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12 22:04

다낭 주말여행 (6) 마사지, 반쎄오, 야식당 └ 다낭 주말여행 (2018)

1.

저녁까지 썬베드에 누워 밍그적거리다가, 호텔로 돌아갔다.




씻고나니 이미 해가 떨어져있었다. 무얼할까?

당시 내 몸은 낮에 다녀온 오행산에서의 고행 때문에 좀 욱씬거리는 참이었다. 어디보자, 몸도 찌뿌둥한데, 마사지나 받아볼까. 나는 트립 어드바이저와 구글맵 등을 이용하여, 호텔 근처의 평점 좋은 마사지샵을 찾아봤다. 여러곳이 있었으나 여러 리뷰를 통해 최종적으로 고른 곳은 "Lotus Massage(https://goo.gl/maps/bLUofdApHhs, 139 Nguyễn Văn Thoại, Bắc Mỹ Phú, Sơn Trà, Đà Nẵng 550000 베트남)"라는 곳이었다.

내가 묵고 있는 호텔 이름인 "Royal Lotus"와 비슷해서 호텔과 관련된 곳인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왜냐면 호텔 직원들이 추천해주는 마사지샵은 전혀 다른 곳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근데 직원 추천 샵은 구글 평점 최하를 향해 달려가고 있더라. 왜 이런 곳을 추천해주는 거람. 나는 마사지 예약을 잡아주겠다고 적극적으로 나서는 직원들을 향해 고개를 절레절레 젓곤, 내 고집대로 "Lotus Massage"를 향해 갔다.

* 미리 말씀드리는 결론 : 사람은 역시 소신껏 살아야한다. "Lotus Massage"는 최고였다.




"Lotus massage""Royal Lotus" 호텔에서 걸어서 5분? 10분? 그 정도 거리에 위치해있다. 앞전에 포스팅했던 한국 분식점 "안녕 분식"과도 가깝다.

"Lotus Massage" 샵의 직원들은 영어를 잘했고, 다들 친절했다. 첫인상 합격!

전신 마사지는 500,000동(한화 2만 5천원 정도)이었고, 일괄팁이 3달러 붙어있었다. 다 합쳐서 대충 3만원이라고 생각하면 되나? 무난한 가격이었다. 그걸로 골랐다.




마사지를 시작하기 전, 다과와 함께 설문지를 받았다. 어디를 세게 해주고 집중적으로 해줄까요? 에 관한 내용이었다.

정말인지 이런 사전 설문지 넘나 좋다. 마사지샵에서 마사지 받으면서 "더 세게 해주세요"라던가 "허리 말고 어깨를 중점적으로 해주세요" 하는 말을 할까 말까 고민할 때가 넘나 많단 말이다. 말이 잘 통하지 않는 나라에선 더 세게 해달라는 그 한마디가 어찌나 힘들던지! 그런데 사전 설문지 한 장으로 그 귀찮음과 번거로움이 어느 정도 해결되는 것이 아닌가! 으으, 훌륭한 세심함이도다, Lotus massage!

나는 간식으로 나온 말린 과일을 잘근잘근 씹어먹으며, 집중적으로 받고 싶은 부위를 "강"으로 체크했다.




설문이 끝나고, 마사지를 받으러 위로 올라갔다.

마사지는... 뭐 다른 말 필요없다. 훌륭했다. 군더더기 없는 손놀림과 뭉친 부위를 노리는 정확함, 거기에 강하고 섬세한 악력까지. 여태까지 해외에 나가서 받은 마사지 중에 제일 훌륭했다. 마사지사는 내가 사전 설문지에 체크한 그대로, 내 근육을 풀어줬다. 어쩜 이런 고객 맞춤 서비스! 일괄 팁을 냈지만 이건 개인 팁도 줘야하는 마사지다! 그야말로 지갑을 푸는 마사지였다.

마사지가 끝난 뒤, 한결 가벼워진 몸으로 마사지사의 안내에 따라 아래로 내려갔다.




이번엔 과일과 삶은 달걀을 줬다. 삶은 달걀 벗기기 귀찮은걸. 아까 그 말린 과일 맛있었는데. 달걀 대신 그걸 주지, 하는 시시껄렁한 생각을 하며 오물오물 먹기 시작했다. 그런 내게 카운터 직원이 다가왔다.

