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3/15 13:36

강릉 여행 (3) 안목해변 ├ 중부지방

1.

나 : 어엉? 일은?
미니미니 : 지금 일하게 생겼어!?


오죽헌에서 강릉 버스 터미널로 돌아간 내 앞에 나타난 것은, 미니미니였다. 아까 오죽헌을 둘러보고 있을 때 강릉으로 잡으러 - 진짜 이 단어를 사용했다. 잡으러가 뭐냐 잡으러가. 생포하겠다,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이런 뜻인가? - 가고 있으니까 구경 다하고 터미널로 오라고 했던 그 미니미니였다.

미니미니 : 혼자 머리 식힌다길래 어디 서울 근교 이런데 가는 줄 알았더니 무슨 강릉이야 갑자기!
나 : 그... 뭐시냐... 버스가 바로 있었어.
미니미니 : 그래서 이렇게 먼 도시까지 온 거야?
나 : 에이, 강릉이 뭔 먼 도시야. 우리나라 안인데. 나 공항으로 갈 뻔한 것도 알아? 여기 여권도 있당.


여권 보여줬다가 볼때기를 잡혔다.

나 : 어에어!?
미니미니 : 이 아가씨야.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부모님이 안혼낸다니 내가 혼내겠어!
나 : 잠깐잠깐, 혼날만한 일인가!? 난 성인이고, 돈도 벌고, 내 돈 모아서 주말에 여행나온 것 뿐인데!?


미니미니는 내 말을 듣더니 그건 그렇군 하며 손을 내렸다. 하지만 이내 손을 다시 뻗어 내 볼을 주욱 잡아 늘렸다.

미니미니 : 하지만 싸우고나서 보란듯이 떠난 건 용서 못하겠다아아!
나 : 아으어허하!






2.


사실 여행가기 전날밤, 우리는 크게 싸웠었다. 원래 주말은 데이트 때문에 모든 일정을 비워두는 편이었는데, 열받아서 미니미니에게 '너 안만나고 여행갈거다 흥이다 뿡이다'라는 카톡을 보내고 여행을 떠났다. 이번 여행은 친구들과 가족들의 여행 뽐뿌질도 한몫 했지만, 실은 이 이유가 가장 컸다. 그런데 그 미니미니가 쫓아온, 아니 그의 말을 빌리자면 잡으러 온 것이다.

미니미니 : 일단 밥이나 먹자. 나 오늘 아침도 점심도 못먹었어. 너 때문에!
나 : 아니 그게 왜 나 때문이야? 난 내 여행 혼자 잘하고 있구만?


우리는 티격태격하며 버스 터미널 앞에 있는 편의점에 들어갔다. 도시락 두 개와 컵라면을 사서 데운 뒤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했는데, 편의점 도시락이 의외로 맛있었기에 한동안 맛있게 쩝쩝거리기만 했다.

나 : 무슨... 편의점 도시락 주제에... 반찬이... 제법 훌륭... 냠냠.
미니미니 : 시대의 흐름에 발맞춘... 기똥찬 반찬들... 차돌박이라니... 쩝쩝.


어느 정도 배를 채우자, 그제야 생각나는 질문이 있었다.

나 : 아, 근데, 진짜 일은?
미니미니 : 몰라. 바쁜일 있다고 하고 나왔어. 월요일날 일폭탄일거야.


나는 깔깔거리고 웃다가 다시 질문했다.

나 : 여기는 왜 온 거야?
미니미니 : ...야, 너 여행하다가 길 잃으면, 어? 누가 길 찾아줘! 그리고 막 낯선 사람들 만나서 주눅들면 어떡해! 주인 잃은 똥강아지처럼 돌아다니면 어떡해! 아님 여행하다가 체력 딸려서 지쳐서 쓰러지면 어떡하냐고!


그는 확실히 내 블로그를 정주행할 필요가 있다. 나는 길도 잘 찾고 친화력도 좋으며 생존력도 우수한 편이다. 하지만 하나하나 반박하면 마동석 닮은 그 입을 삐죽거리면서 삐질테니까 그냥 조용히 넘어가주기로 했다. 강릉까지 왔는데 아름다운 것만 보고 싶다.

나 : 그렇네. 와줘서 다행이야.
미니미니 : 아니 뭐... 겸사겸사 나도 여행 온 거고... 바다에서 일출 보려고... 흠.






3.

밥을 다 먹고 일어나자, 하늘이 잔뜩 흐려져 있었다.

