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2/17 14:00

겨울 유럽여행 (9) 프라하 :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 겨울 유럽여행 (2018)

1.

이 날 저녁, 나는 미리 예약해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를 보러 갔다.




오페라를 보러 간 거였지만, 솔직히 말하면 원래 목적은 오페라가 아니었다. 나는 그저 그 유명한 "국립극장"엘 가보고 싶은 것뿐이었다. 블타바 강변에 위치한 아름답고 감동적인 건축물 국립극장! 당장 구글에 프라하 국립극장이라고 쳐보시라. 궁전과도 같은 화려하고도 듬직한 건축물이 나올 것이다. 그게 바로 프라하가 자랑하는 국립극장 Národní divadlo 이다.

그런 목적이었기 때문에 사실 어떤 공연이든 상관 없었다. 오페라든, 오케스트라든, 실내악이든, 협주곡이, 성악이든, 정말인지 아무 상관도 없었단 말이다. 나는 그냥 구글에 프라하 국립극장이라고 친 뒤 공식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괜찮은 시간대의 아무 공연을 예약한 거였고, 그게 오페라였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 일? 오페라는 프라하 국립극장에서 공연하지 않는단다. 국립은 국립인데 오페라 전용관인 칼린 극장 Hudební divadlo Karlín이라는 곳에서 볼 수 있단 거였다. 나는 두 개의 오페라를 결제한 뒤, 티켓을 출력하고 나서야 그 사실을 깨달았다. 이게 무슨...? 난 국립극장의 공연을 예약하려고 국립극장 전용 홈페이지로 들어간 거였는데 왜 다른 관의 티켓도 섞어 파는 거야...?

나는 아득해지는 정신을 붙잡고 칼린 극장이란 곳을 검색해봤다. 국립극장에 비해 엄청 허접하고 초라한 건축물 - 어디까지나 국립극장과 비교해서 - 이 나왔다. 아니 이게 뭐야! 난 그냥 화려한 국립극장에서 '공연을 본다는 행위'를 하고 싶었던 거란 말이다! 나는 곧바로 환불을 하려고 했으나, 규정상 인터넷으로 환불은 불가하단다. 아니... 너희 결제는 그렇게 쉽게 해줬으면서 왜 환불은 안해주냐!

하아, 어쩔 수 없다. 일하는 중에 눈치 보면서 황급히 예약하느라 - 표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고! - 제대로 보지 않고 예약한 내 잘못이지. 나는 애써 담담한 척하며 두 개의 오페라 티켓을 손에 꼬옥 쥐었다.





2.

그리고 이 날 저녁, 나는 그 어떤 기대도 하지 않은 채 내가 예약한 첫번째 오페라인 라 트라비아타 La Traviata를 보러 칼린 극장으로 향했다. 칼린 극장은 플로렌스 버스 터미널 근처에 있어서, 플로렌스 역으로 가야 했다.





칼린 극장의 외부는 그냥 프라하의 평범한 고건축물 느낌이었다. 나는 강변에 위치한 국립극장의 위용있는 모습을 다시금 떠올렸다. 에휴, 생각해서 뭐하냐. 들어가자고.

안으로 들어가자, 직원이 티켓을 확인했다. 내가 한국에서 출력한 종이가 티켓 그 자체였다. 티켓을 슬쩍 보기만 하고 통과시켜주는 모습에, 잘하면 도둑 관람도 할 수 있겠구나, 하지만 음악을 사랑하는 시민들 중 그런 나쁜 마음을 먹는 사람은 없겠지, 근데 진짜 허술하게 검사한다 등등의 생각을 했다.





3.

내 자리는 2층 박스석이었다.




