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3/11 23:27

유치원 시절 이야기 대나무숲

0.

내 조카는 유난히 날 많이 닮았다. 그래서인지 우리 가족들은 전부 조카의 이름과 내 이름을 헷갈린다. 심지어 언니도다. 헷갈릴 게 따로 있지, 자기 딸 이름이랑 내 이름을 헷갈려! 발음도 완전 다르구만!

조카가 태어나 돌을 맞이할 때 나는 캐나다에 있었다. 내가 조카를 보게된 건 조카가 2살이 되어서였다. 처음 보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좀 꺼려해도 어쩔 수 없지 싶었는데, 조카는 나를 보자마자 달려와 나에게 안겼다. 낯을 가리지 않는 활달한 아이구나 생각했는데, 언니와 형부가 그 모습을 보고 놀랐다. 그 애는 여태까지 엄마 아빠 이외에 누구에게도 달려가서 안긴 적이 없단 것이었다. 오히려 낯을 너무 가려 걱정했는데, 처제는 좋아해서 다행이라며 안도했다.

이후에도 조카는 만나기만 하면 나에게 달려와 안겼다. 날 친구라고 생각하는 걸까.

그러던 조카가 무럭무럭 자라 어린이집에 다니게 됐다. 조카가 어린이집에 가게 됐다는 이야기를 듣자 심장이 철렁하는 기분이었다. 벌써? 괜찮을까? 처음엔 가기 싫다고 엉엉 울더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안좋은 일이 있는데 억지로 보내는 건 아닐까 걱정했다. 하지만 며칠 뒤 전해듣기로는 이젠 본인이 나서서 어린이집에 가자고 조르는 지경이 됐다고 한다. 아마도 좋은 선생님과 좋은 친구들을 만난 것 같았다. 잘 적응한 모양이라 다행이다.

사실 조카를 걱정한 이유는 내 경험 때문이었다. 나는 유치원에 다닐 때 적응을 잘하지 못한 편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작하는 나의 유치원 시절 이야기.

역시 저번 아르바이트 편처럼 누구한테 얘기한 적 없던 이야기,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느낌의 이야기다.





1.

난 1월 달에 태어나서 남들보다 1년 빨리 살게 됐다. 우리나라의 '빠른 생일 피해자' 중 한 명이다.

빠른 생일이면 빠른 생일이지, 왜 피해자냐고? 아아, 전국의 빠른 생일을 가진 자들이여, 아마도 그대들은 왜 내가 '피해자'라고 썼는지 알 것이다. 대학생인데 술집가서 민증 검사하면 튕기지, 어디 가서 나이 낮춰 말하면 나중에 족보 꼬여서 민망하지, 그렇다고 초면에 빠른 생일이라고 주저리주저리 소개하면 빠른 생일이 대수냐고 욕 먹을 때도 있지.

웬만큼 나이 먹기 전까진 한두살 차이에도 호칭에 민감한 우리나라 사회상, 빠른 생일을 가진 사람들은 단지 자신의 생일 때문에 끊임없이 고통받는다. 내 고통은 유치원 때부터 시작됐다.





2.

빠른 생일인 난 6살에 유치원에 들어갔다. 물론 유치원은 5살 반, 6살 반, 7살 반으로 나뉘어 있었지만, 부모님께서는 내가 7살 반에 들어가길 원하셨다. 아마 한 살 빠르게 시작해도 몇 개월 차이가 나지 않으니 잘 적응할 것이라 생각하셨던 것 같다.

하지만 아이들은 의외로 규정된 숫자에 민감하다. 유치원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날 소개할 때 "6살 친구에요~ 어리니까 우리가 보살펴주자~"라고 소개했다. 아마 그 소개가 7살인 아이들의 귀에는 거슬렸을 것이다. 누가 누굴 보살핀다고? 어리면 6살 반에 가면 되지, 왜 여기에 와서 우리한테 보살필 의무를 떠넘겨?

7살 아이들은 6살인 날 이 반에 있어서는 안 될 이방인 취급을 하기 시작했다. 유치원 선생님은 부모님께 친구들과도 사이가 좋으며 잘 지내고 있다 어쩐다 보고하곤 했지만, 그건 그 선생님의 속편한 시선일 뿐이었다. 아이들 사회에서 난 철저히 배척당했다. 그렇게 제대로 된 친구 하나 못 사귀고 삐질삐질 땀만 흘리던 나를, 머리카락이 허리까지 오는 생머리를 가진 여자애와 당시 유치원생인데도 키가 제법 컸던 남자애가 앞장 서서 괴롭히기 시작했다. 뭐... 그것까지 자세히 쓰고 싶진 않다.

