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4/08 20:09

토론토 근교 : 스트라트포드에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러 가다 ├ 토론토 (2013)

노트북과 손이 세 개, 네 개 정도만 더 있었으면 좋겠다. 쌓인 이야기거리 차곡차곡 정리 좀 하게.

쿠바 포스팅했다가 로키산맥 포스팅했다가 토론토 포스팅했다가, 포스팅이 아주 시간을 달리는구나. 여하간 이번에 올리는 건 토론토 추억편. 2013년 가을에 다녀온 토론토 근교도시 스트라트포드에 관한 이야기이다.


1. 거긴 왜 갔어?

연극보러.



영국에 셰익스피어의 고향인 스트라트포드가 있다면, 캐나다 토론토 근교에는 셰익스피어를 테마로 한 스트라트포드가 있다. 셰익스피어를 테마로 하는 마을이니 당연히 극장이 존재하고, 마을이 표방하는 바대로 극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진행된다.




극 시작과 끝, 막간 타임에 고악기를 이용해서 흥을 돋궈주는 4중주단도 있다. 이것도 전통방식 그대로 따온거라고 하더라.




전부 나무로 이루어진 무대.

앞에서 두번째였나, 꽤 좋은 자리에 앉았는데도 국제학생증 학생버프 덕분에 한화로 약 2만원 남짓한 입장료만 냈다.

사실 스트라트포드 극장 홈페이지를 아무리 뒤져봐도 ISIC에 관한 내용이 없길래 좀 고민하다가 메일을 보냈더니, "당연히 국제학생증으로도 학생할인 됩니당^^" 이라는 답메일을 받았다. 그래서 학생티켓으로 예매한 뒤, 인보이스 뽑아서 극 시작하기 30분 전에 창구에 갔더니, 출력한 프린트물이 곧 티켓이란다. 극장 입장할 때 프린트물을 보여줬더니 바코드바 읽은 뒤 그냥 통과시켜줬다. 뭐야, 학생증 검사 안해!? 아니면 내가 워낙 동안(!!!!)이라 당연히 학생이라 생각하고 들여보내준겨!? 뭐여!?

아직도 그 진상은 밝혀지지 않았다...



2, 연극 어땠어?

어렸을 땐 로미오와 줄리엣이 무지 아름답고 가슴시린 사랑 이야기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그때의 그 아련함을 또다시 느끼고 싶어서 하고많은 셰익스피어의 연극 중 이 연극을 선택했었다.

그런데 스트라트포드에서 내가 본 로미오와 줄리엣은... 으허, 엄청 이기적이고 유치했다. 아니 자기네들 때문에 대체 몇 명이 죽은거야! 로미오는 왜 저렇게 찌질하고, 줄리엣은 왜 저렇게 멍청한거야!

결국 극의 하일라이트라 할 수 있는 로미오와 줄리엣이 죽는 장면에선 -_- 이 표정으로 봤고, 로미오와 줄리엣의 부모들이 얘네 죽은 거 보고 통곡할 때에서야 좀 슬퍼졌다. 토론토 돌아와서 히로미에게 연극 본 이야기를 할 땐, "Fucking couple make lots of trouble" 이란 말부터 했었다. 뭐지, 내가 바란 건 이런 게 아니었는데! 좀 더 달달하고 애절한 이야기었는데!

생각해보니, 워낙 전통방식 그대로 진행되는 극이라 더 그렇게 느껴졌던 걸지도 모르겠다. 대본도 거의 수정 없이 원작대로 갔다고 하는데, 덕분에 극의 초점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이 아닌, 몬태규 가와 캐퓰릿 가의 싸움과 그로 인해 발생한 비극에 가까웠고,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 자식들이 가문의 첨예한 대립으로 인해 희생당했다는 메세지가 강했다.

...쩝, 가문끼리의 지저분한 싸움이 아니라 둘의 달달한 사랑 이야기를 보고 싶었던 거였는데. 아쉽게 됐다.

