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3/30 17:01

나가사키 온천여행 (5) 운젠의 유모토 호텔 ├ 엄마랑 온천여행 (2015)

1.

구청장님(*처음 보시는 분들을 위해 이번에도 설명하자면 구청장님은 우리 어머니의 별명일 뿐 구청과는 관계없음)과의 여행 둘째 날.

우리는 해안가에 있는 마을 ‘오바마’에서 버스를 타고 산 속에 있는 마을 ‘운젠’으로 이동했다. 이동 시간은 30분 남짓...이었던 것 같다. 확신하지 못하는 이유는 버스 안에서 정신없이 잤기 때문이다.

운젠에서 묵을 숙소는 ‘유모토 호텔’이란 곳이었다.

총평을 남겨보자면 : 객실과 온천 모두 합격점, 버스 정류장과 가까워 위치 역시 합격점, 가격 역시 2인실에 11~12만원으로 합격점. 딱히 흠잡을 곳이 없는 호텔이었다.





2.

유모토 호텔을 예약할 때, 조식과 석식을 체크하는 란이 있었다. 난 별 생각 없이 조식에만 체크하고 예약을 걸었다. 조식이야 호텔에서 먹는 쪽이 편하고, 석식은 나가서 외식하는 게 좋을 거라 생각했으니.

실수였다. 석식까지 포함시켰어야 했다.

사실 운젠에서 저녁에 갈 음식점은 이미 추려놨었다. 후쿠토미라는 음식점으로, 원래 노부부가 운영하고 있는 식당이었지만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할머니께서 홀로 남아 운영하고 계시다고 했다. 다녀온 사람들에 의하면 맛도 훌륭하고, 뭔가 현지 느낌이 물씬 풍기는 정겨운 음식점이라 했다. 이런 곳이라면 구청장님도 분명 좋아할 거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구청장님께선 저녁에 온천을 즐긴 후 그대로 호텔에 퍼져버리셨다.

구청장님 : 아아... 호텔 나가기 귀찮아아아...

이불 위에 쓰러진 구청장님은 자신은 이곳에서 한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으니, 저녁은 방에서 대충 때우자고 했다. 구청장님은 이 근처에 알탕을 하는 집이 없냐며 그걸 포장해오면 좋겠다는 자신의 바람을 내비쳤다.

나 : 불가능한 요청이란 걸 이미 알고 계시잖아요.
구청장님 : 한번... 말해봤어...


그리고 이어서 아련한 눈으로 말씀하시길...

구청장님 : 딸아... 역시 신라면을 챙길 걸 그랬다...

난 한숨을 쉬며 아쉬운대로 호텔 석식이라도 대령해야겠다 하고 프런트에 물어보러 갔다. 하지만 석식은 미리 예약을 해놔야한다는 절망적인 대답만 돌아왔다. 덕분에 난 밤중에 땀을 뻘뻘 흘리며 운젠의 작은 슈퍼마켓으로 달려가 "카라이모노와 난데스까ㅠㅠ" 를 외치고, 조금이라도 한식에 가까워 보이는 것들을 닥치는대로 집어 객실 안에서 차려야만 했다.

슈퍼마켓에서 산 일회용 미소 된장국에 물을 부으며 굳은 다짐을 했다. 앞으로 부모님과 여행을 떠날 땐 반드시 한식 레토르트 상품을 챙기겠노라고.





3.

앗, 이야기가 샜다. 여튼 유모토 호텔. 그 호텔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




외관은 대충 이러하다.





안쪽엔 정원이 있고.




도로쪽엔 무료로 즐길 수 있는 족탕이 있다. 물이 뿌연 건 더러워서가 아니라 유황물이라 그러함.

호텔을 들락날락하면서 여기 족탕에 발을 담그고 있는 여행자들을 꽤 많이 봤다. 아마 나도 혼자 왔으면 완전 저렴한 방에 숙박하면서 이 족탕에 발을 담갔겠지.




로비는 대충 이런 모양.

