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7/20 22:54

황금연휴 부산여행 (2) 남포동 일대 ├ 남부지방

1.

남포동에 내려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국제시장이었다.

무비몬 : 그러니까 여기가 영화 국제시장에 나온 그 국제시장이란 말이지!
나 : 응. 나 영화는 안봤지만. 거기가 여기야.

영화까지 나왔으니 이제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그래도 예의상 설명한다. 국제시장은 원래 피난민들이 생계를 위해 물건을 사고 팔던 도떼기 시장이었다. 그 도떼기 시장은 전시 물자와 함께 부산항으로 밀수입된 오만가지 물품들로 인해 팽창하게 되었고, 당시만해도 신기한 외국의 물건들이 주로 거래되는 통에 '국제시장'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외제 물품이 범람하는 현 시대에서도, 국제시장은 당시의 분위기를 맛보고 싶은 여행자들로 붐비고 있다.




그 여행자들 중엔 우리 둘도 있었다. 무비몬은 신이 나서 이 가게, 저 가게를 기웃거리며 구경했고, 나는 그 무비몬을 뒤에서 따라다니며 천천히 구경했다. 그러고보니 여태까지 이 블로그에서 무비몬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한가지 빼먹은 게 있는데, 그건 바로 '무비몬은 쇼핑을 매우 좋아한다'라는 거다. 얘는 체력도 약한 편인데, 쇼핑만 하면 숨겨진 기운이 솟아난다.

무비몬 : 이거 봐! 나막신이야! 이거 어때?
무비몬 : 우와, 이건 캐나다에서 봤던 인형이야!
무비몬 : 이 화장품 완전 싸게 파는데? 이거 살까?
무비몬 : 저 옷 편해보여! 너 저거 사줄까?


반면 나는 쇼핑에 약한 편이다. 어느 정도는 쇼핑을 즐기지만 그 시간이 30분을 넘어가면 지치기 시작한다.

나 : 우와, 이쁘다.
나 : 와, 괜찮네
나 : 허허.
나 : ...


무비몬의 쇼핑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 대답은 반비례하여 짧아진다. 무비몬과 내가 함께 쇼핑을 가면 늘 있는 일이다.

나는 뒤에서 천천히 걸으며 (가끔씩 지갑을 열려는 무비몬을 말리기도 하며) 무비몬이 지치길 기다렸다.





2.

무비몬 : 배고프다! 이 근처에 먹을 게 뭐 있지?

무비몬이 그 말을 한 순간, 나는 준비해둔 네이버 지도 앱을 켜서 미리 찾아뒀던 음식점 위치를 확인했다. 지금이 여기니까... 이쪽으로 가서 저쪽에서 꺾으면 되겠군.

나 : 유부주머니 먹어봤어?
무비몬 : 그게 뭐야?
나 : 어머, 유부주머니도 못 먹어봤어?


나는 이 틈을 타서 에그타르트(*리스본 여행기 참고)에 대한 복수를 하려고 했지만, 무비몬은 별로 개의치 않고 먹어본 적 없는데 그게 뭐냐고 다시 되물었다. 재미없군. 좀 더 분해하란 말이지. 나는 다시 한 번 어떻게 유부주머니도 한번 못먹어봤냐고 태클을 걸었지만, 무비몬은 하품을 하며 태연히 대답했다.

무비몬 : 아, 뭐든 배를 채울 수 있으면 돼. 뭐든 먹자고. 그 가게는 어딨어?

결국 무비몬을 제대로 놀리지도 못하고 찾아간 유부주머니 가게...




이 가게는 예전에 여행지 추천 어쩌구 포스팅을 할 때도 올린 적이 있는, '깡통골목할매 유부주머니'였다.

뭐, 정작 건물의 간판에는 [우진도기]라는, 유부주머니와는 전혀 상관없는 상호명이 달려있다. 원래 도기류를 팔았는데 부업으로 유부주머니를 팔다가 잘 된 케이스인가? 이전 임대 가게가 우진도기였는데 귀찮아서 간판 안떼고 그냥 장사하시는 건가? 잘 모르겠군.




무비몬이 1개씩 사먹어야하냐고 물었지만, 나는 그렇게 먹으면 앞으로의 야시장을 어떻게 정복할 것이냐며 무비몬을 타박했다. 그리고 1개만 사서 둘이 나눠먹었다.

