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1/28 22:01

다낭 주말여행 (4) 오행산 벌레의 습격 ├ 다낭 주말여행 (2018)

1.

다낭 시내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오행산(응우한선, Ngũ Hành Sơn, 五行山)이라는 곳이 있다. 오행산이라는 이름대로 5개의 산이 있고, 각 산에는 "금/수/목/화/토"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그 중 수산(투이썬, Thuỷ Sơn, 水山)이 가장 크고 볼거리가 많단다.

그러고보니 서유기에서 손오공이 500년 동안 갇혀 있었던 그 오행산과 이름이 같다. 가이드북에서는 이 산이 그 산이란다. 진짜 이 산이 그 산인지는 손오공에게 물어봐야 하겠지만 지금은 어디서 무얼 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냥 가이드북을 믿기로 했다.

다낭의 두번째 아침, 나는 그 오행산에 다녀오기로 했다. 여행가서 산에 가면 무조건 고생한다, 라는 경험으로 체득한 징크스 따위가 있긴 한데, 오행산은 산보다는 관광지니까 괜찮겠지 싶었다. 나는 야트막한 공원 정도를 생각하고 갔다.

야트막한 공원은 무슨... 그곳은 작은 인디아나 존스였다. 무슨 말이냐면 다니기에 꽤 험했다는 거다. 오행산은 대리석이 많아 마블 마운틴이라고도 불리는데, 과연 바닥이 맨질맨질한게 미끄러웠다. 동굴은 캄캄했고 등반을 도와주는 밧줄이나 가드레일은 설치되어 있질 않았다. 전날 호이안에서 산 새하얀 오프숄더 티와 꽃이 달린 밀짚모자 따위가 땀으로 범벅됐다. 보다 가볍고 안전한 옷차림을 준비하지 않은 자신이 언제나와 같이 한심했다... 

...만, 그래도 가보길 잘했다 생각한다! 힘들었지만 낯선 풍경에 괜시리 가슴도 두근거렸고 왠지 모험 속 이야기에 살짝 들어와있는 기분도 들었고 평소에 운동도 안하는데 실컷 움직이고 났더니 아드레날린도 분비되어 상쾌했다.

음, 그래. 역시 여행하면 산이지! 





2.

설명은 이 정도로 해두고, 시간 순서대로 쭉 써본다. 일수로는 다낭 셋째날, 그러니까 아직 오행산에서의 고행을 아직 모르던, 다낭에서 맞이한 두번째 아침부터.




아침. 시차 때문에 또 일찍 깨어났다. 눈을 끔뻑이다가 배가 꼬르륵거리길래 옷을 대충 껴입고 식당으로 내려갔다. 훌륭한 Royal Lotus의 조식으로 배를 불렸다. 이 호텔은 정말 조식이 마음에 드는군.

옛날엔 여행 다니면 (돈이 없어서) 잘 굶고 다녔는지라 일시적인 다이어트 효과도 있었다. 살찌면 '살 빼러 슬슬 여행이나 떠나볼까' 하는 생각도 했었단 말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여행을 가서도 배불리 먹는 게 습관이 됐고, 그래서 여행 다이어트 따위는 내 인생에서 사라져버렸다.

무슨 말이냐면... Royal Lotus의 조식은 맛있었고 나는 아침마다 배부르게 먹었고 귀국하자 엄마가 "주말 동안 무슨 일이 있었길래 뿔었냐"고 물어봤단 거다. 그들의 음식은 날 2kg 정도 살찌웠다...





3.

나가려는데 호텔 로비에서 직원인 칸이 날 알아보고 인사를 했다. 오늘 오행산을 갈 거라니까 내 발을 슬쩍 살폈다.

나 : 왜?
칸 : 구두 신었나 해서. 거기는 운동화가 편해. 힘들지도 몰라.
나 : 하하. 구두는 가져오지도 않았어. 그리고 나는 튼튼하다고!
칸 : 으응... 조심하고, 잘 다녀와!


몇 시간 뒤 땀에 쩔어 호텔로 돌아오자 칸이 그럴 줄 알았다는 눈빛으로 나를 맞이했다는 걸 미리 밝혀둔다...

칸의 인사를 받으며 그랩으로 부른 택시에 탑승했다. 미케비치 근처에 있는 Royal Lotus에서 오행산까지는 그랩으로 9만동 (한화로 4500원) 정도가 찍힌다.