사실 나는 이 때까지도 "박스석"의 진정한 의미를 잘 몰랐다. 좌석이 영화에서나 보던 그 화려한 박스 안에 있는 것이겠거니, 그저 좀 더 예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거겠거니,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앉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박스석은 공연에 집중하기 위한 좌석이라기보다는 공간 임대에 가까웠다. 가족이나 연인이 박스라는 작은 공간 하나를 빌려, 공연을 보면서 와인을 마시고, 쿠키를 먹고, 담소를 나누고, 가고 싶다면 화장실도 자유롭게 들락날락 할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칼린 극장의 한 박스에는 4명이 앉을 수 있게 되어 있었고, 나는 이 날 가족 세 명이 빌린 어떤 박스의 나머지 한자리에 뻘쭘하게 앉게 되었다. 예약 홈페이지에 별다른 제한이 없어서 몰랐는데, 아마도 누군가 그런 식으로 박스 좌석을 빌려놓으면, 그 공연이 엄청나게 유명하고 희귀한 게 아닌 이상, 남은 좌석은 빌리려고들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나처럼 혼자 와서 박스석 뒷자리에 앉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들 한 박스에 한 커플, 한 박스에 한 가족 단위였다. 내 돈 내고 내가 산 좌석이긴 하지만, 이 박스의 가족들에게 좀 미안해졌다. 나도 좀 뻘쭘하고 말야.




다행히도 칼린 극장의 박스석은 그렇게까지 명확한 분할이 없는 박스였다. 허리까지 오는 칸막이만이 각 박스의 공간을 분할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남은 좌석에 앉아도 막 그렇게까지 어색한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 다음날, 나는 다른 극장에서 사방이 벽으로 막힌 제대로 된 박스에 또 가게 됐다. 그 때도 다른 가족들이 예약해뒀던 박스의 하나 남은 빈 자리를 예약한 바람에, 그 프라이빗한 공간의 뒷자리에 불청객처럼 앉아야만 했다. 나는 진짜 미치도록 어색함을 느꼈고, 결국 자발적으로 다른 빈 박스를 찾아 들어갔더랬다. 비인기 극이라서 빈 자리가 많은 게 다행이었다.

하여간 박스석. 잘못 앉으면 서로 어색할 수 있으니, 혹시라도 박스석으로 공연을 예약하신 분이라면 조심하시길 바란다. 칼린 극장에서는 그나마 가족들이랑 같이 앉아서 다행이었는데 그게 연인이었어봐. 앞에서 연인들이 사랑을 속삭이고 있는데 그 뒷자리에 앉아서 멍청한 표정으로 공연을 봤어야했을거 아냐. 어휴, 절레절레다.





4.

가족들이랑 어색하든 말든, 어쨌든 나는 그 박스석의 좌석을 구입했고, 제대로 된 티켓도 있었기에, 원칙적으로는 하등 문제될 것 없이 그 좌석에 앉았다.

극이 시작되기 전, 오페라 극장이 신기해서 찰칵찰칵 사진을 찍고 있는데, 2층 박스석의 안내원이 다가와 내게 뭐라고 속삭였다. 그 안내원은 고운 옷차림에 연세가 지긋하신 할머니였다. 편의상 이 분을 직원1이라고 표현하겠다.

직원1 : 까떼로베.
나 : 응? 뭐라고?
직원1 : 어쩌구 블라블라 까떼로베.
나 : 응? 까떼로베? 영어로 뭐라고 해?
직원1 : 노 잉글리시 어쩌구 블라블라 까떼로베.


공연장 사진을 찍지 말라는 건가? 공연 시작 전이지만 내부 사진도 못찍게 하는 곳이 있긴 하던데. 내가 카메라를 집어넣으며 미안한 표정을 짓자, 그 직원1은 그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표현을 했다. 다행이군. 하지만 직원1의 까떼로베 소리는 계속되었다.

직원1 : 까떼로베.

그러면서 어떤 방향을 가리키는 거였다.

나 : 어, 저기 가라고?
직원1 : 까떼로베. 까떼로베.


나는 직원1의 계속되는 간청에 의해 그 방향을 향해 흠칫흠칫 걸어갔다. 뭔데? 대체 까떼로베가 뭔데? 이쪽으로 가면 까떼로베가 있는 건가? 까떼로베가 뭐지? 화장실인가?

직원이 가리킨 방향으로 걸어가자 접수대 같은 공간이 있었고, 그곳엔 또다른 직원 할머니가 서있었다. 나는 그 앞에서 멀뚱멀뚱 서서 할머니를 쳐다봤고, 그녀는 우아하게 웃으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편의상 이 분을 직원2로 표현하겠다.

나 : 여기가 까떼로베야?
직원2 : 까떼로베. 까떼로베.


