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8/12 14:21

타이중 (2) 첫째날 저녁 ├ 타이중 힐링여행

1.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시내로 가는 길.




차창 너머로 보이는 타이중의 거리는 익숙한 듯 낯설었다. 어딘가 한국과 닮았다 싶다하면 한자로 잔뜩 쓰여진 간판이 나오고, 또 어딘가 한국과 비슷하다 싶다하면 무더기의 오토바이가 쏟아져나왔다.

늦은 오후의 비행기라서, 타이중에 도착한 건 이른 저녁이었다. 멀리 보이는 공장과 송전탑이 주홍빛 하늘 아래 유난히 도드라져보였고, 바로 앞에 보이는 낮은 건물들과 보다 큰 나무들은 긴 그림자를 그려냈다. 그렇게 따뜻하고 부드러운 석양 속 재미있는 풍경을 보며 가고 있는데, 옆자리에 누군가 앉았다. 나는 내 캐리어가 그 사람에게 부딪힐까 염려되어 캐리어를 내 쪽으로 밀고, 다리를 창가 쪽으로 더 우겨넣었다. 그 사람은 불편한 내 자세를 보며 말했다.

타이완 남자 : 저기, 그 캐리어 내 옆에 둘까?
나 : 응? 아냐. 나 괜찮아. 고마워.


내가 괜찮다고 하자 그 타이완 남자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고 자신의 일을 보았다. 나 역시 고개를 창으로 돌려 바깥 풍경을 감상했다. 하지만 수 분 후, 그 남자는 역시 신경이 쓰였는지 다시 한 번 내게 물었다.

타이완 남자 : 저기, 그 캐리어 내 옆으로 좀 두도록 해.
나 : 응? 나 괜찮다니까. 고마워.
타이완 남자 : 날 좀 봐. 나 엄청 날씬하잖아.
나 : 응?
타이완 남자 : 나 날씬하니까 내 자리에 캐리어를 둬도 괜찮아. 자, 내쪽으로 두도록 해.
나 : !?


그러면서 내 캐리어를 자신 쪽으로 당기는 것이었다.

타이완 남자 : 이거봐. 네 다리가 캐리어에 눌려서 빨개졌다고.
나 : 어, 뭐... 고마...워?


이렇게까지 도와주겠다는데 거절하는 게 더 실례인 것 같다. 나는 타이완 남자의 상냥함에 감사해하며 다리를 편하게 펴고 앉았다.

타이완 남자 : 여기서 공부해? 아니면 여행 왔나?
나 : 여행왔어. 타이완은 두번째야! 나 타이완 진짜 좋아하거든.
타이완 남자 : 와, 기쁘다! 그럼 이번에도 야시장은 갈거지?
나 : 야시장? ㅋㅋㅋㅋ 당연히 가야지!
타이완 남자 : 그래, 여기선 그게 하이라이트라고.


즐거운 듯 재잘재잘 떠드는 타이완 남자. 천성이 밝은 사람인 것 같아 나도 재밌게 이야기를 나눴다.





2.

타이완 남자 : 그럼 즐거운 여행 되길!
나 : 응, 고마워. 너도 좋은 하루 보내!


한참이 지나 타이완 남자가 먼저 내렸고, 수 십분 후 나도 타이중 역에 내렸다. 공항에선 이른 저녁이었는데 타이중 역까지 오자 벌써 해가 져서 캄캄했다. 공항에서 시내까지 의외로 오래 걸리는구만.




캐리어를 질질 끌며 숙소에 도착했다. 이번 숙소는 신세이바시 (ShinSeiBashi, No.26, Zhongshan Road, Central District) 호텔이라는 곳으로, 나는 이곳의 여성용 도미토리를 예약했다. 원래는 개인룸을 잡고 편하게 쉴까 하다가, 여행 중인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서 도미토리로 잡아봤다.

