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0/05 03:54

36일 유럽여행 (8) : 체코 소도시 ③ 까를로비 바리 (&프라하) ├ 36일 유럽여행 (2011)

대항해시대4 플레이 중입니다. 

아주 미치겄어요. 하루가 어디로 날아갔는지 모르겠어요.
....아닌가? 하루가 아니라 이틀인가? 이제 사흘짼가?
아직 인도양까지밖에 진출 못했는데... ㅠㅠ

지겨워져서 잠시 껐는데 그 틈에 까를로비 바리 포스팅이나 해봅니다. 
이상하게 포스팅하면 잠이 오더라구요. 여행하면서 이상한 습관을 들여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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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를로비 바리는 체코 프라하의 북쪽에 위치한 도시다. 

유럽 사람들에겐 잘 알려진 관광지이지만, 한국 사람들에겐 아직 덜 알려진 도시인 듯. 


여튼 이 도시에 가기 위해 아침 일찍 프라하 플로렌스 터미널로 갔다.

버스 시간 알아보니까 한시간 뒤. 에엥. 더 가까운 건 없냐니까 좌석이 다 팔렸댄다. 

할 수 없구나 싶어서 일단 그거라도 달라고 했다. 


한시간동안 버스 터미널에 쳐박혀 있어야 하나 고민했지만 그 고민도 잠시 뿐. 

여기는 낭만의 도시 프라하다. 시간이 부족해서 못보는 거지, 볼거리가 부족해서 시간이 남지는 않는 도시. 

남는 시간동안 프라하 여기저기를 또 돌아다녔다. 



프라하 6일째, 6일이면 눈 감고도 화약탑 찾아갈 시간이다. 

플로렌스 터미널에서 15분~20분 정도 걸으면 보이는 화약탑. 



비바람 칠 때 찍은 사진 밖에 없어서 날 좋을 때 한 장 찰칵.

구시가지 입구인 화약탑과 프라하 시민회관이 나란히 서있다. 



구시청사 찍고, 골목 이곳저곳을 누비니 한시간은 후딱 지나갔다. 

다시 플로렌스 터미널로 돌아가 카를로비 바리 가는 스튜던트 에이전시 버스를 탔다. 



버스 타고 와이파이 켜서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연락하고 이것저것 검색해보며 즐거워한 것도 잠시.

작은 화면 보는게 눈도 아프고 지루해져서 이어폰 꽂고 차창 밖을 내다보기 시작했다.

한창 소라누님 노래에 심취해 있을 때여서 7집 9번 트랙 무한 반복.


그래서 버스 안에서 봤던 초원들 사진만 보면 트랙9가 머릿속에서 자동재생&무한반복 된다. 이런 파블로프...




그렇게 멍 때리며 버스를 타고 두시간 반을 달려 까를로비 바리에 도착했다.  


도착하면 대충 이런 느낌. 

나는 빨간색 방향으로 진행했다. 

저렇게 가다 보면 마을을 관통하는 강(이라기엔 뭣하고 냇가? 수로?)과 다리가 보이는데, 마을 감상은 대충 강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할 수 있다. 



마을 중간중간에 보이는 희한한 건축물. 

뭔데 이리 고풍스러워?



저런 건축물 내부에선 온천수가 솟아나온다. 

정확히는 온천수가 솟아나오는 곳에 건축물을 설치한 거겠지만. 



그리고 저 솟아나오는 물이, 지금의 까를로비 바리를 있게 한 기특한 녀석이다. 

바로 마시는 온천수.

단어 그대로 그냥 온천순데, 마시는 용도로 쓰이는 거다.



강 주변에선 마시는 온천수 전용 컵을 판다. 


손으로 받아 마시면 될 것을, 왜 저런 걸 사? 장사꾼 상술이야, 상술. 흥흥!



...라고 생각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고, 눈에 띄자마자 닥치고 샀다. 

여행지까지 가서 쿨시크한 척 냉철한 척 하면 돌아와서 후회할 것 같아, 애초부터 헬렐레한 상태기도 했다.


