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1/13 22:06

겨울 유럽여행 (0) 진짜로 다녀왔음! └ 겨울 유럽여행

귀국해서 거의 36시간 이상을 잔 것 같다. 너무 잤더니 등이 아프고 머리가 멍하다. 내가 진짜 여행을 다녀온 건지 한바탕 꿈을 꾸고 난 건지 잘 모를 정도다. 멍한 눈으로 내 여행이 진짜였음을 증명해줄 사진들을 뒤적거리며 여행을 정리해본다.

간혹 자기애에 취하거나 허세 200% 가득한 포즈도 있긴 한데 여행이 너무 즐거웠겠거니 하고 넘어가주시면 감사함.





1. 프라하 (2017/12/27~12/31)

사실 여행의 모든 일정을 프라하에서만 보낼 생각도 했었다. 예쁘장한 도시에서 맛난 거 먹으러 다니고, 티타임을 갖고, 멍 때리면서 풍경 바라보고, 공연도 보고, 그림도 그리고 하면서 얌전히 쉬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 일정을 보내기엔 프라하가 너무 추웠다! 난 한국에서도 겨울이면 오만가지 질병에 걸리는 약골이라, 여행 전 난 분명 프라하에서 한 번은 아프겠구나 짐작했고, 그 예상은 딱 맞아 떨어졌다. 프라하의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골골거리던, 그러면서도 맥주는 포기할 수 없어서 매일 밤 술에 쩔어 병에 차도가 없던 나는, 프라하에서 연말을 보낸 뒤, 보다 따뜻한 나라로 넘어갔다.




까를교에서 한 장.

넘 추워서 몽골모자 썼는데 많은 이들이 어디서 산 거냐고 나도 알려달라고 졸랐다. 미안하게도 내가 해줄 말은 몽골이란 단어밖에 없었고 그 많은 이들 중 몇 명은 진지하게 다음 여행지를 몽골로 할까 고심하는 모습을 보였다.




숙소 앞 거리. 뒷쪽에 보이는 건 보수공사중인 시청탑.




비 오는 날의 까를교.

여행지에서 비 오는 날은 별로라고만 생각했는데 어째 이번 여행 중엔 비 오는 날이 참 좋더라. 일단 비가 오면 사람이 없다. 유명 스팟에 사람이 없다는 건 대단한 장점이다. 또 내가 알던 풍경과 전혀 다른 풍경을 볼 수 있다는 유니크함. 이것도 대단한 장점이더라.




이른 아침의 구시가지 광장.

구시가지 광장엔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린 상태여서 (프라하는 크리스마스 마켓을 연말까지 열었다) 밤에는 사람들로 우글거렸다. 아침에 오니까 어머나 아무도 없네 럭키! 하고 한 장 찍고 감.







2. 베네치아 (2018/01/01~01/02)

이곳에 딱 하루 머물기로 한 건 단지 산 마르코 광장의 플로리안 카페 때문이었다. 여태까지 돈이 없어서 가지 못한 그 카페, 이번엔 가주겠어! 나는 이제 돈이 있거든! 이제 그 카페의 야외 연주장에서 울려퍼지는 아름다운 음악도 도둑청취(?)하지 않고 자리에 앉아 당당하게 들어주겠어! 팁도 멋지게 뿌려주겠어! 자본주의 만세렷다!

그렇게 당당하게 베네치아에 발을 들인것치곤 왜인지 플로리안 카페 야외 연주장이 닫혀 있었다. 왜...? 겨울이라 그런가...? 아니면 신년이라...? 그래 뭐... 춥고... 또 새해니까... 연주자 아저씨들도 쉬어야지... 그치만... 나 음악 들으러 왔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빈을 갈걸... 히잉...

아쉬움 속에서 카페에 들어가 차랑 디저트만 먹고 나왔더랬다. 쩝쩝쩝.




산 마르코 광장에 위치한 모든 카페가 라이브 공연을 중지해서 광장에는 적막만 흘렀다. 음악이 없는 산 마르코 광장이라니. 넘나 슬퍼서 흑흑거리며 코너를 돌았는데 바다 쪽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피아노 공연을 하고 있는 걸 발견했다. 오!

