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2/26 20:40

베네치아 (12) 산 조르조 마조레 섬 ├ 베네치아 일주일 (2014)

2011년도의 여름. 나는 그 때 대학생이었는데, 휴학을 신청해놓고 아르바이트를 빡세게 돈 뒤 유럽에 다녀왔었다. 내 대학 생활 중 제일 잘한 일이 있다면 그 때 휴학을 하고 여행을 다녀왔단 거다. 덕분에 '다르게 살기'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캐나다나 남미도 다녀올 수 있었으니까.

하여간 그 당시, 베네치아에 들렀을 때의 일이다.

미로처럼 복잡한 베네치아에서 한참을 헤매던 우리는, 산 마르코 광장에 들어섰다. 산 마르코 광장은 아름다웠지만 그걸 느끼기엔 몹시 더웠고 사람도 많았다. 그곳에서 태양과 인파를 피해 바포레토를 타고 건너갔던 섬이 바로 맞은편 산 조르조 마조레 섬이었다. 그 섬은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 한 채가 섬 대부분의 면적을 차지할 정도로 좁은 섬인데, 제법 좋은 뷰 - 바다 건너 산 마르코 광장과 두칼레 궁전이 보인다 - 를 가진데다가 사람은 또 어찌나 없고 한적한지, 여유를 되찾기엔 딱 좋은 섬이었다.

그렇게 마음에 드는 곳이었건만, 한 가지 아쉬움을 두고 왔다.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과 종루에 들어가보질 못한 것이다. 지금이야 머리 긁적이고 구글링해서 사진 보다가 말겠지만 - 세상 살면서 놓치고 사는 게 얼마나 많은데 여행지의 무언가를 놓친다고 뭐 큰일 나겠나 싶어서 - 당시의 어린 나는 발을 동동 구르며 어찌나 아쉬워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2014년도의 가을, 다시 한 번 베네치아에 들렀던 아주 조금 더 어른이 된 나는, 2011년도의 징징대던 날 위해,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에 다시 한 번 다녀왔다. 사실 그밖에도 2014년도의 나는 2011년도의 날 위해 이미 여러가질 했었다. 무라노 섬 제대로 못봤다고 징징거려서 그거 보러 다시 갔었고, 본섬에서 자보고 싶다고 징징거려서 본섬에 있는 호스텔에 묵었었고, 토르첼로 섬에 들러보고 싶다고 징징거려서 그 무덤섬에 기어코 다녀왔고...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에 다녀온 것도 이 연장선상이었다.

서두가 너무 길었다! 산 조르조 마조레 섬에서 찍었던 사진들을 쭉 올려보며, 2011년의 나를 달래준 2014년의 나를, 2017년의 내가 잘했다고 쓰담쓰담 해줘야겠다. 보다 어린 사람을 보듬는 일이 어른이 할 일이니까. 엣헴.



* 사진만 쭉 올려봄. 5만원짜리 디카로 찍은 거라 화질이 그리 좋진 않음.






성당 내부. 입장 무료.

밖은 어둑한데 불을 켜지 않아 캄캄했다.






종루로 오르는 티켓을 샀다. 성인 6유로, 학생 4유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종루에 오르자마자 맞닥뜨린 풍경.

처음엔 날이 흐려 흐릿했지만,






해가 지면서 구름이 걷히기 시작하고,







색이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바다 한가운데 종루 위라 바람 엄청 불어서

이를 덜덜덜 부딪치며

그래도 좋다고 사진 찍었던 기억이 남.





추위와 맞서 싸우며 찍은 인증샷.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 이곳저곳.





사진 열심히 찍고 있는데 종이 치기 시작했다.

머리가 뎅뎅뎅 울렸다.

귀 터지는 줄.

신부님 제게 왜 이러세요 소리 나옴.

뭐, 정각에 올라간 내 잘못이지만...






종소리가 끝나자 석양이 마법을 부리기 시작함.


노을에 새빨개진 베네치아가

감사하게도 내 앞에 있었다.

나는 이걸 보기 위해 여길 왔구나 생각했다.





이걸 보기 위해.





한참을 종루에 서있다가 폐관시간이라 내려왔다.

여운이 가시질 않아 섬 끝자락에 앉아

이미 어둑어둑해진 베네치아를 바라봤다.





옆에선 어떤 아재가 낚시중.

잘 안 잡히는 것처럼 보였는데

그 사실에 그닥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그래, 베네치아가 눈 앞에 있는데.





좋은 기억을 만들어준 고마운 2014년의 나.

그리고 거기 있어서 고마운 베네치아.


또 갈게.







