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2/24 03:03

쿠바 바라데로 리조트 (1) 메모리즈 왕국 ├ 쿠바 바라데로 리조트 (2014)

남미 여행기가 도통 써지질 않는다. 빨리 페루편 쓰고 싶은데 왜 멕시코편이 끝나지 않는질 모르겠다. 이대로 있다간 나머지 여행들도 다 까먹을 것 같으니, 남미 여행 이후 쉬러 갔던 쿠바 바라데로 리조트 포스팅을 먼저 써놔야겠다. 미국-쿠바 국교 정상화 뉴스를 보고 괜시리 혼자 놀랍고 신기하고 두근두근해서 잠을 설쳤던 며칠 전 밤의 기념이라고 생각해도 좋겠고.


<2014 9월 쿠바 바라데로 리조트 다녀온 이야기>


1.

일단 이것부터 짚고 넘어가야겠다. 제목에 '쿠바 바라데로 리조트' 라고 써져있는데, 이건

'쿠바' 바라데로 리조트가 아닌, 쿠바 '바라데로 리조트'

이다. 강세는 쿠바가 아니라 바라데로 리조트에 넣어야 한다!


같이 갔던 동생 - 캐나다 촌구석에서 사귄 여동생. 편의상 한 때 별명이었던 '떨지' 라고 쓰도록 하겠다. 무슨 일이 있어도 떨지 않는 강인한 여성이기에 붙은 별명 - 에게 가기 전부터 몇번이고 했던 말이 있다. 우리가 가는 곳은 쿠바가 아니라 바라데로 리조트라고.

이건 사실 1년 전, 쿠바로 배낭여행을 갔을 때 현지인들에게 들은 말이기도 했다. 바라데로 리조트는 쿠바가 아니라 백인들의 휴양지일 뿐이라고 말하는 그네들의 모습엔, 정작 자신들은 가기 힘든 조국의 '파라다이스'와 본인들의 처지를 향해 짓는 조소를 뛰어넘는, 문화적 자부심 같은게 있었다. "거기? 다른 나라 부자들이 가는 곳. 쿠바? 쿠바는 우리가 사는 여기고."

사실 난 같잖은 여행부심 - 크킄, 그럼 리조트 안가고 쿠바를 배낭여행 하는 난 진짜 쿠바를 보는 거로군 후후후 - 때문에 그 말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직접 리조트를 다녀와보니 확실히 알겠더라. 아니 진짜, 여기는 쿠바라고 할 수 없어. 쿠바는 쿠바인데 뭔가 아니야, 쿠바가.

마지막 날, 리조트를 떠나며 떨지와 나눴던 대화.

나 : 야, 여기 쿠바 돈도 쓰고 쿠바 말도 쓰고 쿠바 술도 있긴 한데, 쿠바는 아닌 듯.
떨지 : 으음, 바라데로의 메모리즈 왕국 (리조트 이름이 메모리즈였다) 에 다녀온 것 같아.





2.

여행 전으로 돌아가서.

리조트는 썬윙 (http://www.sunwing.ca/) 사이트에서 예약했다. 내가 예약한 시기는 9월, 푹푹 찌는 비수기였기 때문에 가격이 무진장 저렴했다. 항공권, 공항에서 리조트까지 가는 셔틀버스, 숙박비, 식비, 주류 포함, 일주일 일정. 1인당 600불 (한화 60만원) 냈던 걸로 기억한다. 시설 안보고 제일 싼 곳만 찾는다면, 일주일 일정인데 200불까지 떨어지는 곳도 봤다.

......사실 리조트 알아보면서 너무하단 생각도 했다. 1년 전 배낭여행으로 갔을 땐 500불 가까운 돈을 항공권 사는데만 썼었다고.




일단 떨지와 다녀왔던 리조트는 '메모리즈' 어쩌구라는 이름이 붙은 곳이었는데, 적당히 구색만 갖춰놓은 곳이 아닌 진짜 괜찮은 리조트였다. 24시간 에어컨 풀가동 침실에 레스토랑도 무진장 다양했고, 풀장 등등의 시설도 훌륭했다. 사실 휴양지는 처음이라 비교대상이 없어 좀 상향된 평가일지도 모르겠는데, 정말 별 기대없이 카리브 해나 보러 가자 했던 나와 떨지로서는 그저 감동에 몸을 떨 수 밖에 없었다.




3.

나는 리우 데 자네이루에서 남미 여행을 끝내고 토론토로, 떨지는 그랜드 프레리에서 하던 일을 그만두고 토론토로.

토론토에서 감격의 상봉 - 언니 남미에서 안죽었구나! / 그러는 너는 깡촌에서 잘 있었구나! - 을 한 뒤, 예약했던 일정에 맞춰 바라데로로 떠났다.


