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1/10 21:36

남미여행 (2) 멕시코 : 센트로 이스토리코 역사지구 ├ 남미 배낭여행 (2014)

멕시코 시티 첫 번째 날. 

사실 두 번째 날이어야 하지만, 전 날 비행기 결항과 지연 덕분에 멕시코에 자정을 넘겨서 도착했기에 여전히 첫 번째 날.

멕시코 시티와 캐나다에서 살던 도시와의 시차는 딱 1시간 뿐 - 그것도 빠른 쪽으로! - 인데, 평소 기상 시각보다 훨씬 이른 시각에 눈을 떴다. 익숙치 않은 베개와 천장 때문이려나. 뭐, 좀 더 누워있을까 하다가 정신이 점점 말똥말똥해지길래 그냥 일어났다. 

숙소에는 여전히 사람이 없었다. 관리자는 언제 출근하나? 인기척 없는 3층짜리 건물에 혼자 있으려니 좀 무섭다. 빨리 나가야겠다.

대충 나갈 준비를 마치고, 어쩐지 숙소 이곳 저곳에 잔뜩 놓여있는 전신 거울들을 향해 씨익 웃은 뒤 (다녀오겠다는 말을 할 상대가 없어서 거울에 비친 나에게 인사한거다) 숙소 밖으로 터덜터덜 나섰다.

일단 제일 먼저 해야할 건... 역시 돈과 교통편이지.

숙소 근처의 레포르마 거리 환전소에서 환전을 한 뒤, 지하철 역에서 교통카드를 구했다.




일단 교통카드는 역 근처 무인기계에서 샀다. 그런데 도통 이 카드에 돈을 어떻게 충전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바디 랭귀지로 사람들한테 물어보니 창구에 가면 충전을 할 수 있다더라. 아니, 보통은 카드 파는 기계에서 충전도 가능한 것 아냐? 저 기계는 카드만 내뱉고 끝인가? 그럴리야 없겠지만 다들 창구로 가라고들 하니... 창구에서 충전하는게 안전하겠지.

창구 앞에 늘어선 줄에서 얌전히 기다리자 내 차례가 왔다. 카드와 100페소 (8천원 정도) 짜리 한 장을 내밀었는데 창구 여직원이 뭐라고 말한다. 스페인어다. 당연히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아, 뭐라는거지? 빈 카드랑 돈 줬잖아. 그냥 그 돈을 빈 교통카드에 넣어달라구... 난 어리둥절해하며 '충전, 충전'을 연거푸 말했고, 그 여자도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반복했다.

도통 넘어설 수 없는 언어의 장벽 때문에 진땀을 뻘뻘 흘리며 "아니, 그냥 카드 충전 해달라니까!" 를 한국말로 외치고 있는데, 그걸 보고 있던 한 멕시코 청년이 다가왔다. 오, 얘는 짤막하게나마 영어를 쓴다.

"음, 저 여자는, 네가 얼마 충전할지를 물어보고 있는거야."
"아, 과연! 고마워."
"얼마 넣어달라고 할까? 내가 말해줄게."
"전부 다! 그냥 내가 준 100페소 다 충전해 달라고 말해줘."


여직원은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이며 내 카드를 충전기에 꽂아넣었다. 그리곤 99페소를 충전해 준 뒤 1페소를 거슬러줬다. 교통카드는 한 번에 99페소 충전하는 게 최대라고 하더라. 헤, 한도가 엄청 낮네.




여행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창구에서 왜 그렇게 "그러니까, 얼마 충전하고 싶은데!" 를 강조해서 캐물었는지, 교통 카드의 1회 충전 한도가 왜 그렇게 낮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멕시코 시티에 머무는 동안 지하철을 꽤 많이 탔는데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많은 양의 돈이 카드 안에 남은 것이었다. 알고보니 요 도시, 교통비가 매우 저렴 (메트로 1회 4페소, 한화로는 약 3~400원) 하다. 카드에 100페소나 넣을 필요가 없던 거였다!

멕시코를 떠나면서 이 잔액 남은 교통카드를 어쩔까, 기념으로 가질까, 아무 멕시코인에게나 넘길까 등등으로 고민하다가 캐리어 한 구석에 넣어둔 채 새까맣게 잊었었는데, 나중에 칠레에서 만난 여행자 한 분이 몇 주 뒤에 멕시코를 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급 생각나 그 분에게 카드를 넘겼다. 잘 쓰셨으려나.



