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07 14:45

방콕 주말여행 (2) 어묵국수와 콘파이, 반 차트 호텔 └ 방콕 주말여행 (2019)

1.

숙소를 바꾸러 가는 길.

그러고보니 아침을 먹지 않았다. 이전 숙소에서 무진장 화가 났던 터라, 하루 일과 중 가장 중요한 일을 빼먹을 뻔 했다. 아침 식사를 하지 않고 하루를 시작한다면 기운이 쭉 빠질테지. 일단 배부터 채우기로 했다.

요새는 여행을 떠나기 전, 가이드북을 보는 대신 구글맵으로 숙소나 관광지 주변의 평점 좋은 음식점들을 즐겨찾기 해놓는 습관이 생겼는데, 그 덕분에 별다른 고민 없이 즐겨찾기 된 음식점 중 동선 상에 있는 음식점엘 들어갔다.


음식점 이름은 찌라옌타포(어묵국수).

118 Chakrabongse Rd, Khwaeng Chana Songkhram, Khet Phra Nakhon, Krung Thep Maha Nakhon 10200
https://maps.app.goo.gl/dVeWwbiKNxs88bAQ9




여긴 선풍기 돌아가는 로컬 음식점이다. 아직 오전이라 그렇게까지 덥지 않아 다행이다. 한낮에 먹기엔 국물 음식이라 땀을 잔뜩 뺄 것 같다.




음식점 주인은 한가로운 태도로 한국어 메뉴를 건네줬다. 한국인들이 많이 오는 음식점인가 보다.

면, 국물, 사이즈, 추가 메뉴 등을 고를 수 있다. 한국어로 적혀 있어서 쉽게 고를 수 있었다.




어묵국수 등장. 스몰 사이즈 시켜서 60바트.

양이 생각보다 적었다. 포만감을 느끼고 싶은 분은 라지 사이즈를 시켜야 할 것 같다. 나는 (요새는 아무도 믿어주지 않지만) 원래 소식하는 편이라 요 정도 양에도 만족하며 먹었다.

면은 쫄깃했고 국물도 괜찮았다. 오뎅은 그냥저냥. 우리나라 오뎅보다는 훨씬 괜찮은 맛이긴 했으나... 원래 오뎅이란 걸 별로 좋아하진 않아서 정확한 평가가 어렵다. 대신 유부는 아닌데 뭔가 흐물거리는? 얇은 튀김을 물에 적신 듯한? 하여간 뭔가 흐느적거리는 건더기가 있었는데 그게 참 맛있었다.




깨끗하게 비움.

국물 뜨끈한 걸 먹고나니 기부니가 좋아졌다. 값을 치르고 인사한 뒤 나왔다.





2.

조금 걷다보니 무진장 더워졌다. 선풍기 탈탈탈 돌아가는 가게에서 뜨거운 국물을 드링킹한 뒤 땡볕을 걷는 거니, 더워지지 않으면 그게 이상한 거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며 간식을 먹고 싶다는 열망만으로 가장 가까운 맥도날드에 왔다. 태국에서만 먹을 수 있다는 '콘파이'를 먹기 위해서다.


카오산로드 맥도날드

48 Khaosan Rd, Khwaeng Talat Yot, Khet Phra Nakhon, Krung Thep Maha Nakhon 10200
https://goo.gl/maps/kTvtxLjXV6Yi76eo7


나는 태국에 다녀온 사람들이 하도 "콘파이 먹어야 돼" "콘파이 진짜 맛있어" "콘파이는 꼭 먹어봐" "콘파이, 콘파이" 거리길래, '콘파이'라는 고유명사를 가진 태국 전통음식이 있는 줄 알았다. 그래서 태국 맥도날드에선 전통음식도 파는구나, 라이스 버거나 불고기 버거 같은 느낌인가, 어쨌든 반드시 먹어야 한다니 시켜보자, 하고 생각했다.

근데 그게 아니라 Corn Pie였다.

...

맥도날드에서 주문하기 직전, 메뉴에 써있는 Corn Pie를 보며 어찌나 배신감을 느꼈는지 모른다. 콘파이가 콘파이였다니!




