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1/11 20:12

다낭 주말여행 (3) 호이안에 다녀오다 ├ 다낭 주말여행 (2018)

1.

다낭의 많은 호텔과 리조트가 그러하듯 Royal Lotus 호텔 역시 다낭 ↔ 호이안 버스를 운영하고 있었다. 버스는 오후 3시에 호이안에 갔다가 밤 9시에 다낭으로 돌아오는 스케줄이었다. 가격은 왕복 200,000동, 그러니까 한화로 1만원 정도.

혼자 택시나 그랩을 이용하면 훨씬 더 많이 내야해서, 호텔의 버스를 이용해보기로 했다. 호텔에서 출발하고 호텔까지 데려다주니, 편하기도 하고 안전하기도 한 것 같다.

미케비치에서 허겁지겁 돌아온 나는, 호텔 직원인 칸의 안내에 따라 아침에 미리 예약해둔 호텔 버스에 탑승했다. 토요일 저녁이라 꽉꽉 채워서 갈 줄 알았더니 탑승한 승객은 한 자리 수였다. 하긴, 이 호텔은 한국 여행사 단체 손님들이 많이 묵는 호텔이라니까, 보통은 여행사 버스를 이용해서 이동하겠다.

호이안으로 가는 호텔 버스의 에어컨은 빵빵했다. 근데 좀 지나치게 빵빵했다. 나시 원피스를 입은 나는, 오들오들 떨며 에어컨 바람을 피해 몸을 배배 꼬다가, 그대로 잠들었다. 잠든건지, 추워서 기절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버스가 살짝 덜컹이는 바람에 잠에서 깨어나 흐리멍텅한 눈으로 창밖을 바라봤다. 창밖으론 세계 쌀 생산량의 5위 국가다운 풍경, 그러니까 논이 펼쳐져 있었다. 이기작이 가능한 기후이니 10월에도 이런 여름날의 논을 구경할 수 있나보다.

전형적인 시골 풍경에 잠시 정신이 팔려 멍하니 바라봤다. 연두빛 논 일색인 풍경은 아까 미케비치에서 봤던 푸른 회색빛 바다와 묘하게 닮아있었다. 채도가 낮은, 흐릿한 파스텔톤 느낌이랄까...





2.

창밖의 한적한 논은 금새 작은 관광 도시로 바뀌었고, 버스는 호이안 올드타운 주차장에 멈춰섰다.

운전기사는 자신의 명함을 나눠주며 밤 9시에 이곳으로 데리러오겠다고 했다. 그러고보니 이 직원이 없으면 숙소로 못돌아가는 거잖아. 잘 보일 필요가 있군. 나는 코를 찡긋하며 웃었고 직원도 마주 웃으며 즐거운 여행이 되라 했다. 직원의 이름은 닝기아라고 했다.





호이안은 다낭보다 차도가 좁아 정신이 없었고, 그 때문에 오토바이가 상대적으로 많아보였다. 내가 잠시 하노이로 돌아왔나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호이안의 건물들은 하노이와 비교한 게 미안할 정도로 훨씬 깔끔했고, 거리도 훨씬 깨끗했다. 그러면서도 전통적인 양식과 우아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것은 베트남의 이미지를 떠올릴 때 생각나는, 가장 전형적이고 긍정적인 모습이었고, 그래서 또 어떻게 보면 인위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다 싶은 모습이었다.

초보 여행자도 돌아다니기 쉬운 관광 소도시, 그러니까 우리나라로 따지면 전주 한옥마을 느낌일까? 하여간 나중에 부모님을 모시고 와도 괜찮겠단 생각을 했다.





3.

아까 에어컨을 많이 쐬서 그런지 따끈한 국물이 땡겼다. 어디 포 파는 곳 없나? 베트남이니까 널려있는게 쌀국수 집이겠지만, 늘 그렇듯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 나는 두리번거리며 국물 파는 집을 찾았다.




그러다가 Bánh Canh Bà Quýt (https://goo.gl/maps/oy9P7hcm3tT2) 라고 하는 가게를 발견했다. 공영 주차장 근방, 유명한 반미집 옆에 있는 허름한 국수집이었다.




가게 앞에서는 육수를 우리고 있었다.




