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티칸 편지로 시작하는 뒷 이야기.
사실 포스팅할만한 에피소드는 없고, 그냥 여행에 대해 언급하지 못했던 몇가지 이야기를 써본다.
1.
지난 여름 여행하던 나를 머릿속에 그려보라면, 가본 곳도 많고 먹은 것도 많지만, 2시간 걸리는 버스 안이나 3시간 걸리는 기차 안에서 이어폰을 귀에 꽂고 창 밖을 내다보며 흥얼거리는 모습을 그린다. 사실 여행이라는 게 단 5분을 위해 5시간을 달려가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결국 이동시간이 가장 많은 시간을 차지하기 때문. 여행하는 모양새나 살아가는 모양새나 정말 똑같기 짝이 없다.

이동하면서 제일 많이 들은 음악은 이소라 7집이다. 단순히 많은 것을 보고 와야지! 라는 목적을 급자아찾기 여행으로 만들어버린 음악. 이소라 7집은 많은 전문가들의 리뷰와 분석이 따라붙은 앨범이기도 한데, 나야 철학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그 무수한 분석들을 이해할리 만무하고, 그냥 내가 느낀대로 써....보려고 했지만 졸라 오글거리고 길어져서 지웠다. 그냥 느껴!!
2.
여행과 음악의 상관관계. 결국은 1번과 이어져서 쓰는 이야기가 될 것 같다.
여행 중이라면 거리의 소음도, 기차의 덜컹거림도 다 즐겁고 가슴 떨릴 것 같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다. 열흘째 넘어가면 지...................ㄴ짜 심심하다. 도시와 도시 간의 기차, 혹은 버스를 타고 3, 4시간 하릴없이 마냥 기다리는 일, 보통이 아니다.
내 친구는 여행 초반, 이동할 때면 핸드폰에 받아놨던 무한도전을 열심히 봤었는데, 받아온 건 일주일만에 동이 났는지라 그 이후부턴 몹시 지루해했다. 게다가 그 작은 화면으로 영상을 봐왔으니, 눈이 어지간히도 피곤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반복해도 좋은, 눈이 아프지도 않은 음악을 듣는 게 참 좋은 것 같다.
하긴 더 좋은 건, 조건반사라는 녀석이 있어서다.

나중에 여행 다녀와서도 그 음악을 들으면, 반사적으로 여행지에서의 일이 떠오른다. 내 경우 이소라 7집 9번을 들으면 체코의 넓은 초원이 생각나고, 이적의 해피엔딩을 들으면 쾰른의 블랙쉽 호스텔이 떠오른다. 딱히 사진을 찾아보거나 하지 않아도 멜로디 하나로 즐거웠던 일이 떠오르는 것, 좋잖아!
3.
이번 여행... 진짜 엄청 걸었다. 그리고 걸은 만큼 많이 남았다. "걷는 게 남는 것!" 이란 구호를 만들고 싶을 정도로.
나야 원래 걷는 걸 좋아한다고 쳐도, 걷는 걸 그닥 좋아하지 않는 내 친구도 여기엔 동의했다. 스탑오버로 잠깐 들렸던 유럽 첫 도시, 헬싱키에서였다. 첫 날 트램을 그렇게 타고 다녀도 도시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둘째 날 음식점 찾느라 걸어서 한참을 헤매고 돌아다녔더니 그제서야 헬싱키가 '느껴졌다'. 이걸 뭐라고 표현해야 될는지 잘 모르겠는데, 여튼 그 도시의 분위기, 생활사 등을 느끼기 위해선 일단 두 발로 걸어다니는 게 제일인 것 같다. 걷는다는 건 그 도시의 땅과 직접 만나고, 그 도시의 거리와 직접 만나는 거니까.
물론 걷기 위해선 체력의 안배가 필요하다. 도시에 도착한 첫날 흥분해서 마구마구 돌아다니면 둘째날 gg친다. 우린 프라하에서 그랬고 로마에서 그랬다. 뭐 다른 곳에서도 그랬던 것 같긴 한데 일단 저 두 개의 도시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 여기선 프라하 얘기만 해볼까.

