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09 19:03

몽골 자유여행 (7) 말타기와 아이락 └ 몽골 자유여행

1.

메일을 보내놓고 다시 게르 캠프로 돌아왔다. 야외 데크에 앉아 흥분한 감정을 진정시키며 어느 정도 기다리자, 드디어 홀스맨이 말을 끌고 왔다. 튼튼하면서도 유순한 말을 골랐기 때문에 내가 타기 편할 것이라 했다.

나는 혹시라도 그 홀스맨, 그러니까 여직원의 남자친구가, 자신들의 시간을 방해받았다며 날 소홀히 대하거나 험하게 대하면 어쩌나 걱정했으나, 그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그는 오히려 휘파람을 불며 즐거운 듯 내게 필요한 장비 - 헬멧, 다리보호대, 장갑 등 - 들을 입혀줬다.

게으름을 피우고 내 일정을 미뤘던 건 여직원만의 계획이었을까? 사실 홀스맨은 영어를 할 줄 몰라 나와 대화를 나누지 못했고, 그래서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나로썬 알 수 없었다. 그저 그가 아무 싫은 내색 없이 내 말을 살펴주고 길을 인도해준 것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2.

홀스맨과 내가 승마를 준비하는 것을 보고, 지난밤 내 게르의 불을 피워줬던 빌리와 그의 여자친구 메리가 함께 따라나섰다. 그들은 내가 말이 통하지 않는 홀스맨과 단 둘이 남겨지면 힘들 것이라 했다.

나 : 그래도 나 때문에 괜히...
빌리 : 노노! 우리 말타기 좋아해요. 말타기 같이 해요.
메리 : ......^^


한국말을 쓸 줄 아는 빌리는 내게 말 다루는 법에 대해 쉽게 설명해줬다. 그 설명은 아랫단락에.





3.

빌리가 알려준 몽골식 승마의 기초 :





1) 발걸이에 발의 앞부분을 걸쳐야 함! 뒷부분 걸치면 안 됨!

→ 근데 이게 생각보다 어려워서 계속 지적받았다.


2) 출발할 땐 "츄!"를 외치며 말 엉덩이를 발 뒷꿈치로 세게 찬다!

→ 내가 세게 차는 게 미안하다고 하자 빌리가 말은 가죽이 두꺼워서 괜찮다고 함.


3) 멈출 땐 "우이씨~"를 외치며 끈을 잡아당긴다!

→ 우이씨 안했는데도 멈출 분위기거나 지가 힘들면 알아서 멈춤.


4) 방향을 바꿀 땐 끈을 세게 잡아당겨서 말 목을 돌아가게 한다!

→ 말은 힘 쎈 놈이라 생각보다 세게 당겨야 하더라.


5) 말도 지친다!

→ 평소에 안장 안차고 뛰어놀던 애들이라 안장 + 내 몸무게까지 합치면 많이 힘들거라 함.


이것만 알면 오케이... 란다. 정말 숙지해야 할 건 이게 다야? 왠지 조금 겁나는데 괜찮을까?

그러나 내 망설임 따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다. 연습할 시간이 있나 했는데 그 따위는 없고 그냥 바로 말을 출발시켜 초원으로 나가더라. 나는 기겁하며 말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몸을 바싹 낮추고 이미 걷기 시작한 말과 교감하려 애썼다. 너 이 자식, 날 떨어트리기라도 하면 넌 오늘밤 저녁식사거리가 될 거야. 내가 마구 괴롭혀줄 거라고. 알겠어?

...교감인가? 하여간 교감하려 애썼다.





4.

그러나 말과의 교감보다도 내 정신을 먼저 추스려야할 참이었다. 나는 출발과 멈춤에 사용하는 단어를 자꾸 까먹어버려 헤매기 시작했다. 출발할 땐 츄, 멈출 땐 우이씨, 이 쉬운 게 왜이리 안외워지던지. 내가 헷갈려하자 내 혼란이 말에게 전해졌고 그러자 말도 헷갈려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다행히도 내겐 홀스맨과 빌리, 메리가 있었다. 그 셋은 내 주변을 맴돌며 말을 타주는 것으로 날 도와줬다. 빌리 왈, 말은 생각보다 다른 말들의 영향을 많이 받는 동물이라, 주변에서 다른 말들이 자연스럽게 걷는 것만으로도 내 말의 부담이 덜어질 거라 했다.