우려낸 육수를 다른 통에 옮겨담아 또 우리고 그 육수를 또 다른 통에 옮겨담아 또또 우리는, 육수에 정성을 쏟는 곳이었다. 국물 마스터로써 이 가게를 못봤으면 못봤지, 본 이상 그냥 지나갈 수는 없었다. 이런 곳에선 한번 먹어줘야된다.

메뉴는 단 하나, 국수. 한그릇 달라고 부탁한 뒤 자리에 앉았다. 가격은 3만동 (한화 1500원).




주문하자마자 바로 나왔다. 그릇에 면이랑 야채 올리고 육수를 부어 내는 곳이니, 음식이 금방 완성되는 건 당연했다.

우선 국물부터 마셔봤는데, 역시나 뜨끈하고 시원했다. 아까 버스에서 에어컨 때문에 몸에 잠시 들었던 한기가 싹 녹아 없어지는 마성의 국물이었다. 과연, 가게 입구에서 세 번이나 우려낸 보람이 있는 국물이로다.




근데 그 정성어린 국물보다 맛있는 게 있었으니 바로 면이었다. 면이 왤케 오동통하고 쫀득한지! 우동면의 하얀 통통함과 쌀국수면의 투명한 쫀득함이 합쳐진 면이었다.

나는 면요리의 면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보통 내가 면요리를 먹는 이유는 국물 때문이다) 이 국수 한정, 국물보다 면이 훨씬 맛있었다. 아까 아기고양이와 함께 점심을 배부르게 먹었음에도 깨끗하게 비웠다.





4.

뜨끈한 국물 요리 다음엔 시원한 과일 쥬스지. 나는 그 국수집의 옆에 있던 n Juice (https://goo.gl/maps/8QCrEuAYvn72) 로 이동하여 쥬스를 주문했다.




주인 : 어서와! 과일쥬스. 맛있어. 바나나? 망고? 수박?
나 : 우움, 뭘 먹을까.


메뉴엔 다양한 과일 쥬스들이 가득했으나, 내 시선은 아보카도에서 멈췄다. 하노이에서 먹었던 아보카도 쥬스는 짱맛이었는데. 그래, 아보카도를 먹자!

나 : 아보카도 쥬스를 먹을거야!
주인 : 오, 안돼...





주인 : 이거 봐, 얘가 아보카도인데, 아직 안익어서...
나 : 익은 건 없어?


없다고 했다. 나는 입을 삐죽이며 그럼 익은 아보카도를 가지고 있는 쥬스집에 가서 사먹어야겠다 생각하고 몸을 돌렸다. 그러자 주인이 세상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주인 : 어디 가! 쥬스 다른 것도 맛있는데....
나 : 내일 아보카도 익으면 올게. 안녕!
주인 : 아, 앙대! 우리 다른 쥬스 맛있어, 맛있어!


주인 아주머니가 거의 울먹거리며 내 앞에서 앙탈을 부렸다. 나는 아주머니의 뜻하지 않은 칭얼거림에 당황했다.

나 : 하지만, 하지만 너희는 익은 아보카도가 없잖아.
주인 : 지금은 제철이 아니란 말야. 아보카도 구하기가 어렵다고.


아항. 철을 타는 과일이었구나. 나는 새롭게 알게 된 정보가 고마워서 그럼 다른 음료라도 사먹겠다고 했고, 아주머니는 환하게 웃으며 기뻐했다.




내가 고른 건 용과+망고 스무디였다. 가격은 4만 5천동 (한화 2200원).

스무디는 식용 색소가 왕창 들어간 것 같은 무지막지한 핫핑크 색이었지만, 순전히 용과 때문에 그런거고 맛은 무지 건강했다. 솔직히 내 입맛은 아니었는데 (난 과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냥 비타민이 풍부하겠거니, 하고 열심히 마셨다.





5.

쥬스를 쪽쪽 빨며 걷고 있는데 어떤 만삭인 여자가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뭔가 하고 봤더니 마사지 집이었다. 간판이 원래 없는 건지, 있는데 내가 못 본건지, 하여간 그 마사지 가게 이름은 잘 모르겠다. 구글로 찾아봐도 잘 안나오네.





가게엔 손님이 거의 없었고, 정적만 가득했다. 으음, 이런 고요함 좋아. 배부르게 먹고 마셨더니 조용한 곳에 앉아서 쉬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졌다. 그래서 가게에 들어가 메뉴를 봤다.

