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2/22 16:27

몽골 자유여행 (15) 울란바토르 북한음식점 평양고려민족식당 ├ 몽골 자유여행 (2017)

1.

마지막 날 점심은 미리 알아봤던 북한 음식점 "평양 고려 민족 식당"에서 먹었다.




위치는 요기.

난 호스텔 근처라서 부담없었지만, 수흐바타르 광장에서 찾아가기엔 조금 애매한 거리일까 싶다.




외관 사진. 식당은 2층에 있다. 오른쪽 계단 위 문으로 들어가면 된다.

솔직히 좀 긴장했다. 남한 사람이라고 싫어하면 어쩌나 싶어서. 그래서 밖에서 목소리를 가다듬고 외국인처럼 최대한 혀를 굴리며 헬로~ 하면서 들어갔더랬다. 그러나...

여직원 : 어서오세요. 혼자 오셨어요?

곱게 화장한 여직원이 대번에 한국어로 날 맞이했다. 나는 못 알아들은 척 흠큼큼거리며 계속 영어를 썼다.

나 : 흠흠. 저스트 원. 아임 얼론.
여직원 : 이쪽으로 오세요. 남한에서 오셨죠?
나 : ......네.






2.

식당 내부는 창가 자리와 홀 자리가 커텐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홀 자리엔 (억양으로 보아) 북한 사람들로 보이는 손님들이 많이들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직원은 날 아무도 없는 창가 쪽으로 데려갔다.




여직원 : 메뉴 여기 있고요, 정하면 불러주셔요.
나 : 아, 네.


나는 여직원이 준 책자를 펼쳐보았다. 제법 많은 메뉴들이 사진과 함께 적혀있었다. 사진 속 음식들은 굉장히 익숙해보였지만, 부르는 명칭은 생소했다. 아마 북한에서는 저런 이름으로 불리고 있나보지. 나는 무엇을 먹어볼까 고민하다가, 익숙한 된장찌개(된장국?)와 옥수수 부침개? 같은 걸 시켰다. 내가 뱃고래가 큰 사람이었다면 훨씬 더 많은 음식을 시켜서 먹어볼텐데. 아쉬웠다. 북한의 맛이 진짜 궁금하단 말야.

여직원은 내가 음식을 시킨 뒤에도 내 근처에서 서성이며 날 관찰(?)했다. 물을 따를 때에도 옆이 아니라 굳이 내 뒤로 돌아들어와 따라줬는데, 이게 원래 북한에서의 서빙 문화인지 아니면 내가 핸드폰으로 무엇을 하는지 확인하는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조금 긴장이 되더라. 으음, 뭔가 경계당하고 있는 건가. 나는 핸드폰으로 소설을 보거나 쩝쩝거리며 혼잣말로 아 기대된다아 등등을 지껄이는 행위로 나는 1도 위험한 사람이 아니며 그냥 평범한 여행자일 뿐이라는 걸 강조했다.

나는 바보처럼 배실배실 웃다가, 여직원이 따라준 물에 감사하다고 말하고 한모금 마셨다.

나 : 어? 보리차다.

북한에서도 보리차를 마시는구나?

북한 음식점의 물맛은 우리집에서 먹던 물맛과 똑같았다. 뭐 다같은 보리차니까 당연히 맛이 같겠지만, 그 물맛은 전혀 다른 세상에 들어온 것처럼 긴장해서 쭈뼛거리며 낯설게 굴던 내게 조금 충격이었다.

아, 맞다. 우리 반세기 전엔 같은 나라 사람이었지. 집집마다 물맛까지 비슷한.

조금 서글퍼졌다.





3.

잠시 후, 음식이 나왔다. 북한 음식점에서 사진 찍다가 혼났다(?)는 사람들의 여행 후기를 몇 번 본 적이 있어서, 무음 카메라로 소심하게 식탁 위만 찍었다.





음식의 모습과 맛은 남한에서의 그것과 다를 게 없었다. 흰 공기밥, 김치 등의 밑반찬, 된장찌개... 전부 다 익숙하게 맛있었다. 엄마에게 카톡으로 북한 음식 사진을 보냈더니, "완전 우리 집밥이네~" 하시더라.