직원 : 저기... 마사지 어땠어?
나 : 좋았어! 최고! 너희 진짜 좋은 마사지 샵이야!
직원 : 기뻐! 그럼 있잖아, 트립 어드바이저에 리뷰 써주면 안될까?
나 : 응, 알았어 알았어. 집에 가서 써줄게.
직원 : 아니, 있잖아, 지금... 지금 써주면 안될까?


지금?

만약 마사지가 시원찮았거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엥? 귀찮아, 배터리 없어, 나중에 나중에."라고 말하고 안썼을 거다. 번거로운 일은 딱 질색이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훌륭한 마사지로 인해 기분이 몹시 흡족한 상태였고, 그래서 "하하! 왜 안되겠어? 지금 써줄게. 어디보자..." 하고 순순히 리뷰를 써줬다.

직원은 난처한 요청을 해서 미안하단 표정을 내내 짓고 있다가, 트립 어드바이저에서 내가 남긴 글을 확인한 뒤에야 안도하는 눈치였다. 안남기고 가면 사장님한테 혼나나? 손님이 가게를 떠나기 전 리뷰를 남기게 하는 것이 이 가게의 방침인가 보지? 그러니까 까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삶은 달걀 같은 걸 다과로 내놓은 건가? 하하. 여튼 마사지만 잘하면 됐지, 뭐.





2.

마사지 샵에서 나와, 뭔가 가볍게 요기할만한 거리를 찾았다. 무겁게 먹고 싶진 않다. 가볍게, 가볍게.

그러고보니 오늘 낮, 호텔 직원인 칸에게 반쎄오 가게를 추천받았었다. 위치가 대충... 여기서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였는데. 거길 한 번 가봐야겠다. 반쎄오 정도면 가벼운 요기가 되겠지.

그 반쎄오 가게의 이름은 Bánh xèo Hà Điệp (https://goo.gl/maps/t6hZZvYJ3Ez, 302 Phạm Cự Lượng, An Hải Đông, Sơn Trà, Đà Nẵng 550000 베트남) 라고 했다.





사진은 열대야 속에서도 불 앞을 떠나지 않고 반쎄오를 부쳐내는 정열의 요리사 아저씨.

일단 가게 첫인상부터. 음, 뭐라고 해야할까, 이 반쎄오 가게는 진짜 로컬 중의 로컬이었다. 허름한 건물, 지저분한 바닥, 베트남어만 쓰는 사장님과 직원들, 대부분의 손님들이 베트남인이었다는 것까지.

호텔 직원이 추천해준 곳이라 어느 정도는 외국물 먹은 가게인 줄 알았는데, 이 정도까지 로컬일 줄은 몰랐다. 입구에서 입을 헤 벌리고 바라보고 있었더니, 가게 앞에서 반쎄오 부침개를 만들고 계신 요리사 아저씨가 씨익 웃으며 손을 까딱까딱하신다. 아무래도 먹고 가라는 말 같지. 음... 그래, 먹으러 왔으니 먹고 가야겠군. 아저씨의 손짓에 고무받아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홀 서빙을 맡고 계신 아주머니께서 무얼 먹겠냐고 물었다. 아주머니는 베트남어를, 나는 영어를 썼지만 우리 둘 다 비언어적 의사소통을 훌륭하게 사용하였기에 대화에 막힘은 없었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센스를 발휘하여 소통해주는 분을 만나면 넘나 감사한 것이다. 하여간 나는 반쎄오 1개를 달라고 했다. 그러자 아주머니가 1개는 너무 적다고, 2개는 먹으라고 하셨다.

나 : 왜지? 나는 1개만 먹고 싶은데.
아주머니 : 1개는 적어. 배고파. 다들 5개, 10개씩은 먹어.
나 : 우웅... 그럼 2개!





반쎄오 2개를 시켰더니, 이상한 고기 꼬치와 함께 야채, 라이스 페이퍼가 나왔다. 고기 꼬치는 아마 서양 레스토랑에 가면 차지 받는 식전빵? 혹은 아페르티보? 같은 느낌인 것 같았다. 어디보자, 이 고기 꼬치는 얼마려나? 어딘가에 가격이 적혀있을텐데.

고개를 휘휘 돌려 벽에 붙은 메뉴를 찾았더니 반쎄오는 8000동(한화 400원), 그리고 그 밑에 잘 모르겠는 메뉴가 6000동(한화 300원)이라고 적혀있었다. 아마 그 잘 모르겠는 메뉴가 이 고기 꼬치인 것 같다. 한 꼬치에 300원이라니 엄청 싸구만. 나는 맛이나 보자 하고 그 꼬치를 입으로 가져다댔다.

