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2/19 00:30

몽골 자유여행 (12) 울란바토르 재즈클럽 UB JAZZ CLUB ├ 몽골 자유여행 (2017)

1.

굶주린 배를 부여잡고 호스텔을 나와 방황하다가 한 한식집에 들어갔다. 여기서 또 내 저주받은 능력인 '맛없는 식당을 고르는 능력'과 '맛있는 식당에 들어가도 잘못된 메뉴를 선택하는 능력'이 발휘되어, 정말 맛없는 밥을 먹었다.




메뉴는 순두부 찌개였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맛이 오묘하게 이상했다. 음, 완전 상한 건 아니고 상하기 직전의 맛이라고 할까... 처음에는 조리 방법의 차이일까 고민하며 먹었지만, 먹으면 먹을수록 아무래도 그냥 유통기한 지난 순두부를 사용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1/3 정도만 먹고 나왔다.

카운터에 가서 일단 계산을 마치고, 종업원에게 여기 한국인이 있냐고 물었다. 종업원은 짧은 한국어로 우리는 모두 몽골인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어쩔까 머리를 긁적이다가, 순두부 맛이 이상하니까 주방에서 한번 체크해보라고 알려줬다. 종업원은 뭔가 겁먹은 표정 - 마치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이탈리아인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파스타 소스를 지적한 것 같은 - 으로 알겠다고, 고맙다고 말하고 주방으로 뛰어들어갔다. 나는 종업원을 내버려두고 밖으로 나갔다. 

으음, 만족스럽지 못한 걸. 한식집을 갈 거면 한국인이 하는 곳으로 갈 걸 그랬네.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이 어정쩡한 배를 어디서 채울 것인가 고민했다.





2.

울란바토르의 밤거리는 일국의 수도의 밤거리라 하기엔 화려함이 부족했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밝았다. 인적이 많진 않았지만, 또 드문 것도 아니어서 적당히 안심하고 다닐 수 있을 정도였다.




어딜 가볼까 생각하며 가로등을 따라 걷다보니, 한 재즈 카페에 이르렀다.




UB JAZZ CLUB.

재즈 클럽이라. 굉장히 생소하다. 한국에서도, 다른 외국에서도 재즈 카페나 재즈 클럽 같은 곳은 가본 적이 없었는데. 어떤 분위기일까 궁금해졌다. 나는 무턱대고 문을 열어 안을 살폈다.

출입구 바로 앞엔 작은 카페가 하나 있었고, 그 옆에 재즈 클럽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하나 더 있었다. 입구에는 정장을 갖춰 입은 직원이 한 명 서 있었는데, 날 보더니 웃으며 몇 명이냐고 물었다. 키가 몹시 커서 대화를 하기 위해선 내가 고개를 바짝 치켜올려야만 했다.

나 : 한 명인데... 한 명은 못 들어가?
입구 직원 : 오, 그럴 리가! 어서 들어와.


그러더니 입구쪽 작은 테이블에 자리를 마련해줬다.





내부는 대충 요러함.




내가 사진을 찍으며 무대 쪽으로 고프로를 설치하자, 내 앞에 앉은 아저씨들이 왜 자기들을 찍냐고 웃으며 말을 걸었다. 나는 아저씨들을 찍을 생각은 전혀 없다고, 무대를 찍는 거고 어딘가에 동영상을 올리더라도 아저씨들 얼굴은 꼭 모자이크해서 올리겠다고 답했다.

아저씨1 : 하하하! 그럴 필요 없어!
아저씨2 : 우린 그냥 물어본 거야. 궁금해서. 
나 : 그래? 난 신경 쓰이게 했을까봐 미안해서.
아저씨1 : 아냐아냐. 전혀 아냐!
아저씨3 : ......


그 아저씨들은 자기네들 테이블에 빈 자리가 있는데 이쪽으로 와서 앉으면 공연이 더 잘 보일거라 했다. 어디보자, 모자 쓴 아저씨가 좀 여자를 밝힐 것 같지만 다른 두 아저씨들이 잘 막아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군.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내 감을 믿고 자리를 옮겼다.

내가 자리를 옮기자, 아저씨들은 신이 나서 자기들의 소개를 했다. 자기네들은 전부 몽골인이고, 울란바토르가 고향인 동네 친구들인데, 지금은 다들 외국에서 일한다고 했다. 마침 전부 휴가 날짜가 맞아 고향에서 만날 수 있게 되었다고.

나 : 근데 왜 재즈 클럽에서 만나? 다른 술집도 많은데?
아저씨1 : 무대에 올라가는 사람이 내 친형이야! 드러머거든. 형도 볼 겸 여기로 왔어.


대화를 나눠보니 아저씨1은 영어가 유창하고, 아저씨2는 영어는 별로지만 일본어가 유창하고, 아저씨3은 중국어만 사용할 줄 알았다. 아마도 각자 일하는 나라가 그쪽인가 보지. 나는 영어와 일본어는 어느 정도 알아들을 수 있지만 중국어는 기본적인 말밖에 몰라, 아저씨3과의 대화는 어느정도 포기했다. 하지만 아저씨1이 내게 이상한 농담을 던져 내가 인상을 찡그릴 때면 일갈하며 막아주는 게 아저씨3이라서 제일 믿음직했다.