덧글

  • imnew 2017/12/26 21:10 # 답글

    베네치아의 '이거' 진짜 죽이네요.. 입이 딱 벌어졌습니다.
    전 밀라노만 하루 본 게 다라서 이탈리아 관심 없어~ 하고 있었는데 아아... 생각이 바뀔 지경이에요. 세상엔 멋진 곳이 왜 이렇게 많을까요 ㅠ
  • enat 2017/12/26 22:16 #

    '이거' 좋죠. 멋지죠. 괜찮죠! 저 때 정말 많이 추워서 덜덜거리면서도 아름다운 풍경 때문에 또 내려가지는 못하겠고 발만 동동 구르며 사진 잔뜩 찍었었는데 어떻게 마음에 드신다니 기쁩니다.
    세상에 멋진 곳이 왜 그렇게 많을까요 정말. 이탈리아에 관심이 없으시다면 베네치아! 로마! 이 두 군데만이라도 나중에 가보시라고 추천해드립니다. 절대 후회 안하실 거에요. 엉엉엉.
  • Tabipero 2017/12/26 22:56 # 답글

    말씀대로 베네치아는 또 가고 싶은 곳입니다. 처음 밟았던 유럽 땅이라 너무 감동적이고 신나기도 했는데 그 기세로 다음 행선지로 급하게 이동한 게 아직도 아쉽습니다. 이번에 크로아티아 갈 때도 (스케줄이) 예쁜 표가 안 구해지자 이럴 바에야 베네치아에서 시작해서 차를 타고 아드리아해 드라이브를 가자! 하고 생각하기도 했었죠.

    담에 다른 데하고 잘 엮으면 다녀올 기회가 또 있겠죠? ㅎㅎ
  • Enat 2018/01/02 17:01 # 삭제

    하루 있든 일주일을 있든 얼마나 있든간에 베네치아는 늘 아쉬운 것 같아오 ㅠㅠ 베네치아에서 해안선 따라 여행하는 일정도 아름다운데요? 여름에 함 도전하심이...! 겨울말구요 겨울은 비가 넘오네영 힝ㅋㅋㅋ
  • 쥬꾸미 2017/12/27 04:10 # 답글

    저도 13년에 베네치아 갔었는데 너무 좋아서 다음에 여긴 꼭 와야겠다 생각했어요 ㅠㅠ 아직은 못 이뤘지만... 그땐 바쁘게 돌아다니던 가난한 학생 여행자라 저런데 못 올라가보고 땅만 걷다가 끝났네요!! 해 지는 사진 진짜 대박이에요!! 저도 저걸 보기 위해서 다시 가야겠어요ㅋㅋㅋㅋ 심장이 바운스바운스ㅠㅠ 유럽 잘 다녀오세요!
  • Enat 2018/01/02 17:04 # 삭제

    저도 진짜 가난할 때 ㅡ 학생때나 워홀러때나 가서 가난하게 다녔었는데, 직장인 되구 오니까 넘 좋아요 ㅠㅠ 드디어 유구한 역사를 가진 아름다운 돈지랄카페... 아 입이 험해서 죄송합니다 사치카페 플로리안엘 가봤는데 좋더라구요 ㅠㅠ 자본주의 만세 ㅠㅠ 엉엉
  • LionHeart 2017/12/27 12:12 # 답글

    어마어마하네요...
    으으 이번에 일+놀러 프랑스에 가게 되는데, 첫 유럽행이라 여정을 어찌 짜야할지 도통 감이 안잡히는군요.
    enat님 사진을 보니 이탈리아 베네치아 정말 가보고 싶네요 ;ㅁ;
  • Enat 2018/01/02 17:05 # 삭제

    우와아아아 프랑스??이미 가신건가요?? 프랑스에만 계시나요? 이탈리아쪽 오시면 연락주세요!!! 일정 맞으면 커피나 한잔 하죠!!!
  • LionHeart 2018/01/02 17:13 #

    enat님께서 얼마나 오래 계실지 모르겠으나,
    전 눈이 녹고 새싹이 피는 봄에 가기에 커피를 함께할 기회는 아쉽게도 가지지 못할 것 같습니다. ;ㅁ;
    어떤 나라를 방문할지도 아직 계획하지 못했어요. 일을 위해 방문할 곳은 스페인과 프랑스 국경 즈음에 있는 곳이라서 그대로 남쪽을 둘러볼지, 비행기를 타고 북쪽으로 올라가야 할지 고민 중입니다.
    유럽은 모든 것이 처음이라 걱정도 많고, 준비할 것도 많은 것 같습니다. 여행 전에 enat님 여행기를 복습하고 갈 예정입니다. 그래서 더더욱 이번 enat님 유럽 여행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_+
  • enat 2018/01/02 17:30 #

    헉 제 유럽여행기는 돈없는 가난한 학생시절 여행기라 도움이 되지 않을거여요... 그래도 유럽으로 여행가신다니 많이 도와드리고 싶은뎅 혹시 궁금한거 있으시면 덧글로 마구마구 달아주셔요!!!
  • LionHeart 2018/01/02 17:51 #

    감사합니다. 연말 보고 등의 일이 마무리되어 여행계획을 짜게되면 많은 도움 부탁드리겠습니다. +_+
  • enat 2018/01/06 03:34 #

    넵!! 화이팅이에요!!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jj

ccl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