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11 13:59

방콕 주말여행 (3) 매우 더웠던 왕궁과 왓포 └ 방콕 주말여행 (2019)

1.

방콕에 관한 가이드북, 블로그 글, 신문기사, 여행사 일정표, 하여간 어느 매체를 읽던지, 방콕에 가면 꼭 들러야하는 곳이 있다고 한다. 바로 왕궁과 왓포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서울의 경복궁과 남산 같은 느낌일까. 태국에서 손꼽는 머스트 씨 관광지라고 한다.

요새 들어 힘들게 관광지 구경하는 것보다 그냥 낯선 곳에서 느긋하게 지내는 걸 선호하게 됐지만, 그래도 외국인 친구가 우리나라 놀러와서 경복궁이랑 남산 안가봤다고 하면 "거기 안가고 뭐했어!"라고 외치며 데려가야 할 의무감에 젖을 것 같다. 나는 미래에 언젠가 사귈 태국인 친구를 위해, 왕궁과 왓포 정도는 미리 가보기로 했다. 미래의 태국인 친구는 그러한 의무감과 고뇌에 빠지지 않겠지. 나는 참 좋은 친구야.





2.

카오산 로드 쪽에 있는 숙소에서 천천히 걸어 30분, 왕궁에 도착했다. 왕궁까지 가는 내내 그늘 하나 없는 땡볕이라 무지 더웠다. 웬만하면 택시를 타시라.

여튼 왕궁.

태국에서 가장 상징적이고 중요한 곳이다.

왕궁 안쪽엔 어전(차크리 마하쁘라삿)과 종교사원(왓 프라깨우)이 근접해 있는데, 태국에서의 왕의 위상을 생각한다면 관저와 사원이 함께 있는 게 전혀 이상할 일이 아니다.




사진은 사원인 왓 프라깨우의 일부.

태국에서는 왕을 살아있는 부처라 하며 신성시한다고 한다. 왕궁까지 걸어오는 내내 길거리마다 왕의 초상화나 사진이 극진히 모셔져있는 걸 보며 신기하다 싶었다. 국왕을 신처럼 받드는 것에 대해 자국민들이 아무런 불만이 없다면 외국인인 내가 뭐라 할 건 없겠으나, 입헌군주제도 아니고 공화정에서 살아온 나로썬 영 기이한 느낌이 든다.





입장료는 500바트 (한화 약 2만원).

태국 물가치고는 비싸지만, '반드시 가야할 곳'이란 타이틀이 붙은 관광지가 늘 그렇듯 사람은 미어터진다. 심지어 그늘도 많지 않다. 이놈의 왕궁은 땡볕 뿐이고 바람조차 뜨겁다.

내리쬐는 태양 아래에서 인파에 밀려 30분 정도 구경하다가 완전 넉다운. 구경이고 뭐고 그 이후엔 카페에서 쥬스 쪽쪽 빨다가 나왔다.





왕궁의 건물들은 세상 어디서도 본 적 없는 특이한 건물 양식인데, 또 하나하나 뜯어보면 무슨 여행 사진에서 제법 봤던 것 같은 양식들이 모여있다. 알고보니 방콕의 왕궁은 동남아 양식을 집대성한 대표적인 곳이라고 한다. 나야 동남아 쪽을 아직 많이 다니지 않았으니, 이런 양식을 낯설게 본 것 같다.

앞으로 동남아 쪽도 쫄래쫄래 많이 돌아다니면 눈에 익겠지.





건물 자체는 참 화려했다. 꾸미려면 이렇게 꾸며야지! 하는 느낌. 빛을 반사시키는 장식물이 많아 가뜩이나 이글거리는 태양빛이 사방으로 번졌고 그래서 더 반짝거리고 빛나보였다. 꼭 화장대나 보석함에 달린 장식 같았다.

근데 그 예쁘장한게 가까이 가서 보면 쪼끔 조잡한 느낌이 든다. 실수한 곳도 있고, 접착제가 보이는 곳도 많고. 아무래도 '멀리서 어떻게 보일지'를 염두에 두고 꾸민 것 같다.

여태까지 내가 경이롭다 생각했던 건축물들은 크리스트교의 대성당이나 아랍권의 궁전 등이었는데, 그런 곳들은 신앙에 의한 장인정신으로 꾸며지는 경우가 많아, 가까이 들여다볼수록 정밀하고 눈여겨 보지 않는 부분까지 손대는 세밀함 - 신에게 바치는 거니까! - 이 있었다. 그런데 이 태국의 왕궁은 그런 종교적 장인정신보다는 효율적 프로젝트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정밀작업을 하기 어려운 후덥지근한 날씨속에서 어떻게 하면 덜 고생하며 더 아름답고 화려하게 보일까 하는 고민이 엿보이는.

이렇게 쓰면 평가가 박한 것처럼 느껴지나? 보다 인간적이어서 좋았다는 걸 쓰고 싶었을 뿐이다.





왓 프라깨우의 기둥들.

