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5/08 07:58

쿠바 배낭여행 (27) 쿠바에서 가장 성스러운 마을 ├ 쿠바 배낭여행 (2013)

산티아고 셋째날. 까사에서 아침을 해결한 뒤 바로 길을 나섰다. 오늘은 산티아고 근교 쪽으로 나가볼 예정이다.




산티아고에서 서쪽으로 20km 정도 떨어진 작은 마을 엘 코브레는 쿠바에서 가장 성스러운 지역으로 알려져있다. 전 날 존에게 엘 코브레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뒤 집에 와서 론리플래닛을 찾아봤었는데, 엘 코브레의 대성당에는 적절하게 현지화된 성모의 성상이 모셔져 있다고 했다. 그걸 보기 위해 많은 기독교 신자들이 엘 코브레를 찾는다나.

나야 독실한 기독교 신자는 아니지만, 외국의 종교가 현지 문화와 잘 융화된 케이스를 보고 싶어서 찾아가보기로 했다.




위 사진은 엘 코브레로 가는 지역 버스 시간표. 2013년 10월 기준임.

엘 코브레까지 가는 다양한 방법 중, 내가 선택한 건 지역 버스였다. 산티아고 첫 날, 모로성에 가기 위해 그 무지막지한 트럭 버스도 탔는데 지역 버스 쯤이야! 자신감 폭발 상태로 버스를 타러 갔다.

엘 코브레행 버스를 탈 수 있는 버스 터미널은 de Los Libertadores 거리의 몬카다 병영 맞은편에서 더 북쪽으로 올라간 지점에 있다.




엄청 꼬질꼬질했던 버스 터미널. 터미널 입구엔 신발에 묻은 흙을 터는 망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거기에 흙을 털면 옆에 앉은 사람이 팁을 요구하는 요상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 망은 입구 한가운데에 놓여져 있어서, 신경쓰고 걷지 않으면 누구나 그 망을 밟아버려 돈을 내야만 했다. 하지만 난 들어가기 전에 봤다. 옆에 앉은 사람이 '치나'인 날 보고 망을 노골적으로 내 앞에 가져다놓는 모습도 봤다. 음, 이걸 어떡할까...

그냥 껑충 뛰어넘었다. 그런 날 황당하게 쳐다보는 망 주인. 뭐, 왜, 뭐. 내 신발은 깨끗하다고. 털어낼만한 흙도 없다고.

따가운 시선을 무시하며 정보를 모으기 위해 곧바로 버스 창구로 갔다. 하지만 창구에는 아무도 앉아있지 않았고,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현지인들만 개별적으로 상대하고 있었다. 수다를 떠는 건지, 질문을 받는 건지... 스페인어를 몰라 말 걸기 어려운 가엾은 동양인은 창구에서 헛기침을 하며 기다렸지만 직원들은 한 번 흘낏 쳐다보기만 하고 아는 척도 하지 않았다. 으음, 어쩔 수 없군.

나 : 엘 코브레. 엘 코브레? 엘 코브레!

난 엘 코브레만 외치며 부스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고, 그러자 가장 짬밥 덜 먹은 듯한 직원 하나가 현지인과의 질답 혹은 수다를 끝낸 뒤 날 상대해줬다. 다음 엘 코브레 가는 버스는 조금 있으면 출발한다, 그러니까 저쪽 자리 가서 앉아있다가 엘 코브레 부르는 소리 들리면 나와라, 행운을 빈다 정도의 내용의 바디랭귀지를 선보이는 직원. 어썸! 고맙다는 표현을 하고 자리를 하나 찾아 앉았다.

귀를 쫑긋한채 10분 정도 기다렸나. 버스 안내양 같은 사람이 '엘 코브레'를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남과 거의 동시에 쪼르르 달려가 엘 코브레? 엘 코브레? 하고 물어보며 재차 확인했고, 그 안내양은 지금 문 밖으로 나가면 된다고 알려줬다.

