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9/25 17:49

36일 유럽여행 (3) : 프라하 ② 뻘짓 ├ 36일 유럽여행 (2011)


방에 조용히 쳐박혀 피안화를 하던 밀린 무도를 보던 뭔가 뒹굴거리고 싶었는데 
세상은♪ 어떻게에든♩ 나를♬ 끄집어 내는군요... 
밖이라 이어폰을 안가져와서 소리나는 건 못하겠고 여행 포스팅이나 하죠... 어헣헣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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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쇼가 끝나고, 날씨도 좋아졌겠다, 프라하 구시가지 골목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틴 성당 근처를 둘러보고 나오는데 왠 음악 CD 가게가 있었다... 우와, 풍월당에서나 보던 네임택이 있다.
거기에다 벽 여기저기에 음악 콘서트 포스터도 잔뜩! 역시 프라하, 예술의 도시다!


틴 성당 옆에 있던 골드 킨스키 궁전. 

사진 찍고 돌아섰는데 왠 동양인 두 명이 갑자기 말을 건다. 

"저기... 한국분이시죠?"

우와, 오랜만에 들어보는 -그래봤자 사흘째지만- 한국말이였다. 반가운 마음에 왜요왜요 거렸더니,

"저희가 몇 시간 후에 비행기 타고 어디 가는데 지금 프라하성을 갈까 말까 고민중이에요. 어떡할까요?"

....그걸 왜 우리한테 물어봐!!!!

여튼 이야기를 잘 들어보니, 프라하성 관람하는데 시간이 오래걸릴지 아닐지 몰라서 고민중이란다. 그래서 혹시 프라하성 보고 온 사람인지, 만약 그렇다면 어느 정도 걸릴지, 가는게 좋을지 안가는게 좋을지 의견을 묻고 싶댄다. 과연과연.
하지만 애석하게도 우리 역시 프라하 첫째날. 누군가에게 충고를 해주기는 커녕 우리도 누군가에게 충고를 듣고 싶다. 그래도 이왕 마주친 거 최대한 도움이 되기 위해 가이드북 찾아가며 이 설명 저 설명 해줬다. 뭐 결론은,

"이왕 프라하까지 왔는데 보고 가시죠?"

....무슨 호객꾼이 된 것 같아...

결국 short route로 표 사고 나서 둘러보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헤어졌다. 어떻게 됐으려나. 나중에 프라하성 가보니까 short route도 시간 꽤 많이 잡아먹던데. 괜히 가보라고 얘기해서 구경하다가 비행기 놓친 건 아닐까 걱정도 됐지만 내가 고민해봤자 어떻게 될 일이 아니니 그냥 넘어갔다. 아, 헤어지기 직전 뭔가 힘내라는 식의 칭찬을 해주고 싶어서 무슨 말을 할까 고민하다가,

"와우, 치마 완전 예쁘시다아."

....지금 생각해보니 정말 삐끼 같은 대사다...


구시가 광장 한복판에 있는 체코의 종교 개혁자 얀 후스 동상. 
면죄부 판매를 비난하여 교황청에서 파문당한 뒤 독일에서 화형당했지만 지금은 순교자로 추앙받고 있다.


거리 여기저기엔 마차가 가득했다. 체코 뿐만이 아니라 유럽 전역의 관광지엔 항상 마차가 있었다. 
지쳐보이는 말이 살짝 가엾단 생각이 들긴 했지만 뭐 어쩌랴. 


성 미쿨라셰(성 니콜라스, 산타클로스) 성당. 구시가 광장의 북서쪽에 위치한다. 
모차르트가 이곳에서 자주 오르간 연주를 했다고 하며, 모차르트 사망 후엔 추모 미사도 열렸다고 한다. 


성당 내부 천장화. 흐릿해서 잘 안보여...


내부 사진. 아이가 너무 귀엽게 빤히 쳐다보길래 빠르게 셔터를 눌렀다. 
초점이 안맞음 에잉. 

여튼 구시가 광장에서 더위에 쩔어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이 될 때면 항상 이 성당으로 와서 기도하는 척 앉았다. 입장료 그런 거 없으니까.


다시 거리로 나가 기념품 구경. 그러고보니 저 공 따라 굴러다니는 족제비 인형, 화약탑 근처에선 250코룬에 팔던데 이 쪽에선 가격이 팍 내려가있네. 
프라하까지 와서 저런 거 사는 사람도 있나 싶었는데, 이 날 이 인형 사는 사람 두 명 봤다. 음... 언제나 가볍게 깨지는 내 예상.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있는 거로군...


