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9/13 11:57

타이중 (8) 웨이와 펑자 야시장 └ 타이중 힐링여행

1.

타이중의 펑자 야시장(펑지아 야시장, 逢甲夜市)은 타이베이의 스린 야시장과 쌍벽을 이루는 타이완의 거대 야시장이다. 펑자 야시장을 내 짧은 어휘력을 발휘하여 표현하자면 다음과 같다. 음식, 무지 많다. 사람, 무지 많다. 규모, 무지 크다. 눈에 보이는 단어는 오직 한자. 귀에 들리는 소리는 오직 중국어. 아이고 정신없어라.

다른 포스팅에서도 몇 번 밝혔지만, 나는 맛없는 음식점을 골라 들어가는 저주받은 능력이 있으며, 자매품으로 유명한 맛집에 찾아가도 맛없는 메뉴를 골라버리는 눈물 나는 능력이 있다. 덕분에 그렇게 많은 여행을 다녔지만, 혼자 뭔가 맛있는 걸 제대로 먹어본 경험은 손에 꼽을 정도다.

게다가 나는 중알못이다. 메뉴를 암만 들여다봐도 까막눈인 나로썬 대체 어떤 음식이 맛있는지 모르겠다. 아니 아예 야채메뉴인지 고기메뉴인지 매운지 달달한지 시큼한지도 모르겠다. 알 수 있을리 없지. 내가 아는 중국어는 "너 졸라 잘생겼어!" 뿐이니.

그런 내가 펑자 야시장에 혼자 갔다면?

아마 나는 옛날 개그 만화에 나오는 빙글빙글 눈을 내 안면에 이식한 채로 무수한 인파에 치여 어버버하며 다니다가 이상한 음식만 잔뜩 먹고 엄한 곳에 화풀이나 했을 것이다. 혼자였다면 말이다.





2.

하지만! 이 날의 내겐 웨이가 있었다. 그냥 웨이도 아니다, 웨이X2, 웨이웨이다!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웨이는 타이중에 제법 와본 적이 있어서 - 친척이 산다고 했다 - 펑자 야시장을 잘 알고 있었고, 그 덕분에 나는 완벽한 일일 가이드를 얻은 기분이었다. 나는 어지럽게 적혀있는 중국어 간판 아래를 거침없이 파고드는 웨이를 보며 뒤에서 만족스럽게 웃었다. 웨이는 그런 날 돌아보더니 빨리 따라오라고 손짓을 하다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웨이 : 너 중국어 할 줄 알아?
나 : 에이, 알면 너랑 중국어로 얘기했겠지!
웨이 : 그럼 대체 혼자 여행을 어떻게 다니는 거야?


나는 웨이에게 칫칫칫 손가락을 흔들었다.

나 : 웨이! 너는 이미 알고 있잖아!
웨이 : 어?
나 : 나는 스페인어를 1도 모르는데 남미를 여행했다고.


웨이는 그 때가 떠올랐는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여전히 신기한 표정이었다. 어떻게 언어를 모르는데 그 나라를 여행할 수 있을까 하는 표정. 하긴, 영어, 중국어, 스페인어에 능통한 그로썬 말이 안 통하는 지역에서 여행을 다닌다는 게 생소하겠지. 내겐 그 편이 더 신기하지만 말이다.

나 : 어쨌든! 나는 언어는 잘 몰라도 인복은 있어서 어딜 가도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다고. 이것 봐! 오늘은 내게 네가 있잖아!
웨이 : 하하하! 그래. 오늘은 내가 도와줄게. 그럼 먹을 준비는 됐지?






3.

펑자 야시장 초입에서, 웨이는 목이 마르니까 음료수부터 마시자고 했다.

웨이가 데려간 곳은 펑자 야시장 어딘가의 파파야 우유(무과니우나이, 木瓜牛奶)집이었다. 파파야 우유라니! 맛있는 거 + 맛있는 거 = 아주 맛있는 거다! 나는 좋다고 박수를 치며 파파야 우유를 주문했다.

이어서 계산을 하려는데, 웨이가 아무렇지도 않게 지갑을 꺼내어 내 것까지 돈을 내려고 했다. 응? 그럴 순 없지. 싱위가 타이완에선 미안한 사람한테 맛있는 거 사주는 거랬는데. 그렇다면 내가 사야한다고!

