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6/15 22:23

에드먼턴의 가을 캐나다 워킹홀리데이

1.

한여름으로 넘어가는 중인데 웬 가을인가 싶으시겠지만, 그냥 오늘 이 포스팅을 하고 싶어졌다.

그러니까 이건 내가 그랜드 프레리에 가기 직전의 일이다.

난 당시 쿠바 여행을 다녀온 뒤, 어떤 시골의 호텔에서 일을 하다가 이건 아니다 싶어 뛰쳐나온 참이었다. 그 호텔의 사장은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간의 갈등을 조장해서 서로 경쟁하며 일을 시키는 타입으로, 썩 내 타입은 아니었다. 그곳에서 일하는 언니들 - 사실 언니가 아니라 같은 또래이긴 한데, 내가 빠른 생일이라 설명하기 귀찮아서 그냥 언니들이라고 불렀었다 - 은 참 착했는데, 왜 저런 사장 밑에서 일을 하고 있나 싶을 정도로 좋지 않은 취급을 받았다.

여러가지 환경과 상황을 종합한 결과, 이곳에서 일하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결정을 내렸다. 그래도 한달은 일해주고 나갈까 했지만, 토론토에 있을 때 CNE에 가서 알게 된 한국인 워홀러가 "나 같으면 그런 인생이 10년은 퇴보할 것 같은 곳에 처박혀있지 않겠다"에 해당하는 말로 도발하는 바람에 - 사실 저 문장보다 더 심한 문장이었다 - 울컥해서 뛰쳐나가게 됐다. 나도 참 단순한 사람이다. 뭐, 심한 말을 하긴 했지만 결국엔 내가 단번에 결정을 내릴 수 있게 해준 한국인 워홀러에겐 지금은 굉장히 고마워하고 있다.





2.

그곳의 사장에게 일을 그만두고 나가겠다 했을 때는 거의 2시간 가까이 이야기를 해야만 했다. 이 사장은 어떤 사람이었냐면... 음, 어떤 예를 들어볼까. 처음 날 만났을 때의 이야기를 해볼까.

사장 : 어디 대학 나왔어?
나 : 아, XX대 나왔어요.
사장 : 그래? 내 사촌은 서울대 나왔는데. 또 내 친척 누구는 연대 나왔고.
나 : 그렇군요. 공부를 잘하셨나보네요.
사장 : 그러니까 거만해하지마. 거기 별로 좋은 대학 아니니까.


???????????

물어봐서 대답했을 뿐인데... 왜 내가 거만해하는 것처럼 된 건데...

하여간 저런 스타일이었다. 대화를 해도 대화가 안통하는 스타일. 일단 내가 말하는 건 다 틀리고 잘못된 이야기이고, 그걸 자기가 교정하고 가르치듯 알려줘야 직성이 풀리는 타입이었다. 내가 일을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도 말이 통하질 않았다. 대체 왜 그만두지? 내가 이렇게 잘해주는데? 아마 너는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이렇게 잘해주는데 그만둘리가 없지.

헛도는 대화는 1시간 가까이 이어졌고, 결국 나는 그 사장이 원하는 대답을 지어내야만 했다. "사실 다른 개인적인 사정이 생겼다, 방금 전에 일하는 환경이 별로라서 나간다는 말은 취소다, 절대 사장님 때문에 그만두는 것이 아니다, 개인적인 문제로 내가 계약을 파기하는 거니까 여태까지 일한 건 돈을 받지 않고 가겠다, 이제 짐을 싸고 나가게 해달라"라고.

사장은 내가 그동안 일한 것에 대한 수당을 받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나간다는 말에 반색했고, 웃음을 참으며 내가 웬만하면 돈은 주려고 했는데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수당을 주지 않겠다, 나중에 다른 말 하는 건 좀 그러니까 사인 좀 해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무슨 개인적인 일인지는 몰라도 그렇게 갑자기 일을 그만두겠다고 말하는 건 예의에 어긋나는 짓이다, 네가 사회 생활을 잘 몰라서 그러는 거 같은데 이번 기회에 좀 알아갔으면 좋겠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괜히 신경쓸 수도 있으니까 별 이야기를 하지 말고 나가라 운운의 말을 이어나갔다. 난 일 한번 그만두기 참 피곤하단 생각을 하며 그 사장의 이야기가 끝나길 기다렸다.

