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3/22 19:39

서울구경 : 길상사 일상

2연속 나홀로 산책타임 포스팅을 올리고 나니 좀 쓸쓸해졌다. 

그래서 이번엔 혼자가 아니었던 지난 겨울에 찍은 사진들로 눈을 돌렸다. 포스팅 할 만한 사진이 뭐가 있을까... 


그러다가 봄에 다시 오면 참 좋겠다 싶었던 특이한 사찰 사진을 발견했다. 아, 여기도 갔었지. 성북동에 있는 작은 사찰, 길상사.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6번 출구에서 약 50m 정도 걸어가다보면 길상사로 가는 무료 셔틀버스를 탈 수 있다. 시간 맞춰서 이걸 타고 가면 된다. 시간은 8:30, 9:20, 9:40, 10:00, 12:00, 13:00, 15:00, 16:30. 셔틀버스를 놓치거나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가길 원한다면... 길찾기 앱정도는 요새 다들 들고 다닐테니까 최단 거리를 찾아 가세요. 

우리는 셔틀버스를 타고 길상사까지 갔다. 



버스로 10분? 15분? 정도 달렸을까? 그새 길상사 입구에 도착했다. 

은근 오르막길이 있어서 버스 타길 잘했구나 싶었다. 




길상사 일주문 현판. 같이 갔던 후배나 나나 계산기 밖에 모르는 바보ㅜㅜ들이어서 뭐라고 읽는지 몰랐다. 



나중에 찾아보니까 오른쪽부터 읽는거고, 그냥 산 이름과 절 이름을 써놓은 거란다. 그러니까 삼각산 길상사. 

....멍청이들....




일주문 옆에 있던 건물에서 발견한 셔틀버스 시간표. 나중에 길상사 가실 분들을 위해 참고하시라고 올려본다. 




아무 생각없이 계단을 올라가려는데, 후배가 계단 옆 바위에 장식된 아기자기한 조각상을 보고 귀엽다며 좋아했다.  

뭐... 확실히 귀엽긴 한데... 

어디 음식점이나 기념품 판매점에서 볼 법한 조각상을 보며 내가 그동안 쌓아올렸던 사찰의 이미지들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길상사 본당 극락전. 

얼었던 땅이 질척질척하게 녹았던 때라 건물을 자세히 보기는커녕 걸으면서 신발에 진흙이 묻지 않게 노력하느라 진이 빠졌다. 




어른스님 처소. 

예쁘고 아담한 다리가 놓여있다. 근데 아무리 봐도 절에서 볼법한 건물은 아닌 것 같다. 건물이... 건물이 너무 예뻐! 

사실 길상사는 처음부터 사찰의 의무를 다해왔던 곳이 아니다. 이곳의 이름은 원래 '대원각'이었다. 대원각은 김영한-시인 백석의 연인이었던 자야가 만주로 떠난 백석을 그리며 자금을 모아 문을 연 당대 최고의 요정이었다. 아마 백석과의 찢어지게 가난했던 동거 생활을 떠올리며 다시 만날 날만을 손꼽아 돈을 모았었겠지. 하지만 시대가 시대였던만큼 둘은 다신 만날 수 없었고, 자야는 그저 1천억원의 가치를 자랑하는 고급 요정의 주인으로써 살아갈 수 밖에 없었다. 




어느날 그녀는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읽었다. 그 작은 한 권의 책은 많은 재산을 가졌지만 텅 빈 마음으로 살아가던 그녀에게 삶의 방식을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자야, 김영한 할머니는 자신이 가진 대원각을 법정 스님에게 시주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법정 스님은 무소유의 저자답게 대원각을 받지 않으려고 했고, 거의 10년 동안의 실랑이 끝에 법정 스님은 대원각을 받아들였다. 

1997년도, 김영한 할머니는 길상화라는 법명을 받게 되었고, 술 냄새 가득하던 이 곳은 길상사가 되었다. 