하지만 암막 커텐이 달린 캡슐형인데다가 방음 엄청 잘됨 + 숙박하는 사람 얼마 없음 등의 이유로 여행 중인 사람들을 만날 일은 없었다. 도미토리인데 이렇게 사람 못 만난 경우는 처음이다! 침대 앞 곳곳에 놓인 슬리퍼와 캐리어, 개인 가방 등을 보면, 분명 내 양 옆 침대에 다른 사람이 숙박하는 것 같은데... 인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왜인지 공용 화장실에서도 누군가를 마주친 적이 없고, 짐 정리를 할 때도 다른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만큼 쾌적하게 지냈다는 이야기긴 하지만... 여튼간에 도미토리를 신청해놓고 개인방을 쓰다 온 느낌이다.

아, 마지막 날 아침에 한 명 만나기는 했다. 이것도 만난 게 아니라, 누가 커텐을 살짝 들춘 뒤 작게 불러서 나가 본 거였는데...

여행자 : 저기, 미안해. 내가 어젯밤에 여기가 내 침대인 줄 알고 들어갈 뻔 해서...
나 : 아, 그랬어? 나 자느라고 전혀 몰랐어. 괜찮아.
여행자 : 응응. 그래도 미안해. 나 이제 체크아웃해. 즐거운 여행하길!
나 : 응. 너도!


이게 다다.

쩝.

하지만 이 호텔에 머문 덕분에 큰 선물을 하나 얻었는데... 그 이야기는 투 비 컨티뉴!





3.

숙소에 도착한 나는, 친절한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 체크인을 마치고 방에 들어섰다. 그리고 캐리어 안에 있는 짐을 꺼내어 개인 사물함에 쑤셔넣은 뒤, 다시 밖으로 나왔다.

직원 : 오, 어디 가려고?
나 : 여기서 제일 가까운 명소!


직원은 옳다구나 하는 표정을 지으며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직원 : 여기 바로 앞에 다리 건너면 궁위안옌커라고 하는 곳이 나와. 그곳을 먼저 가봐!
나 : 궁원안과! 나 가이드북에서 거기 봤어! 거기 먼저 가볼게. 고마워!


직원은 잘 다녀오라며 손을 흔들었다.





4.

우리 숙소 앞에 위치한 궁원안과(궁위안옌커, 宮原眼科)는, 일제강점기 때 안과였던 건물을 개조하여 만든 디저트 백화점이다. 1층에서는 초콜릿, 펑리수 등의 기념품과 아이스크림을 판매하고 있고, 2층은 레스토랑으로 운영하고 있다.






건물이 제법 고풍스러워 달콤한 디저트의 왕국!이란 느낌이 더하다. 나는 실실거리며 가게 안으로 들어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궁원안과 직원 : 안녕! 뭐 찾는 거라도 있어?

나를 반기는 궁원안과 직원은 어딘가 반듯한 이미지에 키가 작은 남자였다. 왠지 분위기가 티비에 나오는 미국인 타일러와 비슷한 걸.

나 : 아니, 찾는 건 없는데...
궁원안과 직원 : 그럼 아이스크림은 어때? 여기 아이스크림이 유명하거든.
나 : 어디서 파는데?
궁원안과 직원 : 저기 보이지?


직원은 내가 있던 디저트 기념품 점의 유리벽을 가리켰다. 그 벽 너머로 아이스크림 매장 하나가 있었다.

궁원안과 직원 : 저기가 아이스크림 가게야! 여기서 일단 밖으로 나가서, 복도를 지나 다시 들어가야해.
나 : 오, 고마워. 나 저기서 아이스크림 사먹으러 가볼게!
궁원안과 직원 : 앗, 기다려!


궁원안과 직원은 왜인지 날 불러세웠다. 그러더니, 지금 당장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은 게 아니라면 조금만 더 걸어서 괜찮은 곳에 가서 먹으라는 것이었다.

나 : 더 괜찮은 곳? 저기가 제일 좋은 곳 아냐?
궁원안과 직원 : 물론 저기가 본점이야. 근데 이 근처에 저기 말고도 다른 지점이 더 있거든. 저긴 지금 사람이 많아 줄도 서야하고, 앉아서 먹을 곳도 없고, 좀 그렇잖아. 내가 앉아서 먹을 수 있는 곳 알려줄테니까 거기 가서 먹는 건 어때? 메뉴도 똑같다고!
나 : 후우움... 생각해볼게.
궁원안과 직원 : 그래. 더 둘러보고 얘기해!