그리고 그건 진짜였다. 내 말은 내가 "츄!"라고 외치지도 않았는데 다른 말들을 따라 가고, "우이씨~"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다른 말들을 따라 섰다. 그렇게 10분 정도 돌아다니자 나도 말에게, 말도 나에게 익숙해졌고, 그 뒤로 우리는 거의 한몸이 되어, 몽골의 저 초원을 기분 좋게 달릴 수 있었다.

내가 모두를 앞질러 달리자, 빌리는 뒤에서 외쳤다.

빌리 : 말 처음 타는 거? 정말 맞아요?
나 : 응? 나 잘 타고 있어요?
빌리 : 말 잘 타요! 아주 좋아요! 말 처음 아닌가봐요!
나 : 나 처음인데요! 아하하하! 얘가 착해요!


혹시 이 말은 전생에 내 영혼의 반쪽이 아니었을까? 어쩜 이렇게 내 말을 잘 알아듣고 잘 따라주는지! 나는 만족감과 상쾌함에 함박웃음을 짓고 깔깔거리며 신나게 달렸다. 와, 와, 와!





말 타는 게 이렇게 신나는 거였어? 자전거도, 오토바이도, 자동차도 못타는 난데 말 만큼은 편안했다. 나는 혹시 시대를 잘못 골라 태어난 게 아닐까? 좀 더 옛날에 태어났어야 했나? 말이 아직 이동수단이던 시절에 말야. 아하핫!

물론 이것은 날 세심하게 신경써주고 가르쳐준 홀스맨과 빌리 커플의 도움 덕택이었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편안하고 즐겁게 타진 못했을 것이다. 덕분에 나는 좀 전에 있었던 여직원과의 신경전은 새까맣게 잊고 몽골의 초원을 달릴 수 있었다.





5.

영상 하나 추가... 하려다가 영상에 넣을 "승마와 어울리는 쾌적하고 신나는 음악이면서도 저작권에 위배되지 않는 음악"을 찾느라 일주일이 흘러버렸는데 여전히 음악을 찾지 못한 바람에 그냥 포기한다. 나중에 그런 음악을 찾게 되면 음악 입혀서 올려보겠음.

지금은 뭐... 빌리가 내 폰카로 찍어준 사진이나 몇 장 올려본다.











6.

1시간 정도 달렸을까, 빌리는 내가 현지 주민의 집(Nomadic House)에 가고 싶어한다는 걸 들었다며, 한 게르에 들르자고 했다. 그곳은 홀스맨 친구의 게르인데, 우리가 방문하면 말젖으로 만든 술(아이락)을 대접받을 수 있다고 했다.

푸세의 친구이자 손님 자격으로 게르 캠프에서 묵고 있는 빌리는, 승마하는 김에 가볍게 들러보자~ 너 구경하고 싶었다며~ 하는 느낌이었지만, 이 캠프의 직원이 아닌 그는 몰랐다. "현지인의 집에 방문하는 것"은 게르 캠프에서 진행하는 투어 상품 중 하나라는 것을 말이다. 그 때문에 나는 이미 게르 캠프의 주인인 푸세에게 현지인의 집에 들르는 값으로 USD 20~30 정도를 지불하기로 약속했었다.

그런데 오늘 시간이 너무 늦어져서, 그 투어는 취소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찰나, 빌리가 현지인 게르에 날 데려가려는 것이다. 어디보자, 그럼 내가 지금 빌리를 따라 잠깐이라도 현지인의 집에 들른다면 이 값을 지불해야하나? 나는 그 값을 지불한 뒤 몽골인들의 현지 생활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싶은 건데, 같은 여행자 수준인 빌리와 메리가 그 설명을 해줄 수 있을까? 만약 이 방문이 만족스럽지 않게 끝난다면 계산이 어떻게 되는 거지?

직원인 홀스맨과는 말이 안통하고, 말이 통하는 빌리와 메리는 직원이 아니고, 누구에게 물어야 오해없이 대화가 가능할까. 나는 잠시 고민했지만, 뭐 돈이야 나중에 생각하고 일단 지금은 그 말젖으로 만든 술이라는 것을 마셔봐야겠다고 결론내렸다. 지금의 방문이 제값을 하지 않는 것 같다면 이것도 매니저에게 따지지, 뭐.

