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2/26 10:57

캐나다 워홀 - GP생활 └ 캐나다 생활

여행기 포스팅을 작성할 때면 최대한 그 당시의 기분과 느낌을 살려서 쓰려고 하는 편인데, 그 덕분에 요새 쓰고 있는 쿠바 여행기 작성하기가 너무 어렵다. 그 당시의 기분과 느낌... 살리기가 너무 힘들다! 왜냐고! 날씨 때문에! 쿠바 여행이라면 역시 강렬한 태양에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작은 그늘이라도 찾아 그곳에 앉고선 이미 햇빛에 달궈져 미적지근해진 물을 꺼내들지만 그래도 불평하지 않고 피식 웃으며 쿠바라는 나라의 혼을 느끼는... 그딴 모습이 그려져야 하는데!

여긴 너무 춥다... 정말 추워... 쿠바의 혼은 개뿔 얼어 죽겠다 영하 삼십도야!

그런 의미로 오늘은 온도계의 숫자를 볼때면 눈을 비비고 다시 확인하곤 하는 현재 내 생활에 대해 끄적여본다.



1. 나는 어디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캐나다 알버타 주의 그랜드 프레리(GP)라는 중소도시다. 레스토랑과 호텔, 바 등이 하나로 묶여있는 편의점의 캐셔로 일하고 있고, 잠은 스텝하우스에서 잔다. 출퇴근은 레스토랑 키친에서 일하고 있는 분들의 차로 하고 있다.



스텝하우스 1층에는 레스토랑 키친의 그리즐리 베어 삼촌이랑 특전사 오빠가 살고, 2층에는 내가 살고 있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이 집에 7명이나 살았었는데, 이사 등등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지금은 3명만 머물고 있다. 아, 사실 거주자 명단으로만 따지면 한 명 더 있긴 한데, 그 분은 오일필드에서 일을 하느라 일주일에 한두 번 볼까말까 하니 패스.



2. 왜 여기

사실 쿠바에 다녀온 뒤 토론토를 떠나 제일 먼저 도착한 곳은 BC주의 작은 시골마을이었다. 거기서 하우스키핑을 하게 됐었는데, 3일만에 일한 돈도 받지 않고 나왔다. 개인적인 사정이 있기도 했지만, 그걸 제쳐두고서라도 근무했던 3일 동안 생각했던 건 '이런 곳에서 이런 일로 내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고 싶진 않다' 였다.

나이의 십의 자리가 1이었던 머나먼 옛날, 국토대장정을 하면서 알게 된 게 하나 있었는데, 대략 3일이면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과 할 수 없는 사람이 갈린다는 거였다. 국토대장정을 시작한지 3일 만에 전체 인원수의 1/3이 포기를 선언했고, 딱 3일이 지나간 후 남은 사람들 대부분은 완주를 했다는 사실. 작심삼일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더라.

갑자기 그 이야기를 왜 하냐고? 그 경험을 통해 내가 생각하게 된 것은, 3일 동안 무언가를 해본다면 내가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알게 된다는 거다. 그리고 생각의 적용. 실제로 여러 아르바이트를 거쳐왔었던 나는 3일 째를 기준으로 이 일을 계속 할 것인지 하지 않을 것인지 결정을 내리곤 했었다. 지금에 와선 그런 식으로 내렸던 결정들이 최선이었다는 생각이 들고.

여하간! 그 시골마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3일 째에 아, 이건 진짜 아니구나, 이 일을 억지로 한 달이라도 해서 돈을 받은 뒤 나간다 하더라도 한 달이라는 시간이 너무 아깝겠구나,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그렇잖아, 1년 밖에 안되는 워킹 비자라고. 리미트가 있는 시간이니만큼, 아니라고 생각이 들면 바로 결정을 내리는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 시골마을에서 나온 후, 여러가지 개인적인 일들을 처리하고 난 뒤 정신을 차리니 에드먼튼이었다. 이제 어딜 가지? 어떡하지? 당장 돈도 없고, 쿠바여행과 항공권 기타 등등 때문에 카드 빚만 생겼는데, 이걸 어찌 갚을까.

