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8/14 11:53

타이중 (3) 지지셴 타고 힐링힐링 ├ 타이중 힐링여행 (2017)

1.

전날 걱정했던 것치곤 굉장히 이른 아침에 일어났다. 시간을 보니 한국에서 매일 기상하는 시간보다 1시간 정도 더 빠른 시간이었다. 시차를 생각하면 내 생체시계는 정확하군.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기운차게 몸을 일으키다가 천장에 머리를 박고 다시 누웠다. 아차, 캡슐형이었지.

나는 조심조심 기어나와 나갈 준비를 했다.

아침 일찍 나오니, 어제와 다른 호텔 직원이 날 맞이해주고 있었다. 저녁에 근무하던 직원은 퇴근했나보다. 그 직원은 내게 조식권이 있냐고 물은 뒤, 1층으로 내려가 오른쪽에 있는 가게로 가면 햄버거를 먹을 수 있다고 했다. 나는 고맙다고 말한 뒤 가게로 내려갔다.




뾰롱. 요 가게가 내 아침을 책임져줄 가게라고 한다.

가서 조식권을 내밀며 생글생글 웃자, 가게 주인이 알아듣고 잠시만 기다리라고 했다. 나는 몇 분 정도 가게 사진을 찍으며 기다렸다.




얼마 후, 가게 주인이 햄버거를 건네줬다. 쫀득쫀득한 떡 같은 빵에 볶은 고기와 치즈가 들어있는 버거였다. 맛은... 당연히 있었다. 보기에도 딱 맛있어 보이잖아. 

내가 갔을 땐 이른 아침이라 사람이 한 명도 없었는데, 다른 날 오후 쯤에 숙소에 뭐 가지러 가다가 이 가게를 봤는데 줄서서 사먹고 있더라. 의외로 맛집이었나 싶다. 하긴 나도 이런 가게가 집 근처에 있으면 자주 사먹으러 올 것 같다.





2.

햄버거를 야금야금 뜯어먹으며 타이중 역에 도착했다.




타이중 역은 구역사와 신역사로 나뉘어 있었는데, 신역사는 공사중이라 구역사 안쪽으로 들어가서 공사장 사잇길을 지나 신역사로 들어가야만 했다. (2017년 8월 기준)

지금 사진에 보이는 건물은 구역사.




이건 구역사를 등지면 보이는 풍경. 건물 높고. 날씨 괜찮고.




나는 열차를 타려면 신역사로 가야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모든 시스템이 중단된 낡은 구역사에서 대체 어떻게 해야 열차를 탈 수 있는 건지 한참을 고민했다. 뭐야, 왜 창구가 다 나무로 막혀있는거야...

나중에야 지나가던 어떤 사람이 안쪽으로 들어가면 신역사가 나온다고 알려줘서 그 쪽으로 갔지, 그 사람 아니었으면 구역사에서 평생 헤맬 뻔.





3.

타이중 역에서 열차를 타고 갈 곳은 얼수이(二水)라는 곳이었다. 얼수이로 가는 이유는 단 하나. 지지셴(集集線, Jiji Line)을 타기 위해서다.

지지셴은 타이중 남쪽의 얼수이 역부터 처청역까지 이어지는 구간을 말한다. 원래는 일제 치하 때 르웨탄에 수력발전소를 건설하며 필요한 자재를 운반하기 위해 개통된 노선이나, 현재는 작고 귀여운 열차를 운행하여 관광용으로 쓰이고 있다.




타이중 역에서 얼수이 역까지, 그리고 얼수이 역에서 처청 역(지지셴)까지 전부 교통카드를 사용할 수 있다. 나는 어젯밤 이중제 가는 길에 세븐일레븐에서 구매한 타이완 대표 교통카드인 이지카드를 이용하여 처청까지 이동했다.

타이중 시내에서의 교통비는 대부분 무료였기 때문에 (10km 안쪽 거리는 무료로 탑승 가능한 타이중시의 놀라운 대중교통 시스템!) 이지카드에 충전했던 돈은 이 날 처청과 르웨탄 가는 길에 다 쓴 듯 하다. 정확한 교통비는... 글쎄... 처음 카드 살 때 100TWD 넣고 생각없이 띡띡 찍고 다니다가, 금액이 모자랄 것 같아 얼수이 역사에서 또 한 번 100TWD를 넣었고, 르웨탄을 들렀다가 다시 타이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내릴 때 마이너스(선불+익명제 카드에 최초 1번뿐이지만 마이너스 금액이 찍힌다는 건 그만큼 시민들을 믿는다는 걸까)가 찍혀서 또 100TWD를 충전했었다. 타이중 시내에선 교통비가 무료였으니, 그 이후엔 충전하지 않았다. 그럼 뭐, 대충 4일 동안 교통비로 300TWD 안쪽으로 쓴 듯.





