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5/07 00:45

겨울 유럽여행 (22) 아씨시 : 트러플 요리 ├ 겨울 유럽여행 (2018)

1.

수녀원 침대에 누워 검색을 하다보니, 아씨시엔 제법 맛집이 많았다. 그러나 시간대가 어중간해서, 대부분이 브레이크 타임에 걸려있었다. 나는 구글맵으로 이곳저곳을 찾다가, 지금 시간대에도 문이 열려있는 레스토랑을 발견했다.

레스토랑의 이름은 Da Cecco. 리뷰에 따르면 트러플 요리가 유명하단다.

트러플?

사실 나는 트러플이라는 걸 먹어본 적이 없다. 아니, 아예 그 식재료 자체가 생소하다. 예전에 냉장고를 부탁해라는 프로그램에서 유명한 연예인들이 갖고 있는 건 봤다. 우리나라 말로는 송로 버섯이라고 하고, 향이 특이하다고들 하더라. 푸아그라, 캐비어와 함께 세계 3대 진미라고는 하는데 내가 그런 걸 접해볼 기회가 있어야 말이지.

기분이다, 오늘은 내 배때기에 트러플 요리라는 걸 넣어보자.

나는 수녀원에서 나와 Da Cecco를 향해 걸었다. 주소는 Piazza S. Pietro, 8, 06081 Assisi PG.





2.

Da Cecco에 도착했다.




생각했던 것보단 작은 규모였다. 유명하다길래 큰 집일 줄 알았는데.




문에는 빨간 딱지가 잔뜩 붙어있었다. 미슐랭 가이드에 소개된 집인가 보다. 제일 오래된 딱지가 2007년도니까... 10년 이상 인정받은 곳이구만.

별 생각 없었는데 갑자기 기대치가 높아졌다. 미슐랭이잖아. 진짜 맛집인가 보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웨이트리스가 날 맞이해줬다. 나는 평범하게 자리에 착석했고, 메뉴를 봤다. 다양한 요리들이 있었으나, 그 놈의 트러플이 어떤 맛인지 넘나 궁금해서 트러플이란 단어만 찾았다. 눈알을 굴리는 내 옆에서 웨이트리스가 말했다.

웨이트리스 : 트러플 요리 찾는 거지?
나 : 옹? 어떻게 알았어?
웨이트리스 : 여기 온 동양인들은 전부 트러플 요리만 먹더라고.
나 : 하하. 어떤 게 있어?


웨이트리스가 소개해 준 요리는 트러플 파스타와 트러플 스테이크였다. 파스타와 스테이크 둘 다 끌리는데. 2명이었다면 단번에 그렇게 시켰겠지만 난 혼자이니... 그렇지만 두 개 다 먹어보고 싶고... 나는 잠시 관자놀이에 손가락을 올리고 고민했다.

웨이트리스 : 어떤 걸로 할 건지 정했어?
나 : 응. 둘 다 줘.
웨이트리스 : 응?
나 : 트러플 파스타 하나, 트러플 스테이크 하나.


궁금해서 안되겠다. 그냥 둘 다 먹어봐야겠다.

나 : 와인은... 아무거나 맛있는 걸로 줘. 샐러드는 필요없고. 디저트는 나중에 주문할게.

웨이트리스는 기대해도 좋을 거라며 내 주문을 받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3.

와인과 식전빵 등을 즐기고 있다보니, 얼마 후 트러플 파스타가 나왔다.




뭔가 우동면처럼 보이는데? 오동통한 면이라니. 엄청 생소하네. 그리고 후추처럼 뿌려진 저 점들이 아마 트러플 버섯을 갈아넣은 건가보다. 나는 신기해하면서 요리를 관찰하다가, 우선 한 입 먹었다.

그리고 포크를 내려놨다.

카톡을 열어 이탈리아 요리를 잘 아는 친구에게 물어봤다.

나 : 트러플이 대체 뭔 맛이야?
친구 : 왜 갑자기?
나 : 내가 방금 트러플 파스타란 걸 한 입 먹었는데, 이게 대체 뭔 맛인지...
친구 : 하하, 그거 익숙해져야 맛있을텐데! 처음 먹어선 별로일지도 몰라~


그러면서 향을 즐기라는 것이었다.

향?

나는 다시 한 번 면을 집어 입에 넣었다.