나 : 웨이. 내가 낼 거니까 넣어둬.
웨이 : 하하하. 이 정도는 내가 살 수 있어.
나 : 아냐! 내가 사준다고.
웨이 : 하하. 내가 산다니까.
나 : 내가 사준다고오! 나 돈 많아!
웨이 : 아니, 괜찮다니... 우엌... 잠깐...


나는 당황해하는 웨이를 밀친 뒤 그를 필사적으로 디펜스하며 종업원에게 내 돈을 건넸다. 그러나 종업원은 내 돈을 받더니 멀뚱멀뚱하게 웨이를 쳐다보는 것이었다. 아니 왜 이래!? 빨리 계산을 해달라고! 그 멀뚱멀뚱한 종업원에게 웨이는 자신의 돈을 건네려고 했다. 안 돼! 내가 살 거야! 나는 그의 팔을 나꿔채어 이상한 각도로 틀었다.

웨이 : 으아앜, 이게 무슨 짓...
나 : 내가! 내가 산다고! 가만히 있어!
웨이 : 아니, 이 팔 좀, 여기 돈... 잠깐, 내 팔, 으읔...


종업원은 이게 대체 어떤 상황인가 갸웃거리며 우리의 싸움(?)을 구경했다. 아니, 저 종업원은 왜 하라는 계산은 안 해주고 우리를 구경하는 거야! 웨이는 포기를 모르는 듯 자신의 돈을 종업원에게 건네주려고 했다. 이 자식! 내가 산다니까! 얼른 내 돈으로 계산을 하란 말이지!

당연하지만 질량이 두 배가 되어버린 웨이를 내가 힘으로 이길 순 없었다. 어느새 정신을 차린 웨이는 그새 내 팔목을 제압(?)했고, 한숨을 돌린 듯 땀을 닦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진풍경이었을 것이다. 팔목이 붙잡힌 채 우앙 내가 살거야 우아아앙 소리치고 있는 나, 그리고 그 꼴을 어딘가 신기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종업원, 뭔 일인가 몰려들어 구경하는 행인들...

웨이는 주스 하나를 사먹으려는 것 뿐인데 이게 웬 소란인가 싶었는지, 골치 아프단 표정으로 여전히 우아앙 거리는 내게 소리쳤다.

웨이 : 리! 우리 돈을 덜 냈어! 계산하려면 내가 들고 있는 돈까지 내야 돼!

...


......어?


나는 우아아앙 거리던걸 멈추고 웨이를 빤히 바라봤다.

나 : 아, 나 돈 적게 낸 거야?
웨이 : 그래!
나 : 그럼 아까부터 네가 건네주려던 그 돈이... 그 돈이었어?
웨이 : 그래!
나 : ......


난 그럼 내가 쏘겠다고 말하면서 모자란 돈으로 계산을 하려고 했던 거야!? 그리고 그 모자란 돈을 메우려는 웨이를 필사적으로 막은 거야!? 우아아아앙 종업원이 뭐라고 생각했을까!! 겁나 부끄럽다!!

나는 난데없는 난투극을 벌인 부끄러움과 종업원의 일을 방해한 것에 대한 미안함과 웨이에게 미안할 짓을 하나 더 추가해 버린 자괴감과 암산에 대한 자부심 무너짐 등등의 감정으로 인해 몸을 가누지 못하고 주저앉아서 끙끙거렸다. 으아, 얼굴 화끈거려!




곧 파파야 우유가 나왔다. 그 사이 웨이가 종업원에게 방금 있었던 일을 설명했는지, 웨이와 종업원이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주저앉은 날 바라보고 있었다. 웃지마, 웃지말라고... 빨리 이 자리를 뜨고 싶다...

나는 격렬한 운동(?) 덕분인지 목이 말라서 파파야 우유를 금방 해치워버렸다. 덕분에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마셨다. 맛있는 거 + 맛있는 거 = 무지 맛있는 거... 일 텐데... 허겁지겁 마셔서 뭔 맛인지도 몰랐던 건 조금 슬프군.





4.

웨이는 풀이 죽은 내 눈치를 보며 말했다.

웨이 : 다음으로 먹을 건 말야. 엄청 맛있는 건데 말이야.
나 : ...엄청 맛있는 거! 뭔데뭔데?


엄청 맛있는 거라는 단어를 듣고 수치심에서 빠르게 회복한 나는 웨이가 가는 대로 졸졸 따라가며 물었다.

웨이 : 핫도그야. 대만식 핫도그. 따창바오샤오창.
나 : 따... 뭐? 이름 어렵네. 맛있어?
웨이 : 맛있어. 너 엄청 좋아할걸.