5.

나는 그 직원과의 대화를 끝내고, 궁원안과 건물의 아이스크림점 본점에 가봤다. 과연 본점답게 사람이 북적거렸다. 나는 무언가를 먹기 위해 줄 서는 걸 싫어하는 편이라, 치를 떨며 밖으로 나왔다. 으, 역시 저곳에서 아이스크림을 먹는 건 아닌 것 같아. 이런 분위기라서 아까 그 직원이 여기 말고 다른데 가라고 말렸던 거였구나. 나는 다시 그 직원에게 '다른 지점'의 위치를 물으려고 기념품 가게로 들어갔다.

그런데 잠깐 아이스크림 본점에 다녀온 그 몇 분 사이에 직원이 사라졌다. 뭐야, 어디 간 거야! 분명 여기 있었는데? 근무 시간 끝나서 교대했나? 이거 마치... 게임으로 따지면 이벤트 타이밍 놓친 거야? 중요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타이밍이었는데 내가 본점 다녀오는 바람에 기회가 날라간 거야?

나는 그 직원이 다시 나타나길 기다리며 몇 분 간 기념품 가게들을 서성이다가, 어쩔 수 없구만 하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그 때 누군가가 나를 따라 헐레벌떡 뛰어나왔다.

궁원안과 직원 : 잠깐만! 혹시 너 나 찾은거야?
나 : 오, 그래, 너! 어디 갔었어! 엄청 찾았다고! 나 그 다른 지점에 대해 알고 싶은데, 길 좀 알려줄래?


궁원안과 직원은 걱정말라며 내게 길을 알려줬다. 역 반대 방향으로 쭉 가다가, 세븐 일레븐을 지나서 오른쪽에 있다나. 그렇게 설명을 마친 직원은, 무언가 모자란 듯 갸웃하더니 기다리라며 건물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그러더니 다시 헐레벌떡 뛰어나와 왠 작은 팜플렛을 하나 건넸다.

궁원안과 직원 : 거기에 약도 그려져있거든! 그거 확인하고 찾아가봐! 너 정말 거기 좋아할거야.
나 : 고마워! 이거 보고 찾아갈게!
궁원안과 직원 : 아이스크림과 즐거운 시간 보내길 바래!





나는 그 직원이 알려준대로 길을 찾아갔다. 사실 정말 가까운 거리였기에, 약도 같은 건 필요가 없었다.





6.

궁원안과 직원이 알려준 지점은 본점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가 길을 알려주면서 '넌 절대 그곳을 지나치지 못할거야. 그러니까 길 잃을 일도 없어'라는 말을 했었는데, 막상 찾아가니까 그가 한 말 그대로였다. 그 지점은 굉장히 눈에 띄는 외관을 갖고 있었기에 절대 지나칠 수 없었다.




언뜻 보기에 펍? 호텔? 고급 레스토랑? 같은 분위기의 가게인데... 안으로 들어가니 다들 후리한 분위기 속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다. 음, 이런 풍경... 쿠바에서 본 것 같은 기분인데. 거기도 아이스크림 가게가 무슨 리조트처럼 꾸며져있었지... 더운 나라의 특징인가? 아이스크림 가게가 화려할 것.




입구 옆에는 한 여직원이 서있었다. 내게 중국말로 뭐라 하다가 내가 못알아듣는 걸 알자, 다시 영어로 설명해줬다. 저쪽 카운터에선 디저트를 팔고 있고, 저쪽 카운터에선 쥬스를 팔고 있고, 저쪽 카운터에선 아이스크림을 팔고 있다 운운... 나는 감사하다고 인사한 뒤 아이스크림을 파는 카운터로 당당하게 걸어갔다.

당당하게 걸어간 건 좋았는데... 나는 정작 메뉴판 앞에 서자마자 정신이 아득해졌다.

뭐 이렇게 아이스크림 종류가 많아! 베스킨라빈스는 저리가라네!

눈이 뱅글뱅글 돌아가고 있던 나를 카운터에 있던 여자 직원이 반겨줬다.