나 : 날씨 아까 디게 좋았는데. 오자마자 날씨가 이렇게 흐려질 수가 있나?
미니미니 : ......
나 : 어디서 나 몰래 강릉의 미움이라도 샀어?


미니미니는 뚱한 표정으로 바다를 보러 가자고 했다. 나는 곧바로 사천 해변을 떠올렸으나, 또 버스 시간을 놓친 뒤였다. 사실 날씨가 이렇게 흐려선 찾아가는 보람도 없을 것 같았다.

나 : 여기서 버스 타고 가면 안목해변이 있다는데? 일단 거기라도 가서 커피나 마시자.

안목해변, 안목 커피거리는 예전에 간 적이 있다. 지난 여름, 강릉 당일치기를 할 때 잠깐 들려 커피를 사먹었었다. 차들이 정말 많은 데다가 요란스럽고 정신없던 곳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뭐, 아직 늦은 겨울 혹은 이른 봄인데, 누가 해변에 놀러갔겠어? 아마 지금은 조용할 것이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안목해변으로 이동했다.





4.

나 : 대체 이 춥고 흐린 날 누가 해변에 놀러들 오는 거야!
미니미니 : 음, 일단 너랑 나? 그 외 수백 명의 사람들.


안목해변은 날씨가 이모양인데도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카페는 가는 곳마다 만석이었으며 시끄러웠고 내부공기는 탁했다. 우리는 십년 전에 이곳에 땅을 사서 카페를 지었어야 했다고 탄식하며 해변을 걸었다.




나 : 바다 봐. 저렇게 깨끗할수가.
미니미니 : 근데 날씨 때문에 우중충하네. 날씨가 아쉽다.
나 : 진짜. 멀리서보면 꼭 월미도 앞바다 같잖아.


미니미니는 깜짝 놀라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미니미니 : 아니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동해를 인천 앞바다랑 비교를 해?

미니미니는 새파란 동해를 앞에 끼고 살았던 부산 출신의 청년이다.

나 : 뭐라고? 지금 인천 무시하는 거야?

나는 나도 인천을 욕하지만 남이 인천을 욕하는 건 참을 수 없는 인천 토박이다.

우리는 발끈하여 서로의 고장에 대한 자랑 배틀을 펼치려고 했다. 그 순간 갑자기 하늘에서 이상한게 날아와 대화가 뚝 끊겼다.




나 : ......
미니미니 : ......


뭔가 이상하게 날아다닌다?

처음엔 평범한 패러글라이딩이라 착륙하는 줄 알았는데 등 뒤에 프로펠러 같은 게 달려있었다. 그걸 이용해 떴다가 내려갔다가 떴다가 내려갔다가를 반복하는 것처럼 보였다. 저게 아마 그 동력 패러글라이딩인가 보다.

나 : 엄청 자유로워 보이네.
미니미니 : 앗, 친구들을 불러왔다.





나 : 뭘 하는 거지? 올라갔다가 내려갔다가...
미니미니 : 헌팅하는 거 아냐? 예쁜 여자가 보이면 내려갔다가 가까이서 보고 아니면 올라가는거지.
나 : 앗, 저기 완전히 내려갔다.
미니미니 : 운명의 상대를 만났구나.
나 : 행복하시길...


멍청히 서서 사랑 사냥꾼(?) 프로펠러인들을 보고만 있으니 갑자기 바람이 차게 느껴졌다. 우리는 발끈했던 것도 잊고 바닷가에서 몸을 돌려 카페로 들어가기로 했다.








5.

우리는 간신히 빈 자리를 찾아낸 카페에서 어제 싸운 일에 대해 이야기를 할... 줄 알았는데, 앞으로 어딜 가고 뭘 먹을지 어디서 잘지에 대한 이야기만 나눴다. 감정 싸움은 불확정적이고 불투명한 일정 앞에선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나보다.

미니미니 : 저녁으로 회 먹을래?
나 : 아니. 오늘 회는 아냐. 나 여행중이라고. 여행중에 회 먹는 거 아냐.
미니미니 : 언제부터 그런 게 정해졌는데!?
나 : ...그냥. 그냥 오늘부터.
미니미니 : 그냥 오늘은 먹고 싶지 않은거라고 말해.
나 : 그거야.
미니미니 : 휴, 그럼 회는 패스하고... 뭘 먹을까...