다시 포크를 내려놓고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나 : 야, 이게 대체 뭔 맛이냐!?
친구 : 트러플 맛이지?
나 : 트러플 3대 진미라며!? 뭔... 이게 뭔 맛이야?
친구 : 글쎄, 익숙해져야 맛있다니까~


맛에 익숙하고 안익숙하고가 어딨어! 그냥 맛있으면 맛있는거지! 세계 3대 진미급에 속하려면 에브리바디 어썸한 맛이어야 하는 거 아냐? 맛있기 위해서 익숙해질 때까지 입맛을 연습해야 하는거야!?

어쨌든 귀한 거라니까, 열심히 먹으려고 했다. 하지만 도저히 뭔 맛인질 모르겠다. 그러니까, 맛이 없는 건 아닌데, 무슨 맛인지를 모르겠다. 생전 처음 먹어보는 맛과 향이었다. 뭔가 은은하게 꾸리꾸리한 향이 나기는 한데, 이게 트러플 향이라는 건가?

나 : 아아, 모르겠다. 안먹을래.

나는 파스타를 절반 정도 남겼고, 웨이트리스는 눈치를 보며 치워도 되냐고 물었다. 나는 가져가라고 했다.





4.

그 다음은 스테이크.




고기는 역시 옳다. 트러플을 끼얹던 뭐가 있던 간에 고기는 역시 옳단 말이다. 나는 힘차게 고기를 썰어서 입에 넣고 우적우적 씹었다. 고기의 굽기는 적당했고 좋은 고기를 썼는지 질기지도 않았다. 양도 어마어마하군.

고기에선 아까 파스타에서 났던 은은하고 꾸리꾸리한 향이 풍겼다. 이 향이 트러플 향이 맞나보다. 이게 왜 3대 진미인 거야? 여전히 알 수 없군. 맛없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막 맛있는 것도 아닌데.

갸우뚱하며 고기를 먹다보니 좀 질린다. 나는 고기도 남겼다.

내 포크가 움직이질 않자, 웨이트리스가 다가와 살짝 당황한 표정으로 다 먹었냐고 물어봤다. 나는 뚱한 표정으로 그렇다고, 치우라고 했다. 배불러서 남긴 거라고 말을 해줄까 하다가, 사실 질려서 남기는 건데 그걸 뭐 굳이 이야기 해줄까 싶어서 그냥 말았다.

나중에 이 이야기를 피렌체에서 만난 요리사 형님에게 했더니, 손님이 음식 남기면 웨이트리스가 요리사한테 얼마나 눈치주는줄 아냐, 그렇게 맛없는 거 아니었으면 배부르다고 한 마디라도 해주지, 그것도 두 접시나 남기다니, 점장한테도 깨졌을 거다, 이 피도 눈물도 없는 손님아 어쩌구 하는 이야길 들었다. 아까 카톡으로 연락했던 친구는, 그 레스토랑 요리사가 밖에 나가서 하늘 보면서 울음 삭히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소리를 했다.

아니 그치만, 그럼 맛있게 해줘야지. 미슐랭이면 미슐랭답게. 나는 내 알 바 아니라며 어깨를 으쓱이고 말았다.





5.

내가 파스타와 스테이크까지 남기자, 웨이트리스가 아니라 점장이 다가왔다. 이 레스토랑 비장의 요리를 두 접시나 남긴 위험한 손님이라고 판단했나보다.

점장 : 음식은 괜찮았어?
나 : 응, 뭐, 그냥.
점장 : 후식 먹을래? 우리 후식 맛있어. 티라미수 알지?


사실 티라미수를 먹어도 됐지만 괜히 태클을 걸고 싶어졌다. 트러플의 맛도 모르는 동양인 손님아, 너 이탈리아 디저트라곤 티라미수밖에 모르지? 느낌의 뜨내기 취급당하는 기분도 들고. 너무 비약인가? 하지만 그런 기분이 드는 걸. 나는 아랫입술을 쭉 내밀고 물었다.

나 : 티라미수가 너희 가게 베스트야?

점장은 내가 그런 질문을 할 줄은 몰랐는지, 잠시 당황해하다가 아니라고 했다.

나 : 그럼 뭐야? 너희 가게의 베스트 디저트.
점장 : 아, 그렇다면 판나코타! 판나코타가 베스트야.
나 : 그럼 그걸로 줘.