호텔 리셉션 사람들은 대부분 영어를 할 줄 알았다. 전날 슌요칸에서 영어로 말이 안통해서 고생했던 걸 생각하니 무지 감사했다. 특히 정장을 갖춰입은 단발머리 언니가 굉장히 친절하게 대해줬다.





이건 객실 사진.

정장 언니가 방까지 짐을 날라줬다. 정장이라 불편할텐데도 굳이 무릎을 꿇고 불편한 게 있으면 곧바로 프런트로 이야기를 해달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일본이야 팁문화가 없긴 하지만 그 정성에 감복하여 손에 팁을 쥐어줬다. 정장 언니는 싱긋 웃으며 인사를 하고 나갔다.

구청장님은 머뭇거리다가 직원이 방에서 나가자 그제야 자리에 편하게 앉아 감탄했다.

구청장님 : 어머, 여긴 슌요칸이랑 차원이 다르다. 너무 좋다!

마음에 들어하시니 다행이다. 슌요칸 말고 운젠에서 2박할 걸 그랬나. 넌지시 그런 말을 하니,

구청장님 : 무슨 소리야! 그럼 이게 좋은 건지 몰랐을 걸. 어설픈 곳에 갔다가 오니까 여기가 좋은 곳인줄 알지.

라신다. 무한 긍정 구청장님.




탁자 위에 지역 화과자 같은 게 있길래 냠냠. 서비스인가 보다.




화과자로 입맛이 돈 모녀의 무한 간식 타임.

여태까지 돌아다니며 구입했던 많은 간식들을 꺼내어 탁자 위에 꽂아넣었다. 우리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하나씩 처치해나갔다. 점심 먹은 게 바로 전인데, 역시 간식 배는 따로 있다.




화장실은 대충 이런 모양.

욕조가 있긴 한데, 온천 시설이 있어서 욕조를 쓴 일은 없다.




온천에서 찍은 사진이 없나 잠시 폴더를 쭉 뒤적거렸는데, 위와 같은 온천 밖 유카타 차림의 셀카들만 남아 있더라. 쓸데 없군.

설명을 위해 익스피디아에 올라와있던 유모토 호텔 사진을 가져왔다.




요런 느낌. 실제 크기보다 작게 찍힌 것 같다.

마지막 사진 속 온천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아마 예약해서 쓰는 가족탕인듯.

어쨌든 온천을 이용하는 사람이 의외로 없어서 편하게 즐겼다. 갈 때마다 둘이서 전세 내다시피 즐긴 것 같다. 사람 없는 시간을 잘 찾아간 걸지도 모르겠다.

구청장님은 발 뒤꿈치가 많이 건조해서 쩍쩍 갈라지셨었는데, 여기 들어갔다 온 후 하루만에 뽀송뽀송한 발바닥이 되었다고 한다. 넘나 놀라운 온천의 효능.





4.

호텔 얘기 하다가 빼먹은 소소한 이야기를 위해, 시간을 돌려 운젠에 처음 도착했을 때로 돌아가본다.

호텔 체크인 시간은 오후 3시였는데, 우리는 그 시간보다 2, 3시간 빠른 시간에 운젠에 도착했다. 그래서 프런트에 짐을 맡기고 점심 식사를 하러 밖으로 나갔다.




호텔에서 가까운 평범한 음식점에 들어갔다.





내부는 대충 이렇고.





구청장님께서 국물을 드시고 싶다시길래 우동을 시켜드렸다. 난 오야코동.

난 계란이라면 사족을 못쓰는지라 행복해하며 오야코동을 열심히 흡입했다. 그런데 구청장님께선 국물을 좀 마시다가 수저를 내려놓으시고 한숨을 내쉬었다.

나 : 엥? 별로 입맛에 안맞아요?
구청장님 : 신라면 먹고 싶어. 김치 얹어서.


글쎄, 그런 건 없다니까요 ㅠㅠ

구청장님 : 여기 알탕은 없어? 일본 하면 회! 회 하면 매운탕! 매운탕 하면 알탕!

