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6/30 22:26

남미여행 (20) 페루 : 안녕, 내 친구 니콩이 ├ 남미 배낭여행 (2014)

* 요새 쓴 글이라고는 자소설 밖에 없어서 글빨이 떨어짐. 노력중임.

* 전편이 기억나지 않는 분들을 위한 정리 : 캐나다 워홀로 모은 돈을 들고 남미 여행을 시작한 enat. 멕시코 시티의 댄스 교실 아랫방에서 지끈지끈한 머리를 부여잡고 며칠 지내다가 페루로 건너옴. 페루 리마에선 대머리한테 당하고, 해안 도시 파라카스에선 세비체 알레르기로 눈이 퉁퉁 붓고, 멜리사의 눈물에 속아 사기 투어 당함. 사막의 오아시스 마을 와카치나에선 버기카와 샌드보딩으로 신나게 놀았고, 나스카에선 경비행기를 타고 나스카 라인을 구경.

그 뒤 도착한 페루 제 2의 도시 아레키파에서는 별다른 문제 없이 술술 풀려가는 듯 했지만... 난 인지하고 있어야만 했다. 내 여행이 언제까지나 이렇게 평화로울 리가 없단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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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산타 카탈리나 수녀원을 나온 후, 아레키파 메르카도(시장)으로 가기 위해 지도를 펼쳤다. 전날 저녁 식사를 하다가 만난 볼리비아 남자애가, 여행자라면 시장을 꼭 가봐야한다는, 언젠가 쿠바 아바나에서 분유값이 필요했던 아저씨한테 들었던 것 같기도 한 소리를 하며 내 지도에 시장을 표시해놨기 때문이었다.

사실 그 시장의 정확한 이름이 아레키파 메르카도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도시 이름은 아레키파고, 시장이니까 스페인어 메르카도를 따서 내 마음대로 아레키파 메르카도라고 부르고 있기는 한데, 사실 서울에 있는 시장도 '평화 시장'이라던가 '광장 시장'이라던가, 뭔가 이름이 다양하기 때문에, 여기도 사실은 아레키파 메르카도가 아니라 다른 이름이 붙어있는지도 모르겠다.

...만, 10개월 전에 지구 반대편에서 잠깐 다녀온 시장의 이름을 다시 찾으려니까 힘들다. 그냥 아레키파 메르카도란 이름으로 괜찮겠지.




2.

아레키파 중심부(아르마스 광장)에서 시장까지 천천히 구경하면서 걸으면... 30분 정도?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중간 중간에 옷가게도 들려보고, 길거리 음식 파는 곳도 들리고 하다보니 늦어져 버렸다.

제일 큰 메르카도 건물이 중앙에 위치하고, 그 주변으로 작은 상가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구조였다.




이런 식으로 작은 상가가 거리에 늘어서 있는데,




안으로 들어가면 내부에도 다른 상점들이 위치한 구조. 청계천에 있는 평화시장을 배배 꼬아서 불려놓으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다.


이어서 메인인 아레키파 메르카도. 사진이나 쭉 올려본다.




어이구 사람 많다.




알록달록 과일 구경하는 재미. 과일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눈만 즐겁게 해주고 지나갔다.




PAPAS... 감자 섹션이란다. 엄청 쌓아두고 파네.




옥수수는 옥수순데 검은 옥수수.




올리브...가 저렇게 오동통한 식품이었던가.




여기는 닭고기 섹션 Seccion Pollo.




여기는 돼지고기 섹션 Seccion Porcino.




돼지고기 파는 집에서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 사진을 걸어놨다.

무슨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모르겠다.




치즈 등의 유제품을 파는 집도 있고.




페루 음식점 갔을 때 기본안주로 나오는 말린 옥수수, 맥주를 부르는 저 쿠스케뇨도 팔고 있었다.




제법 고소한게 내 입맛에 맞았던 걸 기억해내고, 입이 심심할 때 간식으로 먹기 위해 한 봉다리 샀다.




시장 구석구석엔 간단한 식사나 음료를 마실 수 있는 간이 식당이 있다.

현지인들과 섞여 밥을 먹을 수 있는 곳이라 엄청 끌렸지만, 지금은 점심을 먹은 뒤라 배가 부르니 다음에, 그러니까 내일쯤에 오기로 했다.

...그런 생각을 한 내 자신을 때려주고 싶다. 이 다음 날 시장에 또 가는 게 아니었는데 말이다.