메뉴엔 발부터 전신까지 다양한 마사지들이 있었다. 나 아직 피곤하지 않아서 마사지는 별로 받고 싶지 않은데... 마사지 잘못 받으면 괜히 더 피곤해질 수도 있고 말야. 이 항목, 저 항목 꼼꼼하게 읽던 나는, 젤 네일에서 눈이 멈췄다.

호옹... 네일이나 한 번 받아볼까? 외국에서 네일 받아본 적 없는데. 그러고보니 한국에서도 받아본 적이 없군. 옛날에 아주 잠깐 젤 네일 개발한다는 데서 일했던 적은 있지만... 그게 젤 네일과 나와의 유일한 접점이다.

아마도 그 접점을 늘릴 시간이 온 것 같다.

내가 젤 네일을 가리키자, 일하는 직원들 모두가 크게 동요하는 것이 보였다. 뭐지? 내가 골라선 안 될 메뉴를 골랐나? 그치만 메뉴 한 켠에 이토록 당당하게 써있는데 어째서...? 뭔가 꺼림직해진 나는, 다른 걸로 바꾸겠다 말하려고 했지만, 나보다 직원들이 한발 빨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분주하게 움직이는 직원들에 의해 정가운데 자리로 모셔졌고, 그 때부터 날이 어두워져 거리에 전등이 켜질 때까지 그곳에 앉아있어야 했다.




* 호이안에서 젤 네일 받은 이야기 *

- 네일리스트가 오는데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아마 이 마사지 가게엔 젤 네일 담당이 없고, 이렇게 가끔씩 요청하는 사람이 오면 자신들만의 연락망을 통해 시간이 비는 네일리스트를 모셔오는 것 같았다. 아마 그래서 아까 당황했는 모양이지. 나는 괜찮다고, 천천히 해도 된다고 했다.

- 내 양쪽에 따뜻한 물이 담긴 그릇 두 개가 놓여졌다. 손을 담그고 있으란다. 얌전히 담그고 있었지만 손목이 꺾여 불편했다. 가뜩이나 마우스질 때문에 쇠약한 내 손목이... 그릇의 모양이나 위치 등이 영 별로군. 아무래도 '네일 전문점'이 아니라 '마사지집에서 하고 있는 네일'을 받으려니 이런 디테일이 부족했다.

- 어떤 초짜 직원은 내가 발마사지를 하는 줄 알고 발 담그는 물도 가져왔다. 그래서 따뜻한 물에 발도 씻었다. 나중에 내가 발마사지를 하는 게 아니라는 게 밝혀지고나서 그 초짜 직원은 다른 고참 직원한테 혼났다. 미안해라.

- 손을 물에 담그고 있는데 맞은편에 3살 정도로 보이는 아이와 서양인 부부가 손님으로 들어왔다. 아이는 엎어져서 잤고, 서양인 부부는 발마사지를 받았다. 표정이 신통치 않았던 걸로 보아하니 발마사지는 그저 그랬던 것 같다. 마사지가 끝나고 만삭인 직원과 아이 엄마는 육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 한참이 지나서야 네일리스트가 도착했다. 네일리스트는 내 앞의 마사지 의자에 쭈그려 앉아 내 손톱을 다듬어줬다. 네일은 테이블에 앉아야 하는데, 나는 무슨 황제가 앉는 듯한 등받이 의자에 앉아있으니... 덕분에 손톱 관리를 받고 있는 겁나 거만하고 잔인한 폭군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 손톱 정리하는데 한참 걸렸다. 무슨 크림을 덕지덕지 바르더니, 큐티클 라인 정리하고, 손톱 표면을 전동드릴로 정리했다. 손톱용 전동드릴은 처음 보는 거라 (그런 게 세상에 존재하는지도 몰랐다) 신기했다.

- 손톱에 바를 색을 고르라고 하길래 절대 내가 하지도 않고 할 일도 없을 것 같은 색을 골랐다. 버건디보다 조금 밝은, 어둑하고 진한 붉은 색이었다.

- 네일리스트가 쭈그려 앉아서 작업하느라 겁나 고생한 것 같아 팁을 많이 줬다. 그러다가 거북목 오겠다 싶어서 미안했다. 또 내 옆에서 다른 사람 마사지하면서 나한테 더 신경을 많이 써준, 어떤 눈치 빠르고 기민한 여자 직원이 있었는데, 이 분께도 감사해서 겸사겸사 드렸다. 여자 직원은 극구 사양하다가 고맙다고 받았다.




