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1/01 17:46

베네치아 (9) 물을 담은 산마르코 광장 ├ 베네치아 일주일 (2014)

* 1~3은 갑자기 베네치아 포스팅을 시작하게 된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넓은 이유인데... 걍 넘어가셔도 좋음.





1.

방 구조를 바꾸다가, 책장 뒤에서 웬 SD카드를 발견했다.

나는 2년 전 여행에서 32기가 SD랑 4기가 SD를 들고 다녔다. 4기가는 카메라용, 32기가는 저장용이었다. 4기가를 카메라에 끼우고 사진을 찍은 뒤, 사진들이 어느 정도 모이면 호스텔 컴퓨터에서 32기가로 옮기는 식이었다. (BsAs에서 카메라와 함께 하루치 사진을 날린 뒤, 카메라를 털려도 데이터만은 지키기 위한 나름의 노력이었다)

한국에 와서는 32기가 SD에 있던 사진들을 외장하드에 모조리 옮긴 뒤 국내 여행 등을 다닐 때 카메라에 꽂아넣고 다녔다. 물론 한국에선 카메라 도난 따위에 신경을 쓸 필요가 그닥 없었고, 그래서 나는 하나의 SD카드만 사용했다. 자연스레 4기가 SD는 용량도 작은데 뭘 쓰나 싶어서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책장 뒤에서 나온 SD카드가 바로 그 때의 그 4기가짜리 SD카드였던 것이다.

음... 음...

게으르고 잘 까먹는 과거의 나는... 이 4기가 SD를 포맷했을까? 아니면...?

설마... 이 SD카드에... 옛날 사진이?

두근거리긴 하지만 과도한 기대는 금물이기에 몸을 들썩이는 자신을 억누르며, 묘하게 침착한 태도로 컴퓨터에 SD카드를 끼웠다. 그리고 빠르게 안의 내용물을 살펴봤다.

몇 초 후 나는 '게으르고 잘 까먹는 과거의 나'를 사랑하게 되었다. 너 이자식, 포맷하는 거 까먹었잖아! SD카드가 사진들로 꽉 차있잖아! 너 이자시이익~ 4기가에 남은 사진들을 정리한다는 걸 깜빡한 것으로도 모자라, 4기가 SD카드의 존재 자체를 깜빡하다니이~ 나는 자신을 두 팔로 끌어안고 뽀뽀세례를 날렸다.





2.

물론 사진이 전부 남아있던 건 아니고, 여행 후반부의 사진들만 있기는 했다. 그래도 이게 어디야.

SD카드 안에는 스페인 여행의 마지막 도시였던 바르셀로나 사진들과 세계여행의 마지막 도시였던 베네치아 사진들이 남아있었다. 나는 남아있던 사진들을 몇중으로 백업하고 보관했다. 그러고나자 조금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왜 하필 남아있는 스페인 여행 사진이 바르셀로나란 말인가.

사실 스페인에서 제일 즐거웠던 곳은 세비야였다. 사진 찍으며 즐거웠던 곳은 이전에 포스팅했던 톨레도와 아직 하지 못한 그라나다였고. 근데 왜 남아있는 사진이 하필 바르셀로나란 말야!

인간의 욕심엔 끝이 없다. 나는 툴툴거리며 바르셀로나 사진 보는 걸 미뤄두고, 저번 여행의 마지막 여행지였던 베네치아 사진들을 훑어봤다.





3.

베네치아!

베네치아는 응급실 갔던 얘기나 폭풍우 몰아치는 밤 따위의 기이한 에피소드나 포스팅하느라 사진이 들어간 정상적인(?) 여행기 포스팅을 많이 하지 못했었다. 그래서 사진들을 날렸을 땐 그 점이 조금 아쉽다 생각했었는데, 다시 그 사진들이 내 손에 들어온 것이다. 오오.

그래서 뭘 어떻게 요리해줄까 생각하며 사진들을 보고 있다. 올릴 사진들이 참 많은데... 흐흐흐...





4.

고민하다가 이 사진들부터 올려본다. 베네치아 산 마르코 광장에서 본 '물에 비친 광장'이다.

예전에 "여행 끝!" 포스팅에서 베네치아 대표 사진으로 이 사진을 올렸었는데, 그 때 몇몇 분들께서 아쿠아 알타를 겪고 온 거냐고 물었었다. 근데 아쿠아 알타까지는 아니고, 아마도 지난 밤에 비가 많이 왔거나 만조 때 들어왔던 물이 빠지지 못했던가 등등의 이유로 광장 여기저기에 물이 고인 것 같았다.