아이스크림 직원 : 니하오~ 쏼라쏼라~
나 : 오, 아돈노 차이니즈 ㅠㅠ 글구 이 가게 처음이야 ㅠㅠ
아이스크림 직원 : 오! 그럼 내가 도와줄게. 자, 어떤 맛을 먹고 싶어?


직원이 보여준 아이스크림 종류는 어마어마했다. 나는 또다시 정신이 아득해졌고, 내 상태를 알아챈 직원이 날 도와주기 시작했다.

아이스크림 직원 : 초코? 티? 과일? 하나만 골라봐.
나 : 움... 초코!
아이스크림 직원 : 그럼 이쪽에서 골라봐.
나 : 우움.... 요거!
아이스크림 직원 : 아까 2스쿱 먹는다고 했으니까, 이번엔 어떤게 좋을까? 나는 티를 추천해.
나 : 우우움..... 그럼 이거!
아이스크림 직원 : 잘했어!


그렇게 간신히 아이스크림을 고르고나서, 계산을 마쳤다. 적당히 빈 자리를 찾아 앉고, 진동벨이 울릴 때까지 기다렸다.

수 분 후, 진동벨이 울려서 가니까 다른 남자 직원이 아이스크림을 들고 서 있었다. 나는 아이스크림을 받으려고 손을 뻗었지만, 남자 직원은 고개를 저으면서 설명했다.

아이스크림 직원2 : 자, 여기에 올라갈 토핑 고르는거야.
나 : 오! 맞아, 나 추가결제 했어. 토핑. 토핑.
아이스크림 직원2 : 어떤게 좋아?


토핑의 수도 많았다. 나는 눈알을 바삐 움직이다가 말했다.

나 : 잘 모르겠어! 네가 골라줘.
아이스크림 직원2 : 내가!? ㅋㅋㅋㅋㅋㅋ
나 : 잘 모르겠단 말야. 빨리.


아이스크림 직원2는 내 이야기를 듣고 좀 웃다가, 아무 망설임도 없이 토핑 두 개를 골라 아이스크림 위에 얹어줬다. 마치 우리 가게에 왔다면 이 토핑을 먹어줘야지, 하는 느낌이었다. 뭔가 믿음직하다.

나 : 오, 좋아! 고마워~
아이스크림 직원2 : 맛있을거야!





완성된 아이스크림! 뚀롱! 제법 커서 다 못먹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사진으론 작아보이네.

내가 시킨 건 초코맛, 티맛 이렇게 2스쿱이었는데 희한하게도 시키지 않은 과일맛 스쿱 하나가 더 들어있었다. 서비스인가? 어찌됐든 감사히 먹어야겠다. 나는 토핑과 아이스크림을 신나게 흡입했다. 특히 토핑! 토핑이 왜 이렇게 맛나던지! 아이스크림 직원2가 골라준 토핑은 최고였다. 냠냠.





7.

아이스크림을 절반 정도 먹고나자, 어쩐지 짭잘한 무언가를 먹고 싶어졌다. 으으, 입이 너무 달다... 내게 지금 필요한 건 짭잘한 무언가다아... 나는 아까 숙소에서 받았던 근처 지도를 펼쳐보았다.

지도를 보니 타이중의 번화가라는 이중제(일중가, 一中街)가 근처였다. 버스를 타려고 했는데 구글에서 어디를 찍어야할지 잘 모르겠어서 그냥 걸어보기로 했다. 돌아올 땐 숙소 찍으면 되니까 버스 꼭 타야지.

그렇게해서 쭉 걸어갔던 타이중의 거리...는!

무진장 걷기 어려웠다!




우선 큰 사거리가 아니면 보행자용 신호등이 없었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사거리라고 해도 신호등이 없는 경우가 많았고, 사람들은 적당히 자동차 신호를 봐가며 길을 건너는 듯 했다. 그거야 나도 눈치껏 건너면 되긴 하지만...

오토바이, 오토바이가 거리에 너무 많았다! 보행자 신호랄 게 없으니 오토바이도 갈 틈만 생기면 쌩하고 가더라. 그런 오토바이 피해서 건너느라고 건널목이 나오기만 하면 한참을 기다려야만 했다.

