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10 21:08

다낭 주말여행 (5) 분식집, 미용실, 미케비치 ├ 다낭 주말여행 (2018)

1.

숙소로 돌아와 씻고 쉬다가 심심해질 즈음, 바다에 가기로 했다.

전날 미케비치에선 썬베드에 누워서 바다를 바라보기만 했는데, 이번엔 해수욕도 해야겠다. (물론 나는 수영을 할 줄 몰라서 얕은 곳에서 몸에 물이나 묻히며 첨벙첨벙하고 노는 게 다임) 나는 수영복을 챙겨입고, 그 위에 전날 한시장에서 산 하얗고 부들부들한 소재의 원피스를 걸쳤다.




오늘 오후의 옷차림은 요로케!

기분 좋게 곧바로 바다로 출발하려 했으나, 배가 고팠다. 그러고보니 아직 점심을 먹지 않았다.

전날 아기고양이와 함께 점심을 먹은 베트남 음식점이 생각났으나, 뭔가 그보단 익숙한 음식이 먹고 싶었다. 검색을 해보니 호텔 바로 근처에 한국 음식을 파는 분식집이 있다고 했다. 여길 들렀다가 바다로 가야겠다. 지도를 대충 본 뒤 길을 나섰다.




쨘. Royal Lotus 호텔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안녕 분식"이다.





요건 내부. 시간대가 어정쩡해서 그랬는지 손님은 나밖에 없었다.

음식을 기다리다가 외출하려는 사장님을 잠깐 마주쳤는데, 친절하신 분 같았다. 나가시려다가 한국인 손님인 나를 보고 굳이 몸을 돌려 다가와 자신이 도울 일이나 물어볼 게 없냐고 물으시는게, 동향인들에게 도움 베풀기를 주저하지 않는 적극적인 분처럼 보였다. 뭐, 그런 관심은 감사했으나, 나는 그저 분식을 먹으러 온 평범한 여행자였기 때문에 별 일 없다고, 일 보시라 했다.




일단 코코넛 커피부터.

음식이랑 곁들여 먹을 생각으로 가볍게 시킨 거였는데, 의외로 코코넛 커피가 제일 맛있었다. 여태까지 베트남에서 마신 코코넛 커피 중에 제일이었다. 하노이 콩카페에서 마신 코코넛 커피보다 훨씬 맛있었다. 분식집이 아니라 카페를 차려야하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이번 여행에선 어째 커피 전문점이 아닌 곳에서 마시는 커피들이 다 맛있다. 전날 망고 빙수 가게에서 먹은 블랙 커피도 짱맛있었는데.




요건 메인으로 시킨 라면과 김밥. 사진이 조금 흔들렸다.

속이 알차고 알록달록한 김밥과 소시지가 둥둥 떠있는 라면이 보기에 매우 흡족했다. 눈으로 먼저 먹었다. 맛도 꽤 괜찮았다. 김밥과 라면인데 어떻게 맛이 없을 수 있겠어. 도대체 왜 지금 이 가게에 나밖에 없는 건지, 이런 가게라면 어느 때고 문전성시를 이뤄야하는 것이 아닌지, 애석해하며 밥을 먹었다.

코코넛 커피, 라면, 김밥까지. 총 145,000동 (한화 7300원 정도) 나왔다. 돈이 아깝지 않은 행복한 식사였다.





2.

배도 채웠겠다, 이제 바다로 가볼까 하고 걷다가, 어떤 가게를 보고 멈춰섰다.




그건 바로 미용실. 지난 하노이에서 염색커트를 위해 두 번이나 갔던 그 '미용실'이다.

길 건너편에서 잠시 미용실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딱히 염색을 하고 싶지도, 펌을 하고 싶지도, 커트를 하고 싶지도 않고, 지금 내 헤어스타일에 아무 불만도 없지만, 왠지 미용실에 가고 싶다. 미용실에서 누군가가 머리를 만져주면 참 좋겠다. 현지체험을 격하게 하고 싶다. 다낭의 현지 미용실 수준이 매우 궁금하다... 그래, 저 미용실에 가야겠다!

총총걸음으로 길을 건너 미용실에 들어갔다.




미용실에는 사장님으로 보이는 중년의 미용사와 젊은 직원 한 명이 있었다. 두 분 다 나와 말이 통하지 않아 당황한 눈치였다. 다낭에서 영어나 한국어를 못하는 서비스 직종의 사람들은 드물지만, 이 미용실은 원채 로컬이라 외국어 걱정 없이 샵을 운영하고 있었나보다.

하지만 걱정없다. 나는 손가락으로 가위를 만들어 머리를 싹둑싹둑하는 모양을 취했다. 그리고 엄지와 검지를 붙여 쪼끔만 잘라달라고 부탁했다. 그 직관적인 바디랭귀지를 본 미용사는 다 알아들었는듯,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곤 자리에 앉으라 했다.




커트 전, 미용사 아줌마가 가게 어딘가에 붙은 모델의 사진을 가리켰다. 아마 저대로 해줄까 하고 묻는 것 같았다. 그 사진은 살짝 샤기가 들어간 일본인 모델 사진이었는데, 뭐 아무렴 어떨까 싶었다. 그래서 그걸로 해달라고 했다.