프라하 첫날 아침 8시쯤 나가서 밤 10시쯤 숙소로 돌아왔다. 14시간 동안 돌아다닌 거다. 식당이나 성당, 지하철에 잠시 앉은 시간만 빼놓고 생각해도, 건 12시간을 걸어다닌 것... 아무리 생각해돜ㅋㅋㅋㅋㅋ 레알 미친거얔ㅋㅋㅋㅋㅋㅋㅋㅋ 둘째날 아침에 둘 다 KO된 건 당연했다. 그래서 둘째날엔 시간을 대폭 줄여, 아침 10시쯤 나가서 저녁 5시쯤에 으으거리며 들어왔다. 이쯤되면 여행이 아니라 극기훈련이 아닌가 싶지만...
여튼 저렇게 걷는건 좀 오버겠지만, 그래도 잔뜩 걸어야 재미난 일도 생기고 재밌는 사람들도 많이 만나는 것 같다.
또 여행을 가게 된다면? 아마 그 때도 이렇게 걸어다닐테지, 나는.
4.
3번 쓰면서 생각난 거 하나만 더 덧붙여본다.
사실... 내가 봐도 내 여행은 다른 사람들 여행보다.... 에... 뭐랄까, 하드하다. 아마 숙식에 그리 크게 비중을 두지 않는게 제 1 원인일 것이다. 평소에도 삼시 세끼 안챙겨먹을 때가 많고, 잠도 불규칙하게 자니까, 뭐 여행가서도 별 상관 없다 싶은 생각.

누군가에게 "그래, 이 녀석은 먹는 것과 자는 것의 즐거움을 모르는 거야" 라는 소리를 들은 적도 있지만, 나... 나도 안다 뭐.
여튼 그런식으로 돈을 아낄 땐 숙식비를 제일 먼저 삭감하니, 여행도중 일행에게서 힘들다는 소리 참 많이 들어왔다. 국내여행 할 때도 많이 들었었고, 일본여행 할 때도 많이 들었었고.
이렇게 고생한 것도 지나고나면 다 추억이 되겠져^^ 란 말도 한두번이지, 한달하고 일주일 되는 시간 동안 스파르타식 일정으로 움직인 나에게 투정도 짜증도 미루고 잘 쫓아온 친구 정모양에게 감사를 전한다. 땡큐베리감사. 그리고 조만간 집에 쳐들어갈테니 네덜란드에서 먹었던 웍투웍 레시피대로 밥 또 해주라.
5.
여행했던 도시들 중 몇 개의 도시만 뽑아봐야징.
유럽에서 보냈던 저녁 중 제일 훈훈했던 곳은 역시!

뮌헨 마리엔 광장과 빅토리엔 마르크트(http://enatubosi.egloos.com/1599075)에서 보냈던 저녁. 왁자지껄한 야외 식당에서 술과 분위기에 취해서 이것저것 떠들어댔던 후리한 여행자의 전형적인 저녁이었다.
유럽에서 걸었던 길 중 제일 재밌었던 곳은 역시!

베네치아 중앙역에서 PER S. MARCO라는 표지판만 따라 산 마르코 광장까지 헤매였던(http://enatubosi.egloos.com/1629111) 길. 당시 나는 게임 속에서 던전 탐험하는 모험가 기분에 흠뻑 취해있었다.
유럽에서 본 대자연 중 제일 감동이었던 곳은 역시!

스위스에서 이탈리아로 넘어가는 국경선 중 하나인 베르니나 구간(http://enatubosi.egloos.com/1625591)이었다. 여긴 꼭 다시 가서 트래킹 하고 온다.. 레알...
여기까진 그냥 언급해주지 않으면 서운할 것 같아서 써본거고, 유럽에서 진짜 좋았던 도시를 하나 뽑아본다.
유럽에서 지낸 도시 중 제일 내 취향이었던 곳은 역시.........
당연하잖아! 나폴리!

그 더럽고 지저분하고 무질서한 도시! 완전 내 취향이야! 온갖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소문이 무성한 낡은 도시! 정작 껍질을 까보니 유럽의 다른 도시들보다 순박하고 친절하고 업다운 심한 사람들 한가득이고! 완전 사랑스럽지 않냐고! 크으!!!!!!!
이 같은 평가엔 스파카 나폴리(http://enatubosi.egloos.com/1637073)에서 먹은 피자와 산 엘모성에서 바라봤던 나폴리 전경(http://enatubosi.egloos.com/1637895)이 크게 한 몫 했다. 여튼 나폴리 짱임 나폴리.
덧붙여 여행기 쓰기 제일 힘들었던 도시는 단연 로마. 아아 로마, 여행기 쓰기 전까진 마냥 사랑스러운 도시였는데...(언젠가 한 번 주절거린 적이 있는 것 같아 이하 생략)
6.
마지막으로 두서 없고 정신 사나웠던 유럽 여행기 하나하나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사실 로마 전까지는 내 즐거움에 못이겨 룰루랄라 포스팅 했었는데 로마 들어와서부턴 방문해주신 분들의 덧글을 보며 힘을 얻고 포스팅했슴다. 어흑흑... 내 여행인데 왜 이리 쓰기 힘들었는지... 로마!!!!!!

정말로 끝임! 계속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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