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2/27 23:34

남미여행 (47) 아르헨티나 :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도착하다 ├ 남미 배낭여행 (2014)

1.

드디어 그 도시를 이야기 할 시간이다. 남미를 다녀온 후, 다른 곳은 그렇다치더라도 반드시 여기만큼은 다시 오겠다고 마음 먹은 도시, 여유가 된다면 1년 정도 살면서 스페인어를 배우고 싶은 도시, 아침의 빵 굽는 냄새에 일어나 창문을 활짝 열고 부에노스 디아스라고 외치고 싶은 도시.

부에노스 아이레스 Buenos Aires.

어쩜 이름조차도 이토록 부드럽고 낭만적인지!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아르헨티나의 수도이자,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밀집해 살고 있는 도시다. 대서양 연안에 자리잡은 항구도시인 탓에 바다 건너 유럽의 문화가 거침없이 들어왔고, 언젠가부터 남미의 파리라는 별명도 붙게 되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유럽을 모방할 줄만 안다며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문화적 정체성을 조소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리 열강의 식민 지배와 간섭이 있었고, 그로 인해 이 도시에 끼친 유럽 문화의 영향이 상당하다 할지라도,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남아메리카 대륙에 붙어있는 도시다. 남미 특유의 폭발적이고 강렬한 힘은 먼 옛날부터 라플라타 강을 통해 끊임없이 이 도시에 전달되어졌고, 그래서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유럽이라기엔 야생적이며 거칠고, 남미라기엔 세련되고 정교한, 그 자신만의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게 되었다.

뭐, 문화학 시간에 발표할 법한-그리고 발표한다면 낙제를 받을-내용은 됐다. 사실 내가 쓰고 싶은 말은 저런 복잡한 인과관계나 역사적 흐름이 아니라, 아주 단순하고 알기 쉬운 말 한 마디에 불과하다. 탱고를 낳은 이 아름다운 항구도시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대해, 내가 단 한 마디 언급하고 싶은 것은, 이 도시가 너무나 사랑스러운 도시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주의하라!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선 옆에 있는 사람을 반드시 조심해야 한다. 소매치기를 조심하란 소리-내가 당하긴 했지만-가 아니다. 도시가 사람을 유혹하고 설레게 하기 때문에, 조심하지 않으면 어느새 착각에 빠져 옆사람과 사랑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2.

일단 부에노스 아이레스 이야기는 접어두고, 다시 이전글로 시간을 돌려 멘도사로.

멘도사에서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내가 기다려야하는 시간은 너댓시간 정도였다. 혹시 오래 앉아 있어도 눈치보이지 않는 다국적 프랜차이즈 카페가 근처에 있나 싶어서 찾아봤지만 보이질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아쉬운 대로 버스 터미널 안에 있던 개인 카페에 들어갔다.




적당히 메뉴에 있는 커피와 샌드위치를 시켰다. 주문과 거의 동시에 음식이 나왔다. 잠깐, 그래도 커피 내리는 시간은 걸려야하는 거 아냐!? 우연히 동일한 메뉴의 주문 취소가 들어왔던 건가!? 이상하다 생각하며 샌드위치를 한 입 베었다.

우물거리며 단 한마디를 떠올렸다.

맛없어...





3.

몇 시간 동안 심심해하며 몸을 배배꼬다가, 마침내 시간이 되어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내가 앉은 좌석은 까마(Cama, 뒤로 많이 젖혀지는 장거리용 좌석으로 다리 받침대와 담요, 적당한 도시락 등을 제공함)였고, 내가 앉은 좌석의 열이 한 줄짜리였기 때문에 옆에 누구 앉는 사람 없이 제법 편하게 갈 수 있었다. 난 싼 가격에 이런 좌석을 잡아준 대머리 근육질 아저씨에게 다시 한 번 감사했다.

담요를 덮은 채 한숨 푹 자고 일어나자 부에노스 아이레스였다.





4.

버스 터미널에서 내린 난, 우선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새파란 하늘에 놀랐다. 어쩜 이렇게 파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파란 하늘에 눈이 팔려, 멍하니 하늘만 올려다보다가, 어서 숙소에 짐을 풀고 돌아다녀야겠다고 다짐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자, 이제 가볼까? 숙소로...

숙소...

숙...소...?


