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9/22 16:52

겨울 유럽여행 (29) 로마 : 영원의 도시에 도착하다 ├ 겨울 유럽여행 (2018)

1.

기회가 된다면 몇 달 정도 살아보고 싶은 도시들이 있다. 도시의 분위기가 유난히 마음에 들었거나, 음식이 유난히 입맛에 맞았거나, 언젠가의 추억이 유난히 아름다웠거나 하는 다양한 이유들 때문이다. 물론 그럴듯한 이유야 하나 만들어 가지면 그만이고, 어쨌든 내겐 살아보고 싶은 도시들이 몇 군데 있는데, 지금 이걸 주절주절 언급하는 이유는 그 도시들 중 하나가 바로 오늘 포스팅할 로마이기 때문이다.

사실 로마는 유럽 여행자들에겐 악명 높은 도시다. 유적이 하도 많아 15년 가까이 걸려 뚫었다는 지하철은 노선도 짧은데다가 더럽기 짝이 없다. 소매치기는 극성인데다가, 바닥은 우둘투둘한 자갈 바닥이라 캐리어 끌기도 참 힘들다. 버스를 타도 울퉁불퉁한 도로 때문에 허리가 아프다. 도시세는 또 왜 그렇게 비싼지.

그러나 그렇게 투덜거리면서도, 여행자들은 결국 로마로 향한다. 혹자는 언어, 제도, 종교, 문화에 걸쳐 서구 문명의 뿌리라 할 수 있는 도시를 두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 혹자는 이탈리아 맛의 총집합이라 할 수 있는 수도의 맛집들에 가기 위해서, 혹자는 콜로세움 앞에서 인증샷을 찍기 위해서, 혹자는 다들 가니까 나도 가야지 하는 단순한 마음에 의해서다. 여하간 저 포로 로마노부터 성 베드로 대성당까지의 유구한 역사와 아득한 시간이 담긴 길을 걷기 위해 각각의 이유 하나씩은 만들어서 꼭 방문하는 도시다.

내 것도 아니면서 괜히 건방진 포즈로 말하고 싶다. 그러니까, 이렇게,

"로마에 가지 않고 어찌 유럽을 여행했다 할 수 있을까!"

그런 도시다, 로마는.


(당연하지만 여행했다고 할 수 있는데 그냥 그런 뽕이 차오르는 도시다)





2.

2,500년 동안의 기나긴 이야기를 골목마다 두서없이 간직한 이 영원하고도 신비한 도시에서, 나는 되도록 오랜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이직 전 내게 주어진 시간은 3주 정도 뿐이었다. (그나마도 지금 회사의 대표님께서 편의를 봐주고 빼주신 시간이었다)

이미 1주는 프라하에서 써버렸고, 1주는 이탈리아 중부를 기웃거리는 데에 써버렸으니, 남은 시간은 단 1주 뿐이었다. 일주일... 로마에서의 일주일이라... 정말인지... 부족하다, 부족해! 그동안 로마로마거리고 살아온 것치곤 너무나 짧은 기간이었다. 그렇게 다시 가고 싶어했는데도 7년이나 걸렸는데, 앞으로 또 언제 올 수 있을지 모르는데 단 1주 뿐이라니!

하지만 그 1주가 내겐 최선이었다. 어쩔 수 없지. 나는 서운해하는 표현에 비해 포기가 빠른 편이고 - "너무해애애애애! 빼애애애액!" (3초 후) "그렇지만 어쩔 수 없지" 가 기본 패턴임 - 그래서 빼애액거리는 나 자신을 잠재운 뒤 어깨 한 번 으쓱이고 포기했다. 트레비 분수에 동전을 던지고 최대한 가까운 시일 내에 다시 로마에 오게 해달라고 기도해야지. 그럼 될 거야.





3.

시간을 거슬러 오르비에토의 마지막 아침으로 돌아간다.

달달하기 짝이 없는 조식을 먹은 뒤, 로마행 열차를 타기 위해 오르비에토 역으로 가기로 했다. 오르비에토 역까진 버스를 타고 가도 되지만, 마지막으로 오르비에토를 구경하고 싶은 마음에 푸니쿨라 정류장까지 슬슬 걷기로 했다. 그러면 자동적으로 오르비에토 마을을 가로지르는 모양새가 되니까.




마을을 가로지르며 구경한 모습들. 소박하고 조용한 아침이다.




