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4/30 07:49

여수 여행 (7) 마무리 ├ 남부지방

1.

1박 2일짜리 여행을 무슨 포스팅 일곱개로 나눠서 하고 있는 중이다. 여수가 너무 좋아서 그랬다.

그러고보니 예전에 회사 옆자리 대리님이 이렇게 물어봤었다.

"여태까지 다닌 국내 여행지 중에 어디가 제일 좋았어?"

고민할 것도 없지.

"여수죠!"
"어? 여수에 뭐 있는데?"
"여수에 밤바다 있고... 낮바다 있고..."
"여수가 부산보다 멋있어?""

어? 그렇게 물어보면...

"그야 당연히 부산이 화려하고 볼거리가 많죠. 부산이 더 멋있음."
"여수가 제일 좋다며?"

응? 그야 그렇지.

"여수가 제일 좋았죠."
"무슨 소리야? 부산이 여수보다 더 멋있다며. 그럼 부산이 제일 좋은 거 아냐?"
"...그런가?"
"아, 뭐야. 제대로 좀 말해봐. 어디가 제일 좋은거야."

아니 뭐, 여수보다 멋지고 괜찮은 여행지는 많다. 방금 말했던 부산도 그렇고, 강릉이나 통영, 경주 등지의 대한민국의 유명한 관광 도시들을 여수와 하나씩 비교해보자면, 그쪽이 훨씬 더 볼거리가 많고 맛집도 많으며 교통이 편리하기까지 하다. 따져보면 그렇긴 한데, 다 덮어놓고 제일 좋았던 곳을 말하라면...

"그냥 여수가 제일 좋은데요?"

...라는 대답이 나오는 것이었다.

이해하지 못할 소리를 한다고 핀잔 들었다. 아니 뭐, 그냥 제일 좋은 걸 어쩌란 말인가. 





2.

다시 여행기로 돌아가서.

하여간 그 '그냥 제일 좋은 여수'에서, 고소동 천사 벽화마을을 보고 종포 해양공원으로 내려온 나는, 배를 부여잡고 깨끗한 공중 화장실로 달려가 많은 것들을 내려놓고 나왔다. 반짝이는 여수 앞바다가 더욱 더 반짝여보였다. 우후후...

이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한 시간 남짓 남았다. 터미널로 돌아가는 시간도 있으니 대충 삼십분 정도 남은 걸까? 나는 그동안 해양공원 벤치에 앉았다가, 또 바다 앞쪽을 서성이다가, 또 사진을 찍다가 하면서 시간을 때웠다.









요 짧은 이틀 동안 본 여수는 계속해서 빛나고 있었다. 

사실 구체적으로 뭐가 그렇게 빛났냐고 물어보면 딱히 할 말은 없다. 여수의 바다는 아름다웠지만 동해 쪽의 다른 해안도시만큼 맑고 푸르진 않았고, 여수의 야경 역시 아름다웠지만 다른 대도시만큼 화려했던 건 아니었다. 포스팅하면서 여수 여행을 쭉 복기해보니 뭐 그렇게 엄청난 대자연이나 대도시를 본 것도 아니었고, 그렇게 대단한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그렇게 엄청난 행운이 따랐던 것도, 그렇게 특별한 코스를 다닌 것도 아니었다. 그냥 어제 오늘로 그냥 밤바다 구경하고, 아침 산책하고, 벽화골목 구경하고... 뭐 그 정도였는데, 왜 그렇게 여수가 보석처럼 반짝거리게 느껴졌는지 그리고 여전히 그렇게 느껴지는건지 나도 잘 모르겠다. 

그리고 그렇게 반짝반짝하다고 느끼다보니, 언젠가 인천에서 돈 좀 모으다가 여수로 뜨고 싶은 마음이 마구마구 샘솟아오르는 것이었다. 마치 '안 지 얼마 안됐고 제 이상형도 아니지만 이유도 모르게 엄청 당신이 끌리니 일단 결혼 먼저 하고 왜 끌리는지는 살아보며 알아갑시다'라는 청혼을 하는 대책없는 사람이 된 느낌이다. 여수 이거 아주 요망한 도시가 아닐 수 없다. 





