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0/11 23:26

인천 코다리찜 맛있는 박서방네 목로주점 먹부림

1.

인천 연수구 청학동에는 인천 시립 박물관과 인천 상륙작전 기념관이라는게 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소풍으로도 많이 가보고, 가족들끼리 나들이 갈 때도 많이 가봐서 익숙한 곳인데, 다른 지역 사람들은 이곳을 여행지로 삼고 놀러오기도 하더라.

기념관 뒷쪽에는 산이 하나 있다. 청량산이라고 하는데, 어렸을 때 아부지랑 참 많이도 올랐었다. 산은 그렇게 높지 않지만, 정상에 오르면 바다가 보이기 때문에 정상까지 빠르게 오르는 맛이 있었다. 그렇게 빠르게 등산을 끝낸 뒤 청량산 아래의 포장마차에서 베지밀 B를 사먹곤 했다.

그런 어릴 적 추억이 담긴 곳에, 간만에 가족들과 함께 등산을 하러 찾아갔다. 벚꽃이 휘날리던 봄이었다.





2.

아름다운 봄이었지만 나는 별로 아름답지 못했다. 나는 땀투성이었다.

날이 갈수록 저질 체력이 되어가는 걸 느끼고 있었는데 설마 이 낮은 산도 힘들어하게 될 줄은 몰랐다. 나는 헉헉거리는 숨을 고르며 앞을 바라보았다. 바람을 타고 저 멀리서 아빠와 엄마가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빠 : 쟤 요만할 땐 저기까지 단번에 뛰어갔었는데.
엄마 : 페루에서 높은 산도 탔다면서, 아, 버스로 다녀왔나?


......

나는 날 자극하는 부모님의 이야기에 눈이 뒤집혀서 미친듯이 계단을 올랐지만 1분도 못가서 지쳐버렸다. 지친 내 옆으로 아빠와 엄마가 유유히 지나가며 웃으셨다. 나는 또 흥분해서 다리를 놀리려했지만 다리는 내 뜻대로 움직이질 않았다.

나는 차분히 눈을 감고 지난 날의 산행 - 몬타냐에서 니트를 벗어던지고 기어서 산을 올랐던 경험, 레이크 루이스에서 눈사태가 지나간 미끄러운 바닥에서 엎어지며 산을 올랐던 경험 - 을 떠올리며 내 자신을 북돋았다. 힘을 내라. 이 집안의 유일한 이십대로써 엄마 아빠보다 늦게 정상에 오른다면 그게 수치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이냐! 그러니까 힘을 내자!

나는 기합과 함께 몸을 일으켰다.





3.

...어?

맛집을 소개하려고 했는데 왜 등산 이야기만 하고 있지?

늘 그렇듯이 3번 정도 오면 정신을 차린다. 본론으로 넘어가자. 등산 이야기는 별로 안중요한 거 같다. 사실 저렇게 힘을 내서 정상에 오르긴 했는데 결국 엄마 아빠보다 빨리 가진 못해서 뭐... 결국 이십대의 수치가 되긴 했지만 별로 안중요하니까 큰 설명은 하지 않고 넘어가겠다. 에이씽...

하여간 산행을 마치고 나니 몹시 허기가 졌다. 우리는 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을 찾기 시작했다. 엄마와 아빠는 내게 스마트폰으로 맛있는 식당 정보를 찾아보라 보챘고, 나는 또다시 네이버의 무수한 맛집 포스팅을 보며 필터를 가동하기 시작했다. 개나소나 다 맛집이야... 진짜로 맛있는 집... 엄마와 아빠를 만족시킬 수 있는 진짜로 맛있는 집 어디 없나?

그 때 우리 옆으로 아줌마 다섯 명이 쌩 하고 달려갔다. 아줌마 중 제일 앞서가던 한 명이 어떤 가게 앞에 멈추더니, "여기야 여기! 어머 자리 있다!"라고 다른 네 명에게 말했고, 다른 네 명은 깔깔거리며 얼른 들어가자고 답했다.

그걸 처음부터 끝까지 목격한 엄마는, 스마트폰을 바쁘게 만지작거리던 내 손을 부드럽게 덮었다.

엄마 : 딸아, 더 이상 찾아볼 필요는 없단다.
나 : 네?
엄마 : 우리가 방금 맛집을 찾은 것 같구나.






4.

엄마 왈, 아줌마들의 평가는 정확하기 때문에 아줌마들 모임이 가는 음식점에 가면 반은 성공이라 하셨다. 나와 아빠는 그런가? 하는 표정을 지으며 갸우뚱했고, 엄마는 답답해하며 자리가 없을지도 모르니 빨리 저 가게에 들어가자며 우리를 끌고 가셨다.