흠, 한 가지 실수를 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숙소 예약을 까먹은 것이다. 숙소에 대한 약간의 검색도, 심지어 알아볼 생각조차도 하지 않았다. 난 대체 어제 멘도사에서 무엇을 한 것인가, 와인에 정신이 팔렸었구나, 여행이 길어지니 네가 긴장이 풀린 것이냐, 등등의 생각이 들었지만... 뭐 이미 지나가버린 걸 어쩔 수 없지 않나. 그렇게 큰일도 아니고. 난 머리를 긁적이며 인포메이션 센터로 찾아갔다.

버스 터미널 내부의 인포메이션 센터엔 순진해보이는 아가씨 한 명이 앉아 있었다. 난 적당한 숙박 시설을 알려달라고 했고, 아가씨는 요즘 세상에 인터넷으로 찾아보지 않고 이런 곳에서 오프라인으로 호텔을 찾는 여행자도 다 있구나 싶은 표정으로 오래된 복사 용지를 보여줬다. 그곳엔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주요 호텔과 호스텔 목록이 쭉 적혀 있었다.

나 : 잉? 너무 많아. 두 군데만 추천해주면 안 돼?
인포 : 그럼 여기랑... 여기.


인포 언니가 지도에 숙소를 체크해줬다. 택시를 탈까 했지만, 지도를 보니 어쩐지 걸어서도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날씨도 좋으니, 좀 걸어볼까? 인포 언니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전하고, 밖으로 나와 걷기 시작했다.





5.

더... 더워...

괜히 걷기 시작한 것 같다. 난 왜 과거의 나에게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것인가. 옛날부터 여행 중 내 고생의 시작점은 언제나 "걸어나 볼까?"인데, 정작 그걸 고쳐보려고 한 적은 없었다. 바보냐. 바보냐고. 날이 좋아서 쉽게 걸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날이 지나치게 좋아서 이젠 땀이 날 정도로 덥다. 또 이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골목길은 왜 이리 복잡한 것인지. 여기가 저기 같고, 저기가 여기 같고...




난 한숨을 쉬며 지도를 다시 폈다. 그 때 맞은편에서 오던 할머니가 날 보며 쿡쿡 웃었다. 나는 왜 그러시나 하고 쳐다봤다. 할머니는 날 바라보며 또렷하게 말씀하셨다.

할머니 : 안녕하세요?
나 : 어... 예... 예?


아무리봐도 한국 사람은 아닌데, 유창한 말로 한국말을 건네는 할머니. 나는 놀라서 한국말을 아냐고 물었고, 할머니는 호호 웃으며 안녕하세요만 기억난다고 하셨다. 할머니 왈, 옛날에 한국에 군인으로 온 적이 있다고, 그래서 한국 사람을 보면 몹시 반갑다고 하셨다. 어... 군인? 여군? 미군이셨나? 혼란스러운 내게 할머니는 대뜸 손을 내미셨고, 나는 그러시냐고, 반갑다고 손을 잡았다. 그 할머니는 젊었을 적 보았던 한국이 마음에 들으셨던 건지, 두서는 없지만 애정어린 말투로 한국의 도시나 한국의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열하셨다.

할머니는 내가 들고 있는 지도를 보고, 길을 찾는 거냐며 자기가 도와주겠다고 하셨다. 인포 언니가 A4용지에 써준 주소를 보여주자, 대충 감이 오셨는지 잠시 생각하다가 그곳으로 어떻게 하면 쉽게 가는지를 알려주셨다. 난 감사하다고 했고, 할머니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나도 만나서 반가웠다고 인사를 한 뒤 싱글벙글 웃으며 마저 가던 길을 가셨다.

저 할머니에게 있어서 한국은 어떤 나라였을까? 길거리에서 잠깐 마주쳤다고 저렇게 즐거워하시는 걸 보면 좋은 기억이 많으신 것 같다. 뭐 사실, 나 같아도, 길가에서 외국인을 만났는데 자기가 쿠바 사람이라고 그러면 "나 거기 가봤어! 올라! 아바나! 피냐콜라다!" 이럴 것 같긴 하지만...

어쨌든 길거리에서 웃으며 얘기도 하고, 힘이 좀 났다. 난 다시 힘을 내서 숙소를 찾아갔다.





6.