미용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익숙하게 미용가위를 집어들었다. 그녀의 과감한 손길이 내 머리에 뻗쳤다.

- 싹둑싹둑
- 쓱싹
- 샤샤샤샥


정말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빠른 손놀림이었다. 그녀의 손길은 한 점 망설임 없었고, 그녀의 가위는 조금도 쉬지 않았다. 무슨 쇼를 보는 것 같았다. 담담한 표정으로 기계처럼 내 머리카락을 솎아내는 미용사... 몇 십년 동안 반복해왔기에 무심하게 보이는 그 행동... 크, 내가 원했던 로컬은 이런 거였어!

...뭐, 감동과는 별개로 내 머리에는 엄청난 층이 생겨났지만 말이다.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 자주 가게 된 헤어 디자이너 쌤께, 로컬을 체험하기 위해 자신의 머리를 아무데나 들이미는 내 무모함에 대한 타박을 들었다. 쌤은 내 뒷머리를 보고 한숨을 연신 내쉬며 "베트남에 이렇게 과감한 컷을 하시는 분이 계실 줄은... 이 머리와 층을 도대체 어떻게 해야..." 라는 말을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나? 나야 뭐, 원래 헤어스타일에 별 신경을 안쓰는 터라, 그저 해맑게 "어차피 선생님께서 예쁘게 만져주실 거잖아요" 운운하는 쌤 복창터지는 소리만 했더랬다. 하하.

하여간 신선한 경험이었다. 다낭 로컬 샤기컷.




커트 도중에 번역기로 가격을 물어보니, 커트가 60,000동(한화 약 3000원), 머리 감는 게 60,000동(역시 한화 약 3000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머리도 감을 거냐고 물어봤다.

커트랑 샴푸가 같은 가격이라니! 샴푸는 더 쌀 줄 알았는데. 아까 머리도 호텔에서 감고 나온 터라 잠시 고민했다.

허나... 베트남의 샴푸질은 하노이에서 받아봐서 익히 잘 알고있지. 그 기나긴 샴푸 시간과 정열의 두피 마사지... 역시 감지 않고 가면 섭하다. 머리를 감겠다고 했다.

머리는 젊은 직원 분이 감겨주셨다. 장장 3번에 걸쳐, 두피 모공에 쌓인 노폐물을 조금도 남겨두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어마어마한 샴푸질이었다. 특히, 마지막 헹구기 전 받은 최후의 두피 마사지는 내 인생 마사지사(史)에 역대급으로 남을 마사지였다. 역시 감길 잘했어.





3.

바다를 가기 위해 나온 건데, 식사도 하고 미용실도 들리고 하다보니 시간이 한참 지나버렸다. 나는 어느덧 많이 기울어진 해를 바라보며 빨리 해변으로 가기로 했다.





반듯한 도로 옆으로 정렬된 야자수와 그 너머의 기나긴 백사장. 다낭이 자랑하는 미케비치다.






고층 건물과 마주한 길다란 해변으로 파도가 끊임없이 밀려오는 미케비치. 어쩐지 예전에 리우에 갔을 때 들렀던 코파카바나 해변이 떠올랐다. 물론 코파카바나 쪽이 훨씬 더 번화하긴 했지만, 전반적인 분위기가 비슷하다고 해야하나, 뭔가 나중에 미케비치가 진화(?)하면 코파카바나처럼 될 것 같았다. 그냥 그런 느낌.

그러고보니 미케비치가 어딘가에서 세계 6대 해변 중 하나로 꼽힌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런 3대 뭐시기, 4대 뭐시기, 하는 이야기는 이곳저곳에서 참 잘도 만들어 내는 것 같다. 보통은 진짜 3대, 4대를 뽑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특정 명소를 부각시키는데에 의의가 있지만 말이다.

그래서 그 '6대 해변' 중 하나라는 '미케비치'. 나머지 5개의 해변은 어디인가 간단하게 검색해봤는데, 나오는 건 죄다 미케비치에 관한 이야기 뿐이었다. 이런이런. 이 경우도 역시나 '미케비치'를 위한 '6대 해변'이었나 보다.





지나친 타이틀은 실망을 낳는다. 세계 6대 뭐시기... 천국 같은 풍경... 새하얀 백사장... 어쩌구 하는 미케비치에 관한 멋지구리한 광고를 잔뜩 듣고 왔다가, 실망하고 돌아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사실 실망하는 사람들도 이해는 간다. 아마 그들은 잔잔하고 투명하며 에메랄드 빛을 간직한 남국의 바다를 상상한 사람들일테다. 확실히 미케비치의 바다는 동남아가 자랑하는 그런 사진 속 바다는 아니다.