사실 나도 알고는 있다. 제대로 따지면 그 때는 트라이얼 기간이어서 일을 그만두겠다는 2주 뒤 통보를 지키지 않아도 괜찮았고, 내가 일한 수당은 내가 금방 그만둔다고 해도 트라이얼이든 뭐든 상관없이 무조건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어쨌든 그 사장보다는 캐나다 노동법이 위다. 하지만 난 수당을 받기 위해서 저런 사람과 계속 연락을 주고받아야 하느니 그냥 십몇만원 되는 돈 안받겠다 생각했다.

나중에 그랜드 프레리에 가서 친해지게 된 삼촌들이 내 이야기를 듣고 화를 내며 "어떤 상도덕 모르는 호텔사장이냐, 당장 돈 받으러 가자, 내가 도와주겠다" 운운의 이야기를 했지만, 나는 그 때도 두 손을 내저으며 그냥 그런 사람 얼굴을 다시 봐야하는 것도 짜증난다고 하며 넘어갔다.





3.

어쨌든 그 사장이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하지는 말아달라고 했기에, 나는 그 언니들에게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고 집을 나섰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미안한 일이다. 그 언니들은 신참이 왔다고 내게 고기도 구워주며 엄청 잘해줬었는데, 난 상세한 설명도 하지 않고 짐을 싸서 도망가듯이 스텝하우스를 뛰쳐나온 것이다.

근데 또, 사실 무슨 이야기를 하겠나. 그 언니들은 계속해서 거기에서 일할 생각인데, 거기다 대고 "제 친구가 그러는데 여기서 일하면 10년은 퇴보하는 느낌일 거래요. 사실 저도 영어 되는데 굳이 여기서 일할 필요 없죠. 저 사장하고 잘 지내보세요. 전 이대로 도망갈 거에요. 그럼 안녕히."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뭐, 쿠바에서 사온 술을 냉장고에 넣어두고 왔으니 그냥 그걸로라도 위로가 됐길 바란다만... 어쨌든 혹시라도 우연히 이 글을 보게 된다면 미안하단 말을 꼭 전하고 싶다. 미안해요, 언니들. 그리고 덧붙이자면 사실 우리 동갑이었어요. 귀찮아서 나이 대충 얼버무렸는데 거짓말을 한 게 되어버려서 미안해요.





4.

그 이후 나는 에드먼턴에 가서 일자리를 구했다. 그러다가 그랜드 프레리라는, 에드먼턴에서 좀 떨어진 마을에서 캐셔 자리가 났다는 공지를 보았다. 나는 그 공지를 올린 사장님께 "제발 부탁이니 저 좀 뽑아주세요! 뭐든지 잘 하는 프렌들리한 여자입니다! 일 잘하니까 뽑아주세요!" 정도에 해당하는 메일과 함께 이력서를 보냈고, 사장님은 이렇게 절박한 메일을 보낸 사람은 대체 누구인가 하고 내게 연락을 줬다. 그 때부턴 그냥 막 던졌다. 영어 엄청 잘하고요, 일을 그렇게 잘할 수가 없고요, 외국인들이 저만 보면 엄청 좋아해요 등등. 사장님도 황당하셨을 것이다.

당시 나 말고도 그곳에 이력서를 보낸 사람들은 많았는데 - 그리고 다들 스펙도 대단했다 - 사장님은 내 절박한 문구가 인상깊으셨는지 면접을 보겠다고 하셨다.

그랜드 프레리에서 에드먼턴까지는 차로 4시간 반 정도. 사장님께선 내가 그랜드 프레리로 와서 면접 보기는 힘들테니까, 당신께서 겸사겸사 에드먼턴까지 나가서 면접을 볼 것이라 하셨다. 아무래도 여자애가 낯선 아저씨랑 만나는 건 무섭지 않을까 싶으셨는지, 친구분과 함께 가실 것이라 하셨다.

사실 그 때의 난 쿠바 여행 + 교통비 + 각종 생활비로 온갖 지출을 낸 참이었고, 사장님과 만나기로 한 날엔 딱 20불을 들고 있었다. 더 이상의 유예기간은 없다. 당장 일을 해야했다. 만약 면접을 봤다가 떨어지면? 뭐 있나. 부모님께 돌아가는 비행기표만 사달라고 싹싹 빌어서 한국으로 돌아가야지.

나는 만사 포기한 채로 주린 배를 붙잡고 A&W로 들어가 햄버거를 사먹었다. 햄버거 세트비는 대충 10불. 오, 10불 남았네. 나는 그 남은 돈을 들고 팀 홀튼에 들어가 커피와 쿠키 세트를 사먹었다. 정신을 차리니 2불 남았다.