마침내 인포메이션에서 알려준 숙소에 도착했다. 지금 찾으려니까 어딘지 모르겠는데, 별로 추천해주고 싶은 마음도 없으니 모르셔도 괜찮겠다. 인포메이션에서 알려줬다고 다 좋은 건 아니라는 걸 여기서 알게 됐다.

그렇다고 그렇게 나쁜 숙소도 아니었다. 그냥 살짝 낡은 시설에 적당한 가격을 가진, 평범한 호스텔이었다. 개인실을 쓸까 하다가 여러 정보를 얻기 위해 도미토리 룸을 잡았는데, 아직 이 도시에 얼마나 머무를지 정하지 않아 일단 3박치만 결제했다.

씻고 쉬다가, 역시 가만히 앉아 있으려니 몸이 근질거려 외출하기로 했다. 일단 호텔 리셉션에 가서 내가 무얼하면 좋겠느냐고 물어봤다.

리셉션 오빠 : 오, 그럼 이건 어때? 탱고쇼. 비싸긴 한데,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오면 반드시 봐야 해.
나 : 탱고쇼? 일단 알아만 둘게. 오늘은 아냐. 내가 필요한 건 오늘 할만한 거. 벌써 오후잖아. 어딜 다녀오면 좋을까? 가까운 곳에 명소 없어?
리셉션 오빠 : 아, 여기서 가까운 곳이라면 거길 가봐, 레콜레타. 가는 길은, 여기서 큰 길가로 나가서 쭉 내려가면... 어쩌구 저쩌구.


리셉션 오빠의 추천사를 들으며 레콜레타로 향했다. 레콜레타라면, 예전에 들은 적이 있다. 에비타의 묘지가 있는 곳일텐데. 난 보조 가방에 지갑과 핸드폰, 디카를 넣은 뒤 길을 나섰다.





7.

호스텔에서 바다를 향해 쭉 걷다보니, 큼직한 빌딩과 대로가 보였다. 여기가 아마 레콜레타 지역인가 보다.




레콜레타 지역은 부에노스 아이레스 안에서도 가장 부자 동네다. 부자 동네다운 레스토랑, 쇼핑가, 문화센터, 광장 등 다양한 시설들이 세워져 있다. 하지만 레콜레타 동네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명소는 그런 문화와 편의 시설이 아니다. 그 부자 동네에서 다른 것 다 제치고 많은 여행자들의 시선을 빼앗는 그곳은 바로 레콜레타 묘지(Cementerio de la Recoleta)다.

섬뜩하게 묘지가 왜 관광지냐고? 그건 레콜레타 묘지가 그냥 무덤이 아니라 아름다운 대리석으로 힘껏 치장된 유명인사들의 납골당이기 때문이다.

참으로 유명인사라는 건 할 것이 못 되나 보다. 죽어서까지 구경을 당해야하니 말이다. 이곳엔 '에비타'라는 애칭으로 유명한 에바 페론을 비롯하여 아르헨티나의 여러 저명인사들이 묻혀있고, 그 때문에 이 도시에 들린 여행자들의 거의 대부분은 이곳에 한번씩 들러 그들의 흔적을 찾으려 애쓴다.

물론 그들을 추모하려는 사람들 외에도, 단순히 납골당의 조각을 감상하려는 사람들, 가이드북에 나와있어서 찍고 가기 위해 들린 사람들, 갑자기 삶과 죽음에 대해 고찰하고파 산책나온 사람들, 인증샷을 찍으려는 사람들 등이 이곳을 찾아온다. 물론 단순히 호스텔 리셉션에서 소개받고 온 별 생각없는 동양인 여행자가 찾아가기도 한다.




레콜레타 묘지의 바깥쪽에서 본 입구.

살아있는 자들이 죽은 자들에게 보내는 마지막 인사인 "평안히 잠드소서 REQUIESCANT IN PACE"




안쪽에서 본 입구.

죽은 자들의 유일한 바람인 "주를 기다립니다 EXPECTAMUS DOMINUM"






납골당은 거의 작은 주택과도 같았다.

그래서 분명 묘지라고 알고 들어간 것인데도, 작은 마을 구획을 보는 것 같았다.




이곳에 대해 아름답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조각과 납골당 건물 등의 전체적인 조화로움을 놓고 보자면... 음, 사실 아름다운 건 잘 모르겠다. 난 지난 쿠바 여행 때 봤던 새하얀 국립묘지 성 이피게니아 묘지를 생각하며 왔었는데, 아무래도 그런 국립묘지에서나 가능한 통일성은 존재하지 않았고, 너무 제각각 자기 맘대로 꾸며져 살짝 정신이 없었다. 사설 납골당일테니, 어쩔 수 없는 거겠지만.