...쭉 써내리다가 스크롤을 올려 다시 읽어보는데... 아니 뭔 교통카드 충전 얘기를 이 따위로 길게 쓴 거야? 한 줄이면 끝나잖아? "교통카드 충전하는데 스페인어 몰라서 어버버하니까 지나가던 멕시코 훈남이 도와줬다 난 정말 운도 좋아" 라고 쓰면 될 것을... 난 쓸데없는 이야기를 늘려먹는 재주가 있나보다.

이렇게 쓰다간 포스팅 하나 하는데 며칠이 걸릴 것 같으니, 지금부턴 호흡을 좀 빠르게 해보겠다! 우여곡절 끝에 얻은 교통카드로 메트로를 이용하여 처음으로 가게 된 곳은 센트로 이스토리코 (Centro Historico) 였다. 여기가 어떤 곳이냐면... 그... 이름에 다 나와있군.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역사지구. 서울로 따지면 종로 같은 느낌이다.




사실 이 동네에 뭐가 있는지 알고 간 게 아니다. '센트로 이스토리코' 란 이름도 지금 포스팅 하면서 알았다. 원래부터 알았던 척 하며 자연스럽게 넘어가려고 했지만 뒤로 갈수록 지식의 얕음에 글이 막혀 그냥 사실대로 쓴다. 출발하기 전까지 일하느라 여행지에 대해 공부할 시간도 없었고, 그 흔한 가이드북도 수중에 없었다. 밴쿠버에서 론리플래닛을 구입하려고 했는데 까먹고 비행기 탔다.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스마트폰만 잘 이용하면 괜찮았을텐데, 멀쩡하던 폰이 여행을 시작하며 맛이 가버렸다. 차라리 완전히 고장나면 새로 살텐데 정보 검색 이외론 정상적으로 잘 작동하는 어정쩡한 상태라 그냥 들고 다녔다. 트립 어드바이저로 뭔가 확인하고 싶은데 인터넷 창이 자꾸 꺼져... 아 몰라 귀찮아...

하여간 요약하자면 난 이 낯선 도시에 대해 일반적인 상식 외엔 아는게 없는, 완전 무지한 상태였다는 거다.




그러니 늦었지만 여기서 밝힌다! 지금부터 시작되는 센트로 이스토리코 탐방기는, 단지 새로운 곳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 (머리가) 순수한 소녀 - 늘 강조하지만 나다, 진한 소녀감성을 가졌으니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난 소녀라고 - 의 눈으로 진행된다.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얻고 싶으신 분이 계시다면 잘못 들어오신거니 참고하시길 바란다.

아... 또 쓸데없이 말이 길어졌다. 지금부턴 호흡을 진짜 빠르게 해보겠다(2)!


그래도 외출하기 전, 하나 정도는 알고 나가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아침에 숙소 와이파이를 연결하여 대충 찾아보니 멕시코 시티의 중심지는 소칼로 광장이란다. 거기에 가면 인포메이션이 있겠다 싶어 그곳을 첫 목적지로 정했다. 메트로를 이용하여 소칼로 Zocalo 역으로 갔고, 역에 내려 광장으로 나가자 다행히도 진짜 인포메이션이 있었다. 그곳에서 멕시코 시티 지도를 받았고, 새빨간 볼터치의 직원으로부터 꿀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아니 뭐, 평범한 여행 정보일테지만 무정보상태인 나에겐 새빨간 볼터치의 직원의 입에서 나오는 한마디 한마디가 꿀과 같았다.

새빨간 볼터치 - 세 번이나 반복할 정도로, 몇 달이나 지난 지금도 생각날 정도로 무진장 새빨간 볼터치였다! 꽤나 촌스러운 화장법이었는데도 예뻐서 기억하고 있다. 역시 화장의 완성은 얼굴... 아니 이게 아니라 - 의 직원의 도움을 받아 방문한 곳들을 소개한다.


...또 길어졌네. 그냥 호흡이고 뭐고 빠르게 진행하는 걸 포기하겠다.




1. 소칼로 광장 (Zócalo Square)




인포메이션에 가기 전, 검색을 통해 멕시코 시티 내에서 유일하게 그 이름과 적당한 이미지라도 알고 있던 곳, 소칼로 광장이다.

