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2/11 13:23

남미여행 (41) 칠레 : 달의 계곡 투어 ├ 남미 배낭여행 (2014)

* 진짜 바쁘고 싶지 않은데 먹고 살 준비하느라 바빠서 포스팅 못하는 enat. 살아 있습니다.

* 마지막 포스팅을 올린지 두 달이나 지나 기억이 나지 않을 분들을 위한 요약 : 춥고 시린 볼리비아 우유니 일대를 스트레스 받으며 둘러본 enat은 뜨겁고 활기찬 칠레 아타카마에 도착, 기세를 몰아 아타카마에서 여행자 4명 파티를 결성해 자전거로 달의 계곡을 다녀오려 하지만 체력과 시간 문제로 그 시도는 실패하게 된다. 그리고 다음날, 그들은 투어를 이용하여 달의 계곡을 가기로 하는데...





1.

달의 계곡 투어는 오후에 시작한다. 덕분에 오전 시간이 텅 비었다. 각자 투어 시작 시간까지 자유 시간을 갖기로 했다.

마을 외곽에 있는 아타카마 시장을 둘러본 뒤, 응이 언니와 짝짝꿍이 맞아 마을 광장에 있는 카페에 갔다. 볼리비아에선 투어 때문에 정신없이 쏘다니고, 아타카마에 와서도 다른 사람들과 같이 다닌다고 급하게 다녔는데, 이제야 좀 여유가 생긴 것 같다.




응이 언니 : 이게 얼마만에 누려보는 여유야!
나 : 엇! 나도요! 이제야 숨을 좀 고르는 느낌이에요!
응이 언니 : 웨이네랑 같이 다니면 좋긴 한데, 걔네는 이런 여유로움을 모르는 것 같아.
나 : ㅋㅋㅋㅋㅋㅋㅋㅋ 맞아요. 여행 일정이 뭔가 숨 가빠.
응이 언니 : 관광, 사진, 이동만 반복한다니까. 무슨 수련회도 아니고!


응이 언니와 대충 그런 말을 주고 받다가, 다음 일정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응이 언니 : 근데, 다음에 어디 갈거야? 웨이는 내일 살타(*아르헨티나의 관광 도시)로 넘어간다고 하고, 다니는 아직 못 정했다고 하더라고.
나 : 일단 카메라부터 수리해야 할 것 같아서, 산티아고(*칠레의 수도)로 가려고요. 그 정도 대도시는 가야 니콘 수리점이 있을 것 같아서...
응이 언니 : 어머, 잘 됐다! 나도 산티아고 갈 거거든. 친구가 거기 있어서. 근데 버스가 막 이십 몇시간 걸린다고 하네?
나 : 그래서 저 비행기 알아보고 있는데. 언니 같이 비행기 탈래요? 가격은 버스의 두세 배 정도인데, 전 차라리 돈을 더 내고 편하게 갈래요. 페루에서 버스타고 엄청 고생한 적이 있어서, 이십 몇 시간은 못 타겠어요.
응이 언니 : 오, 좋아! 나도 비행기 탈래! 그럼 지금 빨리 예약하고 결제하자!


그렇게 해서 핸드폰으로 후다닥 예약한 비행기는 지난 번 멕시코에서 페루로 넘어올 때 훌륭한 기내식을 선보였던 항공사, 란 에어라인이었다.


LAN Airlines Flight 141
Hora de salida 출발 시간 : 07:50
Origen 출발 : CALAMA 칼라마 (CJC)
Destino 도착 : SANTIAGO DE CHILE 산티아고 데 칠레 (SCL)


그리하여 다음 도시는 산티아고로 결정! 비행기는 내일 아침 7시 50분 편으로, 그 시간대에 공항까지 가는 버스를 발품 팔아 (이곳은 우리나라처럼 대중교통이 잘 되어있는 동네가 아니다. 여행사 사설 버스를 구하기 위해 이곳 저곳 돌아다녀야 했다) 구했다. 아아, 이 뜨거운 태양 아래의 작고 소박한 마을 아타카마도 내일이면 안녕이구나. 웨이, 다니와 함께 다니는 것도 오늘 달의 계곡 투어가 마지막이겠네.