아 한가지 더, 로미오 역을 맡은 배우가 잘생겼다. 잘생긴 배우 얼굴 가까이서 봤으니 그걸로 만족하지 뭐.



3. 마을은 어땠어?

작았는데, 굉장히 예뻤다. 사실 연극보다도 마을 둘러보는 재미가 더 컸음.



걸어가면서 보이는대로 찍었는데도 이 정도.




돌아다니다가 엄청 유서깊어 보이는 과자가게에 들어갔더니,




하아, 세상에, 여긴 초콜릿 천국이야!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달달한 냄새가 온 몸을 휘감고 돌았다. 가게에 있던 손님들은 대부분 중장년층이었는데, 다들 아이처럼 초콜릿과 사탕을 고르고 있었다. 나 역시 거기에 합류. 다양한 종류의 초콜릿을 다양한 방법으로 포장해놓은게 신기해서, 연극 보러 가기 전,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이 가게에 머물렀다.




스트라트포드에 갔던 게 쿠바 가기 전이니까, 9월 중순쯤?

9월, 정말 캐나다 동부를 여행하기 좋은 달인 것 같다. 햇살은 햇살대로 따뜻하고, 바람은 바람대로 선선하고.




요기에도 초콜릿 가게가 있넹! 동부에서 로키 마운틴 초콜릿 팩토리라니, 체인점인가?

궁금해서 방금 구글 돌려봤는데 엥, 유명한 회사였네!




마을 중심의 시청사. 길을 찾을 때엔 이 시청사를 중심으로 찾으면 편하다.




기프트점. 하, 건물 보소.




토론토 살 때 디스틸러리의 발작 자주 갔었는데, 그 발작이 여기 스트라트포드에도 있었다.




한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작은 마을이라 가게 문닫는 시간이 엄청 빠르다!

연극을 보고 나온게 다섯시 정도였고, 밥을 먹기 위해 마을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는데 연곳이 없었다. 이런 젠장!



4. 가면 안되는 음식점

추천 음식점을 적질 못하고 가면 안되는 음식점을 적는 걸 유감으로 생각한다. 진심. 근데 진짜 문을 연 곳이 없어서 음식점을 고르기는 커녕 간신히 '열려있는 곳'을 찾아 들어가야만 했다.



요 가게인데.




음식 시키면 냉동식품 전자레인지에 돌려서 나온다. 게다가 맛도 없음. 내 옆 테이블과 옆옆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 모두들 고개를 가로저으며 음식을 남기더라.

나....는 그래도 돈 낸거라 다 먹었다. 의지의 한국인.

나중에 구글 검색해봤는데 평점이 의외로 높았다. 왜지? 정말 모르겠다.



5. 퀸즈 공원

스트라트포드 마을엔 빅토리아란 이름의, 마치 강 같이 길게 뻗은 호수가 있는데, 그 주변엔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이름도 호수와 세트로 퀸즈다.



처음에 여행정보센터에 가서 '이 마을에 볼 게 뭐가 있어!?' 라고 물어봤을 때 직원이 당당하게 '우리 마을의 자랑은 퀸즈 공원이지!' 라고 말했다. 이어서 '그거 말고 또 볼 게 뭐가 있어!?' 라고 물어보자 직원이 눈길을 피하며 '퀸즈 공원을 산책하는 건 정말 즐겁지.' 라는 딴소리를 했다. 어, 그러니까 좋게좋게 정리하자면 스트라트포드 관광의 시작과 끝은 퀸즈 공원이란 말씀...

이곳에 관한 이야기는 이전 포스팅에서도 했었으니 패스.



6. 밤의 스트라트포드

지금부터 쓰는 버스 정보는 모두 기억에 의지해서 쓰는거라 약간 오류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혹시라도 스트라트포드에 가기 위해 정보를 모으는 사람들은 꼭 스트라트포드 홈페이지를 확인할 것!