그리고 인도! 인도라고 할만한 것들은 대부분 필로티 구조로 되어 있어서 지붕이 덮혀있었고, 그래서 빛이 안들어오는 곳도 많았다. 캄캄해! 무서워어!

나는 오들오들 떨며 걷다가, 나랑 비슷한 방향으로 걷는 젊은 애들이 있길래 그 애들 뒤에 찰싹 붙어 따라다녔다. 그 애들이 아니었다면 난 가다가 중도포기했을 것이다. 타이중 길 걷기 어렵네예...

어느 정도 규모의 번화가가 나오자, 나는 안심하고 그 애들의 뒤를 밟는(?) 것을 멈췄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람들에게 이중제가 여기냐고 묻자, 다들 손가락으로 북동쪽을 가리키며 좀 더 저쪽으로 가야한다고 했다. 나는 사람들이 알려준 방향을 향해 종종 걸음으로 걸었다.





6.

이중제에 도착했다.

사실 도착했는지, 안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대충 여기가 맞는 것 같다. 사람들이 엄청 많고, 간판 불빛이 번쩍번쩍거리고, 한쪽 도로엔 뭔가 야시장스러운 것도 열려있다. 뭐, 맞겠지!

나는 타이중에 와서 처음 보는 야시장에 두근두근거렸다. 여기도 먹을 게 있고, 저기도 먹을 게 있어! 뭐가 뭔진 모르겠는데 하여간 따뜻하고 맛나보여! 저쪽에 뭔가 닭튀김 같은 게 보이고, 저쪽에 뭔가 볶음밥 같은 게 보이고, 저쪽에 뭔가 핫도그 같은 게 보이고, 저쪽에 뭔가 떡볶이 같은 게 보이... 떡볶이?

진짜 떡볶이였다. 우와. 한국 음식도 파네.





야시장을 가득 채우고 있던 건 중국어였고, 나 혼자선 도통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뭔가를 먹으려고 노력했지만 대체 뭐가 뭔지 또 얼마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 가게, 저 가게 기웃거리던 나는, 보다 알기 쉬운 노점을 찾게 되었다.





만두다! 만두를 종류별로 판다! 이거라면 나도 쉽게 사먹을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만두 앞에서 주문을 시작했다. 주인 아주머니는 날 보더니 종이상자를 가리켰다. 아마 저기에 담으라는 소리 같다. 나는 종이상자에 맛있어봄직한 만두들을 골라넣었다.

한 다섯개 정도 채웠을까, 이 정도면 됐겠다 싶어서 주인 아주머니에게 건넸다. 그러나 주인 아주머니는 간만에 온 어리숙한 손님을 놓치고 싶지 않았는지 더 담으란다. 그래서 하나 더 넣었더니, 이번엔 손가락을 쫙 펴더니 내게 흥정을 하신다.

주인 아주머니 : 10개에 얼마얼만데 1개 더! 11개!
나 : !?


음... 11개라... 싸게 준다는 것 같긴 하지만 아까 아이스크림 많이 먹어서 배부른데...

나 : 아냐, 나 배불러. 스탑 스탑.
주인 아주머니 : 에잇, 12개! 오케이? 오케이?
나 : ....!?!?


나는 아주머니의 박력에 눌려 얼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머니는 흐뭇한 표정으로 맛있는 만두를 골라 12개를 담아주셨다.

주인 아주머니 : 자, 여기!
나 : 우왓... 이거 너무 많은데...






7.

야시장에선 소규모 다품종을 먹는 맛인데, 대규모 소품종... 아니 아예 단일품종을 먹게 생겼다. 얼결에 만두를 이렇게 많이 사다니! 포르투갈에서 에그타르트 와장창 사서 고생했던 순간이 떠오르잖아! 으으...




하지만 나는 예전의 내가 아니다. 나는 어떻게든 이 만두를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어디보자, 이 야시장에 한국에서 온 여행자가 있지 않을까? 혹시라도 발견하면 겁나 친한 척 해서 나눠먹어야겠다. 나는 눈에 불을 켜고 야시장을 돌아다녔다. 야시장 구경 반, 여행자 찾는 거 반, 반반의 목적으로.