소칼로 광장은 멕시코 시티의 중앙 광장이다. 메트로폴리탄 대성당과 대통령궁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텅 빈 광장에 꽂혀있는 거대한 멕시코 국기가 여행자들의 마음을 울렁이게 만든다... 고 한다 보통은. 하지만 내가 갔을 땐 마침 '방학을 맞은 아이들을 위한 놀이동산'이 열려있었고, 덕분에 그 울렁이는 풍경은 보지 못했다.

그 광경, 꽤 기대하고 있었는데... 뭐야 저 시설물들... 뭐야 저 어린애들... 살짝 실망한 채로 발걸음을 옮겼다.

참고로 소칼로 광장 북측 왼편에 인포메이션 센터가 있다. 센터 주변으론 노점상들이 즐비하다.




2. 메트로폴리탄 대성당 (Metropolitan Cathedral)




소칼로 광장의 북측 면을 차지하고 있는 대성당.

메트로 2호선 소칼로Zocalo 역에서 지상으로 올라오자마자 깜짝 놀랐다. 와, 엄청 커!




내부도 엄청 화려해!

나중에 인포메이션 센터로부터 이 성당의 이름이 메트로폴리탄이란 걸 알게 되었다. 그 밖에는... 뭐... 이렇게 크니까 짓는데 오래 걸렸을테고... 뭐... 성당이니까 스페인 침략 이후에 지어졌을테고... 뭐... 백과사전을 찾아보면 알 수 있지 않겠어.




3. 대통령궁 (Palacio Nacional)




소칼로 광장의 우측을 전부 차지할 정도로 크고 길다란 궁이다. 처음엔 궁인지 뭔지도 몰라서 갈 생각이 없었는데, 인포메이션에서 입장료 무료라고 하길래 들어갔다. 돈에 움직이는 청순한 나.

입구에선 소지품 검사를 한다. 그리고...

군인 : @#$%^*&(&^

스페인어다.

나 : ????????
군인 : ....아, 아이디?
나 : 아, 여기 여권.


가져가더니 안돌려준다.

나 : 내 여권! 내 패스포트! 내 아이디!
군인 : 워워워. 우리 가진다, 그리고 준다, 나갈 때.
나 : 잃어버리면 안되는데! 잘못해서 잃어버리면 어떡해!
군인 : 괜찮아, 괜찮아.
나 : 안괜찮아!


입장하려면 신분증을 맡겨야만 한다는데. 불안해서 여권 돌려받고 국제학생증 맡겼다.




대통령궁 안의 뜰. 뭐, 특별한 건 없네, 하고 2층으로 가는 계단을 오르려는데...




헉, 이게 뭐야!


숨이 턱 막히도록 벽면을 가득 메운 거대한 벽화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담고 있는 정보에는 빈틈이 없어, 이 벽화를 글로 나타낸다면 그 글엔 쉼표가 없어 낭독하다가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벽화에는 2층 복도 전체를 빙 두르며 아즈텍 인들의 소박했던, 혹은 화려했던, 저 먼 동방의 (뇌가) 순수한 소녀는 잘 모르는 역사와, 그와는 반대로 널리 알려져있어 나라도 알고 있는 스페인 침략과 독립 등이 그려져 있었다.

저리 잘 살고 있던 사람들을 괜히 '신대륙을 발견'했다고 호들갑 떨며 병으로든 군사로든 다 죽여놨으니... 속상해라.

벽화를 그린 사람은 멕시코가 낳은 프레스코화의 거장이자 프리다 칼로의 바람둥이 남편으로 유명한 디에고 리베라란다. 기억난다, 그러고보니 영화 프리다에서 프리다 칼로가 디에고 리베라를 만났을 때 디에고는 프레스코화를 그리고 있었더랬지. 아, 그 프레스코화는 위의 대통령궁 벽화가 아니라 교육부 청사 벽화였지만, 뭐 여튼.




눈을 뗄 수 없는 벽화 앞을 간신히 떠나 입장이 허가된 궁 내부도 둘러본 뒤, 아까 들어왔던 문으로 나가려는데, 군인들이 손사래를 치며 또 뭐라고 말한다.