예상을 뛰어넘은 매우 평범한 음식이었으나 다들 꼭 먹어보라고 했으니 일단 주문했다. 가격도 저렴했다. 겨우 26바트. 한화 1000원 정도다.

콘파이만 시키면 외로울 것 같아서 파인애플파이와 아이스 커피도 함께 시켰다. 새로 조리해야 한다고 좀 기다려야 한단다. 워머에 있던 게 아니라 새로 조리한 거라니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다. 적당한 창가 쪽 자리에 앉아 그동안의 일기를 썼다.




7분 정도의 기다림 후에 나온 콘파이(26바트), 파인애플파이(26바트), 아이스 커피(50바트), 다 합쳐서 102바트.




콘파이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맛있었다. '태국의 전통음식' → '콘이 들어간 파이'로 격하(?)됐을 땐 솔직히 실망했었는데, 한입 두입 먹다보니 고소하고 달달하며 쫀득한 그 맛이 매우 훌륭했다. 이래서 다들 먹으라고 했던 거군. 기다린 보람이 있는 맛이었다.

콘파이 옆에서 광고하고 있길래 덩달아 시켰던 파인애플파이는, 캔 파인애플과 파인애플 쨈을 섞어 만든 듯한 달달함이 느껴졌다. 황도처럼 설탕이나 시럽에 절여진 과일의 식감이란... 이 역시 매우 훌륭했다.

1천원짜리 맥도날드 디저트 메뉴인 주제에 이렇게 맛있을 수가...

감탄하며 커피를 들이켰다.





3.

어묵국수와 콘파이 덕분에 배도 차고, 에어컨 바람 덕분에 몸도 식으니 기운이 살아났다. 아침에 있었던 실랑이도 새까맣게 잊었다. 그제야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낮의 카오산 로드.

어딘가 가이드북 같은 데서 봤을 법한 풍경을 보고 있으니 흥이 올라왔다. 특히나 방콕 여행은 무지 옛날부터 - 대학생 때 일정과 비용을 계산해뒀던 엑셀파일이 클라우드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 가고 싶었으나 아껴뒀던 - 나중에 직장인 되면 주말 여행지로 여길 가보자! 라는 느낌으로 - 곳들 중 하나라서, 감흥이 남달랐다.

으흐... 나 지금 방콕에 있잖아!

빨리 숙소에 짐 풀고 관광을 시작해야겠다!





4.

이번에 바꾼 숙소는 카오산 로드와 람부뜨리 로드의 딱 중간에 걸쳐있는 반 차트 호텔이라는 곳이었다.


반 차트 호텔(Baan Chart).

98 Chakrabongse Rd, Khwaeng Talat Yot, Khet Phra Nakhon, Krung Thep Maha Nakhon 10200
https://goo.gl/maps/ZiZztqbUiz7NdpUF8


총평부터 말하자면 저렴한 가격에 지내는데 큰 불편함 없이 낭만적인 분위기를 즐기다 왔다. 물론 내가 바로 이전 숙소에서 어처구니 없는 일을 당해서 그 대비 효과로 이곳이 엄청 좋게 느껴진 걸지도 모르나... 내 기분이라 그걸 어떻게 배제할 순 없고, 하여간 무지 좋았다.


아래로는 숙소에 관한 전반적인 설명들.




1) 숙소 위치는 환상적이다. 아래로 1, 2분 내려가면 카오산 로드요, 위로 1, 2분 올라가면 람부뜨리 로드다. 그 뿐만이 아니다. 숙소 바로 왼쪽에는 버거킹이, 바로 오른쪽에는 스타벅스가 있다. 좌버거킹 우스타벅스라니 세상 어딜 가도 두렵지 않은 다국적 프랜차이즈의 끝판왕 조합이다.





2) 버거킹과 스타벅스 사이로 조금 들어가면, 시원한 나무 지붕 그늘의 1층 홀이 나온다. 호텔 로비 겸 식당이다. 홀 안쪽엔 리셉션과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다. 체크인 할 때 아이스크림 무료 쿠폰을 주니 이용해보시라. 리셉션 오른쪽으론 화장실이 있다.