그 와중에 발견한 게 지금 내가 일하고 있는 GP의 편의점 캐셔 공고였다. 난 사장님께 연락을 드렸고, 사장님도 마침 사업차 에드먼튼에 갈 일이 있으니 보자고 하셨다. 그 이후로는 일사천리였다. 그리즐리 베어 삼촌이랑 같이 에드먼튼까지 내려오신 사장님과 만나고, 인터뷰... 보다는 그냥 밥 잔뜩 얻어먹고, 당시 상당히 지쳐있었던 나에게 호텔 독방을 잡아준 뒤 '피곤해보이는데 푹 쉬고 GP 올라가자 어쩌구' 해주시고, 북미에서 규모로만 손가락에 꼽힌다는 쇼핑몰에 가서 구경도 하고, 과자 먹으면서 편하게 GP까지 올라가고... 으ㅓ어허엉엉엉

나중에 술자리에서 듣게 된 이야기인데, 사장님 왈, 당시의 내가 굉장히 필사적으로 보였다고 하시더라. '뭐든지 잘 할 수 있습니다! 시켜만 주십쇼!' 의 느낌이었다나. 정작 난 그 때 내가 어떤 식으로 레주메를 보냈고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이 안나지만...

이런 기나긴 출신지의 사정으로, 요새도 종종 '시골마을에서 도시생활 하려고 도망쳐 나온 년', '시골 촌년' 등등으로 놀림당한다. 으으, 으으으! 나, 난 인구 5백만 대도시 토론토에서 왔다고! 거긴 3일 있었을 뿐이야! 아무도 안믿어주지만 난 도시여자라고! 차도녀라고!


...흠흠, 이야기가 샜군. 많이 축약했지만 결국 좀 길어지고 말았다. 여튼 위와 같은 이유로 난 현재 여기 GP에 있다.



3. 같이 사는 사람

1에서 말했다시피 지금은 특전사 오빠랑 그리즐리 베어 아저씨랑 같이 살고 있다. 특전사 오빠는 한국에 있을 때 특전사여서 특전사 오빠라고 썼고, 그리즐리 베어 삼촌은 저번에 쟤스퍼 놀러갔다가 불곰에 대해 듣고 나서 딱 이 삼촌이구나 싶어서 그렇게 쓰게 됐다. 키도 몸집도 엄청 큰 삼촌이라서.

특전사 오빠랑 그리즐리 삼촌 둘 다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요리사이기 때문에, 집에 있을 때 밥 걱정은 없다. 난 그냥 설거지를 하거나 바닥을 쓸거나 뭐 그런 자질구레한 일만 한다. 짱좋음. 나중에 GP에서 먹은 밥 사진들만 따로 모아 잔뜩 올려봐야지.



4. 막내

굳이 밝히자면 내가 이 스텝하우스에서 막내다. 내가 있는 동안 두어번 정도 사람들의 인출이 있었는데, 그 때에도 계속 막내였음. 지금도 막내임.

사실 살아오면서 집안에서도, 학교에서도, 다른 모임에서도 난 거의 매번 막내 포지션이었기에, 갈굼 당하는 것에 매우 능하다. 정말이다. 내 자신이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웃기지만 나처럼 '갈굼'에 특화되어 있는 사람도 드물거다. 그냥 몇 년 막내생활 하다보면 그런게 특화되어 버린다고! 으으, 젠장!



대충 이런 포지션.

맨날 애 취급 받는게 어쩔 땐 짜증날 때도 있다. 하지만 짜증난다고만 할 수는 없는게...



뭐... 계속 애 취급 받으면서... 막내로 지내는 것도... 좋지... 헤헤.



5. 일은 어때

일은 꽤 재밌다. 편의점 캐셔, 진짜 재밌음.

손님들은 대부분 남자 트럭 운전 기사들이다. 영어는 못하지만 방긋방긋 웃는 귀여운 동양인 여자(나다. 나라고.)에게 막 대할 남자들이 어딨어. 사실 손님들이 다 황야의 남자 포스라, 여자가 무언가 잘못하면 '그럴수도 있지' 하는데 남자가 무언가 잘못하면 시비 걸 것 같긴 하다. 저녁 타임을 돌면 가끔씩 여자에게마저 무례한 손님들이 있긴 하지만, 그런 사람들 상대하는 것도 나름 스릴이 있다.

