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1/04 17:20

36일 유럽여행 (46) : 볼로냐에 들려 나폴리로 ├ 36일 유럽여행 (2011)

여행을 떠나기 전, 존 그리샴의 소설 <브로커>를 읽었었다. 눈이 아파서 책을 오랫동안 붙잡고 있는 타입은 아닌데, 저녁에 읽기 시작해서 새벽에 끝날때까지 손에서 놓지 않고 읽었던 소설이었다. 그 스릴 넘치고 긴장감 가득한 주인공 백먼의 이탈리아 생활이란... 백먼이 첩보원들의 눈을 피해 이탈리아 생활에 적응하려고 이탈리아어를 배우는 장면도 나온 덕분에 나도 몇개의 단어는 머릿속에 주워담을 수 있었다. 야아, 이래저래 고맙다 브로커!

브로커의 주요 무대가 되는 도시는 바로 볼로냐. 이탈리아에서 일곱 번째로 큰 도시이다. 
아마 도시 이름이 익숙할지도 모르겠는데, 미트고기가 섞인 "볼로냐 스파게티"의 볼로냐가 바로 이 풍미의 도시 볼로냐를 가리키는 것이다. 

이 날이 유레일 패스의 마지막 날이었고, 그렇기에 기차비가 비싼 이탈리아에서 피를 보지 않으려면 최대한 거리를 많이 빼놔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리하여 여행가기 직전, 며칠에 걸려 <아침 일찍 베네치아 출발 - 오전에 볼로냐 도착 - 오후 늦게 나폴리로 출발 - 밤에 나폴리 숙박> 이라는 아름다운 일정을 짜내고야 말았다. 그러나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불의의 사건이 일어났으니....



허겁지겁 씻고 짐챙기고 체크아웃하고 버스타고 하다보니 벌써 해는 중천. 버스에서 내려 베네치아 산타루치아 역까지 한걸음에 달려갔다. 볼로냐를 포기해야 하나 고민도 잠시 했지만, 어차피 베네치아에서 나폴리로 가려면 볼로냐에서 갈아타야 했다. 

일단 트렌 이탈리아 타고 칙칙폭폭 볼로냐로 달려갔는데, 



▲ 볼로냐 역 외관 


볼로냐에 도착한 시간은 두시 반.... 볼로냐를 둘러보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아아.... 아아아아.... 


친구야 그 전날부터 어정쩡한 볼로냐 일정을 빼버리는 게 어떠냐고 주장했지만, 

브로커를 읽으며 조엘 백먼과 동조했던 나는, 구글 스트리트뷰로 볼로냐 구시가지를 살펴보며 두근두근했던 나는, 그래서 볼로냐 구시가지만큼은 현지인 수준으로 길을 꿰고 있던 나는, 가이드북에도 없는 도시라 A4용지 3장 글자포인트 8 여백 5 로 맞춰 도시 정보를 준비해온 나는!!!!!!! 


...포기하고 싶지 않았지만 당장 유레일 패스가 끝나가는 마당에 나폴리에 도착하지 않으면 막심한 금전적 손해를 본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입을 열었다. 


나 : 얼른.... 나폴리 가는 열차 알아보자....
친구 : 그래! 응? 어디 몸 안좋아? 
나 : 아니.... 그냥 배고파서.... 힘이 없네....




점심은 볼로냐 역 까페에서 해결했다. 

거대한 피자 모양의 파니니(?)가 참 맛났다. 



친구 : 어? 너 그렇게 큰 거 다 먹을 수 있어? 원래 음식 많이 못먹잖아? 
나 : 아니... 지금의 나라면... 코끼리도 먹을 수 있어...
친구 : ......?? 뭐라는거야? 배 많이 고팠나보네.  



배부르게 점심을 해결하고, 젤라또 하나 입에 쳐넣은 뒤, 흘러내리려는 눈물을 참고 미식의 도시 볼로냐에 작별을 고하며 나폴리로 가는 열차를 탔다. 



그리하여 이른 저녁, 나폴리에 도착한 우리들. 

나폴리 중앙역 앞의 가리발디 광장은 정말 모든 면에서 엉망이었다. 어지러운 교통망, 중앙선에 의미가 있는건지도 모르겠고, 광장이 아니라 주차장이 아닌가 싶었고. 게다가 횡단보도조차 의미가 없었는지라 나 같은 여행객들은 길을 건너지 못하고 쩔쩔매고 있었다. 뭐야. 난 볼로냐도 못봤는데 볼로냐 스파게티도 못먹었는데 볼로냐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가게에서 젤라또도 못먹었는데 나폴리 횡단보도에서 이렇게 쩔쩔매고 있어야 해? 뭔가 분노에 가득찬 나는 차가 오건말건 횡단보도를 건너기 시작했고, 쩔쩔매던 대여섯명의 여행객(게다가 다들 남자였어!)들이 나를 모세삼아 홍해 가르듯 길을 건넜다. 

