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5/23 22:47

남미여행 (58) 아르헨티나 : 이과수 폭포 ├ 남미 배낭여행 (2014)

1.

누가 정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세계 3대 폭포라는 것이 있다. 북미의 나이아가라 폭포와 아프리카의 빅토리아 폭포, 그리고 마지막 하나가 바로 남미의 이과수 폭포라고 한다.

이 세 개의 폭포는 모두 두 나라의 국경에 걸쳐있다. 나이아가라는 캐나다와 미국 사이에서, 빅토리아는 잠비아와 짐바브웨 사이에서, 이과수는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사이에서 흐르고 있다. 처음엔 신기한 위치 선정이구나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반대였다. 폭포가 두 나라의 국경에 걸쳐있는 것이 아니라, 두 나라의 국경이 건너기 힘든 폭포를 사이에 두고 생긴 것이겠지.

나는 이과수에 가기 1년 전, 캐나다에서 워킹 홀리데이 비자로 체류하던 도중 나이아가라 폭포에 방문했다. 토론토라는 대도시에서 얼마 떨어져있지 않은 나이아가라 폭포는, 폭포가 보이지도 않는 먼 곳에서부터 물보라 때문에 옷이 젖고, 유람선을 탔을 뿐인데 재난 영화의 한 장면을 찍게 되는, 그야말로 엄청난 규모의 폭포였다. 나와 내 친구는 어머니 지구는 위대하다며 쫄딱 젖은 채로 폭포를 구경했다.

지금에 와선 운이 좋았다고 할 수 밖에 없다.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기 전에, 이과수 폭포를 보지 않았다는 점이 말이다.

내가 만약 이과수 폭포를 먼저 본 뒤에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러갔다면, 아마 미묘한 미소를 지으며 루즈벨트 부인이 했다는 말을 그대로 따라했을 것이다.

"Poor Niagara! (불쌍한 나이아가라!)"





2.

이과수 폭포를 보러가던 날의 아침.

전날 코골이와 이갈이의 이중창 때문에 잠을 제대로 못 잔 탓에, 몸이 몹시 피곤했다. 하지만 오늘의 일정은 제법 빡빡하다. 아침 일찍 이과수 폭포에 가서 폭포를 구경한 뒤, 저녁 버스를 타고 리우 데 자네이루로 넘어가야 하는 것이다.

나는 한국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괴상한 의성어를 내며 몸을 간신히 일으켰다. 그리고 이제 교복과도 같아진 퍼런 점프 수트를 착용했다. 대충 세수를 하고 선크림을 덕지덕지 바른 뒤, 숙소 바로 옆 버스 터미널로 가서 이과수 폭포 국립공원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그리고 바로 곯아떨어졌다.

길지 않은 시간, 그러니까 한 15분 정도 흘렀을까. 난 옆좌석의 소란스러움에 깨어났다. 옆에는 시골 농부처럼 생긴 아저씨가 앉아 있었고, 그 아저씨는 자신의 앞좌석과 뒷자석에 앉은 아줌마 아저씨 - 역시 뭔가 시골틱한 분위기를 풀풀 풍기는 사람들이었다 - 들과 신나게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런데 다들 같은 작업복을 입고 있었다. 직장 동료들인가...

내가 어벙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자, 옆좌석 아저씨가 내 시선을 알아채곤 말을 걸어왔다. 조용한 오전, 홀로 버스에 타서 쿨쿨 자고 있는 동양인 여자애가 신기한 눈치였다. 난 더 자고 싶었기에 스페인어를 못한다고 말했지만, 놀랍게도 그 아저씨는 아주 짤막한 영어를 사용할 줄 알았다.

나 : 영어 할 줄 알아? 남미에서는 도시 사람들도 영어 잘 못쓰던데.
아저씨 : 조금. 우리 일해! 이과수! 이과수 관광지! 관광지, 여행자 많다, 영어 쓴다.