이 때 하필 배가 너무 고파서 저녁만 먹고 와야지 다짐하고 몸을 돌렸다. 근데 정작 저녁 먹고 나왔더니 문닫음. 슬픔.

그런 슬픔 속에서 찍은 한 장.




마치 약속을 기다리는 것 같은 무심한 고개돌림이 포인트.

이 한 장을 건지기 위해 같은 구도로 10장 넘게 찍은 건 비밀.




광장에 물이 가득 참! 저번에 봤던 것보다 훨씬 더 심하게 찼다!

10유로에 팔던 장화가 몹시 탐났지만 어차피 하루 머무는 거라 사지 않음.







3. 피렌체 (2018/01/02~01/03)

피렌체는 이상하게 정이 안가서 여태까지 한번도 가본적이 없더랬다. 그런 그곳을 여행 일정에 끼워넣은 건 그저 숙소 때문이었다. 사실 프라하와 로마를 제외한 모든 일정은 텅 비어있었기에, 숙소도 미리 예약해두지 않았고 그래서 숙소가 있는 도시를 찾다보니 피렌체에 가게 된 거다.

피렌체에 도착하던 날은 내 생일이었고, 난 케이크는 못 잘라도 촛불에 불 정도는 붙이고 싶었다. 그래서 그 유명한 피렌체 두오모에 가서 촛불도 켜고 기도도 하기로 했다. 왠지 엄청 뜻깊을 것 같았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해낸 나 자신을 칭찬하며 피렌체 두오모로 달려갔다.

그런데 이게 웬 걸. 피렌체 두오모 앞에는 엄청난 대기줄이 서있었다. 한 20분 정도 기다렸나. 아까 내 옆에 있던 가게가 그대로 내 옆에 있었다. 이게 뭐람. 줄 진짜 안줄어드네. 요새는 테러 위험 때문에 몸수색을 꼼꼼하게 한다던데 그래도 이 줄은 좀 심하군. 촛불에 불 붙이고 밥 먹으러 가려고 했는데 이건 뭐 한 끼 걸러야할 지경이다. 밥을 포기할 순 없지. 난 잠시 망설이다가 두오모를 포기했다.

그 외에도 혼자 찾아간 미켈란젤로 언덕은 쓸쓸했고, 캐쉬 어드벤스 수수료는 50유로나 나왔고... 예상대로 감흥없는 데다가 엿까지 주는구나 싶었지만... 이후부터는 여행기 포스팅에서 계속!




카메라 타이머 설치해놓고 딴 척 하는 모습이 포인트. 산 로렌초 성당 뒤뜰에서.







4. 아씨시 (2018/01/03~01/04)

프라하에서 고기 강매(?)를 당하고 우울해서 유랑 카페에 들어간 적이 있다. 그 때 아씨시의 수녀원에 대한 글을 아주 우연히 보게 되었고, 링크에 링크를 거쳐 수녀원 숙박 예약 메일을 알게 되었다. 혹시 남은 방이 있으려나 싶어서 메일을 보냈더니, 며칠 뒤 1월 3일에 방이 있다는 답메일이 왔다. 어? 그럼 가볼까? 콜!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가기로 한 곳이었지만, 생각지도 않던 '완벽한 휴식'을 얻었던 놀라운 마을이었음. 아윌팔로힘을 부를 것 같은 흑인 수녀님과 다음에 와선 일주일 머물기로 약속했다.




트러플로 뱃속을 무장하고 아씨시 마을을 배회하는 중.







5. 오르비에토 (2018/01/04~01/06)

예전부터 가고 싶었던 곳이었는데 가성비 좋아보이는 개인실이 있어서 아씨시 다음 일정으로 넣은 곳이다. 약간 시골에 계신 할머니네 집에 놀러간 느낌으로 지냈다. 숙소 바로 앞에 날마다 아침장이 섰는데 거기서 모카포트를 5유로 주고 구매해서 기뻤다. 얏호 득템!

오르비에토에 머물면서 치비타에도 다녀왔다. 원래 느긋하게 오르비에토만 있으려고 했지, 치비타 갈 생각은 하나도 없었는데 여차저차해서 가게 됐다. 치비타는 내 생각보단 시끌벅쩍하고 잘 꾸며진 유원지 같았다. 이 마을의 홍보 문구인 '죽음으로 가는 마을'처럼은 안보였음.