뭐, 이 사건은 오늘의 사건을 끝낸 뒤 다음 포스팅에서 하도록 하고.




3.



메르카도에서 숙소로 돌아가는 길. 아르마스 광장을 지나는데 한 아저씨가 대성당 사진을 찍고 있었다.




음, 확실히, 언제 봐도 늠름하고 아름다워. 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아저씨 옆에 서서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숙소에서 좀 쉬다가 어두워지면 또 야경보러 나와야지.




4.

숙소에서 씻고 뒹굴거리다가, 날이 선선해진 것 같아 밖으로 나왔다. 계획대로 야경을 보기 위해 아르마스 광장으로 향했다.

저녁식사도 해결할 겸, 아르마스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건물 테라스에 위치한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좌석은 대충 이러함. 의외로 손님이 얼마 없어서 넓게 앉았다.




테라스 너머로 아르마스 광장이 보인다.




원래는 맥주를 마시려고 했는데, 갑자기 무슨 변덕이 생긴건지 급 쥬스로 바꿔시켰다.

왜 쥬스를 시켰는지 나 자신도 아직도 모르겠음.




쥬스를 홀짝이며 보는 야경.

음, 역시 아레키파 시민들의 자랑, 아레키파 대성당이다. 백색의 성당이 불빛을 받으니 성스러움을 뿜어낸다.




노랗게 노랗게.




퍼렇게 퍼렇게. 삼각대 없어서 손으로 찍으니까 이 모양.

하지만 아마 다음 번에 또 여행을 가더라도 난 삼각대를 챙기지 않겠지. 야경도 저 따위로 찍겠고. 여행은 기동성이 최고야.




이 생각 저 생각하며 반짝거리는 광장을 바라보고 있으니 제법 기분이 좋다. 테라스로 올라오길 잘했다.




야경을 보며 흐뭇해하다보니, 어느새 오늘의 일용할 양식이 등장했다.

오늘의 양식은 알파카 스테이크.




바로 얘네들을 이용해서 만든 스테이크다. 레스토랑 웨이트리스가 나에게 강력추천해서 시켜버렸다.

나중에 한국 들어와서 친구들에게 "나 알파카 스테이크 먹어봤어!" 라고 자랑했다가...


친구1 : 그 귀여운 걸 먹어!?

친구2 : 그런 순진무구한 동물을 먹었단 말야!?

친구3 : 이 잔혹한 여행자 같으니라고!!



...왜인지 매장당할 뻔 했다. 뭐야, 돼지도 귀엽고, 소도 귀엽고, 병아리도 귀엽지만 다들 먹잖아.


어쨌든 흡족한 맛이었다. 얹은 치즈랑도 어울리고, 끝맛도 고소하고.




신나게 먹다보니 어느새 하늘은 새카맣게 변해버렸고.




그릇은 깨끗하게 비웠다! 아아, 훌륭한 맛이었어, 알파카.




계산을 하고 나가려는데, 갑자기 웨이트리스가 뛰쳐나오더니 날 붙잡고 기다리란다. 뭐야? 돈도 냈고, 팁도 줬는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영어를 짧게나마 아는 다른 웨이트리스 왈, 쟤가 동양인(나)이 신기해서 같이 사진찍고 싶은거란다.

뭐, 찍는다고 닳는 것도 아니고, 웃으며 같이 그 웨이트리스 핸드폰으로 한 장 찍었다. 찍는 김에 나도 기념으로 내 카메라로도 한 장 찍어달라고 했다. 레어템(동양인과 친한 척 붙어서 사진)을 건져 기쁜 웨이트리스에게 열렬한 감사 인사를 받은 뒤에서야 가게를 나설 수 있었다. 음식과 전망, 웨이트리스까지 모두 재밌는 가게였어.




5.

그래, 그런 재밌는 가게를 나선 뒤, 무사히 숙소로 돌아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와이파이 연결해서 알파카 스테이크가 맛있었다고 친구에게 카톡 보내고, 페이스북에도 올리고, 침대 위에서 내일의 여행 일정을 짜며 뒹굴거리는, 그런 평범한 여행을 즐겼다면 정말 얼마나 좋았을까.

알파카 스테이크를 먹은 뒤 부른 배를 쓰다듬으며 행복하게 숙소로 돌아가던 내게 그런 끔찍한 일이 닥칠 줄은 몰랐다.