관광지에서 일하는 분들이라 영어를 조금씩 알고 계시나보다. 무슨 일을 하냐고 묻자 풀 뜯는 시늉과 청소하는 시늉을 보여줬다. 시설관리를 하시는 분들인가보다. 나는 그러냐고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졸음에 이기지 못하고 내면의 세계로 빠져들려는 찰나, 그 아저씨가 날 흔들었다.

나 : 응?
아저씨 : 마테! 마테!


그러면서 손에 들고 있는 마테차 컵을 건네며 마시라는 것이었다...

으음...

잘 모르는 사이인데 뚜껑 따진 웰치스보다 더한 완전 개방형 마테차 컵... 그것도 빨대형...

난 무진장 찝찝한 기분을 느꼈지만, 예전에 남미와 관련된 다큐멘터리에서 '현지인이 마테차를 주는 행동은 친근함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이걸 거절하면 무례를 범하는 것이다'라는 내용을 본 기억이 떠올라 거절할 수 없었다. 그래도 혹시 몰라, 전날 저녁 응이 언니네 BsAs 아파트에서 마셨던 마테차의 맛을 떠올리며, 조금이라도 맛이 다를 경우 뱉어버리자 하는 긴장을 놓치 않고 마테차를 살짝 마셨다.


나 : 푸왘!


마시자마자 고개를 돌리고 뿜었다. 뭐야, 전혀 달라, 어제 마신 내 마테차랑은 전혀 다른 맛이다!


너무 진하잖아!


나는 부들부들 떨며 마테차를 건넨 아저씨와 그 동료들을 째려봤다. 그네들은 깔깔거리고 웃으며, 아마 어린 네가 먹기엔 너무나 쓸 것이다, 그것이 인생, 마테의 맛인거다 등등에 해당하는 말을 했다. 그 모습이 외국인에게 청국장 냄새를 맡게 한 우리나라 시골의 어르신들 같았는지라, 나도 별 수 없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웃어버렸다.


이 마테차 권유는 나중에 이과수 폭포를 구경하고 돌아가는 길에도 발생했다.

구석에 있던 인포메이션 직원들과 친해져 제법 오랜 시간동안 그늘에 앉아 농담을 주고 받았는데, 그네들도 내게 마테차를 권하는 것이었다. 나는 아침의 기억 때문에 덜덜 떨면서 그걸 받아들였고, 이번에도 뿜을 것을 각오하며 마테차를 쭈욱 빨아들였다.


나 : 푸... 오오!?


이번 마테차는 겁나게 맛있다! 달콤하면서 시원하다!


나는 놀라운 표정을 지으며, 내가 알던 마테차와는 다른 맛이 난다고 그들에게 말했다. 내게 마테차를 건넨 직원이 웃으며, 이건 자기가 바리에이션을 넣은 마테차라고 했다. 비법을 물어보자...

직원 : 레몬이랑 설탕! 마테차에 설탕으로 재워둔 레몬을 넣은 거야.
나 : 게다가 시원한데!? 네 마테차 컵은 보냉기능이 있는 거야?
직원 : 그렇진 않고, 보온병에 담은 레몬청을 방금 컵에 따른거야.


나는 그 아이디어에 놀랍다며 박수를 쳤고, 직원은 자기 친구들은 다들 자기처럼 마신다며, 내게 레몬청을 섞은 마테차를 더 따라주었다. 안그래도 밀림 트래킹을 했던 터라 갈증이 나던 터여서, 나는 사양않고 맘껏 마셨다.

이렇듯 전통 마테차라 하더라도 마시는 방법은 연령층마다 가지각색!

운좋게도 친절한 현지 직원들을 만나 그걸 느끼고 갈 수 있었다.





3.

이과수 폭포 포스팅인데 마테차 이야기만 엄청 썼네!

빨리 본론으로 들어가겠다.


*** 참고 : 카메라 2대가 여행 중에 실종 및 사망해서 이번에도 폰카임.


이과수 폭포 국립공원은 굉장히 넓다! 일단 간략한 그림판 지도를 첨부한다.




입구에서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면, 열차를 탈 수 있다. 열차는 무료니까 초반부터 괜히 걷지 말고 열차를 타고 중앙까지는 가시길 바란다. 걸을 곳 많다.