저 다리 건너편에는 대원각을 시주한 길상화를 기리는 공덕비가 세워져 있다. 

연인을 멀리 떠나보냈던 자야. 텅 빈 마음을 어찌하지 못한채 고급 요정을 차려 호사 생활을 했던 김영한. 끝내는 가진 모든 것을 내려놓고 마음의 평안을 얻은 길상화. 길상사에 얽힌 한 여자의 이야기는 어떻게 이런 인생이 있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애절하고, 아름답다. 




백석과 자야, 법정스님까지 얽힌 스토리가 있는 절답게, 길상사 이곳 저곳에는 법정스님의 이런 저런 글들이 소박한 나무 액자에 걸려 있다. 




묵언 수행을 하는 곳도 보인다. 

사찰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데, 묘한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뭐지? 우리 옆을 지나던 사람들도 뭔 소린가 두리번거리다가 경내에 틀어놓은 명상 음악(?) 소리겠지, 따위의 대화를 주고 받으며 다른 곳으로 갔다. 정말 그런건가? 뭐지? 




갸웃갸웃 하며 궁금해하고 있는데 눈썰미 좋은 후배가 왠 모빌 같은 걸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거다! 






소리가 너무 예뻐서 계속 바라보다가 찾아낸 후배를 치하했다. 이... 잘했다 녀석! 한문은 못읽지만 제법 쓸모가 있군! 

나무종이라고 해야하나? 저렇게 소박하고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종도 있구나 싶었다. 




생각보다 경내가 복잡해서(아니면 그냥 내가 방향치던가), 방향 감각을 잃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가 이런 건물을 발견했다. 

아무리봐도 어디 음식점에서나 볼 법한 건물이다. 밤에 불 켜지고 고기 굽는 냄새 자욱한...

에구, 사찰 안에서 별 세속적인 생각을 다한다. 




기왓장으로 만든 담. 신기한데? 

평소 같으면 그냥 지나쳤을 테지만 택씨님께서 자주 포스팅하시는 '벽과 담' 덕분에 유심히 살펴볼 수 있었다. 
전혀 신경쓰지 않던 것에 관심을 갖게 되다니, 다른 분의 시선을 배우는 건 재밌다 헤헤! 

하지만 아직 벽을 예쁘게 찍는 법은 모르겠다. orz 




또 정처없이 경내를 돌아다니다가, 지나가던 어떤... 음... 보살님(?이라고 하나? 불교 용어는 잘 모르겠어서...)께서 공양 안하고 뭘하냐며 우리를 끌고 가셨다. 뭐... 뭐야! 공양이 뭐야! 끌려가는 통에 사찰에선 밥 먹는 걸 공양한다고 하던 걸 기억해냈고, 마침 배가 고팠던 우리는 그제서야 자신들의 힘찬 의지로 밥을 먹기 위해 식당엘 갔다. 

식당에는 이런저런 밥과 나물반찬들이 잔뜩 있었는데, 왠 주황색 물질이 튀김에 쌓여있는 걸 보고 소세지 튀김이라 생각하여 잔뜩 가져왔다. 근데 다시 한 번 생각해보니 절에서 소세지 같은 걸 줄리가 없다. 미심쩍어하며 그 소세지 튀김을 입에 넣어보니... 아이구, 당근이다....ㅠㅠ.... 

당근 튀김, 각종 나물 등등과 함께 배부르게 식사를 한 뒤, 경내를 천천히 산책하며 배를 꺼뜨렸다. 

진눈깨비도 가끔 내리던 기분 좋은 겨울의 길상사. 나뭇잎 돋아나고 꽃이 핀 봄의 길상사는 어떤 모습일까. 
기회가 되면 다시 보러갈 생각이지만, 과연 봄에 거기까지 갈 여유가 있을런지는 모르겠다. 



아이구, 마지막에 와서 밥 먹는 걸 쓰다보니 배 엄청 고프다. 빨리 저녁 먹어야겠다. 





