이야기를 경청했고, 아까 내가 보였던 반응과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강남 : 세상에, 여기 직원들 너무하는 거 아냐?
아프리카 : 여기 트립 어드바이저 1위 게르 캠프 아니야? 대체 이 게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나 : 모르겠어. 언제쯤 푸세와 나미를 만나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심리 치료 중에 비슷한 아픔을 가진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푸는 방식이 있다고 들었다. 그들과 내 대화는 딱 그 꼴이었다. 오늘 하루 동안 이 게르와 엮여 마음고생한 사람이 이 하늘 아래에 나만 있다는 게 아니란 걸 아는 것은 참으로 힘이 되는 것이었다.

나 : 와, 세상에. 나 방금 전까지 기분 진짜 별로였거든. 근데 너희 덕분에 나 진짜 기분 나아졌어. 진짜 고마워.
강남 : 오, 무슨 소리야. 네 이야기를 들어서 나도 뭔가 풀린 기분이야. 내가 더 고마워.
아프리카 : 나도야. 하하하!






7.

아프리카 커플과 이야기를 나누고, 한결 나아진 기분으로 저녁 먹은 식기를 치웠다.

밖으로 나가니 사우나 게르에서 연기가 나고 있었다. 빌리네 커플이 사우나를 하는 모양이다. 아프리카 커플은 자신들도 사우나를 하고 싶다며 그곳으로 갔고, 나는 세숫물이나 뜨러 가야겠다 싶어서 수통을 챙겨 시냇가 쪽으로 내려갔다.

게르 캠프의 주인, 푸세가 캠프에 도착한 건 그 즈음이었다. 우리는 게르 캠프의 길가에서 만났다. 시간은 이미 캄캄한 밤이었고, 난 플래쉬를 이용해 길을 걷고 있었는지라 그가 날 부를 때까지 그인 줄도 몰랐다.

푸세 : 오, 세상에. 리! 헤이!
나 : 어, 거기 그건... 푸세? 오호라, 푸세!


나는 잠시 멈춰섰다. 그야말로 "오호라!"였다. 내게 그 마음고생을 하게 만들고 이제야 나타났단 말이지. 하하하.

여기서 그가 어떤 이야기를 꺼내느냐에 따라 내 태도가 달라질 것이다. 나는 팔짱을 끼고 감식하는 눈으로 다가오는 그를 바라봤다. 사과와 용서냐, 진흙탕 싸움이냐. 어느 쪽으로 흐를지는 오로지 네게 달렸어, 푸세. 어디 한 번, 입을 열어봐!

푸세는 내 앞으로 다가와, 두 팔을 벌리고 말했다.


푸세 : 리, 괜찮아? 힘들었지? 너무 미안해!

나 : 응?
푸세 : 세상에, 네가 하루 종일 기다렸을 줄은. 네 일정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려서 미안해. 내 직원이 엉망이라... 다 내 잘못이야. 전적으로 내 잘못이라고. 정말 미안하게 됐어.


그는 성심성의껏 사과를 하기 시작했다. 잠시나마 화를 낼까 말까 고민했던 내 자신이 미안할 정도로 말이다. 나는 살짝 흡족한 미소가 나오려는 것을 참으며 그를 바라봤고, 그는 내가 화가 풀리지 않았다고 생각했는지 계속해서 이야기를 했다.

푸세 : 내일 낮에 울란바토르로 돌아가지? 자 들어봐, 내가 이러이러한 일들을 해줄테니까 말야.

푸세가 보상으로 제시한 조건들은 다음과 같았다.


- 내일 낮의 무료 점심식사 (원래는 아침식사까지만 포함되어 있다)

- 현지 유목민의 집 재방문 (오는 길에 홀스맨과 연락을 했던 것인지 내가 어떤 게르를 방문했는지 알고 있었다. 거기서 아이락을 마셨다고 하자 그건 그냥 없는 셈 치자고 하며 내일 제대로 된 곳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 칭기즈칸의 거대 동상 방문 (칭기즈칸의 거대 동상은 몽골의 유명 관광지인데, 울란바토르에서 테를지 국립공원보다 30분 정도 더 먼 곳에 떨어져 있는 곳이다. 내일 집에 가는 길에 그곳에 들러 내가 관람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했다)






8.

나는 그가 제시한 조건의 내용보다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온 힘을 다해 사과하는 모습에 감명받아, 그에게 웃으며 알겠다고 했다. 푸세는 내가 웃자 조금 안심했는지, 괜찮다고 해줘서 너무 고맙다고 했다.