열차를 타고 중앙 역에 내리면, 그 때부터 밀림 트레킹을 하며 폭포를 관람할 수 있다.

지금부터 그 때 찍은 사진 하나하나를 올려보겠다.




《Paseo Superior 트레킹 지역》


Paseo Superior 트레킹 지역에서는 폭포 상류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폭포수를 조망할 수 있다.




강과 늪지대에 다리를 놓아 걸을 수 있게 한 곳들이 많다. 위험하니까 목마는 금지란다.

폭포는 보이지도 않는데 굉음이 들려와 두근두근하며 걸었다.




굉음의 정체는 저 녀석이었다!

신이 나서 저 폭포들이 눈앞에 보일 때까지 사람들을 제치고 단숨에 달려갔다.





전망대까지 갔다!

나이아가라 저리가라다! 폭포 규모가 엄청나잖아!

폰카로 찍으니까 그 위용이 드러나지 않아 몹시 아쉬울 따름이다.




남들 다 찍는 인증샷을 찍으려고 했는데 빛조절에 실패했다... 폰카 구려... 흐엉.





무시무시할 정도로 쏟아지는 폭포수.

전망대에서 계속 보고 있었더니 같이 휩쓸릴 것 같아 어느 순간 움찔했다.




규모가 장난 아니야... 이순간 하필 폰카 따위를 들고 있는 내 자신이 원망스럽다.




원망하는 자신을 내버려두고 폭포에 더 가까운 전망대까지 이동했다.

이동하러 가는 길 다리에서 찍은 사진. 폭포수에서 떨어진 물줄기가 강이 되어 흘러가는 모습.






Paseo Superior 지역에서 폭포에 제일 가까운 전망대까지 갔다.

도저히 이 지상의 것이라곤 상상할 수 없을 풍경이 펼쳐졌다.




잔잔하게 흘러가던 폭포 상류의 물이 점점 빨라지다가 자유낙하하는 지점. 감탄밖에 나오질 않는다.




특히 저기 말머리 같은 바위가 있는 지점.










저 지점에 휩쓸린다면 나 같은건 산산조각 나겠지 싶은 엄청난 수량이었다.




사실 난 저 부분이 악마의 목구멍인줄 알았는데, 나중에 다시 지도를 보니 Salto San Martin이라고 불리는 폭포란다. 악마의 목구멍을 아르헨티나 쪽에서 보려면 더 위쪽 기차역까지 이동해서 걸어야한단다.

그리고 그 사실을 리우로 가는 24시간 버스에서 시간을 때우기 위해 여태까지 여행했던 관광명소의 팜플랫을 하나하나 보다가 알게 된 나.

난... 난 이과수 폭포에 가서 악마의 목구멍을 보지 않고 와버린 것이다.

왠지 다니면서도 뭔가 빠트린 게 있을거라 생각했고, 어차피 아르헨티나는 또 올 작정이라서 그렇게 구석구석 다니지 않고 설렁설렁 다닌 면도 있긴 했지만... 그렇다해도 설마 진주인공을 빠트릴 줄은 몰랐다. 나는 하하하 웃으며 자신의 뺨을 때렸다. 이런 바보.

여러분들은 이 사실을 통해 두 개의 사실을 알 수 있다.

a. 이과수 폭포는 진짜 쩐다는 것. 무한도전을 보면서 재밌다고 배를 잡고 굴렀는데 알고보니 유재석이 없는 무한도전이었음. 혹은 스테이크 정식을 시켜먹고 내 생애 최고의 식사였다고 찬사를 한 뒤 가게를 나왔는데 알고보니 고기를 먹지 못함. 그럼 유재석이 나오는 무한도전은 또 얼마나 재밌을 것이며 스테이크 정식의 메인 요리인 고기까지 먹으면 또 얼마나 맛있을 것인가. 그런 느낌이다.

b. 주요 명소를 빼놓을 정도로 나사 하나 풀린 애도 여행을 즐겁게 다니는데, 나보다 꼼꼼하고 준비성 있으며 제정신인(?) 사람들은 얼마나 더 즐겁게 여행을 다닐 수 있단 말인가. 그러니 여러분들은 "지구 반대편 이과수까지 가서 그곳의 최고 핫스팟인 악마의 목구멍을 보지 못했다는 덤벙이 enat도 저렇게 여행을 다니는데, 나라고 못 가겠나!"라고 생각하고 여행을 떠나시길 바란다. 여행은 매우 쉬운 일이다.