3.

세상에는 다양한 종류의 바람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사람을 몽상하고 꿈꾸게 만든다. 나는 이렇게 저렇게 여수에서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다가, 나도 참 무슨 상상을 하는 거야 싶어져서 피식 웃으며 무심코 시계를 봤다. 


...!!!!

시간이 훌쩍 흘러있었다! 이놈의 시간은 망상할 때랑 포스팅할 때 제일 빨리 흘러간다!

나는 앉아있던 벤치에서 일어나 버스 정류장을 향해 종종걸음으로 걸었다. 여기 어디쯤에 전날 밤에 탔던 555번 정류장이 있었는데. 그 버스가 버스터미널로 가는 걸 노선에서 확인했었다. 나는 기억을 더듬어 걸었고, 곧 저만치에 있던 정류장을 발견했다. 버스 앱을 확인해보니 그 버스는 서너 정거장 앞에 있었다. 나는 안심하며 555번 버스를 기다렸다.

그런데 이놈의 시간은 무언가를 기다릴 땐 지지리도 흘러가질 않는다. 나는 30초도 기다리지 못하고 무얼 하며 기다릴까 주변을 두리번거렸고, 근처에 동백꽃이 펴있는 걸 보고 그것과 함께 셀카나 찍기로 했다. 이렇게 저렇게 각도 잡고, 표정 잡고, 자동 보정... 옳지!





흡족해하며 사진을 여러장 찍고 있는데, 내 바로 뒤에 있던 버스 정류장으로 무언가가 쌩 지나갔다.

어?

나는 셀카를 찍던 그 자세 그대로 지나간 무언가를 바라보았다. 그건... 그건 서너정거장 전에 있다던 555번 버스였다!

아뿔싸, 어제도 그랬지만 저 버스는 정류장에 멈춰서지 않는 질주 본능 버스였지! 나는 어? 어? 하는 멍청한 소리를 내며 그 버스를 바라봤고, 버스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속도를 내어 저 멀리 사라져버렸다. 

나는 벙찐 얼굴로 이미 지나간 버스를 바라봤다. 하지만 뭐, 버스 정류장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내 잘못이지. 나는 한숨을 쉬며 실시간 버스 정보 앱을 이용해 다음 버스를 찾아봤다. 그런데 이 놈의 앱엔 다음 버스가 뜨질 않는 것이었다. 운행 중인 버스가 저 한 대만 있는 건 아닐텐데, 왜 운행 정보가 없다는 건지.

이럴 때 시간은 또 빨리 간다. 나는 시계를 초 단위로 체크하며 점점 초조해졌다. 버스가 10분 안에 오지 않으면 늦을 것 같은데, 버스 운행 정보는 안뜨고... 왜인지 이 동네엔 택시도 안보인다... 카카오 택시를 깔아야하나... 으으...

나는 어쩐다냐 어쩐다냐 하며 발을 동동 구르다가, 버스 정류장 앞에 커피 테이크 아웃점을 발견했다. 이, 이렇게 초조해하지 말고 일단 따뜻한 걸 마시며 침착해지자. 나는 길을 건너가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려다가, 왠지 커피를 마시면 카페인 때문에 가슴이 더 쿵쾅거릴 것 같아 녹차라떼를 달라고 했다. 내 앞에는 손님이 두어 명 있었고, 직원은 한 명 뿐이었다. 그래서 한 3, 4분 정도는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얌전히 서서 녹차라떼를 기다렸다.

그런데 그 때였다. 운행 정보가 없다는 555번 버스가 거리 저 멀리에서 무지막지하게 달려오고 있는 것이었다. 

아, 진짜... 쟤 뭐야 진짜! 왜 지금 나타나! 아깐 운행 정보 없다며!