덧글

  • 택씨 2013/03/22 20:42 # 답글

    ㅎㅎㅎ. 소세지 튀김;;;; ( 얼른 모양만 보면 속을 만 하죠;;)
    저런 벽의 모습을 보면 바람이 슁 ~ 통할 것 같은 느낌이어서 자유로운 사상을 가지길 바란다는 느낌이에요!!!
    정말 건물의 배치는 독특해서 건물이 구석구석 숨은 모습이라... 일반 사찰처럼 당당한 건물은 아닌 것 같더라구요.
    도서관도 꽤 괜챦아요. 장서도 많고... 조용해서 말이죠.
  • enat 2013/03/22 21:19 #

    정말 소세지 튀김처럼 보였어요 ㅠㅠㅠㅠㅠ 흐엉
    오 보면서 예쁘다는 생각만 했었는데 사상의 자유로움이라는 느낌을 듣고 보니 또 달라보이네요!
    그쵸! 길상사 건물이 구석구석 숨어있는게 맞죠! 제가 길치가 아니라 그냥 건물배치가 그랬던게 맞는거죠!
    도서관도 있군요? 무슨 책이 있나, 분위기는 어떤가 둘러보고 싶네요. 역시 다시한번 가봐야겠어요 ㅋㅋ
  • 택씨 2013/03/22 21:27 #

    그게 요정을 할 때는 계곡을 따라 각 건물이 서로 서로 안보이게 하느라 배치가 그렇게 되었다고 들었어요. 그나마 지금은 확장도 길도 만들고 해서 조금 나아진 모습일 거예요. ㅎㅎ
    도서관은 정문에서 왼쪽으로 조금 가면 새로 지은 건물에 있어요.

    참선을 하는 눈푸른 납자들이 모여서 있다고 들었는데 어딘지 찾지를 못했어요. 화두 한자락이라도 얻어 들어야 되는데......
  • enat 2013/03/22 23:09 #

    아, 고급 요정이니까 정치인들이 많이 다녔을테고, 마주치게 하면 곤란하니 안보이게 하는게 좋았겠네요! 저게 그나마 확장을 한거라니, 요정이었을 땐 정말 폐쇄적이었겠네요.

    도서관도 그렇고, 참선을 하는 분들(사실 눈 푸른 납자가 뭔지 몰라서 찾아봤어요! 오, 처음 들어보는 말인데 알게됐네요)도 그렇고, 많은 정보를 얻었어요 :) 감사합니다!
  • Tabipero 2013/03/22 22:46 # 답글

    말로만 듣던(?) 길상사네요. 요정을 시주받아 절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만 정말로 건물 모양이 절이라기보다는 요정같아 보입니다. 공양에서 절로 변신(?)하면서 그다지 많이 변화시키진 않은 모양이네요.
  • enat 2013/03/22 23:04 #

    길상사에 관련된 설명을 읽는데 "고기냄새 술냄새 가득한 건물이었지만 스님들은 그 향을 비워냈다 운운" 하는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냥 스님들은 그 건물 그대로 사용하셨나봐요. 당시 시가로 1천억원 하던 건물이었기 때문에 굳이 부수고 다시 세울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것 같기도 하고요 :)
  • 방울토마토 2013/03/22 23:11 # 답글

    작년 가을에 단풍 있을 때쯤 갔는데 봄에 꼭 오고 싶었던 곳이네요...
    봄에 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봄의 경치도 참 아름다울거 같아요.
    셔틀버스 시간 잘 알고 갑니다!
  • enat 2013/03/22 23:50 #

    단풍 졌을 때 길상사도 굉장히 아름다웠을 것 같습니다. 알록달록한 길상사...!
    저도 봄의 파릇파릇한 경치를 보고 싶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가봐야지요. :)
    덧글 감사합니다!
  • 키르난 2013/03/23 06:19 # 답글