조금 색다른 게 있었다면 옥수수 부침개(원 명칭이 기억이 나질 않는다)였다. 부침개에 옥수수 가루와 옥수수가 들어간 건데, 엄청나게 고소하고 부드러운 게 딱 내 취향이었다.

여직원 : 식사는 마음에 드십니까?
나 : 네! 엄청 맛있어요! 특히 옥수수 부침개 맛있어요.


나는 혹시라도 내 말을 못 알아들을까봐 큰소리로 또박또박 이야기했고, 여직원은 그런 날 마치 여동생을 보는 듯한 눈으로 바라보며 맛있게 먹으라 했다.

여직원 : 울란바토르는 왜 오셨어요?
나 : 여행 왔어요. 오늘 마지막 날이라 이제 집 가요. 이거 몽골 전통복인데 사서 입었어요.
여직원 : 어머, 정말 곱다.


그러면서 내 옷을 만지작거리는 여직원. 뭔가 분위기가 부드러워진 것 같다. 나는 히죽히죽 웃으며 계속 음식 칭찬을 했고, 여직원은 다행이라며 부족한 게 있으면 더 가져다주겠다고 했다. 마침 잡채가 다 떨어졌기에 잡채를 더 달라고 하자, 여직원이 반찬 그릇을 들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4.

여직원은 곧 내 잡채를 가지고 창가쪽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갑자기 그녀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응? 나 뭔가 잘못했나? 난 그녀가 짓는 차가운 표정에 놀라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봤다. 어디 보자, 날 보는 것 같진 않고...

그녀의 시선은 창문 밖의 한 외국인에게 꽂혀 있었다. 누가 봐도 배낭 여행객처럼 보이는 서양인 남자가, DSLR로 이 식당의 간판을 촬영하고 있었다. 어, 뭐, 북한 식당이라니까, 신기하니까 찍고 있겠지...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나보다.

여직원 : 누구누구 언니(이름이 기억 안난다), 이쪽으로 와보시라요.

그러더니 그 누구누구 언니라는 사람과 속닥이며, 커텐 쪽에 몸을 숨기고 밖의 서양인 남자를 열심히 째려보는 것이었다. 아, 아니 저 사람은 누가 봐도 여행자 같은데에... 그 누구누구 언니라는 사람은 여직원에게 이야기를 전해 듣더니, 홀로 들어가 다른 직원들에게 뭐라뭐라 지시를 내리는 것 같았다.

그 사이 여행자는 사진을 찍은 뒤 흡족해하며 자리를 떴고, 그 여직원은 그 여행자의 뒷모습을 싸늘하게 바라보다가, 자신의 손에 있는 잡채 반찬 그릇을 깨닫고 내 자리로 걸어왔다. 그리고 싱긋 웃으며 식탁 위에 잡채를 내려놓았다.

여직원 : 맛있게 드셔요.
나 : 아, 아... 고마... 고마워요...


그 사진 찍던 여행자가 사라지자 가게의 분위기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화로워졌고 여직원 언니도 살랑살랑 웃으며 사람들에게 서빙을 했다. 으음, 내가 본 게 뭐였는지 모르겠군. 혹시 여직원 언니 밤에는 독침 쓰는 첩보원이고 막 그런 건가? 쩝.





5.

밥을 다 먹고 홀 쪽의 카운터에서 계산을 했다. 다른 몽골 음식점에 비해 비싼 편이었지만, 환율 따져서 생각하면 그렇게 엄청 비싼 건 아니었다. 서울의 백반집 밥값 수준보단 저렴했다.

여직원 언니는 내 뒤에 서서 등을 쓰다듬으며 다른 직원들에게 날 소개했다. 남한에서 여행 왔는데, 몽골 옷을 사서 입고 다닌다고, 참 곱고 예쁘지 않냐고... 다른 직원들도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뭐라뭐라 했는데, 이미 두 달 전 일이라 무슨 말을 들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다. 그냥 뭐, 특별한 거 없이 무난한 덕담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여직원 언니와 누구누구 언니란 사람 둘이 나와 날 문까지 배웅했다. 나는 고개를 꾸벅 던지고 다음에 또 오겠다고 말한 뒤, 웃으며 가게를 나섰다. 여직원 언니가 내 등 뒤로 집까지 조심히 돌아가라고 했다.