웨이가 데리고 간 핫도그 집 따창바오샤오창(大腸包小腸)은 대기줄이 있었다. 웨이는 내 눈치를 보며 줄서서 기다려볼까 하고 물었고, 나는 핫도그란 음식이 그렇게 오래 걸리는 게 아니니 기다리자고 했다. 웨이는 이거 진짜 맛있을 거라고, 기대하라고 했다.

예상대로 그리 오래지 않아 우리 차례가 왔다. 나는 이번에야말로 내가 사겠다며 지갑을 꺼냈지만, 웨이는 이미 예상했다는 듯 그보다 더 빠르게 계산대 앞을 사수했다.

나 : 비켜! 내가 살 거라고!
웨이 : 리. 한국에서는 보통 나이 많은 사람이 음식을 사지 않나? 그리고 나는 너보다 나이가 많아.
나 : 여긴 타이완이야! 한국 이야기는 한국에서 하라고!


나는 웨이를 끌어내고 계산대 앞에 서려고 했지만, 웨이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내가 튕겨져나갔다!

웨이 : 네가 살찐 나를 끌어낼 수 있을 것 같아?

웨이는 자신만만하게 계산대 앞을 사수했다. 아까 같은 기습 공격도 통하지 않았다. 뭐야 이 막강한 방어력은? 도저히 상대할 수가 없다!

결국 나는 웨이가 계산하는 모습을 무력하게 바라보아야만 했다...




웨이가 의기양양하게 사준 대만식 핫도그 따창바오샤오창.

웨이 : 뜨거우니까 조심하라고.
나 : 한국 사람들은 뜨거운 거 잘 먹어. 우린 팔팔 끓는 상태의 찌개를 매일 저녁 먹는다고... 앗 뜨거!
웨이 : 조심하라고.


나는 뜨거운 핫도그를 후후 불어가며 겉모습을 훑기 시작했다. 어디보자, 빵에 소시지가 껴져있는 모양새는 그야말로 평범한 핫도그군. 핫도그라면 토론토에서 돈 없을 때 밥 대신 엄청 많이 먹었는데. 핫도그 고렙이라고, 이 몸께서 말야. 웬만한 핫도그로는 그렇게 쉽게 만족할 수 없는데, 이 녀석은 어떨까? 어디 한 입.

...

......!!!!

나 : 뭐야 이거!?
웨이 : 왜? 이상해?
나 : 뭐야 뭐야 이거!? 웨이, 맛있어가 중국어로 뭐지?
웨이 : 응? 하오츠.
나 : 하오츠! 하오츠 하오츠! 겁나 맛있잖아!


이건 평범한 핫도그가 아니었다. 소시지도 맛있었지만 그보다도 소시지를 둘러싸고 있는 부분! 그냥 하얀 빵이라고 생각했는데 빵이 아니었다! 엄청 야들야들하고 부드러우면서 쫀득쫀득한 이 식감... 그걸 석쇠 위에서 적당하게 익힌 맛... 우와, 이 하얀 부분이 진짜 맛있다!

나 : 이거 빵이 아냐! 이거 뭐야?
웨이 : 아, 그거. 뭔지 알게 되면 싫어할 텐데.
나 : 뭔데, 뭔데?


웨이는 자신의 배를 만지작거리며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말했다.

웨이 : 듣고 놀라지 마, 이건 돼지 창자에 찹쌀을 넣은 거야! 창자! 내장에!

...

뭘 놀라?

순대잖아 그거?

나는 별 것도 아니라는 듯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나 : 에이, 창자가 뭐! 한국에서도 창자 정도는 먹는다고.

웨이는 제법이란 표정을 지었다.

웨이 : 그래? 한국에서도 내장을 먹는단 말야?
나 : 응! 한국에서 순대 안 먹어봤어?
웨이 : 누가 데려가서 소개해줬으면 먹었을 텐데 말이지.
나 : ...으라차차차! 다음 음식은 내가 사겠어! 아니 앞으로 남은 음식은 내가 다 사겠어!


죄송합니다... 너무 즐거운 나머지 제 죄를 잊을 뻔 했네요...

하여간 저 소시지의 어려운 이름 "따창바오샤오창"은, 음식 그대로를 설명하는 이름이라고 한다. 따창(대장, 그러니까 여기 선 찹쌀순대)으로 샤오창(소장, 그러니까 여기선 소시지)을 바오(싸먹는 빵)했다고.

