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26 09:17

몽골 자유여행 (5.3) 게르 생활 : 마두금, 하이킹 └ 몽골 자유여행

1.

아침을 먹고 난 뒤, 다이닝 룸에 앉아 마두금을 켜며 시간을 보냈다. 사실 마두금을 제대로 켠 건 아니고 그냥 폼만 잡고 끼긱끼긱 끼기기긱 한 것에 불과하다.

뭐라고 자꾸 혼자 얘기하는데 혼자 여행다니면 하도 심심해서 저리 혼잣말을 많이 한다. 불쌍히 여겨주시길...








2.

장작난로를 앞에 두고 열연을 펼쳤더니 너무 덥다. 그래서 문을 잠깐 열었더니 에이미가 방 안으로 쪼르르 들어왔다.

에이미. 새벽에 세숫물 뜨러 다녀온 날 위해 소를 몰아준 기특한 녀석이다. 그런 녀석을 어떻게 내보낼 수 있겠나. 나는 그녀의 다이닝 룸 침입을 모르는 척 해줬다. 그녀는 내가 자신을 내쫓지 않을 거란 확신을 받았는지, 다이닝 룸을 조금 돌아다니다가 장작 난로와 제일 가까운 따뜻한 카페트 위에 벌러덩 누웠다. 그리고 쿨쿨 잠을 청했다.





잠든 개와 함께라니 느긋하구만.

나는 그녀를 바라볼 수 있는 의자에 앉아, 의자 다리 두짝만을 이용해 까딱까딱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3.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까. 조금 지루해진 나는 다이닝 룸에서 나와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주방 게르 바깥쪽에 설치된 태양광판을 발견했다.




전기가 안들어오는 지역이지만 아예 원시생활을 하는 건 아니구나. 나름 자가발전은 하는 거였어! 그런데 요만한 태양광판으로 얼마만큼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을까? 주방 어디에 쓰는 거지? 나는 궁금해하며 주방 게르문을 열었다.

주방 안에선 여직원이 태양광판에서 따온 전선을 이용해 핸드폰 충전을 하고 있었다.


...



겨우 핸드폰 충전이었냐!



그거 참 엄청나게 거창한 폰 충전기네!




하긴, 핸드폰을 충전한다는 행위는 전기 이외의 것으로 대체할 수 없지. 조명이야 촛불로, 가열기구야 가스나 장작으로 대체 가능하지만 핸드폰은 불가능하니 말이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핸드폰은 유선 전화도 없는 이곳에서 바깥 세상과 연락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기에 충전을 꼭 해야하긴 할 것이다. 그렇다면 태양광 발전을 이용해 핸드폰을 충전하는 게 그렇게까지 이상한 일은 아니구나. 오히려 적당하고 합리적이네. 

...그렇게 주절주절 생각을 해도 역시 조금 김새는 기분은 어쩔 수 없다. 나는 다시 주방 문을 닫을까 하다가, 핸드폰 앞에서 용을 쓰고 있는 그녀에게 충전은 잘 되어가냐는 적당한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그녀는 내 가벼운 질문과는 다르게 심각한 표정으로 뭔가 문제가 생긴 것 같다고 했다. 구름이 껴서 충전이 잘 안되는건지 왜 이러는건지 모르겠다나. 오늘 엄마에게서 전화가 오기로 되어있는데 받을 수 있을지 걱정이라 했다.

으음... 타지에 나가서 사는 20살에게 가족의 전화는 소중하지.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가져갔던 보조 배터리 중 하나를 빌려줬다. 그녀는 이게 웬 떡이냐며 보조 배터리를 받아 핸드폰을 충전했다. 휴, 이따 밤에 핸드폰이랑 고프로 충전해야하는데. 내꺼 충전하기에 모자라진 않겠지.