다시 열차에 탑승했던 때로 돌아가서!

열차는 제법 쾌적했다. 에어컨은 빵빵했고, 좌석은 토론토에서 봤던 ㄱ자 ㄴ자가 다양하게 섞인 형식이었다.

열차를 타고 얼수이로 다가갈수록 타이완의 소박한 시골 풍경을 볼 수 있었는데, 잠깐 내려서 수채화 물감으로 그림 그려도 좋겠다 생각이 드는 풍경이었다. 물론 여행 중인 여행자의 소지품에 수채화 물감 따위는 없어서, 그냥 그런 모습을 상상만 하고 말았지만 말이다.




내 앞 좌석에 앉아 쿨쿨 졸던 청년들. 여행중인 것 같았다. 엄청 분위기 좋고 후리해보여서 사진 찍고 싶었는데 자는 사람 함부로 찍을 순 없어서 기억해뒀다가 대충 끄적여봤다.





4.

1시간 정도 걸려 얼수이 역에 도착한 나는, 지지셴의 다음 출발 시간이 어떻게 되나 알아보기 위해 역사로 향했다.





역사에는 여러 명의 역무원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상냥한 말투로 날 도와줬던 남자 역무원과 따뜻한 미소가 매력적이었던 여자 역무원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특히 여자 역무원은, 아마 몸 어딘가가 불편한 분이셨는지 가끔씩 초점을 흐리며 인상을 쓰긴 했지만, 사람들을 상대할 때 짓는 미소가 참 예뻤다.

그 둘은 그 좁은 얼수이 역에서 날 데리고 다니며 이런저런 정보를 일러줬다.




여자 역무원 : 지지셴 시간. 이거. 이거.
나 : 그럼 다음 지지셴 열차까지... 1시간이나 남았네? 그 동안 뭘 하면 좋을까?
남자 역무원 : 음... 여기 볼만한 게...


여자 역무원과 남자 역무원의 아이 컨택트. 그리고 곤란한 웃음.

남자 역무원 : 어... 저기... 역에서 나가서 쭉 가면... 음료수?
여자 역무원 : 웅... 차, 쥬스, 등등...


타이완에 음료수를 팔지 않는 골목도 있나. 음료수를 추천해줄 정도라면 이곳엔 정말 뭐가 없나보다. 나는 이해했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음료수를 사먹으러 나갔다.




날씨는 푹푹 찌고 태양은 뜨거웠지만, 하늘이 예뻐서 다 용서되는 날씨였다. 반대로 말하면 용서될 정도의 더위였다. 8월 초의 대만은 8월 초의 한국보다 덜 더운 느낌이었다.




역사 밖에선 개가 그늘에 누워 드르렁거리고 자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흠칫하고 깨어났으나, 이내 다시 고개를 눕히고 잠을 청했다. 왠지 쿠바에서 봤던 더위 먹은 개들이 생각나는 광경인데.





개들을 지나쳐 역 앞 시장 쪽으로 향했다. 시장은 정말 작았고, 그냥 동네 주민들의 생필품 같은 것들을 간단히 팔고 있었다.




나는 시장거리 곳곳에 있던 음료수 가게 중 아무데나 들어가 차가운 티를 시켰다. 빨대로 쪽쪽 빨아먹으니 갈증이 풀렸다.

음... 이제 뭐하지?

더 돌아다닐까 했으나 뒷목이 너무 뜨거웠다. 내 검은 머리는 태양열을 미친듯이 흡수하고 있었다. 나는 그냥 역으로 돌아가 열차를 기다리기로 했다.





역사에선 탈탈거리는 선풍기만 돌아가고 있었다. 나는 선풍기 바람이 잘 오는 플라스틱 의자에 앉았다. 가끔씩 허벅지에 땀이 차서 다리를 들면, 의자에서 쩍쩍하고 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흠냐. 덥군.

하지만 기분은 좋았다. 나는 지금 더운 여름 대만의 어느 시골 역사에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어. 그냥 그 사실만으로 기분이 참 좋았다.





5.