한국에서도 따창바오샤오창을 팔면 완전 자주 사먹을 것 같은데. 대만에 다녀온 지 한 달 정도 지났지만 여전히 생각나는 맛이다. 음음. 이거 진짜 맛있었어. 별 다섯 개 추천 꽝.





5.

웨이 : 그러고 보니, 취두부는 먹어봤어?
나 : 취두부? 그게 뭐야?


웨이 왈, 취두부(臭豆腐)란 '엄청 냄새가 고약하지만 맛은 괜찮은 발효 두부'라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먹긴 힘들 거라면서 넘어가자고 했다.

웨이는 나를 알고 저렇게 이야기한 걸까, 아니면 모르고 저렇게 이야기한 걸까.

내가 먹기 힘들 거라니.

내가 먹기 힘들 거라니!

그런 말을 듣고 어떻게 안 먹을 수가 있어!

내 맛의 스펙트럼을 무시하지 말란 말이다. 난 발효 음식 짱 좋아한다. 한국은 김치와 청국장의 나라란 말이지. 어릴 적 할머니 집에 가서 청국장 말리는 방에 들어가 청국장과 함께 포근하게 잠들곤 했던 나였다고! 냄새가 고약하면 얼마나 고약할까! 가자, 취두부를 먹으러!

나는 웨이의 "네가 먹긴 힘들 거야"라는 말에 쓸데없이 자극받아 취두부에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웨이는 네까짓 게 먹을 수 있을까 하는 태도를 고수했고, 나는 더욱더 불타올라 빨리 취두부집으로 안내하라고 성질을 부렸다.




웨이 : 그렇다면 어디보자, 저기 괜찮은 집이 있네.
나 : 좋아! 이건 내가 살 거야! 비켜!


웨이가 가리킨 음식점으로 우다다 달려가 돈부터 내민 덕에, 이번 음식은 내가 살 수 있었다. 물론 나는 어떻게 주문해야할지 알 수가 없어서 주인에게 무턱대고 돈만 내밀었기에, 주문은 뒤에서 한숨을 쉬며 달려온 웨이가 했다.




곧 상자에 취두부가 담겨져 나왔다. 웨이는 이 외국인이 취두부 냄새에 어떻게 기겁하나 기대하며 나를 바라봤지만, 의외로 냄새는 심하지 않았다. 뭐야, 고약한 냄새라며? 그렇게까지 나쁘지 않은데? 나는 웨이를 향해 아무렇지도 않다고 말했고, 웨이는 준비한 폭죽이 불발이 된 듯 한 표정으로 날 보며 실망해했다. 물론 냄새가 진짜 고약했더라도 쎈 척 하기 위해 티를 내지 말아야지 다짐은 하고 있었지만, 이건 쎈 척도 아니었고 진짜 그냥 괜찮았다.

내가 비염이 있어서 냄새를 잘 못 맡긴 하지만... 그래서 그랬나?

웨이 : 냄새가 괜찮다니... 그렇지, 맛은 어때?
나 : 오물오물. 오. 괜찮다. 겉은 바삭거리고 속은 촉촉해. 양념 맛도 좋고!
웨이 : 네가 좋다니 다행이긴 한데...


좀 놀라는 척이라도 해줄 걸 그랬나? 나는 뭔가 못마땅한 눈치의 웨이를 보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고 취두부를 해치웠다.





6.

취두부를 먹으며 야시장을 둘러보다가, 해산물 파는 가게를 발견했다.




내가 해산물 가게를 바라보고 있자, 웨이는 먹어보고 싶냐고 물었다.

나 : 응! 나 해산물 좋아하거든.
웨이 : 해산물을? 의외네.
나 : 의외라니? 내 고향은 항구도시라고.


웨이는 그러냐며 음식을 주문했다. 웨이가 취두부 상자를 들고 있어서 그에겐 손이 없었고, 그 덕에 이번에도 내가 음식을 살 수 있었다. 웨이는 계속해서 자기 주머니에 있는 지갑을 꺼내라고 외쳤지만, 나는 어떻게 외간 남자의 주머니를 뒤질 수 있냐며 그의 말을 무시했다.

해산물 가게에선 번호표를 나눠주고 있었다. 웨이는 우리가 들고 있는 번호가 19라며, 저기서 19를 부르면 음식을 받아오라고 내게 알려줬다.