구시청사 천문시계 모형의 탁상 시계. 저건 진짜 사고 싶었다. 
여행 초창기라 가지고 다니면서 망가질지도 모르겠다 하고 안샀는데, 이제 와서 좀 후회중. 에잉.


그렇게 기념품 구경하면서 걸어왔는데... 읭? 
원래 까를교 쪽으로 들어가 프라하 성에 가려고 했는데, 방향을 잘못 잡아서 까를교가 보이는 북쪽 다리로 와버렸다. 날씨는 비바람 치던 아침과는 다르게 미친듯 쪄들어가는데, 건너편에 보이는 까를교에선 인파가 우글거리고... 저 쪽으론 그닥 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까를교로 돌아가지 않고, 그냥 이 다리를 건너 프라하 성에 가기로 했다.

엄청난 실수였다. 


땡볕 속을 뚫고 다리를 건넜다. 지도책을 보니 프라하 성으로 통하는 출입구는 여러갠데, 이 쪽 방면으로도 출입구가 있다. 좋아, 이 쪽으로 가면 되겠다 싶어서 좀 더 힘을 내어 프라하 성 방향으로 더위에 찌든 몸을 이끌었다. 
 
돌이킬 수 없는 실수였다. 


어? 오르막 길이잖아? 이런 건 근성으로 이겨낼 수 있어!

오만이었다.


한참 올라오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엄청 올라왔군... 이제 얼마 안남았을거야!

착각이었다. 


왜... 왜 이렇게나 올라왔는데 오르막길이 끝나지 않아!?

오후 2시. 아침은 알량한 샌드위치로 때우고, 점심은 먹지도 않은 채로 프라하성에 도착한 우리는, 
동쪽 입구에서 그대로 방전되어 버렸다. 


그렇게 지쳐서 길바닥에 앉아 있는데, 왠 남자들이 우리 앞을 지나쳐간다. 
뭘까. 이렇게 더워 죽겠는데 왜 저런 답답한 옷을 입고 다니나. 

간신히 머릿속에서 '근위병 교대식'이란 단어를 끄집어 낼 수 있었다. 


멍하니 이십분간 앉아있다가, '아니 체력단련도 아니고 관광하러 왔는데 밥은 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라는 긴 주제, 그러나 짧은 발언으로 이루어진 토론이 시작되었다. 
결국 바로 입구 앞에서, 프라하 성 클리어 실패! 란 문구를 달고 밥을 먹으러 다시 내려옴.... 아 비참해! 
이건 도망치는 게 아냐, 작전상 후퇴다, 등등의 헛소리를 지껄일 힘은 남아 있었다. 


우리도 진짜 ㅋㅋㅋ 그냥 내려가서 구시가지에서 먹으면 될 것을, 관광지 밥은 비쌀테니까 여기서 떨어진 곳에서 밥먹자! 라는 생각을 용케도 해냈다. 

과거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바보냐고! 걍 거기서 먹으라고! 마지막 날 인출한 코룬 남아서 쓸데없는 거 잔뜩 샀잖아! 

여튼 과거의 나에게 예지능력은 없었고, 우린 프라하 성 옆의 말로스트란스카 역에서 대여섯 정거장 떨어진 나메스티 미루(미루 광장)역까지 이동했다. 구시가지에서 살짝 벗어났을 뿐인데 이렇게나 사람이 없다. 우와, 여유로워라. 


미루 광장 안에 있던 루드밀라 교회. 
건물이 예쁘길래 찍고 있었는데, 갑자기 뒤에서 배고파 죽겠는데 셔터가 눌러지냐 하는 친구의 눈초리... 아니 살기가 느껴졌다.  

어서 빨리 음식점에 들어가야겠구나 싶어서 근처의 이름도 기억 안나는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필스너 우르켈 2잔. 기억으론 1잔에 35코룬인가 그랬다. 잉, 숙소 근처보다 3코룬 더 비싸네.

메뉴를 제대로 보지도 않고 대충 감으로 음식을 골랐다. 그랬더니 나온


빵 뿌려서 먹는 희한한 맛의 스프 한 그릇과


오묘한 소세지. 

음.... 어쩐지 잘 고른 것 같진 않은데....
그래도 배고프니까 쑥쑥 잘들어가더라. 


밥을 배부르게 먹은 -맛있게는 아니였다- 뒤, 소화도 시킬 겸 미루 공원에서 쉬기도 하고, 다시 구시가지로 돌아와 거리도 거닐기도 하고, 기념품을 고르기도 했다. 정신을 차리니 어느새 다섯시 반. 프라하 성은 다음날 가야겠다고 다짐하고, 시간도 저렇게 됐는데 야경이나 보자는 것으로 의견이 모였다. 