나는 사실 아무거나 먹어도 상관없는데, 미니미니는 늘 끼니 때마다 뭘 먹을지 저리 걱정을 한다. 내가 고민하지 말고 아무거나 먹자고 했더니, 그는 내 입맛이 까다로운 편이라 나랑 밥을 먹을 땐 꼭 고민을 해야한다고 했다. 엥? 아닌데? 나 입맛 안까다로운데? 아무거나 다 잘먹는데? 앞에서 깝죽대다가 또 볼을 뜯겼다.

나는 얼얼한 볼을 만지며 말했다.

나 : 어차피 밥 먹고 자려면 경포대 쪽으로 가야하지 않나?
미니미니 : 그럼 경포대로 가자.
나 : 지도 찍어보니까 버스로 1시간 걸린대.
미니미니 : 에이, 직선거리가 이거밖에 안되는데?


지도를 들여다보자 진짜 안목해변에서 경포대까지는 5킬로미터 정도였다. 아마도 바로 가는 버스는 없고 시내로 한번 들어갔다가 나오는 버스밖에 없어서 그런 것 같았다. 직선거리 5킬로미터를 버스타고 한 시간이라니. 뭔가 아까운 느낌인데. 차라리 걸어...

미니미니 : ...걸어가볼까?

텔레파시!?

나 : 진짜? 진짜냐고!
미니미니 : 어? 어. 걸어가도 될 것 같은데...
나 : 좋아! 좋아! 걸어가자!
미니미니 : 뭐야? 왜 이렇게 신났어?
나 : 나는 혼자였어도 걸었을거야! 그래, 이런 애매한 거리는 걷는 게 좋다구!


나는 내 여행의 많은 선택의 순간 - 현대문물을 이용할 것인가, 두 다리를 이용할 것인가라는 선택의 순간에서 거의 모든 순간에 후자를 선택했기 때문에 미니미니의 그 말이 동지를 만난 것처럼 기뻤다. 보통 내 친구들은 기겁을 하거든.

나 : 그럼 가자! 경포대로!

늘 그렇듯 이 때부터 여행 끝날 때까지 오지나게 걸을 것이란 건 생각도 하지 못하고, 우리는 해안가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경포대 가는 길에서 계속!





덧글

  • Tabipero 2017/03/15 19:56 # 답글

    충동적으로 떠난 혼자 여행인줄 알았더니 결국에는 커플여행이었군요...orz 만약 enat님이 국외로 떠났으면 그날로 비행기표 끊었겠습니다. 대단하셔라...

    안목이 좀 복닥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만큼 카페천지라 빈자리가 없진 않던데 정말 사람 많을때 가신 모양입니다. 오히려 날이 추우면 더 복닥이겠죠.
    전 주로 안목에서 경포 가려면 택시를 탑니다. 기억에 한 5천원 정도 나왔던가...안목 자체가 버스가 잘 없더군요. 뭐 사천만 하겠습니까만...
  • enat 2017/03/16 08:05 #

    비행기 예약하고 이런 걸 잘 못하는 거 같아서 혼자 여행하고플 땐 아예 외국으로 뜰까봐요. 추노꾼도 아니고 왤케 잡으러 다니는 건지...

    어우 안목 커피거리 카페들을 진짜 사람 많았어요 ㅋㅋㅋ 말씀하신대로 날이 춥고 흐려서 사람들이 다 카페에 들어가있던 모양이더라고요.
    택시라는 좋은 운송수단이 있지만 왜 택시비는 쓰기 아까운걸까요 ㅋㅋㅋ 우리나라 택시비는 싼 편인데도 불구하고요 ㅋㅋㅋ 하여간 이번엔 느긋하게 걸어서 갔습니다!
  • 2017/03/15 22:33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7/03/16 08:07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7/03/16 14:33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7/03/16 21:05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잘나가는 꼬마사자 2017/03/16 11:03 # 답글

    미니미니님... 이렇게 또 커플 염장을...........ㅠ_ㅠㅋㅋㅋ 싸우고 난 뒤에 혼자 가는 여행이라니 저라면 싸움 생각때문에 예쁜 꽃도 눈에 안 들어왔을 것 같아요ㅠ_ㅠ 싸우면 바로 풀어야한단 주의라 ㅋㅋㅋ 엄청 귀여우시네요 마동석 닮은 입 삐죽대기 ㅋㅋㅋㅋ 경포 5km 산책도 기대하겠어용!
  • enat 2017/03/16 21:09 #