그런데 이번에 걸린 그랩 기사, 넘나 귀찮게 말을 걸어왔다. 너 이쁘다(무장해제 시킴), 여행 왔냐, 혼자 왔냐, 여자 혼자 온 거냐, 베트남 처음이냐, 다낭 어떠냐, 바나힐 다녀왔냐(이게 본 주제), 바나힐 가야한다, 바나힐 가라, 바나힐 갈 때 나 불러라, 오늘 바나힐 가기 딱 좋다, 내가 그랩보다 싸게 해준다, 꼭 나한테 연락해라, 카톡 아이디 알려준다, 이따 오행산 내려와서 카톡으로 연락해라...

으으... 그만해... 나는 조용히 오행산까지 가고 싶어... 조용히 가게 해줘... 그 입 좀 다물어...!

자꾸 자신의 카톡 QR 코드를 보여주며 찍으라는 그랩 기사. 귀찮지만 안찍으면 더 귀찮게 굴 것 같아 친구 추가를 했다. 차에서 내린 뒤 바로 차단했지만.





4.

택시에서 내려 오행산의 수산 매표소 쪽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아뿔싸, 태양이 이글거리며 나를 공격했다. 정수리가 무지 뜨거웠다. 호텔에서 바로 택시를 탄 바람에 야외의 햇빛이 이렇게 셀 줄은 몰랐다. 어제 산 베트남 모자 농라나 한국에서 쓰고 온 캡모자를 들고 올 걸 그랬다. 지금 모자가 있으면 딱 좋을텐데. 이래저래 투덜거리며 걷고 있는데, 매표소 앞 모자장수가 "2만동! 2만동!" 하면서 모자를 파는 게 보였다.

나 : ...
모자장수 : 2만동! 2만동! 1달러!
나 : ...하나 줘.
모자장수 : 고마워! 언니!


얘들은 나보다 나이 많아보이는데 자꾸 언니래... 하여간 그렇게 모자 하나를 샀다.




단순히 햇빛가리개 용도로 구매한 거였으나, 셀카를 찍었더니 아니 이럴수가 무지 예뻤다. 2만동에 이렇게 예쁜 모자를 팔아도 되는 거야? 예전에 몽골에서 무심코 구매했던 털모자도 그렇고, 하노이에서 덤으로 샀던 농라도 그렇고, 왜 모자만 쓰면 셀카가 예쁘게 나오지? 사실 나는 모자가 무지 잘 어울리는 사람이 아닐까? 이제부터 여행 기념품은 무조건 모자다!

모자 때문에 자아도취되어 무진장 셀카를 찍었던 enat이었다...




하하하! 이제 태양 네 녀석이 아무리 공격을 해도 내 정수리는 안전하다! 어디 한 번 내리쬐어봐!

나는 모자 아래에 숨어 태양을 놀려대며 티켓을 구입했다.

* 입장료 : 4만동 (2천원)
* 엘레베이터 : 1.5만동 (750원)






5.

태양을 놀리는 게 아니었다. 정수리는 지켜졌지만 이글이글한 태양 때문에 날씨는 무척이나 더웠고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며 돌아다녔다. 심지어 오행산의 수산은 생각보다 컸다...




지도가 있긴 한데, 신중하게 체크하진 않았고 그냥 진행방향으로 나아가며 구경했다.




이용요금이 750원인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제일 먼저 1번 탑을 마주하게 됐다.

이름은 사로이 탑(Xa Loi Tower). 7층으로 된 석탑이다. 다들 이곳에서 기념사진을 많이 찍으시더라. 여행사 관광객 단체사진 찍는 모습을 많이 봤다.




그래서 나도 한 장!

이 앞에서 모자 쓴 내 자신이 넘나 예뻐보여서 겁나 많이 찍었다. (나중에 착각이었던 걸로 밝혀졌다) 사진이 묘하게 뿌옇게 보이는 건 핸드폰 떨궜다가 전면 카메라 앞 유리에 금이 가서 그렇다.





이곳은 2번 린응 사원(Linh Ung Pagoda). 다낭 어딘가에 있는, 선셋과 해수관음상으로 유명한 절인 린응사와 이름이 똑같으나, 이곳은 오행산 안쪽에 있는 전혀 다른 린응사다. 이름 짓다보니 겹쳤나보다.

스님께서 불경을 외고 계셨는데, 마이크 다루는 기술이 엄청나셨다. 뭔가... 뭔가 자체 에코 처리가 되어 절 전체에 울려퍼지고 있었다. 나는 처음에 녹음한 거 틀어놓은 줄 알았는데 스님께서 직접 외고 계신 거였다.

