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19 23:59

몽골 자유여행 (5.2) 게르 생활 : 아침밥 ├ 몽골 자유여행 (2017)

1.

세수를 한 뒤 커피를 마셨다.

동영상 첨부.









2.

커피를 마신 뒤, 언제 아침밥을 먹을 수 있으려나 싶어 빈둥거리며 한참을 기다렸다. 매니저인 나미의 말로는 아침밥 시간이 9시라고 했는데, 9시까지 주방에 들어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왜지?

나는 어제 저녁을 대충 먹어서 몹시 배가 고팠고, 그래서 게르 밖에 나와 직원들을 기다렸다. 누군가를 보게 된다면 아침밥 언제 되냐고 닦달해야겠다.







근데 아무도 만날 수 없었음... ㅋ...

조금 짜증이 나려던 무렵, 다른 게스트 게르에서 금발의 여자가 나왔다. 저기는 어제 내게 물과 불을 선물해준 빌리메테우스의 게르인데? 그렇다면 저 여자가 빌리의 여자친구 메리인가보다. 나는 메리에게 손을 흔들었고, 그녀도 빌리에게서 내 이야기를 들었는지 아는 척을 했다.

그렇지, 장기 투숙객인 메리에게 물어볼까?

나는 메리가 가려는 방향을 짐작한 후 그 방향을 향해 달려갔다. 물론 게르 캠프는 넓었기에 제법 달린 뒤에야 메리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그녀와 가벼운 인사를 나눈 뒤, 곧바로 스텝과 아침밥의 행방에 대해 물었다.

나 : 있잖아, 나 여기 처음이라 그러는데, 어떻게 아침을 먹을 수 있어?
메리 : 나랑 빌리는 숙박만 하는거라 우리가 차려먹어. 근데 너 같은 단기 여행자들에겐 식사를 제공할텐데. 다이닝 하우스에 밥이 차려져있지 않아?
나 : 없어, 없어. 주방에 누가 들어가지도 않았다고.
메리 : 오, 저런. 그럴 리가 있나? 여직원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의아해하는 메리의 표정을 보며, 이런 일이 흔하게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뭐야, 왜 내가 머물 때 이러는 거야? 동양인 여자 혼자라고 대접에 소홀한 거야? 뭔가 뾰루퉁해진 나는 그녀에게 스텝 하우스를 물었고, 메리는 마굿간 쪽을 가리키며 저쪽에 있는 게르라고 답했다. 나는 고맙다고 말한 뒤 스텝 하우스를 향해 달려갔다.





3.

스텝 하우스 앞에서 한 다섯 번 정도 익스큐즈미를 외쳤을까. 한 여직원이 눈을 비비며 게르문을 열고 나왔다. 그녀는 어제 본 '나미의 친구'였고, 난 잠시 멈칫하다가 곧 그녀가 이 게르의 직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제야 어제의 대화와 상황 등이 머릿속에서 짜맞춰졌다. 아하. 아하아하.

여직원 : 아... 리. 좋은 아침이야.

인사를 하는 여직원의 안색은 파리했다. 나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나 : 너 어디 안좋아? 컨디션 괜찮아?
여직원 : 어제 아팠어. 지금은 약먹어서 괜찮아. 남자친구가 약을 가져다줬거든.
나 : 헐... 그... 그랬어?


나중에 파악한 바로 이 게르의 직원은 총 3명이었다. 1명은 장작을 패거나 게르를 수리하는 등의 힘 쓰는 일을 하는 아저씨, 1명은 말과 가축을 관리하는 청년, 그리고 마지막 1명은 그 외 게르 캠프의 온갖 살림을 다 하는 아가씨로, 바로 이 여직원이었다. 그런데 그 자질구레한 일을 하는 여직원이 뻗어버렸으니, 오늘 아침까지 손님인 내게 아무 관리도 이뤄지지 않았던 것이었다.

아픈 사람한테 뭐라 하겠는가. 나는 본래의 목적인 아침밥의 '아'도 꺼내지 못하고 어버버했다. 하지만 내가 말하기도 전에 그 여직원은 자신의 시계를 체크하더니, "어머어머, 늦었어, 미쳤나봐..." 따위의 이야기를 하며 주섬주섬 일할 채비를 하기 시작했다.