그 비극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써나가야 하는 걸까...


다시 쓸 자신이 없으니, 이 날 밤, 친구에게 남긴 편지 전문으로 글을 대신한다.



방금 전 야경이 보이는 멋진 곳에서 알파카 스테이크를 먹었어.

정말 맛있었어.

맛과 야경에 취해 입을 헤-벌리고 사진을 찍으며 걸어가는데

맨홀,

맨홀 뚜껑이 이상하게 닫혀 있었어.

난 그것도 모르고 아레키파 대성당에 눈이 팔려서...

그만 덜렁거리는 부분을 밟아버린 거야.



난 그대로 맨홀에 다리 한 짝을 빠뜨렸고, 버둥거리기 시작했어.

다행히도 그 옆을 지나가고 있던 동네 청년들이 재빠르게 다가와 날 잡아끌었어.

살아서 다행이라고 숨을 고를 겨를도 없이 난 허겁지겁 카메라를 찾았어.

난 분명 카메라 렌즈를 꺼내놓은 채 들고 있었거든.

필사적으로 고개를 이곳저곳으로 돌리며 카메라를 찾는 내 눈에

녀석의 새빨간 몸체가 보였어.


그래, 나의 사랑스러운 니콘 쿨픽스 S9700... 그 녀석은

내가 멍청하게도 맨홀에 다리를 빠뜨린 통에 날아갔던 거야.

이건 꿈일거야 하며 다가갔어.

녀석은 마치 피로 범벅된 듯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어.

아, 물론 원래 빨간 모델이지만. 여튼.



녀석의 총명하던 렌즈는 생기를 잃고 그저 열려만 있었어.

난 떨리는 손으로 니콩이를 집어들었어.

온오프를 반복하며 회생을 시도했지만,

녀석은 답하지 않았어...

그저 흐릿한 렌즈만 내놓은 채 에러라는 단어만 화면에...


아니야, 이건 뭔가 잘못됐어, 뭔가 잘못됐다고!

나와 함께 저 먼 캐나다 그랜드 프레리란 땅에서부터 함께였잖아!

그 무시무시한 곰 앞에서도 함께였고, 눈사태가 일어났던 곳에서도 함께였고,

테오티우아칸에서 헐떡일 때도 함께였고, 와카치나 사막에서 별을 볼 때도 함께였잖아!

이제 조금 뒤면 마추픽추에 가는데!

그곳에서도 멋진 사진을 남기기로 약속했잖아!


하지만 망연자실하게 서있을 시간도 아까웠어.

난 정신을 잃은 니콩이를 소중하게 품에 안고 사방팔방 뛰어다녔어.

사람들에게 바디랭귀지로 물어물어 간신히 찾아낸 수리점에선

그 어떤 것도 녀석의 바디를 열어보지 않으면 모른다고,

내일 아침 11:30분에 오라는 이야기만 했어.

우리 니콩이 살아날 수 있느냐는 내 질문엔 어떤 희망도 안겨주지 않았어.


그렇게 영수증을 받고 녀석을 다른 이의 손에 맡긴 채

터덜터덜 숙소로 돌아오니 침대 위에 몰리(*인증샷 찍을 때 들고 다니는 개인형)가 있었어...

몰리가...

같이 나갔던 니콘 쿨픽스 S9700은 어쩌고 언니 혼자 오냐고,

GPS 기능과 WIFI 기능을 탑재하고 수동조작이 가능한 그 녀석은 어떻게 된 거냐고,

순진한 표정으로 묻는 것 같았어...


흐흑...

내일 아침 11시 30분까지...

잠이나 잘 수 있을까...

혼란스럽다...





....그랬단다.


제 2의 눈이라고 말할 수 있는 카메라님께서 그렇게 되어버렸다. 백색의 도시가 암흑의 도시로 변해버린 순간이었다.

카메라 없이 괜찮을까, 이 여행.



