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3/14 21:42

겨울 유럽여행 (14) 프라하 : 페이크 계산서 ├ 겨울 유럽여행 (2018)

1.

베를린남이 처한 문제는 매우 간단한 것이었다.

그는 오늘 저녁, 프라하에서 베를린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해피뉴이어를 친구들과 함께 보내며 심신의 안정을 찾고 싶단 거였다. 어제 저녁, 내가 베를린으로 가는 건 어떻냐고 슬쩍 던지기는 했지만 정말 곧바로 갈 줄이야. 행동력과 추진력 하나는 쩌는군.

그래서 프라하-베를린 구간의 FLIX 버스를 예약했는데, 바우처가 오지 않았단다.

베를린남 : 예전에 예약했을 땐 메일로 예약 바우처가 왔었는데요... 왜 안올까요?
나 : 결제된 거 맞아요?
베를린남 : 결제 됐어요. 신용카드 승인 났어요...


신용카드는 이미 승인됐는데, 바우처가 오지 않으니 환장할 따름이라고 했다. 대신 뭐라고 씨부리는 메일이 왔는데 영어를 할 줄 몰라 이게 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고 했다.

베를린남 : 이거 표 또 사야 되나요? 저 중복으로 결제해도 되거든요. 그냥 베를린에만 갈 수 있으면...
나 : 아니 그걸 왜 중복으로 결제해요? 있어봐요. 어디보자...


메일 내용을 쭉 읽어보니, 그냥 예약은 무사히 됐다는 말이었다. 게다가 글 중간엔 예약번호도 써있었다.

나 : 여기 부킹넘버 있죠? 그걸 버스 앱이나 홈페이지 들어가서 쳐요. 그러면 확인할 수 있어요.
베를린남 : 아! 저 FLIX 버스 홈페이지에 가입도 했는데!
나 : 그럼 로그인해서 확인하면 되겠네요?
베를린남 : 맞다! 아 ㅋㅋㅋㅋㅋ 감사감사! 당황하니까 생각이 안났어요!


정말 별 거 아닌 문제였군.

처음엔 혼자만의 시간을 방해받아 귀찮고 짜증났지만, 저렇게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도리 없이 미소가 지어졌다. 내가 도움이 되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허허허.





2.

지난 포스팅에서 저 베를린남이 상당한 민폐 캐릭터가 아니냐며 걱정해주신 분들이 계셨는데, 사실 당시의 나는 그와 다니며 그렇게까지 큰 스트레스를 받진 않았다. 민폐보다도... 그냥 조금 손이 가서 귀찮지만 어쩔 수 없는 느낌? 이전 포스팅에서 썼던 것처럼 그는 어딘가 미워할 수 없는 철부지 도련님 (생긴 게 정준영스러워서 귀티나는 '도련님'이란 단어가 딱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느낌이었고, 이상하게도 도움을 줘야 할 것만 같은 사람이었다. 보호본능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이라고 해야하나?

그 귀찮지만 어쩔 수 없는 베를린남은, 자신의 문제가 해결되자 입맛이 돌았는지, 점심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뭘 먹고 싶냐고 물으니 꼴레뇨를 먹고 싶다고 했다. 체코에 대해 하나도 모르는 그이지만, 그래도 꼴레뇨가 체코에서 제일 유명한 음식이란 건 어디서 들었나보다. 그렇지만 어떤 레스토랑에 가야할지까지는 잘 모르겠으니 내게 골라달라는 것이었다.

만약 이 사람이 베를린남이 아니라 다른 여행자였다면, "나 음식점 잘 모르는데? 가이드북에 없어?" 라며 딴청을 피우거나 "먹고 싶은 사람이 음식점을 알아와야 하는거 아닌가?" 라며 틱틱거렸겠지만, 이상하게도 그에겐 그럴 수 없었다. 그래? 아직 꼴레뇨를 못 먹어봤어? 어휴, 정말. 체코까지 왔는데 꼴레뇨 정도는 먹고 가야지. 자, 먹으러 갑시다.