유부주머니의 맛은 이전 기억 그대로의 맛이었다. 당면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즐길 수 있는 아름다운 음식... 유부주머니뿐만이 아니라 국물도 시원하고 어묵도 맛있어서 둘이 쩝쩝거리며 신나게 먹었다. 재밌는 건 국물 리필이 된다는 거였는데, 국물을 퍼주실 때 국물 위를 둥둥 떠다니는 어묵도 함께 왕창 퍼주시더라. 이런 후한 인심으로 장사해서 남는 게 있을까 싶었다.

그러나 무비몬은 리필은커녕, 자신에게 할당된 양도 다 먹지 못한 채 "배부르다아..." 어쩌구거려서 날 당황하게 했다. 이런 똥멍청이가. 부산의 저녁은 아직이라고!




결국 내가 다 비움.

공동 작품이 될 수 있었는데 무비몬이 중도 포기하는 바람에 이 작품은 내 것인걸로.





3.

무비몬 : 그러고보니 부산은 어묵이 유명하잖아. 여기 어묵 골목은 어디야?

!?

어묵이 유명하단 건 알고 있었지만, 국제시장에 어묵 골목까지 존재할 줄이야... 난 머리를 긁적이며 검색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 때 놀랍게도 타이밍 좋게 어묵 골목에 접어들었다.

무비몬 : 오홍. 이미 이 쪽으로 가고 있던 거였군.

난 머리를 긁적이려던 손을 가볍게 머리쪽에 받친 뒤 다 예상했던 거라는 표정을 짓고 태연히 어묵을 구경했다.




무비몬은 역시 쇼핑을 좋아하는 사람답게 이 어묵, 저 어묵의 특징을 물어보고 시식하며 행복해했다. 난 뒷짐을 지고 무비몬의 뒤에서 멍을 때리다가 무비몬이 주는 시식용 어묵을 받아먹고 그랬다.




그러다가 무비몬이 이런 스프도 있다며 신기해했다. 나는 조미료에 지대한 관심이 있기 때문에 (미원과 다시다를 사랑함) 그 스프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사기로 했다. 무비몬도 같이 샀다.

나중에 집에서 이 스프를 조금 넣고 뜨거운 물을 콸콸 부으니 그럭저럭 괜찮은 오뎅 국물이 되더라. 국물 맛을 내고 싶은데 2% 부족할 때 등의 상황에서 이 스프가 아주 요긴하게 쓰였다. 조미료야 고마워!





4.

국제시장에서 어묵을 보다가 갑자기 생뚱맞은 가게가 나타났다.




뭐라고 해야하나... 미숫가루 가게? 방앗간? 선식집? 하여간 어묵가게 바로 옆에 있는 가게였는데, 각종 선식들을 빻아서 바로 파는 곳이라 고소한 냄새가 마구마구 풍겨왔다. 무비몬은 마침 자기가 선식이 필요했다며 그 선식집 주인 아저씨에게 이것저것 캐묻기 시작했다. 난 뒤에서 고소한 냄새를 음미하며 흐뭇한 미소로 대기했다.

관광객들이 다들 어묵거리에 몰려 있는지라 비교적 한가했던 주인 아저씨는, 관심어린 눈으로 꼬치꼬치 물어보는 무비몬이 마음에 드셨는지, 가게 안쪽으로 들어가서 시음을 해보라고 하셨다. 우리는 안쪽에 시음하는 공간도 있냐며 신기해하며 들어갔다.




이렇게 빻는 기계(이름이 뭔지 모른다)와 곡물들이 양 옆으로 놓인 공간을 지나면,




뭔가 주인 아저씨의 휴식 공간 같은, 소파+TV가 놓인 작은 방이 나오는데,




그 방 TV 아래에, 시음할 수 있는 다양한 선식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

나와 무비몬은 당연히 안쪽에 가게를 지키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이 선식을 타주는 거라고 생각했다. 백화점 시식 코너처럼, 뭐 대충 기계에서 소주잔 크기의 종이컵에 설탕맛 강한 선식을 부어주는 걸 상상했단 말이다. 그런데 이 자연스러운 셀프바는 뭐야!? 아무도 안지키고 있어도 괜찮아? 막 먹어도 괜찮은 거야!?