건물 밖으로 나가자 펼쳐진 쿠바 현지 버스 터미널의 진풍경... 그 충격은 신도림역에 처음 내렸던 날과 비슷했다. 서로 다른 나라에서 수입된 낡은 버스들이 건물 밖 공터 이곳저곳에 세워져 있었고, 무수한 승객들이 자기가 가고자 하는 지역행 버스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무슨 소린지 알아먹을 수 없는 쿠바인들의 스페인어가 내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주변 환경에 정신줄을 놓지 않으려 주의하며 아까 '엘 코브레' 를 외쳤던 안내양을 놓치지 않고 졸졸 쫓아갔더니, 엘 코브레로 가는 작은 버스에 탑승할 수 있었다. 버스비는 3페소. 느긋한 쿠바인들 사이에서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는 한국인(나)은 다행히도 좌석에 앉을 수 있었다.

그런데...



레알!

어떻게!? 

줄 서 있던 그 많은 사람들이 다 탑승했다! 한 명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인천-서울 출퇴근시간 급행열차를 타고 다녔던 나에게도 엄청 컬쳐쇼크였다. 우와, 저기 저 아줌마 창문에 눌렸네. 우와, 저기 저 남자 다리가 어디 가있는 거지. 상대적으로 왜소한 내가 저 인파에 끼었다면 말 그대로 햄버거 속 패티가 됐을거다. 자리에 앉아서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지구 반대편에서 온 꼬맹이가 컬쳐쇼크를 받든 말든, 승객들을 다 태운 버스는 느긋하게 길을 달려갔다. 대부분의 승객들이 산티아고 - 엘 코브레 선상의 중간 정거장에서 내렸고, 난 정말 외진 정거장에서 짐을 한보따리 들고 낑낑거리며 하차하는 사람들을 보며 각각의 사연에 대해 상상해나가기 시작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시간을 때우다보니 어느새 종점, 엘 코브레였다.




내가 타고 온 버스는 요 버스. 다시 생각해도... 저 작은 버스에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이 탔던건지... 후...




버스에서 내리자 관광으로 먹고 사는 나라다운 컬러풀한 표지판이 날 맞이하고 있었다.

다른 곳들은 잘 모르겠고, 일단 내가 가려는 대성당, 번역하자면 코브레 성지 Santuario del Cobre 라고 표기된 곳은 버스 진행방향의 오른쪽으로 가면 된단다. 길 찾기 쉽네. 안심하며 느긋하게 걸어갔다.




하지만 역시 '치나'라서인지, 금새 현지인들의 관심을 독차지하게 되었다. 길을 안내해주겠다는 아줌마부터, 사진을 찍어줄테니 여기 서보라는 아저씨에, 어디서 왔고 나이는 얼마냐고 자꾸 캐묻는 동네 오빠까지. 성당까지 가는데 땀을 뻘뻘 흘렸던 건 더운 날씨 때문만은 아니었다. 




여러 사람들의 관심을 정중히 사양하며 걷기를 수 분. 드디어 목적했던 대성당이 눈 앞에 펼쳐졌다.




코브레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 Basilica de Nuestra Senora del cobre.

마을의 언덕이라는 지형적 이점과 그 위에 쌓아올린 계단이라는 인위적인 설계 덕분에, 성당으로 오르는 길은 하늘로 오르는 길 같았다.




간결한 외관 양식, 깔끔한 베이지색, 포인트인 지붕과 층 사이의 자주색 도색. 버스 안에서 상상했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현대적인 느낌이었다.

외관이 베이지색이 아니라 흰색이었더라면 더 좋았을텐데. 라고 리차드 마이어의 팬이자 백색 예찬론자는 생각했다.




그럼 요런 느낌?

어... 생각했던 것보단 그닥 와닿진 않네.




성당 내부로 들어섰다.

혹시 외관처럼 베이지색 도색을 해놓은 건 아닐까 싶었는데, 내부는 온통 하얀색이었다.