이런 계산을 5초 정도에 걸쳐 한 뒤, 나는 빌리에게 씩씩하게 외쳤다.

나 : 난 좋아요. 가요, 거기로!
빌리 : 하하! 여기 코앞이에요. 이쪽이에요!






7.

그 게르에는 홀스맨의 친구라는 사람 한 명밖에 없었다. 게르의 규모나 살림살이로 보아 가족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독립해서 혼자 사는 건가?

하여간 그 홀스맨의 친구는 홀스맨과 우리들을 반가워하며 손님 맞이할 채비를 했다. 나는 홀스맨과 빌리가 알려주는대로 일단 게르 앞에 있는 말 주차장(?)에 말을 매어뒀다.






말 주차장(?)에 매듭을 짓고 홀스맨의 도움을 받아 말에서 내렸다. 얌전히 내려오는 걸 도와주기만 하면 되는 것을 굳이 와락 끌어안을 필요가 있었을까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겠거니 생각하고 고맙다고 했다.




무거운 날 이고 달려준 내 말! 고마움을 담아 쓰담쓰담 해줬다. 어마어마한 체격과는 다르게 순하고 착한 말이었다.




동영상으로 찍어놓으니 이런 순간포착도 할 수 있고 좋군. 하품하는 말.




말을 잠시 쓰다듬어주다가 빌리의 보챔을 받고 게르로 들어갔다. 딱 봐도 작은 규모였다.

그나저나 말에서 내려오면서 헬멧에 달린 고프로의 각도가 꺾였나보다. 바닥 지분 왤케 많음.




게르 내부. 크기는 내가 머물고 있는 게르 캠프 크기의 2/3 정도였다.

게르 안쪽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냄새로 가득했다. 말똥냄새와 혼자 사는 자취생의 방에서 나는 냄새가 어우러진 냄새라고 하면 좋을까...

뭐, 후각은 제일 빨리 둔해지는 감각이니까. 5분만 있으면 괜찮아지겠지. 나는 최대한 불쾌함을 표현하지 않으려 애쓰며 미소를 짓고 자리에 앉았다. 빌리와 메리도 차례로 내 옆에 앉았고, 홀스맨은 홀스맨의 친구 옆에 앉았다. 그들은 오랜만에 만난 것인지 우리는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신나게 이야기를 떠들었고, 그 사이에 나는 빌리와 메리에게 아이락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빌리 왈, 맞은편 벽에 분홍색 천으로 싸여있는 무언가가 말의 젖으로 만든 술인 아이락을 보관하는 통... 자루라고 해야할까? 하여간 보관 도구라 했다. 빌리는 얼른 마셔보자며 홀스맨을 보챘고, 홀스맨은 당연하다며 홀스맨의 친구를 보챘고, 홀스맨의 친구는 어깨를 으쓱이며 팔을 걷어붙였다.




아이락을 보관하는 도구는 무진장 거대해서, 술을 마시기 위해선 성인 남성 세 명이 필요했다. 그것 참 마시기 힘든 술이군.




간신히 술 한 잔을 받았다. 빌리가 술 받는 예의 같은 걸 알려줘서 그대로 따라했다. 왼손을 오른손의 손목에 대고 받으면 된단다. 약간 우리나라 술 받는 거랑 비슷하군. 나는 모두의 관심 속에서 한모금을 마셨다.

빌리 : 맛 어때요? ㅋㅋㅋㅋ
나 : ......으... 으으으......?
메리 : 오, 그래그래. 그런 반응 당연하지.
나 : ......뭐, 뭐야!? 이게 무슨 맛......?
빌리 : 하하하! 저도 그랬어요. 근데 이제 좋아요.
메리 : 아무래도 네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겠구나.


빌리와 메리는 자신들도 처음에 그랬다며 웃었고, 홀스맨과 그의 친구는 그럴 줄 알았다며 피식 웃었다. 좋아, 이쯤에서 설명을 해보겠다. 아이락은 그야말로... 그야말로... 맛없었다! 엄청 시큼했고, 음... 맛없었다. 더 이상의 표현을 할 수가 없다! 그냥 맛없고 시큼한 술이었다. 아마 익숙해진다면 그 시큼함 가운데서 다른 깊은 맛을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난 그 전에 한국에 돌아와버려서 그냥 맛없는 술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예의상 받은 술은 다 마셔야지. 난 눈을 꼭 감고 꿀꺽꿀꺽 마셨다. 그러자 빌리와 메리가 말렸다.