까를로비 바리에서 열심히 퍼마시고 지금은 내 방 책꽂이를 장식하고 있는 컵. 



컵을 사서 이번엔 또다른 온천수 샘으로 가봤다. 

60도. 뜨뜨미지근하겠다.



컵에 졸졸졸 담아서 손잡이 부분에 있는 구멍에 입을 대고 빨대처럼 쪽쪽쪽 빨아마시면 된다. 

맛은...


건강한 맛이었다...

철분 가득한 맛.....

빨간색 색소를 타서 마시면 드라큘라 연출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음... 아마도 온천수가 나온다니까 건강 챙기는 부자들이 잔뜩 놀러와 돈 쓰고, 그걸로 돈을 벌어서 카지노 세우고, 

그렇게 부를 축적해 상업시설과 편의시설을 세워 관광지화 된 듯 싶다. 까를로비 바리의 역사를 잘 모르겠으니 추측만 해본다.



또 여기 희한한 건물이. 

무슨 이집트 신전 같은 느낌이다.



기둥 옆이나 벽 모서리 근처, 내부 이곳저곳에 온천샘이 자리잡고 있다.



지나가면서 다들 한번씩 맛보거나 손대보거나 한다. 

저 아저씨는 손을 대봤다가 생각보다 뜨거웠는지 얼른 손을 떼고 눈을 끔뻑거렸다.



여행오기 전, 까를로비 바리라는 마을과 마시는 온천수 이야기를 들었을 땐, 

그냥 그 온천수 하나로 벌어먹고 사는 작은 마을일 줄 알았다. 


하지만 먼 동방의 학생 하나가 알아보고 찾아올 정도의 명소라면... 작은 마을일 리 없지. 

마을이라고 부르는 것도 좀 민망하다. 여긴 도시야 도시...



무슨무슨 교회. 콘서트가 열리는 듯 하다. 

교회 앞 광장에서 어떤 아저씨가 수줍어하며 콘서트 종이를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있는데 다들 본 척도 안하고 지나쳐갔다. 

불쌍해서 한 장 받아줬더니 뒷통수에다 대고 한다는 소리가 


"땡큐 제패니즈! 아리가또!"


....이 양반이. 

그냥 지나쳐도 될 걸 괜히 울컥해서 다시 가서 알려주고 왔다.


"나 일본인 아니야. 나 한국인이야."

"오, 쏘리 쏘리. 한국인 착해. 한국인 진짜 착해. 땡큐!"


아, 코리안, 이 자랑스러운 단어란! 외국 나가면 다들 애국자 된다는 말이 맞나보다.



카를로비 바리 명물 과자. 

맛은 얇은 웨하스 같았다. 한 박스에 다섯개씩 들어있길래 두 박스 샀다. 

기념품으로 산건데 여행 도중에 기차 이동하면서 까먹고 길거리에 주저앉아서 까먹느라 다 사라졌다.



어떤 현대적인 건물 안에 있던, 간헐적으로 솟아오르는 온천수. 

자연적으로 솟아오르는 건가? 왜 이렇게 건물로 막아놓은 거지? 밖에서 나오는 온천샘이랑 다른 점은 뭐지? 


아아, 이럴 땐 가이드가 절실하다. 



까를로비 바리의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기념품도 이것저것 샀다. 

프라하보다 더 더워서 몸은 온통 땀범벅. 하필 옷도 반팔이나 나시가 아니라 칠부 남방.

프라하보다 북쪽이니까 좀 더 시원하지 않을까 이딴 생각을 했던 과거의 나를 원망했다.


더위에 지쳐서 아무 곳에나 들어가 필스너 우르켈 한 잔을 마셨다.



그렇게 필스너 우르켈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식욕으로 표현할 때 즈음, 느닷없이 같이 마시던 친구의 맥주잔에 벌이 날아와 퐁 빠졌다. 

너무 갑작스럽고 황당해서 깔깔깔 웃다가, 다 마시지도 못했는데 이게 왠 변괴냐며 오열하는 친구가 불쌍해서 잔을 바꿔줬다. 