가끔씩 초등학교 내 왕따 문제나 괴롭힘 등의 문제가 보도될 때, 그래봤자 애들 싸움이지 저런 것도 한 때지 그래도 그 때가 제일 좋다 어쩌구 하는 사람들을 보면 화가 치밀어 오른다. 아마 그런 사람들은 괴롭히는 쪽이나 방관하는 쪽에 서서 속편한 어린 시절을 보냈겠지. 아이들의 이간질, 언플, 연기, 눈치, 모략은 어른들의 상상을 초월한다.

나는 20년이 지났음에도 그 당시 아이들에게 당해가며 느꼈던 굴욕감과 창피함을 잊지 못한다. 그래서 대인관계로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보면 늘 마음이 아프다. 아이는 표현을 능수능란하게 하지 못할 뿐이지 느끼는 건 성인들이 느끼는 수준과 똑같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으니.





3.

그 유치원은 시설적인 부분에서도 문제가 많았다.

하루는 나 혼자 미끄럼틀을 타다가 (평소에 다른 아이들이 많을 땐 탈 생각도 못하다가, 다들 강당에 갔을 때 나 혼자 몰래 나와 미끄럼틀을 타봤다. 엄청 재밌을 줄 알았는데 별 거 없더라.) 다리에 따끔한 게 박혔다. 쳐다보니까 미끄럼틀에서 삐죽 튀어나온 못이 내 무릎에 박힌 거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애들 노는 실내 미끄럼틀에 못이라니 어처구니가 없다. 그걸 그대로 방치하다니.

당시의 난 몰래 미끄럼틀을 타다가 상처가 났다는 게 부끄러워서, 아픈 걸 꾹 참고 강당으로 다시 올라갔다. 내가 내색하지 않아서 선생님들은 내가 다친 줄도 몰랐다.

엄마는 며칠 후 나와 같이 목욕갔을 때야 그 상처를 알아차리셨다. 어디서 다쳤냐고 놀라 묻는 말에, 난 혼자 놀다가 다쳤다는 게 창피해서 모른다고, 전혀 아프지도 않다고 대답했다. 내가 아무렇지도 않다고, 괜찮다고 바득바득 우겨서 결국 병원에도 가지 않았다. 그 흉터는 아직도 남아있다.

지금 생각하면 파상풍 안걸린 게 다행이지만...





4.

그 유치원에 들린 어떤 신문 기자의 눈에 띄어 어린이 신문의 표지 모델이 된 적도 있었다. 처음에 그 제의가 들어와 엄마에게 연락이 갔을 때, 엄마는 사기인가 의심을 하며 "유치원에 예쁜 애들도 많은데 왜 우리 애를 데리고 모델을 시키려고 하냐"고 했다. 뭐 틀린 말은 아닌게, 그 당시의 난 애들한테 따돌림이나 당하는 포동포동 찌질이였고 그 유치원엔 얼굴 반반한 애들이 참 많았다... 그래도 엄마... 엄마만큼은 날 예쁘게 봐줘야... 흑...

어쨌든 엄마는 신문 기자의 설명을 듣곤 좋은 경험이 되겠구나 싶어 동의를 하셨다. 덕분에 난 뭔지도 모르고 유치원 수업 중에 끌려가 사진기사 아저씨가 원하는 옷으로 갈아입고 사진기사 아저씨가 원하는 자세로 사진을 찍어야만 했다. 덥고 귀찮고 짜증났지만, 사진 찍는 동안은 다른 아이들과 같이 있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사진을 계속 찍다보니 특별한 아이가 된 것 같아서 조금 우쭐해지기도 했다.

물론 촬영이 끝나고 다시 반으로 돌아가자 모든 것은 똑같아졌지만.





5.

여름에 수련회도 갔었다.

거의 아무 활동도 안하고 좁은 방에 갇혀있다가 시간이 되면 학부모에게 보일 사진들을 찍으러 이동하곤 했다.

"자, XX반 여기로 모이세요. 거기 종이 잡고 붙이는 척 해요. 아, XX는 거기 나무토막 잡고, XX랑 XX는 같이 공 튀기고... XX는 좀 더 뒤쪽으로 가고... 야, 너! 가만히 안 있어? 얼굴 이쪽 봐! 웃어!"