날마다 퍼붓는 스콜을 닮은 듯한 곧은 직선이 마음에 들었다. 비가 와도 예쁠 것 같은데. 인적이 드물 때 반짝거리는 기둥 아래에 쪼그려 앉아 비 내리는 모습을 보고 싶다. '인적이 드물 때'가 없을 것 같지만.




왓 프라깨우에서 담 하나를 넘어가면 어전인 차크리 마하쁘라삿으로 갈 수 있다. 라마 5세 때 유럽을 순방하고 나서 지은 건물이라고 한다. 높게 솟은 지붕과 금박을 제외한다면, 꼭 유럽의 궁전 같은 느낌이다.

그나저나 여긴 왓 프라깨우보다 더 그늘이 없다. 사진은 흐린 날씨처럼 보이는데 반대쪽 하늘은 쨍쨍했고 덕분에 목 뒤가 몹시 따가웠다.

다들 필사적으로 궁 앞에서 인증샷을 남기던데, 이미 지칠대로 지쳐버린 나는 훌륭한 곳이군 음음 하며 빠르게 통과했다.




차크리 마하쁘라삿에서 박물관 쪽으로 가면 카페 하나가 나온다.

관광지 내부에 위치한 카페라니 맛이 정말 없을 것만 같고 무지 비쌀 것만 같고 들어가면 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이 태양 아래에선 어쩔 수 없다. 카페 문을 열자마자 에어컨 바람이 내 몸을 휘감았다. 행복해...

이곳에선 망고 패션 후르츠 쥬스(80바트, 한화 약 3천원)를 사먹었는데, 너무 달아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렇게까지 달게 만들 필요는... 으... 그렇지만 에어컨이 시원하니 그것에 감사하며 쉬어가기로 했다.





3.

음료를 다 마시고 밖으로 나왔다. 왕궁 내 박물관은... 도저히 둘러볼 컨디션이 아니다. 빨리 짐 맡겨둔 숙소로 돌아가 체크인하고 씻고 싶을 따름이다. 하지만 체크인 시간에 비해 시계는 아직 이르고 나는 좀 더 어디선가 시간을 때워야한다.

태국에서 왕궁 다음으로 유명한 곳은 왓 포다. 왓 포는 방콕이란 도시가 건설되기 전인 16세기에 지어진 사원으로, 그 역사와 유래가 깊다고 한다.

허나 그 정도의 정보론 끌리지 않는다. 내가 왓 포에 갈 원동력이 될만한 정보가 있을까 찾아봤더니, 이곳엔 대형 와불상이 모셔져 있다고 했다. 와불상, 누워있는 부처상이라니. 지금 당장 시원한 어딘가에 눕고 싶은 나로썬 매우 부럽기 짝이 없다. 그래, 그 와불상을 보러 가보기로 했다.




왕궁의 하얀 성벽을 따라 쭉 내려가면 왓포가 나온다. 성벽은 왜 이리 길고 날씨는 왜 이리 후덥지근하던지. 비척비척 걸어갔다.





4.

왓포에 도착했다.

왓포 입장료는 200바트(약 8천원). 입장료에는 생수 한 병을 무료로 주는 쿠폰이 포함되어 있다. 왓포 내부에 생수 나눠주는 곳이 있는데 거기 자원봉사자 분께서 (직원인지 자원봉사자인지 잘 모르겠지만 종교시설이라 자원봉사자분이 아닐까 싶다) 쿠폰을 받고 생수를 나눠주신다.

부처님의 자비가 담긴 생명수... 감사하며 받아마셨다.




생수를 벌컥벌컥 마시며 둘러본 왓포는 왕궁보단 그늘이 많고 바람이 불어 시원했다. 사원 마당의 정원과 나무 덕분이다.




와불이 모셔져 있다는 곳부터 찾아갔다. 이곳은 신발을 벗어야지만 들어갈 수 있다. 앞에서 나눠주는 비닐봉투에 신발을 넣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그래도 바람길에 위치했는데 앞뒤로 뚫린 구조여서 내부는 꽤 시원한 편이었다.

내부엔 기둥이 많아, 와불을 한꺼번에 조망할 수 있는 공간이 제한적이었다. 하긴, 당시 기술로 이 정도 크기의 건물에 이 정도 개수의 기둥이 아니라면 힘을 분산시키기 어려웠을 것 같다.




기둥 사이로 본 와불의 얼굴.

일기장에 '평온한 와불의 얼굴'이라고 적었다가 찍찍 지우고 '나를 놀리는 것만 같은 와불의 얼굴'이라고 다시 적었다. 눕고자 하는 욕망이 커서 그리 보였나. 부처님 죄송합니다.




발이나 얼굴 쪽에서 보면 길이가 46m나 되는 와불 전체를 한번에 감상할 수 있다.

동선상 얼굴 앞쪽으로 들어가 발 자개가 있는 곳에서 한바퀴 돌고 얼굴 뒤쪽으로 나가게 되는데, 얼굴 앞쪽은 늘 사람이 모여있어서 관람하기가 어렵다. 키 큰 서양인들이 펼치는 강력 수비(?)를 뚫 수 없었던 나로썬 발쪽과 얼굴 뒤쪽에서나 좀 관람할 수 있었다. 나 대한민국 평균 킨데... 씨이...