나중에 그에게서 파리 민박집에서 만난 동생 이야기를 들었다. 동생과 잘 다니고 잘 놀았는데, 나중에 헤어질 때 그 동생이 한숨을 푹푹 내쉬며 "형... 아 진짜... 조심히 다니고요... 휴... 한국까지 살아서 돌아가고요..." 운운하며 물가에 내놓은 애 취급을 하더라는 것이었다. 자기도 다 큰 성인이고 잘 다닐 수 있는데 너무 하지 않냐며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그 이야길 했는데, 나는 왠지 웃을 수가 없었다. 그 동생의 마음... 나는 이해할 수 있거든...

이 인간은 생긴 거나 분위기는 정준영 느낌인데 왜 이렇게 불안불안하게 손이 많이 가는 걸까. 짠내투어 보니까 정준영 안정감도 있고 여행 센스도 있고 돌발상황 대처도 참 잘하던데. 아, 지난주 못챙겨봤는데 포스팅이나 빨리하고 짠내투어 봐야겠다. 여러분도 짠내투어 보세요, 재밌어요, 짠내투어. 요새 친구들이랑 대화할 때도 이러는데 이렇게 또 기승전짠내투어가 되어버렸군.





3.

그나저나 이 날은 날씨가 참 좋았다. 내가 프라하에 5일 정도 머물렀는데, 여태까지 가장 날씨가 좋은 날이었다. 여태까진 날씨가 맑으면 춥고, 따뜻하면 흐렸는데, 이 날은 맑기도 하고 따뜻하기도 했다. 그 때문에 베를린남은 전날 비를 맞아가며 프라하성을 구경한 걸 억울해하는 눈치였다. 왜 자기가 베를린으로 돌아가는 날 이렇게 날씨가 좋냐면서 말이다. 나 역시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 그의 억울함에 살짝 공감했다.

억울함을 좀 미뤄두고, 일단 그에게 꼴레뇨를 먹이려면 식당엘 가야겠지. 나는 잠시 머리를 굴려 지난번 꼴레뇨 원정대 모임에서 거론된 여러가지 맛집을 떠올렸다. 마침 프라하성 근처에 꼴레뇨 맛집이 있었다. 거길 가면 되겠군. 어차피 우리는 지금 프라하성 쪽의 강변에 있으니, 조금 걷다가 식당 쪽으로 방향을 틀면 되겠지.

그런데 날씨가 너무 좋았던 것이다. 강 너머로 비추는 낮은 햇살은 따사로웠으며, 온도는 겨울이라 믿을 수 없을 만큼 따뜻했고, 그래서 계속 걸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볕 드는 날에 산책과 일광욕을 하지 않는 건 언어도단이다! 우리는 뭔가에 홀린 듯 햇볕을 따라 계속 이동했다.

그러다보니 까를교였고...






어느새 구시가지 쪽으로 건너와버렸다.

어떡하지? 알고 있는 음식점은 프라하성 쪽에 있는데? 다시 까를교를 건너야하나? 그러기엔 조금 지치는데.





4.

다시 그 인파를 뚫고 까를교를 건널 자신이 없었던 우리는, 그냥 구시가지에 위치한 아무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레스토랑의 선정 기준 같은 건 따로 없었다. 메뉴에 꼴레뇨가 있으면 오케이였다.

그렇게 들어간 레스토랑은 Restaurant Svejk U Zeleneho Stromu라는 곳이었다.




웨이터와 웨이트리스는 제법 친절했고, 가게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다. 인테리어도 훌륭했고, 식사 시간이 아닌데 손님들도 제법 있었다. 막 들어온 것치곤 괜찮은 것 같다? 우리는 만족해하며 착석했다.

기분 좋게 꼴레뇨와 스타터 굴라쉬 스프, 필스너 우르켈 두 잔을 시켰고, 곧 주문한 것들이 나왔다.





음식과 맥주 역시 괜찮았다. 베를린남은 이게 바로 꼴레뇨라는 것이냐며 신기해하며 먹었고, 나는 필스너 우르켈을 떠날때야 마시다니 그동안 뭐한거지 등등을 생각하며 마셨다.