군인1 : #%^*&(!
나 : ...? 엉? 내 신분증 줘. 나 나갈래.
군인2 : 노 살리다, 노 살리다.
나 : 살리다가 뭐야?


내가 아는 스페인어는 올라 보니따 밖에 없다고. 영어, 누군가 영어를 말해다오.

하지만 아무도 영어를 모른다. 그냥 내가 못나가게 막기만 한다. 아우, 참, 뭐야. 아, 혹시...

나 : 살리다... EXIT?
군인1&2 : 응! 그거!
나 : 아, 그러니까, 여기는 입구고 출구는 다른 곳이라고?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는 한건지 의심쩍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이는 군인들. 내 국제학생증도 출구로 가져갔으니 거기서 받으면 된단다. 음, 복잡하군.

알겠다고 말한 뒤, 출구를 찾으러 다시 궁 안쪽으로 가는데, 한 군인이 쫓아온다. 군인 왈, 자기가 길안내를 해주겠단다. 나야 좋지. 쉽게 출구 근처까지 도착했는데, 갑자기 군인이 다른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군인 : 저기, 갔어?
나 : 어? 저기도 뭐 있어?
군인 : 후아레스, 후아레스.


후아레스? 베니토 후아레스 에어포트? 멕시코 시티 공항 이름인데?

군인 왈, 베니토 후아레스는 멕시코 시티에서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이며, 멕시코 시티의 국제공항 이름을 그에게서 따온 거라고 한다. 그리고 그에 관한 박물관이 저쪽에 있다나. 당연하지만 그의 영어 실력은 좋지 못했기에, 이 정보를 얻는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나 : 나 저기 안가봤어. 저기 가볼래.

그 군인은 쫓아오며 가이드 아닌 가이드를 해줬다. 가이드면 가이드지, 가이드 아닌 가이드라 한 이유는, 의사소통의 어려움 때문이었다. 무언가 많은 설명을 해주긴 했는데, 스페인어를 모르고 캐묻기도 뭣했던 난 그냥 진지한 얼굴로 음, 음, 하며 듣는 척 할 수 밖에 없었다.




뭐 이런 곳이 있었음. 후아레스 대통령의 생전 집무실이나 별실 기타 등등의 공간인 듯.




그 친절했던 군인.

헤어질 때 자기 근무시간 끝나고 밥이나 먹자던데, 내가 멕시코용 유심이 있나, 뭐가 있나. 연락할 길이 없어서 그냥 '그래^^' 하고 번호를 받은 뒤 못 만났다.




4. Francisco I. Madero 거리




대통령궁을 나와 소칼로 광장 노점에서 옷 한 벌을 샀다. 메트로 타고 올 때 어떤 여자가 입고 있던 걸 봤었는데, 노점에서 똑같은 걸 팔아서 사버렸다. 가격은 만 원 정도.

옷을 어디서 갈아입어볼까 생각하며 정처없이 걷다보니 보행자용 거리가 나왔다. 나중에 구글을 확인해보니 거리 이름은 Francisco I. Madero라고 하더라.




여기가 바로 그 보행자용 거리. 저 멀리 라틴 아메리카 타워가 보인다. 올라가진 않았지만, 도심에서 길 잃고 방황할 때 방향 잡는데 도움을 준 고마운 건물이라 기억하고 있다.




거리엔 사람이 무지 많았다. 아이고야. 명동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인파였다.




걷다보니 스타벅스가 있길래 화장실 들어가서 새옷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예쁘기도 하고, 편하기도 해서 남미에서 자주 입음.




뭔가 유명한 건물 같은데 뭔지는 모르겠다. 그냥 외관 멋진 건물.




중간에 괜히 아이스크림도 사먹고.

새 옷이 마음에 들어 룰루랄라 신나게 걸어다녔던 기억이 남.




5. 팔라시오 데 벨라스 아르테스 (Palacio de Bellas Artes)




외관이 아름답기 그지없는 벨라스 아르테스 예술의 전당. 소칼로 광장에서 프란시스코 I. 마데로 거리를 따라 걸어가다보면 나온다.

먹을 것을 들고 입장할 수가 없어서, 좀 전에 산 아이스크림을 다 먹을 때까지 건물 외벽 그늘에 앉아 시간을 때워야만 했다.




공연 안보고 입장만 하는데 45페소.




웅장한 내부.

