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1/20 17:25

36일 유럽여행 (26) : 스위스 루체른 시내 ├ 36일 유럽여행 (2011)


드디어 스위스! 

스위스는 정말 아름다운 나라다. 여태까지 봐왔던 어떤 건축물도 스위스 천혜의 자연보다 나은 것은 없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하지만 그런 극찬은 스위스를 어느정도 구경다닌 다음의 이야기. 첫인상에 대해 말해볼까. 

하이디가 양떼와 함께 뛰놀고 가족들끼리 초원에서 하하호호 피크닉을 나오는 모습을 상상했던 우리에게 스위스의 첫인상은... 


'소음'이었다. 

우리가 탔던 루체른 가는 열차에 스위스 초딩들이 단체로 탑승했는데, 오 정말 그 소음이란... 고국에 대한 그리움보다도 독일의 고요했던 열차 분위기에 대한 그리움을 한없이 커지게 만들었다. 자기 학생들이 열차가 달리는 소음보다 더 큰 소음을 만들어내고 있는데 교사는 대체 뭘 하고 있는거야! 하며 차량을 둘러봤더니, 애들은 내팽겨둔채 교사들도 끼리끼리 모여서 학생들 못지 않은 목소리로 수다를 떨고 있었다.... 

수학여행 갈 때면 우리를 포기하지 않고 정숙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한국의 교사들이여... 당신들은 진정 위대합니다...


이런 열차 내 소음은 비단 이 날만 그런게 아니였다. 몽트뢰에선 어떤 개념 말아먹은 여자의 수다 때문에 괴로웠고, 생 모리츠에선 역시 단체 초딩들의 비명소리 때문에 고통스러웠다. 이게 얼마나 심했냐면, 여행 도중 어떤 괴사건이 벌어져도 싸우지 않고 화내질 않던 친구와 내가 신경이 극도로 날카로워지는 바람에 서로에게 짜증을 내기 시작할 정도였다.

뭐 그 때 일은 나중에 얘기하도록 하고, 여튼 스위스 초딩들 때문에 스위스에 대한 온갖 정나미가 다 떨어진채로 루체른에 도착했다.




루체른은 스위스의 정중앙에 위치한 도시로, 루체른 주의 루체른 호 옆에서 발달한 도시이다. 호수 연안에 발달한 마을들을 유람선이 이으며, 각종 등산 열차와 케이블카가 그 마을들과 산을 잇는다. 루체른 근처에는 리기산, 필라투스산, 티틀리스산 등 유명한 스위스 중앙부의 산들이 솟아있다. 

소개만 들어도 가슴 뛰는 도시에 기껏 소음의 역경을 딛고 도착했더니 또 비가 내린다. 이... 건방진 스위스 날씨....





루체른에서 그나마 저렴한 백팩커스에서 머물기로 했는데, 루체른 백팩커스는 중앙역에서 생각보다 멀다.
특히 비오는 날씨에 캐리어를 끌고 오르락 내리락 하는 길을 걸어야 할 때면 더욱 더 멀게 느껴진다... 이... 건방진 스위스 도로...

쫄딱 젖은 채로 2,30분 정도 낑낑대며 걸어서 백팩커스에 도착했다. 
힘들어 죽겠으니까 빨리 방 달라고 부탁했는데 지금 바쁜 일이 있으니까 잠시만 기다리랜다. 잠자코 기다렸다. 
진이 빠진채로 15분 정도 기다렸더니 와서 한다는 말이 체크인은 4시부터 란다. 그러니까 4시에 와서 체크인 하랜다. 
....................뭐!!!!! 체크인 시간이 뭐 그 따위로 늦어!!!!! 이 건방진 스위스 백패커스!!!!

젠장, 그래, 그게 백팩커스 방침인가 보지. 따라줘야지 어쩌겠어.
적당히 납득한 채 짐을 맡기고 비는 언제쯤 멈출까 생각하며 로비 의자에 앉아 늘어졌다. 몇 분 가만히 있다보니 배고프다. 오면서 둘러봤지만 이 근처엔 음식점도 편의점도 없다. 음식을 먹으려면 다시 중앙역까지 나가야한다. 나가고 싶은데 빗줄기는 더욱 더 굵어진다. 나는 힘들고 지쳤는데 상황은 무엇하나 도와주질 않는다. 뭔가가 상당히 불합리하고 불공평하다. 이.... 이.... 스위스란 국가 자체가 건방져!!!!