어... 뭐... 다행히 아침밥은 챙겨먹을 수 있겠군.





4.

여직원은 바삐 움직였지만, 예정된 아침식사 시간보다 1시간 정도 늦은 시간에야 밥을 먹을 수 있었다.




몽골의_흔한_아침밥.jpg

갓 튀긴 빵과 야크 젖으로 만든 요거트, 야생 베리로 만든 잼, 말린 보리 시리얼.

왜 한 시간이나 걸린 건지는 잘 모르겠는 간단한 메뉴이지만, 여튼 좋아보였다. 나는 지금 엄청나게 배가 고프니까 뭐든 맛있게 먹을 준비가 되어있다고.

여직원은 이 아침 메뉴에 대해 뭐라뭐라 설명하려다가, 영어가 어려웠는지 그냥 각 그릇을 손가락으로 하나씩 가리키며 "헬시, 헬시, 헬시, 헬시 푸드!" 하고 말았다.

나는 맛있을 것 같다며 엄지손가락을 몇번이고 치켜올려 여직원을 기쁘게 해준 뒤 음식들을 맛보았다. 이 헬시한 푸드들은 제법 내 입맛에 맞았고, 덕분에 배가 부르도록 양껏 퍼먹었다.





5.

그녀는 직원이라 다이닝 게르가 아닌 좁은 주방 게르에서 아침밥을 먹어야 했다. 나는 그게 마음에 걸려 그냥 나랑 같이 먹자고 권했고, 그녀는 기뻐하며 자신의 그릇을 가져왔다.

그 여직원은 이제 막 20살이 되었으며, 학생 때부터 이곳에서 몇개월씩 일을 하곤 했다고 한다. 여기 일자리를 어떻게 알아봤냐고 묻자, 자신은 여기 게르 주인인 푸세의 조카라고 했다.

나 : 뭐! 미성년자 때부터 일을 했단 말야!? 게다가 여조카를 이런 외진 곳에!?
여직원 : 내가 여기서 일하는 걸 좋아해서 그래! 나는 좋아.
나 : 위험하거나 하진 않아? 전화도 잘 안터지잖아.
여직원 : 여기서 한 15분 정도만 걸어나가도 인터넷(3G)이 터져. 괜찮아.


그녀는 이곳에서 일하는 걸 정말 좋아하는 듯 했다. 내가 그 이유를 묻자, 자기는 이곳에 와서 남자친구를 사귀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런 사람도 만나기 힘든 곳에서 남자친구를? 재주도 좋다. 여하간 곧바로 이해했다. 20살이란 나이는 이성관계를 위해 여러가지를 감수할 수 있는 나이니까, 이런 산골 중의 산골 생활도 만족하는 거겠지.

여직원 : 근데, 나 이번달까지만 일하거든.
나 : 왜?
여직원 : 이제 학교에 가. 독일에 있는 학교로 갈거야.
나 : 오호라! 남자친구는 뭐래?
여직원 : 가지 말라고 해. 어제도 슬퍼했어.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잘 만날 수 있을거야.


나는 그럴 수 있을 거라는 빈말을 했다. 왜 빈말이냐면 내 머릿속에선 이미 독일에서 새로운 남자를 만나 즐거운 대학생활을 보내는 여직원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마 초반엔 여유만 되면 끊임없이 연락하겠지. 그러나 곧 시차의 한계를 느끼고 몇 번 싸우게 될 거야. 그 뒤엔 시간을 정해놓고 연락하겠지. 그 시간만 다가오면 안절부절 못하며 어떻게든 통화할 장소를 확보하려고 노력하며 말이야. 그러나 짧으면 몇 주, 길면 몇 달 안에, 함께 있었던 추억은 희미해지고 내 앞에 펼쳐진 새로운 세상이 너무나 벅차고 전혀 다른 생활 때문에 서로의 경험에 대한 완벽한 이해가 불가능해지고 그러다보면 서로가 괜히 밉고 내가 얘를 정말 좋아하나 싶고 얘는 나를 정말 좋아하나 싶고 그에 대해 신경 쓸 여력이 사라지며 결국 연락은 점점 뜸해지게 될 거야. 그 연락 횟수가 제로가 되면 그 때가 이별이고.

