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5/24 20:47

남미여행 (59) 브라질 : 24시간 버스를 타고 리우에 도착하다 ├ 남미 배낭여행 (2014)

1.

포스 두 이과수 터미널에서 리우 데 자네이루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한 남성이 친한 척을 하며 말을 걸어왔다. 그는 영어를 사용할 줄 알았으며, 상파울로에서 회계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상파울로 남자 : 너 혼자 여행하는 거야? 여자 혼자서 대단하네.
나 : 대단하기는... 별 것도 아니야.


난 이 날 이과수에서 몹시 피곤한 일정을 마치고 버스를 기다리는 것이어서, 아무 생각없이 그냥 쉬고 싶었다. 하지만 이 상파울로 남자는 계속해서 말을 걸어왔다. 그래, 남미에서 보기 힘든 '영어도 쓸 줄 아는 현지인'인데, 적당히 말을 섞다가 버스에 타면 되겠거니 하고 말을 계속 이어줬다.

나 : 아, 나 이제 버스타러 가야돼. 그럼 즐거운 여행이 되길.
상파울로 남자 : 무슨 버슨데? 나랑 같은 버스 아니야?
나 : 아냐. 나는 리우로 가. 너는 상파울로로 가잖아.


상파울로 남자는 허허거리며 말했다.

상파울로 남자 : 그거 알아? 네가 탈 버스는 상파울로에 들렀다가 리우로 가는 버스야!
나 : 아... 그래?
상파울로 남자 : 그래서 우리는 같이 버스 여행을 할 수 있는 거야! 멋지지!
나 : 뭐... 하하. 그래.


나는 속으로 어차피 좌석지정제고 네놈과 나는 따로 앉으니까 푹 쉴 수 있겠다 생각했다.

이윽고 버스가 들어왔고, 예상했던 대로 상파울로 남자와 나는 먼 자리였다. 나는 상파울로 남자에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자리에 앉았다. 옆에 누가 앉을까? 그냥 조용한 사람이 앉았으면 좋겠다.

그 때 내 옆좌석 사람이 들어왔다. 그는 상파울로 남자와는 다르게 조용해보였다. 그 남자는 영어를 할 줄 몰랐는데, 가만히 쉬고 싶었던 내게 그 사실은 참 다행이었다. 그리고 운좋게도 잘생겼다. 정말 잘생겼다. 눈 호강하면서 리우까지 갈 것 같다.

행운이 따른 것 같아 24시간이라도 괜찮겠다 싶었던 여정이었다.

그랬어야 했다. 하지만...

상파울로 남자 : 오, 네 옆좌석에 앉은 사람은 일행이 없나봐. 그럼 우리가 일행이라고 하고 자리 바꿔달라고 하면 되겠다. 그치?

뭐?

나 : 아니, 왜 그런 짓까지 하는데? 난 그런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
상파울로 남자 : 괜찮아. 내가 말하면 돼.


상파울로 남자는 내게 걱정말라며 윙크를 날리곤, 그 훈훈한 남자에게 "나와 저 동양인 여자는 일행인데 같이 앉지 못했다, 네가 자리 좀 바꿔주지 않겠냐" 정도에 해당하는 포르투갈어를 구사했다.

뭐... 뭔...


뭔 지거리야 저 상파울로 남자는!


가뜩이나 피곤한 몸, 버스 기다리면서 네 수다를 받아주느라 더 피곤해졌단 말이다! 나는 조용한 사람이 필요해! 옆좌석에 말 안통하는 외국인이 필요하다고! 게다가 저 사람 잘생겼잖아! 완전 훈남이잖아! 안돼! 훈남씨! 바꿔주지마! 허락하지마!

하지만 그 훈훈한 남자는 쩍 벌어진 어깨처럼 넓은 마음을 가졌는지, 시원스럽게 오케이 사인을 해줬고, 즐거운 여행이 되라고 짧은 영어로 쿨하게 말한 뒤 자리를 바꿔줬다. 포르투갈어를 쓸 줄 모르는 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훈남의 멀어져가는 뒷모습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상파울로 남자 : 됐어! 이제 우리 같이 갈 수 있어.
나 : ......
상파울로 남자 : 잘됐지? 근데 아까 무슨 얘기까지 했었지?



알게 뭐야! 닥쳐!





2.