그래서 아까 가기 꺼려했던 까를교로 이동. 
사람이 좀 줄었을까 싶었는데, 으아, 어째 더 많은 것 같다!

이봐들 미루공원 이런데도 좋다고! 거기 보고 오라고!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 한국어로 몇 번 외치다가, 고개를 가로젓곤 까를교를 건너기 시작했다. 


야경은 다음편에... 아 프라하 왜이리 길어ㅠㅠ






덧글

  • 로크네스 2011/09/25 18:06 # 답글

    길을 잘못 들면 참....지치지요.

    샌프란시스코 익스플로러토리엄 갈 때, 친구 둘하고 버스를 탔는데 기사가 "종점이니까 내리세요"라더군요. 익스플로라토리엄이 종점이니까 여기구나! 해서 내렸는데 주변에는 박물관 비슷한 것도 없고. 지나가는 사람한테 물어봤더니....
    "아! 거기 알아요. 고 스트레잇 텐 블럭스?"
    "테, 텐 블럭스?"
    "예스! 텐 블럭스! 굿 럭!"

    .....아니 여기가 종점이라며! 그래서 열 블럭을 걸어갔지 말입니다. 아직도 그 기사의 저의를 알 수가 없음.
  • enat 2011/09/25 18:22 #

    타의에 의해 길을 잃은 경우로군요! 대체 그 기사 아저씨는ㅋㅋㅋㅋ 열 블럭이라니 눈물이 차오르네욬ㅋㅋ 어쩌면 손님들 내보내고 광란의 질주를 즐겼을지도 몰라요.
    그러고보니 예전에 좀 묘한 상황에 처해 기사 아저씨가 사진을 찍어준 일이 있었는데 손가락으로 하반신을 다 가려놓곤 "오, 잘 찍혔다, 좋아!" 라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더랬죠. 여행자들에게 특이한 추억을 만들어주기 위한 기사 분들 나름의 방책 중 하나일지도...
  • 레키 2011/09/26 01:35 # 답글

    - 으아 한밤중에 ㅋㅋㅋㅋㅋㅋㅋ 하면서 읽었네요
    개인적으로 프라하는 좀 기대하는 곳이라 무지무지무지 신경써서 읽는 중...
    앗 그렇지만 부디 여행기쓰는데 부담은 가지지 말아주세요 ㅜ.ㅜ헛헛헛
  • enat 2011/09/26 16:18 #

    프라하는 마음껏 기대하셔도 좋을겁니다! 진짜 낭만과 예술의 도시거든요. 최종보스급이거든요. 벤치나 돌바닥에 앉아서 물 벌컥벌컥 마시는 모습도 완전 후리하고 시크한 여행자로 보이게 하는 마력을 갖고 있거든요!
    여행기를 신경써서 읽어주시는 분이 있다는 게 너무 캄사하네요. 체코 여행기를 빨랑 써서 보여드리고 싶고 음 그렇네요ㅋㅋ
  • DUNE9 2011/09/26 14:06 # 답글

    소세지가 인상적입니다....
  • enat 2011/09/26 16:19 #

    레스토랑에서 튀어나온 저 빈약한 소세지란 ㅠㅠ 여러가지 의미로 기억에 많이 남았던 음식입니다...
  • 소영정 2011/09/27 12:30 # 삭제 답글

    난ㅠㅠ 돼지간의맛이나는 닭요리를먹었지ㅠㅠ 필스너가없었다면ㅠ 다먹지못했을거야아ㅠㅋㅋ
  • enat 2011/09/28 01:38 #

    무슨 순대에 나오는 간도 아니고 ㅋㅋㅋㅋㅋㅋ
    닭으로 이딴 맛도 낼 수 있는가 싶은 맛이였어.
  • 비유와상징 2012/01/28 01:52 # 답글

    프라하의 사람들이 생각난다. 프라하의 개, 프라하의 밤, 프라하 성 그 오묘한 분위기- 근데, 너라면 얀 후스처럼 했을거야?
  • enat 2012/01/28 21:21 #

    아니 못해 그건 얀 후스라서 가능했던 일이야
  • 김그레이 2012/03/08 01:49 # 삭제 답글

    카를교 통해서 올라가도 오르막길이 아주 쩔어줍니다..........
  • enat 2012/03/08 21:48 #

    아 정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전 다음날 갈 땐 트램타고 좀 위쪽에서 하차해서 내려갔쪄요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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