그건 그렇고, 아무리 관광지화 된 곳이라곤 해도 남의 무덤 앞에서 브이하고 웃으며 사진 찍는 건 좀 그렇지 않나? 난 젊은 애들 셋이 지나치게 깔깔거리며 인증샷을 찍는 걸 보고, 왠지 저쪽으로 지나가면 나보고 한 장 찍어달라고 할 것 같아 발길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 외 묘지의 이런저런 모습들...

그건 그렇고, 이 묘지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에비타의 묘가 보이질 않는다. 대체 어딨는 거야? 사람이 모여있기 때문에 쉽게 찾을 수 있을 거랬는데, 왜 내 눈앞엔 나타나지 않는 것인가.

제법 돌아다녔는데도 찾질 못해서, 다음에 다시 들리기로 하고 묘지에서 나왔다.





8.

여기서부턴 레콜레타 묘지 근처의 이모저모.

묘지 밖으로 나오자 한 밴드가 길거리 공연을 하고 있었다.




무슨 곡인지는 모르겠지만 제법 흥이 오르는 연주였다. 잠깐 구경.




이곳은 레콜레타 묘지 바로 옆에 있던 Nuestra Senora del Pilar Church라는 성당이란다.

검색기를 써보니 기둥의 성모 교회라고 나오는데... 기둥... 기둥의 성모라... 기둥의... 기둥의 남자... 흠, 흠흠.


...파문!


...

흠흠... 어쨌든 가슴이 뜨거워지는 성당이군.




이건 필라르 성모성당의 내부. 화려한데... 기둥, 기둥 어딨지. 가운데 있는 성모가 기둥 위에 서있는 건가.




작은 공원. 이 근방에 이런 공원들이 군데군데 많이 있어서, 돌아다니다가 잠깐씩 벤치에 앉아 쉬곤 했다.




이건 근처에 있는 하드락 카페.




맥주 한 잔 시켜놓고 놀기 좋은 분위기였는데 다들 여럿이 앉아있길래 혼자선 좀 뻘쭘하더라. (그리고 여자들이 많았다.) 그래서 그냥 나왔다.




돌아다니다보니 배가 고파서 근처에 있는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아무데나 들어간 건데 장식이 엄청 화려해서 눈이 돌아간다.




일단 아까 하드락 카페에서 시키지 못한 맥주를 시키고 벌컥벌컥 마셨다.

빵과 과자를 주길래 기본안주인 줄 알고 까먹었는데, 나중에 테이블 차지 붙이더라. 우이씨.




립아이랑 감자튀김이랑 샐러드랑 대충 시켜서 먹었다.

립아이... 후후... 아르헨티나의 소고기를 먹어보지 못한 자, 소고기를 논하지 마라! 라는 말을 예전에 스페인어 학원 선생님(한국 돌아와서 취미로 한 달 다녔었다. 근데 학원 거리가 멀어서 한 달만 다니고 관뒀다. 집 근처에 스페인어 학원 생기면 좋겠다)께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 건방진 말에 완전히 동의할 수 있을만한 맛이었다. 당시 그 반에 있던 학생들 중 아르헨티나에 다녀온 사람은 선생님과 나밖에 없어서, 다른 사람들은 다들 그래도 우리 한우가 최고지 어쩌구 하는 느낌이었는데, 아냐, 정말 아르헨티나의 소고기는 짱이다. 아르헨티나의 팜파스 대초원에서 펄쩍펄쩍 뛰어다니며 자라난 소... 아르헨티나에선 소를 어릴 때 잡는다고 한다... 우후후... 역시 어린 놈이 맛있어...

여하간 그렇게해서 얼마 나왔더라... 대충 3만원 정도? 그 아르헨티나 소고기에 이것저것 곁들여 먹었는데도 3만원 안팎이다.

꺄후! 암환전만 믿고 쓰는 아르헨티나 화폐 만세! 암환율 때문에 괜히 부르주아가 된 기분이다.


...아, 혹시나 해서 붙이는 말이지만 2014년 기준이다. 요새는 환율 통제를 없애서 환율이 공식 환율과 실제 환율로 이원화된 기이한 현상은 사라졌다 하더이다. 진작 포스팅 해뒀으면 요새는 어떻지 하고 눈치보고 검색해가면서 쓸 필요 없었을 텐데.