요렇게 양손 바르는데 216,000동이었다. 한화로 1만원 조금 넘나?

사실 나는 내가 이 치명치명한 붉은 색을 바르면 웃길 거라고 생각해서 (평소 이미지랑 너무 안맞아서) 고른 거였는데, 나중에 한국 돌아와서 예쁘다 여성스럽다 앞으로 그 색 위주로 발라라 등등의 소리를 듣게 되어 당혹스러웠다. 아, 물론 처음에만 당혹스러웠고, 그 이후엔 좀 나 스스로 도취되는 게 있었다. 혼자 거울 앞에 앉아 손으로 이 포즈, 저 포즈 잡다가 엄마한테 이상한 눈초리를 받기도 했다.

하여간 젤 네일... 매력있네... 나중에 요 붉은 거 다 떨어지면 한국에서도 한 번 가봐야겠다. 3주가 지난 지금까지도 아직 건재해서 내버려두고 있지만.





6.

젤 네일을 받고 나니 벌써 캄캄한 저녁이었다.

호이안의 진면목은 밤에 있다는데, 시간을 점프한 것 같아 잘됐다 싶어졌다.





거리 곳곳엔 조명 장식으로 꾸민 가게들이 많았다.

나는 호이안 올드타운 중심 거리에 비하면 별 것도 아닌 이 불빛들에 벌써부터 감격해하며 길을 걸었다.




걷다가 커피 콩 파는 가게 (Hoa Champa shop, https://goo.gl/maps/49W2hW6jb882) 를 발견하고 들렀다.

예전에 하노이에 갔을 때 커피 콩을 살까 말까 고민하다 안사고 나중에 후회했는데, 이번엔 조금이라도 사봐야겠다.




내 앞의 손님은 가게 주인에게 이것저것 꼬치꼬치 캐묻다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고개를 돌려 나간 참이었다. 가게 주인은 허탈하지만 늘상 있는 일이라는 듯 표정을 지어보이곤, 다음 손님인 내게 다가왔다. 그녀는 내게 커피를 좋아하냐고 물었고, 나는 물론이라고 했다.

주인 : 평소에 어떤 커피를 주로 마셔? 아메리카노?
나 : 난 너희 드립 커피가 좋더라. 베트남 커피가 진하잖아. 오늘 아침에도 어떤 망고집에서 아이스 커피를 마셨는데...
주인 : 어쩜! 커피 맛을 좀 아는구나! 아메리카노는 나약한(?) 서양인들이 먹는 거지.


아무래도 아메리카노 어쩌구 묻는 건 주인 나름의 시험 같은 거였나보다. 나는 뭐... 아메리카노든 에스프레소든 드립이든 가리진 않는데... 어쨌든 호의를 샀으니 그냥 그런 걸로 했다. 주인은 조국의 진한 커피에 반한 여행자를 반기며, 보다 친절하고 상냥하게 자기 가게에서 파는 제품을 소개했다. 그 중 내가 고른 건 쿨리 홀빈이었다.

쿨리는 피베리를 볶은 커피다. 보통의 커피 체리 안에는 두 개의 커피콩이 들어있으나, 간혹 한 개의 커피콩만 들어있는 경우가 있는데 그걸 바로 피베리라고 부른다. 두 개의 커피콩으로 나눠질 성분이 한 개의 커피콩 안에 들어있으니 진하고 세다고 한다.

주인 : 쿨리는 네가 먹던 커피보다 진하고 독특할 거야. 좋은 경험이 될 거야!
나 : 좋아! 그걸로 좀 줘. 아 그렇지, 나 그라인더가 없거든. 여기서 하나 살 수 있을까?





주인은 굳이 관광지에서 그라인더를 사는 이국의 여행자에게 신이 난 듯, 싱글벙글한 얼굴로 그라인더를 소개해줬다. 37만동, 한화로 18000원 정도일까. 베트남 물가에 비하면 무지 비싼 것 같은데 외관도 예쁘고 관광지니까 그러려니 하고 구입했다.

쿨리는 얼마였더라... 영수증을 잃어버려서 기억이 잘 안남. 기억상으론 250g당 6000원 정도였던 것 같다.

쿨리 커피콩과 그라인더를 봉투에 담고, 주인과 자잘한 수다를 떨다가 밖으로 나왔다.