나 : 야, 내가 시장에 자주 안가서 이게 신기한 거냐?
무비몬 : 적어도 우리 동네에 있는 시장에선 이런 시스템이 없었어.
나 : 와, 선식을 이렇게 셀프바로도 운영을 하다니... ㅋㅋㅋㅋㅋ
무비몬 : 세상은 아직도 우리가 모르는 것으로 가득 차있어... ㅋㅋㅋㅋㅋ


우리 둘 다 뭔가 당황스러운 일이 있거나 처음 겪는 상황을 마주치면 마구 웃는 성격인지라, 일단 깔깔거리고 웃었다. 그리고 야 이건 진짜 흥미롭다, 이건 예상 못했다 어쩌구하는 이야기를 하며, 각자 취향껏 선식을 타먹었다.

두말할 것도 없이 그 선식은 맛있었다. 한없이 건강해질 것만 같은 깊은 곡물맛과 그 사이사이 느껴지는 고소함... 얼마 마시지도 않았는데 아침한끼 대용으로 손색이 없을 든든함... 그야말로 제대로 된 정통 선식이었다.

맛있게 먹어서 한봉다리 사갈까 고민했지만, 왠지 선식가루를 안터지게 들고 다닐 자신이 없었다. 잘못해서 비닐에 구멍이라도 뚫리면 가방 안에서 대참사가 일어날텐데... 그래서 사는 건 포기하고 연락처만 알아가기로 했다.




근데 이거 왠지 가게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서 시음까지 했는데, 빈 손으로 갈려니까 좀 눈치가 보인다. 우리는 쭈뼛거리며 명함 하나 가져가겠다고 얘기하고 가게를 나섰다. 그러나 아저씨는 우리 선식 맛있죠? 즐거운 여행하세요 등등의 이야기를 하시며 쿨하게 손을 흔드셨다. 훔냐... 사고 가란 말도 안하시네. 괜히 걱정했다. 우리는 역시 부산 사람들 쿨하다며 고개를 끄덕이고 가게를 떠났다.





5.

날이 어둑어둑해지고, 슬슬 깡통 야시장이 들어설 때가 됐다. 나는 무비몬을 끌고 깡통 야시장 쪽으로 이동했다.




깡통 야시장은 대한민국에 야시장 열풍을 일으킨 국내 상설 1호 야시장이다. 좁다란 시장 골목길 가운데에 저녁만 되면 간이 매대가 쭉 들어서게 되는데, 그 비좁은 공간에 그렇게나 많고 다양한 음식들이 팔린다.

우리는 간이 매대가 들어서기 전에 야시장에 도착했는데, 덕분에 제법 여유있게 (어디까지나 간이 시장이 들어서기 전과 비교하여. 평범한 시장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붐빈다고 표현해야 할 것이다) 음식을 먹으러 다닐 수 있었다. 꼬치, 맥주, 닭튀김, 곱창볶음 등등...

대충 배가 불러갈 때 즈음 우렁찬 소리(잠시 비켜주세요, 조심하세요 운운하는 말이었다)와 함께 간이 매대가 밀려 들어왔다. 간이 매대는 순식간에 들어와 순식간에 설치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음식을 팔기 시작했다. 간이 매대와 음식을 사려는 사람들의 줄로 야시장의 길은 순식간에 좁아졌고, 우리는 들고 있는 음식을 어쩌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다가 곧 인파에 휩쓸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방향으로 쓸려 나갔다.

나 : 우리 많이 먹었어.
무비몬 : 응. 나도 배불러.


야시장에서 튕겨져나가듯 빠져나온 우리는, 다시 들어갈 엄두도 내지 못한 채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손에 든 곱창볶음을 냠냠 씹으며.





6.

야시장을 나온 나는 기억을 더듬어 보수동 책방 골목을 찾았다. 그러나 시간이 너무 늦었는지, 많은 점포가 닫혀있었다.




나 : 아! 나 여기서 책 한 권 살려고 했는데! 아쉽당.
무비몬 : 그래? 지금 열린 가게만이라도 둘러볼까?


우리는 열려있는, 그나마도 이제 닫을 준비를 하고 있는 서너군데의 책방을 돌았지만, 딱히 살만한 책은 보이지 않았다. 에잉. 어쩔 수 없지.

나 : 하여간 요런 책방골목도 있단 말야. 나중에 밝을 때 와봐.
무비몬 : 좋아. 다음에 부산을 여행하게 되면 이곳을 코스에 넣겠어.






7.