내 인생에서 건방지다는 말을 가장 많이 사용한 날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음식물이 들어가지 않아 머리가 굳는 바람에 우연히 떠올린 '건방지다'란 단어만 반복해서 중얼거렸던 것 같다. 





비가 어느정도 그친 뒤, 중앙역 쿱 마켓에 가서 빵으로 대충 끼니를 때우고 나서야 루체른을 둘러볼 수 있었다.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바로 여기, 중앙역 바로 앞에 놓인 카펠교. 카펠교는 루체른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다리이다.





카펠교는 14세기에 세워진 목조 다리로, 600년간을 루체른 시민들과 함께 해 온 유서깊은 건축물이다. 

다리 중간에 있는 팔각형의 건축물은 Wasserturm, 수탑이라고 하는데, 보관창고나 감옥으로 쓰였다고 한다.






카펠교는 1993년도에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 때문에 다리의 반이 소실되었다. 오랜 역사를 함께 해오다가 방화범의 치기로 한순간에 재가 되어버린 이야기를 듣고 보니, 자연스럽게 우리나리의 남대문이 떠올랐다. 남대문도 비슷하게 불타버렸는데...

물론 지금의 카펠교는 정부의 아낌없는 지원과 시민들의 성금으로 무사히 복원을 마친 상태다. 재밌는 게 있다면 화재로 손상된 부분을 완벽하게 복원한 것이 아니라 그 흔적을 남겨뒀다는 점. 화재 역시 카펠교의 역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란다. 





다리의 들보에는 루체른의 역사가 담긴 판화가 걸려있다. 

화재 때문에 소실된 부분엔 탄 그림이 걸려있거나 비워져 있다. 





카펠교를 건너, 구시가지 측으로 들어섰다. 

다리 건너 큰 길가에는 Bachmann이라는 초콜릿 전문점이 있는데, 마침 무료 쿠폰이 있어서 초콜릿을 받아가기로 했다. 

무료 쿠폰&할인 쿠폰이 가득한 이 책자는 중앙역 옆에 붙어있는 루체른 관광 안내소에서 받을 수 있다. 루체른에 간다면 꼭 챙기시길! 





쿠폰을 줬더니 카펠교 사진이 박혀있는 초콜릿을 받았다! ^0^

공짜는 언제나 즐겁다.





루체른 구시가지를 돌아다니다가 발견한 괴테 벽화. 

볼프강 폰 괴테가 1779년 여기에 있었다? 머물렀다? 묵었다? 라는 뜻인가? 

여튼 이런 식으로 유럽 전역에 걸쳐 괴테에 관한 벽화를 보거나 기념비를 발견하거나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 그 때마다 프랑크푸르트 사람들이 왜 그렇게 괴테를 자랑스러워 했는지 충분히 이해가 갔다. 유럽에서의 괴테의 영향력은 정말 컸다...





호수변에 있는 호프 교회

유럽에서 성당을 하도 많이 봐서 이젠 아름다운 성당을 봐도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게 된다. 장기 여행은 낯선 것에 대해 무뎌지는 점이 좋지 않은 것 같아...





슈프로이어 교. 카펠교와 함께 오랜 역사를 간직한 목조 다리이다. 

15세기에 지어졌으며, 길이는 카펠교에 비해 짧다. 





무제크 성벽. 루체른 시내 북쪽을 둘러싸고 있는 성벽이다. 

위로 올라가보고 싶었는데, 한창 보수공사 중이여서 올라가진 못했다. 





빈사의 사자상

중세부터 르네상스 시기까지, 가난했던 스위스인들은 다른 나라로 가서 용병으로 고용되곤 했는데, 특히 프랑스의 전력으로 많이 고용되었다. 빈사의 사자상은 그런 스위스 용병들을 위해 세워진 상이다. 프랑스 혁명 당시, 프랑스 근위병들이 모두 전사하거나 도망간 후에도,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우다 전멸한 786명의 스위스 용병들을 기리고 있다.

이런 스위스 용병의 용맹함과 충성심 때문인지, 현재 교황청이 있는 바티칸 근위병은 스위스 용병들만 뽑고 있다고 한다.





사자가 죽어가면서도 발에서 떼지 못하고 있는 방패에는 부르봉 왕가를 나타내는 흰 백합이 새겨져 있다. 

왕가를 끝까지 사수하려 했던 스위스 용병들을 나타낸 모습이다. 