2.

투어 시작 전, 웨이에게 내일 산티아고로 넘어갈 거란 말을 했다.

웨이 : 정말? 관광하려면 거기보다 살타가 더 좋지 않아? 산티아고에 뭐 없다는데.

하긴, 나도 여행 준비하면서 그 얘기는 많이 들었다. 다녀온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산티아고에는 여행자들의 관심을 끌만한 무언가 - 그러니까 환율도 드럽게 비싸면서 지구 반대편까지 고생하며 간 보람 정도는 느끼게 해 줄 무언가가 없다고 하더라. 그냥 평범한 대도시라는데. 하지만 지금의 나에겐 그 평범한 대도시가 절실하다.

나 : 나도 산티아고에 뭐 없는 건 들었어, 근데 카메라 때문에. 니콘 수리점 가서 맡겨 보려고.
웨이 : 내 카메라 쓰면 될 텐데...
나 : 네 카메라는 네가 쓰잖아! 나에게 있어서 카메라는 단순히 인증샷용이 아니라, 제 3의 눈 같은 거란 말이야.
웨잉 : 흐음. 그래...


뭔가 아쉬워하는 느낌이다. 쩝, 투어 끝나고 얘기할 걸 그랬나? 괜히 헤어질 얘기를 꺼내가지고 분위기가 이상해졌네. 그 때 응이 언니가 말했다.

응이 언니 : 웨이, 너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언제 도착하는데? 우리랑 비슷하게 도착하지 않아?
웨이 : 아, 그런가? 하긴, 난 위쪽으로 도는 거고, 너희는 아래쪽으로 도는 거니까, 결국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도착하는 시간은 비슷하겠다.





지도로 설명을 돕자면 요로케. 웨이가 빨간색, 내가 파란색. 지도에는 안 나와있지만 응이 언니는 산티아고에서 아는 사람을 만난 뒤 더 남쪽으로 내려갔다가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올라가는 코스.

나 : 도착하는 시간이 잘 맞을까요? 하루라도 늦어지면... 
응이 언니 : 어차피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하루만 있을 거 아니잖아? 며칠씩 머물텐데, 하루 정도는 겹치겠지!
웨이 : 오, 그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다시 만나도록 하자! 


그제야 얼굴이 좀 피는 웨이. 얘도 참 정이 많은 타입이야.





3.

다니에게도 물어보니, 다니는 일정상 한참 뒤에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갈 것 같다나. 뭐, 그래도 시간이 겹치면 같이 보자는 말로 적당히 이야기를 끝냈다.

다니 : 근데, 이렇게 여유부릴 때야? 우리 슬슬 투어 갈 시간이라고!

다니는 달의 계곡 투어가 그렇게나 기대가 됐던 건지, 출발 시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몸을 들썩거리며 앞장 섰다. 하긴, 어제 다리에 알 박히며 그렇게 기를 쓰고 가려다가 실패한 곳인데, 기대가 안 되면 그게 더 이상한 걸테다. 우리 역시 들뜬 마음으로 다니를 뒤따랐다.





4.

그리하여 시작된 달의 계곡 투어.

투어 내용은... 뭐, 내용이라고 할 것까지도 없고, 그냥 평범한 투어였다. 달의 계곡으로 가는 대형 버스에 올라탔다가 가이드의 설명을 들은 뒤, 잠깐 내려서 사진 찍은 뒤 다시 버스에 올라 타고, 다시 멍 때리며 앉아 있다가 다시 내려서 구경하고...

하지만 우리 넷은 평범한 투어임에도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전날 자전거로 지나쳤던 지형이 보이기라도 하면 뭔가 반가워졌기 때문이다.