울란바토르의 쌀쌀한 바람이 불어왔지만, 마치 우리 동네의 자주 가는 백반집에서 밥을 먹은 듯 속이 든든해서 춥진 않았다. 아직도 음식 맛이 이렇게나 비슷한데 언제쯤 진짜 평양에서 음식점을 가볼 수 있을까.

반가움과 아쉬움을 바람에 날려보내고, 공항으로 가기 전 할만한 일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며 마저 길을 걸어갔다.





그 외 울란바토르 이야기는 다음편에 모아서 계속!






덧글

  • ㅇㅇㅇ 2017/12/23 10:39 # 삭제 답글

    북한외화벌이에 도움을 주고 오셨군요. 장하세요.
  • enat 2017/12/23 11:35 #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은 저길 안가면 됩니다. 개인적으론 나라에서 북한에 퍼준 돈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민간 차원의 소소한 교류에 불과하단 생각이 드네요. 그래서 전 갔고요.
  • PennyLane 2017/12/23 12:45 # 답글

    요즘 여러 나라에서폐쇄된 곳이 많다는데 여긴 괜찮은가봐요. 북한식당이라도 나라마다 분위기가 많이 달라서 어딘 감시당하는 분위기란 썰도 있긴했어요.
    어른들 말씀 들어보면 캄보디아 패키지 여행 코스로도 들어있대요.개인이 이용하는 건 국가보안법에 저촉되지 않으나 단체관광으로 가는 건 남북교류협력법의 적용을 받을 수 있다는데 실상은 그런거없다며(...)
  • enat 2017/12/23 14:15 #

    몽골은 제가 갔을 때(2017.10)만 해도 멀쩡했어요!
    전반적인 분위기도 유했고, 남한 사람에게도 친절했고... 그래서인지 그냥 슬프더라고요. 이렇게 말 잘통하고 음식도 통하는 사람들인데 적국이라는게요. 뉴스 보니까 귀순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데 얼마나 살기 퍽퍽하면 계속 넘어올까 싶고 또 이러다가 체제 확 무너질까 싶고 뭐 다양한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잌ㅋㅋㅋ 근데 패키지 여행코슼ㅋㅋㅋㅋ 어 음 뭐 저도 다녀온 입장이지만 패키지에 있다는 건 좀 놀랍네요...
  • 바이올레타 2017/12/23 16:40 # 삭제 답글

    북한 식당 방문했던 후기를 어떤 웹툰에서 봤었는데, 이낫님도 다녀오셨군요! 그 웹툰에서도 사진 찍다가 제재당했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거긴 중국쪽에 있는 북한식당이었지만 몽골에 있는 곳도 마찬가지인가보네요. 밖에서 사진 찍는 외국인 경계하는 부분에서 체제의 무서움(?)같은게 느껴졌어요.... 언어도 똑같고, 먹는것도 이렇게 비슷한데 참.. 뭔가 씁쓸해요.
  • enat 2017/12/25 00:08 #

    안가볼수가 없더라고요. 저 북한사람 그렇게 실물로 보는거 처음이었거든요. "우리 같은 민족이래요~ 넘 반가워요~" 하고 넉살을 떨어보고 싶었어요. 제가 좀만 더 용기 있었거나 중간에 사진 찍는 외국인이 안나타나서 냉랭해진 분위기를 엿보지 않았더라면 해봤을텐데 말예요. ㅠㅠ
  • LionHeart 2017/12/26 12:07 # 답글

    외국인 등장에 싸해지는 분위기는 겁이 나기도 하는군요.
    실제로 무례한 외국인들이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직원들 전부가 경계하는 것으로 봐서는 그런 이유가 아닌 것 같아 보이네요.
    아직 enat님, 즉 남한 사람에게까지 날을 세우지 않은 것이 다행인 것 같습니다.
  • enat 2017/12/26 16:47 #

    그냥 지나가는 외국인 여행자일 뿐인데! 갑자기 표정 변하는 거 보고 좀 체할뻔 했습니다 ㅋㅋㅋ..... 저 여행자가 진짜 첩보원이라도 되나 의심이 될 정도로 살벌해서 무서웠어요 ㅋㅋㅋ
    저는 굉장히 무해하고 얌전한 인상이라 무사했던 것 같습니다. 천상 순둥이 얼굴(?)이라 다행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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