계속 듣고 있으니 뭔가 몽롱해지고 아득해져... 극락에 갈 뻔 했다.




린응 사원을 지나 4번의 뷰포인트로 갔다. 뷰포인트 반대방향에 있는 3번 동굴은 깜빡하고 지나쳤다.

근데 뷰포인트라고 하기엔 별다른 뷰가 없었다. 1번 사로이 탑의 윗부분을 구경할 수 있었던 것 빼곤 그냥저냥. 다른 분들은 4번 뷰포인트 대신에 3번 동굴을 가시라 추천드린다. 3번은 안가봤지만 4번보단 나을 것 같다.




4번에서 5번 동굴로 가는 길.

짧은 동굴과 기암절벽, 벽을 뒤덮고 있는 나무 줄기와 뿌리에 감탄했다. 꼭 테마파크 같은 느낌이었다. 딱 여기서 "와! 오길 잘했다!"하고 생각했다. 멋있었으니까. 그 뒤에 뭐가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고.





6.

화장이 지워질라 땀을 식혀가며 걷다보니, 5번 동굴인 반통 동굴(Van Thong Cave)이 나왔다. 절벽 중간에 나있는 동굴이었다.




동굴의 입구.




무슨 일이 펼쳐질지도 모르고 해맑게 셀카 한 장 뾰롱! 오늘의 모자 쓴 나는 정말 마음에 드는군!




그러나 그 모자 쓴 얼굴은 점점 일그러지게 되는데...

5번 동굴은 그야말로 자비없는 동굴이었다. 오행산에 아무리 자비를 최고의 덕목으로 치는 불교 사찰이 많다해도, 이 동굴만큼은 자비가 없었다. 사실 동굴이 그렇게 깊거나 험하거나 한 건 아니다. 다만 테마파크나 공원 정도인 줄 알고 느슨하게 다니다가 방심했을 뿐이다. 방심하게 만들고 뒷통수를 치는... 그런 의미로 자비가 없다고 표현한 것이다.

이 동굴엔 적당한 가드레일도 손잡이도 계단도 없다. 미끄러운 대리석 바닥 때문에 자꾸 삐끗했다. 조명시설은 불충분해 어둡고, 길은 좁은데 오가는 출입구가 같아서 사람들로 막혔다. 정말인지 욕나오는 동굴이었다. 뭐가 이렇게 미끄럽고 뭐가 이렇게 좁은지! 저 앞에 사람은 왜 빨리 못 걷는지! 내 뒷사람은 왜 자꾸 보채는지! 왜 또 오늘따라 백팩을 안메고 손가방을 들어서 손이 모자란지! 왜 나는 자꾸 발을 헛딛고 넘어질 뻔 하는지!

동굴에 체류한 시간만큼, 나는 불만으로 가득차게 됐다.





그런 나의 마음을 위로해주듯, 동굴 안쪽에서 빛이 쏟아지는 공간을 보았다. 동굴 천정에 구멍이 생겨, 밖의 태양빛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공간이었다. 캄캄한 동굴에서 투덜거리다가 요래 밝은 공간으로 나오니 뭔가 진정이 됐다.

평화로운 홀을 지나, 다시 캄캄한 동굴 속을 걸었다. 동굴이 끝나는 지점에는 가파른 경사길이 있는데, 경사길을 따라 위로 올라가면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밖엔 나름의 뷰포인트가 있다고 했다. 다만 이 경사길이 매우 좁아 기다시피 올라야 하고, 오르는 사람/내리는 사람이 몰리는 병목현상의 최고 지점이라서 짜증이 날 뿐이었다.

간신히 동굴 밖으로 나가 정돈되지 않은 산길을 탔더니, 금새 정상이 보였다. 와, 조금 있으면 뷰가 보이겠다! 이렇게 험난한 길을 걸어왔으니, 얼마나 멋진 뷰가 기다리고 있겠어!

그 때였다.

- 우우우우웅! 위이이이잉!

무언가 엄청나게 거대한 벌레가 날라와 내 코에 안착했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코를 쳤고, 그 벌레는 부우웅 하고 날더니 내 어깨에 붙었다. 하필 오프 숄더를 입고 있어서 어깨 살에 닿았다! 나는 그 끔찍한 느낌에 몸부림을 쳤고, 벌레는 날아오를듯 하더니 다시 내 어깨에 붙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 지금 고개를 오른쪽으로 살짝 돌려 아래를 바라보시라. 어깨의 바깥쪽은 보이지만 안쪽, 그러니까 목쪽에 가까운 부위는 잘 안보이지 않는가. 벌레는 바로 거기 붙어 있었다! 뭔가 검은 게 언뜻언뜻 보이긴 한데 그 형태와 위치를 제대로 알 수가 없다! 나는 컹컹거리며 재빠르게 사람들이 모여있는 뷰 포인트까지 달려갔다.