테이블 위에는 프레첼 등의 과자가 놓여 있었고, 베를린남은 이게 공짜냐고 물었다. 어... 글쎄, 이건 가게마다 다른데. 나는 웨이트리스에게 물어보려다가, 그녀가 너무 바빠보여서 구글 리뷰를 뒤져봤다. 그런데 좋지 않은 리뷰들이 몇몇 보였다. "프레첼 과자 먹지도 않았는데 1인당 Charge 붙임 ㅠㅠ 저희는 먹지도 않았는데 억울하네요" 라던가, "웨이트리스가 팁을 마음대로 붙임 ㅠㅠ" 라던가 하는 리뷰였다. 아차, 여기 조심해야 하는 음식점이구나. 특히나 우리 같은 동양인은 더욱이. 정신이 번쩍 들었다.

베를린남 : 먹어도 되는 거에요?
나 : 안 먹어도 돈 받는대요. 어떤 사람은 과자 셋팅비로 인당 20코룬 받았다는데? 아이고, 어떤 사람은 인당 100코룬 받았다네요. 뭐야? 왜 가격이 다 달라? 잘못 쓴 건가?
베를린남 : 어... 어쨌든 안 먹어도 돈 받는 거면 먹는 게 낫잖아요?
나 : 그건 그렇죠. 셋팅비를 받는다니 최대한 먹어버리죠.


나는 봉지에 쌓인 과자를 챙겨서 베를린남의 가방에 넣어줬다. 어차피 돈 받는 과자들인데 최대한 긁어가자고. 테이블에 주렁주렁 매달린 프레첼도 많이 먹고 싶었는데, 배가 불러서 각자 1개씩만 먹고 관뒀다.

나 : 아, 배불러서 안되겠다. 그냥 자릿값이라 생각하죠.
베를린남 : 전 상관없어요. 그리고 이 과자 맛없네요.


나는 웨이트리스를 불렀다.





5.

웨이트리스는 계산서를 가져왔다. 계산서는 프린트 된 계산서가 아니라 수기로 쓴 계산서였다. 하하, 혹시나 했는데, 진짜 리뷰에서 읽은 것처럼 장난질을 쳐뒀군. 그걸 대비해서 음식값과 맥주값, 10% 부가세까지 이미 계산기로 두드려놨지. 나는 그 숫자를 보여주며 왜 총가격이 다르냐고 물었다.

웨이트리스는 잠시 당황해하다가, 곧 평정심을 되찾고 뻔뻔하게 말했다.

웨이트리스 : 이거? 이거 팁이 포함된 가격이야. 미리 설명을 안해줬구나. 미안. 우린 팁을 이렇게 받거든.
나 : 그게 이 레스토랑의 오너 방침이야?
웨이트리스 : 바로 그거야! 우리 오너의 방침이야.


하하하. 그래?

나는 느리게 눈을 끔뻑이곤, 그럼 카드결제를 하겠다고 했다. 그게 정말 오너의 방침이라면, 웨이트리스인 네가 돈을 떼먹기 위해 가격을 붙인 게 아니라면, 카드로 결제해도 상관없겠지.

하지만 웨이트리스는 예상대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웨이트리스 : 오, 안돼. 우리는 현금만 받아.
나 : 무슨 소리야? 나 너희 가게 앞에 비자랑 마스터 붙어있는 걸 보고 왔어.
웨이트리스 : 아, 그건, 물론 우리는 카드를 받는데, 카드 기계가 고장났어.
나 : 정말 기계가 고장났어? 확인해봐도 될까?
웨이트리스 : 아니, 사실은 고장난 게 아니라, 내가 이미 계산서를 현금처리 했거든. 그래서 너희는 현금으로 결제해야 돼.


이건 또 무슨 개소리야? 나는 어이가 없어서 웃었고, 영어를 몰라 무슨 말이 오가는 건지 모르던 베를린남은 불안한 얼굴로 뭐가 잘못됐냐고 말했다. 나는 하나도 잘못된 거 없다고, 잠시만 기다리라고 했다.

나 : 누가 현금으로 결제하겠다고 먼저 말했어? 왜 네 맘대로 현금처리를 해?
웨이트리스 : 여행자들은 현금을 많이 써서, 당연히 너희도 현금으로 계산할 줄 알았지.
나 : 나는 오늘이 프라하 마지막 날이고, 나는 너한테 줄 현금 없어. 다 떨어졌다고.