하루종일 돌아다녀서 피곤했던 우리는, 잠시 숙소로 돌아가 재정비를 했다. 그리고 다시 남포동으로 나왔다. 사실 무비몬이 피곤하다며 그냥 잘까 어쩔까 하는 걸 억지로 끌고 나온 거다.

나 : 씨앗 호떡은 꼭 먹어야한단 말이야!
무비몬 : 요새 여기저기서 씨앗 호떡 팔던데...
나 : 원조는 다르다고!


그러면서 나는 씨앗 호떡에 관한 이야기를 해줬다. 내가 부산에 놀러왔을 때 애들끼리 겁나 먹방 찍다가, 더 이상 들어갈 배가 없어서 리타이어 했을 때, 내 입에 어거지로 씨앗 호떡을 쑤셔넣어준 사람이 있었다, 그 배부른 와중에도 씨앗 호떡은 진짜 맛있었고, 그 씨앗 호떡 때문에 부산에 계속 찾아가게 됐다, 그리고 그 씨앗 호떡을 넣어준 사람은 미니미니였다, 어쩌구 저쩌구.

나 : 알겠어? 여튼 씨앗호떡은 꼭 먹어야한단 말야.
무비몬 : 남친 자랑만 한 것 같지만 알겠어. 먹으러 가자.





비프 광장으로 찾아가자 곧 씨앗호떡 가게가 나왔다. 두어군데의 씨앗호떡 가게가 열려있었는데, 전부 대기줄이 짱 길었다.

무비몬 : 어... 어디에 줄을 서야하는 거야!? 어디가 원조야!?
나 : 아무데나 서면 돼. 돌아가면서 간판을 바꾼다는 믿거나 말거나 하는 소문도 있어.
무비몬 : ㅋㅋㅋㅋㅋㅋㅋㅋ


호떡이 오래걸리는 음식은 아닌지라, 줄은 금방 빠졌다. 우리는 행복해하며 씨앗호떡을 받아들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행복해하던 건 나뿐이었고 무비몬은 미심쩍어하는 눈치였다. 흥, 그 표정이 곧 황홀한 표정으로 변할 것이다!

무비몬 : 냠냠냠냠냠
나 : ......
무비몬 : 흥. 맛있군.


무비몬은 놀랍게도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맛있다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맛있는 호떡을 먹으면서 어떻게 그렇게 태연한 표정을 지을 수 있는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나 : 벼... 별로냐?
무비몬 : 아니? 진짜 맛있는데?


근데 별로 맛있어하는 표정이 아니다!

하지만 무비몬은 연신 무표정으로 흥미롭군, 맛있군, 흥미로운 맛이야 어쩌구 하는 소리를 중얼거리며 호떡을 금새 해치워버렸다. 저러는 거 보면 진짜 맛있어하는 거 같기도 하고...

무비몬 : 뭘 쳐다봐?
나 : 아, 아냐... 가자...


20년을 알고 지냈어도 알 수 없는 친구로다. 그런 생각을 했다.





8.

비프 광장에는 만원대 썬글라스를 파는 매대가 있었는데, 무비몬이 매우 큰 관심을 보이며 썬글라스를 구경했다. 나 역시 썬글라스들은 모두 박살나거나 잃어버렸기에, 내일 당장이라도 쓸만한 게 있나 싶어서 설렁설렁 구경했다.




무비몬 : 자, 이낫. 너는 이걸 쓰는 거야.
나 : 그게 뭐야! 이상해! 난 이런 게 좋아.
무비몬 : 너는 너무 평범한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어. 가끔은 이런 것도 좋다고.


그러자 옆에서 썬글라스 주인 아주머니도 부추기기 시작했다. 이 썬글라스가 예쁘다, 저건 너무 평범하다, 이걸 써라, 이 분홍분홍한 걸, 이 특이특이한 걸 써봐라!

나는 몹시 혼란스러웠지만 그래도 내겐 자신의 의지를 끝까지 밀고나갈 힘이 있었다. 나는 꿋꿋하게 처음에 골랐던 썬글라스를 지켜냈고, 그걸 샀다. 평소 스타일이랑 너무 다른 걸 사봤자 한번 쓰고 못쓴단 말이지. 무비몬은 못마땅한 표정이었고 주인 아주머니는 아무래도 좋으니 사줘서 고맙다는 눈치였다.