응이 언니 : 저기 봐, 저기! 우리 어제 달리다가 지쳐서 쓰러진 곳이다!
웨이 : 저 바위 보여? 우리 사진 찍었던 곳이군. 
다니 : 아, 저기 언덕! 페달 밟는데 진짜 힘들었었다고 ㅋㅋㅋㅋㅋ


그러나 우리에게 익숙한 지형도 잠시, 버스는 정말 단숨에, 매우 쉽게, 야속하다 싶을 정도로, 우리가 기진맥진해서 페달을 밟았던 그 구간을 쌩하고 지나쳐 버렸다. 어딘가 억울한 느낌 반, 시원한 느낌 반이다...


어쨌든 여기서부턴 진짜 달의 계곡이다! 가이드가 내리란 곳에 내려 구경한 곳들의 사진을 몇 장 올려본다.




Tres Marias, 그러니까 '세 명의 마리아'라고 불리는 바위다. 한 명은 엎드려서 기도하고, 한 명은 서 있고, 한 명은 앉아 있는 건가?




바위 옆에 '세 명의 마리아 Tres Marias'란 표지판이 있는 걸 보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달려가 포즈를 잡는 셋.

...찍을 땐 경건하고 진지하게 찍었는데 결과물을 보니 우아함과 숭고미가 한참 부족하구나. 하여간 '마리아' 하면 가슴 앞에 두 손을 모으는 포즈 밖에 모르지.




나폴리 고고학 박물관의 조각상 옆에서 섬세하게 포즈를 따라했던 과거의 내가 한탄하는 소리가 들린다.




이건 마리아 옆에 있던 바위. 가이드 왈, 얘는 공룡이라 불리는 바위란다. 공룡... 공룡이라니. 절묘하게 눈도 찍혀있는 게 공룡의 옆모습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아냐, 아무래도 공룡이란 이름은 영 아니야. 임팩트가 없다고! 이름을 그렇게밖에 짓지 못한단 말인가!




아무리봐도 저거, 공룡이라기보단 팩맨이란 이름이 어울린다고! 어쩜 그렇게 상상력이 없어! 금방이라도 삥뽕거리는 배경음악과 함께 유령들을 피하며 돌아다닐 것 같은데! 이 광활한 사막에서 바위를 침대 삼고 별빛을 조명 삼아 팩맨을 즐겼을 유목민들이 울겠어!

...무슨 헛소리야? 오랜만에 포스팅 한다고 흥분한 듯. 참고로 저 팩맨 스샷 찾으려고 구글에 팩맨 쳤더니 구글에서 제공하는 팩맨 미니게임이 나오더라. 시간가는 줄 모르고 하다가 포스팅이 늦어짐.




세 명의 마리아와 팩맨 옆에서 각자 돌아가며 인증샷을 찍은 뒤, 다시 버스에 올라탔다. 이 사진은 버스를 타고 가다가 웨이가 찍은 사진. 애시당초 내 카메라는 죽은 지 오래 전이라 아타카마 넘어온 뒤부턴 계속 웨이의 사진을 쓰고 있다.

아, 그러고보니 이 사진들 다 웨이가 찍은 사진인데, 내 워터마크 박는 게 찔리는군. by Wei 라고 바꿔야겠다.

아222, 일괄편집 다 하고 나니 연도 잘못 찍은 게 눈에 들어온다. 사진 찍은 건 2014인데. 와, 믿기질 않는다. 여행한 지 벌써 2년이나 지난거야? 놀랍네. 2년이 지나도록 포스팅도 다 못 끝낸게 더 놀랍다. 뭐 여튼, 다시 편집하기 귀찮으니까 고치진 말아야지. 어차피 저런 마크는 아무도 신경 안쓸거야.

자꾸 말이 샌다. 여하간 사진 속 길가 주변에 보이는 하얀 건 소금인 것 같다. 우유니처럼 예전엔 해저였는지라, 땅에 염분기가 많아 그런 듯.