그렇다고 미케비치가 완전 별로거나 볼품없는 해변인 것은 아니다. 미케비치는 그저 파도가 세고 모래가 고운 해변일 뿐이다. 얕은 해안가에선 흙탕물... 아니 모래탕물이 될테니, 탁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근데 그 탁함을 유발하는, 쉬지 않고 밀려오는 파도가, 오히려 굉장히 매력적이다. 모래사장에 주저앉아 내 발밑까지 다가오는 파도를 보고 있으면, 또 저 멀리까지 물러났다가 다시 다가오려는 파도를 보고 있으면, 없던 감성도 생겨나게 된다. 그러니까 이런 거. Ex) 땅에 닿으려고 하나 닿지 못하고 다시 멀어지는 바다의 아픔... 모래사장에 잠시 새겨지는 파도의 흔적은 바다의 상처... 한순간도 똑같은 모양새가 아니나 매순간을 똑같이 파도치며 살아가는... 마치 우리들 같은... 어흑... 그런 감성적인 사고를 하게 만드는 촉촉한 해변이다, 미케비치는.

이 따위 개인적 감성을 배제하고서라도 미케비치는 여전히 훌륭한 해변이다. 시내와의 인접성, 아직까진 적은 인파, 저렴한 가격에 빌릴 수 있는 썬베드와 맥주, 걷기 좋게 조성된 산책로, 기나긴 해변에 머무는 시원한 파도와 바닷바람까지. 단순히 바다색 때문에 실망하기엔 아까운 해변이란 말이다.

...도대체 내가 이렇게까지 이 해변에 대해 정성을 기울여 고민하고 고뇌하며 단어를 골라 기술하는 이유는 뭘까. 나는 다낭과 미케비치 관광업 관련자들에게 돈을 받지 않았단 말이지. 돈 받지 않는 일에 이렇게 열심인 것은 오랜만인 기분이다. 어쩌면 이 바다에서 감동받고 위로받은 만큼 변호(?)해주고 싶은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예쁘다! 그러니 부디 미케비치를 이해하고 실망하지 말아달라! 바다는 에메랄드빛이 전부가 아니다!




해변을 좀 거닐다가 해수욕을 해보기로 했다.

썬베드를 빌려 자리를 잡고, 주인에게 부탁해 귀중품을 두고, 원피스를 벗어제낀 뒤 수영복 - 쿠바에서 샀던 비키니였다! 한국에선 도저히 못 입겠는 비키니! - 차림으로 바다로 껑충껑충 달려가 풍덩 뛰어들었다.

바닷물은 적정한 온도였고, 나는 신이 나서 통통거리며 놀았다. 수영은 할 줄 모르기 때문에 쭈그려앉아 발로 통통거리며 논 것 뿐이었지만 - 수영할 줄 아는 사람들은 그게 무슨 재미냐고 비웃는다! 그러나 원래 수영 못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논다! 이게 얼마나 재밌는데! 으아아아! 통통통! - 하여간 온 힘을 다해 바다에서 놀았다.

해수욕을 마치고, 다시 썬베드로 돌아와 털썩 앉았다. 훗, 봤어? 내 옆에 누워있는 잘생긴 오빠? 내가 저 앞에서 통통거리는 모습을 말야. 반하지 말라고.

물론 나만의 망상이었을 뿐이었고 그 잘생긴 오빠는 주변에 1도 관심없이 독서 삼매경이었다. 해변까지 와서 웬 책이람, 하고 생각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또 그건 그거대로 괜찮을 것 같았다. 다음에 바다에 갈 땐 책을 챙겨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조금 뛰어놀았다고 그새 목이 마르다. 나는 미케비치를 안주로 삼아 주문한 맥주를 벌컥벌컥 마셨다. 안주가 훌륭한 덕에 맥주도 잘 넘어갔다. 순수하게 행복했다.







마사지 샵에서 계속!










덧글

  • 레아 2018/12/10 21:46 # 삭제 답글

    <3
  • enat 2018/12/12 22:06 #

    저는 똑바로 세워서 ♡
  • 에스j 2018/12/11 01:37 # 답글

    올 때마다 느끼지만 보고 있으면 흐뭇해지는 여행기가 가득해서 좋아요. :)
  • enat 2018/12/12 22:07 #

    감사합니다~ 흐뭇흐뭇한 여행기를 만들어주시는 현지의 선량하신 분들 덕분이죵!
  • Nachito volando 2018/12/13 13:48 # 답글

    동남아 샴푸 좋지요....
    머리를 다 밀어버리고 나서는 샴푸를 받을 일이 없어서 서운합니다...

    베트남에 13년이 넘게 살고 있는데 다낭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네요..가까운 미래에 함 가봐야겠어요..
  • enat 2018/12/22 18:06 #

    그 두피마사지가 넘 좋더라고요! 어느 땐 머리카락이 다 뽑히는 건 아닌가 걱정이 들 때도 있지만 최종적으로 느껴지는 개운하고 시원한 감각이 넘나 좋아요 ㅋㅋㅋ

    오 13년이면 베트남 현지인이시군요! 그런데 다낭은 가본적이 없으시다니 마치 한국에서 주구장창 살고 있지만 제주도는 고딩 수학여행 때 빼고 가본적 없는 저와 비슷하실까용 ㅋㅋㅋ 요새 다낭에 한국사람들 참 많던데 한국인들이 그리워지실 때 (?) 놀러가시면 딱일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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