무비몬은 제법 오랫동안 고민하다가, 겁나 잠자리 눈알 같은 연분홍색 썬글라스를 샀다. 뭐야 저 촌스러운 썬글라스는. 나는 그녀를 말릴까 하다가, 말렸다간 쇼핑 시간이 더 길어질 것 같아서 그냥 어울린다고 대충 말해주고 말았다. 무비몬은 흡족해했다. 자기가 흡족해하면 됐지 뭐.





9.

썬글라스를 사고 남포동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주전부리를 주워먹던 우리는, 다시 썬글라스 가게가 있는 쪽으로 왔다가 한 노점상을 발견했다. 주인 아저씨께선 은행과 밤을 팔고 있었는데, 무비몬은 나보고 은행을 먹고 싶지 않냐며 장화신은 고양이 표정을 지었다. 그냥 물어봤으면 먹었겠지만 장화신은 고양이를 따라하다니 용서할 수가 없군. 난 은행 따위 먹고 싶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무비몬은 슬퍼하며 은행을 바라만 봤다. 사려니 혼자 먹기엔 양이 너무 많고, 안사려니 아쉬운 눈치였다. 그 때 어디선가 썬글라스 매대 아주머니께서 바람처럼 나타나 은행을 한움큼 집어 우리의 손에 쥐어주셨다.

썬글라스 주인 : 이거 먹어, 괜찮아. 아는 사람이야.
은행 주인 : 아니 뭐야! 왜 남의 가게 물건에 손을 대!
썬글라스 주인 : 쟤들이 아까 썬글라스 사갔어. 괜찮지?
은행 주인 : 쯧. 이러니까 내가 항상 마이너스야, 마이너스.


우리는 당황해서 돈을 지불하려 했지만, 은행 주인은 쿨하게 손을 내저었다.

나 : 아니 아무리 그래도 공짜로는 못받는데. 값을 지불을...
은행 주인 : 아이, 됐어 됐어. 그냥 먹으라니까?


은행 주인 아저씨는 웃으면서 밤도 쥐어주셨다. 옆에서 썬글라스 주인 아주머니는 배시시 웃고 계셨다. 원래 그러는 거니까 부담 갖지 말고 먹으란다.

우리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맛있게 먹으라는 어른들의 보챔에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주머니를 따라 배시시 웃으며 은행을 입에 넣었다.

원래 그런거라고...

그분들에겐 지나가는 여행자 청년들에게 마음을 써주고, 주전부리 한움큼을 쥐어줄 수 있는 세상이 당연한 세상인가 보다. 나 역시 원래 그런 세상에서 살아가는 어른이 되도록 노력해야겠구만, 생각했다.





10.

남포동 먹자골목을 돌아다니다가, 이런 장사를 1도 안해본 것 같은 부끄러운 얼굴 + 작은 목소리를 장착한 청년들을 보았다. 종목은 요새 여기저기서 많이 구경한 생딸기 우유였다.




나 : 야, 딸기 우유 먹고 싶지 않냐.
무비몬 : 엥? 왠 딸기 우유? 난 관심없어.


은행의 복수인가? 나는 무비몬을 흘겨보며 딸기 우유 매대로 가서 딸기 우유 하나만 달라고 했다. 설마 주문이 들어올 거라곤 생각도 못했는지, 눈을 끔뻑이던 청년은 허겁지겁 딸기를 쥐고 마구 으깼다. 그리고 통에 시럽과 으깨진 딸기를 함께 넣고 우유를 부었다. 나는 곧바로 마시려고 했지만, 매대에 있던 모든 청년들이 허둥지둥거리며 한 목소리로 내일 아침에 먹는 게 더 맛있을 거라고 했다.

딸기 우유 청년 : 하룻밤 지나면 우유에 딸기즙이 우러나서... 그게 더 맛있어요!

나는 순순히 그러겠다고 했고, 가방에 딸기 우유를 넣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호텔 조식과 함께 딸기 우유를 마셨다. 무비몬은 딸기 우유에 관심이 없다고 말했던 것치곤 겁나 홀짝홀짝 마셔대서 날 거슬리게 했지만 뭐 하여간 맛은 있었다. 장사가 잘 됐으면 좋겠다.





11.

그 외에도 일상생활에선 못입을 것 같은 할머니 쫄바지를 사서 입거나, 망고 트럭 앞에서 홀린 듯이 망고를 샀는데 칼이 없어서 망고를 못먹게 됐다거나, 칼을 사려고 다이소를 찾아갔다가 셔터가 내려가고 불이 꺼지는 걸 실시간으로 봤다거나 하는 일이 있었다.

