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3/18 00:04

남미여행 (50) 우루과이 : 몬테비데오의 무료 관광지 ├ 남미 배낭여행 (2014)

사실 부제를 "달러를 위한 여정" 혹은 "달러 원정대" 혹은 "운빨 떨어진 여행자" 등등으로 쓰려고 했는데, 그럼 나 같은 처지의 남미를 여행하는 여행자(돈 없고 시간도 없는 여행자)에게 도움을 주지 못하므로 정보 검색을 위해 "몬테비데오의 무료 관광지"란 부제를 사용했다.

음... 그치만 재미없다. 뭐 이런 밋밋한 부제가... 아쉽다. 지금이라도 바꿀까.

아냐, 지금 지구상 어딘가에서 여비를 줄이기 위해 홀로 삐걱이는 호스텔 침대에 누워 구글링을 하고 있을 나 같은 여행자들을 위해 저 제목으로 가자. 힘내세요 혼자 남미를 여행하는 여행자 여러분.





1.

여태까지 부에노스 아이레스 일정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1일차 - 레콜레타 지역
2일차 - 산 텔모 (프리마켓), 라 보카 카미니토 거리

그리고 벌써 3일차!

오늘은 무얼할까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이 날의 일정은 벌써 정해져 있기 때문이었다.


2일차 아침, 그러니까 산 텔모 프리마켓에 가기 전, 베로나와 나는 페리 터미널에 갔었다. 우루과이로 가는 페리 표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라 플라타 강을 사이에 두고 우루과이의 수도 몬테비데오와 마주보고 있다. 일국의 수도들이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다니,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는 친하게 지내지 않으면 안되겠다. 여하간 그런 지리상의 이유로, 많은 여행자들이 페리를 이용해 부에노스 아이레스와 몬테비데오를 오간다.

베로나는 여행오기 전, 몬테비데오에 이미 숙소를 잡아놨기 때문에 그날 꼭 몬테비데오에 가야만 한다고 했다. 물론 여행 전엔 부에노스 아이레스가 이렇게 좋을 줄 몰랐다며,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계속 있고 싶지만 숙박 취소가 되질 않아 어쩔 수 없다는 말을 덧붙였다. 음음. 그 심정 이해한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정말 좋지.

어쨌든, 그럼 나는? 베로나처럼 미리 계획을 세워 숙소를 예약한 것도 아니었고, 사실 우루과이의 수도가 몬테비데오란 것도 이 날 베로나에게 들어서 알았다. 정말 몬테비데오에 갈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전날까지만 해도 말이다.

나 : 오, 이런.
베로나 : 왜 그래, 리?
나 : 나 오늘 아르헨티나 페소로 환전해서 돈 쓰면, 달러가 하나도 없어.
베로나 : 그럼 ATM에서 인출하면 되잖아.
나 : ATM에선 아르헨티나 페소만 나와. 달러는 나오지 않는다구!


저번에도 설명했었지만, 2014 당시, 아르헨티나는 달러 거래를 금지한 상태였다. 그래서 아르헨티나 내부에선 절대 공식적인 방법으로는 달러를 구할 수 없었다. 달러는 여행자들이 외국에서 들고오는 게 전부라, 암환전이 성행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기도 했다.

모처럼 달러를 이용한 암환전을 통해 수혜를 받고 있는데, ATM으로 아르헨티나 페소를 빼면 공식 환율 적용으로 내 부르주아적 삶(모든 물건을 40~50% 할인된 가격에 살 수 있는 여행!)이 사라지는 거였다. 아아, 그렇게는 안 돼!

나 : 나, 나도 몬테비데오에 다녀와야겠어!
베로나 : 응? 왜, 왜?
나 : 달러를 구하러!!!!!
베로나 : ...엥?


그리하여 나는 이유를 듣고 황당해하는 베로나와 함께 몬테비데오행 페리 티켓을 구입한 것이었다!


...암환전으로 인한 이득보다 페리값이 더 들 것 같지만... 뭐 어쨌든.





2.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몬테비데오로 가는 직항 페리(2시간 걸림)는 비싸서 관두고, 가격이 싼 콜로니아 경유표를 구입했다. 내가 탄 페리 일정은 아래와 같았다.