상파울로 남자는 정말 말이 많았다. 너무 말이 많아서 듣다가 울고 싶을 정도였다. 난 전날 코골이와 이갈이의 이중창 때문에 잠도 많이 못잤고, 그 상태로 막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밀림 트레킹을 하고 온 참이다. 그리고 이제 24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리우까지 긴 여정을 가야한단 말이다. 그냥 날 좀 자게 해주면 안되겠니, 상파울로 남자!?

난 내 피곤함을 어필하며 자는 척을 하려고 노력했지만, 상파울로 남자는 계속 멍 때리는 날 흔들며 말을 걸었다. 진짜 이렇게 눈치없고 집요한 사람은 처음이었다.

상파울로 남자 : 이봐, 리. 한국어로 고맙습니다는 뭐야?
상파울로 남자 : 이봐, 리. 너 외국에 나와 있으면 부모님들이 걱정 안해?
상파울로 남자 : 이봐, 리. 사실 나는 인도 출신이야. 너 인도 가본 적 있어?
상파울로 남자 : 이봐, 리. 너 일본인 좋아해? 난 일본인들이 참 좋더라.


아 제발 좀, 좀! 그만 좀 물어봐!

이쯤되자 나도 표정관리를 할 수 없게 되었다.

나 : 나 일본인 진짜 싫어. 걔네 완전 짜증나.

사실 네가 짜증나는 거지만...

하지만 상파울로 남자는 자기가 짜증난다는 말을 들은 것처럼 언성이 높아졌다.

상파울로 남자 : 뭐라고!? 왜 일본인을 싫어해? 걔네 완전 착해!
나 : 아, 그래, 착하긴 한데, 거기 정부를 정말 싫어해. 여튼 일본 싫어. 일본 얘기 하지마.


그냥 얘기를 하지 말라는 소리였지만, 상파울로 남자는 어깨를 으쓱하며 계속 말했다.

상파울로 남자 : 어쨌든 넌 브라질에 왔고, 그럼 브라질 사람들이 일본 사람들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아야해. 네가 브라질 사람에게 일본인이 싫다고 말하는 건 대단한 실례야. 왜냐하면 현재 브라질 사람들의 1/4은 아마 일본인의 피가 섞여있을 거거든. 그러니까 일본에 대해 나쁘게 말하지 마.

브라질엔 일본인 이민자들이 많아서, 길 가다가 "네 할머니는 어디 나라 사람이야?"라고 물으면 4명 중 1명은 일본인이라고 대답한다는 얘기였다.

나 : 근데 넌 브라질 사람이 아니라 인도 사람이잖아. 너네 할머니는 일본인 아니지? 그럼 폐가 아니겠네.
상파울로 남자 : 나는 그렇지만, 다른 브라질 사람들은 불쾌할거란 얘기야. 왜 일본을 싫어하는거야?
나 : 너 역사 안배웠어? 왜 한국인들이 일본인들을 싫어하는지 모르는거야?
상파울로 남자 : 역사는 좀 알지만 일본과 한국에 대해서는 좀... 왜 싫어하는데?


아뿔싸, 이러면 대화를 계속 해야하잖아.

하지만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문제여서 이야기를 계속 이어갔다.

나 : 2차 세계대전 즈음에 한국 사람들이 일본 사람들 때문에 많이 죽었잖아. 걔네가 우리나라 빼앗았다고. 일본군은 우리나라 말고도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도 침략했는데. 몰라?
상파울로 남자 : 세계대전? 일본은 피해를 입었잖아? 미국이 핵폭탄을 써서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고. 오히려 걔네가 피해자 아니야?



세상에.


어이가 없어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나는 피곤함을 무릅쓰고 미국이 핵을 쓴 건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였으며, 일본은 빼도박도 못할 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이라고 알려줬다. 상파울로 남자는 처음 듣는 이야기라면서 나중에 인터넷을 찾아보겠다는 말을 했다.

...그냥 이 남자가 역사에 대해 무지한 사람이었던 것이기를 간절히 빈다. 그 많은 브라질 사람, 혹은 인도 사람이 일본을 2차 세계대전에서 피해를 입은 나라로 여긴다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3.

24시간 버스라고 계속 버스만 타고 있지는 않았다. 그랬다간 누워서 가는 버스도 아닌 이 90도 직각의 불편한 좌석에서 손님들이 온갖 고통을 호소할 것이고, 버스 기사도 제정신으로 운전하지 못할 것이다.