이건 뒷모습. 엄청 높아보이는 베개와 뒷머리 등의 디테일에 집중할 수 있다. 특히 베개 장식이 엄청 정교하고 화려했다.




와불을 감상하고 나온 뒤, 다시 신발을 신고 불탑이 있는 곳으로 갔다.

불탑은 도자기 장식을 이용하여 알록달록 다양한 색상으로 꾸며져 있었다. 아까 왕궁 쪽의 왓 프라깨우도 그렇고, 태국의 사원들은 오색빛깔로 반짝이는 게 기본인가 보다. 축소 모형이나 모형을 이용한 악세사리 있으면 하나 사가고 싶은걸.




가까이서 보면 요런 모양. 역시 내구성이나 디테일은 쪼오끔 아쉽다.





와불상과 불탑을 본 뒤, 왓 포의 대웅전으로 향했는데, 주말이라 무슨 행사를 하고 있었는지 시끌벅쩍했다. 지역 주민들과 스님들이 음식을 나눠먹고 있었는데, 법당 구경하려다가 괜히 들쑤시고 다니는 모양새가 될 것 같아 그냥 축제 분위기를 엿보다가 밖으로 나왔다.





5.

왕궁, 왓 포를 다 보고나니 점심 때였다. 아침보다 몇 배는 더 무더워졌다. 얼마나 더웠냐면 아까 왓 포에서 봤던 스님들의 의상처럼 얇은 천을 몸에 대충 두르기만 하고 싶다 생각할 정도였다.

이젠 지쳤다. 빨리 숙소로 돌아가서 체크인하고 씻고 싶다. 체크인 시간까진 아직 1, 2시간 남았지만 앞에서 죽치고 기다려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택시에 탑승했다. 호텔 이름을 불렀지만 잘 모르길래, 호텔 앞에 있는 송크란 사원을 말했더니 바로 알아듣고 출발했다. 앞으로 숙소에 가고 싶으면 송크란 사원을 불러야겠군.

택시는 바가지를 씌웠고 (왓 포 → 카오산 로드 가는데 200바트 (약 8천원) 냈다. 이쪽 길이 차량이 많아 늘 밀리긴 하지만 2.5km밖에 안된다는 걸 생각하면 엄청 비싸게 받은 거다.) 아직 이 동네 물가를 잘 모르던 나는 그대로 당했다. 원래 왕궁이나 왓 포 쪽에 방콕 초보 여행자들이 많은 걸 알고 많이들 비싸게 부른다고 한다. 그래봤자 몇 천원 차이지만 다시는 당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에 가자 날 불쌍히 여겨준 호텔 직원이 체크인을 바로 해줬고, 나는 환호성을 지르며 객실로 들어가 에어컨을 강풍으로 맞춰놓고 신나게 샤워를 했다. 이제야 좀 살 것 같다!






짜뚜짝 주말시장에서 계속!




+ 그 외 왕궁, 왓 포 사진들


























덧글

  • 라비안로즈 2019/09/11 14:39 # 답글

    이글이글 태양이 느껴지는 사진이네요. 태국은 남자들이라면 한번씩 절에 가서 수도승 생활응 해야된다고 하더라구요. 하는 건 자유지만 안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해야지 부모의 사후생활에 이득을 볼 수 있다며 효심으로 한다 하더라구요.

    어느나라나 택시 바가지는 없잖아 있을듯합니다. 저는 겨울때나 가보는걸로 생각을 하려구요. 여름에 딸랑이 둘 델규 다니려면 아마 인내심따위야 녹아 없어질듯합니다. ㅎㅎ
  • 우레 2019/09/13 19:17 # 삭제 답글

    왕궁 건물에 대한 인간미 넘치는 표현에 공감합니다.

    왕궁과 절들의 삐까번쩍, 울긋불긋 건물의 웅장대이나 화려함은 충분히 인상적이나 여기저기 비슷비슷한 건축물들이 널려 있음에 식상하기 쉽고, 오래가지 못할 것 같은 치장에 오히여 근처 서민들 골목길의 앳된 노점상, 30바트짜리 국숫집이나 낮잠 자는 강아지들 모습에 더 정감이 갑니다. 앙코르와트 회랑 부조의 단순하지만 섬세한 조각, 불상에 비교할 정도였으면 더 좋았겠지요.

    비슷하게 중정 격자모양의 파리 시내 건물들 보다 좁고 삐뚤삐뚤 무질서하여 헤매이게 만드는 유럽 소도시 건물들에 더 묵고 싶은 마음과 비슷할련지...
  • 좀좀이 2019/09/14 02:32 # 삭제 답글

    태국 왕궁 갔을 때 기억은 중국인 관광객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 그리고 중국인들이 양산 쓰고 돌아다녀서 그게 상당히 신경쓰였다는 것 정도였어요. 화려하기는 한데 양산 부대가...이렇게 사진으로 보니 현장에서는 여전히 사람이 미어터졌겠지만 조용히 관람하는 기분 들어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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