부에노스 아이레스(7시 반 출발) - 콜로니아(9시 버스 환승) - 몬테비데오(12시 도착)

그닥 확실치는 않다. 표를 잃어버려서 사진에 저장된 시간만 보고 적는 거라... 어쨌든 거의 4시간 반에 걸친 기나긴 일정이다. 시간만 따지면 서울에서 부산 거린데, 난 그 거리를 당일치기 했단 거다. 미쳤구나.

이게 다 달러와 암환전에 대한 내 도를 넘은 집착 때문이다.


여행 중에 그렇게 맘 편히 돈 쓰며 여행한 건 처음이어서...


체감 물가 하락으로 돈 쓰는 맛을 알아버려서...!!!


아르헨티나 한정 부르주아 여행자가 되고 싶었던 가난한 배낭 여행자의 필사적인 사투라 생각해달라!


어쨌든 돌아가는 일정은 아래와 같은데.

몬테비데오(5시 출발) - 콜로니아(8시 페리 환승) - 부에노스 아이레스(9시 반 도착)

결국 몬테비데오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5시간 남짓이라는 거다.

후후... 5시간.... 충분해.

기다려라, 몬테비데오. 5시간 안에 달러도 구하고 즐거운 추억도 쌓아주겠어!





3.

베로나와 나는 이른 아침 호스텔을 나섰다. 호스텔에서 직선 거리로 쭉 걸어가다보면 선착장으로 갈 수 있다. 우리는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비틀거리며 선착장으로 내려갔다.







일출 전의 부에노스 아이레스. 7월 9일 대로를 걷다가 예뻐서 찍음.





4.

곧 선착장에 도착한 베로나와 나.




여권 검사, 짐 검사 등등을 한 뒤 아르헨티나 출국 도장을 받고 잠시 대기하다가 승선했다.

내가 탄 페리는 부케버스라는 회사의 페리였는데, 제법 커다랗고 멋진 페리였다.

사진이 없어서 부케버스 홈페이지 사진을 가져왔다.






출처 : www.buquebus.com


쾌적하고 좋은 페리였는데, 베로나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멀미를 하는 것일까? 대형 페리라 흔들림도 거의 없는데 말이다.

베로나 : 으음, 난 좀 잘게...
나 : 응? 그래. 맘대로 해.


잠든 베로나 옆에 혼자 뻘쭘하게 앉아있던 나는 TV나 보기로 했다. 나는 의자에 삐딱하게 앉아 턱을 받치고 TV를 바라봤다. 방송에서 하고 있는 것은... 음... 뭐지? 저 푸른 잔디밭과 익숙한 유니폼... 아니... 아닛!?





한국vs우루과이 축구가 방송되고 있었다!


우왓, 우루과이로 가는 페리 안에서 이런 인연이!

난 이것이 모국을 응원하라는 계시라 생각하여 자세를 바로 하고 두손을 모아 우리나라 국가대표 선수들을 응원했다.

하지만 그 배 안에 한국 사람은 나뿐이었다. 우루과이로 가는 배니까 당연하게도 주위엔 우루과이 인들이 많았고, 덕분에 난 혼자 환호하려다가 멈칫하고 야유소리 내려다가 멈칫하고 그랬다. 우루과이 축구 선수가 날린 슈팅이 골대를 빗나갔을 땐 다들 탄식하는 가운데 나 혼자 미소를 씨익 지었다. 다른 사람들과는 너무 다른 반응에, 옆에 앉은 아저씨가 날 한 번 스윽 쳐다보기도 했다.

축구가 끝나기 전 배에서 내렸는데, 나중에 와이파이 연결해서 뉴스를 보니 아쉽게도 1:0으로 한국이 졌다고 했다. 뭐, 승부를 떠나 적들 사이에서 응원하는 스릴감을 맛보게 해줘서 고마웠다. 감사해요 국가대표 선수 여러분.





5.

콜로니아에서 내린 우리는, 우루과이 입국 심사를 받은 뒤 터미널 앞에 있는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는 2시간 반, 아니 3시간? 거의 그 정도의 시간을 달려 몬테비데오 터미널에 도착했다.




그런데 영 베로나의 표정이 좋지 않다. 아까 배멀미가 가시지 않은 걸까.