버스는 식사 시간마다 휴게소에 들러 사람들을 내리게 했다. 한 시간 정도의 쉬는 시간을 주고, 휴게소에서 식사를 하거나 차를 마시는 등 휴식을 취하게 했다. 물론 내 돈으로 사먹어야 한다.

이 빌어먹을 브라질 버스는 비싸기는 드럽게 비싸면서, 좌석도 페루나 칠레, 아르헨티나의 버스들처럼 좋지도 않을 뿐더러, 밥까지 안 챙겨준다. 난 페루 버스에서 나왔던 샌드위치나 아르헨티나 버스에서 나왔던 저녁 도시락을 떠올리며 한숨을 쉬었다.

내 마음속 남미 여행 점수판을 꺼내어 브라질에 -10점을 매겼다.




이건 그 휴게소 사진.

처음에 휴게소에 입장할 때 전자칩이 내장되어 있는 막대기를 주는데, 그 막대기를 들고 여기저기서 음식을 사먹은 뒤, 퇴장할 때 내가 쓴 총액을 결제하는 시스템이다. 아차하면 돈이 만원 이만원 훅훅 나가기 때문에, 조심해서 음식을 골라야 했다

근데 정말, 음식값이 왜 이렇게 비싼지. 브라질의 살인적인 물가 + 휴게소의 가격상승 버프로 인해 돈이 쑥쑥 빠져나갔다. 난 다시 한번 점수판을 꺼내어 브라질에 -10점을 매겼다. 누적 -20이야. 경고를 주겠어요.





4.

휴게소에 들렀다가 다시 버스에 탔다. 버스는 잠을 자는 승객들을 위해 불을 끄고 달려갔다.

이제 좀 조용히 잘 수 있나 싶었는데, 상파울로 남자가 또 말을 걸어온다.

상파울로 남자 : 이봐, 리. 너 애인 있어?

이럴 땐 없어도 있다고 말해야 한다.

나 : 있어.
상파울로 남자 : 오, 왜 같이 여행 안해?
나 : 난 여행에 있어서는 자유를 추구하거든.
상파울로 남자 : 네 남자친구는 남미 사람이 아니지?
나 : 응. 한국인이야.
상파울로 남자 : 그럼 넌 아마 남미 키스를 해본 적이 없겠구나.
나 : 남미 키스?


상파울로 남자는 느끼한 눈으로 자세를 바꾸더니 말했다.

상파울로 남자 : 남미 남자들만 할 수 있는 뜨거운 키스야. 너 키스 한번 받아보면 다른 나라 남자들이랑은 키스 못할 걸.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관심없다고 말했으나, 상파울로 남자는 계속 키스 이야기만 했다. 아니, 그 놈의 키스가 뭐. 똑같이 입술 하나로 박치기 하는 건데, 남미 남자들은 뭐 입술이 두개라도 되냐. 뭐가 그렇게 특별하다고 계속 떠드는 거지.

내가 일말의 관심도 표하지 않자, 상파울로 남자는 더 느끼한 눈으로 상체를 들이밀며 말했다.

상파울로 남자 : 어때? 한 번 시도해볼래?
나 : 아니.


약간의 표정 변화도 없이 NO라고 말했다. 상파울로 남자는 내 반응에 조금 머쓱해하다가, 그래도 네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 남미 키스는 알아가야한다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상파울로 남자는 입술이 싫다면 귀에다 받는 건 어떠냐고 물었고, 난 여기 성희롱범이 있어요를 포르투갈어로 어떻게 말할까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계속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는 상파울로 남자에게 화가 난 나는, 짜증을 강하게 내비치며 그의 계속되는 수다를 끊고 잘거니까 말 걸지 말라고 했다. 상파울로 남자는 그제야 조용해졌다. 아아, 진작 이렇게 말할 걸 그랬다.

하지만 역시 잘 수 없었다. 저 놈이 갑자기 "역시 네가 이걸 알아가면 좋겠어!"라며 키스를 해대면 어쩌나 싶어서. 아아, 여자 혼자 여행하기가 이렇게 귀찮고 짜증난 적이 또 있었을까.