내가 저 사우나 안쪽에도 화가 난 여행자들이 있다고 일러주자, 푸세는 고개를 푹 숙이며 알고 있다고, 빨리 가서 이야기를 해봐야겠다고 말했다. 가여운 푸세. 나는 푸세에게 비즈니스란 어렵지 힘내 어쩌구 하는 이야기를 해줬고, 푸세는 애써 웃으며 사우나 쪽으로 향했다.

나중에 푸세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듣게 되었다. 그들은 날 게르에 데려다 준 이후 다른 일을 보기 위해 울란바토르로 돌아가다가 지프차가 고장나서 오도가도 못하게 됐다고 했다. 그래서 차를 고치려고 노력하다가, 결국 다른 차를 어디서 구할 때까지 울란바토르에 발이 묶였다고 한다.

딱 그 하루 동안의 일이었다. 직원들은 근무 태만이었고, 한국인 손님은 화가 나서 메일을 보냈고, 새 방문객을 데리러 가야하는데 못가게 됐고, 핸드폰 배터리가 닳아 택시 기사의 전화를 못받았고.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그들도 악몽같은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늦은 밤에야 그를 만나 사과를 듣게 되었지만, 아마 이 늦은 시각이 푸세에겐 가장 빠른 시간이었을 것이다.

나는 깨끗하게 화를 풀고 그를 이해하기로 했다.





9.

나는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세숫물을 떠서 - 푸세가 내 수통을 보곤 물을 떠다주겠다고 했지만, 난 내 세숫물 정도는 내가 알아서 뜰 정도로 이 생활에 익숙해졌다고 말했다. 그리고 어느 위치가 물 뜨기 좋은 위치인지도 이미 알고 있다고 했다. 난 웃으라고 한 소리였는데, 푸세는 너 진짜 고생 많았구나 하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더니, 자신의 손님이 성격도 좋고 긍정적인 여행자라 감사하단 소리를 했다. 아니, 웃으라고 한 소린데 그런 애잔한 표정을 지으며 칭찬(?)하지 말라고. 그런 표정으론 별로 칭찬 같지도 않단 말이지 - 내 게르로 돌아갔다.

푸세의 지시로 엄청나게 불이 떼진 내 게르는 후끈후끈했다. 사우나 안한다고 했는데 내 게르를 사우나로 만들어버리다니. 나는 더위에 투덜거리는 사치를 누리며 대충 씻은 뒤, 자리에 누워 팔다리를 대자로 편 채 잠을 청했다. 피곤한 하루였기에 잠은 금방 들었다.

그 단잠은 야심한 밤, 누군가가 문을 두드려 내 잠을 깨울 때까지 계속 됐다...




황당한 방문객의 이야기부터 다음편에 계속!




2017/11/09 19:03

몽골 자유여행 (7) 말타기와 아이락 └ 몽골 자유여행

1.

메일을 보내놓고 다시 게르 캠프로 돌아왔다. 야외 데크에 앉아 흥분한 감정을 진정시키며 어느 정도 기다리자, 드디어 홀스맨이 말을 끌고 왔다. 튼튼하면서도 유순한 말을 골랐기 때문에 내가 타기 편할 것이라 했다.

나는 혹시라도 그 홀스맨, 그러니까 여직원의 남자친구가, 자신들의 시간을 방해받았다며 날 소홀히 대하거나 험하게 대하면 어쩌나 걱정했으나, 그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그는 오히려 휘파람을 불며 즐거운 듯 내게 필요한 장비 - 헬멧, 다리보호대, 장갑 등 - 들을 입혀줬다.

게으름을 피우고 내 일정을 미뤘던 건 여직원만의 계획이었을까? 사실 홀스맨은 영어를 할 줄 몰라 나와 대화를 나누지 못했고, 그래서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나로썬 알 수 없었다. 그저 그가 아무 싫은 내색 없이 내 말을 살펴주고 길을 인도해준 것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2.

홀스맨과 내가 승마를 준비하는 것을 보고, 지난밤 내 게르의 불을 피워줬던 빌리와 그의 여자친구 메리가 함께 따라나섰다. 그들은 내가 말이 통하지 않는 홀스맨과 단 둘이 남겨지면 힘들 것이라 했다.