7.

호이안 야시장 쪽으로 가기 위해 올드타운 중심부로 걸었다.




이해를 돕기 위한 대략적인 지도 첨부.






이곳저곳에서 기념품 구경한다고 밍기적거리는 새에, 호이안에는 완전한 밤이 찾아왔다.

그러나 어둠이 내려앉을 새도 없이, 거리는 가게의 환한 불빛과 인도의 은은한 조명으로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덕분에 어둠은 거리에서 밀려나 뒷골목이나 건물과 건물의 사이, 조명이 닿지 않는 구석 등에 쭈그려 자리잡을 수밖에 없었다.






가끔씩 대표님께서 디자인 팀에 "심플하지만 화려하게 해주세요"라는 설명을 할 때가 있어서 지나가면서 웃을 때가 있는데 (물론 실제로 듣는 디자이너들은 죽을 맛일 거다), 지금 이곳 호이안의 밤이 딱 그러했다. 저 소박하고 단조로운 모양의 은은한 전등불은 거리 위를 화려하게 장식했고, 그 빛의 총합은 너무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았다. 그러니까 사람들을 홀리기에 딱 적절했다.

그 홀린 사람들에게 홀린 정도의 순위를 매겨 나열한다면 나는 아마 순위권이었을 것이다. 솔직히 내가 꿈을 꾸고 있나 싶은 생각까지 했으니.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왔던 그 온천 거리 같기도 했다. 거긴 대만의 지우펀이 모티브 배경이었다는데, 지우펀보다도 여기 호이안이 더 그것과 비슷한 느낌을 주는 것 같았다. 환상적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의...

나중에 다시 한 번 오고 싶은 거리다. 그 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였으면 좋겠는걸.




홀린 채 걷다보니 강가였다. 강가에서 다리를 건너면 호이안 야시장으로 갈 수 있다.

강가엔 배를 태워주겠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언니, 배, 배 타요, 이뻐요, 언니." 아무리 생각해도 당신이 나보다 나이가 많은 것 같은데 자꾸 언니라고 하는 사람들이 다가와 배를 타라고 종용했다. 처음엔 웃으며 거절했으나, 다섯발자국에 한 번씩 그 소리를 들으니 귀찮아졌다. 그래서 언젠가부턴 "탔어요, 응, 나 탔어."로 대충 대꾸하고 도망갔다.

저렇게 "타요, 타!" 하지 않으면 탈 생각이 들었을텐데, 계속 타라니까 타기 싫어지는 게 사람 심보다. 호이안의 배타요 호객꾼들은 한데 머리를 모아 전략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




호이안 강가에서 배타기와 호각을 이루는 체험 중 하나인 소원등 띄우기 체험.

가기 전에 얘기만 듣고 로맨틱해서 해볼까 했지만 막상 가보니 정신도 없고 진도 빠져서 안했다. 소원은 그냥... 저... 오늘따라 유난히 밝은 달님에게 빌도록 하겠어.





8.

다리를 건너 야시장으로 들어갔다.





야시장 초입에선 호이안 명물인 전등을 팔고 있었다. 아까 올드타운에서 신나게 전등에 홀려 여기까지 걸어온 여행객들은, 너나할 것 없이 지갑을 풀고 있었다. 나도 그 중 하나였다.

대나무 등은 거의 정가인 듯, 다들 15만동에 팔고 있었다. 그 대나무 등을 사기 위해 기웃거리는데, 어떤 아줌마가 주인과 열심히 흥정하는 걸 들었다. 처음엔 15만동을 외치며 절대 깎아줄 수 없다던 그 주인은, 아줌마의 떼쓰기에 가까운 흥정에 눌려 결국 10만동까지 내렸다. 그러나 아줌마는 그 가격도 성에 차지 않는 듯, 그냥 몸을 돌려 가버렸다. 주인은 뚱한 표정으로 서있었고, 나는 그 주인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나 : 그럼 내가 10만동에 살게!

주인은 갑자기 나타난 날 보고 이 맹랑한 것을 보게, 싶은 난처한 웃음을 지었고, 나는 내가 지을 수 있는 최대한의 귀여운 표정을 지은 채 눈을 깜빡였다. 내 표정이 먹힌 것인지, 내 표정이 짜증나니 빨리 보내고 싶은 것인지, 어느 쪽인지는 모르겠으나 주인은 내게 전등을 넘겼다.