그런데 이번엔 내가 바꿔준 그 잔에 다른 벌이 날아와 퐁 잠수. 


뭐야!!!!!!! 애주곤충이란 건 처음 본다!!!!!!!

너도 그렇게 필스너 우르켈이 좋더냐! 사람 마시던 잔에 왜 자꾸 풍덩풍덩 멱감기야 멱감기는!


허우적거리는 걸 멍하니 바라보다가, 그냥 내버려두면 빠져죽을 것 같아서 볼펜으로 꺼내서 날려줬다. 비틀거리며 제 갈길 가더라. 

벌도 취하나...


어쨌든 여기는 정말, 벌이 무슨 파리 수준으로 많다. 

사람들도 벌은 신경도 안쓰고, 바로 얼굴 앞에서 날아다녀야 그제서야 파리 보듯 쫓아내고. 

여기 사람들이 우리나라 오면 벌 보고 기겁하는 사람들을 신기하게 쳐다볼 것 같은데. 흠.



맥주 덕분에 행복해진 기분으로 프라하에 돌아가기 위해 버스 정류장에 갔다. 

정류장 근처 담배가게 아주머니께 물어보니까, 돌아가는 버스는 아까 아침에 도착했을 때 내린 곳에선 탈 수 없고, 거기서 15~20분 정도 걸어서 나오는 터미널까지 가야 탈 수 있댄다. 뭐 그 정도야 걸어줄 수 있지 싶어서 터미널까지 걸어갔다. 

버스 터미널은 까를로비 바리 기차역과 붙어있었다. 

스튜던트 에이전시 티켓 판매소에 가서, "프라하로 가는 버스로, 좌석 두 개 주세요!" 이랬더니.


"좌석 다 팔렸습니다. 오늘 프라하로 가는 거 없어요."


아.....


뭐라고!!!!!!!!!!!!!!!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프라하 가야 되는데!! 프라하 못가나요!?"

"제 옆 창구가 인포메이션 창구입니다. 기차가 있을 거에요. 거기서 물어보세요."


인포메이션 가서 물어봤더니 2시간 뒤에 프라하 가는 기차가 있댄다. 다행이다. 기차역이랑 터미널이랑 붙어있으니까 2시간 정도 노닥거리면 되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기차는 여기서 걸어서 30분 떨어진 곳에서 타야해요."



아이.....


왜!!!!!!!!!!!!!!!!!!!!


암만 봐도 여기가 중앙역인데 왜 다른 곳에서 타야 하는 것인가, 교통 시스템이 왜 이따구인가, 이 빌어먹을 체코 철도청, 거기다가 가격은 버스의 두 배를 받냐, 따위의 불평불만을 마음속에만 담아두고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인포메이션 언니가 가르쳐 준 길로 가면 갈수록 으슥하고 외진 산길이 나온다....


뭘까? 체코의 신종 범죄인가? 

인포메이션 안내원으로 가장한 뒤 어리고 힘없는 여행자를 외진 곳으로 유인해서 무슨 짓을 저지르려는 건가? 

언덕진 산길을 따라 걸으며 마음속 의구심이 눈덩이처럼 커져 데굴데굴 굴러갈 때 즈음에, 드디어 역이 나왔다.



외진 산길에 있던 카를로비 바리역. 

우리나라의 폐쇄된 간이역을 보는 듯 했다. 



으와, 건물 외관 참. 


오늘 하루종일 먹은 건 아침빵이랑 알량한 명물과자랑 맥주 뿐이고, 배는 고파 죽겠고, 주변은 온통 산길이고, 기차역 앞 담배가게조차도 문을 닫았고, 아주 미치는 줄 알았다. 

침착하자, 소수를 세자, 쿨해져라 따위를 중얼거리며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육교 너머 역 뒤로 빌라들이 가득해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사니까 슈퍼 하나는 있을 것이다, 그런데 관광지 아닌 보통 상점들은 초저녁에 문닫으니까 빨리 가봐야 된다, 라는 합리적인 생각을 마친 뒤, "배고프니까 서둘러서 육교로 가자" 라는 중간단계 다 빼먹은 말로 친구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다행스럽게도 예상은 적중! 막 문 닫으려던 편의점에 비집고 들어가 아무거나 닥치는대로 골라 샀다. 