어느새 지지셴 열차가 들어왔다. 내가 일어나기도 전에 여자 역무원이 뛰쳐나와 저거 타면 돼! 라고 말해줬다. 나는 고마워하며 그 플랫폼으로 이동했다.




플랫폼 이동할 때 지하도에서 찍은 사진.




열차를 타기 전 얼수이 역을 돌아보자 여자 역무원이 손을 흔들어주고 있었다. 나도 손을 마주 흔들자 브이를 보낸다. 사진을 찍어달라는 건가? 사진을 찍어주자 손을 마저 흔들더니 자신의 일을 하러 들어갔다.

웃는 모습이 참 예쁜 역무원이었다.




지지셴 열차는 2량으로 되어 있었다. 생각보다 작군.

나는 어느 자리가 명당일까 고민하며 그 좁은 열차를 한바퀴 돌았는데, 돌고나니 빈자리가 그새 다 차버렸다. 아니 뭐야. 이 열차를 위해 한시간을 기다렸는데 결국은 서서 가야하나.

이왕 서서 가는 거 전망 좋은대로 가자 싶어서, 맨 앞쪽으로 갔다. 그런데 오 럭키! 아무것도 없을 것 같던 맨 앞쪽 조종석 옆 공간엔 작은 좌석 두 개가 있었던 것이다. 그 자리엔 할아버지 한 분 빼곤 아무도 없었다. 난 할아버지께 옆에 앉아도 되냐고 여쭤봤고, 할아버지는 선뜻 그러라고 하셨다.




요로케 앉음! 히히. 덕분에 명당자리에서 편하게 앉아서 풍경 구경하며 갔다.

























느릿하게 흘러가는 시간과 철커덩거리는 기차 소리. 눈 앞으로 지나가는 시골 풍경에 마음이 고요해졌다. 힐링힐링한 시간이었다.





6.

지지셴에서 관광객들이 많이 찾을 만한 마을은 지지셴 중간에 있는 지지와 지지셴 종착역인 처청 둘 정도다. 나도 두 마을 다 찾고 싶었는데, 오늘 오후에 르웨탄까지 가려면 시간이 안 될 것 같아 지지는 건너뛰고 처청까지 갔다.




그런데 그 지지에서 많은 관광객들이 탑승했다. 아마 이전 열차에서 지지에 내려 마을을 둘러보고 다시 처청으로 가는 사람들인가보다.

그 사람들 중엔 어린애들도 있었다. 어린애들은 그 나이답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조종석 옆자리로 곧바로 뛰어와 앞쪽 문에 달라붙어 경치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나이는 한 6살... 7살 정도 된 것 같은데, 으으 넘나 귀여운 것이다.

나는 조카생각에 어린애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여기 앉으라고 자리를 비켜줬다. 어린애들의 아버지, 이모 등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손사래를 치며 괜찮다고 했지만, 나는 애기들이 귀여워서 그렇다고 우기며 기어코 비켜줬다.

고 애기들의 이름은... 뭐라고 했는데 까먹었다. 중국어 이름은 참 어려운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주워들은 중국말인 귀엽다 예쁘다 사랑스럽다 등등의 말을 했고, 당연하지만 애기들보다 애기들의 부모님들이 더 좋아했다. 그들은 내 신상에 대해 물었다.

아버지 : 여기서 공부하니?
나 : 아니. 여행자야.
이모 : 오! 혼자서? 대단해. 멋진 인생이야.
나 : 하하. 고마워. 너희도 여행자야?
아버지 : 응. 이거 경찰 연수 여행이야. 시간 되는 가족들 다 데리고 왔지!


....!? 경찰?

나 : 경찰? 그럼 너 경찰이야?
아버지 : 그럼 이거 봐.


그러면서 지갑에서 경찰증을 꺼내어 보여주는 것이었다.

나 : 우와! 좀 무서워지는데.
아버지 : 왜? 하하. 널 체포하진 않을거야. 무서워하지마.


원래 대부분의 선량한 시민들은 경찰을 무서워한단 말이지. 흠흠. 자리 비켜주길 잘했다.

그렇게 수다를 떠는 동안, 열차는 금새 종착역인 처청역에 도착했다. 그들도 처청역에서 내릴 준비를 했지만, 다른 경찰들과 단체로 움직이기 위해 모이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방해가 되지 않게 먼저 나가있기로 했다. 내가 즐거운 여행을 하라며 손을 흔들자, 그들은 잠깐만 기다리라고 했다.