1년만에 찾은 쿠바. 그 사이에 뭐 변한게 있으려고. 새로울 건 없겠지, 하고 방심한채로 입국했다. 떨지에게 쿠바 입국시 주의사항에 대해 전문가인 척 알려주면서 말이다.

하지만...

나 : 그거 알아? 쿠바는 여권에 입국도장 안찍어줘. 방문자 비자에 찍어준다?
떨지 : 그렇구나. 역시 언니는 쿠바에 관해서라면 다 알아!
나 : 훗훗훗, 언니가 쿠바라면 다 꿰고 있지. 이 언니만 믿으라고!


그 이야기가 무색하게도....


입국심사 하는데 얘네가 여권에 도장을 찍어줬다! 그것도 핑크빛 색상으로!


떨지 : ......도장이네?
나 : ......
떨지 : 여권엔 안찍어준다고......
나 : ......


워, 원래 안찍어줬단 말야! 그런 눈으로 보지마!


첨언하자면, 쿠바랑 미국이 한창 사이 안좋을 때, 쿠바 입국 도장이 여권에 찍혀있으면 미국 입국 시 불이익을 받는 일이 종종 있다고 했다. 그야 적국이니까. 이스라엘-나머지 주변국과의 관계와 비슷하달까.

그래서 여행자들이 쿠바에 입국할 땐 편의를 위해서 아예 여권에 도장을 찍어주지 않고, 대신 여행자 비자에다가 찍어줬던 거였...는데... 그랬는데... 분명 1년 전까지만 해도 그랬는데.... 바뀐 거다! 떨지! 절대 언니가 잘못 알고 있는게 아니라 걍 바뀐 거라고!

지금에 와선 미국과 쿠바의 국교 정상화 뉴스가 나오고 하니 이해가 가긴 한데, 저땐 꽤나 쇼크였다. 저 핑크빛 도장색이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암시하는 핑크빛 복선 같은 거였을 줄은.




4.

사실 여권에 도장을 받기까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썬윙에서 리조트 패키지로 구입해서 입국하는거라, 보통은 입국심사 받는데 오래 걸릴 이유가 없다. 하지만 내 여권에 찍힌 무수한 남미 국가 도장들 때문에, 입국심사관이 날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에...

심사관 : 어디서 왔어?
나 : 캐나다에서 놀러왔어.


라고 답했는데, 최근 날짜로 온갖 남미 국가들의 도장이 찍혀있으니 심사관으로선 앞뒤가 안맞는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심사관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날 날카롭게 쳐다보고, 난 그 앞에서 어색하게 미소를 짓고... 어... 어색하다...

뭐, 결국 난 해외여행에 결격사유가 있는 사람이 아니며 딱 봐도 범죄자감은 아니기 때문에 시간만 좀 걸렸을 뿐 무사히 입국했다. 나중에 떨지가 다른 심사관은 사람들 빨리빨리 통과시키는데 언니는 왜 오래 걸린거냐며 물어봤다. 내, 냅둬. 별 일 아니야.




5.

공항에서 나서자마자 몰려오는 후끈한 공기... 아아, 이 공기는 역시 쿠바다!

1년 전 여기서 80쿡짜리 택시를 탔었지. 아스라히 떠오르는 바가지의 추억....

.....


젠장, 좀 더 근사한 추억거리를 떠올리고 싶었는데.




6.

캐나다 촌년 떨지, 리조트에 오자마자 '언니, 이런게 쿠바식 민심이야!?' 라는 말을 했었다.

비행기 연착으로 리조트에 도착했던 건 늦은 밤. 그 와중에 당시 메인 로비를 지키던 직원들이 느리게 일하는 바람에, 푹푹 찌는 열대야 속 리조트 로비에서 1시간 가까이 기다려야만 했다. 메인 로비엔 바가 붙어있어서, 피냐콜라다를 연거푸 시켜 마시며 직원들의 일처리를 기다렸다.

우리 차례가 되어 방을 배정받고, 어디선가 나타난 직원이 골프카를 이용해 우리를 방까지 데려다줬다. 바로 우리 건물로 가면 좋으련만, 영어도 잘 못하는 주제에 리조트 소개를 시켜준다고 여기저기 누빈 후에야 우리 방에 도착했다. 떨지는 리조트를 바라보며 들뜬 표정으로 셀카 연발이었지만, 난 이거 팁 달라고 할텐데, 쿠바 화폐가 없어서 큰일이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거의 자정에 도착했으니, 환전소가 열지도 않았었단 말이다.