들어가자마자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제단에 놓인 성상도, 사람들에게 축복 기도를 해주고 있던 신부님도, 알록달록한 장식도 아니었다. 창문이었다. 이곳의 창문은... 스테인드 글라스는... 열린다! 그것도 360도 회전을 해가면서 말이다!

하긴 날씨가 워낙 더운 지방이라, 암만 아름다운 스테인드 글라스라 하더라도 일단 본질은 '굳게 닫힌 유리 창문'이니, 온실효과를 일으켜 감동하기도 전에 쪄죽겠다. 저 큰 건물을 에어컨으로 커버할 수 있을리는 없을테니, 결국은 통풍 잘되는 설계만이 답. 지역적인 환경에 맞춘 코브레 대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는 꽤 신선했다.




이렇게도 열리고, 저렇게도 열리고.




밖에서 보면 요렇고.




문도 열리고.

어, 근데... 내가 천주교 신자는 아니고 그냥 이 나라 저 나라 큰 성당 구경만 하고 다녔던 사람이라, 스테인드 글라스는 당연히 개폐 장치가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긴 한데... 그게 아니라면 덧글로 '원래 성당 창문 열리는데 님 모르셨나 보네여^ㅂ^' 라고 비웃어주삼.




교회 한 켠, 테이블에 아슬아슬하게 올려진 촛불들. 소방관의 딸은 그나마 목재 건물이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생각부터 했다.




아까부터 계속 엘 코브레, 코브레 성당, 코브레 성지 어쩌구 저쩌구 했었는데, 코브라와 비슷한 어감 때문에 뭔가 간사하고 능글맞은 이미지가 연상됐을지도 모르겠다. ....음, 나만 그랬나?

여튼 '코브레' 라는 이름에 제대로 된 설명을 덧붙이자면, 원래 '코브레'는 구리라는 뜻의 스페인어다. 쿠바가 식민지화 된 이후, 이 근방에 구리 광산, 그러니까 코브레 광산이 개발되어 흑인 노예들이 많이 끌려왔다고 한다. 그 노예들 중 후안 모레노라는 흑인 노예 소년이 겪은 에피소드가 이곳을 성지로 만들었다.

그렇게 거창한 에피소드는 아니다. 요약하자면 후안 모레노가 형의 부부와 함께 셋이서 작은 배를 타고 가다가 폭풍에 휘말렸는데, 그 때 아기 예수를 안고 황금빛 옷을 걸친 검은 얼굴의 성모가 나타나 그들을 구해줬다는, 지구상의 다른 어딘가에도 꽤 있을법한 수준의 에피소드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건 내용이 아닌, 그들을 구해준 자가 '검은 얼굴' 이었다는 거다. 검은 얼굴의 성모라, 노예로 끌려온 흑인들의 울분이 느껴지는 대목 아닌가. 그들을 노예로 만든 백인들의 성모를 자신들의 수준으로 '끌어내린' 거니까. 뭐, 아니면 그조차도 흑인들의 정서를 간파한 선교사들의 적응주의적 선교방식의 일환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여하간 이 일은 훗날 후안 모레노 본인이 남겼다는 문서 덕분에 세상에 알려졌고, 문서가 작성된지 50년이 지난 1738년, 엘 코브레에는 성당 하나가 세워진다. 그 성당이 바로 현재의 코브레 성모 마리아 대성당이다.




후안 모레노가 목격했던 검은 얼굴의 성모상은 성당에 모셔졌고, '은총의 성모 La Caridad' 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후 교황 베네딕토 15세가 은총의 성모를 쿠바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했고, 교황 바오로 6세는 이 성당을 대성당의 범주에 올렸다.




은총의 성모상 진품(?)은 이 성당에서 모시고 있으며, 쿠바의 수호성인이라는 타이틀을 획득한 덕택에 쿠바 전역의 대성당에선 성모상 모조품(?)을 모시고 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종교와 관련된 각종 포스터, 벽화 등에서도 은총의 성모 라 카리다드를 찾아볼 수 있다.