나는 그 직원2의 너머를 바라봤다. 왠지 사물함 같은 게 있는데... 아, 짐을 맡기라는 소린가? 나 짐 얼마 없는데? 나는 괜찮다고 하고 그냥 나가려고 했으나, 직원1이 쫓아와 저기서 빨리 까떼로베를 하라고 했다. 으아아, 대체 까떼로베가 뭐냐고! 모르겠다, 일단 짐을 맡기자!

나는 가방을 정리한 뒤, 중요한 건 전부 주머니에 쑤셔넣고 가방을 넘겼다. 그러자 직원2는 손을 내저으며 이게 아니라는 거였다. 아 정말, 이게 아니라고? 그럼 대체 까떼로베는 뭐야!

혼란스러워하는 내게 직원1과 직원2가 다가와 내 옷을 붙잡았다. 그리고 그걸 둘이서 벗기는 시늉을 했다. 아니, 이 할머니들이 왜 이러셔! 황당한 얼굴로 뭐라고 하려던 찰나, 드디어 그 직원들의 의도를 깨닫게 되었다. 아니 그러니까, 외투, 외투를 벗어서 맡기라는 거지? 공연 보는데 바스락거리지 말고 불편하지도 않게?

내가 말을 알아듣고 순순히 외투를 벗어서 주자, 직원 할머니들은 저 말귀 어두운 동양인 소녀의 외투를 획득함에 기뻐하며 내 옷을 보관했다.




이 사진의 오른쪽 문이 까떼로베...라고 한다. 내가 그렇게 옷을 맡기고 나자 다른 사람들이 와서 자연스럽게 옷을 맡기더라. 저 사람들이 좀만 더 빨리 와서 옷 맡기는 모습만 보여줬어도 대충 눈치로 따라하는 건데. 씨.

그건 그렇고, 지금 구글 번역기로 까떼로베의 정확한 발음과 스펠을 알기 위해 이것저것 쳐보고 있는데 (옷장, 보관함, 사물함, 수납, 옷 보관, 웃옷, 코트 등등) 안나온다. 혹시 체코어를 잘 아시는 분이 계시다면, "까떼로베"가 제가 이해한 그 뜻이 맞는지 확인 부탁드립니다.





5.

까떼로베 맞은편에는 작은 스낵바가 있었다. 아마도 거기서 와인이나 간식류를 사서, 공연 중에 즐기는 것 같았다. 이미 많은 연인들이 와인잔을 들고 있었다. 다들 데이트한다고 예쁘게 차려입고 왔네. 쩝.




오페라는 당연히 이탈리아어로 진행됐고, 체코시민과 외국인을 위해 무대 위쪽에 체코어/영어 자막이 제공됐다. 그 덕분에 극을 이해하는데에 어려움은 없었다.

오페라 전용극장답게 오케스트라 연주홀이 무대 아랫쪽에 만들어져 있었다. 1층에서라면 아무 모습도 안보이겠지만 2층에선 무대보다 아래에 있는 오케스트라를 내려다볼 수 있었다. 연주는 훌륭했다.

뭐, 사전 정보 설명은 이 정도일까. 이제 "라 트라비아타"에 대해 이야기해보도록 하겠다.





6.

원채 오래된 고전극이라서 아마 내용은 다들 아실 것이다. 라 트라비아타는 소설 "춘희"를 바탕으로 만든 오페라로, 화류계의 에이스인 비올레타와 젊고 순진한 청년 알프레도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어떻게 보면 "내 아들과 헤어져!" 드라마의 원조격이 되겠다.

극을 보면서 짤막짤막하게 노트해둔게 있는데, 그걸 쭉 써보겠다.



1막

- 우와 극 중에서 진짜 담배피네? 배경은 파리의 사교계.

- 와 비올레타 치명적 매력 쩐다. 빨간머리에 흰 드레스라니.

- 축배의 노래! 이거 알아! 합창 좋다.

- 비올레타 쓰러져서 기침함 어케 곧 죽나봐.

- 오 비올레타 아리아 후에 목걸이 뜯는 거봐 어쩜 저렇게 치명적이야?

- 저 요녀 같은 매력덩어리 여자가 알프레도의 목소리에 수줍은 소녀가 된다.

- 그래서 둘이 사랑하게 된 고야?