어쨌든 난 5년 안에는 이과수 폭포에 다시 갈 생각이다. 계속해서 포스팅 중인 베네치아 한풀이 여행 (무라노 섬에서 유리공예 못보고, 밤의 산마르코 광장에 불 들어온 모습을 못봐서 꼭 다시 오겠노라고 다짐했다가 3년 만에 다시 가서 한풀이했던 여행) 처럼 말이다. 아무래도 악마의 목구멍은 꼭 봐야겠으니.




《Circuito Inferior 트레킹 지역》


다시 원래 이야기로 돌아와서.

Circuito Inferior 트레킹 지역은 위에서 설명했던 Paseo Superior보다 지대가 낮은 곳에 있다. 그래서 폭포들을 아래에서 위쪽 방향으로 조망할 수 있다.




밀림 속을 신나게 걷는 중.

신이 나면 남들보다 발걸음이 배로 빨라지기 때문에 사람들을 제쳐가며 걸었다. 무진장 덥고 땀이 계속 나긴 했지만 불쾌한 건 전혀 없었다. 애시당초 그러려고 온 거라!




걷다가 폭포 옆 절벽에 붙은 박쥐들을 발견했다.

날라다니는 것까지 찍고 싶었는데, 휴식 시간인지 가만히 붙어있기만 하더라.




길은 요런 식으로 절벽과 절벽을 이어가며 나있다.

걷다가 무심코 바닥을 보면 아슬아슬한 기분이 들어 오싹하다.





안쪽 순환로는 이렇게 폭포 멀리까지 길이 나있다.

멀찌감치서 바라본 이과수 폭포는 무슨 병풍 같았다.




폭포를 향해 점점 다가가는 중.





걷다보니 폭포수 바로 아래까지 왔다! 이 폭포에는 Salto Bosseti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멀리서 찍은 거라 그 규모가 감이 안오시겠지만...





가까이서는 절대 인증샷을 찍을 수 없는 폭포다. 그 배경이 되는 폭포가 워낙 큰지라...




더 멀리서 찍으라는 지나가는 아르헨티나 아저씨의 충고를 듣고 멀리까지 나와 찍은 인증샷.

몇 컷만에 찍은, 그나마 제대로 찍힌, 몇 안되는 인증샷인데, 정작 이 사진을 본 한국의 다른 친구들은 "합성이야? 왤케 빛이 부자연스러워?"라는 말로 내 뿌듯함에 어퍼컷을 날렸다. 나쁜 친구들... 하지만 그 말을 듣고 보니 진짜 어색해보인다... 흐잉 합성 아닌데...

내가 진짜 거기까지 가서 찍은 사진인데 합성이라고 하다니, 닐 암스트롱도 제법 억울했을 것 같다.




《Gran Aventura》


두 개의 트레킹 코스를 돌고 났더니 벌써 예약해놓은 투어 시간이다.

난 남아있던 마지막 트레킹 코스(그 마지막 코스가 악마의 목구멍 코스였다)는 까맣게 잊은 채, 그란 아벤투라, 그니까 그랜드 어드벤처 투어를 하러 여행자 센터로 달려갔다. 예약할 때 여행사 아저씨가 절대 늦지 말랬는데!

헉헉거리고 달려갔는데, 다행히도 늦지 않았다. 난 줄서있는 사람들 뒤에 서서 차량에 탑승하기를 기다렸다.




우선 지프차를 타고 밀림을 돌아보는 코스.