대화는 대충 이런 느낌이었다.

아저씨1 : 나 한국인 여자 소개시켜주면 안돼? (영어)
나 : 이 아저씨 결혼 안했어? (일본어)
아저씨2 : 쟤 애가 둘이야. (일본어)
나 : 진짜 나쁜 사람입니다. (일본어)
아저씨2 : ㅋㅋㅋㅋㅋㅋㅋ
아저씨1 : 한국인 여자 만나보고 싶어. 너도 괜찮아! (영어)


그 사이에 아저씨2가 아저씨3에게 전반적인 대화 내용을 몽골어로 설명하고, 난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진짜 끔찍하게 싫다고 말한다. 아저씨3은 상황을 파악하고 버럭한다.

아저씨3 : 아저씨1! 시끄러워! 빨리 마시고 집으로 들어가! (같은 느낌의 몽골어)
나 : 네 아이들이 널 집에서 기다려! (영어) 진짜 나쁜 사람입니다. (일본어)
아저씨2 : 맞아. 진짜 나쁜 사람입니다. (일본어)
아저씨1 : 난 농담한 건데. 농담이라고. (영어)


그렇게 영어와 일본어, 그리고 간혹 중국어와 몽골어가 오가는 복잡하고도 어지러운 대화를 나누다보니, 별 이야기를 주고받지 않은 것 같은데도 시간을 많이 잡아먹더라. 어쨌든 정신은 없었다. 빨리 이 대화에서 벗어나 공연을 구경하고 싶구나.




대화가 소강상태에 이르렀을 때 내 음식이 나왔다. 흑맥주에 곁들일 치킨 커리였다.

어, 실은 나 저거 안시키고 치킨 스튜 시켰었는데, 직원이 너무 바빠서 혼동을 했는지 이름이 비슷한 치킨 커리가 나왔다. 나는 스튜를 먹지 못함에 대해 애석해했지만, 이미 나온 걸 다시 바꾸려면 시간도 오래 걸릴 것 같고, 또 커리 맛이 나름 괜찮아서 그냥 먹기로 했다.

내가 아저씨들에게 내 커리를 나눠줄까 물어봤더니, 다들 자기네들은 맥주만 마시러 온 거고 이미 배가 부르다며 사양했다. 그렇다면 땡큐지. 나는 예의상 한번 더 물어본 뒤, 거절의 대답을 듣고서야 신나게 내 커리를 퍼먹었다.

커리를 반 정도 먹어갈 즈음에, 재즈 공연이 시작됐다.





3.

재즈에는 영 조예가 없는지라, 사실 뭔지도 모르고 들었지만 그래도 좋은 건 좋았다. 좋은 음악은 장르 불문 시대 불문 국적 불문 좋은 것이다.






무대 가수가 한쪽 바지 주머니에 손을 꽂고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참으로 후리했다. 노래 잘 부르더라.

반주 역시... 좋...았나? 가수의 카리스마가 워낙 인상적이었는지라 사실 반주는 기억이 잘 안난다. 아저씨1의 형이라는 드럼 아저씨도 뭔가 가수에 가려져 잘 안보였음. 뭐 별다른 특이점이 없었던 걸 보면 반주도 무난했던 것 같다.







재즈 클럽이라는 곳은 상당히 편안하고 즐거운 곳이구나.

이곳은 부담없이 라이브 음악을 즐기며 맥주 한 잔 할 수 있는 곳이란 걸 학습했다. 아마 나중에 다른 나라의 다른 도시를 여행하게 될 때에도 재즈 클럽을 찾아 들러볼 것 같다.





4.

공연이 끝난 후, 아저씨들과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아저씨1은 술이 잔뜩 취했는지 자꾸 나보고 호텔이 어디냐고, 자기가 호텔까지 데려다주겠다고 끈덕지게 물어봐서 날 성가시게 했지만, 아저씨2와 아저씨3의 도움으로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예상대로였군. 

밤 10시쯤 됐을까? 나는 재즈 클럽에서 밖으로 나와 찬 공기를 마시며 자박자박 걷기 시작했다. 호스텔까지 가다가 괜찮은 펍을 발견하면 거기 들어가서 맥주나 더 마셔야지. 아까 더 마시고 싶었는데 아저씨1이 앞에서 자꾸 깝죽거려서 공연 끝나자마자 그냥 나왔단 말이지. 진짜 딱 한 잔만 더 마시고 싶은데, 어디 괜찮은 펍 없을까. 

그러나 내 생각과는 다르게, 걸으면 걸을수록 잠이 오는 것을 느꼈다. 음, 내 몸은 지금 맥주가 고픈 게 아닌가보군. 잠이 고픈가보다. 당시 얼마나 졸렸냐면, 지금 내가 이 포스팅을 작성하면서 졸려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데 이걸 1졸림이라고 한다면, 그 때는 5졸림 상태였다. 나는 내 몸의 의지를 존중해주기로 했고, 펍에 가는 대신 곧바로 호스텔로 직행했다. 그리곤 침대에 쓰러져 쿨쿨 잠들었다...






지금 나도 글올리기 버튼 누르고 바로 쓰러져 잘 거다! 아침의 간단 사원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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