난 남은 투니(캐나다 2달러짜리 동전)를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행운의 2달러란 소리가 있지 않은가. 물론 그 2달러는 미국에서 발행된 지폐 2달러를 가리키는 것이지만, 그래도 당시엔 그런 거에라도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다.

나 : 이제 돈도 없고. 뭐하지?
나 : 에라이, 날씨가 이렇게 좋은데. 걷자!


난 스스로에게 자문자답한 뒤, 가을의 에드먼턴을 거닐었다.


































가을의 에드먼턴...

그 땐 버스커버스커 2집이 나왔을 때였고, 난 장범준의 목소리를 들으며 은행잎으로 뒤덮힌 에드먼턴을 걸었다. 그래서 아직도 눈을 감고 버스커버스커 2집을 연달아 들으면 당시의 에드먼턴이 떠오른다.

어쨌든 음악을 들으며 걷고 나니 마음이 좀 가라앉았다. 난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태평하게 시간을 보내다가, 사장님과의 약속 시간이 되자 캐리어 두 개를 질질 끌고 만나기로 한 장소에 나갔다. 그리고 결과는 보시다시피. 나는 그랜드 프레리로 갔고, 캐셔로 일을 했고, 많은 사람들과 사귀었고, 그곳에서 번 돈으로 남미와 유럽 등지를 여행할 수 있었다. 정말인지 감사한 일들 뿐이었다. 가진 것이라곤 주머니 속에 단 2불 뿐이었던 그 막막했던 가을의 에드먼턴은, 감사한 일들이 시작되는 멋진 장소였다.

아, 그 때 주머니 속에 넣었던 투니는 아직도 갖고 있다. 행운의 상징 같은 거 별로 믿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왜인지 써버릴 수 없겠더라. 지금은 내 화장대 위의 보석상자 안에 있다.

가끔씩 힘든 일들이 생기면 그 보석상자 안의 투니를 꺼내어 본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이야기한다. 당시 가을의 에드먼턴을 떠올리라고. 지금은 좀 막막할지 몰라도, 어떤 시점에 갑자기 인생의 분기점이 튀어나올지 모르니 기대하라고. 결국엔 다 감사하게 될 거라고.





5.

오늘 밤에도 나 혼자 그런 생각을 하다가, 생각난 김에 꺼내어 써내려봤다.

좋은 이야기만 쓰려고 했는데, 쓰다보니 좀 울컥해서 전 사장에 대해 좀 막말한 경향이 있긴 하다... 그래도 최대한 내 마음이 허락하는 한 나쁘게는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노력은 했는데 지금 다시 읽어보니 전혀 노력한 티가 나지 않는 것 같다. 음, 벌써 몇 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기분나쁜 감정이 남아있을 줄은 몰랐군.

나중에 옮긴 일터의 사장님껜 늘 감사하는 마음뿐이다. 덕분에 좋은 집에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 마음 편하게 일하며 지낼 수 있었으니까. 진짜로 돈 좀 제대로 벌게 되면 아르헨티나에서 직접 공수한 와인을 사들고 찾아뵙고 싶다.

어쨌든... 마무리를 어떻게 하나. 시작할 때 포풍처럼 써내려서 좀 횡설수설 적은 감이 있는데 마지막 문장을 쓰려니까 뭘 어떻게 써야할지...

거창하게 끝낼 필요는 없으니...

이런 경험도 있었슴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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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레아 2016/06/15 23:23 # 삭제 답글

    :)
  • enat 2016/06/18 20:40 #

    헤... 헤헤...

    !?!?!?
  • 용용 2016/06/16 01:45 # 삭제 답글

    옛날 생각이 나네요...그런 사장 ㅅㅋ랑은 말을 안 섞는게 나은것 같아요 진심

    호기로운 에드먼턴 시절의 이낫님+ㅁ+ 역시 좋은 일은 좋은 일이고 개떡같은 일은 시간이 지나도 개떡같아서 다시 생각하면 울컥하게 되요ㅠ
  • enat 2016/06/18 20:41 #