전 포스팅에서 작성했던대로, 그다지 재미는 없었다. 뭔 들짐승이라도 나타나면 재밌을텐데, 들짐승은커녕 새도 날라다니지 않더라. 가이드도 민망했는지 "저번에 왔을 땐 무슨무슨 동물을 봤었어. 진짜 재밌었는데." / "저번에는 여기에 어떤어떤 새가 날라왔었어. 한 여행자의 모자 위에 앉았지." 등등의 말로 지루해하는 사람들을 달랬다.




지프 가이드 : 앗, 저길 봐!

가이드의 손가락에 사람들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동물인가!? 야생동물이 나타난 건가!?

지프 가이드 : 저게 바로 무슨무슨 열매야. 저 열매를 어떤어떤 동물이 좋아하지...

가이드의 말에 사람들은 흥미를 잃은 듯 하품을 했다.




결국 아무런 소득없이 선착장까지 와버렸다.





꽤 가파른 길을 따라 내려가서 구명조끼를 입고 보트에 탑승했다.

쓸쓸해보이는 지프차 가이드에게 작별인사를 건넸다.




이과수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중.

매우 평화롭고 한적한 풍경이 20분간 펼쳐졌다. 클래식 음악이라도 깔면 괜찮겠는걸? 난 우아한 보트 투어를 즐기며 보트에서 보는 이과수 폭포는 어떤 느낌일까를 상상했다.




어머나! 저 멀리 폭포가 보이네!




다들 여유롭게 핸드폰 혹은 카메라로 사진을 촬영했다.

정말 어썸한 풍경이지 않냐고 옆에 앉은 사람이 말을 붙였다.





웃으며 그렇다고 대답하려는 순간, 갑자기 분위기가 변모한 것을 느꼈다.

상상속에서 들려오던 클래식 음악이 재난영화에서 사고가 터지기 직전의 수상쩍은 브금으로 바뀌었다.

응? 뭐지? 어디선가 느껴봤던 이 분위기는...






보트 가이드 : 자! 이제 다들 전자제품 집어넣어! 아까 방수가방 나눠줬지? 파손되어도 우리는 몰라! 각자 알아서 챙겨!

그러고보니 아까 구명조끼와 함께 방수가방을 주긴 했는데...

난 파손되어도 어쩔 수 없다는 말에 얼른 주변 사진을 후다다닥 찍은 뒤 가방 안에 핸드폰을 집어넣고 꽉 조여맸다. 뭐지? 이 불길함... 그때 번갯불처럼 어떤 기억의 파편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그러니까 그건... 토론토... 친구 무비몬과 함께 방문했던 나이아가라 폭포... 다들 타보라고 했던 메이드 오브 더 미스트... 안개 속의 숙녀호를 타고 재난영화의 엑스트라가 되어 정신줄을 놔버린 그 날의 추억...


나는 왜 그 날을 잊고 있었던가.


왜 보트 투어를 '굉장하다'는 가이드의 말만 듣고 멋대로 우아한 투어라고 상상해버렸는가.


그 굉장함은 내가 생각한 굉장함과는 의미가 다른 굉장함이 아니던가.


이건 뭔가 잘못됐다고 외치려는 순간, 보트는 폭포 속으로 돌진했다.


.......!!!!!!!


아무 비명도 못질렀다. 입을 열면 입 속으로 폭포수가 들어와 입을 꼭 다물 수 밖에 없었다. 눈을 뜰 수조차 없었다. 잠깐만, 난 수경을 챙겨야한다는 말은 못 들었어!

굵은 폭포수가 온 몸을 두들겼다. 그래, 만약 집에 있는 샤워기를 1000대정도 가져다놓고 동시에 사람을 향해 쏘면 이런 느낌이겠구나! 근데 아파, 아프니까 그만!

내가 그만이라고 마음속으로 외치는 순간 보트가 뒤로 빠져나왔다. 맙소사. 맙소사. 맙소사!

난 나이아가라에서 같이 재난영화를 찍었던 무비몬을 떠올렸다. 무비몬아, 나이아가라의 안개 속의 숙녀호는, 정말 숙녀였어! 그 애가 숙녀가 아니면 뭔데! 그 애는 그냥 온몸을 적실 뿐이었다고! 얘는 깡패야! 날 두들겨패는 깡패라고!

