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03 20:46

몽골 여행 가는 길 └ 몽골 자유여행

1.

몽골은 내가 항공권을 예약할 당시 비행기값이 많이 오르지 않은 몇안되는 국가 중 하나였다. 올 추석 항공권은 이미 작년 추석 때 다 팔렸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귀하고 비쌌는데, 그래서 평소에 10만원에 가던 나라를 50만원에 가야하고 20만원에 가던 나라를 80만원에 가야하는 등의 상황이 연출됐었다.

그런데 몽골 가는 표는 평소에도 비쌌기 때문에 오름폭이 크지 않았다. 여행지로 별로 유명한 곳이 아니라 그런가? 하여간 나는 비싸게 갈거면 평소에도 비싼델 가는 게 억울하지 않겠다 싶어서 몽골가는 표를 끊었다. 뭐, 몽골의 게르에선 한번쯤 자보고 싶었으니까!

그 몽골이 지금 겨울 날씨라는 걸 알게 된 건, 그래서 많은 게르 캠프들이 문을 닫고 본격적인 추위를 대비하는 시기라는 걸 알게된 건, 여행 계획을 본격적으로 세우게 된 몇 주 전이었다...





2.

나는 추운 게 진짜 싫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추운 곳에 있는 내가 진짜 싫다.

날씨가 추워지기만 하면 어김없이 코를 훌쩍이기 시작하고 코가 막혀서 자다가 숨이 막혀 깨어나고 목이 근질거리며 아프기 시작하고 그러다보면 몸에서 열이나 드러눕게 되는 내가 진짜 싫다.

근데 몽골은 지금 벌써 겨울날씨란다.

...

왜 내가 그 저주스러운 겨울을 미리 맞이하러 가야하는가! 어차피 좀 있으면 한국에서도 겪을 일인데!





3.

설상가상 여행을 떠나는 지금의 컨디션은, 벌써 초기 감기 증상이다. 몸에 힘은 없고 목은 간질간질하고 코는 자꾸 막히고 막 그런다... 막 그런다...

굳이 몽골일 필요가 있었을까?

비행기값의 상승률이 적다는 이유로 끊은 항공권이고, 절대값을 생각하면 얼마든지 다른 더운 나라(동남아 등지의)를 갈 수 있었던 건데... 당시의 나는 대체 무슨 연유로 몽골 가는 비행기표를 그렇게 별 생각없이 쉽게 끊은 건지... 여름 한복판에 있던 나라서 추위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던 게지... 멍청한 과거의 나같으니라고.

침낭에 파카에 추위를 견디기 위한 오만가지 짐을 다 싸서 캐리어도 무겁다. 여행갈 때 맨날 들고다니는 내 사랑스런 두발 회색 자그마한 캐리어도 아니고 시뻘건 네발 거대 캐리어다. 뭐야 이 무식하게 큰 캐리어는. 괜찮겠냐고 이거. 내 가녀린 팔로 잘 끌고 다닐 수 있겠냐고.

지금은 그냥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공항가는 전철에 올라타 초연한 눈으로 자리에 앉아있다. 눈은 초연하지만 네발짜리 캐리어가 굴러다니지 않게 몸으로 고정해야해서 자세는 무지 불편하다. 뭐야? 다들 이걸 어떻게 들고 다니는거야? 두발이 훨씬 편하구만 왜 다들 네발이 두발보다 더 낫다고 하는거야? 이 네발짜리 캐리어 누가 산 거야!





4.

잠시 짜증을 잊기 위해 다른 이야기를 해본다.

이 네발짜리 캐리어는 내가 산 거다. 토론토에서 다른 도시로 이전하기 위해, 큼지막한 캐리어를 사려고 짭 많이 파는 스파다이나 일대와 켄싱턴 마켓 부근을 돌아다니다가 구한 캐리어다.

그 때 중국인으로 보이는 아줌마가 내게 이 시뻘건 캐리어를 팔기 위해 고군분투했었지... 덕분에 엄청 싸게 샀다. 당시 캔불로 30 정도? 진짜 어마무지하게 싼 녀석이다.

이걸 샀을 당시의 하늘이 아직도 생각난다. 엄청 새파랗고 깨끗한 하늘이었다. 난 이 붉은 녀석을 질질 끌며 그 파란 하늘 아래를 걸어가다가, 마약인지 술인지 하여간 제정신이 아니었던 사람이 도로에 뛰어들었다가 트램에 치인 걸 봤다.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지만 이상하게 뚜렷하다.

난 이 녀석을 토론토에 두고 내 사랑스러운 두발회색이로 쿠바여행을 다녀왔고, 토론토로 돌아와 다시 이 벌건 녀석을 챙기고 방황하다가 그랜드 프레리로 갔었더랬다.

그리고 남미 여행을 할 땐 아예 이 벌건 녀석을 한국으로 부쳐버렸었다. 그 이후로 창고에서 꺼낸 적이 없다. 딱 거기까지 이 녀석을 사용했다.

그로부터 3년. 괜찮을까 싶다. 설마 자길 잊고 창고에 쳐박아뒀다고 몽골에서 날 엿먹이진 않겠지? 붉은 캐리어야.




5.