점장은 알겠다고 하고 주방으로 달려가다가, 다시 돌아와 내게 물었다.

점장 : 커피 마실래? 카푸치노?

질문에 위화감이 돌았다. 그러고보니 예전에 어딘가에서 이탈리아 사람들은 식후에 우유 들어간 커피는 안 마신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우유가 배불러서 그렇다나. 근데 지금 카푸치노를 권하는 이유는 뭐지? 이건 외국인을 대하는 친절일까, 시험일까. 나는 고개를 갸웃갸웃하다가 점장을 바라보고 말했다.

나 : 세상에. 배가 이렇게 부른데 카푸치노를 마시라고?
점장 : 앗, 미안. 그치.
나 : 에스프레소 줘.


점장은 뭔가 만족한 얼굴로 몸을 돌렸다. 아무래도 시험당한 기분이야.





6.

곧 판나코타와 에스프레소가 나왔다.




판나코타는 제법 맛있었다. 베스트 디저트라고 하는 이유를 알겠더라. 나는 아까 트러플 요리와는 다르게 저돌적인 자세로 판나코타에 돌진했고, 깨끗하게 해치웠다. 생각 같아선 접시에 묻은 소스나 푸딩을 혓바닥으로 핥고 싶었지만 참았다.

마지막 입가심용 에스프레소는... 그냥 훌륭했다. 이 가게에서 제일 맛있게 먹은 건 에스프레소였다.





7.

계산서를 받았다. 트러플 파스타, 트러플 스테이크, 와인, 판나코타, 에스프레소 다 합쳐서 45유로 정도? 이렇게 먹었는데 제법 싸구만. 계산서에 팁이 포함되어 있지 않길래 팁 합쳐서 50유로 놔두고 나왔다. 트러플 요리는 그냥 그랬고 점장의 태도가 아리까리했으나 웨이트리스 언니와 디저트는 좋았으니까.

처음으로 만난 트러플은 그냥 밍숭맹숭했다. 친구는 카톡으로 내게 "그 맛이 나중에 생각날걸~"이라고 했지만, 나는 그럴 일 없다며 3대 진미는 개뿔이라는 말을 했다.

하지만 그 친구의 말이 옳았다. 나는 결국 그 트러플의 은은하면서도 꾸리꾸리한 향이 생각나서 다른 도시에서 또 트러플 요리를 먹었고, 로마에선 트러플+올리브 오일을 사서 아침마다 빵에 축축하게 발라먹을 정도로 즐기게 되었다. 허허. 3대 진미까진 모르겠지만 그냥 진미는 맞나보다. 자꾸 생각나는 걸 보니.

트러플의 맛과 향에 대한 학습을 하고 이 레스토랑에 갔다면 제법 맛있게 먹었을 것 같은데. 쪼끔 아쉽다. 내 주변 사람들의 상상에 의하면 웨이트리스와 점장에게 많이 깨졌을 Da Cecco의 셰프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하며 이번 포스팅을 마친다.





소화시킨다고 설렁설렁 돌아다닌 아씨시의 거리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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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이요 2018/05/07 09:41 # 답글

    어제 (한국)피자집 가서 트러플 뇨끼를 시킬까 말까 고민하다 결국 다른 메뉴로 시켰는데, 이 글을 읽어보니 안시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언젠가는 먹어보고 싶지만 그게 언제가 될지...ㅎㅎㅎ
  • enat 2018/05/09 14:15 #

    앗 그게 7번에서 밝혔듯 처음 먹어보는거라 맛이 없었던 것처럼 느껴진 것 같아요. 여러번 학습한 지금은 좋아합니다!! 아무쪼록 트러플 첫경험은 최대한 저렴하게 경험해보시길 추천합니당!!
  • 잘나가는 꼬마사자 2018/05/07 10:49 # 답글

    트러플 오일을 감자튀김에뿌려 먹으면 그렇게 맛있다고 합니당 에어프라이기 의 감자 + 트러플 오일이 진짜라고..
  • 요엘 2018/05/07 18:09 #

    (다른분 덧글에 조심스럽게 무임승차) ... 이거슨 정말 참트루입니다. truffle fries를 먹다보면 내가 먹는게 정말 감자인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게 해주는 엄청난 조합입니다. 튀긴감자+트러플 오일 = 지져스..
  • enat 2018/05/09 14:16 #

    감자튀김을 잘 안먹기는 한데... 나중에 시도해봐야겠어요. 지금은 트러플 좋아해서 맨밥에 뿌려먹기도 해요 ㅋㅋㅋㅋㅋ
  • 요엘 2018/05/07 18:05 # 답글

    앗 트러플을 별로 안좋아하셨군요 ㅠㅠ 미슐랭 스티커가 저렇게 와라라 붙어있는 집에서 아쉬운 식사라니 조금 슬퍼지는 내용입니다만 그래도 마지막 디저트가 맛있었다니 그나마 다행이에요. 근데 먹다보면 정말 생각나요..!!