다른 애들은 그 와중에도 수다를 떨거나 함께 장난을 쳤기 때문에 웃으면서 찍혔는데, 난 같이 웃을 애가 없어서 혼자 겁에 질린, 혹은 싫증난 표정으로 찍혔다. 나중에 엄마가 왜 이런 표정이냐고 물어보시길래, 돌아다니느라 피곤해서 그랬다고 말했다.





6.

쭉 써보니... 유치원 다닐 때의 나는 참 암울하고 찌질했구나.

사실 유치원에 다니기 전의 나는 그러지 않았는데 말이다.

우리집엔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막내딸인 내가 아들처럼 키워졌다. 남자애처럼 활발한 옷을 입고, 머리도 남자애처럼 짧게 자르고, 훌륭한 대장부가 되라는 소리를 곧잘 들으며 자랐다. 난 그 교육방침대로 자라났다. 나도 그 당시의 내가 어렴풋하게 기억난다.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태평하게 웃고, 언니에게 장난치고. 사고뭉치와 천방지축이란 단어가 만나 사람이 된다면 어린 시절의 나였을 것이다.

그러던 애가 유치원이라는 첫 사회에서 처참하게 밟힌 것이다. 아마 내가 유치원에서 누구한테 얘기도 하지 못하고 아이들의 괴롭힘을 그대로 받은 것은, 어디서든 사랑받고 똘똘해야 할 내가 다른 아이들에게 미움을 받는다는 사실 자체가 수치스러웠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괴롭힘을 당한다는 사실을 우리 가족이나 동네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그 사람들에게도 사랑받지 못할까봐.





7.

그러던 와중에 언젠가부터 엄마가 다니는 대형 교회에 억지로 나가게 되었다.

당시 난 유치원에서의 일로 또래만 만나면 주눅이 들곤 했기 때문에, 교회에서도 아이들과 제대로 된 관계를 맺을 수 없었다. 여자애들은 날 무시했고 남자애들은 날 바보취급했다. 교회 선생님들은 이상했다. 네 이웃을 사랑해야한다며 친구들끼리 사이좋게 지내라고 가르쳐 놓고, 정작 내가 놀림당하고 괴롭힘을 받는 것엔 별로 상관하지 않는 것 같았다.

결국 나는 기도시간마다 교회에 나오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하나님도 황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황당한 기도가 하늘에 닿았던 건지, 엄마가 그 교회는 돈만 밝힌다며 (자세히 얽힌 이야기는 모르지만 대충 그런 이유였던 것 같다) 다른 교회로 옮기셨다. 난 더 이상 그 교회에 나가도 되지 않음에 감사했다.





8.

어쨌든 그 시절엔 친구가 없었으니, 아이들과 어울려 놀았던 기억도 별로 없다. 그냥 책만 주구장창 읽었던 걸로 기억한다. 부모님께선 애가 책만 붙들면 놓질 않는 걸 보고 신기해하셨고, 여기저기서 많은 책들을 구해다 주셨다.

유치원에 가지 않는 날이면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책을 몇 권씩 쌓아두고 요구르트 같은 걸 빨면서 읽곤 했다. 그렇게 책을 읽는 시간이 제일 편안하고 행복했다.

지금 생각하면 웃긴 일이다. 6살 먹은 애가 책을 쌓아두고 평온함을 느꼈다니. 하지만 정말 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바깥 일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됐고, 난 책 속의 주인공이 되어 세상을 돌아다닐 수 있었다. 그게 그렇게 위로가 됐다.

...나중에 초등학생이 되어 보게 된 어떤 아동 영화에는 책을 많이 읽어 초능력을 쓰게 된 여자애도 나오더만, 난 왜 초능력을 못 쓰는 거지. 흥.

초능력은 생기지 않았지만, 힘든 일이 생기면 도서관에 가서 마음을 달래는 버릇은 생겼다. 그건 성인이 된 지금도 마찬가지다.





9.

지금 내 조카는 완전 어린아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어린아이. 계속 천진하게 있어줬으면 하는 어린아이.

그 아이를 보면서 내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당시의 나도 저렇게 작았을까. 저렇게 연약한 아이가 혼자서 그 마음 고생을 했던 걸까. 싫은 걸 싫다고 말 못하고 조용히 삭히며 책이나 읽으며 지냈던 걸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그 당시의 자신이 안타깝기 그지 없다. 나는 충분히 주변에 도움을 구해도 되는 나이였다. 엄마에게 부탁해 유치원을 옮기면 그만이었고, 아니면 6살인데 7살 반에 가는 게 싫다고 말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걸 왜 낑낑거리며 얌전히 버틴 건지.