나 : 그래도 나 때문에 괜히...
빌리 : 노노! 우리 말타기 좋아해요. 말타기 같이 해요.
메리 : ......^^


한국말을 쓸 줄 아는 빌리는 내게 말 다루는 법에 대해 쉽게 설명해줬다. 그 설명은 아랫단락에.





3.

빌리가 알려준 몽골식 승마의 기초 :





1) 발걸이에 발의 앞부분을 걸쳐야 함! 뒷부분 걸치면 안 됨!

→ 근데 이게 생각보다 어려워서 계속 지적받았다.


2) 출발할 땐 "츄!"를 외치며 말 엉덩이를 발 뒷꿈치로 세게 찬다!

→ 내가 세게 차는 게 미안하다고 하자 빌리가 말은 가죽이 두꺼워서 괜찮다고 함.


3) 멈출 땐 "우이씨~"를 외치며 끈을 잡아당긴다!

→ 우이씨 안했는데도 멈출 분위기거나 지가 힘들면 알아서 멈춤.


4) 방향을 바꿀 땐 끈을 세게 잡아당겨서 말 목을 돌아가게 한다!

→ 말은 힘 쎈 놈이라 생각보다 세게 당겨야 하더라.


5) 말도 지친다!

→ 평소에 안장 안차고 뛰어놀던 애들이라 안장 + 내 몸무게까지 합치면 많이 힘들거라 함.


이것만 알면 오케이... 란다. 정말 숙지해야 할 건 이게 다야? 왠지 조금 겁나는데 괜찮을까?

그러나 내 망설임 따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다. 연습할 시간이 있나 했는데 그 따위는 없고 그냥 바로 말을 출발시켜 초원으로 나가더라. 나는 기겁하며 말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몸을 바싹 낮추고 이미 걷기 시작한 말과 교감하려 애썼다. 너 이 자식, 날 떨어트리기라도 하면 넌 오늘밤 저녁식사거리가 될 거야. 내가 마구 괴롭혀줄 거라고. 알겠어?

...교감인가? 하여간 교감하려 애썼다.





4.

그러나 말과의 교감보다도 내 정신을 먼저 추스려야할 참이었다. 나는 출발과 멈춤에 사용하는 단어를 자꾸 까먹어버려 헤매기 시작했다. 출발할 땐 츄, 멈출 땐 우이씨, 이 쉬운 게 왜이리 안외워지던지. 내가 헷갈려하자 내 혼란이 말에게 전해졌고 그러자 말도 헷갈려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다행히도 내겐 홀스맨과 빌리, 메리가 있었다. 그 셋은 내 주변을 맴돌며 말을 타주는 것으로 날 도와줬다. 빌리 왈, 말은 생각보다 다른 말들의 영향을 많이 받는 동물이라, 주변에서 다른 말들이 자연스럽게 걷는 것만으로도 내 말의 부담이 덜어질 거라 했다.




그리고 그건 진짜였다. 내 말은 내가 "츄!"라고 외치지도 않았는데 다른 말들을 따라 가고, "우이씨~"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다른 말들을 따라 섰다. 그렇게 10분 정도 돌아다니자 나도 말에게, 말도 나에게 익숙해졌고, 그 뒤로 우리는 거의 한몸이 되어, 몽골의 저 초원을 기분 좋게 달릴 수 있었다.

내가 모두를 앞질러 달리자, 빌리는 뒤에서 외쳤다.

빌리 : 말 처음 타는 거? 정말 맞아요?
나 : 응? 나 잘 타고 있어요?
빌리 : 말 잘 타요! 아주 좋아요! 말 처음 아닌가봐요!
나 : 나 처음인데요! 아하하하! 얘가 착해요!


혹시 이 말은 전생에 내 영혼의 반쪽이 아니었을까? 어쩜 이렇게 내 말을 잘 알아듣고 잘 따라주는지! 나는 만족감과 상쾌함에 함박웃음을 짓고 깔깔거리며 신나게 달렸다. 와, 와, 와!





말 타는 게 이렇게 신나는 거였어? 자전거도, 오토바이도, 자동차도 못타는 난데 말 만큼은 편안했다. 나는 혹시 시대를 잘못 골라 태어난 게 아닐까? 좀 더 옛날에 태어났어야 했나? 말이 아직 이동수단이던 시절에 말야. 아하핫!

물론 이것은 날 세심하게 신경써주고 가르쳐준 홀스맨과 빌리 커플의 도움 덕택이었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편안하고 즐겁게 타진 못했을 것이다. 덕분에 나는 좀 전에 있었던 여직원과의 신경전은 새까맣게 잊고 몽골의 초원을 달릴 수 있었다.