나 : 베로나, 괜찮아? 너 안색이 별로야.
베로나 : 으응, 나 빨리 호텔에 가서 쉬어야할 것 같아. 근데 호텔 가려면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네.
나 : 일단 우루과이 돈을 구하고, 인포메이션에 가서 길을 물어보자. 네 호텔이 어디 있는지 말이야.


우리는 ATM에서 우루과이 돈과 달러(!!!이곳에 온 제 1의 목표 달성!!! 넘나 기쁜데 베로나가 아파해서 기뻐할 수가 없다!!!!)를 뽑고 인포메이션에서 지도와 길안내를 받았다. 마침 베로나의 호텔은 몬테비데오의 관광지구 근처여서, 함께 버스를 타고 근처까지 가기로 했다.

베로나는 덕분에 길을 빨리 찾았다며 고마워하고, 내게 작별인사를 건넨 뒤 비틀거리며 호텔로 들어갔다. 어제는 조금 걸었다고 지치고, 오늘은 페리 탔다고 멀미하고. 몸이 정말 약한가 보다. 나는 잠시 서서 베로나의 안녕을 바란 뒤 몸을 돌렸다.

자, 이제 내 짧은 몬테비데오 여행을 시작해야지!





6.

베로나와 헤어진 뒤, 여행 정보를 구하기 위해 근처에 있는 인포메이션에 들어갔다. 예쁘장한 언니가 앉아 있었다.

나 : 나, 몬테비데오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이... 음, 다시 버스 터미널까지 돌아갈 거 생각하면 대충 3시간 남았다. 어딜 가면 좋을까? 참고로, 돈 안드는 곳. 무료가 좋겠어.
인포 : 아... 3시간? 무료?


인포메이션 언니는 이런 질문은 자신의 여행 상담 경력 10년 동안 처음 듣는 질문이라는 표정을 하며 황당해했다. 하지만 직업이 직업인지라 곧 표정을 고치고 내게 지도를 보여주며 이곳저곳을 설명해줬다. 난 그 언니의 훌륭한 설명에 감탄하며 덕분에 3시간을 알차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단 말을 하고 나왔다.

지금부터 내가 작성하는 곳은, 예쁘장한 인포메이션 언니가 알려준


"시간도 돈도 없는 여행자를 위한 몬테비데오 관광지"이다.





7.


처음으로 간 곳은 항구 지역의 시장(Mercado del Puerto)이었다. 점심을 먹기 위해서였다.




지도로 따지면 여기.

참고로 몬테비데오 직항 페리를 타면 이쪽으로 들어온다. 직항 페리는 비싼 대신에 두 시간밖에 걸리지 않기 때문에 직항 페리를 이용하면 여유있는 부에노스 아이레스-몬테비데오 당일치기가 가능할 것 같다.

난 돈에 쫓겨 환승편을 샀더니 이번엔 시간에도 쫓기는 처지가 되어 시계를 거듭 확인하며 다녀야했지만... 흥.




여튼 이곳은 항구 시장, 메르카도 델 푸에르토의 외부.







내부는 대충 이런 분위기.

시장이라서 음식이 쌀 줄 알았는데 웬 걸, 웬만한 레스토랑 느낌이다. 시장이 아니라 시장을 개조한 레스토랑이었던건가!?

난 우울해하며 시장 안을 돌아다니다가, 그나마 가격이 저렴한 입구의 가게에서 같잖은 엠파나다를 먹었다. 으으, 어제의 산텔모 프리마켓에서 먹은 엠파나다가 훨씬 싸고 맛있었다... 맛없었으니까 사진도 없다.





8.

다음으로 간 곳은 장식 박물관(Museo de Artes Decorativas "Palacio Taranco")

인포 언니가 강추한 곳 중 하나다.




찾아가는 길.




지도로는 대충 여기.

지금 구글에 찍어보면서 알았다. 이 박물관은 층이 총 3층인데, 난 지하의 작은 전시실만 보고 나왔다. 보고 나오면서 "역시 무료라서 별 거 없구나^^" 이랬는데, 위층은 전시장도 그렇고 전시품도 몹시 화려하더라. 인포 언니가 강추한 이유가 있었다.

젠장. 볼 거 없다고 생각해서 박물관 입구에서 셀카나 잔뜩 찍었는데. 아오. 그 셀카를 보는 미래의 나로썬 무지 열받는다. 그 못생긴 얼굴 치워. 웃으면서 셀카 찍지마. 확 씨 위층으로 올라갈 생각은 안하고...