그런데 아무리 돌아다녀도 한국인 여행자는 보이지 않았다. 타이베이에선 한국 사람들을 그렇게 많이 만났는데. 아무래도 타이중은 한국인에겐 아직 비인기 도시인가보다. 히잉. 이러다가 또 에그타르트 2탄을 찍겠구만. 나는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지쳐, 근처 공원 의자에 주저앉았다. 테이블이 딸린 의자 중 하나였다.

의자에 앉아 멍 때리고 있는데, 바로 근처에서 길거리 마술쇼를 시작했다. 엄청 대단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버스킹이라고 제법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옳거니, 모여라, 모여! 나는 내 만두를 같이 먹을 사람을 찾을테다!

나는 마술을 보는 사람들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어디보자, 저쪽 커플은 안되겠군. 엄청 진지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 저 두 남자가 조금 괜찮을지도 모르겠는데. 아, 아니다. 분위기상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 같아. 방해하지 말아야지. 저 아줌마는 이미 엄청난 양의 음식을 입속에 넣고 있잖아. 내 만두에 매력따위 느끼지 못할 거야. 음 또...

그 때 어떤 어린애가 눈에 들어왔다. 나도 모르게 조카가 생각나서 웃어줬더니, 그 애가 내 쪽으로 뛰어와 내 옆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그 가족으로 보이는 청년들과 소녀 한 명도 그 어린애를 따라서 달려왔다. 옳다구나!

청년1 : 미안해, 앉을 자리를 찾다가...
나 : 아냐아냐, 괜찮아. 환영이야. 앉아!
청년2 : 고마워! 하하하!


나는 그들에게 여기 사냐고 말을 걸었고, 그들은 그렇다며 가족들끼리 놀러나온 거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나머지 가족들도 좀 있다가 이쪽으로 올거라고 했다. 그들이 음식을 사고 있는 동안, 자신들은 앉을만한 자리를 찾은 거라나. 나는 그에 어울리는 대답을 하며, 내가 갖고 있는 이 만두가 1도 위험하지 않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만두를 하나 집어 내 입에 넣었다. 그리고 매우 맛있게 입맛을 다시며 그 가족들을 하나하나 쳐다봤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내 만두에 집중하게 됐다.

소녀 : 만두를 샀네?
나 : 응. 이거 맛있어. 먹어볼래?
소녀 : 아, 아냐. 괜찮아.
나 : 진짜 먹어! 나 슬슬 배가 불러가지고.
청년1 : 너 혼자 먹기엔 많은 양인데?
나 : 응, 진짜 많아. 그러니까 먹어! 진짜 맛있어. 먹어, 먹어. 제발.


내 권유에 다들 만두를 하나씩 입에 넣었다. 좋았어!

그렇게 만두를 먹이다보니 내 뒷쪽으로 또다른 사람들이 나타났다. 아까 음식을 사러갔다던 그 가족들인가보다. 구성은 아줌마 두 분에 청년 한 명. 나는 웃으며 자기소개를 했고, 또다시 그들에게 만두를 권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나머지 가족들이 만두를 먹고 있는 모습을 보더니, 아, 이런 분위긴가 보다 하면서 내 만두를 집어먹었다. 좋았어! 만두가 점점 사라져간다!

어느정도 분위기가 무르익은 뒤에야, 나는 사실대로 이야기할 수 있었다.

나 진짜진짜 만두 조금만 사고 싶었는데, 커뮤니케이션이 잘 안되는 바람에 아주머니가 엄청 많이 줬다, 난 분명 스탑스탑을 외쳤는데 아줌마가 오케오케하면서 계속 넣어줬다, 그래서 만두 많이 샀다, 다른 거 못먹어서 슬프다...

그 가족들은 깔깔거리고 웃었고, 내 남은 만두를 다 집어먹었다. 그리고 자신들이 사온 여러 음식들을 내게 나눠줬다. 이것도 맛보라며. 예상하지 못한 결과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인심 좋을 수가! 나는 감사하다고 했고, 그들은 더 먹으라며 음식들을 챙겨줬다. 즐거운 시간이었다.