버스를 타고 계곡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어제의 일이 떠올랐다. 한 포인트에서 다른 포인트로 가려면 버스로도 짧지 않은 시간을 달려야 하는데, 만약 자전거로 포인트를 찍으며 이동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종아리와 허벅지가 터져 쓰러졌겠지. 지금까지도 호스텔에 누워 있었을 거야. 정말인지, 겁도 없이 제대로 된 준비도 하지 않은 채 이런 곳을 자전거로 일주하려고 했었다니 믿기지가 않는다.

이동 내내, 어제의 우리는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을 몸소 실천했던 거란 걸 다시금 실감했다.




투어의 또다른 포인트에 도착했다. 내려서 걸으라는 가이드의 말을 고분고분 들으며 따라가는 다니와 나, 응이 언니다. 뒤에서 걷던 웨이가 찍은 사진.

사족이지만 왼쪽의 저, 배 나온거 아님. 바람이 불어서 부푼 거임. 저 땐 살 안찜. 저 땐 나름 슬림했음... 저 땐... 지금은... 흑... 아니다...




이건 앞장 서서 걷던 응이 언니가 찍은 사진.

아직도 저 때 달의 계곡에서 바람을 맞으며 걷던 게 생생한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나다니... 한국에 와서 한 것도 없는데 시간은 쓸데없이 빠르다. 다들 바쁘게 살아서 그런지 시간도 바쁘게 흐르는 것 같다.




걷던 도중 제법 멋진 풍경이 나와 돌아가며 사진을 찍고 있는데, 내 차례에 웬 펄쩍펄쩍거리는 외국인(미국인이었던 것 같다)이 킬킬거리며 자연스럽게 끼어들었다. 투어 내내 가이드가 하지 말란 짓은 다 하며 방방 뛰어다니고 깝죽거리던 사람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깝죽이 미국인한테 부탁해서 찍은 단체 샷.




자길 찍어달라며 카메라를 맡기더니 능선에 앉아 폼 잡는 웨이.

헤어 스타일만 보면 고딩 때 반에서 10등 정도 하는, 거동이 바르고 성실한 모범적인 여학생같은 느낌이다. 내 친구 중에 저런 머리 많았는데.





아아, 풍경 보소. 황량하기 짝이 없다. '달의 계곡'이라는 이름처럼 정말 달 같은 풍경인지는 달에 가본 적이 없어서 정확히 모르겠지만, 뭐, 대충 비슷한 느낌이지 않겠어?




그러고보니 이 땐 카메라가 없어서 사진은 모두 웨이에게 맡긴 채 무진장 자유롭게 다녔다. 카메라가 있었더라면, 어떻게 찍으면 좋을까, 이렇게 찍을까, 저렇게 찍을까, 내가 배경에 나오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이 고민 저 고민 하면서 다녔을텐데 말이다. 그런 고민이 없으니 있는 그대로의 광경을 눈에 새겨가며 편하게 만끽할 수 있었다.

묘한 일이다. 손에서 카메라를 내려놓자 시야가 더 선명해지다니. 아마 아타카마에서의 일을 다른 어떤 도시에서보다 더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이유도, 어느 정도는 이것의 영향이지 않을까 싶어진다. 카메라는 내 기억을 도와주는 편리한 도구라고 생각했는데, 어느샌가 난 거꾸로 그 도구에 매여 있던 걸지도 모르겠다.





5.

가이드를 따라 다음으로 둘러본 곳은 달의 계곡 내에 있는 한 동굴이었다. 입구가 외진 곳에 있었기 때문에, 만약 가이드와 함께 오지 않았다면 그냥 지나쳤을 것 같은 곳이었다. 가이드님. 감사합니다.




컴컴한 동굴을 손전등 따위에 의지하며 걸어나갔다. 동굴 내부는 의외로 미끄러웠고, 내 신발은 미끄러움에 최약체였기 때문에 계속 발을 헛디뎌 사람들의 조소를 샀다. 에잇, 난 왜 이딴 신발로 여행을 하고 있는 거람.

정글의 법칙이었다면 "위기 상황!" 이라던가 "돌발 상황!" 등등의 멘트와 함께 슬로우 모션으로 카메라에 잡혔을 법한 상황이 몇 번 연출된 뒤, 동굴 밖으로 나왔다.