뭐, 그건 나중에 차차 여행기를 쓰다보면 나올테니 패스.




성모상을 구경한 뒤, 성당을 한바퀴 빙 둘러 걷고 있는데, 성당 왼편 복도에서 성수 El Agua Bendita 를 배포하는 모습이 보였다. 다들 빈 패트병을 들고 성수를 담아가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음, 성수... 마시는 용도인가? 원래 손 닦는 물 아닌가? 혼란스럽군.

나도 목이 말라서 갖고 있던 패트병에 담아갈까 했지만, 줄이 생각보다 길어 그냥 생수 Ciego Montero 나 사먹기로 했다.




어정쩡한 포즈로 신부님(사제인지, 추기경인지, 주교인지... 잘 모르겠지만 여튼 빵모자에 하얀 옷을 입은 분이었음)에게 축복을 받은 뒤, 성당 밖으로 나왔다. 성당이 위치한 곳은 높은 언덕이라 경치는 참 좋았다.




달리 할 일은 없고... 성당 주변이나 둘러볼까.




아무 생각 없이 성당 옆 동상 앞(심지어 누구의 동상이었는지도 기억이 안난다. 뭐.. 음.. 교황?)에 서있었는데, 한 유럽계 배낭족처럼 보이는 청년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음, 뻔하다.

배낭족 : 저기... 사진 좀 찍어줄래?
나 : ㅇㅇ


아무렇지도 않게 사진을 찍어줬더니 나보고도 동상 옆에 서보라는 배낭족. 어, 글쎄, 역광인데, 난 됐는데, 이미 셔터 눌렀네.




어차피 역광이라 별 기대 안하고 카메라를 받은 뒤 헤어졌는데... 오! 그림자의 방향을 보면 알잖아, 완전 역광이라고 이거. 근데 배경도 사물도 제법 뚜렷하게 나와있었다. 이 배낭족, 보통이 아닌 걸!

한 장 더 부탁하려고 뒤를 돌아봤지만 그 배낭족은 이미 어딘가로 사라져있었다. 에잉.




성당 뒷마당에서 바라본 풍경.




난 요 각도가 참 좋더라.




땡볕 아래에서 사진도 찍고 구경도 하다보니 탈수가 온다. 띵한 머리를 부여잡고 그늘에 놓인 돌의자에 주저앉았다. 으아, 진짜 잠깐 주변부를 둘러봤을 뿐인데 땀을 너무 많이 흘렸어.




성당 내부로 들어가서 기도하는 척 자리에 앉아 한숨 돌린 뒤, 다시 밖으로 나와 계단을 따라 터덜터덜 내려갔다.

쿠바에서 가장 성스럽다는 곳, 쿠바의 수호성인이 모셔져 있는 대성당, 흑인 노예의 입으로부터 알려지게 된 검은 얼굴의 성모. 잘 봤다.




뭔가 아쉬워서 다시 뒤돌아 사진 한 장 찰칵.




다시 버스 정류장으로 돌아가는 길. 역시 많은 이들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성모 보고 왔냐, 어땠냐, 멋지지 않냐, 이 기념품 아주 효험이 있는데 사봐라, 축복 받은 물건이다, 블라블라블라. 적당히 네, 네 받아주며 걸었다.




버스 정류장이 있는 마을 중앙으로 돌아왔다. 여기서 딱히 더 할 일도 없고, 다시 산티아고로 돌아가볼까. 느긋하게 그늘에 앉아 버스를 기다렸다.




자리에 앉아 느긋하게 기다리려고 노력했지만, 여행을 가서 어딘가 구경다니고 걸어다니지 않으면 안되는 병에 걸려 있어서 5분도 지나지 않아 다시 일어나 버렸다. 그래도 버스를 놓치면 안되니까, 정류장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마을 입구에서 발견한 동상. 아까 위에서도 설명했던 코브레 광산에서 일하는 광부의 동상인가 보다. 어쩌면 검은 얼굴의 성모를 봤다는 후안 모레노라는 흑인 노예 소년의 동상일지도 모르고.