2막 (전반)

- 막이 열리자마자 둘이 엄청 정열적으로 놀고 있음. 우리나라였으면 애기들 눈을 가려야 했을 거야. 파리에서 시골로 내려와서 함께 생활한지 3개월 됐대. 비올레타가 알프레도랑 놀다가 깔깔깔거리며 문 밖으로 뛰쳐나가는데 와 진짜 잡힐듯 잡히지 않는 뭐 그런 매력이 쩐다. 뭐 저런 치명적인 여자가 다 있냐!

- 알프레도 아빠 찾아옴! 시전! 내 아들과 헤어져!

- 근데 알고보니 알프레도 먹여 살리는 게 비올레타였음. 알프레도는 비올레타한테 홀려서 헬렐레거리며 일도 안하고 비올레타가 어떻게든 생활비 마련하고 있었음. 비올레타가 나쁜 여자가 아니고 알프레도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걸 아빠가 알게 됨. 그래도 여튼 내 아들과 헤어져달라고 정중하게 부탁함. 아들이 집에 안들어오고 창녀랑 놀고 있다는 게 밝혀지면 딸의 혼담이 깨질지도 모를 상황이라서. 그러나 비올레타도 만만치 않음. 나 이제 곧 죽는데 알프레도를 내게서 어케 가져갈 수 있냐며 울음.

- 아빠 "내가 요구하는 것의 희생이 어떠한 것인지 이제야 알겠어" 운운하며 비올레타에게 더 간곡하게 비는 중. 자기 가족의 천사가 되어달래. 비올레타는 아빠의 절절한 딸사랑에 감화되어 희생해주겠다고, 대신 자기에게 딸처럼 용기를 달라고 부탁함. 뭐야. 너무해. 죽을 날도 얼마 안남은 비올레타가 왜 남의 가족들을 위해 희생해야 돼. 지대 짜증나네. 비올레타 완전 천사 아니냐.

- 아빠도 그 천사 같은 비올레타에게 감동함. 그냥 자기 아들 데리고 노는 창녀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양보와 품위를 아는 여자였다고 놀람. 어쨌든 비올레타의 희생을 잊지 않겠다고 함. 비올레타 1막의 그 치명적인 요녀미는 어디가고 신실한 사랑의 눈 어쩔거야.

- 근데 아빠랑 비올레타 바리톤/소프라노 2중창 진짜 좋다. 알프레도랑 비올레타 페어보다 더 멋진 것 같아.

- 비올레타가 "사랑해줘 알프레도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만큼 나를 사랑해줘" 어쩌구 하면서 편지를 남기고 떠났는데, 알프레도는 그 편지를 보고 이 년이 화려한 생활을 잊지 못하고 자기를 버렸구나 생각함. 지대 빡침.



2막 (후반)

- 갑자기 극 분위기가 변하면서 어둠의 연회장? 같은 장면이 나옴. 여기 버젼의 오리지널인 것 같음. 검정 안대 낀 여자랑 속옷 입은 여자가 나와서 뇌쇄적인 포즈를 취하고 그런 사람들이 점점 늘어남. 오 막 서로의 엉덩이를 때림. 오? 야하다. 오오오오! 겁나 야하다. 헐 완전 헐벗음. 와 저 포즈 좀 보소 라인 어쩔거야 지대 적나라하네. 야 라 트라비아타가 이렇게 야한 오페라였냐! 눈을 둘 곳이 없다! 우와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야하네! 저기서 제왕처럼 군림하며 지대 잘 놀고 있는 남자가 가면 벗음... 알프레도였음! 저새끼 저거 비올레타한테 버림받았다고 지대 더티하게 노네! 순진한 청년 설정 아니었음? 방탕 퇴폐 쩌네.

- 더티한 놀음에서 보다 정상적인(?) 파티가 되어 눈을 둘 수 있게 됨. 근데 파티장에서 아이쿠 알프레도랑 비올레타랑 딱 마주쳤네! 비올레타야 원래 하던 일이 그거였으니 원래 자기를 후원하던 남작의 팔짱을 끼고 등장함.

