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년 가을에 단풍 구경하겠다고 주말에 짬을 내어 설악산엘 갔다.
근데 안개가 잔뜩 껴서 단풍은커녕 흰 바탕의 도화지 같은 하늘만 보다 왔다.



지금 사진을 보니 이것도 제법 멋지긴 한데 그 땐 그게 왜 그렇게 서럽고 슬펐는지 모른다.
미니미니는 울상이 된 채로 하산하는 날 보고 한참을 웃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곤 밥이나 먹으러 가자고 했다.
그래서 그 서럽고 슬펐던 마음을 음식물로 달래러 갔다. 사람, 역시 먹어야 사는 동물이다.
먹은거 1) 대게, 홍게

대포항에서 대게 하나, 홍게 하나 먹었다.
게껍질이 두꺼운 이유는 맛있는 속살을 숨기기 위해서다. 게껍질 속에 숨어있는 그 부드럽고 연한 속살... 이와 젓가락과 가위로 열심히 찢고 부수고 골라가며 배터지게 먹었다. 게딱지에 게살볶음밥도 나왔다. 버터 냄새 솔솔 나는 맛난 게살볶음밥... 내가 어떻게 감히 그 맛을 표현할까.
좀 느끼할까봐 서더리탕도 시켰는데 서더리탕 국물이 또 대박이었는지라 환장하고 먹었다. 너무 맛있게 먹어서 실신할 뻔.
먹은거 2) 곰치

동해에 오면 꼭 한번은 먹어야 한다는 (가게 아주머니께서 그러셨다) 곰치를 먹어봤다.
음식을 기다리며 곰치가 뭔가 하고 구글에 검색해보니, 굵고 기다란 몸체 사진이 나왔다. 장어 같은 건가? 개중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뀨우~?"하고 있는 사진도 있어서, 귀엽다며 계속 검색해봤다.
그렇게 검색을 하다보니 제 2의 입 움짤을 보게 됐다.

곰치는 턱이 두 개다. 바깥쪽 턱으로 먹이를 붙잡고, 안쪽에 숨어있던 제 2의 턱이 나와 먹이를 붙잡고 씹으며 다시 안쪽으로 들어간다고 한다... 이 무슨 에일리언 같은 행태...
움짤을 보고 나자 갑자기 식욕이 떨어졌다. 뭐 이런 괴물 같은 걸 어떻게 먹나... 그 때 곰치탕이 나왔다.
가게 아주머니 : 맛있게 먹어요~
나 : ......
맛있게... 먹을 수 있을까? 나는 미니미니를 바라보았다.
미니미니 : 오오오! 맛있겠다!
어휴 저 돼지.
뭐든지 맛있게 먹는 미니미니 때문에 억지로 숟가락을 들긴 했는데, 사실 무슨 맛인진 모르겠더라. 살이 흐물텅거려서 씹기는 어렵고, 콧물 같은 느낌이 들어서 삼키기는 거북하고. 내 평생 가장 먹기 어려운 탕이었다. 이, 이걸 어떻게 먹어! 이 흐물거리는 살 어떡할건데!? 역시 곰치는 에일리언이 맞았어!
나는 괴물 같은 곰치살을 몇 번 건드리다가, 기브업을 선언하고 그냥 밑반찬과 국물이랑만 먹었다.
먹은거 3) 새우강정

이거도 대포항에서 먹은 거.
다른 가게에서 파는 새우 튀김이랑은 격이 달랐다. 양념은 닭강정 같은 맛난 양념에, 식감은 바삭바삭하면서도 촉촉한, 진짜 동네에 있다면 맨날 먹으러 갈 그런 맛이었다. 우리가 새우강정만 시키자 주인아저씨가 맛 좀 보라고 베이비 크랩도 두개 넣어줬는데, 그 베이비 크랩도 짱맛있었다. 아, 지금 이 시각 맥주와 함께 매우 먹고 싶은 녀석이다.
이거 꼭 다시 먹고 만다. 대포항에 있는 라마다 잡고 새우강정&베이비크랩 세트랑 캔맥주 잔뜩 사다가 호텔로 돌아가서 예능 하나 틀어놓고 생각없이 와구와구 먹어야지. 꼭 다시 먹고 만다!
먹은거 4) 아바이순대, 오징어순대

아바이 마을에서 파는 아바이 순대랑 오징어 순대. 둘 다 속초를 대표하는 실향민/피난민 음식이다.
아바이 순대는 함경도식이다. 함경도 사람들이 피난오면서 가지고 온 음식 문화 중 하나로, 대창으로 만든 거라 소창으로 만드는 일반 순대보다 크기가 크다. 오징어 순대는 그 함경도 사람들이 돼지를 구하기 힘들자 오징어를 이용해 만든 순대고. 예전에 알쓸신잡에서 "전쟁으로 인해 평화로운 일상이 깨어질 때 탄생한 음식"으로 국밥을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이 음식들도 그것과 유사한 매커니즘으로 탄생한 음식이라 보면 될 듯.
맛은 사실 기억이 잘 안난다. 별 불만이 없었던 걸 보면 무난하게 맛있었던 듯. 사실 순대는 어떤 순대든 사랑이니까...
2.
먹기만 한 건 아니다. 나름 그림도 그렸다.
미니미니가 찍어준 '설악산에서 그림 그리는 소녀1'.