이모 : 왜에! 이렇게 만난 것도 기념인데 사진 찍어야지!
나 : 아... 그런가?
아버지 : 응. 그렇지. 거기 서봐.


그러더니 자신들의 폰으로 나와 애기들을 찍는 경찰 아저씨. 그리고 내 카메라를 낚아채어 내 것으로도 사진을 찍는 것이었다. 깜짝이야. 내 카메라 압수하는 줄.

아버지 : 그럼 즐거운 여행 되라구!
애기들 : 바이바이!





사진 한 장을 내 카메라에 남긴 채 헤어진 경찰 아저씨네 가족들. 타이완 사람들은 왜이리 만나는 사람들마다 따뜻하고 살갑기 그지 없을까. 나는 미소를 감추지 못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처청 마을을 향해 걸어갔다.



처청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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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잘나가는 꼬마사자 2017/08/15 09:35 # 답글

    티머니도 처음 한번은 마이너스 되지 않았어요? 카드로 찍고 다닌지 넘 오래되서ㅠㅠㅋㅋ 경찰은 뭔가 항상 보면 몸이 긴장하는 거 같아요 분명 잘못한 거도 없는데 전생에 지은죄가 많은 걸까요 ㅋㅋㅋ 숙소 근처의 맛집은 여행의 행복도를 확 올려주는 것 같아요! 저는 파리에서 빵집을 잊을수가 없습니당ㅠㅠ 매번 갈때마다 위치를 못바꾸는 이유... 그 빵 먹으러고.....
  • enat 2017/08/15 22:21 #

    !!!
    사실 단 한번도 티머니를 써본적이 없어서 @.@ 버스카드란 걸 국민후불카드로 시작해서 여전히 그걸로 쓰고 있어서 몰랐습니다. 티머니도 마이너스가 찍히는군요!? 저는 대만에서 돈 모자라니까 현금 내야겠다 하고 주섬주섬 현금을 준비해놨었는데 마이너스가 찍혀서 엄청난 충격을 받았더랬습니다.

    아니에요! 소시민이라면 경찰을 두려워하는게 당연하다고 누가 그랬어요! 경찰보고 짭새라 칭하고 개기는 분(?)들이 무서운 분들이고! 경찰을 무서워하는건 당연한 반응입니다.

    저는 아직도 파리를 가본적이 없어서... 혹시라도 가게 되면 그 빵집을 알아가야겠군요. 쿄홓홓
  • Tabipero 2017/08/15 13:38 # 답글

    그리운 전원 풍경이라고 생각하며 보다 보면 야자수가 이국적인 느낌을 자아내네요.
    저런 한가로운 로컬선 구경을 해 본지도 오래 되었습니다.
  • enat 2017/08/15 22:27 #

    야자수가 잔뜩 심겨있는 풍경은 우리나라에선 볼 수 없는 풍경이라 (지구가 더 더워지면 몇십년 뒤엔 보게 될까요...) 인상적이었어요. 덕분에 야자수만 보이면 계속 셔터를 눌러댔네요. 제대로 나오지도 않는데 말이죠 ㅋㅋㅋ
    우리나라엔 저런 로컬선이 이젠 없지 않나요? 국내 열차라고 하면 이젠 KTX와 ITX밖에 떠오르지 않네요 ㅋㅋㅋ
  • LionHeart 2017/08/16 14:15 # 답글

    와 교통비 무료...여행자에게는 정말 꿀맛같은 시스템이네요.
    이번 여행기에서도 누구와도 친해질 수 있는 enat님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에 감탄하고 갑니다. 경찰하고도 친해지다니!
  • enat 2017/08/19 08:52 #

    버스타는데 아무런 부담이 없더라고요! 잘못타도 다시 타고 돌아오면 되니까... 나중에 사귄 친구에게 왜 공짜로 해주냐고 물었더니 우리가 오토바이나 자차 안타고 버스를 타고 다니면 그만큼 환경이 보전되니까 무료로 해주는 거라는 말을 하더라고요. 오오 타이중...
    경찰인줄 몰랐어요! ㅋㅋㅋㅋㅋㅋ 경찰인줄 알았으면 먼저 피했을거에요! ㅋㅋㅋㅋㅋ
  • 11thCTR 2017/08/16 20:14 # 답글

    .. 경찰을 무서워하니 선량한 사람이겠죠. ㅋ
  • enat 2017/08/19 08:53 #

    그쵸!? 대부분의 선량하고 착실한 소시민은 경찰을 무서워하기 마련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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