나는 배째라는 듯 말했으나, 그녀는 그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웨이트리스 : 현금이 없어도 괜찮아. 우리 가게 근처에 현금인출기가 있거든?

뭐? 현금인출기?

웨이트리스 : 거기서 돈 뽑아올래? 거긴 현금서비스를 제공하거든.


.........뭐어어어어어???????


진심 '인출 어쩌구' 대목에서 폭발했다. 진정 이것이 웨이트리스가 할 소리인가? 비자와 마스터를 지원한다고 써붙인 가게에서 팁 좀 챙기겠다고 손님에게 현금 인출을 권한다고? 현금 서비스를 받으라고? 그리고, 뭐? 현금 처리를 해서 카드를 못받는다고? 나도 포스기 다뤄봐서 취소하고 재결제 하는 방법 알거든?

그거 알아?

사실 나는 팁에 무진장 후해서 네가 적어온 그 가격보다 더 많은 팁을 주려고 했다는 걸?


하하하.


네년은 지금

쿠바와 남미에서 삥 뜯겨가며

여행했던 자의 잠자고 있던 본능을 깨웠어!


이몸의 짠내 본성을 깨웠다고!



쿠바에서 웨이트리스 장난질에 빡쳐서 주방 문 열고 따졌던 사람이 누구? 바로 나다. 포장마차에서 애들이랑 술을 만땅으로 먹고 취했어도 어물쩡 돈을 챙기려고 하는 아주머니의 틀린 계산을 바로잡고 거스름돈을 제대로 돌려받은 사람이 누구? 바로 나라고. 절대! 네버! 이곳에 음식값을 제외한 그 어떤 돈도, 팁 한 푼도 내지 않겠어! 네가 그동안 어떤 순둥이 같은 여행자들을 만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나 지금 제대로 빡쳤다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의 분노를 표출하며 외쳤다.

나 : 너 진짜 미쳤어?

누가 은행 수수료를 붙여가면서 현금을 뽑아와? 네가 수수료까지 내줄거야? 그리고 나는 고객한테 은행에까지 가서 돈 뽑아오라고 하는 웨이트리스한테 팁 주고 싶지 않거든? 팁 빼고 계산해!

난 절대 손으로 적은 네 페이크 계산서 계산 못해!


웨이트리스는 내가 그렇게까지 화를 낼 줄 몰랐는지 얼떨떨해하다가, 또 페이크 계산서라는 말에 아랫입술을 윗니로 살짝 깨물며 기분 나쁨을 표출했다가, 그래도 자기가 웨이트리스니까 참는다는 재수없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웨이트리스 : 그치만, 그거 알아? 너는 결제를 해야할 책임이 있는데, 내가 이미 영수증을 현금으로 끊어놨다고. 어쩔 수 없어. 너는 현금으로 결제해야 돼.

뭐래. 그게 내 잘못이야? 니 잘못이지. 니가 책임져.

그리고 나는 화가 나면 생각나는 것을 그대로 말하는 정직한 사람이다.

나 : 뭐래. 그게 내 잘못이야? 니 잘못이지. 니가 책임져.

한숨 쉬고.

이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마법의 문장을 쓰자.

나 : 너랑 말이 안통한다. 매니저 불러와!

가게의 손님들은 모두 흥미진진한 얼굴, 혹은 의아한 얼굴로 전부 우리 테이블을 바라보고 있었다. 웨이트리스는 얼굴이 붉어진 채로 씩씩거리다가,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는지, 매니저를 데리고 올테니까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중얼거린 뒤 내 앞에서 사라졌다. 나는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베를린남 : 뭐야, 또 계산서가 이상한 거에요?

그가 '또'라고 말한 이유는, 우리가 이틀 전 처음 만났을 때 맥주집에서 웨이터가 장난질 쳐놓은 걸 내가 발견하고 따졌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런 경험 때문에 그는 혼자 레스토랑을 못가고, 나랑 가고 싶어한 것 같다) 그 땐 맥주를 여러 잔 마셔서 조금 취한 터라 상세한 대화가 기억나지 않고, 그래서 포스팅에선 뺐지만, 어쨌든 그 때도 지금과 비슷한 패턴이었다. 물론 지금처럼 끈질긴 건 아니었고, 내가 지적하자 바로 실수였다며 머쓱해하며 고쳐줬었지만...





