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12 22:20

36일 유럽여행 (31) : 하이디의 마을 마이엔펠트 ├ 36일 유럽여행 (2011)

루체른에서 다음날 가게 될 생모리츠로 짐을 보내고(*), 몸도 마음도 가볍게 마이엔펠트로 향했다. 

(*) 라이제게 팩 : 스위스 국내 역에서 다른 국내 역 까지 짐을 전해주는 서비스. 목적지까지의 기차표나 유레일 패스 등이 있어야 한다. 짐 하나당 10프랑, 차표가 없을 경우 40프랑이다. 루체른 중앙역 지하에 있는 서비스 센터로 가서 신청을 했는데, 이틀 전에 부쳐야 10프랑이랜다 ㅡㅡ.... 그래서 다음날 도착하는 급행표로 20프랑 냈다. 



루체른에서 마이엔펠트에 가려면 두 번 갈아타야 한다. 

Luzern - Thalwil - Bad Ragaz - Maienfeld

(참고로 Bad Ragaz역에 있는 칸 하나짜리 화장실은 무료임!!) 



2시간 10분 정도 걸려 마이엔펠트에 도착했다. 

역에서 나와 마을 쪽으로 접어드니 알프스 소녀 하이디가 우리를 반겨준다. 





앞의 그림 표지판을 끝으로, 마을엔 아무것도 없었다. 정말 조용한 마을이었다. 

어떻게 할까... 하다가 앞으로 계속 진행하기로 했다. 

도착해서야 알게된 건데, 하이디 마을은 앞에 보이는 산 중턱에서부터 시작이다. 





마을 한복판에 펼쳐진 풀밭 아래에서 풀을 뜯는 소. 

이야... 이거 진짜... 하이디다 하이디. 풍경만으로도 하이디 소리가 나오게 만드는 마이엔펠트. 





소와 드넓은 풀밭 등 계속해서 펼쳐지는 목가적인 풍경에 어벙벙한 상태로 걷다보니, 드디어 하이디에 대한 단서가 하나 나왔다. 

저 붉은 표지판은 하이디 마을로 가는 길을 알려주는 표지판이었는데, 길이 두 갈래로 갈라질 때마다 등장했다. 

이번엔 양쪽 다 맞는 길인데... 어딜 갈까 고민하다가 우리 앞에 가던 사람들이 오른쪽을 선택하길래 우리는 왼쪽을 선택했다. 





길을 따라가다보니 작은 광장이 나온다. 

날씨 좋은 날이면 빵 바구니 하나 들고 분수 앞에서 친구와 수다 떠는 모습이 절로 그려진다. 





마차와 자동차가 동시에 지나가는 모습은 신기한 느낌을 갖게 했다. 중세와 현대가 뒤섞인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마차 안에 탄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우리에게 손을 흔들길래 나도 사진찍다 말고 열렬히 손을 흔들어줬다. 





표지판을 따라가다보니 으슥한 길이 나온다. 이 길이 맞는 길인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길 도중도중엔 회사원, 학생 등의 거대 목각 인형이 놓여져 있어서 눈이 즐거웠다. 

그러고보니 마을 근방에 목재 공장이 있었는데, 거기에서 광고용으로 세워놓은 건가? 






골목길을 빠져나오니 이번엔 포도밭이 드넓게 펼쳐져 있었다. 

포도밭과 포도밭 사이로 길이 나있었는데, 어지간히도 포도 서리가 많았나보다. 

철조망, 경보장치, 울타리 등 부단히도 노력한 농장주인의 고뇌의 흔적이 보였다. 





마냥 한적하고 휘파람 절로 나오는 길 같아 보이지만, 실은 온 신경을 집중하고 걸어야 하는 길이다. 

왜냐면 왜냐면.... 길거리엔 말똥이 한가득....

물론 이 말똥은 마차에서 뿜어져나온 것일테니, 우리가 따라가는 길은 하이디 마을로 가는 길이 맞는 거로구나 하는 안심을 주기는 했다. 마차는 관광마차일테고, 이 작은 마을에 관광할 만한 장소는 하이디 마을 밖에 없을테니까. 