- 알프레도 그 모습에 눈 훼까닥 돌음. 비올레타 공개적으로 모욕주기 쩜. 도박에서 딴 돈을 잔뜩 들고 가서 비올레타한테 돈 던지면서 넌 어차피 돈으로 움직이는 여자 내가 지금 빚 진거 다 갚을게 어쩌구 소리지르면서 쓰러트림. 돈다발에 쓰러진 비올레타의 모습이 넘나 공개적 모욕의 완벽을 달림. 그 비올레타의 위에 올라타서 목을 조르고 옷을 벗기는 시늉을 하고 치마 속에 돈을 쑤셔넣음... 와 이 부분 오케스트라 음악이랑 비올레타의 고통스러운 표정이랑 알프레도의 눈 돈 연기력이랑 주변에서 구경하는 사람들까지 겁나 완벽하네. 돌이킬 수 없는 모욕과 망신을 선사하네. 비올레타는 비통해하며 몸을 못가눔.

- 그 와중에 비올레타가 말하는 게 넘나 슬픔. 간신히 몸을 추스리고 "내 안의 모든 것이 다 죽었지만 아직도 널 사랑해"

- 배후의 모든 사정을 알고 있는 아빠가 와서 알프레도 겁나 혼내고 어쩔 줄 몰라함. 그래 아빠 너는 비올레타한테 좀 더 미안해해야해.



3막

- 비올레타가 쓰러져 다 죽어가는 상태로 시작됨.

- 아빠가 알프레도에게 진실을 털어놨고 비올레타에게 보냈으니 함께 사랑하라는 어쩌구 편지를 보냈지만 이미 늦음. 비올레타는 돌이킬 수 없음. 여기서 죽을 거임.

- 밖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화려한 합창이 비올레타의 상황과 대비되어 넘나 슬픔.

- 비올레타의 처연한 아리아가 너무 슬픔. 아빠, 의사, 알프레도가 비올레타를 병문안을 왔지만 비올레타는 죽어갈 뿐임.

- 나는 비올레타가 알프레도의 품 안에서 죽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알프레도의 품을 떠나 밝은 빛이 비추는 곳을 향해 손을 뻗으며 죽음. 솔직히 비올레타의 죽음까지 주기는 알프레도에게 너무 과분함. 고통뿐인 세상을 떠나 편히 쉬길.

- 아이씨 근데 3막 전반이 좀 눈물나네. 가장 아름다울 시기의 젊은 여성이, 사교계의 중심에서 그렇게나 화려하고 밝았던 여성이 서서히 죽어가는 모습은 뭐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애통하다. 처연하고 가련하게 모든 것을 용서하고 죽음을 받아들이는 비올레타는 아름다움 그 자체였음.





7.

흐어엉! 눈물을 쏙 뺐다! 막이 내린 뒤에도 한참을 박수쳤다.


- 알프레도/비올레타 페어보다 아빠/비올레타 페어의 2중창이 괜찮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다른 사람들도 다들 그랬는지, 알프레도보다도 아빠가 나왔을 때의 박수와 환호 소리가 더 컸다.

- 대신 알프레도는 찌질함의 연기가 극에 달함. 비올레타한테 돈 던질 때 신들린 연기였음.

- 비올레타는 1막에선 요염하고 치명적인 창녀를, 2막에선 희생과 모욕을 감수하는 성녀를, 3막에선 죽음을 앞둔 인간을 연기했는데 그 모든 게 완벽했음. 아 나 비올레타 연기한 언니한테 반할 것 같아.

- 사실 아빠 때문에 이 비극이 발생한 건데 아빠가 연기를 넘 잘해서 행동에 설득력이 보였고 이해가 갔음.

- 합창! 난 아리아보다도 합창이 넘 좋더라. 많은 목소리가 한 소리를 내는 힘은 엄청났다. 선고하는 듯한 상황설명 연출을 좋아하는데 합창이 그걸 완벽하게 보여줬다.


공연이 끝난 뒤, 몇 번의 커튼콜이 있었다. 사실 나는 이 공연 후에 약속이 잡혀 있어서 빨리 구시가지로 돌아가야하는 상황이었지만, 박수를 계속 치지 않고서는 못배기겠더라. 국립극장이 아니어도 됐어! 극장이 무슨 상관이람? 오페라 자체가 짱 재밌잖아! 칼린 극장도 괜찮네!