나 : 헬프! 헬프미! 헬프미이이이!
베트남인1 : 무슨 일이야?
나 : 이거! 어어어어! 이거어어어!
베트남인2 : ㅋㅋㅋㅋㅋ 아이고, 저거 좀 떼줘.
베트남인1 : 가만 있어봐, 이얍!


베트남인1 아저씨는 매우 손쉽게 내 어깨에 붙어있던 거대한 벌레를 튕겨냈다. 베트남인2 아저씨는 바닥에 떨어진 벌레를 보곤 발로 짓밟아 죽였다. 슬쩍 가서 보니 벌처럼 노란색과 검정색 줄무늬가 있는 벌레였는데, 꿀벌보다는 훨씬 컸다. 이게 대체 무슨 벌레람. 잘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아저씨들을 붙잡고 말했다.

나 : 괜찮아? 다 끝난거야? 괜찮아? 없지? 이게 다지?
베트남인2 : 없어, 없어 ㅋㅋㅋㅋ
베트남인1 : 이런, 너 물렸잖아. 빨갛네.
나 : 웅?


아저씨들의 말을 듣고 어깨를 살폈지만 위치가 위치인지라 잘 보이지 않았다. 뭐가 부었다는 거야?

나 : 나 괜찮아. 진짜 고마워! 너희는 날 구했어. 내 생명을 구했어!
베트남인1 : 그래, 어깨 만지지 말고.
베트남인2 : ㅋㅋㅋㅋ 아 재밌었다.


베트남 아저씨들은 즐거워하며 내려갔고, 나는 생명의 은인과도 같은 아저씨들에게 감사와 작별 인사를 하다가 몸을 돌렸다.




그 고생을 하고 왔으니 좀 멋있는 뷰를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어, 뭐, 생각보다는 그저 그랬다. 사진만큼 탁 트이게 보이지도 않을 뿐더러, 해변이 멋지긴 했는데 공사 중인게 좀 그랬다. 해변 앞에 민가가 있다면 예뻤겠지만 리조트들 뿐이라 감흥이 없기도 했다.

흠... 아주 쪼끔 김이 새는군. 나는 붕어입을 만들고 입을 꿈뻑꿈뻑 하다가 다시 아래로 내려갔다.





7.

산을 내려가 다시 반통 동굴을 통과해 밖으로 나왔다. 5번 반통 동굴은 나름 탐험하는 재미가 있긴 했지만 고생한 만큼의 보상이 있진 않았을 뿐더러 (그 공사장+리조트+바다뷰가 다였다!) 구두를 신거나 연세가 있으신 분이라면 다니기에 좀 힘들 것 같았다. 나중에 엄마를 모시고 다낭에 온다면 요 동굴은 절대 오면 안되겠다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동굴 아랫쪽 길을 따라 걷는데, 어깨 부분이 따끔따끔했다. 뭐지? 아까 베트남 아저씨가 뭐 물렸다고 했던 것 같은데.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어깨를 봤지만 역시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에잇, 불편한 각도야. 그래도 계속 따끔하길래 혹시나 싶어 가방에서 거울을 꺼내 어깨를 비쳐봤다.

내 어깨는 무언가에 물린 자국과 함께 시뻘겋게 부어있었다!

방금 전까진 살짝 따끔한 수준이었는데, 갑자기 부은 모습을 보니까 마구 아파오기 시작했다. 으아아! 이게 뭐야! 이거 무슨 독충에 물린 건 아니겠지? 어깨... 어깨면 심장과 뇌와 가까운 편인데... 병원, 다낭은 병원이 어딨지...? 아니 병원에 가려면 일단 이 오행산을 빠져나가 시내로 가야 하는데, 나는 지금 딱 중간에 위치한 꼴이라... 흐엉... 나는 이렇게 중는겅가...

나는 고개를 휙휙 돌리며 울멍울멍하다가, 일단 목을 축여야겠다 생각하곤 반통 동굴 앞에 있는 물 파는 파라솔 집에 가서 물을 사마셨다. 그리고 파라솔 아래 의자에 앉았다. 물 파는 아줌마가 울상인 내 얼굴을 보고 갸웃하며 뭐라 했지만, 베트남어라 잘 알아듣지 못했다. 왠지 날 도와줄 것 같은 느낌의 아줌마다.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냉큼 구글번역기를 켜서 글을 쓴 뒤 보여줬다.