빌리 : 안돼요! 배아파요! 안돼요!
메리 : 오, 억지로 마실 필요 없어! 진정해!


응? 술 남겨도 괜찮은 건가? 나는 술을 1/3 정도를 남겨놓고 간신히 멈췄다. 빌리는 네가 힘들어하는 거 안다, 무리할 필요 없다, 그리고 네가 그거 다 마시면 한 잔을 또 따라주는 게 관례니까 천천히 마시라고 했다.

나 : 아 그렇구나... 근데 배가 아프다는 건 뭐죠?
빌리 : 아, 이 술 마시면, 처음에 배 아파요. 설사해요.
나 : ......네?
빌리 : 하하하. 저도 설사 막 했어요. 처음에.
나 : ......아, 아니......
빌리 : 그래서 그렇게 먹으면 배탈 날 거에요!
나 : ......그런 건......



그런 건 진작 말해!


내 배 괜찮냐! 앞으로 한시간을 다시 달려서 캠프로 돌아가야 하는데! 가는 도중에 멀쩡한 화장실이 있을리도 만무하고, 어디 풀숲에서 용변을 해결해야할 지경에 이르면 어쩌지!

나는 두려움에 떨면서 앞으로의 여정에 대해 고뇌했고,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빌리와 메리는 태평하게 이 집의 아이락에 대한 품평을 내리며 술을 홀짝거렸다. 이, 이 바보 미국인들 같으니라고! 으아아아앙!





8.

...하지만 그렇게 걱정했던 것치곤, 다행히도 내 배는 다음날까지 멀쩡했다. 여러분들께서 기대할만한 상황(?)을 만들어내지 못해서 죄송할 정도로 멀쩡했다. 하하하.

평소에 발효음식을 많이 먹어서 그런 걸까? 글을 쓰는 지금 배를 쓰다듬으며 치하하고 있다. 음음, 장하도다, 내 위장.






위장이 대단한 enat의 여행기는 저녁 먹어야하니까 끊고 게르로 돌아가는 길부터 계속!






덧글

  • LionHeart 2017/11/10 11:10 # 답글

    여행가서 속 탈나면 정말 고생이지요. 이전 베트남 여행에서 동료가 배 위에서 회를 먹고 장염에 걸리는 바람에...새벽에 호텔에서 토하고 설X하고,
    이후 복귀를 위해 차로 4시간 이동 + 비행기 이동으로 고생하는 모습을 보고 날 것이나 비위생적인 음식들은 가능하면 피하고 있습니다(..).
    말젖술도 그렇고, 말타기도 그렇고 문제 없이 잘 해결되어 다행이네요. ^^
  • enat 2017/11/18 20:55 #

    아이고 친구분도 LionHeart님도 고생하셨네요. 그러고보니 저도 페루에서 회무침 잘못 먹었다가 ㅠㅠ 알레르기 생겨서 눈 퉁퉁 붓고 하루종일 애꾸로 다녔던 기억이 있어요. 시장에서 좀 비위생적인 볶음밥 먹고도 탈났던 적도 있고...
    호기심 많고 부주의한 성격 탓에 여행중에 먹을 거 잘못 먹으면 고생한다는 교훈을 잔뜩 얻었으면서도 넘나 오랜만에 여행을 가서 그걸 다 까먹었었네요 ㅋㅋㅋ 다행히도 이번엔 운이 좋았어요!
  • 자두알감자 2017/11/10 17:46 # 답글

    아이락에 야쿠르트를 좀 섞어서 같이 마시면 훨씬 맛이 부드러워지고 좋아요 ㅎㅎ
    몽골여행 갔을때, 거기서 살고 있는 한국 분이 알려주신 꿀팁!
  • enat 2017/11/18 20:59 #

    오! 왠지 어울릴 것 같은 맛이에요! 둘다 발효음식이기도 하니!
    현지 한국분들께선 곧잘 그렇게 어레인지해서 드시나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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