9.

레콜레타 지역을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해가 떨어지기 전에 호스텔로 돌아왔다.




기분 좋게 씻고, 바람이나 쐴까 하고 옥상에 올라갔다. 근데 옥상 위에는 나만 있는 게 아니었다.

??? : 어, 안녕?
나 : 안녕? 여기서 뭐해?
??? : 담배 피러 올라왔어. 맥주도 마실 겸.
나 : 방해 될까?
??? : 전혀 아냐! 나 심심했어.





그녀의 이름은 베로나라고 했다. 독일 사람으로, 아르헨티나로 온 게 첫 해외여행이라고 했다.

나 : 첫 해외여행!?
베로나 : 아, 물론 유럽 빼고. 유럽은 마음대로 다닐 수 있으니까, 별로 해외여행 같지가 않아.


하긴, 유럽 사는 사람들은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구나.

나 : 어때, 첫 해외여행은?
베로나 : 힘들어! 여기 왜 영어가 안 통해?
나 : ㅋㅋㅋㅋㅋㅋ 남미잖아.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라.
베로나 : 그래도! 영어는 공용어잖아! 왜 못 사는 나라인지 알겠더라.


그녀는 첫 해외여행 동안 퍽이나 힘들었는지, 나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주절주절 늘어놓았다. 난 별로 공감할 수 없는 내용이어서, 머릿 속으로 딴 생각을 하며 적당히 흐응, 으음, 호오, 정도의 추임새를 넣어주었다. 베로나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맙다며 자신이 사온 맥주를 아래층에서 더 꺼내와 나에게 건넸다. 사상적으로는 공감할 수 없지만 행동적으로는 마음에 드는 여자로다! 나도 답례로 전날 멘도사 와이너리에서 산 와인을 꺼내었고, 그녀는 어쩜 이렇게 맛있는 와인이 있냐며 감동했다. 술이 오가는 훈훈한 저녁 시간.

마침내 해가 지고, 도시의 거리가 불빛으로 반짝이던 때에, 어디까지 이야기가 진행됐을까, 갑자기 그녀가 이런 말을 했다.

베로나 : 그렇지, 리! 넌 여행을 많이 다녔댔지?
나 : 나? 에이, 내가 뭘 많이 다녀! 그냥 좀 다닌 거지.
베로나 : 그래도! 너랑 다니면 왠지 편할 것 같아! 넌 숙련된 여행자잖아! 전문가잖아!
나 : 음? 나랑? 나랑 다니면?


얘가 왜 이러지?

베로나 : 나, 결심했어! 내일은 너랑 같이 다녀볼래!
나 : 뭐어어!?
베로나 : 괜찮지? 괜찮지?


으음... 유럽 여자라... 유럽 여자와는 우유니에서 안좋은 추억이 있어서... 음...

웬만하면 적당히 핑계를 대고 빠지겠지만 이렇게까지 직구를 던지면 받는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야기를 하며 옥상에서 술도 같이 한 잔씩 했는지라, 어쩐지 이 제안을 거절하면 술친구의 의리를 배신하는 것처럼 되어버릴 것 같다. 그렇다면...

나 : 뭐, 괘, 괜찮지! 하하하! 내일 같이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휩쓸어 보자고. 하하...
베로나 : 그래! 너랑 다니면 정말 재밌을 거야! 꺄하하!




그렇게 독일 여자와 동행하게 된 BsAs 이야기는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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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같은 여행자들을 위해 저 제목으로 가자. 힘내세요 혼자 남미를 여행하는 여행자 여러분. 1. 여태까지 부에노스 아이레스 일정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1일차 - 레콜레타 지역 2일차 - 산 텔모 (프리마켓), 라 보카 카미니토 거리 그리고 벌써 3일차! 오늘은 무얼할까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이 날의 일정은 벌써 정해져 있기 ... more

덧글

  • 용용 2016/02/28 01:48 # 삭제 답글

    우와! 부에노스 아이레스 찬사(?) 인트로 부분읽으면서 오랫만에 예전에 친구분이랑 유럽여행 다녀오시고 이탈리아 좋았다고 여행기 쓰셨던게 생각났어요!! +ㅁ+ 기대되요!!! 소매치기 사건이 있으셨는데도 사랑스러운 도시라고 쓰신거보니!!
    과연 독일 여자와의 동행은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한데요?!!