벨라스 아르테스에 오는 사람들의 대부분의 이유는 벽화다.




알파로와 디에고 리베라... 어... 또... 아는 사람이 이 둘 밖에 없다... 여하간 멕시코 벽화 운동의 거장들의 작품들이 이 건물 내부 곳곳에 걸려 있다. 거의 모든 작품들이 명확한 메세지(정치적인, 이념적인)를 담고 있기에, 동시대 전세계적으로 유행했던 초현실주의, 추상화 등등에 비해 알아보기 쉽다.

제일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감상했던 건 마지막 사진인 알파로의 'Nueva democracia'였다. 강렬한 색과 형태감, 밖으로 뛰쳐나올 것만 같이 느껴지는 파워가 인상적이었던 작품.




혼자 벽화를 둘러보고 있는데 날 보고 수군거리는 한 무리가 느껴졌다. 곁눈으로 슬쩍 보니 중학생? 혹은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멕시코 학생들이었는데, 현장학습으로 왔거나 과제 때문에 온 것 같았다. 근데 왜 저렇게 수군거려? 동양인 신기하냐? 난 좀 더 신비스러운 동양인을 연출하기 위해 잘 알지도 못하는 작품을 바라보며 괜히 고개를 끄덕이거나 미소를 지었다. 봐! 여기 지구 반대편에서 왔는데도 현지 화가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지성적인 동양인이 있으니까 더 쳐다보라구!

그 때였다.

여학생 : 저기...

오! 영어다!

나 : 응? 왜?
여학생 : 사진... 좀 찍어주면 안될까?


엥, 싱겁다. 단체사진 찍으려고 한 거구나.

나 : 그래. 카메라 줘.
여학생 : 아니, 그게 아니라. 여기 얘가 너랑 사진을 찍고 싶어하는데.


여학생이 가리킨건 한 뒤에서 수줍게 웃고 있는 한 남학생이었다. 남학생은 영어를 할 줄 몰랐고, 때문에 여학생보고 계속 말 걸어달라고 부탁하느라 그렇게 수군댔던 거였나 보다.

나 : 그래. 같이 찍자.

순순히 예스를 말했더니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는 학생들.

남학생과 같이 포즈를 취해줬더니 여기저기서 찰칵 소리가 터져나왔다. 이런, 바보들! 무음 카메라 앱을 받았어야지! 덕분에 지나가던 다른 관광객들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쳐다보고... 부... 부끄러워... 심슨으로 가려서 티는 안난다만, 실제 사진에선 부끄러움 때문에 미묘한 표정을 지어버렸다.

음, 다음부터 현지인과 실내 기념촬영을 할 때엔 얘네가 무음 카메라 앱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부터 한 뒤 찍어야겠어.




6. 중앙 우체국 (Palacio Postal)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벨라스 아르테스 팔라시오 근처에 있는 중앙 우체국.

신호등 기다리다가 내부가 엄청 예쁜 걸 보고 들어가봤다.




내부가 무슨 궁전급. 진짜 우체국이 맞나 싶을 정도다.




이렇게 저렇게 요렇게 찍어도 예쁘네.




우체국 앞에서 엽서를 팔길래 한 장 샀다.

처음엔 부모님께 편지를 쓰려고 했는데, 첫 시작을 무심코 "안녕?" 으로 시작해버려서... 그냥 미래의 나에게 쓰는 걸로 노선을 바꿨다. 잘 여행하고 돌아갔냐, 여긴 멕시코 시티다, 완전 크다, 서울은 비교도 못하겠다, 사람도 너무 많다, 여하간 살아서 한국까지 돌아갔으면 환절기일텐데 건강해라, 어쩌구 저쩌구.




휘갈겨 쓴 엽서에 창구에서 산 우표를 붙인 뒤 메일박스에 넣었다.

시간은 흘러흘러 엽서의 존재 자체를 잊은 채로 한국에 돌아왔더니, 요 녀석이 먼저 와 내 책상 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멕시코 시티를 정처없이 배회하던 그 날의 기억을 간직한 채로 혼자 태평양 건너서 잘 날라왔구나. 그래도 어디 엄한 곳에서 길을 잃어 멈춰서거나 헤매지 않고 잘 왔구나. 기특하기 짝이 없었다.