내가 본 건 이런 요상한 도자기류와 유물뿐이다.

기껏 인포에서 훌륭한 설명을 듣고 오면 뭐해. 내가 바본데. 내가 전시실도 못 찾는 바본데!

쉽게 예를 들자면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이 국립 중앙 박물관 가서 본관이 어디있는지 몰라서 안가고 특별 전시실만 보고 나온 거다. 경천사지 10층 석탑도 못 보고 나온 거라고! 그리고 나오면서 "별 거 없네^^" 이 따위 말을 한 것... 아오!

혹시라도 앞으로 몬테비데오에 가실 예정이 있으신 분들은 부디 저 장식 박물관의 모든 층을 관람해주시길 바람... 누가 될 지는 몰라도 부탁드림... 부디 제 한을 풀어주소서...





9.

다음은 국립 역사 박물관: 낭만주의 박물관(Museo Historico Nacional Museo Romantico).





일단 여기긴 한데... 오늘은 무슨 특별한 사유로 인해 문을 닫았단다. 그 특별한 사유가 뭔지는 기억이 안 난다.

무슨 이유였더라... 기억이 안나서 더 답답하다.

씁쓸해하며 몸을 돌렸다. 역시 혹시라도 앞으로 몬테비데오에 가실 예정이 있으신 분들은 부디 저 국립 역사 박물관: 낭만주의 박물관을 관람해주시길 바람... 누가 될 지는 몰라도 부탁드림... 부디 제 한을 풀어주소서... 2222222222





10.

다음으로 향한 곳은 몬테비데오 메트로폴리탄 대성당(Montevideo Catedral Metropolitana).




아까 위의 두 박물관도 그렇고, 다 고만고만한 위치에 있어서 걸어다니기 편하다.




대성당 앞에 공간도 마땅찮고, 나무들이 방해라 저 따위로밖에 각이 안나온다.

성당 앞에는 구걸하는 노숙자들이 있었다. 어찌나 달라붙으며 돈 좀 달라고 하던지... 저리가요... 저도 돈 없어요... 힝...






성당 내부.

수도에 있는 대성당치고 덜 화려한 느낌이다. 멕시코 시티에서 봤던 어마어마한 규모의 메트로폴리탄 대성당이 떠오른다.

뭐, 사실 성당은 관광지 이전에 종교시설이니까... 검소한 게 맞는 거니 덜 화려하다고 뭐라 할 수도 없고... 저게 맞는 거지만... 그치만...





이건 대성당 앞의 작은 광장이다. 내가 여태까지 여행하며 본 대성당 앞 광장 중 제일 작고 어두침침했다.

이름은 헌법? 제정? 광장(Plaza Constitución)이라고 했다. 이런 이름을 갖게 된 건 대성당 맞은편에 있는 건물 때문일 것이다.





11.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대성당 맞은편에 있는 Cabildo en Obra Muestra.

사실 이걸 뭐라고 번역해야하는지 모르겠다. 시의회 복원... 샘플? 공사... 전시? 아 몰라. 여튼 식민지 시절 시의회랑 관련된 곳인 것 같다. 지금은 그 당시의 유물을 전시하여 박물관으로 쓰고 있는 것 같고.




그런데 전면 공사중.

...오늘 왜 이러지? 기껏 인포 언니의 축복이 내렸는데 무언가가 자꾸 날 방해하는 느낌이 든다. 아까부터 전시실도 못찾고, 박물관 문은 닫혀있고, 성당 앞에선 노숙자가 쫓아오고, 이번엔 전면 공사...




으으... 으으으!

나는 좌절하며 그 공사장 앞까지 갔다. 그런데 오호라. 다행히도 건물 외부만 공사 중이었고, 실내는 일부 관람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나는 아까 대성당에 방문해서 운 스테이터스가 오른 것이라 생각하고, 감사하며 내부로 들어갔다.

내부 전시실은 의외로 알찼다.





스페인 식민지 시절의 지도와 무기인 듯.




이 무서운 손들은 뭐람.




아마 현관문 노크할 때 쓰는 그거... 똑똑똑거리는 그거 뭐라고 하더라? 여튼 그거인 것 같다.