6.

베를린남에게 상황을 설명하던 도중, 매니저가 웃으며 다가왔다. 그 웨이트리스는 보이지 않았다. 내가 매니저를 홱 째려보자, 그는 아무 문제도 없다며 어깨를 으쓱이곤, 내게 계산서와 카드기를 가져다줬다. 아까 웨이트리스가 써붙인 고액의 팁 따위는 빠진, 제대로 된 계산서였다.

대신 소액의 항목이 붙어있었는데, 아마도 이게 그 리뷰에서 곧잘 언급됐던 프레첼 값인가 보다. 나는 확인을 위해 매니저에게 물어봤다.

나 : 이 항목은 뭐야?
매니저 : 너희 여기 프레첼 과자 두 개를 먹었잖아? 그 가격이야.
나 : 우린 먹었으니까 상관없는데, 내 친구 말로는 안 먹어도 이 가격을 내야했다던데?


물론 친구가 아니라 리뷰에서 본 거지만.

매니저 : 응? 잘못 알고 있구나. 먹지 않은 것에 값을 붙이지는 않아. 너희가 과자 두 개를 먹었으니까 우린 그만큼 값을 붙인 거야.

하하하... 그렇다고 한다. 그럼 뭐야, 여태까지 프레첼을 먹지도 않았는데 이 값을 내야했던 사람들은? 정말 알 수가 없는 레스토랑이로다. 아 몰라, 거기까진 내 알 바 아니야. 나는 직원 관리나 좀 잘하라는 말을 매니저에게 던지고 가게를 나섰다. 매니저는 불쾌한 표정을 지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팁은 단 한 푼도 내지 않았다. 이런 레스토랑에 팁 따위를 줄쏘냐.


(추가 : 다시 한번 언급하지만 가게 이름은 Restaurant Svejk U Zeleneho Stromu. 주소는 Betlemske nam. 351/6, 110 00 Stare Mesto. 주소까지 적어두는 이유는 절대 가시지 말라고.

가게 이름 찾으려고 구글맵 켜서 지금 봤더니 평점이 개판이다. 내가 갔을 때만 해도 3점대 후반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무래도 그 사이에 장난질 치는 직원들이 극성이었는지 평점은 2점 초반까지 떨어져있었다. 그래, 여행자들의 평은 정확하지. 직원 관리 똑바로 못하면 여기 아마도 망할거야. 아니 망해버려라.)





7.

베를린남 : 아, 정말 무섭다, 체코...
나 : 예?
베를린남 : 아니, 돈 몇 푼 더 벌겠다고 저러는 게 무서워서요. 지저분하고.
나 : 그러게요. 근데 다 그런 건 아니에요. 원래 관광지에는 저런 바가지 씌우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한국은 안그러나, 뭐.


하지만 베를린남은 여전히 체코가 두렵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빨리 마음의 안식처인 베를린으로 돌아가야겠다고 했다. 곧 그가 예약한 버스 시간이었고, 나는 구시가지의 복잡한 길 때문에 허둥대는 그를 지하철 역까지 데려다줬다.

베를린남 : 진짜 고마워요. 많이 신세졌어요.
나 : 아니에요. 여행... 휴... 잘 하세요... 살아서 한국까지 돌아가고요...
베를린남 : 나 성인이라니까 ㅋㅋㅋㅋ 왜 이래요 ㅋㅋㅋㅋ


헤어질 때가 되자 나는 파리에서 헤어질 때 걱정했다는 그 동생과 똑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베를린남은 내 말이 농담인 줄 알았는지 깔깔거리고 웃으며 지하철 역으로 내려갔고, 나는 약간 맹한 눈으로 '꼭 살아서 한국까지 돌아가길...' 등등의 생각을 하다가 몸을 돌렸다.

걸어가는 도중, 그에게서 카톡이 왔다. 그동안 고마웠다는 내용과 함께 새해 복 많이 받으란 내용이었다.