청년1 : 타이완엔 얼마나 있는 거야?
나 : 얼마 안있어! 4일! 4일 내내 타이중에 있을 거야.
청년2 : 어? 그럼 르웨탄 호수 갈 수 있겠다.
나 : 응, 나 내일 거기 갈 거야!
청년2 : 거기는 자전거 도로가 유명해. 자전거 꼭 타봐.
나 : ^^


자전거 못탄단 소리는 하고 싶지 않아서 그냥 적당히 고개 끄덕이고 넘어갔다.

청년들이나 소녀들은 어느 정도 영어를 할 줄 알아서 대화가 통했는데, 이들의 어머니와 이모라는 분들은 영 대화에 끼질 못하셨다. 난 심심한 듯 앉아계신 두 분들이 마음에 걸려, 대화에 공백이 생겼을 때, 그들에게 중국인 친구들에게 배웠던 마법의 문장을 말했다.

나 : 너 이뻐요! (니 페이 창 메이!)

어머니와 이모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부끄러웠는지 고개를 절래절래 저으며 웃으셨고, 다른 사람들은 깔깔거리며 웃었다. 좀 뜬금없었나 싶었지만 다들 좋아하는 분위기다. 다행이구만.

나는 그 가족들과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나 날씨 이야기 등등을 더 하다가, 슬슬 일어나기로 했다. 가족들끼리 나들이 온 시간인데 내가 너무 시간을 잡아먹으면 안될 것 같았고, 나로써도 내일 일정을 소화하려면 오늘은 일찍 자둬야했다.

나 : 나 이제 가볼게! 마저 즐거운 시간 보내.
모두 : 응. 즐거운 여행 되길!






8.

이중제에서 숙소로 돌아가는 길을 구글로 찍어보니 큰길가로 나가서 몇번몇번 버스를 타란다. 나는 구글이 알려준 대로 버스 정류장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하도 떠들었더니 조금 목이 마른 감이 있다. 가는 길에 아직 문을 연 음료수 가게가 있길래 들렸다.

타이완엔 이런 음료수 가게가 거리 곳곳에 참 많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빽다방, 쥬시 같은 느낌이려나. 더운 나라라 다들 땀을 많이 흘려서 그런가, 거리의 매장마다 장사도 엄청 잘되는 것 같았다.

이 음료수 가게의 직원은 영어를 하나도 몰랐지만, 어떻게든 주문은 받아줬다. 나는 평범한 밀크티를 시켰다.




뾰롱. 당도를 조절 못해서 좀 덜 달긴 했지만, 맛있게 마셨다.

근데 이걸 먹으니까 홍차의 카페인 때문인지 눈이 번쩍 뜨이더라. 덕분에 살짝 피곤했던 것도 사라지고, 맨 정신으로 숙소까지 갔더랬다. 문제는 숙소에 가서도 잠이 오지 않고 말똥말똥 했다는 것이다.

아, 앙대, 내일은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한단말야. 내일 르웨탄 다녀올 건데... 으으... 이러다 늦잠자서 아무데도 못가는 건 아닌가 모르겠다! 난 말똥말똥한 눈으로 몇십분간 뒹굴거리다가, 간신히 잠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몸은 출근 시간을 기억한다! 다음날 아침 일찍 기상하여 아무런 차질 없이 여행하던 이야기부터 계속!






덧글

  • 2017/08/12 22:00 # 삭제 답글

    디저트 백화점!!
    저는 들어갔다간
    탈탈 털리고
    한시간만에 3kg정도 늘어서 나올거 같네요ㅋㅋ
    음 뭔가 사람들이 친절하네요
    enat님이라서 친절한가
  • enat 2017/08/14 08:59 #

    ㅋㅋㅋㅋ생각보다 크진 않아서 3kg까진 늘지 않을 거에요! 관광명소라길래 엄청 큰 곳인가 기대했는데 생각보다 규모가 작아서 갸우뚱 했었죠.
    대만 사람들은 원래 친절한 것 같아요!! 진짜 대만 사람들 너무 좋아요 ㅠㅠ 아 대만... 또 가고싶다아...
  • 푸른별출장자 2017/08/12 22:04 # 답글

    타이중은 아직 한국 사람에게 많이 알려진 곳은 아니지만...
    대만에서 제일 큰 한식당이 있던 (과거형- 지금은 문 닫음) 도시이기도 하고
    타이난과 타이중은 정말 부자 많기로 유명한 도시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실 타이중은 르웨탄이 아니라면 심심한 도시이기는 해요.