5.

영상 하나 추가... 하려다가 영상에 넣을 "승마와 어울리는 쾌적하고 신나는 음악이면서도 저작권에 위배되지 않는 음악"을 찾느라 일주일이 흘러버렸는데 여전히 음악을 찾지 못한 바람에 그냥 포기한다. 나중에 그런 음악을 찾게 되면 음악 입혀서 올려보겠음.

지금은 뭐... 빌리가 내 폰카로 찍어준 사진이나 몇 장 올려본다.











6.

1시간 정도 달렸을까, 빌리는 내가 현지 주민의 집(Nomadic House)에 가고 싶어한다는 걸 들었다며, 한 게르에 들르자고 했다. 그곳은 홀스맨 친구의 게르인데, 우리가 방문하면 말젖으로 만든 술(아이락)을 대접받을 수 있다고 했다.

푸세의 친구이자 손님 자격으로 게르 캠프에서 묵고 있는 빌리는, 승마하는 김에 가볍게 들러보자~ 너 구경하고 싶었다며~ 하는 느낌이었지만, 이 캠프의 직원이 아닌 그는 몰랐다. "현지인의 집에 방문하는 것"은 게르 캠프에서 진행하는 투어 상품 중 하나라는 것을 말이다. 그 때문에 나는 이미 게르 캠프의 주인인 푸세에게 현지인의 집에 들르는 값으로 USD 20~30 정도를 지불하기로 약속했었다.

그런데 오늘 시간이 너무 늦어져서, 그 투어는 취소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찰나, 빌리가 현지인 게르에 날 데려가려는 것이다. 어디보자, 그럼 내가 지금 빌리를 따라 잠깐이라도 현지인의 집에 들른다면 이 값을 지불해야하나? 나는 그 값을 지불한 뒤 몽골인들의 현지 생활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싶은 건데, 같은 여행자 수준인 빌리와 메리가 그 설명을 해줄 수 있을까? 만약 이 방문이 만족스럽지 않게 끝난다면 계산이 어떻게 되는 거지?

직원인 홀스맨과는 말이 안통하고, 말이 통하는 빌리와 메리는 직원이 아니고, 누구에게 물어야 오해없이 대화가 가능할까. 나는 잠시 고민했지만, 뭐 돈이야 나중에 생각하고 일단 지금은 그 말젖으로 만든 술이라는 것을 마셔봐야겠다고 결론내렸다. 지금의 방문이 제값을 하지 않는 것 같다면 이것도 매니저에게 따지지, 뭐.

이런 계산을 5초 정도에 걸쳐 한 뒤, 나는 빌리에게 씩씩하게 외쳤다.

나 : 난 좋아요. 가요, 거기로!
빌리 : 하하! 여기 코앞이에요. 이쪽이에요!






7.

그 게르에는 홀스맨의 친구라는 사람 한 명밖에 없었다. 게르의 규모나 살림살이로 보아 가족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독립해서 혼자 사는 건가?

하여간 그 홀스맨의 친구는 홀스맨과 우리들을 반가워하며 손님 맞이할 채비를 했다. 나는 홀스맨과 빌리가 알려주는대로 일단 게르 앞에 있는 말 주차장(?)에 말을 매어뒀다.






말 주차장(?)에 매듭을 짓고 홀스맨의 도움을 받아 말에서 내렸다. 얌전히 내려오는 걸 도와주기만 하면 되는 것을 굳이 와락 끌어안을 필요가 있었을까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겠거니 생각하고 고맙다고 했다.




무거운 날 이고 달려준 내 말! 고마움을 담아 쓰담쓰담 해줬다. 어마어마한 체격과는 다르게 순하고 착한 말이었다.




동영상으로 찍어놓으니 이런 순간포착도 할 수 있고 좋군. 하품하는 말.




말을 잠시 쓰다듬어주다가 빌리의 보챔을 받고 게르로 들어갔다. 딱 봐도 작은 규모였다.

그나저나 말에서 내려오면서 헬멧에 달린 고프로의 각도가 꺾였나보다. 바닥 지분 왤케 많음.




게르 내부. 크기는 내가 머물고 있는 게르 캠프 크기의 2/3 정도였다.