아주머니 : 아냐! 그거 아냐!
나 : 웅?


아주머니께선 모로 봐도 외국인인 나를 주시하고 있었나보다. 나는 꼬치를 먹으려다 멈췄고, 아주머니는 생글생글 웃으며 내게 먹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아주머니 : 반짱(라이스 페이퍼)에 야채 넣고, 고기 꼬치 이렇게 넣고, 소스 뿌리고, 돌돌 말아서, 자 이제 먹어!

아주머니는 내 입에 고기 꼬치 쌈을 우겨넣었다.

나 : 웁... 웁!
아주머니 : 어때?
나 : 오오... 오오! 맛있어!


내가 맛있음을 강하게 표현하자 아주머니를 비롯한 가게 안의 다른 베트남인들이 매우 기뻐했다. 기뻐한 건 내 착각이고 그냥 내가 웃겨서 웃은 걸 수도 있겠다. 하여간 진짜 맛있었다.

나 : 이거 맛있어! 맛있어!
아주머니 : 많이 먹어. 이제 반쎄오도 나올거야.





쨘. 개당 400원짜리 반쎄오 님께서 등장하셨다. 한국에 있는 베트남 음식점에서 파는 것보단 작은 편이구나?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5개, 10개씩 먹는다고 했나보다. 1개만 시켰으면 아쉬울 뻔 했다.

나는 반쎄오를 먹으려다가, 혹시 이것도 먹는 방법을 알려줄라나 싶어서 아주머니를 바라봤다. 아주머니는 못말리겠다는 웃음을 지으시더니 그것도 라이스 페이퍼에 야채와 함께 싸서 소스에 찍어먹는 거라며 시연을 해주셨다. 이번에도 반쎄오 쌈을 내 입에 쑤욱 집어넣으셨다.

나 : 오오... 오오오! 이건 더 맛있어!

아주머니는 이 반응 격한 외국인의 등을 토닥이며, 천천히 먹으라 했다. 나는 아주머니께서 알려주신 방법대로 반쎄오를 격파해나갔다.




헤헤. 반쎄오 마이쪙.





3.

반쎄오와 고기 꼬치 등을 해치운 뒤, 아주머니와 아저씨에게 인사를 하고 다시 밖으로 나갔다. 이제 뭐할까?

원래 계획은 다낭에서 유명하다는 한강 용다리 불쇼를 보러가는 거였다. 그래서 아까 다녀온 마사지샵의 직원에게 용다리 불쇼에 관해 물어봤었다. 현지인이 보기에도 괜찮냐고. 가볼만 하냐고. 그런데 직원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직원 : 에엥? 불쇼? 그걸 왜 봐?
나 : 어엇... 가이드북에도 나와있고... 유명하던데?
직원 : 나는 좋은 거 모르겠던데. 굳이 안가도 괜찮아.


현지인이 별로라고 하는 델 굳이 갈 필요는 없겠지. 나는 직원에게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이며 당신의 의견을 따르겠다고 표현했고, 직원은 그런 나에게 차라리 여길 가라며 나이트 마켓을 추천해줬다.

직원 : 요새는 여기가 핫해. 규모는 작은데, 요 근방에서 가봄직 할 거야.
나 : 나이트 마켓! 야시장! 다낭에 호이안 야시장 같은 그런 곳이 있단 말야?
직원 : 앗, 그 정도까진 아니고, 진짜 규모 작고, 음식만 팔고... 그냥 예쁘니까 둘러볼만해.


그러면서 주소를 알려주길래 일단 구글에 저장해놨었는데...

딱히 할 일도 없으니, 거길 가봐야겠다!

나는 먹은 것도 소화시킬 겸, 그쪽 방향으로 슬슬 걸어가보기로 했다. 걸어서 20분 정도 거리였다.





4.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나이트 마켓은 정말 규모가 작았다. 그냥 소소한... 우리나라의 청년마켓 조금 모아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밤도깨비 야시장을 대폭 축소한 느낌이기도 했고. 대충 그런 곳이었다. 실망까진 아니더라도 명소라고 하기엔 부족하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거기까지 걸어가는 길을 잘 고른 덕분에 즐겁게 걸었다. 그 쪽 거리에 카페가 많아서 걷는 재미가 있더라. 마음속으로 "카페 거리"라고 이름 붙인 거리였는데, 위치는 다음과 같다.