    오히려 타이난이나 난토우로 해서 아리샨 쪽으로 가시면 볼 것도 많고 한국 사람도 더러 발견하실 수 있습니다. 특히 벚꽃 철에는 아리샨이 한국 관광객들로 미어터진다는...

    화리엔에서 한국 관광객들 특히 자유 여행자들 많이 보았습니다.
  • enat 2017/08/14 09:02 #

    그 심심하다는 타이틀이 타이중과 잘 어울리네요 ㅋㅋㅋ 타이중에서 엄청 여유있게 지내다가 왔거든요!
    대만 친구들도 타이난을 추천하더라고요. 사실 타이중에서 아리산 다녀올까 생각도 했었는데 다들 그러지말고 다음에 타이난 갈 때 다녀오라고 해서 포기했었어요. 다음 여행지는 타이난으로!
  • LionHeart 2017/08/14 10:49 # 답글

    현지인이랑 쉽게 커뮤니케이션 하시는 것을 보니 부럽습니다. 타이완에서는 영어로 대화하시는 건가요?
    이번에도 현지인들의 친절함이 엄청나네요 -ㅁ-;; 전 어디서 이런 대우를 못받아본 것 같은데 말이죠 ;;
  • enat 2017/08/14 14:36 #

    영어로 대화합니다! 영어가 안되는 경우 손짓발짓으로 대화합니다! ㅋㅋㅋㅋ
    타이완 사람들이 대체로 영어를 잘하더라고요. 아니면 눈치가 빠르던가요. 그래서 어떻게든 말이 잘 통했어요!
    제가 워낙 위험할 것 같지 않은 인상이라 그럴 거에요! 완벽한 호구상이거든요.... 그래서 현지인들이 다가오기도 쉽죠! 호구상으로 태어나서 감사한 몇 안되는 순간...
  • 잘나가는 꼬마사자 2017/08/15 09:32 # 답글

    사람들의 친절함이 글에서도 물씬 묻어나요:) 더운 나라면 아이스크림이 많이 팔려서 화려한 가게 인상이 되나 싶기두 하고...?ㅋㅋㅋ 만두 12개 쯤이야 에그 타르트보단 낫지! 생각하는데 생각보다 크기가 큰가봐요. 저라면 그냥 다 먹었을 거에요 처리(?)할 생각은 못해보고 ㅋㅋ 여행기 읽는 거 엄청 좋아요>_<
  • enat 2017/08/15 22:35 #

    여행 중엔 현지인의 도움이나 예상치못한 친절같은 걸 받으면 오래토록 기억에 남는데, 대만에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계속 받아서 적어두지 않으면 기억하기 어려울 정도였어요! 다들 넘나 친절해서 행복했던 나라... ;ㅅ; 또 가고 싶네요.
    더운 나라다>>아이스크림 많이 사먹는다>>아이스크림 가게 부자된다>>가게 인테리어가 끝장나게 이뻐진다
    ...이런 걸까요!? 일리 있네요!!
    제가 만두 먹기 전에 아이스크림을 넘나 많이 먹었는지라 배가 불렀었어요! 평소의 저라면 저 역시 혼자 끝장낼 수도 있었을텐데 말이죠!!
    저도 덧글 보는 거 엄청 좋아합니다 >_<
  • 11thCTR 2017/08/16 20:06 # 답글

    enat님은 여행지에서 친화력 쩌시는듯요. ㅋ
  • enat 2017/08/19 08:53 #

    여행지 한정 제가 추억쌓고 재밌을라고 더 말걸고 추근덕거리고 하는 것 같습니다 ㅋㅋㅋ 평소에는 안그래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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