나 : 나는 벌레에 물렸다. 벌에 물렸다. 벌이랑 비슷했다. 따끔했다. 빨갛게 부었다. 아프다. 무슨 벌레인지 아냐. 이 산에 사는 벌레다. 노랗고 검은 줄무늬가 있었다. 도와주세요...

아줌마는 내 구글번역기를 보다니 박수를 치며 아! 하고 외쳤다. 그러더니 자신의 가방을 뒤지다가 무슨 연고 같은 걸 꺼내어 내 어깨에 발라줬다. 내가 이거 바르면 괜찮냐고 표정으로 묻자 아줌마는 이게 직빵이라는 표정으로 답했다. 현지인이 아무렇지도 않게 반응하는 정도면 괜찮은가 보다. 나는 그제야 안심한 표정으로 헤헤 웃었다. 아줌마는 됐다고, 이제 여기서 쫌만 쉬다 가라고 내 어깨를 툭툭 치더니 마저 자신의 일을 보러 가셨다.

휴...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20분 정도 앉았다가 가자. 그 정도 시간이면 몸에 다른 반응이 오는 걸 캐치할 수 있을거야. 그럼 이 아줌마께 도움을 또 부탁할 수 있겠지! 헤헤...





8.

앉아서 바람을 느끼다보니 20분이 아니라 30분이 흘렀지만, 내 몸은 멀쩡했다. 거울로 어깨를 보니 빨갛던 것도 어느 정도 가라앉아 있었다. 오오, 다행이다. 벌처럼 생기기만 하고 독은 없는 벌레였나보다.

그럼 이제 마저 구경하러 가보자.





요런 이쁘장한 길을 지나 계속 진행했더니 나오는,





10번 동굴로 가는 입구! (나는 더웠고 지쳤고 뭔가에 물린 환자라 6, 7, 8번은 쿨하게 패스했다.)

사실상 오행산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곳이다.




10번 동굴인 후엔콩 동굴(Huyen Khong Cave).

오행산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는 수산 내에서도 가장 큰 동굴이다.

동굴에 들어서자마자 상당한 규모의 부처님 석상과 상당한 높이의 천장에 우선 놀라게 되는 곳이다. 아까 5번 동굴에서 그 고생을 하고 다다른 곳이 이 10번 동굴이라면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고생을 할 만 했다고, 아니 오히려 부족하다고 외쳤을 것이다. 아쉽게도 그렇진 않았지만.

어쩐지 탐험 영화에서 대탐험을 하다가 신성하고 청아한 배경음악과 함께 발견하게 되는 공간 같았다. 미녀 수호자가 이곳을 수호하고 있는데 그녀는 도굴꾼들한테 살해당할 운명이고 주인공은 아마 그 수호자의 유언에 따라 저 석상 뒷쪽에 숨겨진 보물을 찾을 수 있을 거다...

...그런 잡상을 하게 만드는 동굴이었다.




동굴도 동굴이지만, 동굴 천장에 뚫린 구멍으로 떨어지는 빛이 예뻤다.




하필 또 부처님 석상 쪽으로 떨어지는 빛... 하, 이 시간 자연의 연출 위대하다.






동굴의 규모와 석상의 위치, 소리의 울림과 빛의 떨어짐... 이 공간에 집중하게 만드는 요인은 다양했다. 나는 구석에 마련된 의자에 걸터 앉아, 느릿하게 움직이는 빛줄기를 따라 후엔콩 동굴을 바라봤다. 여행자들이 우르르 들어왔다가 우르르 나가는 것조차도 어쩐지 영화 속 연출 같았고, 나는 또 멋대로 그 연출에 압도되어 더 많은 시간을 이 동굴에 할애했다.

손오공이 오행산에 갇혀 있던 시절, 아마 석가여래는 오행산 내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이 후엔콩 동굴을 손오공에게 내주지 않았을까 싶다. 그랬다면 그건 죄인에게 베푸는 그 나름의 마지막 자비였을 거다.





9.

한참을 후엔콩 동굴에 있다가, 다시 밖으로 나와 길을 돌아나왔다.





다음으로 가게 된 곳은 11번 탐타이 사원 (Tam Thai Pagoda).