물론 손님들만 받는 건 아니다. 때가 되면 오븐에 요리도 굽고, 샌드위치도 가끔씩 만들고, 커피를 내리거나 새로 온 물건을 정리하곤 하는데, 꼭 무슨 가게 운영하는 게임 같아서 즐겁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레스토랑, 라운지 등등 포함)은 스텝 하우스에서 같이 사는 사람들 빼고는 다 캐네디안이나 필리핀계 사람들이다. 한국인들도 나 빼고 영어 다 잘함... 덕분에 좋은 공부가 된다.



6. 덧붙임

일단 난 이렇게 살고 있고... 혹시나해서 덧붙임.

6월 즈음에 내 포지션에 들어올 사람을 뽑아야한다. 사람 구할 시기에 캐나다 관련 대형 카페에 글을 올려서 이력서 받는 방법이 제일 편하긴 하지만, 블로그를 통해서 알게 된 사람을 이 자리에 꼽아주고 가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워홀러 중 혹시라도 여기 업데이트 되는 글들 계속 보다가 '일해보고 싶은데...' 따위의 생각이 들면 덧글로 연락 주시길 바람요.





다음엔 더 유익한 포스팅으로 찾아뵙겠음. 아아, 데이오프가 이렇게 끝나가는구나...





덧글

  • 2014/02/26 11:56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4/03/02 13:05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키르난 2014/02/26 12:27 # 답글

    엇, 벌써 6월이 마지막이신가요? 아니, 들어가신 것이 가을-9월인지 10월쯤으로 기억하는데 여행 가시려나 싶고..+ㅅ+
    막내 포지션이란 참 좋군요. 저는 막내인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아니, 막내보다는 아웃사이더(...)포지션이 더 강렬하기 때문에.... (잠시 눈물 좀 닦고) 하여간 쿠바여행기는 추위만 아니면 안정적으로 글 올려주시는 걸 보고는 괜찮으신 것 같다 생각했는데 보고 나니 더 다행입니다./ㅅ/ 그러니 다음 포스팅은 음식으로...(응?)
  • enat 2014/03/02 13:09 #

    캐나다, 그러니까 토론토 쪽으로 온 건 6월! 이고 알버타 쪽으로 온 게 10월 중순입니다. 여기 들어온 걸로만 따지면 기억하신게 맞네요. 크흑... 어쩐지 감동... 귀중한 메모리를 저에게 할애해주셨어 (....)

    아니 저 막내 포지션이, 음, 너무 미화해서 썼나, 음, 실상은 갈굼 오브 갈굼이에요. 개 키우면서 막 굴리다가 10번 중에 1번 꼴로 잘했다고 개껌 던져주는 그런 느낌... 음...

    다음 포스팅을 음식으로 하려고 했는데 쓰던 걸 이어쓰다보니 쿠바 여행기가 되었군요 ㅇ<-< 요거 다음이나 다음다음 포스팅은 식도락 포스팅으로 하죠! 음, 근데 쓸만한 사진이 있으려나... 카메라랑 먼 생활을 한지 오래되어서...
  • 야기꾼 2014/02/26 17:39 # 답글

    ㅋㅋㅋㅋ. 재미있게 잘 봣습니다.
    ... 근데 캐나다 이야기에만 반응하게 되네요..
    캐나다 국적 주제에 한국에서만 너무 오래 살아서 그런지 캐나다가 그립다는 생각도 종종듭니다. 참 묘한 느낌.
  • enat 2014/03/02 13:12 #

    오!?
    캐나다 국적이신데 한국에서 오래 사신....? 모국은 한국인데 국적은 캐나다고 거주는 한국이어서 캐나다가 그리운...

    음, 제 3자 입장에서 봐도 복잡하고 묘한 느낌이군요.
  • 2014/02/26 23:07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4/03/02 13:12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4/11/16 22:39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enat 2014/11/17 23:30 #

    오일필드 쪽은 잘 몰라서 ㅋㅋㅋ 저도 요새 들어 좀 알아보고 있는 처지이긴 한데 별 소득은 없군요.
    혹시라도 무언가 정보를 얻게 된다면 연락 드릴게요.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jj

ccl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