퍽이나 유서 깊어 보이는 포도 농장. 





온통 녹색인 포도밭 옆에서 갈색인 점이 되어 유유히 풀을 뜯는 소가 보였다. 





그 소를 시작으로 여러마리의 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자기들 세상인 것 마냥 풀 뜯는 소, 길 양 옆으로 펼쳐진 포도밭, 가끔씩 구름사이로 고개를 내미는 태양, 음영에 맞춰 분위기가 변하는 건물, 이런 마을에서는 당연하다는 듯 태연하게 말을 타고 지나가는 언니 등등. 

이처럼 마이엔펠트 역에서 하이디 마을까지 가는 산책로 자체가 서정적이고 동화같았다. 

일주일 단위의 농장 체험 프로그램이 있다면 프랑 따위 신경쓰지 않고 당장 신청하고 싶을 정도로. 





또다시 나온 하이디 마을 팻말. 

여기서 계속 길을 따라 걷다보면 가파른 산길이 나오는데, 주저하지 말고 산길을 10분 정도 타면 드디어 하이디 마을이 등장한다. 





하이디 마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중앙역에서 길을 나선지 정확히 한시간만에 하이디 마을 입구에 도착했다. 

무거운 운동화는 라이제게 팩으로 보내고, 굽 있는 쪼리를 신고 걸었는지라 굉장히 지쳐 있었다...

 



하이디 마을에 있던 염소들.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서 있어서 처음엔 모형인 줄 알았는데, 몇 분 정도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 고개를 까딱까딱하고 움직이더라. 

가운데 두 녀석은 사랑을 나누고 있는 건지, 힘을 겨루고 있는 건지 도통 모르겠다...





염소의 눈은 기묘하다. Θ_Θ

왠 녀석이 울타리 쪽으로 고개를 내밀고 나에게 눈싸움을 걸길래 나도 영장류의 위대함을 몸소 알려주기 위해 녀석의 도전을 받아줬다. 

...몇 초 노려보다가 냄새가 심해서 포기했다. 이 염소 보통이 아니야...





우리처럼 하이디 마을에 놀러온 사람들인가보다. 화목해보였다. 





엄마 아빠 손붙잡고 놀러온 것인지, 꼬마애 하나가 풀밭 위에서 닭을 쫓으며 뛰어다녔다. 

그러다가 발을 헛디뎌 엎어졌는데, 당장 울음을 터트릴 듯한 표정을 짓고 주위를 둘러보다가 주변에 카메라 들고 쳐다보는 이상한 동양인 누나만 있는 걸 보고는 울음 꾹 참고 일어나 다다다다 뛰어갔다. 





닭들이 뛰어다니는 하이디 마을. 

크, 무슨 RPG 게임에 나오는 산골 마을 같다! 잃어버린 반지를 찾아주는 퀘스트를 맡아서 분수도 뒤지고 닭도 잡아서 뒤져보고 싶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그 하이디의 집! 

물론 하이디는 소설 속 등장 인물이다. 허구의 인물 하이디가 어떻게 집을 갖게 되었을까? 


<알프스 소녀 하이디>의 작가 슈피리는 마이엔펠트에 머물면서 소설을 구상하고, 마이엔펠트를 배경으로 소설을 써내려갔다. <하이디>는 유명해져서 전세계의 말로 번역되어 퍼져나갔고, <하이디>의 배경이 된 마을인 마이엔펠트 역시 조금씩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마이엔펠트 사람들은 자신들의 마을을 진짜 하이디의 고향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고, 소년 소녀들은 용돈을 모아 하이디의 집과 피터의 오두막 등 동화에 나오는 여러가지 건물을 세우는 자금에 보태었다. 그리하여 동화 속 하이디가 현실 세계에 집도 갖게 되고 농장도 갖게 된 것이다. 





하이디를 읽은지 꽤나 오래되서 기억이 희미하긴 했지만, 

이 아름다운 시골마을에서 밝고 명랑한 소녀 하이디가 이리 뛰놀고 저리 뛰노는 모습을 그려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였다. 