마침내 푸니쿨라 정류장에 도착해, 푸니쿨라(산악열차)를 타는 표를 끊고 오르비에토 절벽을 내려갔다.

이른 아침이라 사람이 없을 줄 알았는데, 어떤 커플이 탔다. 혼자 탔다면 내려가는 동안 사방팔방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을텐데, 혼자가 아니라 얌전히 앉아서 내려갔다.

당시의 나는 옷을 두텁게 입고 있었는데, 그런데도 제법 추웠다. 1월이니까 어쩔 수 없지. 추위를 달래려고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었다. 어떤 음악을 들었는지는 기억나질 않는군.




오르비에토 역에서 로마로 가는 레지오날레 열차 시간까지는 몇 십분 남아있었다. 역사 안의 자리는 꽉 차있길래, 카페에 가서 파니니와 쥬스를 사먹었다. 야채가 먹고 싶어서 야채 파니니를 골랐다. 역사 카페라서 별 기대 없었는데 생각보다 맛있었다.




카페에서 사람 구경을 하다가, 시간에 맞춰 오르비에토에서 로마로 가는 레지오날레 열차를 타러 갔다.


Orvieto → Roma Tiburtina


목가적인 풍경을 지나고 귀가 멍멍해지는 터널 몇 개를 지나자 어느새 로마였다.

잘 알려진 테르미니 역이 아니라 티부르티나 역에서 하차했다. 로마에는 기차역이 두 개 있는데, 하나는 테르미니 역이고 또 하나는 티부르티나 역이다. 고속 열차들은 테르미니에 서고, 레지오날레 같은 지역 열차들은 티부르티나 역에 선다. 서울역과 청량리역 (경춘선 복선화 하기 전) 같은 느낌일까... 하여간 그렇다.




테르미니보단 작구나 생각하며 지하철을 타러 이동하고 있는데, 피아노 치는 할아버지를 보았다. 옆의 짐을 보니 여행 중인 것 같았다. 지난번 프라하 중앙역에서도 피아노 치는 언니를 봤었는데. 여행 중에 피아노를 발견하면 아무렇지도 않게 다가가 피아노를 치는 게 흔한 일인가 보다. 그런 여유가 신기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티부르티나에서 숙소가 있는 콜로세오 역까지는 지하철로 여섯 정거장 정도였다. 지난 여행 중에 로마 지하철을 지겹게도 탔던 기억이 있는데 (숙소 싼 거 구한다고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곳 잡아서) 그래서 익숙하게 느껴졌다.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콜로세오 역까지 이동했다.





4.

콜로세오 역에서 나오자마자 느낀 것은, 강렬한 햇볕과 더위였다. 1월의 로마는 완연한 봄날씨였다.

나는 헉헉거리며 외투를 벗었다. 잠시 뒤 그걸로는 부족해서 가디건도 벗었다. 그동안 계속 추위와 싸우며 다녔는데, 도대체가 이 뜨거운 햇살은 뭐지? 1월이라고!

그러나 그늘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계절을 잊지 않은 듯 서늘함을 잔뜩 몰고 왔다. 이 바람은 제법 춥다! 뭐야, 아깐 더웠잖아! 그래서 다시 가디건을 주섬주섬 입었다. 하지만 계속 걷다보니 또 더워져서 가디건을 벗었다. 이런 젠장. 나는 그렇게 양지와 음지의 온도 싸움에 헷갈려하며 숙소까지 걸어갔다.




주소를 따라간 건물엔 거대한 문이 달려있었다. 이 큰 걸 어떻게 여나 걱정했는데 아래쪽에 쪽문이 달려있었다. 다행이군.

문을 열고 들어섰다. 숙소는 이 건물 2층에 있다고 한다. 낡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숙소로 들어서자 인도계 직원이 날 맞이했다. 이 직원, 처음엔 쌀쌀맞구나 생각할 정도로 무뚝뚝하게 행동해서 영 별로였고 그것 때문에 다른 손님들이 화내는 모습도 봤었는데, 계속 보니까 그 어떤 숙소 직원보다도 성실하고 열심인 모습을 보이더라. 그저 무뚝뚝해서 손해보는 성격일 뿐이었다. 성실한 사람은 좋고 무뚝뚝한 사람은 더 좋다. 남들이 진가를 모르는 보물 같은 사람인지라. 뭐 여튼 머무는 동안 어찌어찌해서 친해졌고 나중엔 기분 좋게 헤어졌다.




예약한 숙소는 카이사르 하우스 레지덴츠 로마네였다.