가이드 : 좋았어! 한 번 더 간다!


기다려!


보트 투어가 이런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어!


아무도 나에게 말해주지 않았다고!





정신을 차리니 선착장이었다. 그 선착장은 폭포 근처에 있었고, 그래서 길바닥이 잔뜩 젖어있었다. 난 후들거리는 다리로 아무 바위에 걸터앉았다. 그 바위도 젖어있었지만, 상관없었다. 나만큼 젖어있진 않았다.




아래를 보니 한 보트가 폭포수 처벌 집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후후... 잘 다녀오시게...




주변을 둘러보니, 나와 함께 탔던 사람들은 다들 일행이 있었는지, 일행끼리 모여 마른 수건을 가방에서 꺼내 몸을 닦고 있었다. 남자들은 훌러덩 상의를 벗고 옷을 갈아입기까지 했다. 아아, 저렇게 준비성이 있는 친구가 있었더라면, 나도 이 물기를 닦고 옷을 갈아입을 수 있었을텐데.

본격 웨이와 응이 언니가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바위에 걸터앉아 쉬고 있는데, 나처럼 혼자 온 것으로 보이는 한 유럽 여자가 말을 걸었다.

유럽 여자 : 저기, 혹시 나 사진 한 장만 찍어줄 수 있어?
나 : 응? 얼마든지. 잠깐만, 여기선 풍경이 잘 나오지 않으니까 이쪽 각도로...
유럽 여자 : 아냐! 너도 혼자다녀서 알겠지만, 내 모습이 나온 사진이라면 대충 찍은 거라도 기쁘잖아. 그냥 연사로 계속 찍어줘.
나 : ㅋㅋㅋㅋㅋㅋㅋ 그래. 그럼 나도 네꺼 찍고 연사로 부탁할게.


그렇게해서 건진 인증샷 한 장.





4.

그렇게 보트 투어로 혼이 쏙 빠진 enat은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옷을 말리고, 중간에 안내소 직원들과 친해져 마테차를 마시고, 미리 써놨던 엽서를 내부 우체통에 넣고, 터덜터덜 걸어서 이과수 국립 공원을 빠져나갔다고 한다.

아래는 나머지 사진들.











악마의 목구멍은 뭐... 이미 지나간 거 어쩌겠어.

리우로 가는 24시간 버스 안에서, 나는 다음번의 아르헨티나 여행 계획을 머릿속으로 세우고 있었다.

카메라 때문에 포기했던 살타도 가고, 멘도사에서 바로 넘어가느라 가지 못했던 대학 도시인 코르도바도 가고, 겨울이라 갈 엄두도 내지 못했던 우수아이아도 가고,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다시 가서 탱고 공연도 주구장창 보고, 이과수에도 다시 와서 악마의 목구멍도 봐야지. 그리고 그 때는 카메라도 제대로 챙겨서 다닐 거고, 스페인어도 좀 공부할 거니까... 기다려라, 아르헨티나!

그냥 그런 다짐을 했다.





5.

이과수 관광을 마치고, 다시 푸에르토 이과수 마을로 돌아온 건 늦은 오후였다. 난 짐을 맡겨두었던 피터팬 호스텔에서 유료 샤워시설을 이용했다. 편하게 버스에 타기 위해 추리닝을 걸쳐 입고, 호스텔 아주머니께 인사를 한 뒤 버스 터미널로 이동했다.

리우로 가는 버스는 브라질 쪽 이과수 마을인 포스 두 이과수에서 탈 수 있다. 그래서 먼저 포스 두 이과수 터미널까지 가는 여행사 버스를 타야만 했다. 미리 버스를 예약해놓은 여행사 건물로 찾아갔더니, 여행사 직원이 자신이 골라둔 택시를 타라 했다. 오늘은 나 하나뿐이라 택시를 타야 한다나. 총 경비는 이미 지불해놨으니, 나야 좋지.