배도 엄청 부르고, 시간은 느즈막한 밤이다. 이제 뭘 하면 좋을까.

만약 내가 혼자였다면 아까 산복도로 쪽으로 올라가 야경을 봤을거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였다면 어디 포장마차에 들어가 술잔을 기울였을 거다. 그러나 지금은 쇼핑왕 무비몬과 함께였다.

그래서 우리는 남포동 옆 광복동 패션거리라고 불리는 쪽으로 넘어가 겁나 쇼핑을 했다. 무비몬은 대체 어디서 그 체력이 솟아나는 건지 이 가게 저 가게에 들어가 옷을 고르고, 또 피팅룸에 들어갔다 나왔다를 하염없이 반복했고, 결국 자신의 마음에 드는 옷 몇 벌을 건져냈다. 나는 이미 중간에 지쳐 길바닥에 뻗어있었는데, 무비몬이 모든 옷을 사고 가게를 나서는 모습을 보자 나도 모르게 왈칵 감동의 눈물이 흘렀다.

농담이다. 감동은 무슨. 하품을 다섯번 정도 연달아 하니까 눈물이 흐르더라.

쇼핑을 얼마나 열정적으로 했는지, 시계를 보니 자정에 가까웠다. 시간이 늦어 숙소까지 가는 버스가 없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심야버스가 다녀서 그걸 타고 갈 수 있었다. 술도 아니고 쇼핑 때문에 이 시간까지 밖에 있다니. 하하. 하하하하.

다신 무비몬이랑 쇼핑 따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뭐, 언제나 그렇듯 나는 또 까먹고 무비몬과 쇼핑을 하러 갈테지만. 흑흑.




막짤은 쇼핑하는 무비몬. 얘는 왜 이렇게 집시스러운 옷을 좋아하는 건지.




둘째날에서 계속!





덧글

  • 존평씨 2017/07/21 05:36 # 답글

    뭔가 아줌마스러운 느낌의 여행이군요.
    먹을 것과 쇼핑과 공짜와 총각네 가게로 이루어진...
    마지막 사진은 좋은데요?
    숨은그림찾기 같은 게 심령사진 같기도 하고 옷가게 지박령 같달까.
  • enat 2017/07/25 21:07 #

    ....!!!!!!
    그렇잖아도 요새 주변에서 아줌마 되는 사람들 많던데
    무비몬과 저는 아줌마 대신 화려한 싱글로 살것만 같고 그렇군요
    헝헝
    옷가게 지박령!!! 이 단어 넘나 맘에 드네요. 캡쳐해서 무비몬에게 보내겠어요. 정말 징글징글한 쇼핑왕 무비몬...
  • 2017/07/21 13:10 # 삭제 답글

    썬구리 아지매와 은행 아재는 부부였을까요?
    여자들끼리 여행이 은근 많이 먹고 많이 걷는거 같아요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 enat 2017/07/25 21:08 #

    부부셨을지도 모르겠네요! 엄청 친근한 말투셨거든요 ㅋㅋㅋ
    동성끼리의 여행이 참 재밌죠!
    특히나 오랜 친구면 눈치 안보고 양껏 먹기도 하고 먹다가 욕하기도 하고 그러니까... ㅋㅋㅋ
    덧글 감사합니다!
  • LionHeart 2017/07/26 10:33 # 답글

    시장 구경을 할 때는 백팩을 가져가야겠네요. 이것저것 사서 담을 수 있게 말이죠 ^^;
    시장에서 드신 먹거리 리스트만 보고 있어도 입에 침이 고이네요...특히 맥주와 어울릴 것 같은 음식들, 시장 특유의 분위기가 아침부터 위장을 자극합니다. ;ㅁ;
  • enat 2017/07/31 22:15 #

    백팩이나 장바구니 있었다면 그걸 채우기 위해서라도 이거저거 많이 샀을 것 같아요! 다행히도 지름신이 오지 않게 가벼운 차림인게 천만 다행이었죠 ㅋㅋㅋㅋ
    저도 지금 포스팅 다시보니 야시장이 너무너무 다시 가고 싶어요 ;ㅅ;!!! 곱창볶음.. 깡통시장에서 먹었던 곱창볶음이 지금 너무너무 먹구시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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