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0/06 02:47

36일 유럽여행 (9) : 마지막 프라하, 그리고 야간열차 ├ 36일 유럽여행 (2011)

프라하에서의 마지막 아침이 밝았다. 프라하에 온지 7일째, 드디어 저녁에 기차를 타고 체코를 벗어나게 된다.
원래 이 날엔 체코의 또다른 도시 코투나 호라에 다녀오려고 했지만, 남은 하루를 처음 보는 도시에서 헤매며 보내는 것 보단, 프라하에서 즐기며 보내는 게 낫지 싶었다. 친구도 같은 생각이여서 계획을 수정한 후, 하루 종일 프라하 구시가지를 마음껏 돌아다녔다.


아침에 최대한 밍그적거리며 일어나 호스텔 체크아웃을 한 뒤, 캐리어를 끌고 프라하 중앙역으로 갔다. 중앙역의 짐 맡기는 보관소에 캐리어를 떨궈 놓은 뒤, 유레일 패스도 개시하고, 가벼워진 몸과 마음으로 버거킹에서 아점을 해결한 후에 밖으로 나갔다. 


중앙역에서 구시가지로 방향을 잡고 걸어가자 무하 박물관이 나왔다. 
아아 무하, 무하 그림 너무 좋다. 



아르누보 회화의 거장 알폰스 무하.
저 나풀대는 옷자락과 하늘거리는 머리카락, 얼굴 주변을 장식하는 문양, 우아한 시선처리와 다음 동작이 기대되는 손짓까지 너무 아름다웠다. 

에라 모르겠다, 어차피 코룬 쓰는 것도 마지막 날인데 다 써버리자 싶어서, 여기서 꽤 많이 질렀다...



구시가지 골목 사이사이에 숨겨져 있는 스타보브스케 극장.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돈조반니를 초연한 곳으로 유명하다. 
한 번 정도는 이런 극장 들어가서 음악 감상 하고 싶었는데... 결국 못했네.



구시가 광장으로 나가 음식 구경. 
저런 거대한 철판에서 뭔가를 볶아서 판다. 신기하네.
뒤로는 구시청사 건물이 보인다. 



냄새의 유혹을 참지 못하고 사먹는 관광객들. 
뒤로는 성 니콜라스 성당이 보인다. 



그 옆에는 계속해서 음식 손질하는 아저씨가 있었다. 
뒤로 보이는 틴 성당... 

아아아아아아아, 이 때의 이 곳의 이 광경을 어떻게 잊을까!
젠장, 사진 보다가 프라하 다시 가고 싶어서 데굴데굴 거리는 중이다!

여튼 한동안 구시가 광장을 돌아다니고, 아무 음식점에나 들어가서 맥주 한 잔 마시고, 길거리 벤치의 자리가 꽉 차있어서 성 미쿨라셰 성당에 들어가 앉았다가 나오고, 더워서 헥헥 거리다가 밀크 쉐이크 팔길래 하나 빨고, 인형가게 들어가서 목각인형 구경도 하고, 골목골목에 숨겨져 있는 분수에 앉아 흥얼거리고... 프라하에서의 한나절은 빠르게 지나갔다. 너무 아쉬운데.



그리고 저녁이 왔다. 
다음 목적지인 암스테르담까지 가는 야간열차를 타기 위해 다시 프라하 중앙역으로 돌아왔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프라하 너도 안녕이구나, 또 볼 수 있으면 보자, 필스너 우르켈은 최고였다, 안녕 프라하.... 이딴 인사를 할 마음의 여유조차 없었다. 왜냐면 그 야간열차가...

그 야간열차라는 녀석이.... 정말.... 생각했던 것보다.... 심하게..... 열악했기 때문이다....


한사람 간신히 지나갈 수 있는 복도. 잘못해서 거대한 캐리어 가진 두 사람이 맞닥뜨리기라도 하면 굉장히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우리가 예약한 것은 6인실 쿠셋. 
어떤 잠자리든 간에 내 집 내 방 같지야 않겠지만... 당연한 거지만...
우리 자리는 슬프게도 3층이였고(정말 간절히 1층을 원했거늘), 정말 좁았다. 
앉으면 머리 부딪히고, 창문을 열어도 바람이 안오고, 에어컨은 약해서 덥고.... 으아악 짜증나!

하지만 기왕 유럽까지 온 거 이런 사소한 환경의 차이 때문에 짜증을 내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곧장 쿠셋 아래로 내려가 열차 이곳저곳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세면대도 가보고 화장실도 가보고 다른 칸도 가보고... 결국엔 우리 칸 앞으로 돌아와 복도 창문을 열고 기대서서 바람을 쐬며 이어폰 꽂고 노래를 들었다. 소라이 언니의 노래가 나를 진정시켰다. 음 캄다운, 캄다운.