5.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내가 걱정한 것과는 달리, 상파울로 남자는 쿨쿨거리며 잠만 잘도 잤다. 열받는다. 그딴 말로 내 신경을 곤두서게 만들어놓고 자신은 태평하게 잠이나 잤단 말이지. 난 휴게소에서 산 생수를 그의 코에 부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물이 너무 아까워서 그러지 못했다. 생수도 비싸단 말이다, 브라질은.

버스는 아침 10시 쯤에 상파울로에 도착했다. 상파울로 남자는 내게 즐거운 여행이 되라 했고, 나는 심드렁한 얼굴로 잘가라고 인사해줬다.

근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상파울로에서 내렸다. 그 훈남도 상파울로에서 내리더라. 내 앞자리, 뒷자리, 옆자리 등등이 텅텅 비었고, 버스 안에는 약 5명 정도 되는 사람만 남았다. 아마 이 다섯명이 24시간짜리 버스라는 끔찍한 시간을 견딜 용사들인가보다.

난 두 좌석에 걸쳐 조금 몸을 느슨하게 하고 앉아, 밤에 못다한 잠을 청했다. 물론 잠이 오지 않아 여태까지 모아놨던 팜플랫을 읽거나, 핸드폰에 받아놨던 소설을 읽거나, 엽서에 편지를 쓰거나 했다.

그 모든 것을 했는데도 리우에 도착하지 못했다...

사실 내가 계속 "24시간짜리 버스"라고 말하는 것도, 지금이야 한 번 타봤으니 그 시간을 아니까 24시간 어쩌구 말하는 거지, 당시에는 내가 몇시에 도착할지 몰랐다. 버스표에 도착시간은 적혀있지 않았던 것이다! 말 그대로 기약없는 기다림이었다. 작은 민가라도 멀리서 보이면 난 저기가 리우일까, 이제 슬슬 내리는 걸까 기대를 했고, 물론 그런 기대는 속절없이 부서졌다. 난 온몸을 배배 꼬다 못해 창문에 머리를 박으며 대체 언제쯤 리우에 도착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아, 이 느낌, 어디서 느꼈더라. 그렇지, 저기 쿠스코 가는 길에 느꼈던 거였지.

하지만 쿠스코 때보다는 몸 상태가 좋고, 고도가 수시로 변하지도 않으며, 끼니 때 뿐이지만 잠시 휴게소에 나가 쉴 수 있고, 식사와 간식도 돈만 쓴다면 제대로 챙겨먹을 수 있다. 단지 시간이 그 때보다 몇 시간 더 길 뿐이다. 난 자신을 다스리려 노력했다. 힘내자, 나 자신. 아무리 그래도 설마 버스를 24시간 타지는 않겠지. 설마 내가 어제 출발한 시간에 리우에 도착하는 건 아니겠지.





6.

그리고 설마는 사람을 잡는다.

버스는 어제 출발한 시각(정확히는 그보다 몇 십분 더 늦게)에 리우에 도착했다. 하하, 정말인지... 하하.

어쨌든 기쁘다. 살아서 리우에 도착한 게 너무나 기쁘다.

함께 버스를 타고 온 다른 사람들도 나 같은 심정이었나보다. 서로 일면식도 없던 우리 5명은, 리우에 도착했다는 사실이 너무나 기쁜 나머지 박수를 치고 환호를 지르다가 포옹을 했다. 머릿 속에서 "끝내~~~ 이기~~~리라~~~"라는 노래가 재생됐다.

버스 한 번 탄 것 뿐인데 엄청난 역경과 고난을 이겨낸 느낌이다. 리우를 여행하는 동안 이 뿌듯함과 감사함이 뒤엉킨 행복한 감정을 잊지 않으리! 그 어떤 시련이 와도 언제나 웃으며 다니겠어! 힘내자, 나 자신!





7.

나 : 빌어먹을, 버스 터미널이 왜 이렇게 커!

10분 만에 잊어버렸다.

리우 데 자네이루 버스 터미널은 제법 컸다. 그리고 내겐 캐리어와 옷을 넣는 짐가방, 책가방, 이렇게 세 개의 짐이 있었다. 난 그것들을 지고 환전소와 시내행 버스를 찾기 위해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했지만, 별 소득은 없었다.

결국 다 포기하고 사설 택시에 올라탔다. 나는 택시에다가 내가 미리 예약해 둔 호스텔의 숙소 주소를 보여줬다. 택시 아저씨는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이곤, 숙소까지 차를 몰았다.