나는 카페 직원에게 제 녹차라떼가 나오려면 멀었냐고 물어봤고, 혼자서 모든 주문을 처리하고 있던 바쁜 직원은 죄송하다며 같이 발을 동동 굴렀다. 아냐, 당신이 죄송할 게 아냐! 생각없이 여수 시내를 질주하는, 그래서 앱에도 안잡히고 정류장에도 잘 안서는 저놈의 버스가 나쁜 거야! 난 눈물을 머금고 직원에게 내가 녹차라떼 사는 거니까 맛있게 드시라는 말을 남겼다. 그리고 다시 버스 정류장으로 전력질주했다. 




555번 버스는 곧 도착했고, 난 뭔가 분노와 울분에 찬 느낌으로 그 버스에 올라탔다. 하지만 그 버스는 승객의 분노엔 아랑곳하지 않고 급출발했는지라, 난 또 허둥지둥거리며 자리를 잡아야만 했다. 으아아... 증말 화가난다아 555오오오오오!!!

그렇게 무지막지한 속도로 달리는 555번 버스를 타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른 시간에 터미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사실 이번에도 방송보다 버스가 더 빨라서, 터미널 정류장보다 한 정거장 더 가서 내리게 되었다. 그래서 다시 한 정거장 되돌아오는 버스를 환승하는 기막힌 일이 있었지만... 뭐 이제 그러려니 한다. 

여수에 간다면 조심하시길 바란다. 그리고 시간이 촉박할 것 같으면 이용하시길 바란다.

기억하시라. 무한 질주 555번 버스를. 





4.

터미널에 도착한 나는 서울로 올라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나는 넓직한 우등 버스에 반쯤 누워 아까 찍은 사진들을 구경하다가 잠에 빠져들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눈 뜨면 도착해있길. 물론 진짜 그런 일은 없었고 길이 겁나 막혀서 엄청 늦은 시간이 되어 집에 도착했지만 말이다. 돌아올 때도 비행기를 탈 걸 그랬어.

그렇게 벌써 여수에 다녀온지도 한 달이 훌쩍 넘었다. (그 말인 즉슨 이 1박 2일짜리 여행을 포스팅 하는데 한 달이나 걸렸단 소리다 우와 진짜 게으르네) 여전히 여수는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고, 나는 어떻게하면 여수로 넘어가서 살 수 있으려나 하는 고민 따위를 하고 있다. 아무 연고도 없는 도시라 한달 정도면 그런 마음이 사라지겠거니 했는데 여전히 생각하고 있는 걸 보면 아주 단단히 홀린 게 아닌가 싶다. 진짜 요망한 도시로다.

하여간 이 반짝거리는 여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언젠가 다시 여수를 주제로 포스팅 할 일이 생기길 바라며 마쳐본다.




끝!





덧글

  • Tabipero 2017/04/30 11:40 # 답글

    지금 여수가 보이는 남해군에서 포스팅을 보고 있으니 뭔가 묘한 기분이네요 ㅎㅎ 오늘 여수는 많이 붐빌 것 같아서 차를 이쪽으로 돌렸는데(이전에 차를 몰고 여수에 가니 돌산대교인가...그쪽에 교통정체가 엄청나더군요...) 나중에는 여수도 한번 가 봐야죠 ㅎㅎ

    지방 도시에 가면 버스가 잘 밟더군요. 시골쪽에서 밟던 느낌으로 시내에서도 밟는건지...ㅎㅎ 서울은 적당히 의사표시만 하면 잘 서던데 그래서 저도 지방에 가면 열심히 손 흔듭니다 ㅋㅋ
  • enat 2017/04/30 22:36 #

    !!!! 황금연휴를 맞아 남해에 가셨군요! 또 어떤 멋진 풍경을 보게 되실지 제가 다 기대됩니다.
    맞아요 연휴때 여수 돌산대교는 차 빠져나오기 힘들 거에요 ㅋㅋㅋㅋ 저도 작년엔가 연휴 즈음에 돌산대교쪽에 가본 적이 있었는데 꼼짝도 안하더라고요. 멈춰있는 동안 본 여수의 바다와 돌산대교가 예뻐서 걍 예쁘다예쁘다 하면서 견뎠죠 ㅋㅋㅋ