미래의 나에게 엽서도 전달했겠다, 아직도 많은 시간이 남아있는데, 이번엔 어딜 가볼까. 센트로 이스토리코 쪽도 대강 둘러본 것 같은데, 메트로를 타고 다른 곳에 가볼까. 이미 오늘 하루의 관광 할당치(?)는 이곳에서 거의 다 채운 것 같으니, 마음 편하게 돌아다녀야지. 자, 우선...


오늘 밤엔 자기 전에 한국까지 무사히 도착했던 기특한 엽서들을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다!
enat의 별 생각없는 멕시코 이야기는 다음편에서 계속! 졸려서!





덧.

포스팅을 빨리 하고 싶은데...



요새는 포스팅만 시작하면 잠이 쏟아져요.... 졸려... 이 포스팅도 며칠에 나눠서 간신히 썼음...

뭐야 이 포스팅에 조건화된 파블로프의 개는... 지금도 너무 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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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Tabipero 2014/11/10 22:42 # 답글

    길거리가 유럽 도시스럽기도 한데 유럽 거리와는 뭔가 좀 달라보이네요.

    미국 옆나라인데 영어가 어지간히도 안 통하는 모양입니다...하긴 스페인에서도 영어 어지간히 안통했지요. 아쉬운 사람이 스페인어 배우라는건가(...)
    아 그리고보니 저도 여행기 업데이트해야 하는데 어디서부터 손대야할지도 모르겠고 영 귀찮네요(...)
  • enat 2014/11/15 14:39 #

    스페인 식민지풍 + 미국의 대도시가 합쳐진 느낌이었어요.

    스페인어야 원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으니 (세계에서 2번째? 3번째라나요?) 배울 필요성을 그닥 못느끼나봐요. 그쪽 애들이 좀 게으른 경향도 있고 ㅋㅋㅋㅋㅋ
    아 전 멕시코 빨리 쓰고 페루로 넘어가고 싶네요. 페루 여행기 쓰면 술술 쓸 것 같은데... 멕시코는 워낙 모르는 것 투성이니 글을 짜내는 느낌이에요. 에휴.
  • 26 2014/11/10 23:05 # 삭제 답글

    재밌게잘보고있어요 멕시코여행중인데 멕시코와쿠바여행을결정하게된 이유중에 님의쿠바여행기가 한몫했네요 ㅎ 그런데 멕시코를보다보니 볼게넘많아서 원래 일주일 계획했던 쿠바를 삼일정도밖에 시간이안날수도 있겠어요. ... 솔직히 여행기 반 정도밖에못봐서 쿠바에 대한 최종감정이 궁금해요 그리고 한 도시만 추천해줄수있나요? 개인의견으로. 그리고 멕시코가신지얼마안된거같은데 메트로는 그새 5페소더군요 ㅠ
  • enat 2014/11/15 14:41 #

    아이쿠 5일 전의 덧글이네요. 벌써 쿠바 가셨으려나...
    3일 동안 쿠바에 계실거면 아바나만 둘러보셔도 충분하리라 봅니다. 아바나2 + 바라데로1 (당일치기), 혹은 아바나2 + 비냘레스1 (하룻밤 자고 오기). 근데 비냘레스는 가는데 시간이 꽤 걸리니까 그냥 바라데로를 추천드려요.
    메트로 그새 가격 올랐나요!? 그래도 5페소니까 여전히 싸네요... 쩝.
  • 타누키 2014/11/10 23:27 # 답글

    오오 인기인이셨군요~ 특별히 고치는 것보다 특유의 분량이 재밌는 것 같습니다. ㅎㅎ
  • enat 2014/11/15 14:42 #

    어 뭐... 동양인을 신비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서 말이죠 ㅋㅋㅋㅋ
    아 근데 왜 자꾸 분량이 늘어나는질 모르겠어요. 멕시코 후딱 써버리고 페루 쓰고 싶은데... ㅜㅠ
  • 키르난 2014/11/11 08:55 # 답글