Chau Thi Vinh Te라고 하는 거리로, 가로등이 몇 없어 조금 어둡긴 해도 야외 테이블이 놓인 카페들이 많아서 전체적으로 발랄한 분위기였다. 주말이기도 했고, 근처에 대학교도 있고 하다보니 젊은 청년들이 많았다.





여기는 그 거리 초입에 있던 아르카디아라고 하는 카페. 목이 말라서 음료를 시키러 들어갔다.

카페 내부 디자인도 괜찮았고, 분위기도 적당했으며, 직원 모두가 친절하고 상냥했다.




커피 마시면 이따 밤에 잠이 안 올 것 같아서 말차 쉐이크(?)를 시켰더니 요래 예쁘게 나왔다. 가격은 32000동, 그러니까 한화로는 1600원 정도. 이래 예쁘장한 카페에서 이래 저렴한 가격에 이래 생크림까지 올려놓고 이래 예쁜 잔에 팔아도 되는 거야? 나는 감동하며 빨대를 쭉 빨았다.

아... 맛은...

맛은 그냥 싸구려 생크림에 싸구려 녹차가루를 쓴 맛이었다. 이렇게 저렴한 가격에 고퀄을 원한 내가 잘못이었다. 베트남은 원래 커피인데, 말차 따위를 시킨 내가 또한 잘못이었고. 맛은 정말 없었지만... 원채 싼 음료니 어쩔 수 없지. 그러려니 하도록 하자.

나는 목만 축일 겸 적당히 쪽쪽 빨다가 값을 치르고 밖으로 나왔다. 다음엔 커피를 마시러 올게.





걸어가다가 본 카페. 거대한 2층짜리 카페였는데 밖에서만 보기에도 분위기 깡패였다.

요 근방에 산다면 저런 곳에서 자주 친구를 만나거나 노트북 가져와서 블로그를 하거나 하겠지.






그 외 다른 카페들.

해가 진 밤이어도 원채 더운 나라라 더웠는데 (슬슬 걷기만 했는데도 땀이 났다구!) 사람들은 주로 실외 테이블에 앉더라.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듯 수다 삼매경이었다. 현지인들에겐 덥지 않은 날씨였나...

재밌는 건, 맥주 한잔 할 법한 분위기 속에서도 스무디나 쉐이크 같은 음료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거였다. 여기 청년들은 건전한 모임을 지향하나보다. 보기 좋군.






요기 있는 카페들은 Chau Thi Vinh Te 거리에서 나이트 마켓 쪽으로 가려고 길을 꺾었을 때 본 카페들이다.

다낭에 예쁘장한 카페 왤케 많은 거지? 나중에 다낭 한번 더 가게 되면 (기회가 된다면 또 가고 싶다. 하노이는 다시 가고 싶은 생각까진 없었는데 다낭은 진짜 다시 한번 더 가보고 싶다) 카페 투어나 쭉 해야겠다.





5.

다낭 나이트 마켓(Đà Nẵng An Thượng Night Market, https://goo.gl/maps/zjqxgRjB2Nq)에 도착했다. 설렁설렁 걸으며 왔더니 생각했던 것보단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진 찍을 만한 건 입구의 요 빛나는 간판이 전부!

안쪽은 아까도 설명했듯, 한국의 청년마켓+밤도깨비 야시장을 한데 섞은 뒤 그 중 1/100 정도를 떼다가 만든 듯한 느낌이었다. 일단 규모는 무지 작았고, 작은 부스 식당만 가득했고, 베트남 음식보단 서양 음식들 위주였으며, 음식 가격도 비싼 편이었다.

아, 서양 음식들 위주여서 그랬는지, 아니면 이 근방에 서양인들이 자주 가는 호스텔이 있어서 그랬는지, 하여간 서양 여행자들이 꽤 많이 앉아있긴 했다. 나이트 마켓이라고 하기보단 "서양 여행객 특화 야식 식당"이라고 하는 쪽이 의미면에선 더 맞을 것 같다.




그래도 여기에 오길 잘했다 생각한 건, 괜찮은 맥주를 건졌기 때문이었다. 다낭에 수제맥주로 유명한 가게(세븐브릿지)가 있다는데, 거기서 그 수제맥주를 병맥으로 만들어 다낭 시내 이곳저곳에 공급하고 있다고 했다. 강릉의 버드나무 같은 느낌인가.