사진을 찍으려는데, 근처에서 노닥거리던 아저씨가 날 보더니 얼른 동상으로 달려가 폼을 잡았다. 그것도 엄청 내추럴한 포즈로. 이걸 어째야하나 고민하다가 빨리 찍으라는 아저씨의 손짓에 한 장 찍어서 보여줬더니, 고맙다며 엄지 손가락을 추켜세웠다.

...다행이지만 모델값 달라는 소리는 안하더라. 존에게 '돈에 눈을 켜고 달려드는 건 도시 센트럴의 사람들이야. 우리는 원래 그러지 않아' 운운의 이야기를 들은지 이틀도 지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 동안 쌓아올린 편견 때문에 한 10초간 아저씨를 경계했었다. 돈 달라면 어쩌지? 팁인지, 모델값인지, 여튼 그런거 달라면 어쩐담. 그 10초 동안의 의심 때문에 너털웃음 지으며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떠나는 아저씨에게 좀 미안했다.




아저씨와 헤어진 후, 몇 분 지나지 않아 산티아고로 돌아가는 버스를 탄 나.

음? 버스 내부가 좀 이상하지 않냐고? 창문이 없어 보인다고?




이상한 게 당연하다. 내가 탄 건 버스가 아니라 트럭이었다.

다시 버스 정류장으로 돌아와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정류장에서 10m 정도 떨어진 곳에 트럭 한 대가 정차했다. 그러자 버스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다들 일어나 그 트럭을 향해 걸어갔다. 어, 어? 왜 트럭으로 가? 버스는? 다들 버스 기다리는 거 아니었어?

나는 쭈뼛쭈뼛하며 인파를 따라 트럭 앞에 섰고, 돈을 걷는 흑인 소년이 '산티아고?' 라고 묻는 질문에 '사, 산티아고..' 라고 대답했다. 얼른 타라는 손짓에 '나 버스 기다리는데...버, 버스?' 라는 소심한 질문을 던졌지만 흑인 소년은 '이게 버스야' 라는 대답을 돌려줬다.

어... 이게 버스래... 그럼 타야지...




버스 값인 1페소, 한화로는 40원 가량 되는 돈을 지불한 뒤, 멍한 채로 붙잡을 것 없는 트럭 트렁크에 서서 비틀대자, 좌석이라고 하기엔 협소한 묘한 난간? 발디딤판? 같은 곳에 앉아있던 쿠바 사람들이 서로 당겨 앉아 자리를 만들어줬다. 덕분에 앉을 수는 있었다. 하지만 충격이 고스란히 전달되어 허리가 장난 아니게 아팠다.

덜컹거리는 트럭에 앉아 뻐근한 허리를 붙잡고 생각해보니, 정규 버스 편이 적어 스케줄 사이사이마다 그 노선 그대로 사설 버스, 아니 사설 트럭이 다니는 듯 했다. 받는 돈도 버스보다 3배나 싼 가격 (그래봤자 120원에서 40원으로 줄은 거지만) 이니까, 그렇게 밖에 설명이 안되는걸.

그건 그렇고, 트럭을 또 타게 되다니. 만약 흥정의 귀재 존과 함께였다면 열배 정도 되는 값, 단 돈 400원으로 조수석에 앉을 수 있었을텐데. 허리에 가해지는 충격이 커지면 커질수록 존의 부재가 아쉽게 느껴졌다. 트럭 트렁크는 허리가 너무 아프다...




어느새 산티아고 시내 진입.

산 저편에서 아스라히 나타나는 산티아고 데 쿠바의 모습은 쪼끔 멋졌다. 트럭이 요동을 쳐대서 사진은 못찍었지만.