횡단보도를 건너고 광장 주변에 있다는 버스정류장을 한참 찾았다. 가리발디 광장 근처는 공사중이었기 때문에, 버스 정류장을 찾기 힘들었다. 정류장은 찾았는데, 이번엔 교통 티켓 파는 곳을 못찾겠다. 으아. 다시 교통 티켓 파는 곳을 찾아 헤매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한국말이 들려왔다. 

???? : 저기요! 한국분이시죠? 

왠 남녀 커플이 우리를 향해 다가왔다. 

남자 : 아니 여자 두분이서 험한 도시에 오셨네요. 여행중이신가봐요. 
나 : 네... 여행중이긴 한데. 반갑네요. 
여자 : 사실 저희가 오늘 나폴리를 떠나는데, 3일권 교통 티켓이 몇시간 남더라구요. 방금 나폴리 도착하신거면, 이걸 사용하세요. 

아아... 천사다! 천사가 나타났다! 

축복 받아라 이 커플이여!!!! 예쁜 사랑 하세요!!!!!
내가 정말 커플들 축복해주는 상황은 얼마 없는데... 이번만큼은 그 말이 절로 나왔다. 

천사같은 커플이 주고 간 몇시간 남은 3일권 교통 티켓, 거기에 담긴 친절과 배려 덕분에 기분이 좋아진채로 버스에 탑승했다.

아, 그건 그렇고 이건 나중에 알게 된 건데, 나폴리 중앙역에서 누오보 근처로 가려면 버스보다 트램이 훨씬 편하다. 아니, 누오보 근처 뿐만이 아니라 나폴리 시내권에서 버스따위를 이용하느니 트램과 지하철을 이용하는 것을 추천한다. 버스 진짜.... 잘못하면 길 잃는다. 그리고 우린 길을 잃었다. 나폴리의 복잡한 도로망은 상상 초월이었고, 버스에서 내려 도시 한복판에서 한참을 헤맸다. 덕분에 천사들 덕분에 좋아졌던 기분도 급강하... 내가! 정말! 볼로냐도 못가고! 나폴리에서! 길잃고! 캐리어 끌면서! 저녁도 못먹고! 이고생 하고 있고! 

결국 나폴리 중앙역에 내린지 두시간만에 수많은 나폴리 아저씨들의 도움을 받아 호스텔을 찾을 수 있었다. 




샤워하고 나와서 벌컥벌컥 마셨던 맥주&마르게리타 피자와 칵테일 한 잔. 
마르게리타 피자는 일반 슈퍼에서 사먹은거라 그저 그랬다.  

늦잠자는 바람에 하루를 이동하는데 다 썼지만 뭐.... 어떠랴. 무사히 나폴리 도착해서 칵테일도 한 잔 드링킹 하는데 말이야. 


그렇게 칵테일을 들이마시는데... 오우, 기분이 찌릿찌릿. 세상이 빙글빙글 돌아갔다. 

그러고보니 바 언니한테 "칵테일 이름 잘 모르니까 당신이 괜찮은걸로 만들어줘요" 라고 했었고, 주변에 모여앉아 있던 외국인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친 칵테일을 받았는데... 추천한 무리에 있던 한 언니가 "그 칵테일에 보드카 대빵 많앜ㅋㅋ 너 이거 먹으면 헬렐레 할걸" 이란 말도 했던 것 같은데...

아무렴 어때. 기분은 좋았다. 헤헤헤... 

내가 계속 헬렐레 하니까 친구는 내 말을 적당히 피해가며 카톡으로 다른 애들이랑 수다를 떨기 시작했고 (이녀석!!! 술 취해도 다 기억한다!!!!) 친구가 대화를 피하자 할 일이 없어진 나는 엎어져서 핸드폰으로 포스팅-<나폴리입니다>을 작성했다. 

많은 고난과 시련과 역경이 (대부분 내가 자초한 일이지만) 있었지만 칵테일 덕분에 모두 다 날려버린 기분 좋은 밤이었다.



.....어떻게 침대까지 갔더라.....?


폼페이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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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리, Hostel of the Sun





덧글

  • 비유와상징 2012/01/04 19:18 # 답글

    그래 넌 내가 커플일때도 축복해 주지 않았어 ㅋㅋㅋㅋㅋ
  • enat 2012/01/04 21:17 #

    .....내가 그랬던가? 휘파람 휘파람.