근데 무섭게 왜 손 모양... 밤중에 옆집 알폰소의 집에 들러 노크를 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저 손이 기이하게 늘어나 내 목을 졸랐더라... 등등의 괴담이 머릿속에서 마구마구 떠오른다. 딴소리지만 나중에 이런 시시껄렁한 괴담을 몇 백개 써서 괴담집이나 하나 내보고 싶다. 괴담 매니아인지라...




그냥 장식품인 것 같지만 실은 마테차 타먹는 컵. 어제 내가 산 컵이랑은 비교도 안 되네.





거대 나방처럼 생긴 이것은 머리에 꽂는 장식인 듯. 바람 불면 고개가 뒤로 꺾이지 않을까 걱정이다.




뭔가 그 때 그 시절스러운 영상도 하나 봄.

사진으로 찍은 건 이 정도.


어쨌든 제법 흥미진진한 전시실이었다.

난 몇 번의 실패 끝에 찾아온 알찬 구성에 감격하며 인포메이션 언니가 있는 방향으로 땡큐를 날렸다.





12.

그 다음은 솔리스 극장.

대성당이 있던 곳에서 몇 블럭 정도 거리를 구경하며 걷다보면 갈 수 있다.




지도로는 요기.

여기는 공짜는 아니지만 가보면 좋을거라고 인포 언니가 알려줬다.




멀리서부터 보이는 솔리스 극장. 뭔가 웅장하다! 기대된다!




그렇지만...

직원 : 하하, 오늘은 아무런 전시도, 공연도 없어서 입장할 수 없어.
나 : 응? 내부 관람도 안돼?
직원 : 가이드 관람이 있긴 한데 월요일엔 쉬거든.
나 : 아...
직원 : 조심히 돌아가.


웃으며 입장 금지선을 치는 직원.

그렇다. 잊고 있었는데 이 날은 월요일이었다. 그래서 어딜 가도 허탕만 쳤던 것...




문이 다 닫혀서 뻘쭘하게 극장 앞 회랑이나 찍고 나왔다.





13.

서점에 가서 예쁜 엽서를 고르고, 노점에서 살 건 없나 돌아다니고, 광장에 갔다가 중간에 어떤 흑인들과 시비가 붙기도 하는 둥 여러 일들이 있었다. 이건 다음 포스팅에서 대강 써보도록 하고.

어쨌든 그렇게 큰 사건들은 없었는데 시내에서 여기 갔다 저기 갔다 돌아다니느라 시간이 훌쩍 흘렀다.

터미널로 돌아가서 버스나 기다릴까 하다가, 문득 지도를 보니 터미널로 가는 버스 정류장 근처에 인포 언니가 표시한 박물관이 눈에 들어왔다. 오, 여기다. 마지막으로 이곳에 들렀다 가야겠다.




그곳은 리퍼블리카 은행의 문화 공간: 가우초 박물관&화폐 박물관(Espacio Cultural Banco Republica: The Museum of Gaucho&Money)이었다. 서울에 있는 한국은행 화폐박물관, 우리은행 은행사박물관 같은 느낌이려나.




박물관 입구. 앞선 경험으로 인해 별다른 기대도 없이 들어갔다.




그러나 들어서자마자 흠칫했다. 뭔가... 뭔가 심상치 않은 건물이다. 좁은 입구에 비해 화려한 내부를 보고 놀랐다.

무료 박물관 맞나? 인포 언니가 제대로 알려준 건가?

입구 근처에 있는 사무실에선 안경 낀 금발의 중년 여성이 서류를 작성하고 있었다. 그 여성은 내 인기척을 느꼈는지 고개를 들어 안경 너머로 날 노려봤다. 어... 어... 들어오면 안되는 건가? 나도 모르게 긴장해 경계태세의 미어캣 포즈를 보였다. 하지만 그 여성은 씨익 웃더니 나보고 알아서 관람하라는 느낌의 손짓을 했다. 난 고개를 끄덕이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림이 걸려있던 방인데...

이게, 이게 참 답답하네. 건물 내부가 굉장히 마음에 들어서 사진을 찍은 건데, 그 뭔가 격식있고 화려하며 프랑스스럽고 이탈리아스러운 느낌이 사진에 나오질 않는다. 어딘가의 평범한 미술관 같잖아. 에잉. 아닌데.