알록달록한 외관과 화려한 지붕 장식, 높게 들린 처마가 인상적이나, 역시 제일 눈에 들어오는 것은 사원 앞의 생글생글 헤죽 웃고 있는 포대화상이다. 불룩한 배와 늘어진 귀가 매우 큐트하다.




탐타이 사원 뒤쪽으론 12번인 탄탐 사원(Tan Tam Pagoda), 13번인 투탐 사원(Tu Tam Pagoda) 등을 구경할 수 있다. 10번 동굴을 보고 난 뒤라 약간 부록 같은 느낌으로 여유있게 거닐었다.





드디어 오행산의 마지막 스팟이다. 14번, 전망대!

이곳에선 오행산의 다른 산들과 함께 일대 마을을 내려다 볼 수 있다. 제법 뷰도 좋고 바람도 좋아서, 계단을 오른 보람이 있었다. 아까 그 초반에 있던 4번 전망대랑은 딴판이구만!




땀을 질질 흘려대고 옷은 이미 더러워졌고 다리는 살짝 후들거리고 어깨는 아직도 약간 욱씬거리지만 이런 광경을 보면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행산에 오길 잘했다고!





10.

오행산에서 호텔까지 다시 그랩을 잡아 90만동(4500원)을 내고 돌아왔다. 호텔로 돌아오자 앞서 말했듯 칸이 나를 반겨줬다. 그는 아침만 해도 멀쩡하게 인사했던 내가 역전의 용사 꼴이 되어 돌아온 것을 재밌어하는 눈치였다. 나는 그와 적당히 대화를 나누다가, 일단 샤워부터 해야한다고 손을 휘저은 뒤 로비를 떠났다.

내 등 뒤로, 칸과 다른 여직원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대충 이런 느낌이었다.

여직원 : 누구길래 친하게 얘기해?
칸 : 너 쟤 몰라? Enat이잖아?
여직원 : 아아. 과연.


...이 호텔에 무슨 소문이 퍼지고 있는 것일까? 롯데마트에서 사재기라도 했는지 거대한 박스를 호텔 로비로 배송시킨 여행자? 호이안 셔틀버스에서 불편한 자리에 불편한 자세로 앉은 주제에 자신은 편하다며 도를 닦던 여행자? 오행산에서 구르기라도 한 것인지 거지꼴을 하고 돌아온 여행자? 나는 가다말고 고개를 끼기긱 돌려 칸을 바라봤으나, 칸은 아무렇지도 않게 싱긋 웃으며 나를 향해 눈인사를 했다.

어, 뭐, 모르겠다. 나도 그에게 마주 웃어준 뒤 객실로 돌아갔다.





분식집에서 계속!





덧글

  • 타마 2018/11/29 08:27 # 답글

    에엣... 어느새 호텔의 유명인?!
  • enat 2018/12/07 21:22 #

    에엣! 진상으로 유명해진 건 아니길 바라며...
    한국에서 온 귀여운 여행자에 관한 흐뭇한 소문이었길!
  • 자그니 2018/11/29 21:47 # 답글

  • enat 2018/12/07 21:22 #

    내용이 없는데 덧글 다실 수 있나요!?!? 신기해라...
  • 자그니 2018/12/08 13:36 #

    ... 잘보고 갑니다 + 질문 하나? 댓글 남긴 기억이 나는데요... 왜 댓글이 날아갔을까요...o_o;;;
  • enat 2018/12/10 21:09 #

    으허엉 이글루스가 덧글을 앗아갔나봐요 본격 블로그 주인이 모르는 검열 시스템 ㅠㅠ
  • 2018/12/02 19:22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enat 2018/12/07 21:25 #

    다음편이 넘나 오래 걸리는군요... 연말은 왤케 바쁘고 힘들고 지칠까요 홀홀... ㅠㅠ
    여행 생각 하나도 안했다가 '2019년의 여행지'란 말을 보니 갑자기 여행력이 조금 찼어요!
    비행기라도 좀 살펴볼까... 이런 덧글 삶의 환기 넘나 감사...!!!!
  • ㅇㅇ 2018/12/13 10:21 # 삭제 답글

    가독성이 아주 좋네요. 여타 블로그들과 달리 순식간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현재 다낭인데 오행산 가기는 좀 망설여지는군요.ㅎㅎ
  • enat 2018/12/22 18:07 #

    오!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편으론 넘나 늦은 답글 죄송합니당!!! 다낭에서 즐거운 여행 되셨는지요!
    저 때문에 오행산을 안가셨다면 무지 안타까운데 어떻게 되셨을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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