    가만있자..ㄱ-; 최근 멕시코 관련한 안 좋은 글을 본 것 같은데 말입니다?; 여기도 남미 여러 나라들처럼 정정 불안이 계속되는 모양입니다.
    아, 읽는 동안 저도 딴짓 반복하다가 무슨 이야기 적으려 했는지 잊었고..ㄱ-; 일단 교통비가 무진장 싸네요. 입장료가 45페소인데 한 번 타는데 그보다 훨씬 적은 돈을 낸다니 지하철 요금이 500원이던 언젠가가 떠오릅니다. 뭐, 받으신 분도 잘 썼겠지요?
    벽화를 보고는 익숙하다 생각했더니 언젠가 한 번쯤 보았을 인물의 그림이었네요. 사실 처음 보고는 히에로니무스가 떠올랐습니다. 강렬한데 또 암울한 느낌이라..=ㅁ= 인물도 많고요.
    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이 짧은 시간 동안 두 번 헌팅 당하셨다는것! =ㅁ= 오오오오오오ㅗㅇ오!
  • enat 2014/11/15 14:47 #

    어... 멕시코 국경쪽은 여전히 불안불안하다 그러더라구요. 다행히도 땅떵이가 워낙 넓은지라 멕시코시티나 과달라하라쪽, 칸쿤 같은 관광도시는 안전한 축에 속한대요.
    멕시코 교통비가 정말 싸긴 하더라구요. 포스팅할 기회는 없겠지만 이런 일도 있었어요. 교통비가 싼 것도 모자라 무슨 시민단체가 역 점거하고 시위를 한 적도 있었는데 그 때 시민단체 사람들이 '교통비를 낼 필요 없다! 무료로 타라!' 어쩌구 하는 통에 사람들이 전부 무료로 타더라구요. 저도 덕분에 무료로 몇 번 탔습니다 ㅋㅋㅋㅋ
    허... 헌팅... 한 명은 농떙이 까고 싶어하는 근무 중인 경비원이었고 한 명은 기념사진 찍고 싶어하는 학생이었고... 헌팅에 속할까요 ㅋㅋㅋ
  • 2014/11/11 10:59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4/11/15 14:50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눈아찌 2014/11/11 11:34 # 삭제 답글

    멕시코시티에 대한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읽는 거라 더 생동감 있군요
    그곳에 대한 여러 풍경과 함께 enat님이 남미 어디에서나 통하는 미인♥이란 걸 알 수 있는 좋은 글이군요
    이렇게 enat님의 외모에 대한 기대치는 높아만 가고...
  • enat 2014/11/15 14:51 #

    어? 아니 왜 그런...
    기대치... 는 무슨... 아니...

    전 평생 얼굴에 심슨을 달고 포스팅을 해야겠군요...
  • bar 2014/11/12 16:54 # 삭제 답글

    쿠바여행기부터 늘 잘보고있어요~ 느린호흡도좋고 천천히 올라와도 좋아요 ㅎㅎ :D
  • enat 2014/11/15 14:53 #

    업데이트 속도가 느려터졌는데도 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몇 달이 걸리든간에 어떻게든 끝까지 올리기는... 할게요... ㅋㅋㅋㅋㅋ
  • 레아 2014/11/12 22:01 # 삭제 답글

    와 진짜 사진만 봐도 정말 멋있어요>.< 별 관심없던 곳인데 자꾸 enat님 때문에 돌아다니고 싶은 곳들 리스트만 쌓여가는 중 ㅠㅠ
  • enat 2014/11/15 14:54 #

    으으 멕시코도 막 사진 보면 가고 싶고 그런데 다른 남미 지역들은 더 그래요! 빨리빨리 업데이트 해서 리스트를 계속 쌓아올리게 해드리죠!
  • hymom 2014/11/12 23:30 # 삭제 답글

    빨리 다음글 올려주세요 빨리요
  • enat 2014/11/15 14:54 #

    씨끄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손치명 2014/12/19 18:02 # 삭제 답글

    필력이 장난아니시네요!
    내일 미국에서 멕시코로 여행준비중이라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우연찮게 들어오게됐는데 시간가는줄
    모르고 끝까지 읽었습니다ㅎㅎ
    이 계기로 종종 북마크해서 방문하겠습니다
    실례가 안된다면요^^
  • enat 2014/12/22 14:41 #

    실례라뇨! 방문해주시고 덧글까지 남겨주시니 제가 더 감사하죠!
    포스팅 속도가 빠르면 멕시코 파트는 진작에 끝냈을텐데 ㅇ<-< 결국 한달이 훌쩍 지났군요...
    이미 여행중이실텐데 멕시코에서 즐겁고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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