화폐 박물관 쪽에 있던 전시물. 뭔가 집무실에 있던 책상을 재현한 것 같은데...




이런 곳엔 앉아줘야지. 거만하게 한 장 찍었다.




화폐 박물관다운 50페소짜리 포토존도 있었다.

대충 타이머 맞춰서 찍고 있는데 다른 관광객이 와서 자기가 찍어주겠다며 카메라를 집었다. 별 수 없이 찍힌 뒤 고맙다고 하고 나중에 찍힌 사진을 확인하니 영 구렸다. 그래서 그 관광객이 사라지고 나서 다시 한번 타이머로 찍었다. 쩝. 괜한 수고를... 도움은 고맙지만 그냥 내버려 둬...




뭐 이런이런 것들이 있음.

아쉬운 건 영어 안내판이 없었다는 것 정도? 물론 앞에 있는 게 타자기라는 것도 알겠고 저 뒤에 있는 게 선풍기라는 것도 알겠지만... 뭔가 그 당시의 디자인에 대한 특징과 쓰임새, 애로사항 등의 세부적인 설명을 보고 싶었다.

뭐, "무료로 개방했으니 안내판 정도는 알아서 스페인어 공부해가지고 봐!"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여기서부턴 가우초 박물관.

가우초, 가우초란 누구냐. 아마 다들 아시겠지만 남미 대평원(팜파스)에 사는 목동을 가우초라고 한다.

가우초가 키우는 대초원을 뛰어노는 소들은 다른 어떤 나라의 소들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야들야들하고 쫄깃쫄깃하다. 그야말로 차원이 다른 소고기다. 그래서 아르헨티나를 여행한 사람들과는 "아르헨티나의 소고기를 먹기 전까지 난 소고기를 먹어본 게 아니었어" 혹은 "아르헨티나의 소고기를 먹어보지 못한 자 소고기를 논하지 말라"는 건방진 말을 농담처럼 주고받곤 했다.

어? 왜 갑자기 소고기 이야기로 흘러왔지. 야식 먹을 땐가... 배고프네...




가우초들이 쓰던 마테차 전용잔.

저 새 모양의 컵은 들고 마시기 참 힘들 것 같다. 그래서 장식품이라고 생각했으나 더 자세히 살펴보니 빨대의 색이 바래있다. 아마 누군가가 실제로 쓰던 컵인가 보다. 누군진 몰라도 취향 참 독특하네.




이건 가죽가방. 소가죽이겠지? 만져보고 싶다.




요런 상남자 모형도 있고.




사실 이 가우초 박물관&화폐 박물관은, 전시 내용은 평범한 수준이고, 박물관치고는 살짝 좁은 느낌이긴 한데, 건물 내부만큼은 참 아름답다. 이 박물관 건물의 내부가 오늘 돌아다니며 본 것 중 제일 마음에 들더라. 덕분에 들어와있는 동안 신이 나서 빨빨거리고 돌아다녔는데, 지금 포스팅하면서 내가 찍은 사진들을 보니 그게 좀... 의심쩍어졌다. 사진은 별론데? 이 정도의 느낌이었나? 그 화려함은 내 착각이었나?

그래서 검색했더니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어떤 외국 기사에서 이 박물관을 "당신이 몬테비데오의 중앙 거리에서 궁전에 가고 싶다면 가우초 박물관으로 가! 무료로 만날 수 있어!" 라고 소개하더라. 와오.

다행이다. 내 착각이 아니라 카메라의 착각이었다.







그 외 내부.

정말인지, 마지막에 여길 들려서 다행이었다. 아름다운 건축물은 그 공간에 잠시 머무른다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굉장히 행복하게 해주는 것 같다. 딴소린데 옛날에 학점 비는 걸로 건축학 들을 때 교수님이 그런 말을 했었다. 잘 만든 음악은 청각으로 느끼는 예술품이고 잘 그린 그림은 시각으로 느끼는 예술품인데, 잘 지은 건축물은 그 속으로 들어가 오감을 이용해 느끼는, 예술의 총체라고. 그래서 온몸으로 감동할 수 있다고. (그러면서 건축가의 중요성을 열변하셨고 나는 잠들었다) 음, 확실히 이 박물관이 내게 그랬던 것 같다.