동굴 밖으로 나왔을 때의 풍경이 또 엄청난 장관이었는데, 길이 위험해서 아무도 카메라를 꺼낼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 엄두도 내지 못...했던 것 같은데... 웨이는 그 상황에서 어떻게 또 대충이라도 찍었나보다. 대단한 프로(?) 정신. 장하다, 웨이.





6.

동굴 탐사를 끝으로, 다시 버스에 올라탔다. 가이드 왈, 이제 죽음의 계곡으로 넘어갈 것이란다. 자전거로 초입 부분만 잠깐 달리고 왔던 거기 말이지. 으음, 기대 된다.




버스는 달의 계곡을 빠져나가 도로 건너편에 위치한 죽음의 계곡으로 향했다.

저 멀리 자전거 타는 사람이 보이네. 이제 자전거로 여행하는 사람들은 보기만해도 존경스럽다.





버스는 우리를 죽음의 계곡 안쪽에 내려줬다. 뭐, 어제 봤던 거랑 별반 다를 게 없어 설명할 건덕지도 없군.

죽음의 계곡에서 10분 정도의 포토 타임을 가진 뒤, 다시 버스에 올라탔다. 가이드 왈, 이제 마지막 코스인 전망대로 간단다.





7.

하루가 쏜살같이 지나갔다.

해는 벌써 뉘엿뉘엿 저물기 시작했고, 가이드는 일몰 시간에 맞춰야한다며 버스 기사를 닦달했다. 가이드의 재촉 덕분에, 우리는 아슬아슬한 시간이지만 전망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사실 말이 전망대지, 높고 평평한 절벽지대일 뿐, 난간이나 표지판, 주차장 등은 찾아볼 수 없는, 문명의 손길이 닿지 않은 원초적인 전망터였다.

전망대면 어떻고, 전망터면 어떠랴! 우리는 해가 지기 직전인, 그 찰나의 순간을 감상하기 위해, 절벽으로 우르르 달려갔다.




아아, 아타카마, 아타카마.

내 입버릇 같은 건데, 일반적인 감상을 넘어서는 감동이 있는 곳은, 그래서 내 기억 속에 깊이 새기고 싶은 곳은, 나도 모르게 두 번씩 부르게 된다. 특히 잊고 싶지 않은 그 특정한 시간대가 저녁인 경우에 더 그런 것 같다. 예를 들면 아바나, 아바나라던가, 로마, 로마. 혹은 나폴리, 나폴리... 같은.

여하간 그리하여 나는 이번에도 어쩔 수 없이 읊조리게 되는 것이었다. 아타카마, 아타카마, 하고.




아타카마에서 보낸 이틀은, 남미를 여행하면서 보낸 가장 색다르고 가장 활기차며 가장 감동적인 시간이었다. 그것은 비단 이곳에서만 어떤 특별한 사건이 일어났거나 월등히 뛰어난 광경을 봤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 이전에 갔던 도시들에서도 특별한 사건들은 발생했고, 아타카마 이상의 감동을 주는 광경이 존재했다. 리마에선 분통이 터졌고 파라카스에선 뒷통수를 맞았으며 아레키파에선 끙끙 앓았다. 테오티우아칸에선 경이로웠고 와카치나에선 뜨거웠으며 마추픽추에선 벅차올랐다. 어디에서든 아타카마와 '비슷한 수준'의 사건들과 광경들을 겪어오고 봐왔단 말이다. 그런데 왜, 아타카마에서 보낸 시간만이 내게 유난히 색다르고 감동적으로 다가왔을까?

대답은 간단하다. 그동안 난 계속 혼자였던 것이다.

이곳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서로 도움을 주고 받으며 여행하는 동안 느끼게 되었다. 아, 나는 그동안 '내 감정과 내 고민과 내 감동과 내 문제'를 나 혼자 감당하며 지쳐갔었구나. 난 이번에 만난 이 사람들과 '내 감정과 내 고민과 내 감동과 내 문제'를 함께 나누며 회복한 거구나. 그래서 아타카마에선 더욱 더 기뻐하고 감사하고 즐길 수 있게 된 것이구나.