아이답지 못했던 그 아이에게 말해주고 싶다. 울어도 괜찮고, 투정부려도 괜찮다. 혼자 참지 않아도 괜찮다.

그렇게 생각하다보면 언제나 내게 달려와 안기는 나의 사랑스러운 조카는 부디 아이처럼 울고, 투정부리고, 참는 것 없이 크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는 것이었다.





10.

어쨌든 그렇게 나는 1년 간의 유치원 생활을 마쳤다. 참 까마득하게 긴 시간 동안 유치원을 다니며 괴로워한 것 같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 기간은 딱 1년이었다. 웃긴다, 정말. 겨우 1년이었나. 고작 그 1년이 날 주눅들고 소심하고 매사에 자신없는 아이로 만든 건가.

그 '주눅들고 소심하고 매사에 자신 없는 아이'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초등학교 때는 유치원 때 생긴 부적응성을 떨쳐버리려 부단히도 노력했고, 다행히 좋은 친구들도 많이 만났다. 그래서 그 때의 기억은 좋은 기억들이 훨씬 많다. 유치원 이야기만 줄줄 쓰다보니 좀 음침해진 것 같아 유쾌했던 초등학교 시절 이야기도 이어서 쓸까 했지만... 화장실 가고 싶으니 여기서 끊고 나중에 다시 써봐야겠다.











덧글

  • Tabipero 2016/03/11 23:48 # 답글

    초등학교 들어가기도 전 일을 자세히도 기억하신다 생각했는데 어찌되었건 잊기 어려운 기억이었군요...
  • enat 2016/03/11 23:51 #

    즐거웠던 기억보다 힘들었던 기억이 선명한 건 언제나 억울해요 ㅋㅋㅋ
    여튼 비교적 어릴적 호되게 당했는지라 눈치가 빨라져서 커서는 무난무난하게 지낸 것 같습니다.
  • 2016/03/11 23:52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enat 2016/03/13 10:21 #

    그러게 말입니다. 잊고 살다가도 문득문득 생각이 나네요.
  • Herzlich 2016/03/12 00:34 # 답글

    저도 유치원 생각하면 암울해져요...ㅋㅋ
    그 지역에서 유명해서 경쟁률이 꽤 세다는 곳에 겨우 들어갔는데(부모님은 아직까지도 그때 얘기를 하시며 저를 입학시켰던 것을 자랑스러워 하시죠) 그곳에서 선생한테 맞은 기억도 있거든요. 바보같이 그런 일이 있었으면 부모님께 바로 얘기했어야 하는데 말도 못하고 혼자 끙끙 앓았었네요. 제가 맞고 운다고 주변애들이 "선생님 xx 울어요" 했더니 울게 냅두라는 그 선생의 반응은 아직도 기억나네요. 유명한 사립이라 잘사는 집 애들도 꽤 많았는데 대놓고 차별도 했었죠. 장기자랑에서 주요 배역이나 주목받을 수 있는 역할은 그 아이들이 차지했거든요. 어릴때니 뭘 알겠느냐 했겠지만, 그게 두드러지게 티날만큼이기도 했고 기준이 될만한 것도 있어서 모를래야 모를 수 없었던. 학교다니면서부터는 이래저래 나아져서 잘 지냈지만 유치원에서의 기억은 참 별로에요.
  • enat 2016/03/13 10:27 #

    어렸을 때부터 고생 많이 하셨네요. 부모님께서 자랑스러워하시니 그 안에서 상처 받은 이야기를 부모님께 할 수도 없으실테고... 저도 부모님께서 남들보다 1년 빠르게 키웠다며 뿌듯해하시곤 하시는데 기분이 묘하더라고요.
    세상에... 선생한테 맞은 기억도 있으시다니... 선생이라고 부르기도 아까운 사람이네요. 그런 인간들 때문에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상처받고 자랄까요 ㅠㅠ
    아이들은 어떤 부분에 있어선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민감한데 그 중 하나가 차별 당하는 기분인 것 같아요. 조금이라도 다른 아이와 비교되거나 부당한 취급을 받았을 때 상처도 엄청 받고 자존감도 낮아지고 그러는 것 같아요 ㅠㅠ 휴... 자식을 키우게 된다면 유치원에 보내는 걸 고민하게 될 것 같네요.
  • 타누키 2016/03/12 01:20 # 답글