베를린남 : 복 많이 받으세요. 마음씨가 착하신 것 같은데 복 받으실 거에요. 그거 다 적립되는 거에요!

아니 뭐, 적립까지야. 사실 그것보다도, 나도 뭔가 다른 여행자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이 된 것 같아 좋다. 맨날 도움만 받고 살았었는데. 아마도 웨이가 지금의 날 보면 기특하게 여길지 몰라.

나는 목도리를 고쳐매고, 블타바 강변 쪽으로 어슬렁거리며 걸어갔다.




프라하 마지막 밤에서 계속!






덧글

  • Tabipero 2018/03/14 22:22 # 답글

    관광객 등쳐먹는 곳이 적잖은 모양이군요. 첫날 강매고기부터 시작해서 막날 계산서 장난질까지...
    내가 먹은데는 어땠을까 하고 떠올려 보는데 첫날 노점에서 뭘 먹고 막날 굴라쉬 먹은 것밖에 기억이 안 나네요. 다른 날은 대체 뭘 먹은거였을까...
    이제 모르는 데서 뭘 먹을 때는 리뷰를 꼭 확인해야겠군요.
  • enat 2018/03/15 12:53 #

    앗 그러고보니 강매고기부터 시작됐군요. 프라하 바가지 여행 실화...
    ㅋㅋㅋㅋㅋ 기억이 안나는 거라면 무난한 곳에서 잘 드신 것이 아닐지요! 원래 좋은 건 잘 기억이 안나는 법입니당.
    저도 그 이후로 식당에 갈 때 구글리뷰 정도는 꼭 확인하게 됐어요. 리스크는 줄이는 쪽이 좋겠죠 ㅠㅠ
  • 라비안로즈 2018/03/14 23:20 # 답글

    흠.... 역시나 이름난 관광지는 ... 그런곳이 많군요. 매니저 불러!는 마법의 단어...

    외국에선 그래도 영어를 그나마 해야되는군요...

    통번역앱이 잘되어있어도 참... 저런 문제는 제대로 화난 목소리로 크게 이야기 해야하니 어쩔수 없이 많이 알아야 되는군요
  • enat 2018/03/15 12:56 #

    이렇게 대놓고 현금 + 팁을 강요하는 음식점은 저곳이 처음... 처음은 아니고 오랜만이었어요.
    저도 고급진 영어를 쓴 건 아니고... 그냥 화나서 막 말했어요 ㅋㅋㅋㅋ 하도 영어를 안썼더니 혀가 굳었었는데 덕분에(?) 혀가 좀 풀린 느낌이었어요 ㅋㅋㅋ
  • 붕숭아 2018/03/14 23:25 # 답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진짜 이낫님 팬이예요
    저는 남싫은소리 잘 못하는 성격이라 그렇게 대차게 따지지 못하는데.. 대박
    왜 미국에 중국음식점들 가면 팁 미리 붙여서 나오잖아요, 그래도 그냥 에혀 내고말지 하고 내는데
    진짜 대단하세요!!!!
    그와함께 물가에 내놓은 베를린남님도 운이 참 좋아요 이낫님 만나서 ㅋㅋㅋㅋ
    그분 살아서 한국 가셨겠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나저나 체코 정말 가고싶은데 진짜 바가지 많이 씌우나보네요.
    가게된다면 조심하겠어요!!!!! 저 음식점은 무조건 피하고!!!
  • enat 2018/03/15 13:12 #

    아이구 팬이라뇨 자꾸 이러시면 부끄러워서 광대가 승천합니다 (?)
    믿지 못하시겠지만 저도 남싫은소리 잘 못하는 성격입니다... 그래서 평소에 손해 잘 보곤 하는데 저 정도까지 대놓고 심하게 거짓말 하면 누구라도 방언 터질거여요... 흑흑
    팁 미리 붙이는 음식점들이 생각보다 많죵. 저도 그럴 때 사실 그냥 내는 편인데 카드결제 안해주고 돈뽑아오라고 시키니까 넘나 빡치더라고요 ㅋㅋㅋㅋ
    베를린남은 카톡 프사를 보아하니 무사히 한국에 도착한 것 같습니다.