3) 아이스크림 가게 옆으로 엘리베이터가 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객실로 갈 수 있으며, 옥상에도 갈 수 있다. 옥상에는 아주 작은 수영장이 있는데, 수영장이라기보단 넓은 욕장 같은 느낌이다. 사실 수영장 있다고 해서 조금 두근두근했는데, 저녁에 이용하러 올라갔다가 짜게 식었다. 흑흑.





4) 객실은 ㄷ자로 도로를 마주보며 배치되어 있다. 나는 ㄷ자의 가장 끝에 배치되어 도로와 가까워서 소음이 좀 있었으나, 에어컨을 틀자 그 모든 소음이 묻혔다. 에어컨 소음도 만만치 않았다.

5) 객실키는 진짜 키로, 돌려서 잠그는 구조다. 카드키나 번호키가 아니라 조금 불편하긴 했다.





6) 객실 바닥과 벽지를 어두운 색으로 꾸며서 전반적으로 살짝 캄캄한 느낌이었는데, 그게 싫지는 않았다. 화장실도 깨끗했다. 어메니티는 록시땅. 향이 좋았다. 타일과 장식 배치가 중국스러운 느낌이어서, 초창기 신서유기에 나오는 숙소 같구나 생각했다. 게임해야 될 것 같다.

7) 근데 어메니티 중에 면도기가 없다. 다리털 제모 안하고 갔는데 제모크림이나 면도기도 안들고 가서, 있으면 좋겠다 막연하게 생각했으나 없었다. 아쉬워라. 반바지나 원피스 등등의 복장을 주로 착용했고 그래서 되도록 제모를 하고 싶었으나... 별 수 없다. 그냥 북슬거리는 채로 다녔다. 그 상태로 마사지 받으러 갔으니 마사지사에겐 매우 미안할 따름이다.

8) 밤마다 1층 야외 홀에서 콘서트가 열린다. 이거는 취향을 좀 탈 것 같은데, 그게 시끄러워서 짜증날 수도 있고, 음악이 좋아서 흥얼거릴 수도 있다. 나는 후자였다. 하루는 목소리 엄청 깨끗한 언니가 빗소리와 함께 노래를 불렀는데, 맥주 마시면서 듣다가 너무 행복해서 계속 히죽히죽 웃던 기억이 난다. 방콕 여행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9) 체크아웃하면 기념품으로 작은 록시땅 핸드크림과 샤워젤을 준다. 지금 내 책상 앞에 있다. 원래 핸드크림 이런거 잘 안사는데 (안사도 어디선가 선물로 자꾸 들어온다. 선물로 만만한 제품군인 것 같다.) 보고 있으니 요 호텔과 방콕 생각이 나며 기분이 좋아진다.


하여간 무지 즐겁게 머물렀던 호텔 요약 끗!





5.

체크인 시간은 오후였는데, 내가 너무 빨리가서 객실 정리조차 되어있지 않다고 했다. 그야 뭐, 전 숙소에서 아침에 뛰쳐나와 이제 막 아침식사를 하고 온 참이니, 호텔 입장에선 굉장히 이른 시간이긴 하다. 그래서 체크인은 이따 오후에 하기로 하고, 짐만 맡겨두고 왕궁 구경하러 가기로 했다.

왕궁이랑 왓포를 구경하고 돌아와서도 체크인 시간이 남아있었는데, 직원 앞에서 알짱거리며 얼굴 계속 비췄더니 그냥 얼리 체크인 해줬다. 불쌍해보였나... 헤헤...





6.

숙소에 짐을 맡긴 뒤 로비 소파에 앉아 구글맵으로 거리를 확인하니, 15분 정도만 걸어가면 왕궁에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생각보다 가깝잖아? 그렇다면 슬슬 걸어가야겠다.