나이트 마켓의 한 부스 주인이 그 맥주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줬고, 나는 그의 설명에 감명받아 (뭐 특별한 설명은 없었는데 잘생긴 사람이 그리 열정적으로 설명해주니 감명받을 수밖에 없었다) 한 병 사봤다. 가격은 80,000동, 한화로는 4천원 정도.

맛은... 확실히 맛있었다. 베트남의 라루 같은 맥주를 마시며, 목마르니까 싼 맛에 먹지 뭘, 하는 아쉬움이 늘 있었는데, 이 맥주를 먹음으로써 베트남 맥주계의 희망을 보았다. 다음에 다낭에 오게 되면 그 세븐브릿지라는 펍엘 꼭 한번 찾아가봐야겠다.





6.

나이트 마켓을 나와, 근처 밤바다를 구경하러 왔다. 또 미케비치다.




여전히 파도가 예쁘게 치는 미케비치. 맥주 한 병 가지곤 모자란 풍경이다.




다 예쁜데, 비치 바로 앞의, 저 허접한 모텔 같은 느낌의 조명 장식만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퍼런 불빛이 건물 전체를 둘러싸고 있다던가, 오색빛깔의 조명장식이 정신없이 반짝거린다던가 하는...

조금만 더 조명에 신경써준다면 넘나 좋겠다. 힘내라 다낭!




걷던 도중, 웬 대학생들이 엠티라도 왔는지, 모래사장에서 판을 벌여놓고 놀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약간 사랑의 짝대기 같은 느낌의 게임을 하고 있었는데, 호명된 남녀가 눈만 마주쳐도 꺟꺟거리는 풋풋한 청년들이 재밌어서 근처에 앉아 흐뭇한 표정으로 구경했다. 아, 그립지만 돌아가고 싶지는 않은 대학 시절이여.




뭐 그런 소소한 즐거움과 함께 해변을 따라 쭈욱 걸었다. 바닷물은 딱 적절한 온도였고, 바닷바람 역시 덥지도, 차지도 않았다. 주변은 그리 시끄럽지도, 또 너무 조용하지도 않았다. 적당한 규모의 파도는 계속해서 내게 다가왔다. 모든 것이 적절했고 그 덕분에 정말인지 걸음마다 기분이 좋았다. 어떤 잡생각도 들지 않았다. 온전히 '좋은 기분' 속에서의 해변 산책이었다.

그러고보니 누군가를 그리워하지 않고 해변을 걷는 건 오랜만이다. 아니, 어쩌면 성인이 되고 나선 처음일지도 모른다. 이상하게 바다만 가면, 그 특정 상대는 늘 변했어도, 여기에 없는 어떤 사람이 보고 싶고, 괜시리 그립고, 애달파지곤 했었다. 그런데 미케비치에선 전혀 그렇질 않았다. 이곳엔 나만 있고, 그 바다를 걷고 있는 나의 기분만이 마냥 좋았다.

누군가가 그리워지지 않는 바다고, 아무도 떠오르지 않는 바다다, 미케비치는.





7.

해변을 따라 쭉 걷다보니, 익숙한 풍경이 나왔다. Royal Lotus 호텔 근처까지 왔나보다.





호텔 들어가서 좀 쉴까 생각했는데, 해변 도로에 열린 야夜식당을 보았다.

낮에는 이런 거 없었는데? 아마 밤만 되면 테이블을 깔아놓고 장사를 하나보다. 저쪽에선 핫도그를 팔고, 저쪽에선 해산물을 팔고, 저쪽에선 고기를 팔고... 종목도 참 다양했다.

바다 바로 앞이라 그런지 분위기 끝내주는 걸. 포장만 없었을 뿐 살짝 포장마차 분위기도 느껴졌다.




이런 곳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지. 냉큼 앉아서 메뉴를 봤다.

내가 앉은 밤식당은 해산물 위주의 음식을 파는 곳이었다. 왠지 매력적으로 보이는 메뉴가 없네. 조개는 별로 안좋아하고, 굴도 그닥... 밥이나 면을 먹고 싶진 않고. 밍숭맹숭하게 메뉴를 쭉 훑어보다가, '게'에서 눈이 멈췄다.

나 : 게가 있잖아! 나 게 짱 좋아하는데!
직원 : 게?
나 : 게는 얼마야?
직원 : 오, 게는 때마다 다 다른데...