    바가지 안씌우는 좋은 곳들도 많으니 나중에 꼭 한번 가보세요! 동화나라 그 자체에요 ㅋㅋㅋ
  • 레아 2018/03/14 23:38 # 삭제 답글

    아 진짜 그 식당 너무하네요 읽기만 해도 화남 ㅠㅠ 그래도 enat님이 잘 대처하셔서 그렇지 도대체 그 동안 얼마나 등쳐먹었을까...에휴...
  • enat 2018/03/15 13:14 #

    너무하죠 ㅠㅠ 제가 진짜 웬만하면 음식점 평도 좋게 써주고 팁도 많이 주고 나오는 편인데 이건 지짜!!! 참을 수가 없드아아아!!! 저도 구글에 적힌 리뷰를 우연히 보지 않았더라면 마음의 준비를 못하고 어버버하다가 당했을지도 몰라요.... 그 뒤로 구글 리뷰를 애용합니다...
  • 요엘 2018/03/15 07:06 # 답글

    아 리뷰부터 불안하더라니 결국 저 짓을.. 말도 안되는 거짓말을 할때부터 속이 부글부글 끓으면서 이낫님을 응원했습니다. 쿠바에서 빵터지고 계속 짜란다 짜란다 이낫님을 외치면서 읽었네요. 저런 집은 진짜 한번 당해봐야 정신차리죠.
  • enat 2018/03/17 20:19 #

    응원 감사합니다. 미래에서 응원받아 과거의 저 힘내서 싸웠습니다. 엉엉ㅠㅠ 뭐 저런 괘씸한 집이 다 있을까요.
    과거의 저는 제 돈을 사수하는데서만 그쳤지만, 뭔가 좀 더 통쾌하게 한 방 먹일(?)만한 사람이 될때까지 저 자신을 갈고 닦겠(?)습니다. 화이팅 나자신!
  • 존평씨 2018/03/15 07:16 # 답글

    웨이씨가 enat님과 같이 다닐 때 느끼는 기분이 아마 그런 거 아니었을까요?
    다른 종류의 실수지만 보는 사람 입장에선 같은 조마조마함일 거 같네요. ^^
  • enat 2018/03/17 20:21 #

    !!!!!!!!!
    아아아아아아!!!!!
    만약 그런거라면 웨이 미안하다아아아아!!!!
    그리고 혼자 요령없이 끙끙거리고 쫄래쫄래 따라다니는 나 보면서 엄청 재밌었겠구나아아아아!!!!!

    덧글 보고 큰 깨달음이 와서 잠시 물 좀 마시고 올게요.
  • 잘나가는 꼬마사자 2018/03/15 09:25 # 답글

    짜란다짜란다 짜란다!!! 이낫씨 짜란다!!! 아휴ㅋㅋㅋ 무사히 살아돌아와서 참 다행이에요 그쵸?ㅋㅋ 베를린남의 그 후 소식은 혹시 아시나요 ㅋㅋㅋ 자꾸 여행기 보다보니까 저도 정이들고.. 걱정이 되고...
  • enat 2018/03/17 20:23 #

    짜란다 짜란다 쑥쑥 자란다! 이낫은 아직 성장기!
    베를린남은 음 네 잘 들어온것 같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 들어오면 연락하고 커피 산다더니 뭐 멋쩍어서 연락은 못하는거 같고 프사 보니까 한국인것 같네요! 살아있나봐요!
  • PennyLane 2018/03/15 16:15 # 답글

    사람이 죽으란 법은 없다고, 베를린남 그렇게 얼빵해도 인복 하나 타고 난 거 레알 신기하네요.
    어쩜 그렇게 좋은 사람들이 적재적소에 나타나서 살뜰히 거둬줄까요? 며칠전까지 얼굴도 몰랐던 사람들이, 그것도 지구 반대편에서요. 베를린남이야말로 착한 사람들을 위한 복 적립펀드같은건가봐요.ㅋ
  • enat 2018/03/17 20:25 #

    !!!!!!!!!!
    그런것이었나!!!!!!!!!!!!!
    그러고보니 베를린남 인복 쩌네요!!?? 그렇게는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유럽와서 쌓아둔 복을 펑펑 쓴 거였다니!!!!!

