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2/20 23:32

몽골 자유여행 (13) 울란바토르 간단 사원 ├ 몽골 자유여행 (2017)

0.

이곳에선 사진을 많이 못찍었지만, 그래도 제일 마음에 드는 사진이라면 이거.




간단 사원을 둘러보고 나오는 길. 한 동자승 - 동자승이라고 하기엔 나이가 많나? 청소년기 스님을 따로 지칭하는 말이 있던가? 그냥 동자승이라고 하면 포함되나? - 이 양손에 물주전자를 들고 바삐 걸어가고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물을 길어야하니 얼마나 힘들까. 별로 좋지 않은 표정이길래 응원해주고 싶어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진짜 힘 쎄다! 대단하다!" 느낌의 마임을 해줬더니, 그 나이때 애들보다 훨씬 순진해보이는 얼굴로 헤죽 웃고 내게 꾸벅 인사를 하며 지나갔다.

사진은 그 동자승이 지나가는 뒷모습이다. 물론 앞모습을 찍고 싶긴 했는데, 불러세우기도 뭣하고 사진 찍으려다가 이 평화로운 분위기를 망칠 것 같아 관뒀다. 그 동자승의 쑥쓰러운 듯 헤실거리는 미소를 뒷모습만으로 상상해보시라.






1.

그럼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간단 사원 소개부터 해보겠다.

간단 사원은 울란바토르에 소재한 티벳 불교 사원으로, 울란바토르를 여행하는 사람들이라면 거의 다 방문하는 여행 필수 코스라 할 수 있겠다. 사실 사원 내에 그렇게까지 화려하고 대단한 무언가가 있는 건 아닌데, 울란바토르에 하도 뭐가 없어서 다들 시간이 남아 이곳에 들리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뭐 다녀온 입장에서 갸우뚱하며 적어본다면 그렇다.




이곳은 공산 정권 시절, 종교 탄압으로 인해 많은 종교 시설들이 파괴됐을 때 유일하게 남은 사원인데, 그 이유는 몽골 정부가 외신에게 보이기 위한 - 엥? 탄압이라니 그게 뭔 소리? 우리 종교 자유 있는데? - 상징물이었기 때문이란다. 이유야 어쨌든 지금에 와선 이곳이라도 남게 되어 다행이라 할 수 있겠다. 가식에 감사해야할 판이군.

호스텔이 사원과 가까운 곳에 있어서, 아침에 일어나 호스텔 조식을 챙겨먹고 슬슬 걸어가봤다.




구글 지도를 보고 제일 가까운 길을 골라 갔는데, 하필 고른 길이 으슥한 빈민가 골목길이어서 엄청나게 쫄은 상태로 걸어갔더랬다. 알았다면 이쪽으로 안걸어갔을거야. 요 골목길 걷던 게 몽골 와서 제일 무서운 순간이었음. 





2.

아침 9시에 찾아가면 아침 예불 드리는 걸 구경할 수 있다길래, 시간을 맞춰 방문했다. 스님들께서 침중한 표정으로 경전을 읊는 소리, 은은한 향 냄새, 낡았지만 알록달록한 내부 장식, 예불에 늦은 동자승이 허겁지겁 뛰어가는 모습 등이 기억에 남는다. 




예불 도중인 절 내부는 종교 시설 + 종교 의식 중이라 촬영 금지였다. 흠, 내가 사진 없이 이 모습을 기억할 수 있을까? 사진이 안된다면 그림이라도 그려야겠다. 난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구석으로 들어가, 신사임당 수첩에 법당의 모습을 날림으로나마 그렸놨다.




절 한구석에서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옆으로 미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들어왔다. 예불 시간인데도 시끄럽게 떠들면서 들어온 그들은, 그것도 모자라 무지막지하게 플래쉬를 터트려가며 사진을 찍고 캠코더로 모습을 담았다. 나는 기겁하며 사진 찍으면 안된다고, 저쪽에 표지판이 있다고 그들에게 알려줬지만, 몇 명은 어깨를 으쓱하며 촬영을 계속했다.