다시 까를로비 바리 역으로 돌아와 구입한 음식물들을 뱃속에 쑤셔넣었다.


1시간 정도 더 기다리자 열차가 도착했다. 

친구는 유럽 와서 처음 타보는 열차라며 신나했지만, 나는 여행을 준비하며 체코 열차의 극악함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즐거워하는 친구를 말없이 바라보며 열차가 들어올수록 어떻게 표정이 변하는지 관찰했다.



느리고, 지저분하고, 냄새나는 체코 지역 열차. 

귀에 이어폰을 꽂고 소라누님의 노래를 들으며 정좌한 채로 마음을 다스렸다. 



그런데 정말.... 가격도 배로 받았으니, 시간도 배로 걸리는구나!

버스로는 2시간 반 걸린 거리가, 기차로는 3시간 반이 걸렸다. 

밤 11시가 되서야 우두둑거리는 관절을 여기저기 돌려대며 프라하 중앙역에 내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간, 그 장소에서, 

지하철을 타려고 중앙역 건물 안으로 들어간 그 순간, 

뜻하지 않은 인물과 마주쳤다. 

전날 플젠에서 만났던 일본인, 가명 원피스남! 



놀랍기도 하고 반갑기도 해서 대뜸 악수부터 나눴다. 너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냐니까 빈 가는 야간 열차 기다린댄다. 

이야, 너 만나려고 4시간 고생했나 보구나, 라는 한마디를 끝으로 4시간 고생한 건 새까맣게 잊고 대화를 나눴다. 

그러다가 기분이다 싶어서 까를로비 바리에서 산 명물과자 한 박스를 선물했다. 나는 배포 큰 한국인이니까!



밤이 늦어서 아쉽게 작별인사를 나눈 뒤,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로 돌아가는 동안, 아니 숙소에 들어가서 씻을 준비하는 동안까지도, 세상 참 좁구나, 진짜 신기하다, 어떻게 거기서 딱! 따위의 말을 친구와 나누며 즐거워했다. 까를로비 바리에서 프라하까지 고생하며 도착한 것도 이미 추억거리가 되어 있었다. 



그런 예상치 못한 고생들과 우연한 만남들 때문에 배낭관광이라 하지 않고 배낭여행이라 하나보다. 

여튼 덕분에 까를로비 바리에 다녀온 이 하루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머릿속 책장에 딱 꽂혀 있다. 

누군가가 '배낭여행 다녀온 이야기 좀 해봐!' 할 때 바로 나올 수 있는 준비된 레퍼토리로. 


앞으로 질리게 이야기 할 텐데, 질리기 전에 한 번 써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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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나르사스 2011/10/05 07:05 # 답글

    가이드 없이 저런 곳을 가셨군요. 저는 가이드는 커녕 가이드북없이 체코에 가는 무모함을 저질러서 저런 곳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 enat 2011/10/06 00:11 #

    대체 체코에서 무슨 일을 당하신 겁니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번부터 절 감질맛나게 만드시는군요.
  • 소영정 2011/10/05 14:52 # 삭제 답글

    아.. 갑자기 ㅠ 그때 그 고생이 생각난다ㅠ 나막 굶어가지고ㅠ 배고파서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그래도 체고에서가 행복했지ㅠ ㅋㅋㅋ
  • enat 2011/10/06 00:12 #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힘들었었지...
    일기장 기억하고 있음.
    "애가 갑자기 눈이 변했다, 너무 무서웠다"
  • 로크네스 2011/10/05 17:53 # 답글

    아, 저 온천수 나오는 마을은 TV에서 한 번 본 것 같네요. 컵이 예뻐보여서 기억에 남았죠.
  • enat 2011/10/06 00:13 #

    오 TV에도 나왔었나요?
    하긴, 휴양지 치곤 재밌는 아이템이여서 사람들이 많이 가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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