컨셉아님. 징짜 그림 그렸음.


산행하다가 잠깐씩 쉴 때 그린 거라 빨리 그리느라 엉망이긴 한데 (변명 구질구질) 그래도 일단 그렸음.

그나마 바위에 앉아 시린 궁딩이를 참아가며 제일 공들여서 그렸던 건 이거. 설악산에 있던 거대 불상.
이거 그렸다가 미니미니가 물론 부처님의 마음은 크겠지만 그렇다고 가슴을 그렇게 풍만하게 표현할 필요는 없었다며 웃다가 오열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나 진짜 열심히 그린건데... 마지막에 손이 미끄러져서... 억울하다.
3.
요것만 올리면 심심하니까 속초에서 찍었던 다른 사진들도 올리고 끝냄.




작년 가을에 단풍 구경하겠다고 주말에 짬을 내어 설악산엘 갔다.
근데 안개가 잔뜩 껴서 단풍은커녕 흰 바탕의 도화지 같은 하늘만 보다 왔다.



지금 사진을 보니 이것도 제법 멋지긴 한데 그 땐 그게 왜 그렇게 서럽고 슬펐는지 모른다.
미니미니는 울상이 된 채로 하산하는 날 보고 한참을 웃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곤 밥이나 먹으러 가자고 했다.
그래서 그 서럽고 슬펐던 마음을 음식물로 달래러 갔다. 사람, 역시 먹어야 사는 동물이다.
먹은거 1) 대게, 홍게

대포항에서 대게 하나, 홍게 하나 먹었다.
게껍질이 두꺼운 이유는 맛있는 속살을 숨기기 위해서다. 게껍질 속에 숨어있는 그 부드럽고 연한 속살... 이와 젓가락과 가위로 열심히 찢고 부수고 골라가며 배터지게 먹었다. 게딱지에 게살볶음밥도 나왔다. 버터 냄새 솔솔 나는 맛난 게살볶음밥... 내가 어떻게 감히 그 맛을 표현할까.
좀 느끼할까봐 서더리탕도 시켰는데 서더리탕 국물이 또 대박이었는지라 환장하고 먹었다. 너무 맛있게 먹어서 실신할 뻔.
먹은거 2) 곰치

동해에 오면 꼭 한번은 먹어야 한다는 (가게 아주머니께서 그러셨다) 곰치를 먹어봤다.
음식을 기다리며 곰치가 뭔가 하고 구글에 검색해보니, 굵고 기다란 몸체 사진이 나왔다. 장어 같은 건가? 개중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뀨우~?"하고 있는 사진도 있어서, 귀엽다며 계속 검색해봤다.
그렇게 검색을 하다보니 제 2의 입 움짤을 보게 됐다.

곰치는 턱이 두 개다. 바깥쪽 턱으로 먹이를 붙잡고, 안쪽에 숨어있던 제 2의 턱이 나와 먹이를 붙잡고 씹으며 다시 안쪽으로 들어간다고 한다... 이 무슨 에일리언 같은 행태...
움짤을 보고 나자 갑자기 식욕이 떨어졌다. 뭐 이런 괴물 같은 걸 어떻게 먹나... 그 때 곰치탕이 나왔다.
가게 아주머니 : 맛있게 먹어요~
나 : ......
맛있게... 먹을 수 있을까? 나는 미니미니를 바라보았다.
미니미니 : 오오오! 맛있겠다!
어휴 저 돼지.
뭐든지 맛있게 먹는 미니미니 때문에 억지로 숟가락을 들긴 했는데, 사실 무슨 맛인진 모르겠더라. 살이 흐물텅거려서 씹기는 어렵고, 콧물 같은 느낌이 들어서 삼키기는 거북하고. 내 평생 가장 먹기 어려운 탕이었다. 이, 이걸 어떻게 먹어! 이 흐물거리는 살 어떡할건데!? 역시 곰치는 에일리언이 맞았어!
나는 괴물 같은 곰치살을 몇 번 건드리다가, 기브업을 선언하고 그냥 밑반찬과 국물이랑만 먹었다.
먹은거 3) 새우강정