음식점은 이렇게 생겼다. 주변에 있는 다른 가게들과는 다르게 허름하기 그지 없었고, 내부는 더했다.

나는 껄쩍지근한 표정으로 아빠를 바라봤지만, 아빠는 진정한 맛집은 원래 외관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며 엄마에게 동의표를 던졌다. 나는 잠깐 멈칫하다가, 어차피 내가 사는 게 아니니까 얌전히 따라가기로 했다.

메뉴엔 여러가지가 있었는데, 주변 테이블을 둘러보니 다들 코다리찜을 시켜 먹더라. 코다리찜이 메인인 것 같았다. 코다리찜이 뭐지.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음식이다.

나 : 코다리찜이 뭐에요?
아빠 : 명태 반건조 시킨거.
엄마 : 나 그거 별로 안좋아하는데. 우리 청국장 시켜먹자.


메뉴를 보니 청국장이 있었다. 하지만 아빠는 잠시 고뇌하는 표정을 짓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빠 : 안돼. 우리는 코다리찜을 먹어야 돼. 다들 먹고 있잖아.
엄마 : 코다리찜이 맛있어봤자 코다리찜이지. 청국장이 우리한테 더 맞을 걸.
아빠 : 청국장은 집에서도 먹을 수 있잖아. 청국장도 거기서 거기야.


두 분이 티격태격하는 와중에 주인이 주문을 받으러 왔다. 나는 코다리찜과 청국장에 대해 토론을 펼치기 시작하는 두 분을 내버려두고 코다리찜 정식 두 개와 청국장을 하나 시켰다. 아빠는 "동동주도"라는 말을 한마디 하시곤 다시 토론의 장으로 넘어가셨다.





5.

곧 밑반찬이 깔리고, 코다리찜 정식 두 개와 청국장이 나왔다.

나는 평범해보이는 밑반찬을 적당히 집어 밥과 함께 떴다. 그런데 그 밑반찬이 예사롭지 않아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는 적절하게 데쳐 적절하게 간을 한 나물 반찬을 연신 입에 넣으며 밑반찬이 정말 맛있군요 등등의 말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내 감탄은 다른 이의 감탄에 막혀버렸다.

아빠 : 오! 코다리찜 진짜 맛있어!
엄마 : 오! 청국장 진짜 맛있어!


아빠와 엄마는 서로 고개를 마주보더니, 이번엔 서로 감탄한 음식을 바꿔서 맛을 보셨다. 그러더니 또다시 감탄사를 토하셨다.

엄마 : 오? 코다리찜 진짜 맛있네?
아빠 : 오? 청국장 진짜 맛있네?


그러더니 서로를 인정하는 눈빛을 보내시곤 음식에 열중하는 것이었다.

나는 밑반찬에서 손을 떼고 코다리찜을 한 입 먹어봤다.




나 역시 부모님의 감탄사를 넘어서지 못했다.

나 : 오! 코다리찜 진짜 맛있네?





6.

나는 코다리가 반건조한 명태라고 해서, 많이 질길 줄 알았는데, 전혀 그런 건 없었고 오히려 촉촉했다. 코다리찜의 양념은 간간하니 살짝 매운끼가 돌았다. 부드럽게 발리는 살과 밥에 양념을 가득 얹어 먹는데 이렇게 꿀맛일 수가 없더라. 그야말로 밥도둑이었다.

청국장은 일반적인 뚝배기보다 훨씬 큰 뚝배기에 나왔는데, 청국장 콩부터 각종 야채까지 걸쭉하니 들어있는 게 그야말로 할머니가 끓여주시던 청국장이었다. 코다리의 살짝 쎈 양념을 먹다가 고소하고 담백한 청국장을 입에 넣으니 환상의 조화였다. 마치 단짠단짠의 조합과 비슷하달까... 음, 이건 코청코청이라고 해야하나...

우리 가족은 행복한 얼굴로 식사를 마쳤다. 역시 아줌마들이 우르르 가는 곳은 맛집이 맞다, 여긴 우리만 먹기 아깝다, 아는 사람들을 최대한 데리고 와서 맛을 보여줘야한다, 등등으로 브라보 박수를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빠는 계산을 하시며 "맛집이라고 소문이 나서 저기 먼 곳에서 여기까지 올라왔어요"라는 농담을 던지셨고, 나는 "거짓말이에요, 인천 사람이에요"라고 칼같이 자르며 인사를 하고 나왔다.





7.