Via Cavour 310, 리오네 몬티, 00184 로마, 이탈리아, https://goo.gl/maps/3c72fEGXAMD2

우선 위치가 최고였다. 위에서 콜로세오 역에서 걸어왔다는 묘사를 보면 아시다시피, 이 숙소는 콜로세움 근처다. 정확히는 콜로세움과 베네치아 광장의 중간이었고, 그래서 밤마다 야경보기 참 좋았다.

방은 거의 오르비에토에서 썼던 그 넓직한 방 수준으로 컸다. 객실 시설도 괜찮았으며 침대도 아늑했다. 화장실도 넓직했고 어메니티도 충분했다. 아쉽게도 샤워실만 있었다. 여기에 베네치아 호텔에서 봤던 그 작은 욕조 하나만 있으면 완벽했을텐데. 목욕의 도시에서 목욕을 하지 못해 아쉬울 따름이었다.




내가 처음 객실을 들어섰을 때의 시간은 점심 즈음이었다. 겨울 정오의 햇살이 유리창 너머로 낮게 들어오고, 환기를 위해 살짝 열어놓은 창문으로 살랑거리는 바람이 불어오고, 그 바람에 맞춰 하얀 커텐이 나폴거렸다... 황색을 기반으로 하여 백색과 적색으로 꾸며놓은 이 깔끔한 방은... 그야말로 완벽했다! 고급 호텔 부럽지 않았다!

직원 : 어때, 마음에 들어? 방 상태 괜찮아?
나 : ......
직원 : 저기? 괜찮아?
나 : 뭐어어어!? 괜찮냐고? 이건 괜찮은게 아니라 완벽한 거야! 뭐야, 이 방! 넘나 좋아! 넘나 좋다고!
직원 : 흠흠. 다행이군. 그럼 여기 열쇠.


나는 방을 보여줬던 직원이 나가거나 말거나 신경쓰지 않은 채 방에서 방방 뛰어다녔다. 너무 좋아, 내 방 너무 좋다고!




여긴 화장실.




여긴 복도.




여긴 조식을 먹을 수 있는 작은 응접실.




이건 숙소로 올라갈 수 있는 낡은 엘리베이터.

로마에서 지내는 동안 무지무지 편하게 잘 지내게 해준 고마운 카이사르 하우스. 다음 번에 로마에 갈 때에도 이곳에서 또 머물 의향이 있다. 언제 또 갈 수 있을지가 문제지만!





5.

샤워를 하고, 기분 좋게 나갈 준비를 했다. 원래는 자다가 나가려고 했는데, 날씨가 너무 좋아서 가만히 있질 못하겠더라. 그래서 베네치아에서 산 가디건 하나를 걸치고 밖으로 나갔다.

숙소에서 나가자마자 저 고대의 유적들이 펼쳐졌다. 숙소 주변에서의 가벼운 산책은 곧 로마 시대로의 시간 여행이었다. 이 도시의 별칭인 '영원의 도시'란 말이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풍경이었다. 어디 보자, 저곳은 네르바 포룸, 저곳은 카이사르 포룸, 아우구스투스 포룸도 있고, 저기 트라야누스 시장도 있다!

심지어 날씨가, 날씨가 너무 좋았다! 1월이라고? 이게 1월의 날씨야? 겨울도, 봄도, 가을도 아닌 것이, 뭐라고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 그냥 걷기 좋은 계절이었다.

나는 다시금 '영원의 도시'라는 이명을 떠올리며, 아마 로마라는 도시는 여행자들에게 영원히 사랑받을 거라고, 계절을 타지 않고 유행을 타지 않는 스테디 셀러 같이 사랑받을 거라고, 그래서 영원히 '영원의 도시'라 불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6.

베네치아 광장까지 왔을 때, 갑자기 젤라또에 대한 극심한 욕구를 느꼈다.

사실 7년 전 나는 이 베네치아 광장 근처에서, 젤라또 주문을 잘못하는 바람에 겁나 비싸고 큼직한 레몬 젤라또(난 시큼한 걸 별로 안좋아한다! 그런데 레몬맛이라니)를 울면서 먹은 적이 있다. 내가 말을 잘못한 거라서 이건 뭐 불평할 수도 없고 그냥 슬퍼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2018년 로마에 다시 온 나, 조금 더 어른이 된 나는, 새하얀 베네치아 광장을 보며 생각했던 것이다.

젤라또다.