이곳에 오기 위해 토론토-스트라트포드행 왕복 버스를 끊었는데, 극장에서 운영하는 버스(2시간, 가격은 10불이었나? 아마 그 정도 아니면 그 이하로 기억)라 딱 연극시간에 맞춰서 버스가 다니곤 했다.

연극은 오전, 오후, 밤, 이렇게 세 번 열리니까, 스트라트포드행 버스가 세 번 운행되고, 토론토행 버스가 세 번 운행된다. 내가 본 연극은 오후 타임. 일반적으로 가장 이상적인 플랜은 정오 즈음에 마을에 도착해서 점심 먹은 뒤 연극 보고, 연극이 끝나는 5시에 맞춰 버스를 타고 토론토로 돌아가는 것일게다. 하지만 그렇게 계획을 세워버리면 마을을 제대로 구경하지 못하는걸!

그래서 5시 토론토행 버스는 포기. 하지만 그 다음 토론토행 버스는 그 다음 연극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져 있었고, 그 시간은... 무려 밤 11시였다. 스트라트포드에서 토론토까지 두시간 걸리니까 토론토에 도착하면 새벽 1시. 새벽 1시라... TTC는 옛저녁에 끊겨있고 심야버스까진 1시간 남짓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다. 그런 개고생을 하면서까지 이 마을을 살펴봐야 하는건가!? 그래봤자 셰익스피어 테마마을에 불과한데!?

...그런데 난 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뭐, 버스티켓 끊을 땐 오후 3시면 온 마을의 가게들이 문을 닫는 마을인 걸 몰랐으니...

여하간 갈 곳도 없이 바들바들 떨며 찍은 눈물젖은 사진을 올린다. 보람없이 잘 나온 사진도 없지만.



시청사. Closed.




레스토랑. Closed.




아까 그 꿈과 희망의 초콜릿 가게. Closed. 창문에 카메라 바짝 붙여서 찍음.




시청사 보이는 거린데 그냥 다 Closed.




이 건물은 어... 어... 아마 법원 같은 걸로 기억하는데 여하간 Closed.




공원과 거리와 뭐... 모... 몰라! 다 Closed!!!!!



7. 하지만 그 마을에도 밤늦게까지 문을 여는 까페가 있었다



마을 중앙에 있는 큰 카페. 정말 고맙게도 자정까지 문을 열더라. 마을에 있던 팀 홀튼도 문을 닫았던데, 이 카페만은 문을 열고 나 같이 오갈데 없는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할 일도 딱히 없고... 커피나 핫초코 따위를 홀짝홀짝 마시며 포스팅할 글을 썼다. 여기서 Seoul BBQ 마지막 포스팅을 다 씀. 반은 업로드했고 반은 아직 하드에서 썩어가고 있다.

그러고보니 당시 기분과 상황을 대충 적어놨던 것도 있었는데...

여기는 스트라트포드. 작은 도시라 레스토랑 카페 문 졸라 빨리 닫고 호숫가에 있는 도시라 졸라 춥고 길을 헤매다 찾아낸 식당은 11.2불에 거지같은 냉동 음식을 내놓고 왓 더 호러블한 기분으로 눈여겨놨던 카페에 오니까 졸라 맛있어보이는 샌드위치를 싸게파네 뻐킹ㅠㅠ 그지같은 음식으로 배를 채워서 먹지는 못하고 커피만 드링뻐킹ㅗ


...상당히 분노에 차있었네.



8. 그래서 그 끝은

어떻게 집에 갔더라? 기억이 잘 안나서 컴퓨터를 좀 뒤지다가, 하숙집 들어가서 썼던 글을 찾아냈다.