나 : 여기 한국인들 많은데, 10만동에 판 거 비밀로 해줄게.
주인 : 하하하! 말하면 안돼? 진짜 비밀?
나 : 비밀. 약속.


나는 주변 사람들이 못보게 몸으로 가리고 10만동을 건넸다. 주인과 나는 공모자의 미소를 지으며 헤어졌다. 걸어가는 내 뒤로 여전히 "15만동! 15만동!"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바로 그 10만동 (한화 5000원) 짜리 대나무등. 밤이면 밤마다 내 방의 훌륭한 간접조명이 되어주고 있다.




야시장에서 파는 것들은 고만고만한 장식품과 기념품들이었고, 이미 이것저것 많이 구입한 나는 설렁설렁 구경하며 돌아다니기만 했다. 그러다가 베트남식 피자라는 반짱능을 발견해서 먹었다. 주전부리로 가볍게 먹기 괜찮은 음식이었다. 가격은 3만동, 그러니까 1500원.




피자에는 역시 맥주지. 길거리 아이스 박스에서 맥주를 팔길래 하나 샀다. 목이 말랐는데 잘됐다. 가격은 2만동 (1000원).




이건 찹쌀떡 같은 거였는데 한화로 500원 정도 했던 것 같다. 맛은 그냥 그랬음. 팔고 계신 할머니가 너무 애처롭게 쳐다봐서 산 것 뿐임...




생각했던 것보다 맛이 없었던 로띠(바나나 팬케이크). 3만동 (1500원). 맛은 없었으나 팔고 계신 아저씨가 약간 지능이 떨어지는 분이셨고 옆에서 어린 딸이 그 아저씨를 도와주는 모양이었다. 따뜻한 광경이라 맛은 없었어도 잘 샀다 싶었다.




무슨 고기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궁금해서 사먹어본 고기. 한 꼬치만 달랬는데 아줌마가 두 꼬치 먹으라고 2개 줬다. 황당해서 주변을 둘러보니 베트남 현지인들은 10개, 20개씩 먹고 있더라. 음, 한 꼬치는 이 동네 상도덕에 맞지 않나보군. 그렇게 2개 사먹어서 2만동 (1000원) 냈다.





9.

다시 올드 타운으로 돌아와 버스 탈 시간까지 기다리며 쇼핑을 좀 했다. 이 동네, 역시 관광지답게 가격대가 베트남치곤 꽤 있었다. 그래서 아이쇼핑만 하려고 했는데 돌아다니다보니 예쁘장한 오프 숄더 티를 발견해버렸고 그래서 20만동 (한화 1만원) 내고 사버렸다. 흠, 내일은 이거 입고 다녀야지.




맥주 때문에 화장실이 너무 급해서 공영주차장 옆의 화장실에 왔다. 저렴한 수준의 이용료를 받고 있었고, 시설은 유료답게 깨끗했다.

아까 올드 타운에서 옷을 볼 때 내가 입은 치마랑 똑같은 치마가 디피된 것을 보았다. 근데 앞 부분이 목까지 끌어올려져 있더라. 나는 안에 나시 받치고 가슴팍까지 내리고 다녔는데, 아무래도 저렇게 입는 게 일반적인가 보다. 그래서 화장실에서 나시를 벗고 그렇게 함 입어봤다. 원래는 요렇게 입는 건가 보군. 하루 다 끝나가는데 이제야 알았다.

근데 사진 왜 이렇게 우람하지. 팔뚝이 어후...





10.

밤 9시. 다낭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공영주차장으로 가니 오늘 낮에 우리를 호이안까지 데려다준 직원, 닝기아가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는 아까 타고 온 것보다 작은 차였다. 왜 아까 왔던 큰 차가 아닌 작은 차가 왔냐고 불평하는 사람도 있었고, 사람들 기다리느라 9시 정각에 출발 못하고 몇 분 늦었다며 불평하는 사람도 있어서 뭔가 분위기가 싸늘했다. 작은 차여서 누군가는 불편한 좌석을 이용해야만 했는데, 아무도 그쪽에 앉을 생각이 없어보였고 이미 불평으로 가득찬 사람들이 그거 가지고 괜히 화낼 것 같아서 그냥 내가 앉았다.