의식의 흐름대로 잡문을 쓰다보니 전철은 벌써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 사람이 하도 많다길래 비행기 시간에 비해 빨리 온 편인데 어떨까 모르겠다. 공항에서 핫팩 파나? 핫팩도 사두고, 화장품도 좀 사고, 감기약도 좀 사고 해야지...

몽골... 몽골... 뭐 지금 좀 후회하고 있긴 한데 가서 또 뭔가 엄청난게 있을지도 모르니 후회 그만하고 수속 준비나 해야겠다.

또 쓸만한 게 있나 생각하다가 뭐 있으면 이어서 써보고, 아니면 그냥 몽골로 날아갈게욤. 즐거운 한가위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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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싫지만 그거밖에 없었다. 밤까지 집에서 뒹굴거리다가 공항으로 향했다. 이 당시의 나는 미열과 몸살 기운이 있었고, 그래서 푸념의 포스팅(http://enatubosi.egloos.com/1926935)을 하나 마친 뒤 체크인을 하러 갔다. 카운터는 아직 열리지 않았고, 나는 카페로 들어가 따끈따끈한 차를 마셨다. 따뜻한 차로 몸 ... more

덧글

  • Tabipero 2017/10/03 21:26 # 답글

    포스팅을 보고 울란바토르 날씨를 검색했는데 벌써 최저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군요...게다가 주말에는 영하 10도까지! 춥다고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는데 10월 초에 이정도일 줄은 몰랐네요. 감기 조심하시고 잘 다녀오시길!
  • enat 2017/10/09 15:21 #

    이미 감기에 걸린채로 다녀왔습니다! 그래도 많이 아프진 않았고 또 생각보다 춥지도 않아서 다행이었습니다 ㅋㅋ 귀마개 목도리 핫팩 오만가지 것들을 싸가지고 갔다가 그대로 싸가지고 왔어요 ㅋㅋㅋ 걱정해주신 덕분에 여행 잘 다녀왔습니다 감사합니다!
  • 샘터지기 2017/10/04 00:44 # 답글

    정반대인 대만에서 더위와 사투를 벌이는 중입니다. 포스팅 잘 읽었습니다. 즐거운 여행 되세요. 건강 유의하시고요^^
  • enat 2017/10/09 15:23 #

    가끔씩 몽골 사람들한테 화날 때면 대만 생각 많이 했는데 ㅇㅅㅠ 즐거운 대만 여행 되셨는지요! 물론 즐거우셨겠죠! 대만이니까요! ㅋㅋㅋㅋ 걱정해주신 것 감사드립니다!
  • 2017/10/04 00:55 # 삭제 답글

    우와왓 몽골이라니!?!?!?
    예전에 칭기즈칸 만화 그리신 이현세님의 현지 취재기에서 다른 신발은 다 발이 시린데 현지인들이 쓰는 양털펠트신발은 따뜻하더라는 글이 기억나네요
    건강히 잘 다녀오세요오
  • enat 2017/10/09 15:24 #

    앗 그래서 저도 펠트 신발같은 걸 사러 재래시장에 갔다가 엄한 전통복과 전통모자만 샀습니다 ㅋㅋㅋ 그리고 전통복이랑 전통모자 입고 돌아다녔는데 이것들도 방풍효과가 뛰어나서 춥지 않더라고요! :) 걱정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요엘 2017/10/04 01:37 # 답글

    몽! 골! 멋져부려!! 제가 넘 가보고 싶은 나라 중 하나인데 여행기 기대할께요오오오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 enat 2017/10/09 15:25 #

    몽! 골! 진짜 멋있어요! 게르에서 말똥냄새 풍기면서 시냇물로 세수하는데 음 이곳이 몽골이군 싶더라고요!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다녀왔어요!
  • Lacuna 2017/10/04 04:28 # 답글

    오! 몽골 여행기 그것도 초겨울 여행! 무척 기대됩니다.
  • enat 2017/10/09 15:25 #

    기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생각보다 춥지는 않았더랬어요! 하나하나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ㅋㅋㅋ
  • LionHeart 2017/10/11 11:36 # 답글

    몽골...와일드한 여행기 기대해도 되는건가요?
    (3) 전 바퀴 4개 캐리어가 더 편하고 좋더군요. 좋은 것은 굴러가지 않게 브레이크가 달려있는 녀석도 있고, 그렇지 않아도 바퀴 방향을 수직으로 변경하면 잘 안굴러가지요. 무엇보다 끌고다니는 것이 아니라 밀면서 다닐 수 있어서 편해요.

    이제부터 몽골 여행기 재미있게 읽도록 하겠습니다. :)
  • enat 2017/10/12 23:42 #

    앗 그렇게까지 와일드하진 않았던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면 또 와일드했던 것 같기도 하고 음 뭔가 도시생활에선 느낄 수 없었던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왔긴 했어요!
    여행 다녀오고 나서 생각을 정리할 짬이 나지 않아 좀 횡설수설하면서 올리고 있는데 ㅋㅋㅋ 그래도 재밌게 읽어주셔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캐리어 바퀴 4개는... 네 다들 4개가 훨씬 편하다더군요... 생각해봤는데, 저는 하도 2개만 들고 다녀서 4개짜리 미는 법이 익숙치가 않아서 그런것 같아요! 4개짜리도 2개짜리처럼 기울여서 끌고 다니니 편한 걸 모르는 듯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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