새벽 1시 2시에 던다스 가면 던다스 광장 물청소하는거 볼 수 있다. 청소하는걸 보고 있으면 10분에 3명 꼴로 거지들이 찾아와 잔돈 있냐고 소시지 사달라고 구걸한다. 미드나잇 버스는 안오지 이상한 사람들이 자꾸 말걸지 짜증나서 칼리지 역까지 걸어갔다. 나 유니온에서 칼리지까지 걸어다니는 여자임. 칼리지 가서도 이상한 사람들이 달라붙길래 세븐일레븐 들어가서 과자 사먹음. 후드 뒤집어쓰고 음침하게 과자 먹고 있으니까 알바생이 무서워함. 여튼 기이한 경험이었지만 두번은 안겪을거임 뻐킹 TTC 니네는 좀 더 영라인 버스 시간대를 늘려야 돼. 그래도 미드나잇 버스 덕분에 집왔네 하...


어... 별로 안좋았네.


그러니까 거기 스트라트포드에 나랑 비슷한 일정으로 고민하고 있는 당신, 오후 5시에 버스 타고 토론토로 돌아가세요.

제목은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러가다' 인데 '추위와 거지에게 시달린 당일치기 스트라트포드' 를 업로드해서 죄송합니다.


덧글

  • 키르난 2014/04/09 08:33 # 답글

    뭐랄까, 야간 개장하지 않고 그냥 3시면 다 문닫는 그런 테마파크를 보는 느낌..?; 모 온라인 게임에서도 셰익스피어의 극장을 모티브로 만들어 놓은 마을이 있었는데 딱 그 분위기입니다. 왜냐면 거긴 날마다 낮이지만 대신 여는 가게가 없기 때문에..(이봐;;;) 극장 외엔 다 닫혀 있는 게임 마을이었거든요. 하하하;
    하여간 로미오와 줄리엣은 민폐 커플 맞습니다. 무엇보다 둘다 중딩이잖아요.ㄱ-;
  • enat 2014/04/15 05:14 #

    아아아 맞아요 3시면 다 문닫는 테마파킄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야간개장을 손꼽아 기다렸던 저같은 소시민은 버스도 없는 마을에서 추위에 떨다가 먼지가 되어 사라져버림 어ㅓ허엉ㅎ엉엉
    완전 뻐킹민폐커플 맞죠 로미오와 줄리엣....어 근데 그렇게 어렸었나요!? 주... 중딩이라니.... 중딩의 러브러브 때문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은거구나...
  •  R    2014/04/09 11:20 # 답글

    제작년에 스트렛포드 갔었던게 생각나네요. 차를 타고가서 근처 st.jacobs도 갔었는데 거기도 아기자기한 작은 마을이였던걸로 기억해요.(하지만 여행으로는 그닥 비추)
    보니까 캐나다 워홀가셨던거같은데 여행많이 하시고 부럽네요 ㅠㅠ 제가 워홀했을때는 여행많이 못했던게 왜케 아쉬운건지 ㅠㅜ
    암튼 포스팅 잘보고 있습니다. 다시 토론토 가고 싶어요ㅎㅎ(저도 유니언스테이션에서 영앤블루어까지는 걸어다녔답니다 ㅋㅋ)
  • enat 2014/04/15 05:18 #

    아앗 저 st.jacobs도 가고 싶었는데 전 차가 없어섴ㅋㅋㅋㅋ 걍 셔틀버스 다니는 스트라트포드만 갔어요. 아기자기한 마을 짱 좋아하는데.. 힝... 운전면허....
    토론토 떠나기 전이랑 떠난 후 쿠바 정도만 여행하고, 지금은 또 그랜드 프레리에서 집-일-집-일의 생활만 반복하고 있답니다. 돈 씽나게 모으고 또 여행 떠나야죠!
    의외로 유니언에서 블루어 사이가 짧더군요 ㅠㅠ 한참 토론토 뉴비였을때 역간 간격을 잘 모르고 킹-퀸 지하철 탄 적이 있습니다. 물론 패스권이긴 했지만... 오르락 내리락하는 시간에 ttc 기다리는 시간 합치면 걷는거보다 더 느렸을 듯...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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