닝기아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작고 어리고 귀여운(!)' 내가 불편한 좌석에 앉은게 계속 마음에 걸렸는지, 내게 끊임없이 안부를 물었다. "괜찮아 enat? 안불편해? 미안해, 방금 덜컹였지. 허리 괜찮아?" 근데 나는 정말 1도 불편하지 않았고 꾸벅꾸벅 졸다가 그 질문에 대충 답하고 다시 졸고 그랬다.

다낭에서 호이안까진 아무리 오래 걸려도 30~40분 정도다. 우리는 금새 우리들의 호텔인 Royal Lotus에 도착했다. 다른 승객들은 피곤한 듯 재빠르게 내려 호텔 안쪽으로 들어갔고, 나는 의자를 젖히고 차안에서 빠져나오느라 시간이 좀 걸렸다.

닝기아 : 괜찮아? 나는 정말 마음이 아파... 네가 불편하게 와서.
나 : 아냐, 나 편하게 왔어.
닝기아 : 나는 늘 레이디 퍼스트 하는데, 정말 부끄러워...
나 : 나 정말 괜찮아. 괜찮다고.


어쩔 줄 몰라하며 미안해하는 닝기아를 달래며 호텔로 들어갔다. 그런데 호텔 로비에서, 날 알아본 리셉션 직원이 롯데마트에서 오늘 오전에 쇼핑한 게 배송왔다고 했다. 내가 좀 과하게 샀기에 짐은 큼직한 박스로 한 박스였다. 하하. 하지만 문제없지. 나는 내 튼실한 팔뚝으로 그 박스를 들려고 했다.

닝기아 : 안돼!

닝기아는 나를 말리더니, 자신이 짐을 번쩍 들었다. 그러면서 방까지 날라주겠다고 했다.

나 : 아니, 나 괜찮은데.
닝기아 : 네게 빚을 갚을 기회야! 자, 어서!
나 : 아니, 무슨 빚...
닝기아 : 너 불편하게 왔잖아. 호텔 안에선 편하게 있으라고!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곤 닝기아의 도움을 받았다. 내 객실은 고층이라 가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방 앞에서 닝기아에게 고생했다고 팁을 주려고 하자, 그는 그런 거 정말 필요없다고 도망가려고 했다. 나는 간신히 그런 그를 붙잡고 그냥 선물이니까 좀 받으라고 했다. 닝기아는 감격해하며 좋은 밤 되라고 했다.




하이고야, 지친다.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창 너머의 야경을 바라봤다. 호이안에 비하면 평범한 도시의 야경이었다. 호이안은... 정말 아름다웠지. 머리 위에 둥둥 떠있던 은은한 전등의 불빛과 강을 따라 흐르는 소원등의 불빛, 어둠은 구석에서 고요하게 숨죽일 수밖에 없는 그 반짝임... 정말인지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거닐고 싶은 동네였다.

도피는 이쯤하고, 현실로 돌아올까. 낭만적인 불빛으로 빛나던 호이안을 떠올리며 숨을 돌린 나는, 고개를 돌려 문가에 놓인 롯데마트 박스를 바라봤다. 으으, 저거 뜯고 캐리어에 차곡차곡 정리하는데 얼마나 걸릴까. 나는 과도한 쇼핑을 즐긴 오전의 자신을 탓하며, 몸을 일으켜 짐을 정리했다.




다음날 오행산에서 계속!





덧글

  • 더카니지 2018/11/12 10:31 # 답글

    여행기 항상 재밌게 읽고 있습니다!! 다낭 정말 멋지네요~ 연말 가족여행-하도 혼자 여행 가니 동생이 가족끼리도 한번 가자고 성질을;;ㅋㅋ-가는데 괌과 다낭 중 고민하다가 괌으로 결정했는데 나중에 다낭 혼자라도 꼭 가봐야겠네요!! 요새 미세먼지 심하고 날도 추운데 건강 조심하세요~~^^
  • enat 2018/11/12 22:04 #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괌이야 가족여행으로 짱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잘 선택하셨네요 ^^!! 다낭은 다낭대로의 매력이 있는 것 같으니 - 무엇보다도 물가의 매력... 저렴한 베트남 동...!!! - 나중에 기회되시면 함 다녀와보세요!!!
    더카니지님께서도 감기 조심하시고 좋은 밤 되세요~!!
  • 2018/11/12 10:51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8/11/12 22:31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레타 (바이올레타) 2018/11/12 14:07 # 삭제 답글