리우는 깜깜했다. 야간버스를 타고 24시간 걸려 도착한 것이니, 당연하게도 리우는 밤이었다.

내가 예약한 호스텔은 호스텔 나마스테 라파Hostel Namasté Lapa라고 하는, 라파지구에 있는 호스텔이었다. 이번에도 BsAs의 카미니토 거리 포스팅에서 했던 말과 똑같은 말을 하게 되는데, 음, 나는 잘 몰랐지만, 이 라파지구라고 하는 곳은 치안이 좋지 않은 곳이라고 했다. 나야 호스텔 가격이 저렴해서 예약을 했을 뿐 위험한 곳인 줄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그걸 알게 된 건 리우 마지막 날, 호스텔 체크아웃을 하고 나서다. 리우를 떠나기 전에 한 번 더 둘러볼까 하고 걷다가 만난 한국인들이, 대체 그 위험한 라파 지구에서 무슨 자신감으로 며칠씩 숙박했냐고 묻더라. 그, 글쎄요... 정말인지 위험한 줄은 몰랐어요... 죄송합니다...


다시 첫날로 돌아와서.

택시 아저씨는 황당했을 것이다. 여행자니까 어디 이파네마나 코파카바나 쪽으로 가겠지 싶어서 손님으로 받았더니, 치안이 좋지 않은 동네 주소를 내밀더니 여기로 데려다달라고 하질 않나, 가뜩이나 캄캄해서 긴장되는데 손님은 별 위기감 없이 노래를 흥얼거리지 않나 하니 말이다.

택시 아저씨는 직접 호스텔 주인을 만나서 나를 인수인계(?)할 때까지, 날 택시에서 내리지 못하게 했다. 난 시간이 지날수록 오르는 택시 요금을 보며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서 내게서 돈을 더 받으려고 하나보다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위험하니까 나가지 못하게 한 것 뿐이었다.

며칠이 지나고, 내가 머물던 곳이 위험한 곳이었다는 걸 인식하게 된 뒤에야, 택시 아저씨가 이 순백의 뇌를 가진 동양인 소녀를 호스텔 나마스테라는 곳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주려고 부단히 애를 썼구나를 알게 됐다. 으음, 고마워요 택시 아저씨.





8.

호스텔 나마스테는 아파트를 개조한 숙박 시설이었다.

주인들은 영어가 짧았지만 몹시 친절했고, 이곳에 머무는 다른 여행자들도 무척이나 활기찼다. 나는 쾌적한 환경과 상냥한 주인들, 재미난 여행자들에 고무되어 기분이 좋아졌고, 그래서 하나 남은 신라면을 끓여 다같이 나눠 먹었다. 다들 최고로 매콤한 맛이라며 엄지 손가락을 흔들었다.




이건 호스텔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

밖에 보이는 건 카리오카 수로Carioca Aqueduct라고 불리는 곳으로, 옛날에는 리우의 도심 이곳저곳에 물을 공급하는 수로였다고 한다. 지금은 수로를 트램으로 바꿔서 여행자들에게 재미난 경험을 하게 해준다고 했다.

나 : 그럼 내일 타봐야겠다!
호스텔 주인1 : 하지만 지금은 운행하지 않아.
나 : 왜째서!
호스텔 주인2 : 몇 년 전에 사고가 났었거든. 5명인가 죽었을걸...
호스텔 주인1 : 음, 참혹했지 그땐 정말...


호스텔 주인들이 조용히 읊조리는 말에 나와 다른 여행자들은 공포에 떨며 그 사고로 사망한 자들의 명복을 빌어줬다.

지금 다시 찾아보니 작년부터 다시 운행이 재개되었다고 한다. 기술적인 문제로 일어난 사고랬으니, 그 부분을 확실하게 보완해서 다시 운행하는 거겠지.





9.

늦은 시각. 다른 여행자들은 클럽에 간다고 했다. 나는 이미 잠옷을 갈아입고 잘 준비를 했는지라, 즐겁게 다녀오라고 말한 뒤 침대로 기어들어갔다.

창문으로 시원한 바람과 함께 올라오는 음악소리는 몹시 흥겨웠지만, 시끄럽지는 않았다. 난 그 음악소리를 허밍으로 따라하며 잠에 빠져들었다. 내일은 무얼 할까... 내일은... 쿨.