    이낫님이 여행기 팍팍 올려주셔서 좋은데ㅠㅠ 감기는 얼른 나으셨으면 좋겠어요!!! 몸 괜찮으신가요??ㅜㅡㅠ
  • enat 2016/02/28 11:52 #

    앗 이탈리아... 그 옛날 포스팅을 기억해주시다니 감사합니다. 거의 그 때의 기분이랑 비슷했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소매치기 사건이 있었는데도 사랑스럽다니, 이 정도면 중증인 듯 합니다... ㅋㅋㅋㅋㅋ
    독일 여자와의 동행도 빠르게 올려보도록 하죠!
    감기는 점점 나아지고 있습니다. 이 바이러스가 의외로 끈질긴게 오래 가긴 하네요ㅠ ㅋㅋㅋㅋ
  • 택씨 2016/02/28 08:43 # 답글

    이렇게 호평을 하시는 곳이라니!!! 저희도 30일 짜리 남미 여행을 택할 걸 그랬어요;;
    납골당은 좀... 골목길 느낌이에요. (너무 붙어있어서 그런가?) 에바의 묘지도 봤으면 좋았을 걸 그랬어요. (혹시나 그냥 휙~ 지나가신 거 아닌가요?)
    군인 할머니가 어떻게 한국인인줄 알았을까요? 저도 페루 사람 만나면 그럴 거 같아요!!
  • enat 2016/02/28 11:55 #

    근데 역시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 저는 너무너무 좋고 그랬는데, 어떤 사람들은 재미가 없었다, 너무 유럽 같아서 지루했다, 남미라는 느낌이 안들어서 별로였다 평하기도 하더라고요. 그래도 궁금하시다면 35주년 기념으로 아르헨티나를...!?
    에바의 묘지는 다음번에 또 찾으러 갑니다. 걱정마세요! ㅋㅋㅋ
    페루에서도 그렇고, 한국사람들에 익숙한 외국인들은 한국인/일본인/중국인을 구별하는 것 같더라고요 ㅋㅋㅋ 신기했어요.
  • 키르난 2016/02/28 08:53 # 답글

    다음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파장이 잘 맞으면 같은 유럽여자라도 괜찮을 텐데, 지난 번 여행 때 겪었던 예의를밥말아돼지밥으로 써먹은 것 같은 인물이 있었으니 말이죠.;
    부에노스 아이레스라는 울림이 묘하게 와닿는데.. 라고 생각하고 떠오르는 것이 있어 확인하니 맞네요.; '엄마 찾아 삼만리'의 그 어머니가 일하러 간 곳이 아르헨티나였답니다. 허허허허헣; 에비타 영화도 그럭저럭 재미있게 보았던 터라 동경도 있지만, 군부 + 정치가 한국보다 더 막장인 곳인데다 그간 희생된 사람도 많고.. 으으음. 하여간 복잡한 심경을 가지게 되네요.;
  • enat 2016/02/28 11:58 #

    예의를밥말아돼지밥ㅋㅋㅋㅋㅋㅋㅋㅋ 잌ㅋㅋㅋㅋㅋㅋㅋㅋ 이 독일인은... 과연 어땠을까요!? 다음편을 얼른 쓰도록 하죠ㅋㅋㅋㅋㅋㅋ
    아닛 부에노스 아이레스가 엄마 찾아 삼만리에 나오는 지명이었나요!? 엄마는 아르헨티나까지 일하러 갔구나... 아, 그게 이탈리아 배경이었던가요? 이탈리아 사람들이 아르헨티나로 많이 이주했었는데...
    아르헨티나도 다른 남미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근대화를 겪으며 많은 피를 흘렸죠. 남의 나라 이야기만은 아니라서 그쪽 역사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데 안타깝고 그렇더라고요. 근대사는 역시 건드리기 어려운 부분인 것 같아요. 포스팅하기도 힘들고... ;ㅅ;
  • 2016/02/28 14:46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6/02/29 19:18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kate 2016/03/08 14:05 # 답글

    불안함 ㅎㅎㅎ
  • enat 2016/03/08 15:07 #

    불안해하지 마세요 ㅋㅋㅋ
  • 2019/06/29 00:06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9/07/12 22:51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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