스위스의 전형적인 시골 마이엔펠트에서 하이디 마을까지 보조가방 하나 어깨에 매고 경쾌하게 다닌 하이킹은 상쾌하기 그지 없었다. 

슬슬 다음 숙소가 있는 쿠어로 출발해야 했기에, 하이디마을을 떠나 마이엔펠트 역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

아, 역으로 돌아가던 도중 일어난 짤막한 이야기 하나. 


노래를 들으며 신나게 걷다가 길을 잃었다.

표지판 따라서 왔던 길 그대로 안가고 내키는대로 아무 길에나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이 아무때나 펼쳐지는 미답지(?)에 대한 모험 욕구.... PTL....

한참을 헤매다가 왠 요리집 앞의 주방장 모자를 쓴 아저씨가 친구랑 잡담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사람 하나 안보이는 이 한적한 마을에서 발견한 그 아저씨는 매우 믿음직스럽게 보였고, 다가가서 역 어떻게 가야 되냐고 최대한 착한 표정으로 물어봤다.  

주방장 아저씨는 친구와 대화를 끝낸 뒤에 친절한 얼굴로 자신을 따라오랜다. 곧이어 우리를 으슥한 골목길로 끌고 갔다..... 뭐, 뭐지!? 주방장은 주방장인데 사람을 요리하는 주방장!?????? 


...은 당연히 아니였고, 이 골목길을 따라 내려가고 꺾고 어쩌구 하다보면 역이 나온댄다. 소위 말하는 지름길. 

덕분에 마이엔펠트 주민들만 알법한 골목길을 따라 새소리 바람소리 들으며 무사히 중앙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길 잃어서 득 본 케이스. 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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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요엘 2011/12/13 03:12 # 답글

    하이디!!!!! 요를레히히
    아 어떡해 오덕오덕열매를 먹은지 꽤 오래됐는데 또 튀어나올것같은 이마음
    노후는 유럽에서 보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무럭무럭 자리잡고 있어요. 책임지세요 이낫님!!
    아, 포도농장은 혹시 와이너리? 저기가면 맛있는 와인을 통에서 꿀렁꿀렁 따라주는거에염?!!!
    그나저나, 염소 모형인줄 알았네=_= 머리를 왜 비비고 있을까..



    아 말똥... 이낫님 지지..............
  • enat 2011/12/13 19:18 #

    헤헤. 무럭무럭 자라나는 유럽노후계획을 잠재워드릴게요. 경치도 멋지고 아름답긴 한데 유럽은 공기가 너무 건조하더라구요. 조금만 관리 안해줘도 피부가 쩍쩍 갈라져요. 어찌나 건조하던지 운동화 신을 때 살과 운동화가 닿는 그 부분! 거기가 다 까여서 피가 줄줄... 석회성분 많은 물맛도 별로고... 공기좋고 물맛좋고 인심좋은 한국이 짱이에요 한국이.
    포도농장은 글쎄요 ㅋㅋㅋ 지나가다가 슬쩍 본 거라 와인을 따라줄지 거름을 퍼부을지 알 수가 없네요.
    염소는 몇십분동안 가만히 서있더라구요. 생각보다 활동량이 없는 동물인가봐요.

    말똥은... 에이.... ㅠㅠㅠㅠㅠㅠㅠㅠ
  • 키르난 2011/12/13 11:49 # 답글

    마을은 저 아랫동네, 페터네는 거기서 더 올라간 산중턱, 그리고 거기서 한참을 더 올라가야 하이디네 외딴 오두막이라 생각했는데 현실과는 다르군요.;ㅁ; 저 마을에 눈 내렸을 때 가서 포대썰매 타고 중턱까지 신나게 달려보고 싶습니다.+ㅁ+
    (근데 태그...OTL 괜찮으셨나요?;;;;)
  • enat 2011/12/13 19:21 #

    어.... 대략적인 내용 빼고는 기억이 잘 안나서 집들 위치나 배경을 잘 모르겠네요 ㅠㅠ 만약 다른 게 있다면 제 설명미숙, 혹은 제 착각일 것 같아요. 아마 최대한 동화속과 비슷하게 지어놨을 거에요.
    포대썰매 으으 저기서 타면 속도감 죽이겠군요. 생각보다 절벽처럼 가파른 곳이 많아서 삐끗하면... 안녕...