게르 안쪽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냄새로 가득했다. 말똥냄새와 혼자 사는 자취생의 방에서 나는 냄새가 어우러진 냄새라고 하면 좋을까...

뭐, 후각은 제일 빨리 둔해지는 감각이니까. 5분만 있으면 괜찮아지겠지. 나는 최대한 불쾌함을 표현하지 않으려 애쓰며 미소를 짓고 자리에 앉았다. 빌리와 메리도 차례로 내 옆에 앉았고, 홀스맨은 홀스맨의 친구 옆에 앉았다. 그들은 오랜만에 만난 것인지 우리는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신나게 이야기를 떠들었고, 그 사이에 나는 빌리와 메리에게 아이락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빌리 왈, 맞은편 벽에 분홍색 천으로 싸여있는 무언가가 말의 젖으로 만든 술인 아이락을 보관하는 통... 자루라고 해야할까? 하여간 보관 도구라 했다. 빌리는 얼른 마셔보자며 홀스맨을 보챘고, 홀스맨은 당연하다며 홀스맨의 친구를 보챘고, 홀스맨의 친구는 어깨를 으쓱이며 팔을 걷어붙였다.




아이락을 보관하는 도구는 무진장 거대해서, 술을 마시기 위해선 성인 남성 세 명이 필요했다. 그것 참 마시기 힘든 술이군.




간신히 술 한 잔을 받았다. 빌리가 술 받는 예의 같은 걸 알려줘서 그대로 따라했다. 왼손을 오른손의 손목에 대고 받으면 된단다. 약간 우리나라 술 받는 거랑 비슷하군. 나는 모두의 관심 속에서 한모금을 마셨다.

빌리 : 맛 어때요? ㅋㅋㅋㅋ
나 : ......으... 으으으......?
메리 : 오, 그래그래. 그런 반응 당연하지.
나 : ......뭐, 뭐야!? 이게 무슨 맛......?
빌리 : 하하하! 저도 그랬어요. 근데 이제 좋아요.
메리 : 아무래도 네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겠구나.


빌리와 메리는 자신들도 처음에 그랬다며 웃었고, 홀스맨과 그의 친구는 그럴 줄 알았다며 피식 웃었다. 좋아, 이쯤에서 설명을 해보겠다. 아이락은 그야말로... 그야말로... 맛없었다! 엄청 시큼했고, 음... 맛없었다. 더 이상의 표현을 할 수가 없다! 그냥 맛없고 시큼한 술이었다. 아마 익숙해진다면 그 시큼함 가운데서 다른 깊은 맛을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난 그 전에 한국에 돌아와버려서 그냥 맛없는 술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예의상 받은 술은 다 마셔야지. 난 눈을 꼭 감고 꿀꺽꿀꺽 마셨다. 그러자 빌리와 메리가 말렸다.

빌리 : 안돼요! 배아파요! 안돼요!
메리 : 오, 억지로 마실 필요 없어! 진정해!


응? 술 남겨도 괜찮은 건가? 나는 술을 1/3 정도를 남겨놓고 간신히 멈췄다. 빌리는 네가 힘들어하는 거 안다, 무리할 필요 없다, 그리고 네가 그거 다 마시면 한 잔을 또 따라주는 게 관례니까 천천히 마시라고 했다.

나 : 아 그렇구나... 근데 배가 아프다는 건 뭐죠?
빌리 : 아, 이 술 마시면, 처음에 배 아파요. 설사해요.
나 : ......네?
빌리 : 하하하. 저도 설사 막 했어요. 처음에.
나 : ......아, 아니......
빌리 : 그래서 그렇게 먹으면 배탈 날 거에요!
나 : ......그런 건......



그런 건 진작 말해!


내 배 괜찮냐! 앞으로 한시간을 다시 달려서 캠프로 돌아가야 하는데! 가는 도중에 멀쩡한 화장실이 있을리도 만무하고, 어디 풀숲에서 용변을 해결해야할 지경에 이르면 어쩌지!

나는 두려움에 떨면서 앞으로의 여정에 대해 고뇌했고,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빌리와 메리는 태평하게 이 집의 아이락에 대한 품평을 내리며 술을 홀짝거렸다. 이, 이 바보 미국인들 같으니라고! 으아아아앙!





8.

...하지만 그렇게 걱정했던 것치곤, 다행히도 내 배는 다음날까지 멀쩡했다. 여러분들께서 기대할만한 상황(?)을 만들어내지 못해서 죄송할 정도로 멀쩡했다. 하하하.