매운탕은 우리나라 음식이에요 ㅠㅠ

앞으로 부모님과 여행을 떠날 땐 반드시 한식 레토르트 상품을 챙기겠다고 다짐했다22222222





5.

점심을 먹고 난 뒤, 아직도 체크인 시간이 남아 호텔 옆에 있는 옛날 장난감 가게? 같은 곳에 구경하러 들어갔다.







우리나라 근현대 박물관 같은 느낌이었다. 구청장님이 이걸 보면 옛날 생각도 나고 재밌어하실 것 같아 들어갔는데, 어쩐지 시큰둥한 반응이셨다.

처음엔 당신께서 원하는 점심 식사를 하지 못해 별로 기분이 안좋으신가보다 했다. 하지만 나중에야 엄마는 아버지(나한텐 외할아버지)께서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어려서부터 잔칫집이나 친척집에 가서 요리를 해주며 끼니를 벌어오셨고, 청소년기에는 공장에 들어가 돈을 버셨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러니 아마 이런 걸 가지고 놀 시간은 없으셨을 것이다. 괜히 들어왔네.





6.

점심도 먹고, 마을을 한바퀴 돌았는데도 체크인 시간까지 1시간 반이나 남았다. 별 수 없다. 내 최대의 장기를 펼칠 시간이다.

난 프런트에 가서 최대한 불쌍한 표정으로 "아직 체크인 시간 안됐지? 휴... 울 엄마가 사실 몸이 약하셔서... 지금도 좀 컨디션이 좋지 않으시네... 그냥 여기 로비에 앉아 있을게..." 라고 말했고, 마침 그 자리에 있던 젊은 프런트 직원은 오 저런 내 앞타임 근무자는 이 불쌍한 모녀를 미리 들여보내주지 않고 대체 뭘 한 걸까 하는 표정으로 황급히 체크인을 시켜줬다.

무슨 대화가 펼쳐진 건지도 모르고 미소만 머금은 채 눈을 끔뻑이는 구청장님껜, 그냥 체크인 시간이 당겨진 거라고 말했다.

그 이후엔 뭐... 위에서 말했던 대로 정장 여직원이 방까지 안내해주고, 방에서 뒹굴거리며 간식 까먹고, 온천에 한번 들어갔다 오고, 1시간 정도 낮잠을 잤다.

낮잠을 자다가 다시 눈을 뜬 건 늦은 오후였다.

구청장님 : 이제 뭐 해? 심심해.
나 : 아, 그럼 슬슬...
구청장님 : 슬슬?
나 : 지옥으로 향해 볼까요.





전글에서도 지옥 얘기 하다가 끊었는데
아 이러면 괜히 뭐 있는 것 같잖아
사실 지옥 거기 별 거 없는데
큰일이군 등등의 생각을 하며 다음 포스팅에서 계속!





덧글

  • 잘나가는 꼬마사자 2016/03/30 19:16 # 답글

    체크인 시간 당겨진거 너무 웃겨요ㅋㅋㅋㅋㅋㅋ 저도 가끔 그렇게 혼신의 힘을 다해 연기해보려고 할때가 있지만... 항상 제 의도랑 그렇게 상관없이 해줄사람은 해주고 아니면 안해주고 인거 같았는데, 제 연기가 발연기였나요!>_< 구청장님 이야기 들으니 엄마와 여행가고 싶어져요. 유럽 갔을 땐 그렇게 싸워댔는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나고 나니 또 그립네요...
  • enat 2016/03/30 19:42 #