이거도 대포항에서 먹은 거.
다른 가게에서 파는 새우 튀김이랑은 격이 달랐다. 양념은 닭강정 같은 맛난 양념에, 식감은 바삭바삭하면서도 촉촉한, 진짜 동네에 있다면 맨날 먹으러 갈 그런 맛이었다. 우리가 새우강정만 시키자 주인아저씨가 맛 좀 보라고 베이비 크랩도 두개 넣어줬는데, 그 베이비 크랩도 짱맛있었다. 아, 지금 이 시각 맥주와 함께 매우 먹고 싶은 녀석이다.
이거 꼭 다시 먹고 만다. 대포항에 있는 라마다 잡고 새우강정&베이비크랩 세트랑 캔맥주 잔뜩 사다가 호텔로 돌아가서 예능 하나 틀어놓고 생각없이 와구와구 먹어야지. 꼭 다시 먹고 만다!
먹은거 4) 아바이순대, 오징어순대

아바이 마을에서 파는 아바이 순대랑 오징어 순대. 둘 다 속초를 대표하는 실향민/피난민 음식이다.
아바이 순대는 함경도식이다. 함경도 사람들이 피난오면서 가지고 온 음식 문화 중 하나로, 대창으로 만든 거라 소창으로 만드는 일반 순대보다 크기가 크다. 오징어 순대는 그 함경도 사람들이 돼지를 구하기 힘들자 오징어를 이용해 만든 순대고. 예전에 알쓸신잡에서 "전쟁으로 인해 평화로운 일상이 깨어질 때 탄생한 음식"으로 국밥을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이 음식들도 그것과 유사한 매커니즘으로 탄생한 음식이라 보면 될 듯.
맛은 사실 기억이 잘 안난다. 별 불만이 없었던 걸 보면 무난하게 맛있었던 듯. 사실 순대는 어떤 순대든 사랑이니까...
2.
먹기만 한 건 아니다. 나름 그림도 그렸다.
미니미니가 찍어준 '설악산에서 그림 그리는 소녀1'.


컨셉아님. 징짜 그림 그렸음.


산행하다가 잠깐씩 쉴 때 그린 거라 빨리 그리느라 엉망이긴 한데 (변명 구질구질) 그래도 일단 그렸음.

그나마 바위에 앉아 시린 궁딩이를 참아가며 제일 공들여서 그렸던 건 이거. 설악산에 있던 거대 불상.
이거 그렸다가 미니미니가 물론 부처님의 마음은 크겠지만 그렇다고 가슴을 그렇게 풍만하게 표현할 필요는 없었다며 웃다가 오열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나 진짜 열심히 그린건데... 마지막에 손이 미끄러져서... 억울하다.
3.
요것만 올리면 심심하니까 속초에서 찍었던 다른 사진들도 올리고 끝냄.




끝!
덧글
그거랑 다른 물고기에요
동해안에서 곰치라고 부르는 물고기는 두루뭉실 흐물흐물 못생긴 물고기랍니다
게다가 요즘 인기있어서 탕끓여서 많이들 파는건
보통 물메기라고 부르는 비슷한 물고기일 가능성이 높답니다 진짜 곰치가 값이 비싸져서요
물메기는 서해안 남해안에서도 많이 나서 값이 많이 차이 나더라구요
전 신김치넣은 탕보다는 맑은탕으로 끓인거 좋아해요
술먹고 해장하면 좋아요ㅋㅋㅋ
엄청 떨떠름한 마음으로 먹었었는데 뭔가 그녀석에게 미안하네요... 리얼곰치보다 못생기기까지 했다니
제가 먹은걸 물곰탕이라고도 한다던데 아마 맞는거 같아요
좋은 지식 감사합니다~~ :)
부럽습니다
어떤 순대든 순대는 사랑이지만요!!!
부처님 가슴... 미니미니가 옆에서 "불교혐오를 멈춰주세요 타종교혐오 OUT!" 막 이래 자꾸 놀려서 등산하기 힘들었어요... 흑흑
올해부터 좀 변해야지 하는데 올해가 아홉수인건 함정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부처님 가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가슴이 없는 저로서는 부처님이 부럽군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홉수 믿지 마세여~~ 주변 보니까 아홉수 그냥 지나가는 사람도 많구 아홉수 끝나자마자 고생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더라고요! 그냥 저희 나이 언저리가 힘든 나이 언저리같아요~~ 나중에 커피 한잔 하면서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음 좋겠네요 :)
아 그러고보니 저도... 가슴...
제 이룰 수 없는 욕망을 부처님께 투영한 것 같습니다 크흑...
아.... 무의식이란 무서운것... (?)... 제 욕망을 투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ㅠ.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