겁나 맛있는 젤라또로 영어 못해서 주문 하나 제대로 못 넣었던 과거의 나를 위로해야겠다.


젤라또를 먹어야겠다!





구글맵으로 젤라또를 검색했다. 마침 베네치아 광장 근처에 평점이 높은 젤라또 가게가 있었다. 이름은 Vale Gelato(Piazza del Gesù, 48B, 00186 Roma RM, 이탈리아)라고 했다. 두번 생각할 것도 없이 이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쨘. 이곳이 Vale Gelato.

무슨 맛을 먹을까 고민하다가, 사람이 없는 틈을 타서 직원에게 추천해달라고 했다. 그러자 직원은 토로네 맛을 추천해줬다. 으이잉. 토로네라니. 토로네에는 슬픈 추억이 있지... (http://enatubosi.egloos.com/1935842)

나는 조금 떨떠름한 얼굴로 하나 더 추천해달라고 했고, 직원은 피스타치오를 두번째로 추천했다. 피스타치오는 좋아하는 맛이긴 하지만... 내가 영 신통치 않은 표정을 짓자, 직원이 맛을 보라며 토로네와 피스타치오를 한 입씩 퍼줬다.

나 : 흐응...
직원 : 어때?
나 : ...이, 이 맛은!?


둘 다 최고였다! 기억이 많이 희미해져서 자세한 묘사를 하기가 어려워 일기장을 펴봤는데, 일기장에는 "존맛 핵맛 환상"이라고 적혀있었다. 음... 그렇다고 한다! 하여간 Vale Gelato의 토로네와 피스타치오 맛은 존맛 핵맛 환상이다!




뚀롱. 직원의 추천 덕분에 행복한 젤라또를 손에 얻었다.




과거의 나! 충분한 위로가 됐지? 그딴 맛없는 거대한 레몬맛 젤라또 버려! 돈 때문에 아까워서 못 버리겠지만 그거 먹고 속 엄청 쓰렸잖아! 그냥 그거 버려버려! 7년 뒤의 너는 짱 맛있는 토로네&피스타치오 젤라또를 먹고 있다고!

이거 진짜 짱 맛있어!

존맛 핵맛 환상이야!





7.

젤라또를 냠냠거리며 걷다보니 갑자기 커피가 땡긴다. 그러고보니 오늘 하루종일 커피 한 잔 마시지 못했군. 판테온 근처에 맛있는 커피집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럼 판테온으로 가볼까.

슬슬 걸었더니 금새 판테온이었다. 판테온부터 구경하고 가야지!




어엌! 역시나 사람이 많다!




오잉? 문 닫혔네? 가서 안내문을 읽어보니 무슨무슨 날이라고 오후 1시까지만 연단다. 1시는 이미 지났는걸.




별 수 없군. 다른 날에 와야지.

나는 다른 여행자들처럼 판테온을 둘러싼 낮은 돌담에 앉았다. 세월만큼 매끄러운 돌은 판테온의 그림자에 뒤덮혀 서늘했고, 그 덕분에 걷느라 올랐던 열이 식었다. 기분이 좋았다.

한동안 그러고 앉아 이 생각, 저 생각 하다가 일어섰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여기 셀카 잘 나오네?"라던가 "모든 신들을 위한 신전이라더니 신보다도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네"라던가 "머무는 동안 비가 내리면 판테온 와서 천장 구멍 구경해야지"라던가 하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늘 사람이 많은 판테온. 로마에서는 많은 사람들조차 배경이 된다.

포인트에 서서 사진을 찍은 뒤 꿈뻑거리며 둘러보다가 지나가려는데, 어떤 금발의 여행자가 자신의 탭을 내밀며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주변을 둘러봤더니 다들 둘씩 셋씩 있었고 혼자인 사람은 나뿐이었다. 아항. 그래서 나에게. 나는 나처럼 혼자인 그녀를 십분 이해하는 마음으로 탭을 받아들고 사진을 찍어줬다.

금발의 여행자 : 너도 찍어줄까?
나 : 나? 음... 글쎄...
금발의 여행자 : 찍어줄게!
나 : 아, 고마워.


나는 서양인들에게 카메라를 잘 맡기지 않는다. 동양인들과는 사진 찍는 관점이 달라서... 그래서 별 기대없이 카메라를 넘겨주고 포즈를 잡았다. 내 포즈가 역동적이었는지 금발의 여행자가 사진을 찍다말고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내 얼굴이 클로즈업 되거나 사정없이 흔들려 초점이 나간 사진을 받아들더라도 놀라지 않기로 했다.