    제 인상이 워낙 불쌍한 상(?)이라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 얼굴로 화가나서 강하게 말하면, 웬걸 다들 무서워하지는 않고 "그래, 안됐다... 너 원하는대로 해주마" 느낌으로 받아치는 경우가 대부분일 정도라서 ㅋㅋㅋㅋㅋㅋㅋ
    어머니랑 유럽 가셨었나요! 으으 넘나 부럽네요 ㅠㅠ 사실 저 2달 뒤에 엄마랑 같이 유럽가려고 했는데, 벨기에 테러 때문에 많이 걱정하셔서 결국 취소됐어요 ㅠㅠ... 하이고 수수료야...
  • 택씨 2016/03/30 19:32 # 답글

    음.. 일식이면 그래도 우리나라 입맛에는 상당히 맞을 것 같은데도 적응이 잘 안되시는군요.
    뭔가 '고독한 미식가' 같은 점심식사 에피소드를 기대했습니다만 기대를 저버리시는 이낫님. ㅎㅎ
    구멍가게는 불량식품 이런 것도 있나 봐요. 30엔, 45엔 이런 것이 어떤걸까요? 마지막 사진에 있는 것은 구슬 같아보여요.
  • enat 2016/03/30 19:46 #

    저도 일식이라 괜찮을 줄 알았는데, 역시 김치를 찾으시더라고요. 튜브 고추장이라도 챙겨놓을 것을... ㅠㅠ
    고독한 미식가 ㅋㅋㅋㅋㅋ 아쉽게 해드렸군요 ㅋㅋㅋㅋㅋ
    마지막 사진은 구슬 맞아요! 30엔 45엔 짜리들은 우리나라 문구점에서 파는 불량식품이랑 비슷한 것들이더라고요! 쫀드기나 입에서 쉽게 녹는 사탕이나 테이프 껌이나 뭐 그런것들이요 ㅋㅋㅋ
  • 키르난 2016/03/30 20:12 # 답글

    일식이 입에 잘 안 맞으셨군요...;ㅠ; 그 점에서 부모님이랑 여행 다닐 때 음식 문제는 없어서 정말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여행가실 때 고추장이나 라면도 전혀 안챙기시던..=ㅁ= 하기야 두 분 모두 빵을 워낙 좋아하시니 뭐든 느끼하고 짠 것만 아니면 그럭저럭 괜찮으신 것 같아서.....; 그러고 보니 이전에 같이 일본 여행 갔을 때도 저녁 식사가 번거로울 것 같아서 석식 뷔페 예약했던 기억이 아련합니다. 그리하여 석식이랑 조식 포함해서 예약했더랬지요.
  • enat 2016/03/30 21:17 #

    으어어 엄청엄청 부럽습니다아 ㅠㅠ 저희 아버지께선 한국에서 외식을 해도 한식이 아니면 뭔가 먹은 것 같지 않다며 툴툴거리시는 분이셔서, 제가 만약 어머니 아버지 두 분과 여행을 떠나게 된다면 한식 준비는 꼭 해야할 것 같습니다 ㅠㅠ
    저도 석식을 예약할 걸 그랬어요 정말! 예약을 미리 안하면 안된다는 말을 듣고 어찌나 땅을 치고 후회했는지... 다음부터는 조식이든 석식이든 된다는 건 다 예약하고 가려고요 ㅋㅋㅋ
  • 용용 2016/04/02 01:39 # 삭제 답글

    일주일간 일본 다녀오느라 이낫님 글 역주행(?)하면서 읽고 있는데ㅋㅋㅋㅋㅋㅋ 너무 공감되요! 일본에서 유학할때 엄마 아빠가 저 줄려고 밑반찬이랑 김치싸오셔서 반정도 드시고 간게 생각나요.... 지옥(?) 편도 기대하고 있을께요!!
  • enat 2016/04/05 18:05 #

    오오 일본 다녀오셨군요!! 재밌는 여행 되셨는지요!!
    잌ㅋㅋㅋㅋ 부모님께서 김치를 선물로 싸오셔서 반정도 드시고 가셨다닠ㅋㅋㅋㅋ 역시 어르신들의 한식 사랑!
    지옥편은 기대하지 마셔요! 별 거 없는데 왜 빨리 포스팅을 못하고 있는 걸까요 전!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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