택시를 타고 국경을 통과하는데, 택시기사가 나보고 여권을 달라고 한다. 아무래도 입국 심사니까 내가 직접 나가야 할 것 같아서 몸을 일으키려는데, 그럴 필요가 하등 없다며 그냥 여권만 달란다.

그래서 여권을 맡겼더니, 그 택시기사는 몇 초 뒤에 다시 내 여권을 들고 의기양양하게 돌아왔다. 그리고 출발하잰다. 여권을 살펴보니 도장도 찍혀있지 않았다. 이게 뭐야! 뭐가 이렇게 허술해? 웨이는 그 고생을 하며 넘은 국경이라는데!

뭐, 편하면 그만이긴 하지만... 이건 대한민국 여권이 남미 슈퍼패스(볼리비아 빼고)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택시기사의 수완일까. 알 수 없다.





6.

포스 두 이과수의 버스 터미널에 도착한 나는, 이제는 필요없는 아르헨티나 페소를 모아 택시기사에게 적당한 양의 팁을 주고 내렸다. 남은 돈을 브라질 헤알로 바꾸려는데, 버스터미널 환율이 형편없었다. 어쨌든 저녁을 먹기 위해서 브라질 헤알은 필요했기에, 어쩔 수 없이 눈물을 머금고 환전을 했다.

아아, 택시 타고 국경을 넘었을 뿐인데 금새 거지가 되어버렸구나...

난 환전 직원에게 '그라시아스'라고 말했지만, 환전 직원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아차, 여기는 브라질. 포르투갈어를 쓰는구나. 다시 '오브리가도'라고 바꿔 말했더니, 그는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며 오케이 싸인을 보냈다.

아아, 택시 타고 국경을 넘었을 뿐인데 다시 꿀먹은 벙어리가 된 기분이야...

나는 얌전히 리우로 가는 24시간짜리 버스를 기다렸다.



드디어 브라질! 리우로 가는 24시간 버스에서 계속!






덧글

  • 에스j 2016/05/24 01:03 # 답글

    아니 이따금 올리시는 여행기가 어째 죄다 이리도 스펙타클합니까. ㅠㅠb 최고입니다!!

    폭포는 그야말로 사진 잘 안 나오는 대표적인 피사체가 아닐까 해요. 사진과 실제가 터무니없이 갭이 커서....(소리!! 물!! 추워!!) 대자연의 압도적인 모습 잘 보고 갑니다~

    ps. 세계x대 어쩌구 하는 거 하고 xx의 아버지/어머니는 대체로 일본이 원산지더군요.
  • enat 2016/05/24 20:51 #

    남미여행이라 그런가봐요! 남미는 존재 자체가 스펙타클한 거 같아요! ㅋㅋㅋㅋㅋ

    으으... 맞아요. 폭포는 정말인지 사진과 실제의 갭이...
    보고나서 바로 포스팅을 했다면 좀 더 세밀하게 묘사할 수 있었을텐데, 한참 뒤에 포스팅하게 됐는지라 아쉬운 마음도 있습니다. 히잉.

    ...역시 일본! 말장난의 나라! 그런 타이틀 참 잘 만들어내는거 같아요.
  • 키르난 2016/05/24 08:46 # 답글

    .. 이건 무조건 직접 가서 봐야하는 군요. 게다가 폭포로 안마..(응?)
    안 그래도 3대 폭포 중 제일 가는 것은 이과수라고 하던데 말입니다. 갈아 입을 옷 꼭 챙기고, 방수 카메라 챙기고, 그러고 가야하는군요. 사진보다는 글에서 박력이 더 느껴지는데 직접 보지 않으면 실감이 안날거예요..ㅠ_ㅠ
  • enat 2016/05/24 20:53 #