트럭 안에서 찍은 알 수 없는 건물. 왜 찍었지? 정말 알 수 없다. 그런 주제에 또 제법 잘 찍었어...




트럭 버스는 정규 버스 터미널의 50m 정도 떨어진 지점에 가서 멈췄다. 사람들이 다 빠져나가 텅텅 빈 트렁크 안. 사진을 찍고 있자 돈 걷는 흑인 소년이 날 굉장히 희한한 눈으로 쳐다봤다. 그치만, 신기하다고. 한국엔 이런 거 없다고.




이게 내가 탄 트럭! 저녁에 존을 만나서 자랑하려고 사진 찍어 놨다. 자랑... 뭐 자랑일 것 까진 없지만 혼자 트럭 타고 엘 코브레 다녀왔다고 하면 역시 노련한 여행자라고, 현지인처럼 잘 다녔다고 우쮸쮸 칭찬해 줄 것 같다.


뭐 여튼, 쿠바에서 가장 신성한 곳에 다녀오긴 했는데 몸이 건강해지고 마음이 맑아지기는 커녕 요통이라는 통증만 얻어가지고 돌아왔다. 그래도 한화 160원이라는 눈부신 가격에 성지 순례 다녀온거니 그걸로 위안을 삼아야겠다.



더 이상 나에게 사기는 안통한다 (가제) 편에서 계속!





덧글

  • 찬영 2014/05/08 08:41 # 답글

    역시 재미있네요 ㅋㅋㅋㅋ 160원에 성지순례라 ㅋㅋㅋ 유럽에서는 상상도 할수 없네요 ㅋㅋㅋㅋ
  • enat 2014/05/08 14:00 #

    쿠바에서만 가능한 160원 성지순례! 사은품은 요통입니다!
  • 제이미양 2014/05/08 09:59 # 답글

    재밌네요..ㅎㅎ 쿠바라는곳이 어떤곳인지는 책을 통해 여러번 알긴했지만, 아직 쿠바 여행은 제겐 모험과도 같은 것인지라..
    이렇게 블로그를 통해 또다른 멋을 경험하게되네요...
    예전에 홍대에 쿠바술집(?)이라고해야하나..이곳에 가서 쿠바음악을 조금 맛보았는데..생각나네요..ㅎㅎ
    글과 사진 정말 잘보았습니다. 저도 나중에 쿠바라는 곳에 한번가보고 싶네요..ㅎㅎㅎ
  • enat 2014/05/08 14:03 #

    생각하고 계신 쿠바에 대한 낭만, 로망을 깬 건 아닐지 걱정이 조금 되긴 하지만... 재밌게 읽어주셨다니 다행이네요 :)

    쿠바는 한 번 가보기... 하아... 여행하기 참... 괜찮은... 아니 괜찮진 않지만...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제 안의 쿠바성(?)이 엄청 혼란스러움... 여튼 다양한 경험을 겪을 수 있고 여러가지 생각을 들게 한다는 점에서 좋은 여행지인 것 같아요 ㅋㅋ
  • 키르난 2014/05/08 10:06 # 답글

    저 트럭 말입니다... 아무래도 강원도에서 종종 목격되는 군용트럭과 닮았네요.-_- 사람을 듬뿍(...) 싣고 가는 트럭인데 가끔은 학생들도 실어 나릅니다.(어?)
    하여간 저 성당은 내부가 상당히 작아보이는데, 크네요. 작지만 큰 성당이라는 생각이 모락모락. 여러 성당을 다녀보지 않아서 확신은 안서지만 스테인드 글라스가 저렇게 열리는 건 처음보았습니다.'ㅂ';;;
  • enat 2014/05/08 14:06 #