    덧글 쭉 보면서 두번째로 큰 깨달음이 와서 잠시 따뜻한 우유 좀 마시고 올게요.
  • 냥이 2018/03/15 22:08 # 답글

    1박 2일에서 정준형이 어땠는지 찾아본다면...베릴린남이 어떤 파(?)인지 알겠네요.
  • enat 2018/03/17 20:27 #

    1박 2일을 안본지 넘 오래되서... 하여간 왠지 느낌이 정준영 닮았어요 ㅋㅋㅋ 말하는 것도 그렇고.
    다만 그에겐 정준영이 가지고 있던 여행 요령과 외국어 능력은 전무했죠...
  • 방문객 2018/03/16 00:31 # 삭제 답글

    정말 멋지신 것 같아요!ㅋㅋㅋ통쾌합니다
  • enat 2018/03/17 20:27 #

    어머 감사합니다! 보통은 어버버하면서 당하는 편인데, 눈에 보이게 그 사기를 치니 넘나 화가 나더라고요! '0'!!!
  • LionHeart 2018/04/18 15:01 # 답글

    와...enat님 후기보니 프라하 가고싶지 않아졌어요...아름다우면 뭘해, 사는 사람이 아름답지 않은데 (...)
    전 당연히 괜찮을 것이라 생각해서 이번 여행 때 한번도 계산서 체크를 안했는데...갑자기 불안해지네요 -ㅁ-;
  • enat 2018/04/18 23:35 #

    앗 ㅠㅠ 그렇지 않은 프라하의 식당들이 더 많아요! 여행 다니면서 느낀 건데 저래 장난질 치는 사람들은 세상 어딜가도 있더라고요. 제가 또 호구안을 갖고 있는 터라 사건에 잘 휘말리는(?) 스타일이기도 하고... 프라하는 정말 갈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에요 ㅠㅠ 아름다운 도시의 아름답지 않은 부분을 보여드렸지만 그보다도 아름다운 부분이 더 크니까 꼭 한번 들러보세요!
    별 위화감 없이 잘 계산하고 나오셨다면 제대로 계산 됐을 거에요. 저렇게 거짓말하고 장난질치는 사람들은 티가 나거덩요!
  • 이글루스 알리미 2018/05/28 08:44 # 답글

    안녕하세요, 이글루스입니다.

    회원님의 소중한 포스팅이 5월 28일 줌(http://zum.com) 메인의 [허브줌 여행] 영역에 게재되었습니다.

    줌 메인 게재를 축하드리며, 게재된 회원님의 포스팅을 확인해 보세요.

    그럼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 enat 2018/05/28 22:38 #

    감사합니당.
  • 애기곰 2018/07/11 21:07 # 삭제 답글

    정준영분위기의 그 청년이랑은 뭔가 그 뒤로도 만남이나 스토리가 있을지도,,,하면서 기대하고 읽었는데
    아쉽네요 ^^ 그 청년,,그렇게 베를린으로 돌아가서 enat님을 그리워하며
    그녀를 그렇게 보내는게 아니였어~ 하면서 후회하고 있는 스토리,,,혼자서 막 상상했어요 ㅎㅎ

    전 혼자서 영화보고 밥먹고 잘 돌아 다니는 편이지만 해외여행은 절대 혼자서 노노노~거든요.
    심각한 길치인데다 영어도 잘 못하고 낯선환경에선 긴장을 꽤 하는 편이라서요.
    이렇게 혼자 여행다니는 걸 즐기는 enat님이 부럽습니다.

  • enat 2018/07/21 13:26 #

    ㅋㅋㅋㅋㅋ 그렇게 보내는게 아니었어 ㅋㅋㅋㅋ 뭔가 로맨스 영화 느낌이라 웃었어용 ㅋㅋㅋㅋ 하지만 제 여행 장르는 로맨스보단 재난영화 쪽에 가까워서 그럴 일은 거의 없죵... 또르르

    실은 저 역시 길을 잘 찾는 편도 아니었고 영어도 잘 못했었고 긴장도 엄청 하는 성격이었는데 여행 다니다보니 점점 변하더라고요. 지금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그 느낌이 너무 좋아서 혼자 낯선 곳에 가는게 넘넘 즐거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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