웨이 : 근데 19가 중국어로 뭔지는 알아?
나 : 어휴, 설마 그것도 모를까봐? 나 중국어로 숫자 정도는 셀 줄 알아! 이얼산쓰!


그러면서 1부터 10까지 (힘겨워하며) 수를 세자, 웨이는 놀라워하며 중국어를 배운 거냐고 물었다. 나는 예전에 잠깐 학원에 다녔다가 회사를 때려친 바람에 돈이 없어서 중간에 학원도 때려치웠다고 얘기한 뒤, 학원에서 배운 또 하나의 문장이 있다며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나 : 나는 한국인입니다! (중국어)
웨이 : 그리고?
나 : 어? 어... 그게 다야.
웨이 : 흠. 그거 알아? 사실 네가 한국인인 건 한국인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다들 알 거야.
나 : ......
웨이 : 전혀 쓸데없는 문장만 배웠군.


이이이익!




그 앞에서 취두부를 다 먹은 후에야 조개(바지락인가? 사실 조개랑 바지락 구분을 잘 못한다. 그냥 조개라고 하자)찜이 나왔다. 갈릭 버터를 발라 은은하게 마늘 향이 풍기는 찜이었다. 조개도 알맞게 익어서 부드럽게 씹혔다. 강한 양념의 취두부를 먹다보니 담백한 게 끌렸었는데, 마침 이 은은한 향의 조개찜이 그걸 해소해줬다. 매우 좋군!

웨이 : 먹을 만해?
나 : 하오쯔! 해산물이 맛없을 리 없지!






7.

내가 조개찜을 워낙 맛있게 먹는 바람에, 웨이는 한두 개 정도밖에 먹지 못했다. 내가 도중에 먹는 것을 멈추고 그에게 몇 번이나 권했지만, 웨이는 굶은 여동생을 보는 듯한 측은한 눈으로 그냥 너 많이 먹으라고 했다. 흠. 그럼 사양않고.

웨이는 나보고 배가 부르냐고 물었고, 어느 정도 배가 찬 나는 이제 디저트류를 먹고 싶다고 했다. 웨이는 이미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웨이 : 디저트로는 고구마볼이 좋겠어. 이게 뭐냐면...
나 : 그거 알아! 나 그거 아까 싱위랑 먹었거든.
웨이 : 뭐! 벌써 먹었다고?


웨이는 잠시 고민하다가, 그래도 야시장의 고구마볼이 더 맛있을 거라며 또 먹으러가자고 했다. 나는 아까 우웨이챠오탕에서 먹었던 맛있는 고구마볼을 떠올리며, 마침 한 번 더 먹고 싶었는데 잘됐구나 싶어져서 가보기로 했다.




웨이가 데려간 고구마볼 가게는 줄이 꽤 길었다. 맛있기로 소문난 집인가 보다. 여태껏 먹기만 해서 배가 어느정도 채워진 우리로썬 음식을 서둘러 먹을 필요가 없었고, 그래서 느긋한 마음으로 기다리기로 했다.

웨이 : 리. 이번엔 네가 주문을 해봐.
나 : 좋아. 뭐라고 하면 돼?


웨이는 내가 할 말을 알려줬다. 그래서 최대한 비슷하게 따라했더니, 제법 괜찮은 발음이라며 칭찬해줬다. 하핫! 내가 좀 중국어에 소질이 있는 편이지! 음과 리듬을 잘 타거든! 의기양양해진 나는 웨이에게 다른 문장도 배워서 재잘재잘 따라해댔다. 그러다가 정작 주문할 땐 처음에 배운 문장을 까먹어서 결국 웨이가 주문해야만 했다.

웨이 : 소질은 있으나 기억력이 좋지 않은...
나 : 시끄러워!





이건 주인아저씨가 비닐 봉투에 담아준 귀여운 고구마볼!

웨이 : 어때?
나 : 맛있어.
웨이 : 그 싱위라는 자와 카페에서 먹은 고구마볼이 맛있어, 아님 이게 더 맛있어?


둘 다 똑같은 고구마볼인데... 예의상 더 맛있다고 해줘야하나?

나 : 뭐... 음... 이게 더 맛있어.
웨이 : 그럴 줄 알았어!


웨이가 만족해하는 걸 보고 잘했구나 싶었다.





8.

웨이와 야시장을 누비며 실컷 먹은 뒤, 왔던 길로 다시 빠져나가는데, 아까는 보지 못했던 특이한 가게를 발견했다.