싯가라는 녀석이렸다. 이 놈의 게는 메뉴판에도 가격이 명시되어 있지 않은, 비싼 녀석인 것 같았다. 에잇, 비싸봤자 베트남 동으로 얼마나 비싸겠어. 나는 지금 게를 먹고 싶다!

주문을 하자, 직원은 금방 삶아서 가져다주겠다고 했다.




기다리는 동안 바닷바람이 야자수 흔드는 모습을 구경했다. 펄럭이는 모양새가 꼭 동물 날개 같다. 금방이라도 날아갈 것 같아.





그런 뻘생각을 하며 앉아있는데, 금새 따끈따끈한 게가 삶아져 나왔다. 생각했던 것보단 작네.

나 : 이거 얼마야?
직원 : 아, 250,000동 (한화 12,500원) 이야.


생각보다 작은데 생각보다 비싸!

하지만 늦은 밤 노점상/해안가/싯가니까, 뭐 어쩔 수 없나. 비싸도 나는 지금 게가 먹고 싶단 말이다. 빠르게 자신을 납득시키고 이해시킨 뒤, 니퍼 같은 우악스러운 도구를 들었다.




갑각류는 먹기 불편하지만 속살이 원채 맛있어서 뜯는 보람이 있다.

우후후... 기다려... 언니가 맛있게 먹어줄게...




녀석은 작지만 알찼다. 훌륭한 전투였다. 역시 게는 옳다.

폭풍같은 게타임이 끝나고, 입가심으로 코코넛 쥬스를 마셨다. 코코넛 쥬스를 가져다 준 직원이 이걸 이렇게까지 뜯어먹었냐, 진짜 대단하다, 하는 살짝 질린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고, 나는 우아하게 웃으며 코코넛 쥬스를 받아들었다. 호호호. 부끄러우니까 그런 눈으로 보지 마세요. 예쁜 여자 처음 보나요.




그렇게 잔해만 남은 게딱지와 코코넛 쥬스와 함께 다낭에서의 세번째 밤을 보내는 enat이었다.




호텔 수영장에서 계속!






덧글

  • 레타(바이올레타) 2018/12/18 09:57 # 삭제 답글

    미케비치 옆 건물들 번쩍번쩍한게 되게 광안리쪽이랑 비슷한 느낌이에요 ㅋㅋㅋㅋ 모래사장에서 놀던 엠티 온 청년들(?) 얘기 들으니까 더 그런..! 게.. 게 맛있죠 맛있고 비싸요 ㅠㅠ 껍질 뜯기 어렵지 않으셨나요 다른 곳에서 게 요리 먹으러 갔을때도 저런 무시무시한 니퍼같은 집게를 주던데 그때 껍질 뜯느라 고군분투했던 기억이 나네요ㅜㅜ
  • enat 2018/12/22 17:55 #

    모텔 같은 조명과 청년들 때문인지 광안리 같은 느낌이 있긴 했어용! ㅋㅋㅋ 물론 광안리보다는 훨씬 큰 규모의 해변이라서 그 청년들이 모여있던 구간을 지나자마자 그런 느낌은 싹 사라졌지만요.
    갑각류가 그 단단한 껍질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맛있는 속살 때문이죠... 게딱지 뜯는 걸 즐기는 편이라 어렵기는 했어도 행복하게 뜯었습니다. 아... 또 먹구싶당...
  • 우레 2018/12/31 16:08 # 삭제 답글

    안녕하세요. 몽골여행기 찾다가 들린 이글루에서 이낫님 맛갈스런 글에 반해 며칠씩 둘러보다 새 글 눈빠지게 기다리다가, 쿠바행 비행기 가격 알아보다가, 남미에 눌러 앉을 몽상하다가, 문득 다낭행 비행기 표 끊게 되었습니다. 계속 독자로 있을게요.
  • enat 2019/01/13 08:41 #

    덧글 읽고 아 너무 감사하다 생각했어요 ㅠㅠㅠㅠ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 늦은 답글과 눈빠지는 기다림엔 죄송하구요 ㅠㅠㅠㅠ 진짜 누군가 제 글을 읽으시면서 여행 생각 여행 준비 하신다는 이야기 해주실 때가 제일 행복한 것 같아요. 다낭 잘 다녀오시고요!! 차조심 하시고 사람조심 하시고 발걸음 가벼운 여행길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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