박물관에서 나가지 않고 조금 느긋하게 거닐다보니, 어느새 시간은 벌써 터미널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나는 아쉬움을 느끼며 그대로 화장실로 달려가 - 여행을 하다보면 박물관에서 꼭 화장실에 가게 된다... 깨끗한데 공짜라... - 속을 비운 뒤, 상쾌한 마음으로 박물관을 나섰다.





14.

이렇게 이 날, 한나절도 안되는 시간 동안 우루과이의 몬테비데오를 둘러봤다.

대체로 가지 못해 아쉬운 곳도 많았지만, 뭐 괜찮다 싶었다. 제 1의 목적이었던 달러를 무사히 구했으니까. 사실 버스 터미널로 돌아가면서 이제 다시 판타스틱한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부르주아 생활로 돌아가자 에헤헤 등등의 생각을 하며 실실거리고 있었다.


이대로 다시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포스팅으로 이어지느냐... 음, 그건 아니고, 이번 포스팅에서 '무료 관광지' 위주로 설명을 하는 바람에 몬테비데오의 거리 사진이나 소소한 사진들은 올리지 못했는데, 그에 관한 것들을 다음 포스팅에서 짤막하게 올린 뒤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돌아가야겠다.

그러고보니 몬테비데오를 떠나며 나에게 쓴 엽서도 있었던 것 같은데... 저번 쿠스코 때처럼 흑역사 엽서일지 보람찬 엽서일지 일단 이 포스팅 올리고 찾아봐야겠다.




다음 포스팅 몬테비데오의 거리에서 계속






덧글

  • 키르난 2016/03/18 09:44 # 답글

    그 짧은, 3시간 동안에 많은 것을 보셨군요.; 만약 앞서 허탕친 곳까지 다 보고 오셨다면 마지막의 박물관은 둘러보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으니 그걸 위안으로 삼으시면 어떨까요. .. 그래도 안 먹은 떡이 더 커보입니다.=ㅠ=;
  • enat 2016/03/22 19:56 #

    오! 이것은 또 발상의 전환. 그렇네요! 다른 곳들까지 다 보고 왔다면 마지막 가우초 박물관엔 들어가지도 않았을 거에요! 저도 원래 거기까지 갈 생각은 없었는데 허탕의 연속에 걷다보니 다다르게 된 것이었고...!
    흐흐... 긍정적으로 생각해야겠습니다 ㅋㅋㅋ
  • 모치 2016/03/18 10:45 # 삭제 답글

    석양이 내리는 도시 풍경 사진 찍으신거 넘 예쁘네요 :)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 enat 2016/03/22 19:57 #

    우우...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만 덧붙이자면 석양처럼 찍히긴 했지만 일출 때의 사진이에요~ :)
  • 택씨 2016/03/18 13:13 # 답글

    직항 페리와 경유하는 페리의 가격 차이가 많이 났나 봐요. 3시간 정도의 차이면... 직항을 타도 좋을 것 같은데 말이죠. ㅎㅎ. (대구로 갈 때 KTX와 무궁화를 비교해보면 두배 정도 차이가 나도 KTX를 탈텐데 말이죠.) 아무래도 장기간 여행하시니 절약 정신이 몸에 배여있는 듯 해요.

    버스 정류장에 파라과이라고 써있군요. 설마 제가 아는 파라과이로 가는 것????? 남미의 버스 시스템이 궁금해집니다.
    저희도 칠레 산티아고 중앙시장의 해물탕 전문집을 갔는데 위의 사진과 비슷한 분위기더라구요. 시장 한가운데 있어서 생선냄새는 나는데 장식이나 서빙은 고급 레스토랑 같아서 좀 놀랬어요. ㅎㅎㅎ
    모처럼 무료 관광 계획을 잘 추천받으셨는데... 운이 받쳐주지 못해 한이 맺혔군요.ㅎㅎㅎ.
    심기일전해서 한번 더 도전을!!!!

    마지막 박물관은 정말 멋있는걸요. 바닥이나 벽의 장식들이 예사롭지 않아요. 크기가 아담할 만큼 작아서 분위기가 살지는 않지만... 체크 무늬의 바닥만 봐도 멋있어요.