금발의 여행자 : 확인해 봐!
나 : 아냐. 잘 나왔을 거야. 고마워!
금발의 여행자 : 나도 고마워. 그럼 안녕!


나는 후후 웃으며 사진을 확인했다. 마음껏 웃을 준비를 하고.






겁나 잘 찍어줬잖아!


아니 진짜 놀랐다. 뭐 이렇게 신경써서... 잘 찍어준... 어디, 어디갔어! 이건 감사인사를 해야 돼! 여긴 사람이 많아서 이렇게 잘 찍어주기 힘든 스팟이란 말야! 어디로 사라진 거야, 금발의 여행자!

나는 그녀를 찾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그녀는 감쪽같이 사라진 뒤였다.

...혹시 그녀는 서양인들에 대한 편견을 가진 내게 깨달음을 주기 위해 나타난 사진의 여신이 아니었을까? 모든 신들의 신전인 판테온에서 머물다가 우매한 여행자에게 가르침을 주기 위해 잠시 현신한 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나는 판테온 방향을 바라보며 사진의 여신에게 다짐했다. 앞으로 다시는 서양인들의 카메라를 비웃지 않겠다고. 음음.





8.

카메라를 집어넣고, 본래의 목적인 커피를 마시러 가기로 했다.

판테온 근처에는 타짜도르, 산 에우스타키오 등 맛난 커피집이 많다고 한다. 타짜도르, 산 에우스타키오... 로마에 관련된 여행 서적을 읽으면 한 번 쯤은 꼭 나오는 카페 이름들이었다.

그 옛날 로마에 방문했을 땐 커피맛도 모르는 애송이였지만, 쿠바에 다녀온 이후 나는 커피의 노예가 되어버렸다. 이미 아침 커피 없이는 살 수 없는 어른이 되어버렸다고. 커피, 카페인, CAFFEINE이 나를 부른다! 어디, 로마 3대 커피집이라고 불리는 카페에서 커피맛 좀 볼까? 얼마나 대단하고 얼마나 향긋할지 내가 평가해주겠어! 가자, 카페로!






사람 왤케 많아!


나는 도떼기 시장 같은 카페 내부를 바라보다가, 멍하니 생각했다.

지금 꼭 그 맛을 볼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커피맛이 거기서 거기지, 뭐.

...다음에 사람 없을 때 오자.





다시 판테온으로 돌아가 내 표정 같은 분수를 구경하다가 몸을 일으켰다.




로마의 저녁에서 계속!






덧글

  • 요엘 2018/09/22 17:01 # 답글

    사진을 잘 찍어준 서양 여행객이라니.. 여행의 기적이 여기서!! 저 이거 전에 올리셨던 포스팅에서 봣던거같은데 아닌가..요..? 긁적. 이글 보고 이후에 서양분들한테 찍어달라고 도전햇다가 남은 건 상처뿐. 한국인을 찾아라..
  • enat 2018/09/22 19:49 #

    네 맞아요!! 유럽 다녀온지 얼마 안되서 총정리? 느낌으로 쭉 쓴 포스팅이 있었는데 그 때 한번 언급했던 이야기였어요 ㅋㅋㅋ 누가 기억할까 했는데 기억력이 좋으시군요!!! 그리고 똥손 분들만 만난 것에 대해 묵념...
  • 라비안로즈 2018/09/22 18:37 # 답글

    분수표정이 ㅋㅎㅎㅎㅎ 완전 웃기네요. 로마의 1월은 따뜻하군요(적어둔다). 나중에 애들하고 갈 수 있을때 ... 기억해보겠습니다.
  • enat 2018/09/22 19:50 #

    1월 로마의 맑은 한낮은 따뜻해요!! 그래서 가디건만 입고 다녔습니당!! 그러나 아침 저녁, 흐린날, 비오는날은 패딩 입고 다녔어요 ㅋㅋㅋ 요새는 워낙 날씨가 오락가락하는지라 혹여 1월에 로마에 가게 되신다면 두꺼운 옷을 꼭 챙겨가세요!
  • 에스j 2018/09/22 19:10 # 답글

    와아, 호텔 방이 정말 끝내주게 운치있었네요. :) 언제나 글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즐거운 한가위 연휴보내시길!
  • enat 2018/09/22 19:51 #

    호텔 방 덕분에 로마에서의 일정이 몹시 행복했어요 ㅠㅠbb
    글 재밌게 봐주셔서 늘 감사드립니다. 추석 잘 보내세요!!
  • Tabipero 2018/09/22 20:49 # 답글

    판테온 사진을 모바일로 보니까 판테온 앞에서 연설하는 철학자 같네요! 어제 알쓸신잡 아테네편을 봐서 그럴지 모르겠지만...