그 가게의 작은 수조에선 살아있는 새우가 헤엄치고 있었다. 내가 헤엄치는 새우들을 빤히 바라보자, 옆에 있던 웨이는 그 가게가 "게으른 사람들을 위한 새우가게"라고 설명했다.

나 : 왜 게으른 사람들을 위한 거야?
웨이 : 껍데기를 벗겨주거든. 먹기 편하게.
나 : 오!


새우 껍데기 까먹는 게 얼마나 귀찮은데! 그걸 까주다니, 이런 착한 가게가 다 있나! 나는 웨이에게 우리도 게으른 사람들이 되자고 말한 뒤, 신이 나서 새우를 주문했다. 새우! 새우! 새우는 늘 옳지!

그러자 주인아저씨가 살아있는 새우들을 꺼내어 하나하나 꼬치에 꽂기 시작했다. 꼬치에 관통당해 꿈틀거리는 새우들은 곧 불판에 올려졌다. 새우들은 불판 위에서 괴로운 듯 마지막 몸부림을 치다가, 서서히 굳어갔다...




나 : 웨이, 새우가, 새우가 죽어가고 있어!
웨이 : 죽는다고 하지마! 그들은 먹기 좋게 조리되는 거야.
나 : 하지만... 새우가 우리 때문에...
웨이 : 더 이상 말하지마.


우리가 쓸데없는 대화를 하는 사이, 그 새우들은 먹음직스럽게 구워졌고, 아저씨는 우리에게 구워진 새우들을 건넸다.

나 : 어쩐지 미안해지는데...
웨이 : 맛있게 먹자고! 그게 이 새우들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야.





게으른 사람들을 위해 희생된 새우... 숙연한 분위기 속 한 입 베어 문 새우는 엄청 맛있어서 다섯마리를 한큐에 끝냈다. 젠장, 이렇게까지 맛있을 줄이야... 너희들... 고맙다... 냠냠.





9.

웨이 : 이제 빙수를 먹자. 여기 어디에 유명한 빙수집이 있다고 하더라.
나 : 뭐, 또 먹자고? 배 안 불러?
웨이 : 뭐, 배가 벌써 부르다고?






아직도 무언가를 먹을 수 있다는 웨이가 검색해서 찾아간 집은 大甲芋頭城라고 하는 가게였다. 타로가 들어간 빙수로 유명한 곳이랬는데, 나는 이미 배가 엄청나게 불러서 타로가 들어갈지 의문이었다.

나 : 웨이. 나는 배 엄청 부른데. 남기면 어떡하지?
웨이 : 그래? 그럼 맛만 봐. 나머진 내가 다 먹을게.


남미에서 만난 웨이가 그런 말을 했다면 코웃음쳤을 텐데, 지금의 웨이웨이가 그런 말을 하니 믿음직하다.

나 : 좋아! 먹자!




주문한 빙수. 이건 웨이가 샀다.

타로 빙수 가게는 사람이 엄청나게 많았다. 에어컨도 안 나오는 시장 구석의 가게가 왜 이렇게 인기가 많은가, 정말 맛이 있나 기대했는데, 내가 배가 불러서 그랬는지 맛은 그냥 그랬다. 평범하게 갈린 얼음 위 타로와 떡, 망고와 팥... 토핑이 식사 대용이라고 해도 될 만큼 배부른 것들만 모여있던 걸 빼놓곤 특별할 건 없었는데 말이지.

웨이 : 엄청 맛있는데. 더 안 먹어? 내가 다 먹는다?

...역시 내가 배가 불러서 그랬나? 웨이는 정말 맛있게 먹더라.





10.

나 : 배 무지무지 불러!
웨이 : 소화시킬 겸 쇼핑할래?
나 : 좋아!







그래서 우리는 늦게까지 쇼핑을 했다. 유명한 펑리수 가게에서 예쁘게 포장된 펑리수도 구입했으며, 나중에 포스팅할 '썬케이크'를 위해 오만 군데의 편의점을 순례하기도 했다. 어느새 시간은 자정을 넘겼고, 웨이는 졸려서 눈이 반쯤 감긴 나(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착한 어린이라 11시만 넘어져도 사고가 느려진다)를 호텔까지 데려다줬다.