S9700이 어떻게 됐는지는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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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더카니지 2015/07/01 03:49 # 답글

    오오 알파카 스테이크 맛있어 보이는데요(퍽!)
    헛!! 그래도 안 다치셔서 다행입니다! 큰일 나실뻔했어요!!
  • enat 2015/07/11 22:50 #

    알파카 스테이크 레알 맛있습니다! 처음 먹어보는 고기 맛이었는데 간을 잘 한건지 잘 구운건지, 여튼 고소하고 맛있더라구요.
    안다쳐서 다행이긴 했습니당... 다들 그 이야긴 하더라구요 ㅜㅠ 사실 맨홀 옆이 차도여서 잘못 쓰러졌으면 더 위험할 뻔 했는데 다행이었어요.
  • 키르난 2015/07/01 07:49 # 답글

    ....심장이 덜컥.........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앞부분부터 오들오들 떨게 만들더니 결국은... 엉엉엉엉엉엉;ㅂ;
    그래도 안 다치셔서 다행입니다.ㅠ_ㅠ 그래도 또 병원 가실일 생겼다면 그게 더...ㅠㅠㅠㅠ
  • enat 2015/07/11 22:52 #

    제 사랑스러운 카메라가ㅏㅏ아ㅏㅏ 여기서 망가지기 시작해서 그 뒤로... 후후...
    안다쳐서 다행이긴 했어요 정말 ㅜㅠ 하지만 병원 갈 일은.. 음... 니콩이로 모든 액땜을 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 찬영 2015/07/01 10:12 # 답글

    알파카 스테이크 까지 좋았다가 ㅠㅠ 카메라 그 심정 잘 압니다.
  • enat 2015/07/11 22:52 #

    혼자 여행하면 사실 사진찍는 재미가 크잖아요 ㅜㅠ 카메라가 저렇게 되면 멘붕 오더라구요 리얼...
  • 엘에스디 2015/07/05 14:25 # 답글

    알파카 스테이크에서 헉 하다 카메라에 닥친 시련에서 ㅡㅇ허어겋거ㅓㄱㅁㅇㅁㅇ;;;;;;;;;;;;;;;;;;
    알파카 먹을 수 있는 거였냐는 의문 따위 파스스하게 되네요ㅠㅠㅠㅠㅠㅠㅠ 으아아..... 카, 카메라 무사했겠..지요??ㅠㅠㅠㅠㅠㅠㅠㅠ 그리고, 안 다치셔서 정말 다행이에요..! 맨홀에 아예 빠지셨다면 정말 얼마나 큰일이었을지;;;;;; 으아아( mm);;;
  • enat 2015/07/11 22:55 #

    알파카 당근당근 먹을 수 있죠!!!! 크하하하핳ㅎ하 정말 고소했어요.
    그리고 그 이후에 카메라가... 후....
    ....핫!? 설마 알파카의 저주였나?

    사실 맨홀도 그렇게 크지 않았고 뭔가 구조적으로 몸이 전부 다 빠질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크게 안다친건 저도 감사하더라구요 ㅠㅠ
  • 레아 2015/07/08 01:02 # 삭제 답글

    알파카 사진 찾아놓으신거 너무 귀여움 ㅋㅋㅋㅋㅋ 전또 맨홀 빠져서 다리가 뿌러졌다던가 그런건 줄 알고 깜놀했잖아요 . 몸은 무사해서 다행입니다.
  • enat 2015/07/11 22:56 #

    알파카 귀엽졍! 나중에 쿠스코가서 와장창 나옵니다. 기대하세욤.
    다리가 부러졌으면 외국에서 비싸게 든 여행자 보험을 써먹고... 부모님에 의해 강제귀국 했으려나요... 후... 여튼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었어요!
  • 스트로보 2015/07/09 06:02 # 삭제 답글

    enat님!!! 여행기 애독자로서 연재(?) 중단하신 줄 알고 상심하였는데 돌아오셔서 기뻐요!! 전에 남미 여행 중이라고 썼던 거 같은데 이미 남미는 끝내고 먼 곳까지 와 있답니다ㅋㅋ 암튼 여행기 꾸준히 올려주세요!
  • enat 2015/07/11 22:57 #

    연재(?)는 중단하지 않습니다! 느릴 뿐이죠! ㅋㅋㅋㅋㅋㅋ
    남미 여행 준비하시면서 찾아오셨을텐데 벌써 남미를 떠나시고 다른 곳에 계시군요... 그런데도 전 아직 페루편을 쓰고 있으니... ㅋㅋㅋㅋㅋㅋ 분발해야겠어요 ㅋㅋㅋㅋㅋㅋ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kate 2015/08/18 11:01 # 답글

    몰리에겐 쭉 비밀로 하신거예요? ㅋㅋㅋㅋ
  • enat 2015/08/22 21:01 #

    몰리가 알아채고 토닥여줬어요... 흐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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