그러나 그런 마음의 수양도 무색하게, 우리 칸으로 돌아가자마자 지독한 짜증이 치밀어올랐다.

같은 방을 쓰는 백발의 아저씨와 흑형의 발냄새가 너무 심한 것이다아아아아아!!!!!!!!

서양인들에게서 나는 노린내까진 어찌어찌 넘길 수 있다, 나도 그 정도쯤의 자제력은 있다, 그런데 이 발냄새는! 저 발냄새가! 그 발냄새 자식이! 장난이 아닌 것이다! 농담 아니고 진짜 무기 수준이다, 무기 수준! 생화학 병기라는 단어가 머리 속에 떠올랐다. 겨우 발냄새 가지고 오버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지는 몰라도, 나는 정말 생존을 위해 자는 내내 자세를 바꿨다. 머리를 이쪽으로 둬보고, 저쪽으로 둬보고, 수건을 덮어보고, 부채질을 해보고.... 그 모든 것은 조금이라도 냄새를 맡지 않기 위해! 

아니 원래 후각은 적응이 제일 빨리 되는 감각 아닌가? 제발 이 발냄새에 익숙해져서 좀 편하게 잤으면 좋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익숙해져, 하나가 되어도 좋아, 저 냄새에 익숙해지라고! 하지만 내 후각신경들은 처음 맞닥들이게 된 이 미지의 분자에 쉽게 자신을 허락하지 않았고, 덕분에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선잠이 들락말락 하던 새벽 6시, 갑자기 승무원들이 탑승자들을 깨우기 시작했다. 
이 시간에 뭔일인가 눈비비고 있는데 짐 끌고 밖으로 나오랜다. 뭐야, 이 양반들이!
불편한 자세로 밤을 거의 지새우다시피 해서 몸은 삐그덕 거렸고, 정신은 몽롱한 상태였다.

그런데 눈 앞에 들어오는 기차역의 이름을 본 순간 번쩍하고 정신이 들었다. 

베...베를린?


우리 열차가 암스테르담에 도착하는 시간은 아침 10시 쯤. 지금이 새벽 6시니까 못해도 쾰른 까지는, 아니 적어도 프랑크푸르트까지는 가있어야 한다. 그런데 베를린이라니!? 독일 동부 지역이잖아! 체코랑 조낸 가까운 지역이잖아! 이보시오 승무원 양반, 베를린이라니, 내가 베를린에 있다니!!!!?????

그 승무원은 잠에서 덜 깬 승객들을 바라보며 피곤한 눈으로 입을 열기 시작했다.

이 열차 밤중에 고장났다, 우리도 노력해서 간신히 베를린까지 왔다, 이제 이 열차 타고 못간다, 다른 열차 타야 한다, 지금 저기 저 플랫폼에서 대기하고 있는 열차 있지? 응, 저기 인터시티, 저거 타면 된다, 좌석은 대충 골라 앉아라.



......이보시오 승무원 양반!!!!!!!!!!!!!!!!!!!!!!

내가 야간열차를 한국에서 예약해온 이유는 아침 일찍 암스테르담에 도착하기 위해서라지! 내가 밤새도록 발냄새의 공격에도 굴하지 않고 잠을 청했던 이유는 아침 일찍 암스테르담에 도착하기 위해서라지!!!!! 그런데 새벽에 대뜸 베를린에서 암스테르담 가는 열차 타라니, 그럴꺼면 전날 프라하에서 일반 열차 타고 왔겠다 이녀석아!!!!!!

분노가 치밀었지만 그 승무원은 그 설명을 끝으로 야간열차를 출발시켜 사라졌다. 멍 때리는 승객들 가운데 행동이 빠른 사람들이 암스테르담 행 인터시티를 타려고 플랫폼을 이동했고, 다른 승객들 역시 고개를 가로 젓더니 플랫폼을 이동했다. 나 역시 후자쪽. 아아, 어쩌겠나요, 이런 예상치 못한 변수가 끼어드는 게 여행이고 모험인 걸... 에라이 젠장.


다음 포스팅 암스테르담에서 계속.






덧글

  • 소영정 2011/10/11 22:44 # 삭제 답글

    정말 눈물이났지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 enat 2011/10/12 13:44 #

    야 이생퀴들아!!!!! 하던 여자를 잊을 수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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