내일은 구원의 예수상을 보러 간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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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장님 눈아찌 2016/05/25 06:16 # 삭제 답글

    흠... 그 2차 대전 때 인도인들도 영국군 소속으로 일본군이랑 싸웠어. 인도차이나에서 졌으면 니네 할아버지 고향까지 갔을 거라고. 이 볍신아. 라고 알려주고 싶군요.
    하긴 저런 넘이라면 그러거나 말거나 여전히 일본인을 좋아하겠지만.
    그 인도 치한한테 한국에서 모르는 여자한테 함부로 남미 키스 시도하다가 물려서 혀잘린 남자가 있었다는 얘기도 해줬으면 좋았을텐데 아쉬워요.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이어지다니 저번 댓글이 미안해지는구만요.
  • enat 2016/05/25 12:54 #

    아 그러게 말이에요? 인도인이었으니 진짜 그랬을텐데!?!?!? 뭐지 저 모국 역사에 대한 공부도 하나 하지 않은 녀석은!?!?!?
    브라질 사람들 일본인 진짜 좋아하더라고요. 유난히 리우 사람들이 제게 친절했는데 이게 그냥 사람들 성격이 프렌들리한건지, 아니면 일본인인줄 알고 친절했던건지 애매하더라고요. 뭔가 아르헨티나에서 느꼈던 친절과는 다른듯한... ㅋㅋㅋㅋ 그래도 친절함에는 고마웠지만요! ㅋㅋㅋㅋ
    혀잘린 남자! 그러게요. 저는 혼란요정이 머릿주위를 맴돌아서 괜한 한국사회의 도덕성과 사회인식에 대해 이야기를 했네요. 잘 알지도 못하는 이야기를 하느라 어찌나 피곤하던지...
    ㅋㅋㅋㅋㅋㅋㅋ눈아찌님이 미안해하시다니 정말 보기 드문 광경이군요!!!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이어진 보람(???)이 있습니다 ㅋㅋㅋㅋ
  • 키르난 2016/05/25 08:44 # 답글

    2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더군요. 음.... 월광토끼님 트윗에서 지나가다 보았는데, 강의 도중 '오바마가 히로시마 및 나가사키 원폭투하에 대해 사과해야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강의 참석자의 거의 모두가 그렇다고 답했다는군요.(먼산) 일본이 저지른 과오, 전쟁 문제 등은 일단 넘어가고, 원자폭탄을 떨어뜨려 무고한 민간인들을 학살한 일은 잘못했다고 사과해야한다는 건가요. ... 그렇다면 이라크전 때의 소이탄과 아프가니스탄과 보스니아 사태와 베트남전의 고엽제는 어쩔 건데!(...) 라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뭐, 생각하기 나름이니까요.'ㅅ'
    하여간 브라질은... 지금의 브라질을 생각하면 더더욱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허허허허....
  • enat 2016/05/25 13:03 #

    오 세상에. 일본인들은 예나 지금이나 포장하는 건 정말 잘하는 것 같아요. 원폭 기념관 이런것도 반지르르하게 만들어놓고 피해자 행세 하질 않나... 예전에 나가사키 여행갔을때 먼저 다녀온 친구들이 원폭 기념관이라는데가 있으니 가보라고 했었는데, 뭔가 괘씸해서 안갔어요. 자기네들이 저지른 건 입싹닫고 저러니... 부들부들!!
    브라질은 요새 지카부터 탄핵까지 말이 아니더라고요. 과연 올림픽은 어찌되려나요. 흐으...
  • 타마 2016/05/25 09:36 # 답글

    흑심이 가득한 상파울로 남자 ㅋㅋ
    왜 잘생긴 사람을 밀어내는거야ㅠㅠ
  • enat 2016/05/25 13:04 #

    잘생긴 사람 옆에서 편하게 가려고 했는데 왜째서 저런 녀석이 붙어서 헛소리를 해댄건지 ㅠㅠ
    처음에 터미널에서 친한척할때 모르는척 할걸 그랬어요 휴 ㅇ<-<
  • 잘나가는 꼬마사자 2016/05/25 11:33 # 답글

    어딜가나 개객기들은 꼭 존재하는 것 같아요. 여자 혼자 여행하는게 이렇게 피곤한 일이라니ㅠㅠ 호스텔까지 그래도 무사히 데려주려고 노력해주신 택시 아저씨가 계셔서 다행이에요! 덕분에 이렇게 마지막은 나름 훈훈하게 이야기도 보고ㅎㅎㅎ
  • enat 2016/05/25 13:06 #