    50페소 포토존의 배경에 있는 싸인은 관람객이 해놓은 거겠죠???
  • enat 2016/03/22 20:06 #

    페리 가격 차이가 대충 10만원 이상 차이가 났던 것 같아요. 원래 우루과이엔 갈 생각도 없었는데 갑자기 가게 된 거라 지출을 늘리고 싶지 않더라고요. 잠을 1, 2만원짜리 침대에서 자다보니 (...)

    남미 거리에는 다른 나라의 이름이나 도시 이름이 붙은 거리가 많더라고요. 저 파라과이도 나라 파라과이가 아니라 부에노스 아이레스 도시에 있는 '파라과이 거리'를 가리키는 거에요! 어떤 나라에선 브라질 거리도 있고, 우루과이 거리도 있고, 샌프란시스코 거리도 있고 ㅋㅋㅋ 그렇더라고요.

    허탕의 연속이었지만 마지막 가우초 박물관에 들어갈 수 있어서 다행이었어요! 여긴 안보고 갔으면 정말 후회할 뻔 했어요. 건물 내부가 어찌나 멋진지 흥에 겨워서 셀카도 엄청 찍었지 뭐에요 ㅋㅋㅋㅋ 직원들은 이렇게 작은 박물관인데 저 동양인 여자는 왜 안나가고 저렇게 오래 머무르나 싶었을 거에요 ㅋㅋㅋㅋ

    50페소 포도존의 싸인은 50페소에 있는 싸인입니다! (ttp://mirinemall.co.kr/data/IMG_0001_8191_1431436724.jpg)
  • PennyLane 2016/03/18 19:21 # 답글

    어머 세시간동안 몇군데를!!!!!!!!
    죄송하지만요. 몬테비데오에서 달러를 너무 쉽게 구하셔서 조금 실망했습니다. enat님이라면 달러 환전하는데도 몇페이지 분량의 우여곡절 포스팅을 상상한 나머지..........
  • enat 2016/03/22 20:09 #

    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시 읽어보니 비장했던 각오와는 다르게 바로 구해버렸군요. 사실 달러 구할 때도 이 ATM기 갔다가, 저 ATM기 갔다가, 이 카드 썼다가 저 카드 썼다가 등등 약간의 우여곡절이 있긴 한데, 포스팅을 짬이 날 때 며칠에 나눠서 하다보니 전의 흐름을 까먹어버렸어요. 그러다가 급 무료 관광지 이야기로 넘어간... 쩝쩝
    다음엔 좀 더 기대에 부응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닼ㅋㅋㅋㅋ
  • 꾸질꾸질한 얼음의신 2016/03/18 22:31 # 답글

    야스쿠니 신사에서 태극기를 힘차게 휘날리는 심정으로~~~!!! ㅎㅎㅎ
    목적은 세속이었으나... 여행은 학구적이었던 하루였군요 ㅋ
    빌딩..빌더..
    오늘은 창조적이고 싶은 하루~~!!
    기대 기대 ^^
  • enat 2016/03/22 20:11 #

    우루과이 사람들 속에서 한국을 응원하니 쫄깃한 재미가 있더군요 ㅋㅋ
    목적은 세속이었으나 여행은 학구적ㅋㅋㅋㅋㅋㅋ 잌ㅋㅋㅋ
    맞아요. 적절한 한줄 요약이에요!
    전 오늘도 내일도 창조적이고 싶은데 요새 들어 머리가 안도네요 ㅋㅋ 노력 노력!
  • 용용 2016/03/20 04:55 # 삭제 답글

    ㅎㅎㅎㅎㅎㅎ 이낫님 달러를 위한 여정치고는 너무 알차게 관광 잘 하고 오신거 같애요~!!
    다음편이 요번 여행기랑 어떻게 이어질지 기대되요+ㅁ+
  • enat 2016/03/22 20:13 #

    만약 앞의 박물관들에서 허탕을 치지 않고 제대로 구경을 했다면 두어개만 보고 카페라도 들어가 차를 마셨을텐데 말예요ㅋㅋ 하도 허탕만 쳐서 오기가 생기느라 빨빨거리고 돌아다녔습니다.
    다음편을 썼는데 별 임팩트가 없어서 큰일이군요. 기대가 끝나기 전에 얼른 다다음편을 준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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