    ㅠㅠ 지방버스 무섭습니다. 전 인천버스가 제일 무섭고 빠른 버스인줄 알았는데 지방버스 겪고 나니까 인천버스는 느긋한 양반이더라고요. 저도 버스를 몇번 놓치고 난 후부턴 아예 버스카드를 손에 쥐고 강한 의사소통을 하게 됐습니다 ㅋㅋㅋ
  • LionHeart 2017/05/01 10:58 # 답글

    으으 역시 버스는...아니됩니다...;ㅁ;
    돌아와서도 그리워지는 여행지라니 정말 여수가 마음에 쏙 드신 모양이네요. enat님 리뷰를 읽으며 저도 이전에 방문했을 때와 다르게 느긋이 여수에서 지내보고 싶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다음 여행기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
  • enat 2017/05/01 16:02 #

    우후후... 정말인지 무시무시한 지방 버스...
    저도 이번 방문이 세번째 여행인데 첫번째 두번째 땐 사실 별다른 감흥이 없었거든요. 첫번째 땐 심심하다 싶었고 두번째 땐 딴 건 모르겠고 야경은 진짜 볼만하네~ 했었고... 근데 세번째에 팍 하고 터져버렸네요! 많이봐야 좋아지는 곳일지도 모르겠어요! ㅋㅋㅋ
  • 11thCTR 2017/05/01 19:28 # 답글

    "'안 지 얼마 안됐고 제 이상형도 아니지만 이유도 모르게 엄청 당신이 끌리니 일단 결혼 먼저 하고 왜 끌리는지는 살아보며 알아갑시다'라는 청혼을 하는 대책없는 사람이 된 느낌이다. " 캬~~~ enat의 문장력에 탁 치고 갑니다. ㅋㅋㅋ
  • enat 2017/05/03 09:14 #

    여수에 대한 수줍은 고백...
    그래서 요새 여수에 일자리가 뭐가 있나 찾아보고 있는데 제가 경력 살려서 할만한 일들은 잘 안보이더군요 ㅋㅋㅋ 아우 정말 ㅋㅋㅋ
  • 11thCTR 2017/05/04 01:55 # 답글

    음... 그리고 글을 읽다보니 못느꼈는데 다시 정리하다보니.. 이 글에서 벌어진 일들이 종합하면 전부 2시간이 안되는 시간인 것같은데... 맞나요? 마지막에 버스터미널에서 돌아오는 것을 빼면요. (... 머리 속에서 생각나서 쓴 댓글을 마구 휘갈기고 돌아와보니... 제 댓글에 비문이 장난이 아니네요... ㅠ_ㅠ)
  • enat 2017/05/03 09:15 #

    전편 포스팅+이번 포스팅을 합해도 2시간이 안됩니당. 정확하게 보셨어요! ㅋㅋㅋㅋ
  • carlito 2017/05/24 03:35 # 삭제 답글

    글 너무 재밌게 잘 쓰시는거 같아요 ㅎㅎ
    남미여행 정보 찾다가 여기까지 왔는데 어머님과의 여행기가 너무 재밌고 인상적이였습니다.
    부모님들이 남미에 사셔서 나중에 은퇴하실 무렵에 같이 여행을 갈려고 하는데 참고해야겠네요~
  • enat 2017/07/15 16:31 #

    늦은 답글 죄송합니다! ㅠㅠ
    재밌게 읽어주시고 덧글까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엄청 기분 좋네요!
    남미에 계신 부모님이라니 어떤 사연일까요! 넘나 궁금해하며 즐거운 여행계획 세우시길 바랄게요! :)
  • bae 2017/08/28 17:42 # 삭제 답글

    곧 여수 여행 가려고 하는데 555버스를 타게되면 참고할게요~~! 잘 읽고 가요~~ 흐흐
  • enat 2017/09/12 23:31 #

    555버스!!! 타게 되시면 꼭 타기 전 저 앞에서부터 "나는 탈 것이다!"란 의지를 갖고 손을 흔들어주시고 내릴 때에는 타이밍 잘 맞춰서 벨을 눌러주세요!! 즐거운 여행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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