    저도 이태리를 또 간다면 젤라또와 커피는 꼭 다시 마셔보려고요! 어렸을 때는 커피를 그닥 안 좋아했지만 지금은 괜찮은 커피와 아닌 커피 정도는 구분할 수 있으니까요 ㅋㅋㅋ 크로아티아에서는 휴게소 커피도 존맛이던데 이태리는 나았으면 나았지 못하지는 않겠죠?

    ps) 추석 잘 보내세요~
  • enat 2018/09/24 13:07 #

    알쓸신잡 아테네편!!! 알쓸신잡 새시즌 나온거 이 덧글로 알았어요 집에가면 바로 다시보기 해야징 요호호 감사합니다 넙죽
    제 포즈가 한 철학자 하죠! 철학의 철자도 모른다는게 함정이지만요!
    해안가카페전문블로거 Tabipero님께서 이탈리아에 가시면 또 뷰좋고 멋진 분위기의 숨어있는 카페를 찾아내실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있네요! Tabipero님의 이탈리아행을 응원합니다!!! ㅋㅋㅋ
    즐거운 한가위 되시고요!!
    (지금 사천진 해변에 와있습니다 카페 사천에서 포스팅을 마치고 나왔는데 여기 올때마다 늘 감사한 마음이 있습니다 엉엉 너무 좋아요 사천진 ㅠ)
  • Tabipero 2018/09/24 22:14 #

    ㅋㅋ 전 그저께 갔다왔죠~ 강릉에는 연고가 없지만 뭔가 명절때마다의 항례 행사가 되었네요 ㅎㅎ 그래도 KTX가 뚫려서 교통정체 걱정 안 해도 되는 건 좋더군요.
  • enat 2018/09/25 11:21 #

    저도 ktx 타고 왔습니다~ ktx 생기고 접근성 좋아져서 넘나 좋아요 ㅠㅠ
    아직도 사천진입니다 ㅋㅋㅋ 추석 연휴 내내 사천진에 머물렀네요... 내일까지 있는데 바다 너무 예뻐요...!! ㅠㅠ 오늘은 특히 날씨가 좋아서 (어제는 흐렸어요ㅠ) 무슨 화보 사진첩에 들어와있는 기분이에요!! ㅠㅠ
  • 2018/09/23 02:1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8/09/24 13:11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잘나가는 꼬마사자 2018/09/23 15:26 # 답글

    호텔 진짜 멋지네요:) 저 사진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로마의 여신같은 자태 oh enat oh 이런 느낌 ㅋㅋㅋㅋㅋㅋ 타짜도로 커피 맛있어용 원두도 꼭 사오기도 하고... 토로네 젤라또는 못먹어봤는데 맛있군요?ㅠㅠ 전 젤라또 늘 고민하다가 그냥 맨날 스트라챠뗄라......;-; 인생은 도전이라는데 서른되니까 이제 취향의 고정때문에 도전하기도 쉽지않은 것 같아요.
  • enat 2018/09/24 14:45 #

    역시 저에 관한 것이라면 전부 다 기억하고 계신 사자님...! 절 많이 아끼시는 것 잘압니다 ㅋㅋㅋㅋㅋㅋ
    나중에 산에스투.. 머였지 하여간 거긴 갔는데 타짜도르는 결국 못갔어요 ㅋㅋㅋ 사람없을때를 포착했는데 그날 카페인을 넘나 과량섭취해서 타짜도르까지 가면 죽을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포기... 담에 꼭 가봐야죠 ㅋㅋㅋ
    스트로챠뗄라?? 가 뭔지 검색해봤어요 오 한번도 안먹어본 맛인데 담엔 저거 도전해볼라구요! 저는 먹는 걸 별로 안중요하게 여기고 뚜렷한 취향도 없는 사람이라 먹는 거 가지고 많은 도전을 합니다 ㅋㅋㅋ 벋뜨 한끼한끼가 소중한 분들껜 취향과 도전의 갈림길에서 늘 고민하시겠죠! 그만큼 식샤가 소중하신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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