    우우 염장질은 최대한 빼고 동반 여행자 1인 정도의 느낌으로 쓰려고 노력했는데 그게 잘 안되네요... 어려워랑.
    전 머리가 스트레스에 약해서 그런건지 싸운 담에는 바로 딴 생각이 들더라고요 오늘 무슨 웹툰 나오더라 재밌는 영화 뭐가 있나 이런식으로 ㅋㅋㅋ 그래서 여행가서 그냥 샤랄라하고 재밌게 다녔어요. 진짜 쫓아올 줄은 몰랐지만요;
    실제로 보면 별로 귀엽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당.
  • LionHeart 2017/03/16 11:12 # 답글

    천생연분이시군요 ㅎㅎㅎ 여행같은 곳에서 행동패턴이 같기 쉽지 않은데 말이죠.
    저 모터동력으로 다니는 패러글라이딩은 일반인은 할 수 없는 것일까요? 재미있어보이네요 ;ㅁ;
  • enat 2017/03/16 21:14 #

    딱 저 걸어다니는 것만 맞고 나머지는 많이 갈립니다. 그래서 자주 싸우죠 (...)
    동력 패러글라이딩은 저도 해보고 싶어서 여기저기서 알아봤는데 소셜이나 여행상품으로 판매하고 있더라고요! 가격대는 10만원 안팎으로요! 근데 또 찾아보니까 사고도 잦다고 하여... 조금 고민됩니다. 으음, 안전제일 으으음...
  • 존평씨 2017/03/16 12:11 # 답글

    자꾸 니 생각이 나고 싸운 게 마음이 걸려 라는 말을 너 잡으러 왔다고 표현하는 부산 싸나이 미니미니님과 알면서도 은근은근 모른다고 말하며 자랑하는 enat님과 여행기 보러왔다가 염장싸다구에 넋을 잃은 쏠로님들과 나도 저럴 때가 있었지 라고 생각하며 오늘 아파트에 장 선다는데 순대를 먹어야되나 닭강정을 사야하나 생각하는 유부남 존평씨와 오지게 좋은 봄날씨와.
    달달한 거 많이 하세요.
    그거 모아두면 평생간식.
  • enat 2017/03/16 21:25 #

    덧글 첫줄보고 저도 모르게 헤죽헤죽 웃었네요. 아 뭐야... 그런거였어 미니미니? 에헤헤...
    사실 강릉여행 포스팅하면서 미니미니 이야기를 써야하나 말아야하나 그냥 혼자다녔다고 할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 여행 내용을 적당히 잘라서 적으면 미래의 제가 안들여다볼거 같더라고요. 그래서 썼더니 본의 아니게 염장질을... 으음... 어려워라.
    순대와 닭강정이라면 당연히 닭강정이죠. 닭강정드세요 닭강정. 아 닭강정 먹구 싶다... 여기서 날이 더 풀리면 친구랑 공원가서 닭강정 까고 맥주 한 잔 하고 싶군요. 캬오.
    닭강정이랑 달달한 거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미니미니랑은 청량고추가 들어간 닭강정 같은 달달함이라 중독성이 있네요. 평생 간식이 될지 한철 음식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당장은 맛있어서 만족중입니다.
  • 용용 2017/03/21 00:51 # 삭제 답글

    꺅 미니미니님....! 미..... 미니미니사마 +ㅁ+!!! 드라마의 한장면 같아요ㅎㅎㅎㅎㅎㅎ!!!

    ㅋㅋㅋㅋㅋ드라마도 잠시 시트콤으로 급 전환 ㅋㅋㅋㅋㅋ 맞아요 요즘 편의점 도시락 맛있죠
    사랑사냥꾼들ㅋㅋㅋ앜ㅋㅋㅋㅋㅋ두분이 영혼의 개그 콤비 같이 느껴져욬ㅋㅋㅋ(두분도 사랑사냥꾼들인뎁.. 쩝...ㅎㅎ)

    렛츠워크!!!
  • enat 2017/03/23 12:32 #

    드라마 아닙니당. 드라마 아니에요. 아무리봐도 말씀하신 시트콤에 가깝습니다. 나도 진지한 멜로 드라마를 찍어보고 싶도다아아! 하지만 현실은 둘 다 진지한 거 못참는 성격이라 개그 꽁트...

    영혼의 개그 콤비... 사실 불발일 경우가 더 많습니다. 이상한 농담했다가 서로 이해 못하고 뭔 소리야 화내는 경우가 더 많죠 ㅋㅋㅋㅋㅋ 저 때는 어떻게 쿵짝이 맞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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