    (심플하지만 화려하게 라는 오더에 죽어버린 디자이너의 잔해입니다)
    베트남 물가 굉장히 저렴하네요! 대나무 등 예뻐요!!
  • enat 2018/11/12 22:36 #

    (잔해를 부여잡고) 안대애애 ㅠㅠ 그 따위 오더를 내린 건 누구냔 말이에요 ㅠㅠ
    베트남의 착한 물가 및 제법 안전한 치안 때문에 한국인들이 많이들 여행 오시더라고요. 다낭은 진짜 나중에 한번 놀러가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용!!
  • 에스j 2018/11/12 14:09 # 답글

    흥정의 달인! 현지 생활 적응력이 놀랍군요. 다낭은 연구실 학생의 고향 인근 도시라고 해서 이름만 들어봤는데 사진으로 잘 봤습니다! :)
  • enat 2018/11/12 22:40 #

    사실 흥정은 제 앞에 계신 아주머니께서 하신거지만요! 나중에 등 파는 곳 관련한 글을 읽어봤는데 15만동 정가다, 절대 안깎아준다, 어쩌구 하는 글들이 많더라고요 ㅋㅋㅋ 제 앞의 아주머니는 대체 무슨 수로 10만동까지 깎은 건지... ㄷㄷ
    나중에 연구실 학생분께서 베트남으로 돌아가신 뒤 두 분의 시간이 맞으신다면 다낭에서 함 만나셔도 괜찮겠네요!! 누군가와 함께 즐길거리가 다낭 이곳저곳에 많은 것 같아요~ :) 저는 혼자였지만.. 쩝..
  • 찬영 2018/11/12 20:20 # 답글

    오오 요즘도 여행 잘 다니고 계시는 군요 :)
  • enat 2018/11/12 22:40 #

    배운 게 여행밖에 없어서 스트레스 받으면 훌쩍 떠나고 그럽니다!! 잘 지내고 계신가요 :)
  • 김진주 2018/11/12 23:59 # 삭제 답글

    다낭을 여행하기 위해서 정보를 알아보던중 우연히 들어오게 되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 재밌게 읽었습니다!
    글 정말 재밌게 잘쓰시는것 같아요 ㅎㅎ 얇은 책 한권 읽은 기분이네요! 종종 보러올게요 좋은 글 감사해요~^^
  • enat 2018/11/18 15:50 #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출장을 다녀오느라 답글이 늦었습니다 ㅠㅠ 포스팅 할 여유를 만들면 좋으련만 제 체력이 워낙 저질이라 쉽게 나질 않는군요... ㅎㅎㅎ 그래도 즐겁게 읽어주시는 분들 덕분에 근근히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또 들러주세요~ :)
  • LAFF 2018/12/06 23:20 # 삭제 답글

    안녕하세요. :) 다낭하고 호이안을 가려고 정보 찾다가 너무 담담하게 잘 적어주셔서 감사히 쭉 잘 보았습니다.

    괜찮으시다면 남자사람 한 명이 3박으로 다낭과 호이안을 가면 어디에 무게를 둬서 어떻게 움직이면 좋을지 여쭤도 괜찮을까요?
    초면...도 아닌데 너무 죄송합니다ㅠㅠㅠ

    글은 정말 잘 읽었습니다. 정말이에요 :)
  • enat 2018/12/07 21:19 #

    관광과 사진을 좋아하신다면 호이안에 무게를
    해변과 휴식을 원하신다면 다낭에 무게를... 이라고 적었다가

    호이안도 논두렁 근처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고
    다낭도 충분히 관광할만한 다른 것들이 많아서 흠 어렵군요

    인프라가 잘 되어있는건 아무래도 다낭이니까 여러군데 다니실거면 다낭에 짐 푸시고요
    작은 소도시에서 여유있게 있으시려면 호이안에 짐 푸시는게 나으실 것 같아요
    아니면 2박/1박 나누셔도 괜찮을 것 같고요
    이런건 원채 여행하는 스타일에 따라 사람마다 다른지라 추천드리기가 어렵네용

    좋은 숙소 많으니까 일단 스타일에 맞춰 숙소 먼저 잡아보세요 그럼 일정도 자연스레 나올거에요~
    즐거운 여행 되시고 궁금한 거 있음 덧글 달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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