물론 그건 지도상, 이론상의 이야기였을 뿐이었다. 나는 절반 정도 지나고 나서야 왜 택시를 타지 않았는가에 대해 후회하고 말았다. 이 더운 땡볕 아래를 15분이나 걷는다는 건 내 자신에게 너무나도 가혹한 행위였다. 그리고 뭐가 15분이람. 초행길이다보니 30분 넘게 걸렸다.

그래서 그 이후부턴 거의 택시만 타고 다닌 것 같다.

뭐... 그냥... 걸어다니며 밝고 깨끗한 방콕을 둘러본 것에 의의를 두며... 당시에 찍은 사진들을 쭉 올려본다.




파란 하늘 아래 코끼리.




짜오프라야 강으로 이어지는 작은 강의 다리 건널 때 찍은 사진.

길거리에 사람 한 명도 없었음.




바람이 잘 불어서 그나마 시원했다.

펄럭이는 국기.




지도에 찍힌대로 걸어왔는데 왕궁 입구는 여기가 아니란다. 담벼락만 보이다니... 털썩.

내 체력과 더위와는 상관없이 하늘은 참 예뻤다.




역시 하늘이 예뻐서 찍은 사진.

아래 노란 건물은 무슨 정부기관 건물 같은 거겠지.





7.

여차저차 왕궁 입구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테러 위험 때문인지 짐 검사를 하더라.

검사를 받고 펜스 안쪽으로 들어섰는데, 갑자기 핸드폰이 먹통이 됐다. 화면이 까매지더니 초록색 안드로이드가 뱅글뱅글 돌기만 하는 거였다. 아니 얘가 왜 이래. 너무 열받아서 그런 건가? 생수통 가져다대고 그늘에서 식히고 입으로 후후 불어주니까 10분 뒤에 정신차리더라.

어찌보면 알량한 폰 하나에 기대어 여행을 하고 있는 건데 아찔했다. 지도, 카메라, 호텔주소, 음식점, 관광정보, 비상연락처 모조리 다 이 폰 하나에 들어있는 건데... 가뜩이나 땀투성이였는데 거기에 식은땀이 추가로 흘렀다.

너무 더울 땐 핸드폰을 혹사시키지 말아야겠다 생각하며 가방 안에 잘 갈무리해두고, 왕궁으로 입장했다.





왕궁에서 계속!






+ 딴 얘기

그렇게 나와 방콕 여행을 무사히 마쳤던 폰은 어제 막 운명을 다했다. 외근 나갔다 돌아오는 길에 핸드폰이 손에서 미끄러졌는데, 그걸 어떻게든 주워보려다가 손에서 한 번 튕겨서 아스팔트 바닥에 정면으로 내리꽂혔다. 멀리서 그 모습을 보던 대표님 왈, "화나는 일이 있냐, 왜 핸드폰을 바닥에 집어던지냐"라더라.

이 핸드폰도 원래 폰 떨궈서 고장나는 바람에 친구가 가지고 있던 예비폰 받은 건데... 미안해 친구...

손에 이상한 게 씌였나... 왜 핸드폰을 못떨궈서 안달인지 모르겠다...


지금 여러분들이 보시고 계신 방콕 여행 사진은 제 핸드폰의 유작입니다...

그냥... 그냥 그렇다구요...






덧글

  • 우레 2019/09/08 17:00 # 삭제 답글

    노란 건물은 태국 국방부 건물입니다.
  • enat 2019/09/11 14:15 #

    병아리 같은 노란 색이라 시청 같은 건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무거운 곳이었네요 ㅋㅋ
  • 냥이 2019/09/08 20:29 # 답글

    맥도날드의 파이메뉴...저거 한국에서도 1천원 입니다.(전자기기류는 열 받지 않게 조심해야되요. 기기가 열 식힌다고 성능 낮추거든요.)
  • enat 2019/09/11 14:16 #

    한국엔 애플파이만 있지 않나요? 애플파이 먹기는 해봤는데 콘파이나 파인애플파이처럼 맛있진 않더라구요 ㅠ

    핸드폰은 그 이후에 열 안받게 하려고 노력 많이 했습니다... ㅋㅋㅋ 그렇게 애지중지했는데 한국으로 돌아와 박살날 줄은 몰랐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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