내가 질색하며 "정말 무례하구나, 어떻게 저런..." 등등의 혼잣말을 했더니, 관광객들 중 그나마 상식이 있던 사람들이 사진 찍는 사람들을 말렸다. 그리고 나에게 사과를 - 내가 델을 입고 있어서 이 절의 관계자거나 독실한 몽골 불교인으로 보였나보다 - 했다.

나 : 나한테 사과하지마. 저들에게 해. 나도 여행중인 사람일 뿐이야. 한국인이고.
관광객 : 오! 그랬구나. 우린 텍사스인이야.


늘 궁금하지만 왜 미국인들은 자기 소개를 할 때 자기 주를 말하는 걸까? 그것까지 궁금하진 않은데. 나는 심드렁하게 그러냐고 했고, 그들은 나와 함께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었다. 뭐야, 타국의 문화와 종교에 대한 예의가 없는 너희들한테 내 멋진 델을 찍을 기회를 주고 싶진 않아. 난 싫다고 말하고 몸을 돌렸다.





3.

사원 내부를 돌아다니다가, 절을 찾은 신자들이 동그란 통을 빙글빙글 돌리는 걸 보았다.  





요 도구는 티벳 불교 사원에 가면 꼭 하나씩은 있다는, 기도 바퀴, 마니차, 마니륜 등으로 불리는 것이다. 한국에서 '윤장대'라 불리는 것과 비슷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 같다.

돌릴 수 있는 통 안에는 불교 경전이 들어있는데, 이걸 한바퀴 돌리면 경전을 한번 읽은 것과 같은 효과를 발휘한다고 한다. 그래서 글을 모르는 사람들도 이것을 돌림으로써 공덕을 쌓을 수 있었단다. 오호라.





그래서 나도 한번 해봄. 금속 재질이라서 손이 꽤 시려웠다.

그래도 뭐, 평소엔 쌓지도 못하는 공덕 조금은 쌓았겠지! 괜히 뿌듯했다.





4.

사찰 내부를 돌아다니다가 길다란 기둥에 사람들이 모여있는 걸 발견했다. 




또 뭔가 하고 다가가서 보니, 사람들이 간절한 표정으로 기둥에 머리를 대고 뭐라뭐라 속삭이며 기둥을 빙글빙글 돌더라. 내가 멀뚱멀뚱 구경하고 있자, 돌고 있던 사람 중 한 사람이 다가와 친절하게 설명을 해줬다. 하지만 몽골어라 무슨 말인지 못알아듣겠다.

근데 뭐, 종교 시설에 있는 거라면 보통은 소원을 빌면서 도는 거 아니겠어? 사람들의 소원이 이 길다란 기둥을 타고 하늘로 전달되는 것 같았다. 조금 낭만적이군. 

내가 대충 알아들었다는 얼굴을 하자, 그 사람이 날 빙글빙글 도는 무리에 껴줬다. 그래서 나도 얼결에 그 사이에 껴서 머리를 대고 빙글빙글 돌았다. 딱히 빌만한 소원이 없었는데도,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아 적당히 심오한 표정을 짓고 중얼중얼거리는 척 했다.





5.

간단 사원 제일 안쪽에 있는 관음대불전까지 걸어갔다.




관음대불전. 구글에 간단 사원을 쳤을 때 가장 많이 나오는 대표 사진이다.

건물 안쪽에는 거대한 불상이 있는데, 안쪽까지 들어가서 보려면 입장료를 내야하고 촬영을 하려면 촬영료를 또 내야한단다. 어쩔까 하다가 그냥 입구에서 흘깃흘깃 보고 말았다. 그렇게까지 티벳 불교에 관심이 있는 건 아니라...

관음대불전 바로 앞에는 작은 종들이 달려있는 탑이 있었다. 사람들이 진중한 표정으로 그 탑을 돌며 종을 하나하나 다 치길래, 아무도 없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한번 해봤다. 아마 이것도 소원을 비는 장치인가 보다.