마크 트웨인은 이 사자상을 보고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가슴 아픈 조각" 이라고 묘사했다. 그만큼의 애수와 비통함과 필사적인 모습이 이 조각에 담겨져 있었다. 

타국에 고용된 몸으로 신의를 지키기 위해 죽어간 젊은이들. 비극적이지만 너무 아름답고 빛나보여서 한동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빙하공원에서 계속




덧글

  • 검마르 2011/11/20 17:52 # 답글

    음.스위스용병 감동적이죠
  • enat 2011/11/21 19:09 #

    순진해보일 정도로 끝까지 신의를 지키는 모습이 굉장히 아름다워 보였어요 +_+
  • 키르난 2011/11/22 11:21 # 답글

    최근에 다른 경로로 빈사의 사자상 이야기를 들을 일이 있었지요. 실제 마리 앙투아네트의 딸네미도 프랑스 군 + 스위스 용병 이야기를 회고한 적이 있다는 모양입니다. 그러니까, 자기들(부모님이랑 동생)을 끝까지 지켜준 스위스 용병들이 대단했다고 말입니다. 뭐.. 용병들은 신의(신뢰) = 후대의 밥줄(...)을 위해서 그렇게 싸울 수 밖에 없었겠지만 말입니다.;ㅅ;
    아.. 여행기 다시 몰아서 보고 있는데 통장 잔고를 흘끔흘끔 바라보게되는군요.;;;
  • enat 2011/11/22 12:49 #

    하긴 그런 사건이 있었으니 그 이후로 스위스 용병은 "충성을 맹세한 자는 끝까지 배신하지 않는다!" 라는 프레이즈를 내걸고 유럽 전역에 이름을 떨쳤을 것 같아요. 조국의 미래를 위한 담보물이 청년들의 목숨이라니... 쩝. 슬퍼지기도 하고, 한편으론 빛나보이기도 하고 그렇네요.
    여행ㅠㅠ 아 저도 통장 잔고가 넉넉하면 지금이라도 여행을 떠날텐데 말이에요ㅠㅠ
    어디서 잭팟 터트려서 평생 여행만 다니며 살 수는 없나, 그런 궁리만 하고 있는 요새입니다.
  • 요엘 2011/11/22 11:46 # 답글

    쪼..쪼꼬렛 흐아어헝허엉하엏엏앟앟 햫
    스위스 쪼꼬렛 !! 기브미 쪼꼬렛!!! (이봐-_-)

    사자가 너무 슬퍼요... 이런 사자는 싫어..
  • enat 2011/11/22 12:52 #

    스위스 초콜렛 맛있더군요. 근데 기념품으로 사온 스위스 초콜렛은 다 누구 나눠줘서 제가 먹은 스위스 초콜렛은 공짜로 받은 저게 마지막이라는 슬픈 이야기... 어흐흑....

    빈사의 사자상의 사자는 화살이 박힌채로 방패를 끌어안고 있는 모습이 눈물겹더라구요.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것처럼 보이는 조각이였어요... ;ㅅ;
  • 엘에스디 2011/11/29 22:27 # 답글

    사자 표정이 너무 애처롭습니다ㅠㅠㅠㅠㅠ 정말 너무 힘들어하는 표정..어흥후느ㅠㅠㅠㅠㅠ
    다리에 꽃이 많아서 그런지 원래 그런지 거리라던가 건물이 굉장히 아기자기? 알록달록한 것이 참 예쁘네요><//
    문득 생각난 건데, 오랫동안 그 많은 곳들 다니시면서 하나하나 모두 잘 기억하시고 기록 남기시는 게 신기합니다. ^^
  • enat 2011/11/30 15:56 #

    거리까지 시끄럽다가 빈사의 사자상이 있는 공원으로 들어오면 탁 하고 분위기가 조용해지더라구요. 역시 애처로운 사자의 표정 때문인가봐요 ㅠㅠ
    유럽은 건물에 유난히 꽃이 많더군요. 목조 건물과 굉장히 잘 어울리죠!

    제 기억력은 좋지 않답니다. 기억한다기 보다는.... 여행 중에 매일 일기를 쓰거든요! 포스팅 할 때면 일기장을 뒤적여서 이런 저런 정보를 확인한답니다. 일기장에 팜플랫이랑 표도 다 붙여놔서 정보 쓰기에도 편리하죠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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