평소에 발효음식을 많이 먹어서 그런 걸까? 글을 쓰는 지금 배를 쓰다듬으며 치하하고 있다. 음음, 장하도다, 내 위장.






위장이 대단한 enat의 여행기는 저녁 먹어야하니까 끊고 게르로 돌아가는 길부터 계속!




2017/11/01 23:28

몽골 자유여행 (6) 화가 났던 이유 └ 몽골 자유여행

1.

울란바토르에서 게르 캠프로 가던 차 안.

푸세는 나보고 왜 이렇게 짧게 머무냐고, 몇 주 머물면 좋지 않겠냐고 했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직장인이기 때문에 시간을 쪼개서 여행을 다니는 거라고, 그래서 머무는 동안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활동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푸세는 뭘 제일 해보고 싶냐고 물었고, 나는 당연히 말타기라고 답했다. 특히 내가 머문 이 게르 캠프는 하루 숙박에 3시간 정도의 무료 말타기를 허용해주기 때문에, 말을 안타면 넘나 아까운 것이다.

나 : 나, 말 진짜 타보고 싶어. 나 말 타러 몽골 온 거거든!
푸세 : 말 타는 거 재밌지! 그리고 또?
나 : 너희 게르 캠프에선 현지인 게르에 방문하는 것도 가능하다며?
푸세 : 가능해! 그럼 오늘은 캠프 가서 쉬고, 내일 오전에 말을 타고 쉰 다음, 오후에 현지인 게르에 가면 되겠다.
나 : 오, 좋아, 좋아! 그리고 여유 되면 또 말 탈 거야. 말 타는 거 진짜 재밌을 것 같아!
푸세 : 하하하! 알았다고! 넌 즐겁게 말을 탈 수 있을 거야. 우리 말들은 순하거든!






2.

그렇게 호언장담하던 푸세는, 날 게르 캠프에 데려다준 직후, 다시 울란바토르로 돌아가 그 날 내내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뭐, 그는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이니 바쁘겠거니, 또 이미 직원들에게 내 일정에 대해 숙지시켰겠거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나는 당연히 아침이면 말을 탈 수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아침 일찍 일어나서 물을 길어와 세수도 하고, 옷도 갈아입고, 착한 말을 탔으면 좋겠다 상상하며 히히덕댔다. 하지만 여직원이 늦잠을 자는 바람에 아침 식사가 늦어졌다. 나는 내 일정이 밀렸으려나 걱정하며 여직원에게 물어봤다.

나 : 있잖아, 나 말 타는 거 말이야.
여직원 : 아, 말?


여직원은 잠깐 눈을 치켜뜨고 머리를 굴리더니 내게 말했다.

여직원 : 말은 오후에 탈 수 있어.
나 : 응? 오후에는 현지인 게르에 가기로 했는데?
여직원 : ...그래? 음, 그럼 오후에 말을 타고 현지인 게르까지 가면 돼.
나 : 그럼 오전에는? 나 오전에는 뭘 해? 왜 말을 오후에 타야 해?


여직원은 뭔가를 설명하려고 하다가 영어가 힘들었는지, 곤란한 표정을 짓고 고개를 저으며 오후에 말을 탈 수 있다는 말만 했다. 무슨 사정이라도 있는 건가? 나는 한숨을 쉬며 그럼 오전에 할 만한 일을 추천해달라고 했다. 그녀는 뒷산 하이킹을 추천했고, 그래서 나는 에이미와 함께 뒷(돌)산에 다녀왔다.





3.

점심 식사 후.

다시 들뜬 나는, 여직원에게 몇 시쯤에 말을 탈 수 있냐고 물었고, 그녀는 하하 웃다가 지금은 일단 야크젖을 짜러 가야한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따라 야크젖 짜는 걸 구경갔다. 처음에는 신기했지만, 점점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야크와 직원들의 지지부진한 기싸움과 그들만의 몽골어 대화는 날 따분하게 만들었다.

야크젖을 다 짜고, 여직원은 같이 야크젖을 짜던 2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남직원과 들러붙어서 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냥 직원들끼리 사이가 좋은가보다 했는데 점점 둘이 뽀뽀를 하질 않나 몸을 더듬질 않나 해서 날 당황시켰다. 여직원은 내 당황한 모습을 보더니 더 불이 붙었는지(?) 그 남직원과 더 부비적거리기 시작했고, 나는 몽골 사회에선 게스트 앞에서 직원들끼리 저런 행위를 하는 것이 용인되는 것인가, 그렇다면 이것에 대해 어떤 식으로 불쾌감을 표현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여직원 : 왜? 왜? 놀랐어?