    네 무조건 직접 가서 봐야합니다 ㅠㅠ 그리고 가실 땐 꼭 수건과 갈아입을 옷을 꼭꼭 방수팩에 싸들고 가시길!
    사실 태양이 뜨거워서 좀 걷다보면 다 마르긴 합니다만... ㅋㅋㅋㅋㅋ
    저는 3대 폭포 중 제일 가는 악마의 목구멍을 보지 못했는지라, 아쉽더라고요. 대체 생각을 하면서 여행을 다니는 건가 자기 뺨을 때렸더랬죠. 에휴, 진짜 다시 가야지, 이과수 폭포.
    더불어 빅토리아 폭포도요!!! ㅋㅋㅋ
  • 장님 눈아찌 2016/05/24 11:04 # 삭제 답글

    최근 여행기를 보며 뭔가 부족하다고 느꼈는데 말입니다...
    enat님의 미모에 빠져들어 말을 거는 남미 남자들 얘긴 왜 없는 겁니까?
    나라마다 한명씩은 남자사람친구가 있었는데 없으니 허전해요.
    흠... 너무 일상적인 일이라 빠진 건가요?
  • enat 2016/05/24 20:56 #

    그렇습니다. 너무 일상적인 일이라 빠졌습...
    ...그럴리가 없죠!

    그럼 왤까요?
    오, 당시 찍은 인증샷을 보니 알겠군요.
    남미 여행하면서 고생 오지나게 했는지라 못생겨졌군요. 화장품도 잃어버리거나 다 써서 썬크림만 바르고 다녔고...
    결국은 쌩얼이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하하! 문제 해결!

    ㅠㅠ
  • 2016/05/24 12:41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6/05/24 20:57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Tabipero 2016/05/27 00:33 # 답글

    모바일로 첨 봤다가 pc화면으로 보니 훨씬 멋집니다. 악마의 목구멍 안 가도 전혀 안 아쉬울 것 같은데요! 악마의 목구멍이란 곳은 도대체 어떤 곳이길래...
    얼마나 오래 다니셨길래 팔이 다 탔어요 ㅎㅎ
  • enat 2016/05/27 14:55 #

    저도 이과수 폭포를 둘러본 뒤 대단히 만족하면서 나왔는데, 하이라이트라는 악마의 목구멍을 보고 오지 않았다는 사실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어요 ㅋㅋㅋ 저도 모르겠어요. 대체 어떤 곳이길래... 지금 본 것을 뛰어넘는 뭔가가 있겠죠...
    아, 저 팔은 멕시코 테오티우아칸에서 탄 거에요! ㅋㅋㅋ 어정쩡한 반팔티를 입은 날이었는데, 썬크림 바르는 걸 까먹어서 남은 팔 부분이 홀라당 타버렸죠 ㅠㅠ 결국 나시티 입었더니 저런 조립인간 팔이... 으으...
  • 용용 2016/05/28 00:22 # 삭제 답글

    +ㅁ+!! 이낫님!! 이과수!! 덕분에 저도 폭포에 꽂혔어요!!(?) 헿! 저 이번에 뉴욕 가는데 나이아가라 다녀오려구요~! 요번에 나이아가라 찍고 담에 꼭 이과수 폭포 '악마의 목구멍'(별다섯개ㅋㅋㅋㅋㅋ)도 봐야겠어요!!!
  • enat 2016/05/31 14:46 #

    뉴욕가시나요!!!!! 와아아아아ㅏ 뉴욕!!!!! 자유의 여신상!!!!! 브로드웨이!!!!! 타임스퀘어!!!!! 저 뉴욕 가본적 없는데!!!!! 완전 부러워요!!!!!!
    나이아가를 이과수 보시기 전에 보시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ㅋㅋㅋㅋ 나이아가라 다녀오실때 국경 넘어서 캐나다쪽도 꼭 구경하세요!! 캐나다쪽이 레알이에요!!!!
  • 11thCTR 2016/05/28 01:32 # 답글

    ... 간략한 소감...
    '아... 청춘이군요.'
    ㅋㅋㅋㅋㅋ
  • enat 2016/05/31 14:46 #

    포스팅 작성하는데 자꾸 꽃청춘의 빅토리아 폭포가 생각나더군요 ㅋㅋㅋ
    아으아 빅토리아도 다녀와야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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