    예이! 하이파이브!
  • 비유와상징 2012/01/04 19:19 # 답글

    망했군. 난 이런 망한 여행이 좋아. 근데 좀 약하게 망했군 더 망했어야지. 앞으로 더욱 분발하도록
  • enat 2012/01/04 21:20 #

    이.... 남의 고생을 사랑하는 출판사색히 같으니라고....
    밀라노 오스텔 올린다나 퓌센, 꼴마르 등등을 보면 그런 소릴 못할텐데.
    셜록 시즌2 보내줄테니까 연락하도록
  • 레키 2012/01/04 22:11 # 답글

    - 폰으로 포스팅 지대로 하셨네요 -_-; 후덜덜...
    + 칵테일 좋죠! 비바 칵테일!
    + ...늦은 밤에 먹는 사진은 크리티컬입니다. 헉후헉후
  • enat 2012/01/04 22:24 #

    술취하면 없던 포스팅할 힘도 생겨나죠! 야호 칵테일!
    근데 저 칵테일 이름을 도통 모르겠어요. 진짜 맛있게 먹었는데. 독하면서도 달달해서 입에서 떼질 못하게 만든... 이름이 대체 뭐였더라? 쩝쩝.

    먹는 사진이지만 빵인걸요 ^ㅠ^ 매운 라면이나 떡볶이 사진이 아니니 충분히 견뎌내실 수 있을겁니다.
    아... 저 단어를 쓰자마자 먹고 싶어졌어...
  • 택씨 2012/01/05 09:26 # 답글

    저런.... 그렇게 원했던 볼로냐의 사진이 역건물 하나만 달랑 있군요. -_-;;
    일진이 안좋은 날이 있긴 한데.... 여행 중에 그런 날이 걸리면.... OTL
  • enat 2012/01/05 15:04 #

    볼로냐만 생각하면 아직도 눙물이 납니다. 미식가들의 도시 볼로냐 ㅠㅠ
    거기서 머무른 시간은 고작 50분에 먹은건 고작 피자모양 샌드위치 ㅠㅠ

    늦잠을 잤으니 할 수 없지만요 ㅇ>-<
  • NOMAD 2012/01/05 19:20 # 답글

    제목 보자마자 볼로냐 스파게티를 떠올리며 침을 흘렸던 저는.. ㅠ_ㅠ

    여행 하다보면 항상 변수가 생기고 그것도 여행의 묘미라고들 하지만, 정말 가고 싶었던 여행지를 피치 못할 사정으로 뺄 때의 그 심정은.. ㅠ_ㅠ 갑자기 격하게 공감되네요..
  • enat 2012/01/06 14:02 #

    흑흑흑 레알 가슴 아프죠... 볼로냐 스파게티! 볼로냐 피자! 볼로냐 젤라또! 를 외치며 도착했는데 ㅠㅠ

    올해는 바쁠 예정(?)이라 여행갈 시간을 못만들 것 같아 더욱 아쉽습니다.
    향후 3년 안에 이탈리아... 볼로냐.... 반드시 한 번 더 다녀오고 말겠으여....
  • 키르난 2012/01/06 09:08 # 답글

    미트볼 듬뿍듬뿍 들어간 토마토 소스는...;ㅠ; 하지만 보고 있자니 눈물이 납니다. 아.... 잠이 웬수예요.
  • enat 2012/01/06 14:03 #

    미트볼 듬뿍듬뿍 토마토 소스... 아아... 그 문장을 상상만해도 침이 꿀꺽꿀꺽!!!!

    그쵸, 그놈의 잠이 웬수고 전날 먹은 술이 웬수죠... ㅇ<-<
  • 요엘 2012/01/07 07:42 # 답글

    아.. 미트소스.... 볼로냐.................................
    칵테일은 저게 소금이라면 마가리타!! 라고 말해보고 싶지만 아닐꺼야 아마...

    으헝헝 일주일이나 쉬시면 저는 뭐봐요 어흥헝흐어
    당신의 노동은 계속 된다
    일하라고!! 채찍으로 맞기싫으면 일해!! (...)
  • enat 2012/01/08 01:04 #

    소금은 아니고 설탕.... 저도 소금인 줄 알고 혀 내밀었다가 설탕이라 놀랐어요 ㅋㅋㅋㅋ
    설탕 발라져 있는 건 저기서 처음 먹어 봤거든요.

    근데.......................요엘님 무서워 ㅠㅠ
    날 채찍으로 때리겠다는 여자는 요엘님이 처음이야 ㅠㅠ
  • 요엘 2012/01/09 05:16 #

    .......

    여자가 제가 처음이면 남자는 누굴까.
  • enat 2012/01/09 22:27 #

    엄, 흠. 음.

    저는 이만 다음 포스팅을 하러 갑니다. 흠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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