심드렁한 얼굴로 왔다가 이렇게까지 깊은 감성을 충전하고 나가게 될 줄은 몰랐다. 인간, 이성도 중요하지만 감성은 더욱 중요하다. 그래서 가끔씩 비극적인 작품을 통한 감정의 환기도 어느 정도는 필요하단 말이지. 나는 먼지가 쌓여가던 건조한 마음방에 강풍을 불러온 요 작품에, 마음 속 별점 다섯개를 줬다. 아, 개운해!





늦은 밤의 구시가지에서 계속!






덧글

  • 레아 2018/02/17 19:24 # 삭제 답글

    읽기만 해도 감동이 느껴지네요 :D enat님 명절 복 많이 받으세요!
  • enat 2018/02/18 01:02 #

    비극적이며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는 언제나 감동적이죠! 레아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 잘나가는 꼬마사자 2018/02/17 21:06 # 답글

    라 트라비아타를 좋아하시면 마농과 마담 까멜리아를 보러가셔야죠!!! 마담 까멜리아 저는 파리오페라발레단을 직접 실황으로 봤습니다 엣헴 ㅋㅋㅋㅋ 아 진짜 마지막엔 울면서 봤던 기억이 나요ㅠㅠㅠ 저는 그 돈다발에 쓰러진 비올레타를 너무 좋아해요 둘의 파드되가 사랑으로 가득찼던 1막과, 그 둘의 감정이 완전 엇갈린 부분에서의 강압적이고 질척대고 멍청한 알프레도ㅠㅠㅠㅠㅠㅠㅠㅠ 아 진짜 똥멍청이야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같이 보러가요 헝허엏어
  • enat 2018/02/18 01:11 #

    앗 그니까 마농과 마담 까멜리아가 라 트라비아타 발레판 이름인거죠??? 아까 동영상 그거 그게 그거죠??? 호홓 격정적이고 섬세하머 서로를 탐하는(?) 연인들의 춤 넘나 멋졌어요 헷
    원래 후회남주가 똥멍청이일수록 마지막이 감동적이죠. 남주여 더더더 더 멍청하고 나쁜 짓을 해라!!! 더 악해질수 있다!!! 그럴수록 네가 추락할 높이는 높아진다!!! 그 이후의 추락과 후회 자기혐오 회개 반성 뭐 그런 흐름이... 저는 왤케 좋을까요!!!!! 좋아요보러가욧!!!
  • 붕숭아 2018/02/19 11:14 # 답글

    Enat님 진짜 너무 묘사가 좋아요... 간략하게 읽기만 했는데도 감동이예요!!! 저는 이 오페라는 들어보지도 못한 이름인데 이쪽에서도 한다면 보러가고싶네요 ㅠㅠㅠㅠ
  • enat 2018/02/22 09:08 #

    워낙 인상적인 줄거리라 제 불민한 요약으로도 감동이 느껴지시나봐욤! 저도 다른 극단에서 하는 거 볼 기회가 생긴다면 또 보러갈거 같아요!
  • 요엘 2018/02/19 19:48 # 답글

    앗 제가 넘 좋아하는 라 트라비아타!! 부럽다 부러워 크으.... 나도 보고싶은데 이낫님은 저거 봣다니!!!
  • enat 2018/02/22 09:09 #

    훟훟훟 마음껏 부러워하시죠 하지만 아직 멀었어요 이 다음날엔 세비야의 이발사를 봤으니까요!! ㅋㅋㅋㅋㅋ
  • LionHeart 2018/02/28 12:14 # 답글

    오페라가 보고 싶어지는 생생한 리뷰 감사합니다. 으으 저도 보러가고 싶네요 ;ㅁ;
    게다가 박스석에 대한 충고까지. +_+
  • enat 2018/03/01 18:33 #

    오페라 보면서 일기장에 감상을 쭉 적었었거든요 ㅋㅋㅋ 그래서 자세히 쓸 수 있었어요.
    인터미션때 박스석에서 혼자라서 심심하고 뻘쭘해서 일기장에 끄적이기만 했던 과거의 나...
  • 지나가가 2018/07/15 04:30 # 삭제 답글

    체코어를 하는 건 아니지만 까데로베는 garderobe 칭하는 것 같습니다. 프랑스어인데 영어나 독일어에서도 같은 뜻으로 쓰여요.
  • enat 2018/07/21 13:26 #

    그거인가봐요오오오!!!!!!! 와아 진짜 호기심해결 와 진짜 감사합니다 복 받으실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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