치비타에서 찍은 사진 첨부. 오르비에토에서 찍은 사진은 셀카밖에 없네. 흠.







6. 로마 (2018/01/06~01/11)

요새는 여행지에 가서 숨가쁜 여행보다는 여유있는 생활을 하려는 편이다. 그런데 로마는 그게 잘 안됐다. 이유는 뭐, 내가 너무 흥분해버려서. 나 자신을 다독이고 진정하자 진정해를 몇 번이나 중얼거렸는지 모른다. 하하...

숙소가 콜로세움 근처라 숙소 근처를 주로 다녔다. 그러다가 마지막 날 밤, 처음으로 포폴로 광장에 들러 오벨리스크 앞에 잠깐 앉았는데, 학생 때 친구와 쫄래쫄래 걸어서 포폴로 광장에 들어선 뒤 "로마 입성!" 어쩌구 하던 기억이 나서 혼자 웃어버렸다. 그게 벌써 7년 전 일이며 엊그제 일이다.




어떤 금발의 여행자가 사진 딜 좀 하자길래 걔꺼 찍어주고 별 기대없이 내 폰카를 맡겼는데 진짜 잘찍어줘서 미안했던 사진. 이렇게까지 잘 찍어줄 줄은 몰랐어 금발의 여행자... 나의 금발에 대한 잘못된 편견과 차별을 버리도록 할게...




바티칸에서 술취해서 돌아다니다가 찍은 사진. 저 날 교황님 엄청 먼 발치에서 보고 흥분해서 손 흔들었었음.




로마에 아무 감흥이 없다는 사람과 반나절 정도 같이 돌아다니다가 들린 뜨레비 분수.

어떻게 로마에 아무 감흥이 없을 수 있지!? 정말 신기하다. 하지만 이 사람은 피렌체는 엄청엄청 좋다고 했다. 흠. 그럼 이 사람 입장에선 피렌체에 아무 감흥 없는 내가 신기하겠군. 적당히 이해하고 넘어갔다.




팔라티노에서 뭔가 생명의 여신(?) 같은 이미지로 찍고 싶었는데 현실은 다리 길어보이고 싶어서 다리 한 번 꼰 불쌍한 여행자.




그럼 다음편은 진짜 여행기로 시작!







덧글

  • LionHeart 2018/01/14 11:11 # 답글

    저는 DSLR만큼 커다란 미러리스 카메라를 들고 다녀서, 여행객이 사진 찍어달라고 할 때가 있는 편인데 정말 부담스럽고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카메라만 비싼 것 들고 있지 제 실력은 너무 형편없는지라...특히나 인물사진은 정말 끔찍하게 못찍거든요. ;ㅁ;
    기대를 배신하게 되는 것 같은 것이 미안하고, 제 실력이 창피하고, 하지만 거절은 못하겠고. 참 난감합니다. ^^;

    여행기 기대되네요. 메모할 준비도 해야겠습니다. +_+
  • 피안 2018/01/14 17:57 # 답글

    저도 가을에 이탈리아에 다녀왔는데 사진 보니까 또 가고 싶어져요 ㅎㅎ 플로리안 카페는 음악을 못들으셨다니 안타깝네요 ㅜㅠ 혹시 그럼 음악비는 안 내셨나요? 저는 갔을때 테이블 차지로 안붙고 뮤직피가 붙어있길래 재밌었는데 음악을 연주 안 했을 경우는 어떤가 궁금해요 ㅎㅎ
  • 요엘 2018/01/15 04:16 # 답글

    옴모옴모! 잘 갔다오셨나요!! 즐거운 여행기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히히.
  • Mr 스노우 2018/01/15 08:47 # 답글

    올 겨울 유럽이 왠지 유난히 추운 느낌이네요. 작년보다..ㅠㅠ 저도 카메라 든 금발에 대해 약간의 편견이 있었는데, 다음엔 좀 잘 찍어주는 금발의 여행자를 만나길 살짝 빌어봅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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