걸어다닐 부분은 남아있어서 불편하진 않았지만, 제법 넓은 곳에 물이 얕게 고여있어서 사진찍는 재미가 있었다. 물에 비친 건물이 어찌나 예쁘던지!





요런 느낌!




타이머 맞추고 앞에서 걸어다니는 척.




왠 꼬맹이가 장화신고 나타나 달려감.




잔잔함.




누가 걸어갔더니 쭈글쭈글쭈글.




물에 비친 여행자들.




세로로도 한 장.




몇 번의 타이머 끝에 찍은 제일 마음에 드는 사진.





5.

시간이 흐르자 마른 건지 배수가 된 건지 하여간 물이 많이 줄어들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작은 웅덩이들만 곳곳에 남아있는 산 마르코 광장.

앞에 사람들이 웬 책상 같은 곳에 앉아있는데, 저건 언제 쓰는 거냐면...





이렇게 물 고인 곳 다니라고 씀!

사진은 산 마르코 성당 입구.




나도 입장줄에서 한 장.


건물이 침수되고 장화가 필수품이며 동네 슈퍼에 가려고 해도 쫄딱 젖을 것을 각오하고 다녀와야한다는 아쿠아 알타는 한겨울에 시작된다는데, 내가 베네치아에 늦가을 즈음에 갔으니 아마 이런 식으로 계속 물이 고이다가 그 지경(?)이 나는 듯 하다.

하여간 잠시나마 물의 도시다운 물의 광장을 봐서 재밌었다.




음, 그 다음엔 어떤 사진을 올릴까... 뒤적뒤적.






덧글

  • 가을전어BBQ 2016/11/01 21:05 # 삭제 답글

    SD카드 찾은거 축하드립니다!!
    덕분에 더 여행이야기가 올라오겠군요 잘 보겠습니다 ㅋㅋㅋㅋ
  • enat 2016/11/02 22:17 #

    감사합니다!!
    많이 기쁜지라 업된 기분으로 사진 수정하고 있습니다. 으힣히히
  • LionHeart 2016/11/01 21:06 # 답글

    저렇게 물에 잠겼다 말다하는데 건물들이 오랜 세월을 버티는게 대단한 것 같습니다.
    광장 반영 사진 멋지네요 :)
  • enat 2016/11/02 22:21 #

    게다가 민물도 아니고 바닷물인데 말이죠. 아마 그래서 보수공사가 계속 되고 있는 걸로 알아요! 아래층의 벽돌을 다시 바꾼다던가 시멘트로 메꾼다던가 하는 식으로!
    흐흫 사진 괜찮은가요... 원채 잘찍으시는 분인지라 부끄럽네염. 감사합니다.
  • Tabipero 2016/11/01 22:39 # 답글

    일부라도 사진 찾으셨다니 다행이네요. 저도 장기간 여행 가면 sd카드 중간에 한번 바꾸고 인터넷 되는 pc가 있으면 일부라도 메일 등에 전송해 놓고 난리(?)를 쳤었죠 ㅎㅎ
    아쿠아알타 철에 한번 가보면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장화가 필요할 것 같지만...
  • enat 2016/11/02 22:23 #

    으흐흑 네 기쁩니다... ㅠㅠ 나머지 사진들도 어디선가 얍 하고 돌아올것만 같은데... 안그래주려나요... 호홓호...
    저도 아쿠아 알타 철에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겨울이라 많이 추울 것 같긴 하지만, 보기 진귀한 광경을 보러 가는데 그 정도 추위쯤이야 견뎌..야죠! 견딜 수 있겠죠! 아마도!
  • 라비안로즈 2016/11/01 23:11 # 답글

    오오.. 사진이 멋지네요... 반사되어 멋진 풍경이 만들어졌네요~
  • enat 2016/11/02 22:24 #

    감사합니다~ 다행히도 저 때 바람이 없어서 수면이 잔잔했는지라 찍을 수 있었어요~ 히힣
  • 용용 2016/11/02 01:43 # 삭제 답글

    과거의 이낫님!!! 고마워요!!!