사실 한국에 있을 때, 난 이 세상이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그보다도 한국에서의 골치 아픈 인연과 귀찮은 대인 관계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그래서 어떤 사람과도 깊게 엮이지 않고 혼자 자유롭게 훨훨 날아 세계를 둘러보기로 결심했었다.

하지만 나는 결국 길 위에서도 누군가와 엮였을 때 더 행복했던 것이다.




웨이 : 풍경 멋지다! 더 많은 사진을 찍었어야 했는데.
다니 : 달의 계곡은 야간 투어도 있다던데. 신청할까 고민이군.
응이 언니 : 아아, 난 내일 새벽 비행기라 일찍 자야하는데. 아쉽다.


지금 이 순간은 함께지만, 다시 각자의 여행길에 오르게 되면 우리는 뿔뿔이 흩어져 자신만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당분간은 메신저나 핸드폰으로 연락을 주고 받겠지만, 아마 그 연락 횟수는 서서히 뜸해질 것이고, 결국은 서로가 서로의 인생에 나타날 일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미약한 인연이지만, 그럼에도 아타카마에서 이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 다행이었다.

여기 아타카마에서 나는 다시 혼자 걸을 수 있을 만큼 회복했으며, 인연과 관계에 대해 깊게 생각할 기회를 얻었으니까.

웨이 : 이봐, 리.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는 거야?
나 : 어... 음...


하지만 그 '깊은 생각'이란 건 나중에 혼자 있을 때 이어서 해도 괜찮겠지. 아직은 다들 함께니까, 당면한 현실적인 문제에 집중해야겠다.

나 : 당연히 저녁밥 생각이지. 마을로 돌아가서 뭐 먹지?



아타카마의 마지막 밤에서 계속!





덧글

  • 11thCTR 2016/02/11 14:54 # 답글

    1빠!
    ... 라지만 그동안 정신이 없다보니, 칠레 글들은 모두 읽어보지도 못했군요. 나중에 짬나면 천천히 읽어봐야겠습니다. ㅎㅎ
  • enat 2016/02/12 21:41 #

    많이 바쁘시군요! 나중에 화장실이나 침대 위에서 잠이 안오실때 편하게 읽어주세요! ㅋㅋㅋㅋ
  • 11thCTR 2016/02/13 00:10 #

    이런 성스러운 글을 침대나 화장실에서 보기는....
    이 아니고, 이글루스를 스마트폰으로는 안봐서... ㅋㅋㅋ 얌전에 책상앞에 앉아서 볼렵니다. ㅋㅋㅋ
  • enat 2016/02/23 18:01 #

    잌ㅋㅋㅋㅋㅋ 제 글은 침대나 화장실에서 보기 딱 좋은 글인데 말이죠! 스크롤 내리다보면 눈 감겨서 잠 잘아고 사기당한 포스팅 보면 열받아서 잘나오고(?) 그럽니다.
    아 스마트폰으론 이글루스를 하지 않으시나요?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이글루스 모바일 버전으로 보면 글씨가 제멋대로 커졌다 작아졌다 해서 말이죠 ㅠ 아마 폰트사이즈 태그가 엉켜서 그런 것 같은데 모바일로 고치기는 귀찮고 이래저래 애로사항이 많습니다아.
    여튼 나중에 여유가 있으실때 느긋하게 읽어주세요~ 그동안 포스팅을 쌓아두도록 하죠 ㅋㅋㅋ
  • 눈아찌 2016/02/11 15:30 # 삭제 답글

    마리아님 코스프레 사진은 잘 봤습니다, 스님
    오랜만에 사진이 많이 올라와서 재밌게 봤네요
    중간에 아담한 뱃살 사진이랑 웨이 닮은 김전일 사진도 좋았어요
    바쁜 와중에 글 올리느라 고생이군요, 화이팅
  • enat 2016/02/12 21:42 #

    마리아님인데 왜 스님!?
    뱃살이 아니라 바람이라니까요 글쎄!?