그러나 여직원은 내 보조 배터리의 용량이 무한한 줄 알았는지, 핸드폰을 충전하면서 게임 따위를 했다. 아니 세상에 가족들이랑 통화하라고 빌려준 배터리인데 게임이라니. 한국에서 담아온 에너지를 그딴데다가 쓰다니. 당장 끄지 못해! 

내가 얼마나 아까워하며 그 모습을 바라봤는지는 신만이 아실 것이다. 부들부들...





4.

여직원과 내 스케줄 문제(나중에 더 자세히 다뤄보겠다)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남는 시간에 할만한 일을 추천해달라고 했다. 그녀는 게르 뒷산에 오르는 것을 추천했다. 뷰가 제법 괜찮다고 했다.

오르는 건 좋아한다. 나는 주방 게르를 나와 뒷산 방향으로 설렁설렁 걸어갔다. 복장은 델과 털모자, 양말을 신지 않고 꾸겨 신은 운동화였다.

......왜 그렇게 입고 갔지?

게르 뒷산은 생각보다 가파랐다. 델은 훌륭한 방풍복이긴 하지만 보폭을 작게 해야하는 옷이라 가파른 산을 오를 땐 불편한 옷이었다. 게다가 그 뒷산은 돌이 많았다. 날카로운 돌바닥에 양말도 없이 꾸겨 신은 운동화라니. 발가락에 물집 잡히기 딱 좋은 환경이었다. 힘든 옷차림으로 용을 쓰면서 산을 오르니 머리부터 열이 나기 시작했는데, 마침 또 내가 쓰고 있던 털모자는 보온성이 매우 우수한 모자라 머리에 땀이 잔뜩 차게 되었다.

하하하. 이 따위 옷차림으로 뒷산을 오르기로 한 사람 누구지? 진짜 때려주고 싶다.





5.

그렇게 자신을 때리며 힘겹게 산을 오르고 있었는데, 뒤에서 누가 따라오는 게 느껴졌다. 나는 흠칫하며 뒤를 돌아봤다.

...에이미였다.




그녀는 나보다 훨씬 수월한 몸놀림으로 산을 오르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쫓아오는 거냐고 물었고, 그녀는 잠시 나를 쳐다보다가 곧장 뛰어왔다. 그러더니 나를 앞질렀다. 음. 이제 내가 쫓아가는 꼴이군.

나는 그녀가 혹시 내 한국말을 제대로 알아듣는 것은 아닐까 의심하며 그녀의 엉덩이를 노려보았다. 계속 올라가던 에이미는 내가 쫓아오지 않자 몸을 돌리더니 날 빤히 바라봤다. 음, 알았어, 올라간다고, 올라가.

에이미는 그 짧은 네 개의 다리로 총총거리며 산을 탔다. 나는 헉헉거리며 그녀의 뒤를 쫓아갔다. 가끔씩 에이미는 뒤를 돌아보며 내가 잘 오고 있나 확인했고, 때때로 날 기다려줬다. 어쩜 저렇게 상냥하고 자상한 개가 다 있을까!






나는 에이미의 도움을 받아 나름 꼭대기라 부를 수 있는 곳까지 올랐다.

적당한 바위를 찾아 앉아서 쉬려고 하다가, 생각보다 뷰가 좀 별로인 것 같은데, 더 괜찮은 곳은 없나? 하고 혼자 중얼거렸다. 그러자 옆에 있던 에이미가 그 소리를 들었는지 어쨌는지, 자리에서 번쩍 일어나 능선을 따라 총총거리며 걷기 시작했다...

나는 의심어린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너 이새끼... 진짜 내 말 알아듣냐?

하지만 에이미는 이미 저만치 가서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참이었다. 그래, 그 쪽 뷰가 더 좋다는 거지? 맞지? 나는 어쩔까 고민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가 걸어간 방향으로 몸을 움직였다.





6.