시장이 반찬이라고, 혹시나 우리가 산행을 했기 때문에 맛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이야기도 나왔다.

하지만 그 이후로 산행 없이 언니네도 데리고 가보고, 내 남친도 데리고 가봤는데, 이건 산행과는 별도로 맛있는 집이라는 판정을 두 번에 걸쳐 받았다. 특히 남친은 바닷가(?) 사람이라 요런 음식들에 익숙한데, "살도 촉촉하고 양념도 매콤달달하니 맛있고 괜찮은 집이도다"라는 평을 남겨줬다.

이 정도면 맛집이라 추천할 수 있을 것 같아 쭈욱 포스팅을 해봤다. 카메라가 없어서 폰카로 대충 사진찍고 말았는지라 긴 글로 사진을 대신해 올린다. 바쁜 사람들은 6번의 음식평만 읽으시길 바란다.

만약 당신이 인천 시립 박물관이나 인천 상륙작전 기념관을 구경하러 왔다가 어떤 맛집을 가야하나 고민하고 있다면, 혹은 청량산에서 등산을 마치고 허기를 때우기 위해 바쁘게 검색 중이라면, 이 집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 네비를 찍고 오시는 분들을 위한 주소 - 박서방네 목로주점 : 인천 청량로102번길 25







덧글

  • 紅桜 2016/10/11 23:31 # 답글

    오... 코다리찜이라... 먹어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한번 먹어봐야겠네요.
    인천이라 과연 갈 수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ㅠㅠ
  • enat 2016/10/14 17:24 #

    저도 저게 인생 최초로 먹는 코다리찜이었는데 진짜 맛있었어요!
    저기는 너무 머니까 혹시라도 동네에 코다리찜 맛집이 있으시다면 가보세요! 코다리찜 맛있는 집은 진짜 맛있더라고요! ㅋㅋㅋ
  • 용용 2016/10/12 00:34 # 삭제 답글

    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용용님 맛집 포스팅 너무 좋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호한 이낫님 "인천사람이에요" ㅋㅋㅋㅋㅋㅋ 코다리찜 엄마 모시고 가고싶어요ㅠ! 엄마가 코다리찜 좋아하셔서 자주 해주셨는데 +ㅁ+ 여기 진짜 맛있을거같아요 코다리가 이렇게 크고 두툼한건 첨봤어요!
  • enat 2016/10/14 17:26 #

    용용님이 용용님 맛집을 찾고 계셔! ㅋㅋㅋㅋㅋㅋ
    저는 매사에 진중하고 단호하기 때문에 그런 아저씨 농담을 내버려둘 수 없었습니다. 설령 아버지라해도... ㅋㅋㅋㅋㅋ
    크 근데 여기 진짜 맛있어요! 살도 토실토실하고 촉촉한게 건조했다는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어요 ㅋㅋㅋ 추천팡팡!
  • 코양이 2016/10/12 10:45 # 답글

    코다리찜...군대에서 나오면 무조건 짬통으로 버려지던 비운의 음식... 내 머릿속엔 코다리찜 = 맛없음이란 공식이 성립되어 있지만 이정도의 극찬이라면 한번 가보고싶네요!
  • enat 2016/10/14 17:27 #

    으어어... 제 친구가 했던 말 그대로를 하시는군요 으어어어... ;ㅅ;
    하지만 이 집은 정말 맛있으니까 추천 팡팡 드립니다. 군대에서의 악몽의 코다리를 잊게 하는 맛일거여요 ㅋㅋㅋㅋ
  • 용용 2016/10/15 00:46 # 삭제 답글

    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회사에서 일하느라 정신이 혼미했었나봐요 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낫님 ㅋㅋㅋㅋㅋ 저런 유체이탈 화법 ㅋㅋㅋㅋㅋ 으앜ㅋㅋㅋ 죄송해요 아우 챙피해 ㅋㅋㅋㅋ 가족들이랑 산 올라갔다가 여긴 진짜 꼭 가야겠어요
  • enat 2016/10/18 12:26 #

    @.@ 유체이탈 화법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에요 우리 사이(?)에 무슨 창피함이 있겠어요. 회사에서 일하는 도중에 쓴 덧글이시라면 그러실만 하죠. 앞으로도 많은 유체이탈 부탁드립니다.
  • 박서방네목로주점 2018/09/29 10:37 # 삭제 답글

    몇년전 글인데 이제서 댓글을 올리네요. 저희가게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제든 따뜻한 밥한끼 드시고 싶으실때 찾아주셔요~
  • enat 2018/10/02 20:27 #

    네~ 종종 들리고 있습니다. 늘 맛있는 밥상 감사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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