나 : 음, 만난 지 얼마 안됐는데. 먼저 들어가서 미안. 하암.
웨이 : 내가 너무 늦게 왔잖아. 내일 비행기 시간이 언제였지?
나 : 내일 11시!
웨이 : 그럼 아침은 같이 먹을 수 있겠네. 내일 아침에 봐!
나 : 음냐. 내일 봐~


그리곤 호텔로 들어가 대충 씻고 침대 위에서 뻗었다. 그러다가 새벽에 깼다. 아직 졸린 눈을 꿈뻑이며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웨이는 어디서 자는 거지?

...친척집에 가서 자는 건가?

...아니면 숙소 예약이라도 했나?

...내일 아침에 언제 보지?

...아침 11시 국제선이면 2시간 전엔 가야 할텐데 아침을 같이 먹을 수 있나?

뭐 그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다보니 잠에서 깨어났다.

근데 얘 진짜 어디서 자는 거지? 왜 아까는 그 생각을 못했지? 나 그렇게 피곤했나? 웨이는 나 때문에 타이베이에서 퇴근 후에 타이중까지 온 건데 정작 난 그가 어디서 자는지 신경도 안 썼다니. 반성하라, 나만 생각하는 나 자신...

반성할 일이 하나 생기자, 더 반성해야할 일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나 아직 웨이에게 미안하단 말도 안했단 말이지. 어제 너무 재밌게 노느라 말하는 걸 까먹었다... 아니, 핑계다. 까먹었다기보단 분위기가 좀 안맞기도 했고, 내가 무진장 부끄럽기도 했고... 뭐 그래서 어물쩡 넘어가버렸다.

어쩌지? 아침에라도 얘기할까? 나 너한테 엄청 미안하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나는 아침에 웨이에게 미안하단 말을 하는 나 자신을 상상했으나, 음, 아무래도 무진장 부끄러워서 못할 것 같았다. 얼굴 보고 말하려니까 힘들구나. 그렇다면 차라리 편지를 쓰자.

그래서 그 꼭두새벽에, 머리맡에 있던 스탠드를 켜고, 옆에 둔 노트 뒷장을 찢어 끄적끄적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이러저러해서 미안해. 그리고 이러저러해서 미안하고... 꾸벅... 아이쿠. 자면 안돼. 이러저러했고... 이러저러했어... 꾸벅꾸벅...

감기는 눈을 비벼가며 간신히 편지를 써낸 나는, 처청에서 샀던 도시락 통을 떠올리곤 그곳에 편지를 넣었다. 그리고 간식으로 먹으려고 한국에서 가져왔던 여러 과자나 누룽지 등을 담았다. 그랬더니 제법 봐줄만한 선물 세트가 탄생했다. 나는 그 세트에 만족해하며 도시락 통을 끌어안고 다시 눈을 감았다. 조금만 더 자고, 이따 웨이를 만나 아침을 먹어야겠다...




타이중 마지막 날에서 계속!







덧글

  • 지나가던곰 2017/09/13 15:29 # 삭제 답글

    타이중 굉장히 좋아하는 1인입니다.
    여행기 재미있게 읽고 있어요.
    타이중 조용하고 할일없고 사람들 착해서 좋죠.
    저도 타이중 사람들 친절에 감탄했어요. 길 물어보면 데려다주고 버스기사님한테 절 부탁해주고...ㅎㅎ
    제가 갔을 때가 설 직전이었는데 식당주인님이 너 여기서 춘절 쇠니? 우리집 와서 밥먹을래? 춘절엔 외국인들밥 사먹을 데가 별로 없어! 하고 걱정하셔서 많이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웨이씨 너무 착하고 귀엽고 고마워서 제가 밥사드리고 싶을 정도네요. 웨이씨 한국 오면 저라도 나가서 맛있는 거 사드릴래요. 대만 분들 찜닭 좋아하시고 삼겹살 좋아하시고 디저트로는 오설록도 좋아하시더군요.
  • enat 2017/09/24 22:46 #

    타이중을 좋아하시다니! 취향이 비슷하신가봐요 덧글보고 너무 기뻐서 덩실덩실!
    명절 직전에 외국인 여행자 걱정해주시는 식당주인님의 따뜻한 마음에 감동 ㅠㅠ 맞아요 이런 사람들이 있는 도시인데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웨이가 한국에 오면 제가 엎드려서 마중나가야할 판인데 웨이는 당분간 한국에 올 생각이 없다는군요... 물가가 비싸대요 ㅠㅠ
    저번에 싱위가 가족들과 여행을 와서 가이드를 해줬었는데, 한국 문화에 호의적이어서 다 좋아하더라고요! 깻잎빼고 다 좋아해서 기뻤어요. 왜인지 깻잎은 싫어하더군요. 마치 제가 고수를 싫어하는 것처럼 깻잎을 싫어하는 걸 보고 놀랐었어요 ㅋㅋㅋ
    덧글 감사합니다~ :)
  • 라비안로즈 2017/09/13 16:04 # 답글