이게 티벳 불교의 특징인 건지, 아니면 몽골의 특징인 건지는 모르겠으나, 사원 내부에는 간단한 행위만으로도 자신의 소원을 빌고 기도할 수 있는 장치가 많았다. 기도 바퀴, 기도하는 기둥, 작은 종탑 등등.

옛날에는 그런 장치를 인간의 나약함이나 뭐든 쉽게 이루려는 욕심 등으로 치부하며 코웃음쳤었는데, 요새는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모두 글을 모르는 사람들이나 생업에 쫓겨 경전을 읽을 여유가 없는 사람들을 위해 마련한 배려와 노력의 결과물이 아니겠는가. 퍽퍽한 삶을 살면서도 자신의 간절한 소원을 잊지 않는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살면서 배워가고 있기에, 그걸 조금이나마 해소시켜줄 수 있는 그 장치들에 감사하게 되었다.





6.

그 외 간단 사원 사진 첨부.








사원에서 바삐 움직이는 스님들의 아침일과와, 이른 아침에 나와 간절히 기도하는 독실한 신자들과, 자신의 기도를 멈추고 어리숙한 외국인에게 기도하는 법을 알려주는 따뜻한 사람들이 인상적이었던 곳이었다.

굳이 종교를 따지라면 나는 타종교인이지만, 사실 그런 게 무슨 상관일까. 무언가를 믿고 무언가를 바라는 사람의 마음은 거기서 거기인 걸. 나는 어딘가 깨끗해진 마음으로 간단 사원에서 나와, 지나가는 택시 한 대를 잡고 수흐바타르 광장으로 향했다.





졸다가 흘린 침 닦으며 수흐바타르 광장에서 계속!






덧글

  • 존평씨 2017/12/21 10:12 # 답글

    행자입니다.
    귀여운 우육빛깔 enat님.
  • enat 2017/12/21 12:25 #

    그거다!!!! 가아니라 그거네요!!! 유레카라서 말이 짧아진...
    자꾸 우육우육하니까 소고기 먹구싶네여.. 감기기운이 핑글핑글.. 뜨끈뜨끈 설렁탕... 갈비탕... 도가니탕...
  • LionHeart 2017/12/21 13:42 # 답글

    2.
    주 하나가 우리 나라만하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
    그런 것도 있을 것이고, 나라 이름 부터가 United States of America이고, 각 주들이 법같은 것이 독립된 부분도 있어서, 나라에 대한 인식이 한국과는 다른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도 절이나 신사 같은 곳에 가면 사진을 찍어도 될지 안될지 늘 고민합니다. 찍고 싶은 사진이 행사나 의식 도중일 경우...본인에게는 매우 경건하게 수행 중인 일일텐데 그것을 구경거리로 삼는 것에 어쩐지 불경함과 죄송함이 느껴져서 좀처럼 찍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보니 어쩌다 찍은 사진이 있어도 블로그에는 올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네요. ;ㅁ;
    사람이 있어야 사람 사는 맛이 나는 실감이 나는데 아쉽습니다. ㅠ.ㅠ
    //
    마지막 사진 속에서어린 스님들이 많이 보이는군요 :)
    밝은 표정이 인상적입니다.
  • enat 2017/12/21 14:02 #

    음 듣고보니 그렇겠네요. 그런 인식이 그들에겐 자연스러운거겠죠...
    그냥 요새 괜히 밉상인 미국인들 만나서 그랬는지 괜히 태클걸고 싶은 마음에 그렇게 표현했나봅니다...

    저는 사진 금지라는 표지판만 없으면 무음 카메라로 몰래몰래 찍는 편입니다. 표지판이 있을 경우에만 그쪽에서도 사진 찍는 건 진짜 아니다 싶으니까 표지판까지 걸어놨겠지 하고 돌아서고요... ㅋㅋㅋ 최대한 상대가 불쾌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인물 사진 찍는 법은 넘나 어려운 것 같아요.
  • 2017/12/22 06:57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7/12/23 00:35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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