    그나저나 저렇게 먹고 45유로 엄청 싼대요!?
  • enat 2018/05/09 14:20 #

    처음 접하는거라 어색했었나봐요 ㅋㅋㅋ 7번에서 밝혔듯 지금은 좋아합니다... 어디서 좀 트러플 비슷한 거라도 먹어본 다음에 저 집에 갔다면 좋았을텐데 아쉬워요 ㅋㅋㅋㅋ 아니면 트러플 파스타가 아니라 까르보나라 이런 걸 시켜먹는건데!

    네 엄청 싸죠... 그래서 이탈리아 다시 가고 싶어요오.... 흑흑
  • Tabipero 2018/05/07 18:08 # 답글

    음식 함부로 남기면 안되는 거였군요. 근데 배불러서 남겼다고 해도 디저트 싹싹 비운거 보면 어차피 들킬거;;
    그냥 셰프가 운이 없었던 걸로(...)
  • enat 2018/05/09 14:21 #

    남길 땐 배불러서 남겼다고 한마디 해달라는 셰프님의 전언이 있었습니당. 근데 뭐 저 땐 배불러서 남긴 게 아니니까요~ ㅋㅋㅋㅋ
    트러플의 맛을 모르는 손님을 대접하느라 애썼던 셰프님... 수고욤...
  • 2018/05/07 20:17 # 삭제 답글

    뭐 푸아그라도 윤리적인거 떠나서도 간 못먹으면 별로일수 있고 캐비어도 생선알이고 그렇습죠
    전 1능이 2표고 3송이라던가 그러던데 능이버섯 처음엔 전혀 못먹겠던걸요
    취존합니다ㅎㅎㅎ
  • enat 2018/05/09 14:26 #

    그러고보니 전 푸아그라도 못먹을 것 같네요... 원래 간을 못먹어서... 캐비어는 먹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알 좋아하거든요!
    덧글보고 능이버섯이 뭔가 하고 검색해봤어요. 무슨 맛인지 궁금하네요 ㅋㅋㅋㅋ
    취존 감사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트러플 좋아합니당! 3대 진미 정도 되면 입맛을 변하게 하나봐요 ㅋㅋㅋ
  • 붕숭아 2018/05/09 04:41 # 답글

    트러플 감자튀김이 그렇게 맛있었어서.. 진짜 트러플 요리가 궁금하네요.ㅠㅠ 저도 사실 한번 먹어봐서 뭐 모르지만요.ㅎㅎ
    윗분 말씀대로 취존입니다! 내입맛엔 안맞을수도 있죠 뭐 ㅎㅎ
  • enat 2018/05/09 14:31 #

    음 일단 음식 전체에서 꾸리꾸리하고 은은한 향이 풍깁니다. 향을 풍부하게 느끼게 하기 위해 간을 약하게 하는진 몰라도 음식이 전반적으로 싱거운 느낌이었어요!
    저땐 저랬는데 지금은 좋아합니다 ㅠㅠㅋㅋㅋ 맨밥에 트러플 오일 비벼서 먹음 맛있어용 ㅋㅋ
    입맛 개조시킨 3대 진미 트러플...
  • LionHeart 2018/05/15 11:04 # 답글

    정말 미슐랭인 것에 비하면 무척 저렴하네요. 게다가 음식을 남기니 배려(체크?)하러 오는 센스까지 있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 enat 2018/05/15 16:36 #

    미슐랭 딱지 붙은 곳은 엄청 비싼 곳인줄만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더라고요! 아쉽게도 당시엔 트러플 맛을 몰라서 그냥그냥 먹었지만 지금 다시 가서 먹으면 엄청 잘 즐기며 먹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담에 꼭 다시 가볼라고요.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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