어느새 여직원이 내 앞에 와서 물었다. 정색할까 하다가, 너무나 순박하게 묻길래, 그냥 장난스럽게 너는 나쁜 여자라고, 남자친구 있다고 했으면서 저 남직원과 그렇게 노는 거냐고 말했다. 그러나 여직원은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으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여직원 : 아냐, 쟤야! 내 남자친구가 쟤야!
나 : 뭐? 네가 여기 와서 사귀었다는 남자친구가, 저 직원이었어?
여직원 : 응!


나는 잠시 머리를 부여잡고 남직원에게 속으로 도둑놈 새끼라고 외쳤다. 막 고등학교 졸업한 애를 살살 꼬셔가지고 뭘 하는 거야. 그것도 남들 다 보는 앞에서 망측하게 놀고 있냐고.

내 생각과는 다르게, 여직원은 아련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여직원 : 근데 우리 오늘 마지막 날이거든. 나 내일 집에 가서 독일 갈 준비를 해야하니까.
나 : 음... 그래.


20대 초중반의 한창 젊은 애들이라면 남의 시선 신경 안쓰겠지. 그리고 자신들의 사랑을 나누는 모습이 누구에게나 다 예뻐보일 거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사실 개민폐에 불과하지만... 뭐 어쨌든 그래, 마지막 날이라니까 그냥 넘어가기로 하자.





4.

나는 게르 캠프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을 둘러보며 내 눈을 정화한 뒤, 여직원에게 다시금 물었다.

나 : 그래서, 나 말은 언제 타?
여직원 : 그게, 좀 있으면 다른 손님들이 오거든. 그런데 그 손님들도 말을 타고 싶대. 그래서 네가 조금만 더 기다려주면 안될까? 그럼 다같이 타고 좋잖아.
나 : 그 손님이 언제 오는데?
여직원 : 음, 좀 이따가


이곳에서 좀 이따가라는 말을 믿을 수가 있어야지. 게다가 나는 아침부터 말타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다른 손님들의 말타는 시간까지 기다려줘야 한다고? 그건 좀 어려울 것 같다. 나는 으으음 하는 소리를 길게 끌다가, 웃으며 대답했다.

나 : 있잖아, 나 진지하게, 오늘 아침부터 기다렸어.
여직원 : ......
나 : 내가 먼저 탈 수 있게 해줘.
여직원 : ...알았어. 기다려봐.


그래서 기다렸다.





5.

그러나 아무런 연락도 대책도 없이 오후 3시 반이 됐다.

어제의 경험에 의하면, 이곳은 오후 6시면 캄캄해진다. 그리고 이곳은 전기가 없기 때문에 캄캄해지는 그 때가 하루 일과 종료 시간이다.

나 : ......

게르 캠프는 여전히 평화로웠고 지나다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가끔씩 에이미나 메르시가 놀자고 와서 달려들었으나, 나중엔 그들도 지쳐서 오후의 나른한 햇볕 아래에서 낮잠을 잤다.

야외 데크에 앉아 멍 때리고 있는데, 갑자기 내 귓가로 바람이 휘이잉하고 불어왔다. 나는 귀에 들어간 바람에 놀라 고개를 파르르 턴 뒤 소리에 집중했다. 방금 바람소리에 뭔가가 실려왔는데. 귀를 쫑긋 세우자 여자와 남자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여직원과 남직원이 무슨 장난이라도 치는지 꺄르르거리는 것 같았다.

그 순간 갑자기 깨닫게 됐다.


저것들이, 마지막 날이라 지네들 놀겠다고 일을 안하는구나...


그래, 이거 뭔지 대충 알겠어. 지금 너희들이 로맨스 영화 한 편 찍는다고 한국에서 놀러온 쩌리 여행자 1은 보이지도 않는 모양이구나. 그렇다면 여기가 영화 속 배경이 아니라 현실이란 걸 빨리 보여줘야겠네.