그러나 이건 내 생각일 뿐이지 그녀는 안 그럴 수도 있다. 그래서 그냥 잘 만날 수 있을거라고 응원해주고 말았다.





6.

그 외에도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는 짧은 영어를 이용하여 자신의 고민과 생각들을 이야기했고, 또 내 이야기를 궁금해하며 이것저것 물어왔다.

식사를 한 후 그녀는 내게 마두금 켜는 방법을 알려줬고, 야크젖 짜는 모습도 구경시켜준 뒤 밀크티도 타줬다. 나는 보답의 의미로 가족들과 연락하고 싶다는 그녀를 위해 내 피 같은 보조 배터리 (전기가 안통하는 지역이라 내 많은 전자제품들에게 있어선 수혈팩과 같다) 를 빌려줬다.

여직원의 오빠는 지금 한국에서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만약 그 오빠가 도움이 필요하다면 내가 도와줄 수 있다고 말하자, 그녀는 굉장히 기뻐하며 내 연락처를 받아갔다.

당시의 나는, 아마 내가 한국에 돌아가면 그녀 혹은 그녀의 오빠와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겠거니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와 어느 정도의 교류는 하고 지낼 수 있겠거니 생각했다. 나는 이미 그녀와 친한 것 같았으니까.

그러나 그것은 한나절 동안의 일시적인 내 소망이었을 뿐이다. 오히려 우리는 안좋게 헤어졌다. 그녀는 이곳의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직원이었고, 나는 이곳에 '클레임을 넣은' 손님이었기 때문에. 그에 관한 이야기는 조금 더 뒤에 다뤄야겠다.






다음 편에서 계속!








덧글

  • Thanks 2017/10/20 00:54 # 삭제 답글

    몽골 여행기 너무 재미있게 읽고있습니다. 직원 이야기 20살의 미래의 이야기 실감나구요. 지나고 난 자들의 예지력 같은거.
  • Thanks 2017/10/20 00:54 # 삭제 답글

    몽골 여행기 너무 재미있게 읽고있습니다. 직원 이야기 20살의 미래의 이야기 실감나구요. 지나고 난 자들의 예지력 같은거.
  • enat 2017/10/26 18:16 #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덧글을 두개나 달아주시다니 얼마나 재밌게 읽어주셨는지 알 것 같습니다!!!!!
  • 2017/10/20 15:52 # 삭제 답글

    15분 정도'만' 걸어나가면 3G 터져 괜찮다니
    개념이 다르네요 ㅎㅎ
  • enat 2017/10/25 17:51 #

    그리고 제가 그 3G를 잡기 위해 15분 정도를 걷게 되죠... ㅋㅋㅋㅋㅋ
    뭐 이런 산골짜기가 다 있을까요... ㅋㅋㅋㅋㅋㅋ
  • LionHeart 2017/10/20 16:02 # 답글

    친화력 120%인 enat님께 어떤 일이 있었기에...다음 이야기가 기다려지는군요.
  • enat 2017/10/25 17:51 #

    그냥그냥 아쉬운 이야기입니다! 포스팅 빨랑빨랑 하고 싶은데 이놈의 회사가 일 주는 걸 멈추질 않네요 ㅠㅠ
  • 스트로보 2017/10/24 20:12 # 삭제 답글

    남의 블로그에서 실례되는 일일 수도 있지만 정보를 나누고자... 이낫님도 나중에 (또) 추운 나라 가실 때 참고하셔도좋을 거 같아서 막 써봅니다ㅋㅋ
    추운 나라에 여행갈 때는 유탄포를 가져가면 좋아요. 가볍고 부피도 별로 안 나가는데 뜨거운 물만 부으면 핫팩 같은 것보다 훨씬 따뜻하거든요. 제가 남아프리카 겨울 여행 때 이걸로 추위를 견뎠답니다.
  • enat 2017/10/25 17:54 #

    아뇨 실례 아닙니다. 완전 꿀정보 땡큐베리감사입니다. 저 추운거 진짜 싫어하거든요.
    그나저나 남아프리카 겨울 여행 이야기해주세요. 궁금해유. 아프리카 진짜 가보고 싶은데 비행기값도 비싸고 시간도 오래걸리고 낯설기도 하고 나중에 이직할 때 시간 많을 때나 한번 갈 수 있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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