    태그... 잘... 비벼서... 닦았어요... ㅠㅠㅠㅠ
  • 택씨 2011/12/13 21:04 # 답글

    음... 알프스소녀의 배경이 된 마을이로군요. 정말 소설에 나오는 듯한 배경을 가지고 있는 듯.
    소설에서도 하이디의 집까지 걸어올라가는데 애먹는 이야기가 나왔던 것 같은 기억이....
    정말 목가적인 풍경이에요. 양들은 정말 잘 움직이지 않는 것 같아요. 더구나 저런 절벽형태로 된 바위 위가 주로 활동하는 곳이라고 들었어요.
  • enat 2011/12/14 02:39 #

    그런 소설이 나올만한 배경이죠 마이엔펠트는!
    슈피리가 하이디의 집을 높은 곳에 설정해놓는 바람에 현실에서도 어쩔 수 없던 것이였군요.... 쩝.

    양...은 아니고 염소! 였어요. 양도 염소와 비슷한 생활습관을 가졌나요? 아니면 오타가 나신 걸지도 모르겠네요! :0
  • 택씨 2011/12/14 07:42 #

    아... 사진을 보고 산양인줄 알았어요;;
    예전에 대관령 삼양 목장을 가보니 사진과 비슷하게 바위를 쌓아둔 곳에 저렇게 자세를 잡고 있더라구요.
  • enat 2011/12/14 19:25 #

    아 산양도 염소랑 비슷하게 노나보네요!
    대관령 한 번 놀러가서 보고 싶군요. 그 쪽 목장도 꽤 유명하던데 가본 적이 없네요. 쩝쩝.
  • 토토로 2011/12/14 00:03 # 답글

    헐...엄청나게 아름답네요!!미리알았더라면 가보았을텐데 아쉽네요ㅠㅠ
  • enat 2011/12/14 02:41 #

    스위스는 국토의 대부분이 마더 네이처 안에서 숨쉬고 있죠. 그래서 어디든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신다면 가보시길 바래요!
  • 클래식 2011/12/14 01:14 # 답글

    전 겨울에 다녀왔는지라.. 저렇게 아름다운줄은.. 물론 겨울에도 눈덮인 스위스는 멋지지만요^^ 암튼 푸르른 배경이 넘 멋지네요
    다시가고싶어라
    저도 알프스 생각만 햇어요 ㅎㅎ 잘보다 갑니다
  • enat 2011/12/14 02:43 #

    와우 겨울에 다녀오셨나요? 눈쌓인 들판과 크리스마스 마켓이 장난 아니였겠네요! 겨울에도 한 번 가보고 싶은 곳이에요 정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ㅋㅋ
  • rip 2013/03/12 04:29 # 삭제 답글

    웬만한 사람들도 해외여행 맘대로 할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니,

    참 태평성대가 아닌가?
  • enat 2013/03/12 20:49 #

    지금이 한반도 사람들이 제일 잘 사는 시기라고 말하는 학자들도 있죠

    행복의 유무와는 상관없이 경제적으론 좋은 시기 같습니다
  • 블링블링한 빙하 2013/03/12 11:27 # 답글

    히히~
    우연히 클릭해서 요기 요기 둘러 보다가 가입까지 했네요. ^^;;
    와~
    멋지세요.
    사진도 글도!!!
  • enat 2013/03/12 20:50 #

    여기 저기 둘러보시다가 가입까지 하시다니 ㅋㅋㅋㅋ
    웰컴투 얼음집입니당!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 장수아낙 2013/03/12 20:45 # 삭제 답글

    너무 멋진 곳, 정말 가보고 싶어요.
  • enat 2013/03/12 20:51 #

    자연이 아름다운 곳이죠. 저도 다시 한 번 가보고 싶은 곳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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