    아... 그럼 군용 트럭 개조해서 만든 건가!? 어쩌면 저것도 강원도 어딘가에서 흘러흘러 쿠바까지 수입된 트럭일지도 모르겠군요. 으음, 방심할 수가 없어, 쿠바... (!?)
    그쵸! 스테인드 글라스가 360도 회전을 하더라니까요! 덕분에 바람이 슝슝 들어와 내부는 시원하고 쾌적하더군요.
    성당 전면부만 보면 작아보이는데, 뒤로 길게 뻗어서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게 되어있더군요. 언덕에 달랑 놓여있으면서도 길에선 전면부만 보이니 원래보다 훨씬 더 작아보이는 것 같아요.
  • 눈아찌 2014/05/08 13:07 # 삭제 답글

    흑인 성모라...
    기독교가 더이상 백인의 종교가 아니라 쿠바인의 종교가 된 셈이군요
    뿌리는 같지만 똑같지는 않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죠
    창세기에서 사람을 창조할 때 신의 모습과 닮게 빚었다고 했으니
    아랍권이 아닌 아프리카에서 검은 피부의 예수나 하얀 피부의 악마를 믿는다는 말이 생각나네요
    사람은 자기가 비슷한 구석이 있는 사람에게 맘을 여는 것 같아요

    언젠가 여행기에 enat님이 포옹을 받아줄 남자가 나타나길 기대해 봅니다♥
    - 이 정도면 쓸모있는 하트죠? ^^
  • enat 2014/05/08 14:11 #

    흑인성모. 놀랍죠! 타지의 종교가 들어와 그 나라의 문화와 사람들에 맞게 현지화된거라, 굉장히 마음에 들었어요.
    사실 우리나라 기독교도 일제시대나 한국전쟁 등의 비극으로 인한 시대의 단절만 없었다면, 한옥 교회나 갓을 쓴 예수님 초상화 같은 게 있었을지도 모르니까요. 그랬다면 전통문화와 어우러져 훨씬 더 자연스러운 포교가 됐을 것 같기도 하고...

    음.... 제 포옹을 받아줄 남자? 제 여행기는 그런 상상속의 동물은 취급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트에 대해서라면... 이제 눈아찌님이 다는 하트는 어디에 달려도 태클을 걸고 싶어집니다! 이미 태클로 적응됐어요!
  • 눈아찌 2014/05/08 14:45 # 삭제

    오오~ 달달한 여행기에 톡 쏘는 태클까지 달리는 건가요?
    기대됩니다
    바쁘고 힘든데 그런 배려까지...
    감동입니다 ^^♥
  • enat 2014/05/18 10:09 #

    아니 무슨 소리야! 배려가 아니라구요! 멋대로 감동받지 마시라구요 흥칫쳇!
  • Mr 스노우 2014/05/13 11:41 # 답글

    오랜만에 로그인해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ㅎㅎ 정말 대단하네요ㅎㅎ
    그동안 너무 바빠서 들어오지를 못했는데 밀린 여행기 앞으로 천천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
  • enat 2014/05/18 10:11 #

    오! 오랜만입니다 스노우님 ㅠㅠ 잘 지내셨나요.
    정말 할일없어서 심심해 미칠 것 같을 때, 혹은 불면증으로 시달릴 때 읽기 좋은 여행기입니다. 읽다보면 잠이 오거든요... 제가 그러함... Zzz
  • kate 2014/06/17 22:32 # 답글

    무교인 사람에게 그저 성당은 예쁜 건축물 정도로만 보이네요 ㅎㅎ
    문화를 이해하려면 종교의 역사를 이해해야한다고 하지만
    전 성모와 성당보다는 파란 쿠바하늘이 더 부럽네요 ㅎㅎ
  • enat 2014/06/20 13:42 #

    예쁜 건축물 정도로만 느껴져도 설계자 의도의 어느정도는 들어맞으신 것 같은데요!
    그나저나 저 파란 쿠바하늘에 속으시면 안됩니다.
    저 시퍼런 하늘과 함께, 바로 머리 위에서 작열하는 태양은... 으으 혼이 나갈 정도로 덥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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