나는 그쪽으로 달려가 그들의 웃음소리를 중단시키고 여직원을 불러내어 대체 내가 언제쯤 말을 탈 수 있는거냐고 물었다. 그러자 여직원은 아까 다른 손님들이 올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하지 않았냐고 말했다. 무슨 소리야. 나는 못기다린다고 했잖아. 나는 이를 악물고 '네가 내 말을 제대로 못알아먹었나본데 나는 지금 말이 타고 싶으며 이것에 대해 빠른 조치가 취해지지 않으면 난리를 피우겠다'는 메세지를 담아 차근차근 이야기를 해줬다. 그제야 여직원은 사태를 파악한 것인지 어버버하며 알겠다고 했다.

여직원 : 알았어, 기다려봐. 조금만 더 기다려줘.
나 : ...뭐? 기다려? 너 내게 또 기다리라는 말을 한 거니?
여직원 :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말을 구하러 가야해. 홀스맨이 네가 타고 올 말을 잡아올 거야.


그녀 왈, 말들을 방목해서 키우기 때문에 내가 탈 말을 구하는데도 시간이 걸린다 했다. 그리고 남직원을 보채어 그가 말을 구하러 가게 했다. 아마도 그 남직원이 홀스맨인가보다.


하하, 그런 준비조차도 해놓지 않은 거구나.


매우 화가 나는 상황이었지만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했다는 어린 여직원에게 소리를 지를 순 없었다. 언제부턴가 나보다 작고 어린 애들에게 화를 내는 일이 불편해져서 말이다.

그러나 마음속에 쌓인 이 분노는 어떻게 해야한단 말인가.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그냥 매니저에게 이 사태에 대해 씨부리기로 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컨택해야 할 사람은 말단 직원이 아니라 관리자다. 사실 이건 그들의 관리 잘못이기도 하다. 어린 여직원에게 게르 캠프의 모든 일을 전적으로 맡겨놓고 다른 지역에 가있는 것부터 말이다.

나는 여행 전 그들과 메일로만 연락을 주고받았기 때문에 그들의 전화번호를 몰랐고, 그래서 메일로 '내가 몹시 화가 난 이유'에 대해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3G가 터지는 곳까지 천천히 걸어가면서. (이전 포스팅에서 15분 정도의 거리라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왕복 15분이었던 것 같다. 30분이나 걸려 메일을 쓴 것 같진 않음)





6.

Dear 나미(매니저)


나는 오늘 하루종일 말타기만을 기다렸어.


오늘 아침, 나는 말타기를 엄청 기대했어.

그래서 네 직원에게 이야기했는데,

네 직원 왈, 내가 점심 이후에나 승마를 할 수 있다는 거야.

그리곤 내게 하이킹을 추천했어.

아마 승마 준비를 하는데에 시간이 필요한가보다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아침 식사 후에 하이킹을 하며 기다렸어.

하지만 점심 식사 이후에도 기다림은 계속 됐어.

나는 무슨 문제라도 있나 싶어서 계속 기다리다가 네 직원에게 또 물어봤어.

그러자 더 기다려야만 한다고 했어.

그러나 지금까지,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어.

그 덕분에 나는 좀 화가 났어.


내가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냐고 네 직원에게 물어봤어.

그랬더니 걔네가 하는 말이, 다른 여행자들이 말타러 온다는거야.

다른 여행자들이 올 때까지 내가 기다려야 한대.

그래서 나는 그럴 순 없다고 했어.

나는 이미 하루종일 기다렸다고.


이제 홀스맨이 드디어 말을 잡으러 갔어.

그러나 나는 여전히 화가 나있어.

아마 적어도 오늘 안에 말 정도는 잠깐 탈 수 있겠지.

하지만 내가 계획했던 현지인 게르 방문은 할 수 없을 것 같아.


난 네게 네 캠프에서 이러한 일들이 이뤄지고 있음을 알리고 싶었어.

알고 있었니?

이러한 일들이 몽골에선 평범한 일이니?

이게 만약 흔한 일이라면, 이 모든 것들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해볼게.


어쨌든 내 메일을 읽어줘서 고마워. 안녕.






7.

메일을 보내고나자 속이 조금 후련해졌다. 엄청 화났던 것치곤 점잖게 쓴 느낌이군.

자, 이제 어떻게 답이 올까?


벌써 서산에 해가 기웃거리지만, 어쨌든 오늘 안에 말은 꼭 타봐야겠다.

홀스맨이 지금쯤 내가 탈 말을 잡아왔을까 생각하며, 다시 게르 캠프로 돌아갔다.







써놓고 의자에 반쯤 누워 꾸벅꾸벅 졸다가 업로드 누르고 자러 가는 enat의 몽골여행기는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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