    사진 너무 이뻐요!!! 물에 비친 건물+ㅁ+!! 사알짝 유우니 느낌도 나고!! 여튼 다시한번 SD카드 포맷안해주신 과거의 이낫님께 감사를!!
  • enat 2016/11/02 22:28 #

    게으른 저 만세만세! 감사에 감사합니다! 조금이라도 되찾은 사진 덕분에 기쁩니다! 힣히히
    물 근처에서 고릴라 삼각대로 바들바들 떨면서 타이머 맞춰 찍은 건데 생각보다 잘나와서 기쁩니다 으힣히히!
  • 11thCTR 2016/11/02 11:25 # 답글

    당신의 게으름은 보상받을 수 있습니다~! 편 이군요!
  • enat 2016/11/02 22:30 #

    으히히 보상도 아주 큰 보상이고 말이죠!
    조금 더 게을러질 필요성을 느낍니다. 좋아, 내일부터 더 게을러지겠어!!
  • 紅桜 2016/11/02 20:05 # 답글

    마지막 사진에 저 스웩넘치는 발랄한 V가 이낫님입니까?ㅋㅋㅋ

    물에 반사된게 마치 우유니 소금사막같은 느낌이네요 ㅋㅋㅋㅋㅋ
    게으름에 보상을 받으시다니... 저도 어떻게 저의 엄청난 게으름에 보상을 받아보고싶어요 ㅋㅋㅋㅋㅋㅋㅋ
  • enat 2016/11/02 22:32 #

    스웩넘치는 발랄한 V가 바로 접니다! 저 때 집시들이나 입을뻡한 괴랄한 옷을 입고 있었죠.

    저는 슈퍼게으르거든요. 게으름에 보상을 받으려면 더 게을러지셔야 합니다! 더 느긋하게! 달팽이처럼!
    ....쩝.
  • 紅桜 2016/11/04 11:35 #

    마지막에 ㅋㅋㅋㅋㅋ 쩝이 뭔가 슬퍼보이십니다 ㅋㅋㅋ

    사진 저렇게 발랄하게 찍으시는 분들 부럽... 전 언제나 같은표정 같은포즈 마치 동상같이 어색하고 딱딱한 느낌이죠 ㅠㅠㅠ

    이낫님이 저보다 훨씬 많이 돌아다니셨는데요?! ㅋㅋㅋ 전 쫄보라 아무데도 못돌아다녔습니다 ㅠㅠ 이번에 캐나다 갈 수 있으면, 아마도 본격적으로 처음 나가보는 것이겠네요!! 기대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가서 무슨 일을 해야할지도 모르겠고 ㅋㅋㅋ
  • enat 2016/11/07 23:41 #

    저도 다른 사람이 사진 찍어주면 굳어요 ㅋㅋㅋ 허나 삼각대 앞에선 자유로워지죠. 아무도 보고 있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니 이렇게 저렇게 자유를 표방하며 사진을 찍습니다아.

    캐나다 가셔서 무슨 일 하실지는 대충 생각하고 가시는 게 나으실 거에요. 저도 아무 생각없이 나갔다가 처음에 멘붕와서 어카지?????? 요 상태였는데 그나마 처음에 같이 갔던 친구가 캐셔나 웨이트리스 직으로 알아보라고 맨날 관련된 정보를 중얼거려서 그쪽으로 찾게 됐었거든요 ㅋㅋㅋ 준비하는 동안 걱정 많으실텐데 다방면으로 정보 많이 알아보셔요!
  • 紅桜 2016/11/08 01:14 #

    아하 삼각대의 힘이군요 ㅋㅋㅋ! 저도 갈 때 챙겨가야겠어요 ㅋㅋㅋㅋㅋ

    개인적으로는 캐나다에서도 전공쪽으로 일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하는데 찾아보니 대부분 안될거라고 하시더라구요... 게다가 누나도 도움은 주지 않겠다! 하고 못을 박은 후라서 ㅋㅋㅋㅋ 아마도 저도 다른사람들처럼 스타벅스같은 곳을 기웃거려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도 들어보니 애플에 취직했다던 분도 계셔서 가게되면 전공쪽으로도 문은 두드려 보려구요!
  • enat 2016/11/10 11:59 #

    계획하신대로 풀리시길 바랍니다! 저도 주변에 전공찾아 캐나다 갈 계획하는 친구가 있어서 같이 응원하게 되네요!
  • 에스j 2016/11/09 02:17 # 답글

    뜨억. 사진이 어마어마하군요. SD카드로부터 돌아온 사진들에 축하를!!
  • enat 2016/11/10 12:00 #

    감사합니다!! 얘네라도 찾아서 정말 다행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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