    호기로운 시절...!
    사실 호기롭지는 않았어요 ㅋㅋㅋㅋㅋ 막막한데 현실도피하던 거였죠 ㅋㅋㅋㅋㅋㅋㅋ
    음 역시 시간이 지나도 그 때의 감정들이 잊혀지진 않는 것 같아요 ㅋㅋㅋㅋ 특히나 억울하고 열받는 감정들은 말이죠 ㅠ ㅋㅋ
  • 눈아찌 2016/06/16 08:14 # 삭제 답글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무당이나 마녀가 가진 능력이 없어서 어느 정도의 험담이나 욕설 정도로는 납뿐 놈에게 새끼발가락 발톱 만큼의 데미지도 못 줍니다.
    그러니 안 보는 데서 실컷 욕하는 게 내 정신 건강에 좋아요.
    경험상 화풀이는 아무도 없는 데서 밖으로 내뱉는 게 빨리 풀리더군요.
    그리고 나서 마음의 짐이 남는다면 하나님 창가에 앉아 저 인간이 서있는 곳에 기관총을 난사해 탭댄스를 추는 모습을 보며 깔깔거리고 웃는 저를 상상했사오니 부디 용서하소서 하며 기도하면 됩니다.
    그 사람의 일상에 전혀 데미지 없는 이런 화풀이 정도는 용서하실 겁니다.
  • enat 2016/06/18 20:44 #

    새끼발가락 발톱만큼의 데미지도...ㅋㅋㅋㅋㅋㅋ
    엄청 와닿는군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사실 저 일들 말고도 어처구니없는 대화가 많았는데 저런 일들을 떠올리느라고 시간을 허비하면 넘나 아까울 것 같아 관뒀습니당. 하지만 저거라도 써놓으니 마음이 좀 낫군요 히히.
  • 키르난 2016/06/16 08:23 # 답글

    나중에라도 그런 종류의 사장을 만나면 무조건 도망치세요! 쉽지는 않겠지만 가능한 만나고 싶지 않은 타입이네요. 그냥 사실만 나열해도 같이 일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고, 전 글 읽고는 그래도 담담하게 쓰셨다 싶은 걸요? 하여간 고생 많았습니다. 그 또한 지나가고 그랜드 프레리에서 자리를 잡아 시간을 보내실 수 있었으니 다행이고..=ㅁ=
    이제 여름 시작인데 사진 보고 있노라니 가을이 땡깁니다. 한적하지만 그래서 더 쓸쓸하게 보이네요....;ㅅ;
  • enat 2016/06/18 20:47 #

    예를 하나만 더 들자면 누구를 혼낼때 사람들을 다 불러놓고 "이러이러해서 얘가 잘못했다고 나는 생각하는데. 너희는 어떠니? 얘가 잘못한거 같지 않니?" 라고 말하더군요. 저는 그 언니랑 같이 사는 입장인데 거기에 동의할수도 없고 동의를 안하면 계속해서 물어보고 분위기 험악해져서 잘못한것도 없는데 눈을 내리깔아야만 하고 뭐 어쩌란건지... 하여간 지금 생각해도 같이 일할 수 없는 사람이었네요 정말로!!!
    어정쩡하게 이상한 사람보단 저렇게 완전 이상한 사람을 만나 도망칠 수 있었음에 감사해야할지도 모르겠어요 ㅋㅋㅋ
    쓸쓸함! 저 때 참 많이 쓸쓸했어요. 정말 어디 연락할 곳도 없고 ㅋㅋㅋㅋㅋ ;ㅅ;
  • 닌니닌니 2016/06/18 15:14 # 삭제 답글

    다른 상황이었지만, 외국에서 개인 사업하는 한국인한테 크게 데였던 생각나네요.. 아직 어릴 때라 하고픈 말은 거의 한 것같은 데, 다시 생각해도 맘이 짜게 식고, 뭔가 더 나은 대처가 있었는 데 내가 어렸나, 싶기도 하고. 당당하게 행동한다고 했는 데 여전히 생각만해도 씁쓸한 기억이라 왠지 싱숭생숭한 데, 뭔가 비슷한 경험의 얘기를 들으니까 좋아요 그냥..ㅎㅎ
  • enat 2016/06/18 20:50 #

    닌니닌니님도 비슷한 경험이 있으셨군요 ;ㅅ;
    어렸을 때 당한 불합리하고 열받고 짜증나고 어처구니 없는 일들은 쉽사리 잊혀지지 않죠 ㅠ 나는 이렇게 컸지만 그 시간대의 어린 나는 여전히 뭔가 당하고 있는 것 같고 말이죠...!!!! 저도 떠올리고 있으면 싱숭생숭한 기억들이 많아 애써 지우려고 하지만 그게 그렇게 쉽게 지워지는 것도 아니고 쩝 그러네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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