    취두부... 장난 아니라하던데.. 아무 액션없이 드셔서 놀라신듯.. 다들 잘 못드시니까.. 저도 냄새.. 한번 맡아봤는데 ㅜㅜ 힘들던데요.. 대단하십니다
  • enat 2017/09/24 22:47 #

    그 취두부가 약한 취두부(?)였는지 진짜 냄새가 별로 심하지 않았어요! 매콤한데다가 겉은 바삭바삭하고 속은 말랑말랑한게 맛있었어요!! :)
  • 2017/09/13 16:23 # 삭제 답글

    가랏 웨이웨이
    맛있는걸 찾아와
    피카~☆
    이런 느낌이네요 ㅎㅎ
    몸개그도 하는 만담콤비 같아요 ㅎㅎㅎ
    맛있는게 많아서 살이 찐 게 맞나봐요
    찹쌀 넣은 순대로 감싼 핫도그라니 호옹
    술이 막 땡길거 같아요
  • enat 2017/09/24 22:50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음!? 비슷합니다.
    더이상은 필요하지 않은데 계속 찾아와서 나중엔 곤란했지만요 ㅋㅋㅋ 배부르다곳!
    남미에선 양이 많지 않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타이완와서 살찌고 양이 늘었는지 엄청 먹더군요. 대단하다 웨이웨이...
    찹쌀순대핫도그는 우리나라에서 팔아도 인기 많을 것 같아요.
    왜 아무도 안팔지...
    ....
    ....제가 팔까요!?
  • 존평씨 2017/09/14 11:22 # 답글

    미안해요 enat님
    글을 읽고 처음 떠오른 이미지가 이거였어요
    정말 미안해요...

    http://cfile24.uf.tistory.com/image/162DD1204A418B605CB95D
  • enat 2017/09/24 22:52 #

    아뇨 미안하면 언급하시지 말라구요오옷!
    굳이 언급하실 필요 없다구요오오옷!
    ...
    포스팅 끝내고 야식을 먹으려다가 이 짤 보고 마음을 가라앉힌 뒤 그냥 자려구요...
    뭐... 결과적으론... 감사합니다...
  • 그노시스파 2017/09/18 10:41 # 삭제 답글

    와 정말 대만은 식도락의 나라네요. 꼭 한 번 가고 싶어요!
    드디어 enat님 블로그를 알게 해 준 인연이 되었던 페루 쿠스코와 볼리비아 우유니를 떠납니다 ;ㅁ; 흑흑흑 중간에 시험도 치고 반차내느라 여정이 길었어요 ㅠ_ㅠ 스페인어만 좀 더 구비하면 장전완료!
    타이중편은 다음날 웨이와의 아쉬운 배웅이 남았네요. 연락하시길 정말 잘 하신거 같아요! 파파야우유사건은 정말 ㅋㅋㅋ 다음편을 기다립니당 !!
    헤헷!
  • enat 2017/09/24 22:54 #

    아무 생각없이 먹으러 가기 딱 좋은 나라입니다! 나중에 대만도 가보세요!
    와아... 드디어 쿠스코랑 우유니... 가시는군요! 여행을 앞두고 두근두근 설렘 가득한 상태이실텐데 몸 건강히 잘 다녀오시고요! 행복하고 즐거운 일들만 가득하시길 바랄게요! 멋진 풍경과 좋은 사람들 많이 만나고 오세요!!
  • LionHeart 2017/09/20 11:12 # 답글

    이곳 저곳에서 웨이 님의 팩트 공격이 재미있네요.
    더해 enat님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에 다시 한번 놀라고 갑니다. 어느 곳에 가도 잘먹고 즐길 수 있는 능력이라니 너무 부럽네요. ;ㅁ;
  • enat 2017/09/24 22:55 #

    엄청 태연한 말투로 팩폭 잘 날립니다... 웨이의 장기 중 하나...
    어느 곳에 가도 잘 먹고 즐길 수 있는 능력은 없습니다 ㅠㅠ 단지 이 때 감사하게도 웨이가 옆에 있었죠! 좋은 가이드 덕분에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어요! 헤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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