    그나저나 김전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진짜 김전일 머리네요 그러고보니ㅋㅋㅋㅋㅋ

    이래저래 고민이 많은 나날들입니다 ㅋㅋㅋ 화이팅!
  • 키르난 2016/02/11 15:42 # 답글

    진짜 멋집니다. 황량한 저곳이...... .... 저는 아무리 봐도 스타워즈 로케지로 밖에는.(야!) 하와이 갔을 때 모처를 두고서 '아폴로 11호 달착륙 장면을 찍었다는 소문이 드는 곳'이라고 하던데, 저기서 마션을 찍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아요....ㄱ-; 모래폭풍만 넣으면 그럴싸하겠습니다.
    근데 산티아고 찍고 부에노스아이레스 가면, 그 다음은 도로 북쪽의 이과수인가요..? +ㅅ+
  • enat 2016/02/12 21:46 #

    스타워즈 로케지!!!! 확실히 우주스럽고 외계스러운 곳이긴 합니다!!! ㅋㅋㅋ
    그나저나 하와이 다녀오셨었나요!? 킄 티스토리라서 제가 깜빡하고 들리지 못해서 포스팅을 보지도 못했군요 ㅇ<-< 구경가야지...

    넵 부에노스 아이레스 다음에는 이과수입니다! 포스팅으로 후딱후딱 가볼게요!
  • 못치 2016/02/11 17:51 # 삭제 답글

    enat님! 기다렸어요 :) 끝에서 2번째 사진 넘 아름답네요 좋은 추억을 공짜로 공유받는거같아요~! 업뎃 감사합니다 다음 글도 기다릴게요 ^_^)/
  • enat 2016/02/12 21:46 #

    기다려주셔서 감사해요! 한참동안 비워놨었는데! ;ㅅ;
    재밌게 봐주셔서 포스팅하는 보람이 있네요! ^0^
  • 베라 2016/02/11 19:10 # 답글

    enat님 오늘도 여행기 잘 읽었어요. enat님 글 읽다보면 저도 여행하는 느낌이 들어서 항상 즐거워요^^
  • enat 2016/02/12 21:47 #

    즐겁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즐거운 느낌을 받으실 수 있도록 노력해서 써볼게요! ㅋㅋㅋ
  • 레아 2016/02/11 21:15 # 삭제 답글

    <3
  • enat 2016/02/12 21:48 #

    <3... ♡
  • 택씨 2016/02/11 21:55 # 답글

    오오. 사진을 보니 저도 기억이 새록새록.
    아타카마의 카페도 반갑구요!!

    달의 계곡은.. 하하. 자전거로 가긴 좀 먼 것 같더라구요. 그런데 저도 마리아상에 갔을 때 자전거로 오는 유럽얘들 봤어요;; 정말 존경스러웠어요.
    마리아상에 가니 경비원이 지키고 있던데... 그래도 꽤 가까이 다가 가셨나 봐요. 어떤 관광객이 와서 맨 왼쪽의 마리아상을 훼손했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막 가까이 못가게 막고 그랬어요.
  • enat 2016/02/12 21:50 #

    오 정말 다녀오신지 얼마 되지 않으셔서 많이 기억나실 것 같아요! ㅋㅋㅋㅋ

    유럽애들의 체력은 정말... 존경스러울 정도더라고요 ㅋㅋㅋㅋ 자전거로 비포장 도로를 질주하질 않나, 자기 상체만한 배낭을 이고선 트래킹을 하질 않나... ㅋㅋㅋㅋㅋ
    오잉!? 왼쪽의 마리아상은 어떤 관광객이 훼손했던 거였나요!? 누가 그런 짓을 ㅇ<-< 제가 갔을 땐 경비원은 없었던 걸로 기억해요. 대신 들어가지 말라는 표지판이 있어서 아무도 안들어가고 말았는데... 하여간 하지 말라면 꼭 하는 사람들이 문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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