    길상사는... 는.... 그 뒷이야기가 하마터면 아름답지 않을뻔 했습니다. 할머니가 기증을 했는데, 돌아가신 뒤에 그 수양딸이 미국에서 와서는 소유권을 주장했다던가요. 그리하여 좀 이리저리 말이 생기다가 몇 년 전엔가 취하(?)하고는 미국으로 돌아갔다 하더군요. 어제 본 어느 화가의 그림 소유권 논쟁도 잘 해결되었으면 좋겠는데 말입니다..ㅠ_ㅠ
    길상사는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데 잘 가지 않게 되네요. 그러다 보니 제대로 본 건 말머리 바위 위에서였던가..;;
  • enat 2013/03/24 10:44 #

    아 그런 현실적인... 세속적... 인 여튼 그런 뒷이야기가 있었군요. 마냥 아름답게 마무리 되기엔 너무 큰 재산이긴 하네요 1천억원... 흐어...
    아, 저도 어느 화가의 그림 소유권 논쟁 라디오로 들은 것 같아요. 서울시에서 보관 잘못했으니까 작품 주세요! 하는 내용이었던 것 같은데, 잘 해결됐음 합니다. 쩝...
    길상사로 가는 길이 오르막길? 이라서 발걸음이 옮겨지지 않으신 건 아니실지! 하는 생각도 해보아요 ㅋㅋㅋㅋ
  • Mr 스노우 2013/03/23 14:52 # 답글

    으악 소세지 튀김ㅋㅋㅋㅋㅋ 그나저나 저 다리 정말 예쁘네요ㅎㅎ 가보고 싶어지는..ㅎㅎ
    현판은 순간 저도 잘못 읽어버렸다는...ㅋㅋㅋ (아무리 서양사라지만 명색이 역사 전공한다는 인간이....ㅋㅋㅋ)
  • enat 2013/03/24 10:46 #

    완전 소세지 튀김 닮았다그여 엉엉엉 ㅠㅠㅠ
    다리도 작은 장식물도 아기자기한 것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곳이었어요. 도통 절 같지가 않은... ㅋㅋㅋ
    역시! 전문가(?)이신 스노우님께서 순간 잘못 읽으신 현판이라면 제가 제대로 읽을 수 있을리가 없죠! 호호호!
  • 비로그인죄송 2013/03/23 16:53 # 삭제 답글

    최근에 많이 유명해져서
    날씨 좋을때 가시면
    시장바닥을 경험하실수 있으실 거에요...
    넓긴 넓은데
    산에 있는 비슷한 규모의 절이랑 비교하면
    좀 답답한 느낌이 있더군요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랬을지도ㅎㅎ
    요정이었기 때문인지 건물이나 조경에 화려함이 남아 있더군요
  • enat 2013/03/24 10:49 #

    저희는 날씨가 흐린날 가서 사람이 많이 없었나봐요! 날씨 좋은 날엔 그런 한적함을 느낄 수 없다니, 장단점이 있군요.
    음, 생각해보니 공양하는 곳도 다른 절들의 식당보다 크고, 학교 급식소 같은 느낌도 들고 그랬던 기억이 나네요. 그만큼 관광객들이 많이 오는 것이려나요.
    건물이 여기 숨겨져있고 그 너머에 또 숨겨져있고, 그래서 보통 경내에서 느끼는 탁 트인 느낌들은 못받기는 했어요.

    제 블로그는 비로그인도 환영합니다ㅋㅋㅋ 방문과 덧글 감사해요~ :)
  • 뽀다아빠 네모 2013/03/25 13:56 # 답글

    사찰 음식, 어떤지 한번 먹어보고 싶어요....^^
  • enat 2013/03/26 13:03 #

    고기가 없어서 담백하고... 심심한 맛이었어요 ㅋㅋㅋ
    길상사 말고 예전에 송광사에서도 밥을 한 번 먹었었는데, 야채만 가지고 이렇게 맛있게 할 수 있구나 싶을 정도의 맛도 있었죠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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