    혼자 다니다가 가끔 저런 사람들 만나면 진짜 곤란해요 ㅋㅋㅋㅋ 남자친구가 호텔에 있거나 부모님이 호텔에 계시다고 둘러대고 도망가기는 하는데, 저 버스에선 도망갈 곳도 없고 게다가 제가 창가고 그 상파울로 애가 통로쪽 좌석이어서 뭔가 갇힌 기분이었어요 흐엉엉
    액땜한건지 다행히도 그 다음부터 만난 사람들은 친절했지만요! ㅋㅋㅋㅋ
  • 용용 2016/05/28 00:25 # 삭제 답글

    뒷골땡기네요 오랫만에 아우 ㅡ.,ㅡ......... 피곤하신 이낫님한테 정신적 신체적으로 스트레스 주는 ㅅㅋ들은 정말 아오 포스팅에 등장할때마다 혼내주고 싶었지만 이번 놈은 진짜 그중에서도 독보적이네요 아우 욕하고싶어요... ㅋㅋㅋㅋㅋ 그나저나 댓글 쓰신분들 너무 재밌으세요 혀잘린 남자 이야기 ㅋㅋㅋㅋㅋ 여튼 그 후부터 이낫님이 만나신 분들 친절했다고해서 다행이에요~!!
  • enat 2016/05/31 14:37 #

    독보적 남자... ㅋㅋㅋㅋㅋㅋㅋ
    지금 기억났는데, 일부러 나이도 어리게 말했는데 - 외국은 미성년자 건들이면 인생 끝장이라 미성년자라고 하면 들이대다가 말더라고요 ㅋㅋㅋ - 쟤는 끝까지 저러더라고요 ㅋㅋㅋㅋㅋ 문제 있어, 문제 있는 놈이에요! ㅋㅋㅋㅋㅋㅋ
    저 남자는 상파울로 사람이라 상파울로는 잘 모르곘지만, 적어도 제가 만난 리우 사람들은 하나같이 착하고 친절하더라고요. 계속 포스팅 이어보죠!
  • 11thCTR 2016/05/28 01:53 # 답글

    1. 이번 화를 보면서 떠오르는 단어가 있네요... 뭐 원래는 다른 의미지만.
    '고난의 행군.'
    재작년에 미친척하고 오사카 <-> 도쿄를 야간 버스로 왕복한 적이 있는데... 두번 다시 할 짓은 아니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그건 나름 고급버스였는데도 말입니다. ㅎ (심지어 계획을 엉뚱하게 짠데다, 일정도 착각해서 비행기도 놓치고...)

    2. 인도인들도 일본인에게 딱히 감정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침공 시도' 자체도 실패해서 근처까지 가지도 못했고.. 이미 영국인에게 식민지 생활을 겪는 상황이었든지라... 버마전선에서 일본군과 싸우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영연방에 동원되서 싸운거라... 일본이 쳐들어 오던 말던 딱히 위기감은 없었던 걸로 알고 있어요. 실제 식민지배 혹은 군정 지배를 받은 나라랑 아닌 나라의 인식은 아무래도 천지차이니까요.
    브라질은 침공은 커녕 전후에 교류가 시작되었고 부정적인 인상을 줄 교류는 없었으니 일본에게 부정적인 감정이 있을 이유가 거의 없죠...
  • enat 2016/05/31 14:44 #

    1. 오사카 도쿄를 버스... 그것도 야간 버스... 그것도 왕복을요? 으아아
    밤에 버스 타는 거 너무 피곤해요! 저는 밤에 버스 타고나서 그 다음날 일정 이어가려면 몸도 정신도 피곤해서 뭔가 일이 잘 안풀리더라고요. 게다가 비행기도 놓... 으ㅇ어어... 총체적 난국...

    2. 아아... 또 이렇게 설명을 들으니 납득이 가네요. 일본에게 부정적인 감정도 없을 뿐더라 일본인들이 워낙 일처리가 깔끔하고 대인관계도 겉으로 보이는 관계는 매우 원만하니 오히려 호감이겠네요. 쩝쩝...
  • 2019/06/29 02:02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9/07/12 22:40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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