그리고 뭐, 당연하게도, 직원은 우리 방까지 데려다 준 뒤 곧바로 '팁'을 달라고 요구했다. 자기가 우리 때문에 여기저기 다녔으니, 수고비는 받아야하지 않겠냐면서. 현금이라곤 100불짜리 캐나다 달러 밖에 없는 우리, 주머니를 뒤져 캐나다 코인을 모아 1불을 만들어 주니까, 자긴 동전은 안받는다면서 불쾌해하며 나갔다.

떨지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직원이 친구처럼 사근사근하게 대하다가 나중엔 노골적으로 돈을 달라고 하는 모습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는지, 그 이후로 누군가가 친구처럼 잘 대해줄 때마다 '언니, 쟤네도 팁 때문에 그러는 것 같아서 그 친절을 무시하게 돼' 라는 말을 하곤 했다. 너도 참, 그 불편한 경험을 쿠바에 오자마자 겪다니... 안다, 그 마음 안다, 알아.




7.

리조트에서 보낸 대부분의 시간은 그야말로 향락의 시간이라 표현할 수 있을만한 것이었다.

나 : 배고프다.
떨지 : 밥먹자.


메인 뷔페 가서 야금야금.

떨지 : 졸립다.
나 : 낮잠자자.


자다가 일어남.

나 : 수영이나 할까.
떨지 : 그래.


그렇게 풀장가서 수영하다가 술마시고 놀다가 배고파서 밥먹었다가 다시 물속에 들어갔다가 씻고 자러갔다가...

하루하루가 그러했다. 물론 나야 이러려고 온거지만.




남미여행 후 오로지 휴식에만 전념하던 나와는 달리, 첫 해외여행을 떠나 두근두근하던 떨지로서는 돼지처럼 먹고 자기만 하기가 아까웠을 것이다. 하지만 떨지는 무진장 착하고 좋은 녀석이라 그런 내색도 하지 않고 내가 하자는대로 했다. 이 뭐 착한 아이... 착한 아이에겐 상을 줘야해!

그런 떨지를 위해 마침내 난 바라데로 마을 탐방 & 아바나 일일 여행을 계획했는데...



졸리니까 다음에 계속!



<바라데로 리조트 포스팅>

쿠바 바라데로 리조트 (1) 메모리즈 왕국
쿠바 바라데로 리조트 (2) 바라데로 타운에 가다
쿠바 바라데로 리조트 (3) 아바나 당일치기
쿠바 바라데로 리조트 (4) 그 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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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코양이 2014/12/24 03:19 # 답글

    정말 글이 안써지시나봐요! 여행기에 목말라 있는데! 너무 느려서 속이 타요 ㅠㅠ
  • enat 2014/12/24 12:31 #

    글이 잘 안써지는 것도 있고... 사실 한국 돌아오니 취준생이 되어버려 현실도피할때 말고는 컴퓨터할 시간이 없습니다 끄어어.... 사실 그렇게 바쁜것도 없는데 마음이 불편해서 ㅋㅋㅋ 여하튼 틈새시간에 부지런히 써보도록 하죠!
  • 코코마 2014/12/24 03:24 # 답글

    메모리즈 가셨었군요 ! 저는 리우 다녀왔었어요. 요즘같이 으슬으슬 춥고 눈 내리는 겨울에는 진짜 따사롭게 아무것도 안하고 빈둥대던 바라데로가 그리워요 ;ㅅ;
  • enat 2014/12/24 12:34 #

    앗 리우! 리조트 찾아볼때 본 것 같아요!
    무슨 왕족처럼 보낼 수 있었던 바라데로... 휴양지는 처음이었는데 이런 느낌 때문에 가는구나 했어요 ㅋㅋ
  • 눈아찌 2014/12/24 07:47 # 삭제 답글

    마지막 사진은... 흠... 가오나시???
  • enat 2014/12/24 12:34 #

    제 차칸동생 떨지는 가오나시가 아냐 ㅠㅠ 아니라구여 ㅠㅠ
  • 키르난 2014/12/24 08:46 # 답글

    그 아바나도 일반적인 쿠바(...)가 아니었나봅니다. 왠지 여기서도 동양방송(TBC=To Be Contiued..)의 분위기가 폴폴.......;;;;;
  • enat 2014/12/24 12:36 #

    아바나의 국적은 아바나 바라데로의 국적은 바라데로 (혹은 캐나다) ..... 농담삼아 그런 말들을 하더군요 ㅋㅋㅋ

    TBC... 아 아니.... 저건 며칠 내로 다 끝낼거니까... 사실 포스팅 하나에 우겨넣으려고 했는데 이상하게 쓰다보니 길어져서... 으음...
  • hy 2014/12/25 22:39 # 삭제 답글

    힘내세여
  • enat 2014/12/26 00:58 #

    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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