    에고 애들이 더 잔인하다는게 이런건가 봅니다. ㄷㄷ;;;
    그나저나 저도 빠른 생일이지만 대학생부터나 따졌는데
    대학은 기수문화다보니.....전 빠른이 상당한 이득이라고 보아왔었는데
    (술 못마셨던건 그랬지만 ㅎㅎ) 운이 좋았었나 보네요. ㄷㄷ
  • enat 2016/03/13 10:33 #

    어린 애들 무섭습니다 ㅠ 보통 여우가 아닌 애들이 참 많아요 ㄷㄷ...
    타누키님은 빠른 생일에 대한 별다른 문제 없이 넘어가셨군요. 정말정말 운이 좋으신 겁니다! 아니면 대처법을 잘 익혀두셨거나... 흑흑 대학교 갓 들어간 신입생 때 다같이 술집 갔다가 저 때문에 튕겨서 애들한테 욕먹으며 나가야 했던 순간들이 떠오르는군요 으흐흑...
  • 용용 2016/03/12 01:43 # 삭제 답글

    쓰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썼다가 다 지웠어요.... 예전 기억들 중에 깊은 상처로 남은 몇몇 기억들은 스스로 완전히 떨쳐낼 수는 없는 것 같아요. 6살 아이때 이낫님을 토닥여주고 싶어요...
  • enat 2016/03/13 10:48 #

    용용님도 상처가 되는 기억이 있으시군요. 살면서 절대 입밖으로 꺼낼 수 없는 일들이 있다는게 얼마나 괴로운지 모르겠어요.
    이런 일들이 평생 들고가야할 문제가 될지, 아니면 언젠가는 극복할 수 있을지 많이 궁금합니다 ㅠㅠ
    어린 절 위로해주셔서 감사해요. 저도 지난 어떤 순간의 힘든 용용님을 위로해드리고 싶습니다. 언젠가는 극복하겠지,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되겠지 하는 막연하고 뻔한 말이더라도...!
  • 2016/03/12 02:44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6/03/13 10:47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키르난 2016/03/12 08:35 # 답글

    토닥토닥토닥......ㅠ_ㅠ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러고 보면 저도 유치원 가기 싫다고 엄청 발악한 기억은 있는데 정작 거기서 활동하거나 지낸 것에 대한 기억은 없어요....=ㅁ=
  • enat 2016/03/13 10:54 #

    흑흑 감사합니다
    키르난님께선 별다른 기억이 없으셔서 다행이지만 ㅠ 보통 어린 아이들이 싫다고 말하는 것엔 나름의 이유가 있을 텐데 어른들이 이야기를 들어주면 좋겠어요 흐규ㅠ
  • 2016/03/12 10:20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6/03/13 10:57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6/03/12 10:20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enat 2016/03/13 10:59 #

    그래서 유치원 얘기하면서 무슨무슨반 선생님 기억난다 / 추억이 많아 / 졸업식 때 울었는데 어쩌구 하는 이야기 들을 때가 제일 부러웠음요.
  • 택씨 2016/03/12 17:33 # 답글

    에고.. 파상풍 안걸린 것은 정말 다행입니다.
    ㅎㅎㅎ. 저도 1월생이어서 일찍 유치원과 학교를 다녔지만... 나이를 먹으니까 연금타는 년도가 친구보다 1년이 늦어요;;
    그래도 어릴때부터 모델을 하셨다니!!!
    조카가 무럭무럭 어려움 없이 자라길 바랍니다.
  • enat 2016/03/13 11:04 #

    이제와 생각하면 파상풍은 저도 정말 오싹합니다. 소독도 안하고, 약도 안발랐는데 자기가 알아서 딱지 지고 새살 돋고 멀쩡하게 살고 있으니 인간의 몸은 신비롭다 생각해요 ㅋㅋㅋ
    아아아앗 연금타는 연도에도 그런 애로사항이! 빠... 빠른생일! 부들부들...
    표지모델은 그 때 한 번 하고 말았습니다. 애가 붙임성도 없고 말도 잘 안해서 사진기사 아저씨가 답답해하던 게 생각나요 ㅋㅋ
    감사합니다! 조카가 그렇게 자라도록 이모인 저도 옆에서 많이 노력하려고요! 이야기도 들어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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