확실히 에이미가 데려간 곳의 뷰는 아까 그곳보다 좋았다. 내가 그쪽 방면을 서성이다가 그럭저럭 앉을만한 곳을 찾아 앉자, 에이미는 마치 자신의 역할을 다 수행한 듯 만족해하며 날 내버려두고 드넓은 초원을 향해 달려갔다. 거기서 혼자 잘놀더라.

...근데 기분이 묘했다. 음, 그러니까 나랑 같이 놀려고 올라온 게 아니었단 말이지. 저렇게 혼자 잘 노는 모습을 보니 말이다. 그러니까 이건가, 에이미도 원래 뒷산에 갈 예정이었는데, 마침 지나가는 길에 몽골초원 초짜 인간 녀석이 불쌍해보여서 도와주고, 이 정도면 됐겠지 싶어서 다시 자기 볼일보러 떠난... 그런거.

......개마저도 측은히 여겨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모지리 인간이 접니다 여러분...... 

하여간 그녀에게 도움을 많이 받은 건 사실이다. 나는 머무는 동안 에이미에게 이 은혜를 갚아야겠다, 하다못해 과자 부스러기라도 하나 더 챙겨줘야겠다 등등으로 생각했다. 


영상 첨부.




- 앞에 나오는 곳이 처음에 내가 앉은 곳이고, 그 다음에 나오는 곳이 에이미가 인도해준 곳.

- 동영상 보다보면 저 들판에서 빨빨거리고 돌아다니는 검은 무언가가 있는데 그게 에이미. 





야크젖 밀크티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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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ddirori 2017/10/26 12:03 # 답글

    신기하네요.. 눈치가 빠른 개인가봐요
    다음 여행은 몽골에 가보고 싶을 정도로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다음 편도 기대할께요:D
  • enat 2017/10/26 18:18 #

    저도 그렇게 영특한 개는 처음이라 사람이 환생했나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ㅋㅋㅋ 좀 지루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편도 열심히 써볼게요!! :)
  • LionHeart 2017/10/26 13:59 # 답글

    개가 정말 눈치가 좋군요...저런 동물이 있으면 키우고 싶어질 것 같습니다. ㅎㅎ
  • enat 2017/10/26 18:22 #

    저도 간만에 개를 키우고 싶다는 욕망에 휩싸였었어요 ㅋㅋ 물론 제 성격상 귀찮아서 제대로 못키울것 같아 곧바로 접었지만요 ㅋㅋㅋㅠ
  • Tabipero 2017/10/26 20:40 # 답글

    태양광 발전기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해 나는곳을 찾는 것보다 차라리 자전거에 발전기를 달아서 충전하는 게 나은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태양광발전의 문제가 면적당 에너지가 그리 크게 안 나온다는 거라고 들은 것 같네요. 요새는 기술발전으로 집적도가 좋아졌다지만 그런 고오급 발전기를 저기서 쓰고 있을 것 같지는 않고...

    개가 참 똑똑한 것 같아요. 혼자서도 잘 놀고...

    ps) 댓글 다 달고 찾아보니까 http://blog.naver.com/energy_farm/221096023185 이런 포스팅이 있군요 -_-;;
  • enat 2017/10/29 22:25 #

    아리까리하며 스크롤을 내렸는데 결국 태양광이 이기다니!
    역시 인간은 우주의 힘을 이길 수 없군요. 게르캠프에선 최선을 다해 전기를 생산하고 있었던 것이었어요...!
    뭐 그렇게 생산한 전기로 하는 일이 결국 핸드폰 충전이지만요... ㅋㅋㅋㅋ
  • Unonu 2017/10/27 15:50 # 삭제 답글

    마두금...!ㅋㅋㅋㅋㅋㅋㅋ 넘 웃었슴다...ㅌㅋㅋㅋㅋㅋㅋ쿄쿄쿜
  • enat 2017/10/29 22:27 #

    감사합니다. 포스팅 다시 보면서 마두금 좀 쪽팔리네 지울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거 보고 남겨두기로 했습니다...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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